평생학습

제8장 풍자, 익살

실다이 2008. 11. 18. 14:58

 

제8장   풍자, 익살


  292. 각시네 오려논이 

  293. 간밤에 자고 간 그놈

  294. 감장새 작다 하고 : 이택

  295. 강호에 노는 고기 : 이정보

  296. 개를 여남은이나

  297. 꽃아 색을 믿고 오는 

  298. 구렁에 난 풀이 : 이정환 

  299. 냇가에 해오랍아 : 신흠

  300. 대붕을 손으로 잡아 

  301. 두터비 파리를 물고

  302. 머귀 여름은 동실동실 : 김수장

  303. 묻노라 불나비야 : 이정보

  304. 만남진 그놈 자총

  305. 반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306. 백초를 다 심어도 

  307. 사람이 사람 그려

  308. 소경이 맹과니를 

  309. 수박같이 두렷한 님아 

  310. 어디 자고 여기 왔노

  311.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312. 이런들 어떠하며 : 이방원

  313. 일신이 사자하니

  314. 장사왕 가태부 : 정철

  315. 저 건너 괴음채각 중에

  316. 쥐 찬 소로기들아 : 구지정

  317. 천지로 장막 삼고 : 이안눌

  318. 초당에 일이 없어 : 유성원

  319. 춘풍에 떨어진 매화

  320. 콩밭에 들어 콩잎 뜯어 먹는

  321. 풍파에 놀란 사공 : 장만

  322. 한손에 가지 쥐고 : 우탁

 

          제8장  풍자, 익살


  서양 사람들에게는 '유머'가 있어 그것이 그들의 생활 속에 베어들어 있는데, 우리 겨레에게는

그것이 없다  즉 유머가 없어서 삭막하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유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익살' 즉 '해학'이 그것인데, 우리 문학의

특색의 하나로 칠 정도로 고전작품에는 해학성이 풍부하다  이 장에 모아 본 작품들에는 '풍자'와

아울러 그 '해학', 즉 익살이나 유머라고 해도 좋은 그것들이 풍부한 노래들이다  읽으면 절로 웃

음이 나오는 그런 것들이다

  '풍자'의 수법은 참으로 다양하고 멋진 것이 많다  사람의 의표를 찌르는 그런 것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기발하고도 적절한 비유와 더불어 은근하면서도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풍자는 표현의

성과를 갑절로 올리고 있다  "풍파에 놀란 사공"이며, "쥐 찬 소로기들아"를 보면, 그것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풍자와 익살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작품을 숙독하여 음미할

필요가 있다  한번 읽어 보고 당장 그것을 발견하려면 독해력이 앞서야 한다  그러나 옛글에

서투른 사람일지라도 여러 번 읽어 보고 작품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나면, 새삼스럽게 그 뜻의

깊이를 깨닫게 되는 법이다  우선 여러 번 읽어서 내용을 잘 이해하는 일이, 다시 말해서 작품의

맛을 볼 줄 알게 되면, 그런 것들도 자연히 깨닫게 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292. 각시네 오려논이 첨부이미지


  각시네 오려논이 물도 많고 거다 하네

  병작을 주려거든 연장 좋은 나를 주소

  진실로 주기곧 줄 양이면 가래들고 씨 디어 볼까 하노라


  -- 말뜻

  오려논;올벼, 즉 일찍 익는 벼를 심은 논  물도 많고 건 좋은 논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서는 옥문의 은유

  병작: 지주와 작인이 소출을 나누어 갖는 제도이니, 공동 작업을 뜻한다  소작이라고 하지

않은 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연장: 쟁기 연장의 연장이지만, 여기에서는 남성의 상징을 뜻한다

  주기 곧 줄 양이면: 주기만 할 것 같으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자인한 가슴 설레이는 동경을

읽을 수 있다

  가래: 줄을 매어서 잡아당기게 된, 삽 비슷한 농기구

  씨디어 볼까;씨를 떨어뜨려(뿌려) 볼까  여기에도 은연중 성행위에 관한 비유가 포함되어 있다


  -- 감상

  성관계의 표현은 예나 지금이나 노골적, 직설적으로 하여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서 상스러운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는 것은 점잖지 못한 짓이다  이 시조를 보라  참으로 멋진 은유다 

리고 철저한 은유다  얼른 봐서는 머슴이 소작을 청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각시네"의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다러났다  그렇게 깨닫고 보니, 문장 전체가 다 그 이야기다  "오려논"도

그렇고 "물도 많고 거다"는 것은 여성 쪽이요, "연장 좋은" 것은 남성 쪽이다  소작이 아니고

병작인 데에 '함께 즐기는' 뜻을 포함시켰으며, "주기곧 줄 양이면"이라는 말에 가슴 설레임이

노출되어 있다  또 "씨 디어 볼까"라는 말은 자연스러우면서, 털끝만큼도 책잡힐 틈을 주지 않고

할 말을 다하였다  시원할 것이다  저절로 나오는 웃음은 익살에서 오는 것뿐만이 아님을

알 것이다.



    293.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첨부이미지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아마도 못 잊겠다

  와야놈의 아들인지 진흙에 뽑내듯이 두더지 영식인지 꾹꾹이 뒤지듯이 사공의 성녕인지

상앗대 지르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흉측히도 얄궂어라

  전후에 나도 무던히 겪었으되 참맹세 간밤 그놈은 차마 못 잊을까 하노라


  -- 말뜻

  와야놈: 기와장이를 낮추어 하는 말인데, 진흙을 잘 다루는 재주를 가진 놈일 것이다

  영식: 남의 아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  두더지 아드님이니, 땅속을 오죽이나 꾹꾹 잘 뒤질까

  성녕: 솜씨  손재주

  상앗대: 얕은 물에서 배를 미는 장대

  참맹세: 참말로  맹세코


  -- 감상

  간밤에 자고 간 그놈, 어찌나 그 재주가 좋던지...암만 해도 잊을 수가 없다  기와장이의

아들놈인지 진흙을 이겨대듯이, 두더지 아드님인지 꾹꾹 뒤지는 그 솜씨  능숙한 뱃사공의

솜씨인지 상앗대질 하듯이...평생에 그런 맛 처음이라, 아이 망측하고 얄궂어라!

