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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ins of the day’엔……
Lillith_140927
직업의식이 투철한 스티븐슨은 평생 식탁 시중을 들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노쇠하여 건망증이 늘자 식탁 시중 대신 청소를 맡겼다. 어느 날 아버지는 청소함을 붙든 채 뇌일혈로 쓰러졌고, 임종 전에 아들 스티븐슨과 나누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끝내 사망한다. 스티븐슨은 아버지의 눈을 감겨드리는 것마저 하녀장 캔튼에게 맡긴 채 흐트러짐 없이 세계 사절단 식탁 주위를 계속 지켰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은 그렇게 ‘영국다운 긍지’의 그림자가 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스티븐슨과 캔튼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베르사이유 조약 때문에 경제적 회복을 할 수 없었던 1930년대 독일이 재기와 부흥 뿐 아니라 평화가 필요하다고 세계 각국에 도움을 청하자, 달링턴 경은 독일과 공존공생의 길을 모색한다. 영국의 달링턴 경이 이렇듯 신사의 면모를 보이자 미국 사절로 참석한 루이스 의원은, ‘점잔 빼고 예의 차리던 시절은 끝났다’며 바야흐로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정치는 .신사가 아니라 정치가.가 필요한 시대’라고 일침을 놓으며 미국에게로의 환기를 꾀한다.
2차 대전 이후 달링턴 경은 나찌 부역자로 알려진다. 유태인 처녀 엘사와 엘마를 하녀로 채용했다가 독일의 유태인 차별주의에 흔들려 그녀들을 해고하고 말았다. 달링턴 경은 ‘예수도 유태인에게 났지만 유태인을 부정했다’고 언급한 독일인 칼럼에 동조한 것이다. 그 당시 영국의 신사다움이란, 인간적인 진심이 아니라 허울과 대세를 따르는 태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서민들의 문제의식을 개똥철학’이라 치부하고 ‘서민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건 순박한 어린이에게 칼을 맡기는 것과 같다’는 영국 상류층의 주장에 스티븐슨 스스로도 동조했다. 진심어린 감정을 사적인 영역으로 외면하는 습관과 태도로 불평등 관습을 받아들이는 스티븐슨.
뿐만 아니라 스티븐슨은 미국인 루이스가 새 주인이 되었을 때도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 한다. 주인 달링턴 경을 ‘부자 계급이라서가 아니라 도덕적이어서 존경했다’고 말하지만, 히틀러와 거래를 하려 했다는 신문사 기사에 관한 소송에서 패소한 것으로 보아 달링턴 경은 도덕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저택의 주인 달링턴 경은 실상 장사꾼이었던 것이다. 백만장자이자 하원의원이었고, 화장품 회사 경영자가 된 미국 재벌 루이스와 다를 바 없었다.
사적인 삶을 억압하고 공적인 삶에만 의미를 부여하던 스티븐슨은 하녀장 캔튼을 매력적인 여자라고 ‘느끼면서’도 ‘유능한 일을 맡은 중요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스티븐슨의 따스한 면에 연민을 느끼는 캔튼의 다가감마저 일관되고 차가운 공무로 ‘외면’하고 ‘억압’한다. 20년이 지나서야 ‘실수를 바로잡아 보려고 캔튼을 찾아간’ 그 때, 캔튼도 가족을 위해 스티븐슨을 향한 그리움에 커튼을 내린다.
스티븐슨이 지난 날 자신의 사랑을 외면한 것은 그냥 실수가 아니라 ‘끔찍한 실수’였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외면하고 신경 쓸 일 아닌 일로 일생을 살았으니 얼마나 끔찍한가. 이 이야기는 영국인 집사장과 하녀장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사랑의 마음이 솔직하게 만난 적 없다.
혼자라는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외로움은 사랑의 원초적 가치가 좌절되었을 때 아우성치는 고통이다. 윌리엄스의 어머니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바람결에 만났다. 윌리엄스 아버지는 그 후 아내를 용서하지 않고 외로움을 선택했다. 윌리엄스 마음에도 그것이 작동했던 것이다.
<The remains of the day>은 스티븐슨처럼 외로움을 선택하는 실수로 평생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대세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 채 신경 쓸 일도 아닌 것을 긍지로 삼아 헛삶을 지탱하는 숱한 사람들의 나날에 조의를 표하며, 우리의 남아있는 나날은 어떤 풍경인지 영화는 나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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