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를 탈까말까 망설이는 내심
김 난 주 (천안고교평준화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청소년 잔혹사의 한 피해자 ‘오롯이’는 서울에서 모 자율화 고교에 다닌다. 근처 인문계 학교 중에서는 꼴통 소리 좀 듣지만, 학창시절에 개같이 맞거나 쥐잡듯이 볶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중학교 때 비평준화 지역에 살았을 땐 짐승 같았어요. 애들을 짐승 다루듯 하는 학교. 몇 명 건져서 서울대 보내자고 그 많은 학생들에게 지옥훈련을 강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청소년들이 그 어떤 평가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걱정 없이 자기다움을 찾아가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주는 어른이 이 사회에는 얼마나 되나. 이렇게 청소년을 학대한 것은 부메랑이 되어 사회가 분열하고 불안해진다. 자신이 못났다는 열등감은 피해망상증을 전염시키고, 자신만 잘났다는 우월감은 과대망상증을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모 중학교에 전교 1등으로 입학한 000 학생 경축!” 천안의 한 초등학교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 내용이다. 3월에 이미 입학하여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의 이름을 여름이 될 때까지, 후배 초등학생들이 등교할 때마다 읽게 했다. 과연 최선을 다했으니 칭찬하자는 취지였을까. 졸업할 때 중학교 1등 입학자가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미리 부끄러움을 심어주는 건,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므로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다. 이런 행위가 자연스러운 것은 집단이 아예 사람으로서의 정신줄을 놓았다는 것인데, 이런 사회가 청소년들에게는 인성을 갖추라 요구한다.
천안에서 제법 바른품성을 갖췄다는 인사들의 방귀소리도 기가 막힌다. 최근에 고교평준화 재도입을 촉구하자, 동네에서 방귀 꽤나 뀌는 사람들 말씀이, 시기상조라 한다. 천안은 1980년부터 94년까지 평준화를 했는데도 말이다. 명문고 동창회가 지배층을 형성해왔는데, 그 힘을 나누는 건 어지간히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고교평준화를 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고교성적 우수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기피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이 줄었고, 모든 학교가 학업에 꾸준히 열중함으로써 성적 하위 학생도 줄었기 때문이다. 몇 나라는 대학평준화까지 실현하고 있는 시대이다. 전지역 비평준화였던 강원도마저 평준화 재출발의 기적을 울리고 있는데, 충남은 지금 고교평준화 막차를 바라보며 망설이고 있다.
94년도에 천안고교 비평준화로 전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교육부가 중고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전수설문조사로 의견수렴을 하라고 했다. 그러자 천안시의원, 천안교원총연합회장, 중고등학교육성회장들이 시민의 대표로서 동의했다고 비평준화 수락을 청했다. 이들 모두가 동의했다고 가정해도 59명이다. 이들의 입김으로 비평준화가 되자, 충남의 각지에서 천안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온다. 아산에서는 이사도 온다. 충남균형발전의 걸림돌 중 하나가 비평준화이다.
이제는 신중하자나? 김종성 교육감은 여론조사에서 70%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고교입시전형 방법을 바꾸는 조례안을 냈다. 김지철 교육의원이 대표발의자로서 도의원 32인이 공동발의한 뒤에 뒷북을 치셨다. 더군다나 2011년 12월부터 시작하여 충남고교평준화조례운동본부가 주민조례안의 청구인을 거의 다 모집한 3월 즈음에서야 이런 안을 낸 것은 뻔한 딴지행위이다. 선출직 일꾼이 적어도 중립은 지켜야 도리고, 민주주의 수준에서 50% 동의안을 운운하는 것이 상식이다.
도민의 교육감으로 뽑아줬더니, 중립성도 민주성도 결여된 채 균형감각 잃은 신중론을 앞세워 명문고 동창회 편을 적극적으로 들고 있다. 고교평준화 재도입을 막고 있는 동안 매일 청소년들은 학업을 포기하며 학교를 떠나고, 세상마저 떠나고 있다. 60만 인구가 모여 살며 100만 미래도시를 가꿔나가는 마당에, 천안의 중학교가 여전히 갈등의 골짜기를 파고 있다. 마을이 후손을 키워야 한다는데, 실상은 천안의 명문고 동창회 어르신들이 마을 청소년들에게 패권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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