  수사가 투박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지 않는가  외설로 흐르기 쉬운 이런 제재를 기발한

비유와 익살이 넘치는 표현으로잘 처리하여, 결코 상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취할 만하지

않은가  중장, 종장이 다 파격이니 사설시조이다.



    294. 감장새 작다 하고 첨부이미지

                    이택


  감장새 작다 하고 대붕이 웃지 마라

  구만리 장천을 너도날고 자도 난다

  두어라 일반비조이니 네오 긔오 다르랴


  -- 지은이: 이택(1651__1719)

 조선조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전라좌수사와 평안병사를 지냈다  몸이

약한 것을 구실로 그를 미워하는 사람의 모함을 받아 한직으로 돌려진 일이 있다


  -- 말뜻

  감장새: 몸집이 작고 거무튀튀한 초라한 새  굴뚝새

  대붕: 단숨에 9만 리를 날고,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상상의 새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이

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장자'에 실려 있다  감장새와 대붕은 극단적인 대조의 대상이다

  구만리 장천: 넓고 높은 하늘  9만리는 가장 먼 거리를 상징하는 말  9는 가장 큰 수의 대표로

쓰인 것이다  9천, 구공...

  일반비조: 다 같은 날짐승이라는 뜻

  네오 긔오: 너나 그것(감장새)이나  '__오'는 '__고'의 ㄱ탈락형  '긔'는 그+이  '그것'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 감상

  감장새를 작고 못생겼다고 대붕새야 비웃지 말아라  구만 리 넓으나 넓은 하늘을 너도 날고

감장새도 같이 날아다니지 않느냐  다 같은 날짐승인데 너나 감장새나 다를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문관을 존중하고 무관을 멸시하던 당시의 풍조를 위의 노래로 비유하여, 인간의 본질에는

다름이 없음을 은유함으로써 멸시받는 무인의 울분을 토로하였다.



    295. 강호에 노는 고기 첨부이미지

                    이정보


  강호에 노는 고기 즐긴다 부러워 마라

  어부 돌아간 후 엿느니 백로로다

  종일은 뜨락잠기락 한가한 때 없더라


  -- 지은이: 이정보  96. 참고

  -- 감상

  물 속에서 마음대로 뛰놀고 있는 고기는 참으로 즐거울 것이라고 부러워하지 마라  그물을

가지고 와서 다 잡아가려고 한바탕 북새를 놓은 어부가 지나가고 나니, 이번에는 또 해오라기가

쪼아먹으려고 잔뜩 노리고 있구나!  그것들을 피하느라고 하루 종일을 떴다 잠겼다 하니

한가할 때가 어디 있겠는가

  무엇인가 숨은 뜻이 있는 것 같은 노래다  고달파하는 '고기'를 초야에 숨어 사는 지사로 보면,

'어부, 백로'는 그를 괴롭히는 존재들로 연상이 된다.



      296. 개를 여남은이나 첨부이미지


  개를 여남은이나 가르되 요 개같이 얄미우랴

  미운님 오면은 꼬리를 홰홰 치며 칩뚜락 내리뛰락 반겨서 내닫고 고운님 오면은 뒤발을

바둥바둥 므르락 나으락 캉캉 짖어 돌아가게 한다

  쉰밥이 그릇그릇 난들 너 먹일 줄이 이시랴


  -- 감상

  개를 열 마리가 넘게 길렀어도 요 개같이 얄미운 놈은 처음이로다  내가 미워하는 님이 오면

반겨서 좋아하고,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님이 오면 오히려 바둥거리며 캥캥 짖어 돌려보낸다

그렇게 얄미운 짓만 골라가며 하나, 설사 쉰밥이 남아돈들 네게 먹일 마음이 생기겠느냐

  "므르락 나으락"은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나아갔다 한다는 말이다  개의 동작에 대한 표현이

소박하면서도 실감나는 사설시조이다  이와 비슷한 시조가 또 있다


  바둑아 검동이 청삽사리 중에 조 노랑 암캐같이 얄밉고 잔미우랴

  미운님 오게 되면 꼬리를 회회 치며 반겨 내닫고 고은님 오게 되면 두 발을 벋디디고

콧살을 찡그리며 무르락 나으락 캉캉 짖는 요 노랑 암캐

  이튿날 문 밖에 개 사옵세 웨는 장사 가거드란 찬찬 동여 내어주리라(작자 미상)


  또 김수장의 작품에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으나, 원작은 기녀로 상정해 봄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바둑이 검동이 청삽사리 중에 조 노랑 암캐같이 얄미우랴

  미운님 오면 반겨 내닫고 고운님 오면 캉캉 짖어 못오게 한다

  문 밖에 개장수 가거든 찬찬 동여 주리라.



    297. 꽃아 색을 믿고 오는 첨부이미지


  꽃아 색을 믿고 오는 나비 금치 마라

  춘광이 덧없은 줄 넌들 아니 짐작하랴

  녹엽이 성음자만지면 어느 나비 오리요


  -- 말뜻

  춘광: 봄빛  따뜻하고 경치 좋은 봄

  덧없다: 무상하다  어느덧 가버린다  불교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녹엽이 성음자만지: '녹엽'은 푸른 잎  '성음자만지'는 녹음이 우거지고, 열매가 가지마다

가득 차게 된다는 말이니, 여자가 출가하여 자녀를 낳고 중년이 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 감상

  꽃아!  네 아름다운 모습을 믿고 날아오는 나비를 오지 말라고 거절하지 말아라  너희들의

한 시절인 몸이 영원한 것인 줄 아느냐  머지 않아 지나가 버리는 덧없는 것인 줄을 너도

짐작하지 못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여름이 와서 녹음이 우거지고, 나뭇가지에 열매가 열게

되면(봄이 가버리면), 어느 나비가 찾아오겠느냐?  그때는 오라고 불러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의 꽃은 물론 아리따운 아가씨를 비유한 것이다  너의 아름다움도 한때요, 너를 보고

모여드는 총각들도 지금이지, 때가 지나가 버리면 거들떠보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298. 구렁에 난 풀이 첨부이미지

                    이정환


  구렁에 난 풀이 봄비에 절로 길어

  알 일 없으니 그 아니 좋을소냐

  우리는 너희만 못하여 시름계워 하노라


  -- 지은이: 이정환  13. 참고

  -- 감상

  보는 사람도 없는 구렁에 나 있는 이름 없는 풀이 봄비에 저절로 자라, 지각과 분별력으로

알아야 할 일도 없으니, 어지러운 세상의 이러쿵저러쿵한 일에 신경쓸 필요도 없는 너희가 나는

부럽다  오랑캐 장수 앞에 임금이 무릎을 꿇어야 했던 이 굴욕을 우리는 사람이기에 보고 겪어야

함이 한스럽기만 하다

  사람이기에 어중간한 지각이니 지성이니 감성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괴로워해야

하는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그런 것 다 모르고 그저 무심한 풀, 그것도 아무데나 나 있는

잡초, 아무리 짓밟혀도 또 살아나는 너의 무디고 억센 천성이 나는 오히려 부럽구나!

