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서울인권영화제가 5월 27일 막을 내렸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인권의식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인권활동가의 꿈은 인권영화제를 통해서 '함께 꾸는 꿈'으로 바뀌었다. 1996년 11월 2일 이화여대 법정대 강당에서 인권영화제를 시작하여 1997년 제2회 영화제 때 <레드헌트>를 상영하였다고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구속당하였으며, 구속, 보석, 재판 계류 중인 다음 해에도 영화제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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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인권영화제를 함께 관람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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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는 2011년에 '서울인권영화제'로 명칭이 바뀌었고, 18회를 맞이한 올해에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분리독립하여 시민 약 3,000명, 자원활동가 31명, 후원활동가 약 400명, 4.9통일평화재단, 인권운동사랑방이 후원하여 상근활동가 3명과 다양한 분야의 인권활동가들이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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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해설집에 인권해설을 썼고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김도현 활동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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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은 "장애_표현 자유의 날"이라는 컨셉으로 상영이 진행되었고, 정오에는 <아이샤의 노래>와 <304대 18>을 상영한 후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사회에서 '소수자'의 의미를 되짚어보았다. 김도현 활동가는 "최근에 중증장애인 화제 사건으로 장애인이 희생되었는데 재난 때문이 아니라 인재였다."며 우리 사회가 엄연히 존재하는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관객 중 초등학교 교사가 "5학년 스무 명을 가르치고 있는데 5층에 있는 교실에서 19명의 비장애 학생 틈에 끼어 공부하는 뇌성마비 제자의 일상적 어려움을 많이 놓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솔직한 소감을 말했다. 상근활동가 '일숙'도 "국립재활원이 있는 인수동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같이 생활하는 마을이다. 버스를 타면서 늦어지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는 아주머니에게 운전기사가 '장애인이 타면 좀 기다리셔야죠'라고 말할 정도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모든 사회가 그렇게 성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인권영화제를 추진해온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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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트 기타 불매운동에 서명하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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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의 관람을 위해 하상장애인복지관이 점자해설책을, 청각장애인을 위해 장진석 씨와 황선희 씨가 수화통역을, 그리고 다영 씨가 한글통역을 맡아줬다. 장애인의 문화활동 접근권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청계광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교통약자들이 모든 공간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화장실과 성별 구분 없는 1인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인근에 있는 빌딩의 은행 등이 화장실 사용을 차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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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청소노동자의 날"을 준비하며 게임으로 행사 홍보를 하고 있는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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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권리! 단지 숫자상 소수가 아니라 권력에 순종하거나 복종하도록 강요당하는 정치적 약자 처지에서 일생을 견뎌야 하는 데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한' 것임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혹은 표현할 자유를 되찾지 않으면, 세상은 침묵을 더욱 강요할 것임이 자명해보인다. 그래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시민을 직접 찾아가서 다양한 형식의 영화제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마포구 성산동에 새로 지어진" 인권중심 사람"에서 앙코르 상영회를 한다. (문의 : (02)313-2407 www.hrcenter.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