  지은이의 '비가' 10수 중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299. 냇가의 해오랍아 첨부이미지

                    신흠


  냇가의 해오랍아 무스 일 서 있는다

  무심한 저 고기를 여어 무슴하려는다

  아마도 한물에 있거니 잊어신들 어떠리


  -- 지은이: 신흠  52. 참고

  -- 말뜻

  해오랍아: 해오라기야!

  무스 일: 무슨 일로

  여어: 엿어  엿보아서  노려보아

  무슴하려는다: 무엇하려느냐?


  -- 감상

  냇가에 버티고 서 있는 해오라기야, 너는 무슨 일로 그렇게 하루 종일 거기에 서 있느냐

아마도 물 속에서 노는 고기를 노리고 있는 모양인데, 물 속에서 무심히 천진스럽게 놀고

있는 고기를 엿보아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  생각건대, 해오라기 너나 물고기나 다같이 같은

물에서 살고 있는 사이이니 좀 잊어버리는 것이 어떠냐  동족이나 한 이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잡아먹으려고 기를 쓰느냐 말이다  제발 살생일랑 그마두어라  인간 세상에서 서로

물고 뜯는 일도 좀 없었으면 좋겠구나!

  지은이는 선조 임금으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이른바 유교칠신의 한 사람이다

그가 계축화옥에 연루된 관계로 파직 유배되어, 대북과 소북의 피비린내 나는 당쟁의 소용돌이를

겪었으니, 이 시조도 그것을 개탄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을 직설적으로 공박하지 않고,

'냇가의 해오라기'와 '물 속의 고기'에 은유하여 점잖게 풍자한 데에서 그의 대학자적인 풍모가

엿보인다.



    300. 대붕을 손으로 잡아 첨부이미지


  대붕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먹고

  곤륜산 옆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니

  태산이 발끝에 채어 왜각데각 하더라


  -- 말뜻

  대붕: 굉장히 크다고 하는 상상의 새

  곤륜산: 중국 신강성과 티베트의 경계에 있는 큰 산  산의 조종으로 치는 명산이다

  태산: 중국 산동성에 있는 산으로 오악의 하나  옛부터 높은 산의 대명사처럼 쓰인다  5악은

태산(동악), 형산(남악), 화산(서악), 항산(북악), 숭산(중악)이다

  왜각데각: 딴딴한 물건이 서로 부딪쳐서 나는 요란한 소리


  -- 감상

  세상에서 제일 크다는 대붕새를 맨손으로 잡아서 번갯불에다 구워서 먹고, 산의 조종이라는

곤륜산을 옆구리에다가 끼고 북해 바다를 단숨에 껑충 건너뛰니, 태산이 발끝에 채어서 왈가닥

덜거덕 요란한 소리가 난다

  호탕한 남아의 기개를 한번 크게 발산시켜 본 것이기는 하나, 과대망상이라는 평은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임진왜란의 혹독한 8년 풍진을 겪고 난 뒤에 이런 과대망상적, 기상천외한 시나

글('임진록' 같은 소설류)이 쏟아져 나왔는데, 북쪽의 되(호)나 남쪽의 왜의 침략에 시달린

울분을 이런 식으로 펴보려는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생각과 기개는 살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펴볼 힘이 없어서 억울함을 당한 울분을 역설적으로 펴보려는, 애꿎은 인간 심리의

한 표현이다.



    301. 두터비 파리를 물고 첨부이미지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엄 우희 치달아 앉아

  건넌산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자빠졌다

  모처럼 날랜 낼시망정 어혈질 뻔 하괘라


  -- 말뜻

  두터비: 두꺼비  '두텁'이라고도 하였으니, 주격 조사 '이'가 붙은 것으로 보면, '두텁이'

즉 '두꺼비'가 된다

  두엄: 퇴비의 순 우리말인데, 그것을 쌓아 놓은 더미, 두엄 더미

  우희: 위에

  치달아 앉아: 뛰어 올라 앉아

  백송골: 흰 송골매  온몸의 털빛이 하얀데, 다만 등어리 깃에 V자 모양의 얼룩 무늬가 있다

성질이 강하고 날쌔어 해동청(송골매) 중에서도 우수한 종류이다

  어혈지다: 타박상 등을 입어 죽은 피가 검게 모이는 것을 말한다

  하괘라: 하였노라  감탄의 뜻이 있음


  -- 감상

  얼마나 익살스러운 시조인가  얼간이 같은, 어릿광대 같은 두터비가 무슨 큰 사냥이나 한

듯이 파리 한 마리를 잡아 물고, 높은 산에라도 오른 듯이 겨우 두엄더미 위에 올라가 앉아서

의기양양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게 웬일이냐, 저 건너의 산을 바라보니 하늘에 송골매가

둥둥 떠돌며 먹이를 찾고 있지 않은가  이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얼떨결에 풀떡 뛰어

도망친다는 것이 두엄더미 아래로 뒹굴어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그 주제에 하는 말이 또 우습다  '날쌘 내일씨망정이지 낙상하여 어혈질

뻔하였다'  몸이 날랜 나이기에 이 정도로 끝났지, 큰일날 뻔했다는 것이다  비슷한 노래가

또 있다


  두꺼비 저 두꺼비 한눈 멀고 다리저는 저 두꺼비

  한 날개 없는 파리를 물고 날랜 체하여 두엄 쌓은 위를 솟구다가 발딱 나뒤쳐 떨어졌도다

  모처럼 몸이 날랠쎄망정 중인첨시에 남웃길 뻔하였다

  (중인첨시는 '여러 사람이 모두 보는 앞에서'라는 뜻이다)

  못난 주제에 생살여탈지권은 가지고 있어서 파리 목숨 같은 백성의 고혈을 빨던 지방 토호나

탐관오리들의 우쭐대는 꼴을 희화적으로 그린 풍유 작품일 것이다.



    302. 머귀 여름은 동실동실 첨부이미지

                    김수장


  머귀 여름은 동실동실 보리뿌리는 맥근맥근

  풋나뭇동과 쓰던 수셤이요 젊은 노송에 작은 대추로다

  이중에 계명화죽처는 곳대곳이라 하더라


  -- 지은이: 김수장  21. 참고

  -- 감상

  한자를 가지고 말장난한 시조 하나를 들어 본다

  "머귀 여름"은 오동나무 열매인데, 한자로 쓰면 동실이 된다  이것과 오동 열매의 모양을

형용한 의태어 "동실동실"을 일치시켰다

  "보리 뿌리"도 같은 이치로 '매끈매끈'과 맥근맥근을 일치시킨 것이다

  "풋나뭇동과"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풀어 놓은 나무 덩어리'라는 뜻이 되므로, 발음되는

문구와 그 뜻이 일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이란 묶어서 한덩어리를 만든 것인데 이를

"풋나뭇동"이라고 표현했으니 이 얼마나 모순인가

  또 "쓰던 수셤"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볏섬이 숫섬인데 쓰던 것이라니 우습다  "젊은

노송(늙은 소나무)", "작은 대추(대자인데 작다니 모순)" 등도 마찬가지이다

  "계명 화죽처"는 "화죽처"가 곳(화), 대(죽), 곳(처)이므로, 닭의 울음 소리인 '꼭대꼭'이

된다

  이렇듯 잘도 주워 모았는데, 그것이 그럴듯하여 재미가 있다  당시 한자의 음이나 새김이

우리말과 같기고 하고 다르기도 한 상황에서 오는 말놀이는 허다하였다  그 속에는 한가로운

선비들의 말놀이(언어유희)라고 일축할 수만도 없는 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산 밑에서 개 부르는 글자가 뭐지?"

  "무너질 붕 자지 뭐야!"

  왜냐하면 붕은 월이 둘이니 '월이' 곧 '워리'다  '워리워리'하고 개를 부른다는 것이다

  김삿갓의 시에는 한자의 음훈과 우리말을 함께 사용한 희시가 많은데, 모두 이 시조와

비슷한 착상에서 나온 것이다.



    303. 묻노라 불나비야 첨부이미지

                    이정보


  묻노라 불나비야 네 뜻을 내 몰라라

  한 나비 죽은 뒤에 또 한 나비 따라오네

  아무리 푸새엣 짐승인들 너 죽은 줄 모르는다


  -- 지은이: 이정보  96. 참고

  -- 감상

  불을 보고 달려들어 그 불에 죽어가는 불나비들  앞의 놈이 타 죽는 것을 빤히 보고서도 또

달려드는 맹추 같은 불나비, 네 속을 나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아무리 하잘것없는

벌레(푸새엣짐승)라 할지라도 저 죽을 줄을 왜 모른다는 것인가?

  벼슬 자리가 좋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너도나도 뛰어드는 사람들, 혹은 당쟁이나 이권 다툼에

피를 보면서도 달려드는 소인배들, 아닌게 아니라 타 죽을 줄 모르고, 또는 뻔히 알면서도

덤벼드는 군상들은 이 불나비 족속들이다.



    304. 민남진 그놈 자총 첨부이미지


  민남진 그놈 자총 벙거지 쓴 놈

  소대서방 그놈은 삿벙거지 쓴 놈 그놈 민남진 그놈 자총 벙거지 쓴 놈은 빈 논에 정어리로되

  밤중만 삿벙거지 쓴 놈 보면 샐별 본 듯하여라


  -- 말뜻

  민남진: 본 남편

  자총 벙거지: 자줏빛 말총으로 만든 벙거지(옛날 모자의 한 가지)  여기서는 다음의

'삿벙거지'와 어울러 남자의 성기를 상징한 말

  소대서방: 사이서방(간부, 정부)

  정어이: 허수아비  '정의아비'라고도 하였다

  밤중만: 시조 종장 첫머리에 많이 쓰이는 일종의 감탄사로서 '한밤중쯤에'의 뜻

  샐별: 샛별  '샛별 본 듯하다'는 눈이 번쩍 뜨인다, 정신이 펄쩍난다는 뜻이다


  -- 감상

  본서방과 사이서방의 그것을 자총벙거지와 삿벙거지에 비유하여, 자총벙거지는 빈 논의

허수아비(별볼일 없는 것)인데, 한밤중에 그놈의 삿벙거지를 보면 눈이 번쩍한다는 소리다

이런 에로티시즘의 작품은 대개 이런 식의 은유적인 사설시조로 되어 있다

  우리 겨레는 옛부터 이런 구수한 자료들을 많이 마련하였고, 또 그것을 즐기었다  여기에는

그 빙산의 일각이 소개되었을 따름이다  물론 우리 문학의 해학성을 엿보기 위한 노력의

일단이다.



    305. 반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첨부이미지


  반여든에 첫 계집을 하니 어렷두렷 우벅주벅

  죽을뻔 살뻔하다가 와당탕 드리다라 이리저리 하니 노도령의 마음 흥글항글

  진실로 이 자미 아돗던들 길 적부터 할랐다


  -- 말뜻

  반여든: 마흔 살

  계집을 하니: 계집질을 하니  여자를 관계해 보니

  어렷두렷: 어리둥절한 모양

  우벅주벅: 일을 억지로 급하게 하는 모양  우적우적

  와당탕: 갑자기, 급히 뛰는 모양

  드리다라: 달려들어

  노도령: 늙은 도령이니 노총각을 말한다

  흥글항글: 마음을 진정 못하고 들떠 있는 모양  흥뚱항뚱  무아지경의 흥분 상태를 말한다

  자미: 재미의 원말

  아돗던들: 알았던들

  길 적부터: 기어다닐 적, 어렸을 적부터

  할랐다: '__랐다'는 다짐하는 뜻을 지닌 감탄형 종결어미


  -- 감상

  어렷두렷, 우벅주벅, 와당탕, 흥글항글 등의 부사(의성어나 의태어)가 장면 묘사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익살스러운, 그러면서 생동감을 주는 표현이 그럴 듯하다

  40이 다 된 노총각의 첫정사가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상당히 박진감 있게 그려져 있다  이런

종류의 도색 내용의 것은 대개 엇시조나 사설시조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종장의 마무리가 주제의 표현을 약간 상스러운 듯하면서도 익살스럽게

해주었다  여기서 웃음보가 터진다.



    306. 백초를 다 심어도 첨부이미지


  백초를 다 심어도 대는 아니 심으리라

  젓대는 울고 살대는 가고 그리느니 붓대로다

  구트나 울고 가고 그리는 대를 심어 무엇하리요


  -- 말뜻

  백초: 백 가지 풀  온갖 풀

  젓대: 저  가로 부는 관악기

  살대: 화살대  화살의 대

  붓대: 그림 그리는 붓의 대

  구트나: 구태여


  -- 감상

  항상 젓대는 울고(불어서 애절한 소리를 내는 것이니까), 살대는 가고(활을 쏘면 살이 시위를

떠나가 버리니까), 붓대는 그린다(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리워함을 하나로 잡아)  결국 울고

가고 그리고(그리워하고)...사랑하는 님을 이별하고 슬픔만 자아내게 하는 그런 대나무를 무엇

때문에 심겠느냐  온갖 풀을 다 심어도 이것만은 안 심겠다

  말재주를 부린 느낌도 없지 않으나, 그것이 아주 재치있고 자연스럽게 어우려져 어색하지

않다  대나무라면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그 곧은 절개만을 읊었던 시조들에 비하면 오히려 기발한

착상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307. 사람이 사람 그려 첨부이미지


  사라이 사람 그려 사람 하나 죽게 되니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아 사람을 살려라 사람이 살게


  -- 감상

  별것 아니지만 '사람'을 여러 번 묘하게 되풀이하여(한 장에 세 번씩 아홉 번)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관계 지은 데 묘미가 있다  성 혼의 '말 없는 청산(101)'과 비교하여 보라  또 일본의

유명한 단가에, "달달이 달 보는 달은 많아도 달 보는 달은 이 달의 달"이라고 추석달을 노래한

것이 있는데, 시상에 있어서 다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소재를 자꾸 되풀이함으로써,

강조의 효과를 내어보자는 것이다.

 

 

    308. 소경이 맹과니를 첨부이미지


  소경이 맹과니를 두리쳐 업고

  굽 떨어진 편격지 맨발에 신고 외나무 썩은 다리로 막대없이 앙감장감 건너가니

  그 아래 돌부처 서 있다가 앙천대소하더라


  -- 말뜻

  맹과니: 소경  장님  소경보다 정도가 조금 나은 사람  요즘 쓰는 말로 시력 장애자

  편격지: 굽없이 납작한 나막신

  막대: 막대기  지팡이

  앙감장감: 앙금앙금  위태롭고 굼뜨게 걸어가는 모양

  앙천대소: 직역하면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게 웃는 것인데, 쳐들고 한번 크게 웃어대는 것을

말한다


  -- 감상

  모순 투성이로구나  좀 나쁜 표현을 빌면, "병신들이 육갑하는 세상"이니, 돌부처조차 웃을

수 밖에  이렇게 한번 빈정대어 보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  아마도 몹시 답답한 세상이었던

모양이다  다음 시조와 대조해 보면 재미있다


  소경이 야밤중에 두눈 먼 말을 타고

  대천을 건너다가 빠지거다 저 소경아

  아이에(아예) 건너지 마던들 빠질 줄이 이시랴(이정보).



    309. 수박같이 두렷한 님아 첨부이미지


  수박같이 두렷한 님아 참외 같은 단 말씀 마소

  가지가지 하시는 말이 말마다 왼 말이로다

  구시월 씨동아같이 속 성긴 말 말으시소


  -- 감상

  나를 따돌리기만 하는 님의 말을 시골 남새밭에 혼자 있는 참외, 수박, 가지, 씨동아 등의

채소에 비유한 것이 기발하다 하겠다  수박같이 둥글둥글 복스러운 얼굴을 한 님아, 참외처럼

달콤한 말을 하지나 마소  가지가지 하는 말마다 하나같이 날 속이는 거짓말(원말)이로구나

구시월 가을의 씨받이 동아(박같은 열매가 맛이 좋다)처럼 속 빈 소리 하지나 마시오

  농민이 농산물에 의탁하여 자기의 감정을 하소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아침 이슬이 흠뻑 내린 초여름 맑은 아침에 남새밭에 들어선 것 같은 신선하고 상쾌한 인상을

콘크리트 속의 도시인들에게 맛보여 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문득 나게 하는 시조이다.



    310. 어디 자고 여기 왔노 첨부이미지


  어디 자고 여기 왔노 평양 자고 여기 왔네

  임진 대동강을 뉘뉘 배로 건너왔노

  선가는 많더라마는 여기 배 타고 건너왔네


  -- 감상

  옛시조를 도학자적인 점잖고 딱딱한 말만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오히려 전혀 반대되는,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이며, 좀 상스럽기까지 한 내용이나 표현이 의외로 많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엇시조나 사설시조에 그런 것이 많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 시조 문학이

대중적이고 표현 범위가 광범위함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시조도 그런 것 중의 하나라 하겠다

  평양엘 가서 기생집에서 자고 오지 못하면 한량축에 못 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거기에

빠져서 온 재산을 날려 버린 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돈만 아는 평양 기생이

아니었다  정이 들면, 의기가 통하여 잘 보이기만 하면 뜻밖의 호강을 누리는 수도 허다하였다

그만큼 평양 기생은 한낱 웃음이나 파는 속물이 아니었다  영리하고 인정있고 의리 굳고,

호기 넘치는 기질을 다분히 가지고 있던 그런 평양 기생이었다  '명기'의 이름이 결코 아깝지가

않다

  뱃삯이 엄청나게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의 배'를 타 본 것이 몹시도 자랑스러운가

보다  물에 떠다니는 배와 사람의 배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지만, 우연히도 발음이 같고

다같이 '타는 것'이라는 데 묘한 공통점이 있다  별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구수하게 잘 어울리는 것이 느껴져서 더욱 좋다.



    311.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첨부이미지


  얽고 검고 키 큰 구레나루 그것조차 길고 크다

  젊지 않은 놈 밤마다 배에 올라 조고만 구멍에 큰 연장 넣어 두고 흘근할적 할 제는 애정은

커니와 태산이 덮누르는듯 잔 방귀 소리에 젖먹던 힘이 다 쓰이노매라

  아무나 이 놈을 다려다가 백년동주하고 영영 아니 온들 어느 딸년이 시앗새옴 하리요


  -- 감상

  여러모로 상상할 수 있는 사설시조다  정말로 미워서 하는 소리냐, 좋아서 괜히 해보는

넋두리냐  또 고상한 말을 몰라서 이렇게 썼을까, 짐짓 이렇게 상말로 익살을 부린 것일까

원래 이런 종류의 행동이란, 또 음담패설이란 마구잡이로 상스럽게 해야 제맛이 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말이다.



    312. 이런들 어떠하며 첨부이미지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두렁치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 지은이: 이방원(1367__1422)

  자는 유덕  태조 이성계의 5남이며, 조선조 제3대 왕  아버지 이성계의

휘하에서 신진 정객들을 포섭하고, 정몽주와 그 일당을 제거하여 신진 세력의 기반을 확고히

하는 데 공로가 컸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평정하였으며, 민정을 살피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제도의 개혁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 말뜻

  만수산: 개성 서문 밖에 있는 산  고려 7릉이 있다

  두렁치: 두렁에 난 칡덩굴  두렁은 논밭 가에 둘러 쌓은 작은 언덕인데, 여기에서는 별로 큰

뜻은 없다

  얽어진들: 이리저리 얽힌들  칡덩굴은 서로 뒤엉켜서 자란다

  누리리라: 행복을 누리고 살리라


  -- 감상

  태종이 정몽주의 마음을 넌즈시 떠본, 이른바 '하여가'라고 불리는 노래다  고려 왕종에

대한 충성을 끝내 버리지 않고, 새 조정에 반기를 드는 정몽주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달래어

보려고, 이방원이 그를 초대하여 술잔치를 베풀고 이 노래를 넌지시 건넸으나, 그는

'단심가(27)'로써 그의 철석 같은 충절에 변함이 없음을 단호히 표시하였다  도저히 그의

고려에 대한 충절을 꺾을 수 없음을 알게 된 이방원의 부하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그를

선죽교에서 척살하였다  선죽교 돌다리에는 지금도 그 피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만수산의 두렁칡이 이리저리 뒤얽혀서 살아가듯이, 고려니 조선이니 따질 것 없이 둥글둥글

얽히어 살면서 영화를 누려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이다.



    313. 일신이 사자 하니 첨부이미지


  일신이 사자 하니 물것 계워 못 견딜쇠

  핏겨 같은 가랑니 보리알 같은 수통니 주린 니 갓 깐 니 잔벼룩 굵은 벼룩 강벼룩 왜벼룩

기는 놈 뛰는 놈에 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아비 갈따귀 사마귀 센바뀌 누른 바퀴

바구미 고자리 부리 뽀족한 모기 다리 길다란 모기 야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로기 주야로

빈 때없이 물거니 쏘거니 빨거니 뜯거니 심한 당비리 예서 어려웨라

  그 중에 차마 못 건일손 유월 복더위에 쉬파린가 하노라


  -- 말뜻

  물것 계워: 물것에 시달려  물것들 등쌀에  '겹다'는 '지다, 이기지 못하다'의 뜻

  못 견딜쇠: '쇠'는 '소이다'에서 '다'가 빠진 꼴

  핏겨: 피의 겨  아주 작다

  가랑니: 서캐(이의 알)에서 갓 깐 이의 새끼  아주 작지만 물면 몹시 가렵다

  수통니: 수퉁니  크고 굵고 살찐 이

  주린 니: 굶주린 이

  강벼룩: 세차게 물어대는 벼룩의 한 가지

  사령: 옛관청의 심부름꾼  백성들에게 무섭게 굴었다  등에의 모습이 사령의 차림새를 연상케

한다

  등에아비: 등에는 여름에 소에게 붙어서 그 피를 빨아먹는 매미 비슷하게 생긴(매미보다 작고,

파리보다 크다) 곤충  물면 몹시 따갑다  사나운 사령(사내)에 비유하여 '__아비'를 붙였다

  갈따귀: 모기의 한 가지인데, 아주 크다

  사마귀: 버마재비

  센 바퀴: 흰 바퀴

  바구미: 쌀에 생기는 벌레

  고자리: 노린재의 애벌레  오이, 참외, 호박 등의 해충

  그리마: 다족류에 딸린 벌레  설레발이라고도 한다

  예서: 이에서 여기에서

  어려웨라: 어렵도다  '__웨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 감상

  사람을 귀찮게 하는 여름철의 곤충(물것)들을 낱낱이 들어, 그 등쌀에 못살겠다는 것은 읊었다

제충제도 농약도 별로 없던 옛날에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지겨운 존재들이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이렇게 모조리 나열함으로써 그 물것들이 얼마나 귀찮은 것이었느가 하는 심정을 표현한

사설시조다

  오늘날의 발달된 의식주를 사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것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지도 모른다

가난과 싸우면서 원시를 살던 우리 선인들이나 기성 세대에게는 이제는 한낱 추억이지만,

야릇한 향수를 느끼는 일들이다.



    314. 장사왕 가태부 첨부이미지

                    정철


  장사왕 가태부 혜건대 우읍고야

  남 대되 근심을 제 혼자 맛다이셔

  긴 한숨 눈물도 과커든 에에할 줄 엇데오


  -- 지은이: 정철  8. 참고

  -- 말뜻

  장사왕 가태부: 장사왕의 태부인 가의를 말한다  가의는 중국 한나라의 대학자로서, 한나라

문제에게 등용되어 나이 스무 살에 박사가 되고, 뒤에 양왕의 대부가 되었는데, 제후가

강대해져서 다스리기가 어려워지자 탄식하며 울었다고 한다

  혜건대: 헤아리건대  생각건채

  우읍고야: 우습구나  '__고야'는 감탄형 종결어미

  남 대되: 대되는 무두, 죄다  토씨  '__에게'로 쓸 때도 있다

  맛다이셔: 맡아 있어  맡아서

  과커든: 맡아 있어  맡아서

  과커든: 과하거든  지나치거든

  에에할 줄: '에에'하고 울 줄  '에에'는 울음 소리의 의성어

  엇데오: 어찌된 일이오?


   -- 감상

  옛날 중국 한나라 장사왕의 스승이던 가의의 일을 생각해 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다  남의

근심거리를 모두 자기가 도맡아 한숨지어 탄식하고, 눈물 흘러 슬퍼한 것도 과한데 거기에다

'에에'하고 소리내어 울었다니(통곡하였다니), 그것은 또 어찌된 일이냐  참으로 우스운

사람 다 보겠구나

  그러나 이 시조의 주제는 이것을 역설적으로 포착한 것으로 보면 선명해진다  이항복의 다음

시조와 비교해 보라


  장사왕 가태부는 눈물도 여릴시고

  한문제 승평시에 통곡은 무슴 일고

  우리도 그런 때 만났으니 어이 울꼬 하노라.



    315. 저 건너 과음채각 중에 첨부이미지


  저 건너 괴음채각 중에 수놓는 저 처녀야

  뉘라서 너를 농하여 넘노는지 세미옥안에 운환은 흐트러져 봉잠조차 기울어졌느냐

  장부의 탐화지정은 임불금이니 일시 화용을 아껴 무슴하리요


  -- 말뜻

  괴음채각 중: 홰나무 그늘 밑에 있는 아름다운 집의 안

  농하여: 희롱하여

  세미옥안: 가는 눈썹에 옥같이 희고 맑은 얼굴이니, 처녀의 곱고 아리따운 얼굴

  운환: 여인의 쪽진 머리를 구름송이에다 비유해서 하는 말

  봉잠: 봉황의 무늬를 대가리에 새긴 큼직한 비녀

  탐화지정: 꽃을 찾는 마음  여자에게 끌리는 사나이의 정감

  임불금: 마음대로 금할 수 없다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다는 뜻

  일시 화용: 한때의 아리따운 얼굴  청춘 동안의 일시적인 아름다운 모습


  -- 감상

  저 건너 큰 홰나무 그늘에 보이는 저 집 안방에서 수를 놓고 있는 저 아리따운 처녀야(중장의

'봉잠'과는 일치되지 않는 말이다), 누가 너를 희롱하며 놀았기에 아름다운 얼굴에 쪽진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비녀가 다 기울어졌단 말인가  아서라, 탓할 것 없다  장부가 미인을

탐내는 것은 인간의 상정인데, 청춘 서절 한때의 아리따운 얼굴을 아껴서 무엇하랴  내어

맡기고 서로 즐겨 보는 것도 좋지 않으냐

  '쪽진 머리가 흐트러지고, 비녀가 삐뚤어졌다'는 표현으로써, "너를 농하여 넘노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에로틱하면서도 난하지 않은 데 호감이 간다  그러나 '처녀'와 '봉잠'은 모순이다

비녀를 꽂았으며 쪽진 머리요, 쪽진 머리라면 이미 처녀가 아닐 터이니 말이다  처녀는 머리를

땋아서 늘어뜨리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그런 것 따질 것 없이 '장부의 탐화지정은

임불금'이니, '일시 화용을 아끼지 말라'는 주제를 음미하라는 뜻인가.



    316. 쥐 찬 소로기들아 첨부이미지

                    구지정


  쥐 찬 소로기들아 배부르다 자랑 마라

  청강 여윈 학이 주리다 부를소냐

  내몸이 한가하야마는 살 못 진들 어떠리


  -- 지은이: 구지정(조선조 숙종 때에 목사를 지낸 사람)

  -- 말뜻

  쥐 찬: 쥐를 잡아 찬  혹은 쥐를 챈

  소로기: 솔개

  주리다: 굶주린다고  배가 고프다고 해서

  부를소냐: 부러워할소냐?  부러워할 것 같으냐?

  한가하야마는: 한가하니 만큼


  -- 감상

  더러운 쥐 한 마리를 채어 가지고 배가 부르다고 자랑하지 말라  맑은 강가에서 노니는

신선 같은 학이 배가 고픈들 너를 부러워할 줄 아느냐  청강에서 조용히 노니는 내 몸은

한가롭기만 하다  살이 못 찐다고 해서 염려될 것이 무엇이냐?

  탐욕에 젖은 속물들과 청빈 속에 도를 즐기는 선비들 동물들에 비유하여 중의적으로 표현한

시조이다  즉, '소로기'는 전자를, '여윈 학'은 후자를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없으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쥐 챈 솔개', 배는 부르겠지만 더럽다  고고한 학두루미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그것을 부러워할 성싶으냐?  부귀영화는 뜬구름이고 내 마음은 언제나 맑고

즐겁기만 한데, 살쯤 못 찐다고 해서, 부귀영화를 못 누린다고 해서 마음 괴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역시 마음가짐에 따라서 신이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는 영적 존재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317. 천지로 장막 삼고 첨부이미지

                    이안눌


  천지로 장막 삼고 일월로 등촉 삼아

  북해를 휘어다가 주준에 대어 두고

  남극에 노인성 대하여 늙을 뉘를 모르리라


  -- 지은이: 이안눌(1571__1637)

  자는 자민, 호는 동악, 인조 반정 후에 예조, 호조의 참판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는 임금을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환도하자 병으로 생을 마치었다  효행이

지극하고, 청렴 근엄한 성품이었으며 한시에 조예가 깊었다


  -- 말뜻

  등초 삼아: 등불을 삼아

  주준: 술항아리  술통

  남극 노인성: 남극에 있는 사람의 수명을 맡았다는 별  남극성  노인성  이 별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한다

  뉘: 때  '세상'의 뜻으로도 쓰인다


  -- 감상

  하늘과 땅을 장막으로 삼고, 해와 달을 등불 삼아, 북해의 물을 끌어다가 술통에다 대어 두고,

남극 노인성을 대하고 있노라면 늙을 줄 모를 것이다

  "대붕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워 먹고...(300)"와 같은 발상의 노래다  임진란, 병자호란의

두 큰 난리를 치르고 나서, '임진록' 같은 과대망상적인 무용담이 많이 생긴 것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병자호란의 유례가 없는 국치를 당하고 나서, 참을 수 없는

울분을 이런 식의 망상으로나마 자위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약자이면서도 이상은 높은 인간이

빠질 수 있는 그런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318. 초당에 일이 없어 첨부이미지

                    유성원


  초당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워

  태평성대를 꿈에나 보려터니

  문전에 수성어적이 잠든 나를 깨와다


  -- 지은이: 유성원(? __1456)

  자는 태초, 호는 낭간  세종조의 집현전학사였으며, 사육신의 한 사람

수양대군의 협박에 못 이기어 정난공신을 녹훈하는 교서를 썼으나, 그 후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이루지 못하자 자결하였다


  -- 말뜻

  초당: 조촐한 별채  자기 집을 낮추어 부르는 말도 된다

  태평성대: 어진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이 평안히 사는 시대  여기에서는 아마도 세종

임금 때를 가리키는 듯

  수성어적: 몇 마디 들려오는 어부들의 고기잡이 피리소리  여기에서는 수양대군 일파의 권력

투쟁의 소음인지도 모른다

  깨와다: 깨우도다  깨우는구나!


  -- 감상

  별로 할 일이 없어 초당에서 조용히 거문고를 뜯다가, 그 거문고를 베고 누워서 세종 임금

시절의 태평하던 세월을 꿈에나 보려고 하였더니, 문 앞에 고기잡이 피리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와서 나의 잠을 깨우는구나  여기서의 고기잡이 피리 소리란 수양대군 일파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의 시끄러움(녹훈 교서를 쓰라는 협박 등도 포함하여)을 이르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차원 높은 비유(은유)의 수법에 고개가 숙여진다.

 

 

    319. 춘풍에 떨어진 매화 첨부이미지


  춘풍에 떨어진 매화 이리저리 날리다가

  에도 못 오르고 걸렸구나 거미줄에

  저 거미 매환줄 모르고 나비 감듯 하더라


  -- 감상

  바람에 불려서 떨어지다가 거미줄에 걸린 매화 꽃잎  얼핏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것이

이 시인의 시상을 흔들었다  시인의 눈에는 무심코 굴러가는 가랑잎 하나에도 감동의 불이 붙는

법이다  그래서 그 아무 것도 아닌 가랑잎에 인격이 부여되고, 생명이 불어넣어지고, 그 속에

새로운 우주가 창조된다  매화인 줄도 모르고, 크게 먹을 것이나 되는가고 열심히 감아싸는

거미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무슨 비유가 들어 있을 것만 같아 쉽게 지나칠 수가 없구나.



    320. 콩밭에 들어 콩잎 뜯어 먹는 첨부이미지


  콩밭에 들어 콩잎 뜯어 먹는 검은 암소 아무리 이라타 쫓은들 제 어디로 가며

  이불 안에 든 님을 발로 툭 차 미적미적하면서 어서 가라 한들 날 버리고 제 어디로 가리

  아마도 싸우고 못 말린손 님이신가 하노라


  -- 감상

  소는 콩을 몹시도 좋아한다  콩밭에 들어가서 그것을 뜯어먹고 있는 소는 고기 반찬을 본

고양이와 같다  결사적으로 뜯는 판이니, 아무리 내쫓아도 막무가내다  그것과 진배없는 것이

한 이불 안에 든 님이다  발로 툭 찬다고 나갈 것이냐, 어서 나가라고 민다고 떨어질 것인가

밀어내려는 사람도 정작으로 나가버리면 서운해서 더 못 견딜 것이다

  남녀란 음과 양이요, 음양은 서로 끌어당기고 서로서로 어울리어 새로운 '합'을 창조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조화의 법칙이므로 남녀의 정은 싸우고 말려도 안되는 그런 것인가보다

수다와 익살이 밉지 않아서 더욱 좋다.



    321. 풍파에 놀란 사공 첨부이미지

                    장만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웨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발갈기만 하리라


  -- 지은이: 장만(1566__1629)

  자는 호고, 호는 낙서  대사간 등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쳤으며, 사신으로

명나라에도 다녀 왔다  인조반정에 공을 세우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원훈이 된 문무 겸비의

무인으로, 문장을 잘 짓는 재능도 있었다  함경도관찰사 때에는 '호지산천도'를 그려서 나라에

바치기도 하였다  죽은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 말뜻

  풍파: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이니, 풍랑과 같은 말이다

  구절양장: 꼬불꼬불한 양의 창자 같은 험한 산길  구절은 여러 번 꺾이었으니, 꼬불꼬불한 것

  물도곤: 물보다  '__도곤', __두곤'은 '__보다'의 옛말

  어려웨라: 어렵도다, 어려우에라, '어려왜라'로도 쓰였다  '__에라'는 감탄형 종결어미


  -- 감상

  사나운 풍랑에 몹시 혼이 난 사공이 배를 팔고 말을 사서 마부가 되었더니 지긋지긋한

뱃사공에서 안전한 육지에서 하는 마부로 직업 전환을 했더니, 말을 몰고 다녀야 할 산골 길이

험하기가 물 위보다도 더 심하구나  그러니 이번에는 사공도 마부도 다 집어치우고 농사나

지으리라  뭐니뭐니 해도 농사가 제일이다

  사공과 마부를 문, 무 관직에 비유하여 심한 당파 싸움 때문에 직책 완수가 힘드니, 벼슬을

버리고 차라리 초야에 묻혀 살리가 하는 숨은 뜻이 있는 것 같다.



    322. 한손에 가시 쥐고 첨부이미지

                    우탁


  한손에 가시 쥐고 또 한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지은이: 우탁  283. 참고

  -- 감상

  백발이 되어 늙는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쉬우면서도 적절한 비유로 재치있게 표현하였다  말하듯이 술술 나오는 노래에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백발을 싫어하는, 늙기를 억울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쳐들어오는 백발을

가시와 막대로 막아 보겠다는 익살이, 함께 읽는 이로 하여금 미소짓게 한다

  가시와 막대로 늙는 길과 오는 백발을 막아 보려 하였다  이 얼마나 어린애 장난 같고,

엉터리 같은 생각이냐  그러나 그나마도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어느새인가 지름길로 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린애 장난 같은, 또 엉터리 같은 비유나 표현이 조금도 역겹지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것이 이 시조의 작품 가치이다  동심으로 돌아가면 늙지

않는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