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교사 박현숙
시흥 장곡중학교
1. 들어가며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는 사토 마나부 교수가 지은 책의 이름이다.
요즘 장곡중학교를 혁신 학교의 모델로 보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퍽 많다. 어떤 이는 등교 모습부터 하루 종일 학교에 있으면서 보고 가고, 어떤 이는 수업의 모습을 보고 가며, 어떤 이는 공개 수업을 보고 간다.
그런데 이렇게 보고 가는 사람들 중에 가장 장곡중학교를 부러워하면서 놀라워하는 사람은 등교부터 학교가 끝나는 시간까지 가장 오래 머무른 사람들이다.
이 대목 참 이상하지 않은가? 가장 학교에 짧게 머무르면서, 학교가 준비한 공개 수업 같은 것만 보고 가는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부러워할 것 같은데, 장곡중학교는 오히려 정반대다.
학교에서 보여주는 공개 수업만을 본 사람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게 뭐 혁신 학교며, 무슨 제대로 된 수업이고,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거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정확히 말하면 교사들과 관리자- 많고, 하루 종일 혹은 이틀에 걸쳐 학교 여기 저기 다니면서 카메라를 들이대던 방송사 촬영 기자들이나 하루 종일 학교 곳곳을 다닌 사람들은-이것도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 “세상에 어떻게 아이들이 이럴 수 있죠? 감동이예요. 이런 학교가 있다니 정말 놀랍군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게 말이다. 어떻게 학교가 이럴 수 있나? 학교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학교에 실망하는 게 아니라, 학교에 감동하고, 아이들에게 감동하는 학교가 있다는 게 정말이지 신기하지 않은가?
2. ‘배움의 공동체’와 장곡중학교에 대한 오해
장곡중학교가 혁신 학교로 이름이 나면서 동시에 ‘배움의 공동체’도 같이 떴다. 장곡중학교 하면 동시에 ‘배움의 공동체’가 나온다. 맞다. 장곡중학교가 혁신 학교로 이름이 나기까지엔 ‘배움의 공동체’라는 수업 모델이 있었고, 그 수업 모델을 지도해주는 전문가인 손우정 박사가 있었다.
그런데 과연 ‘배움의 공동체’라는 수업 모델이 장곡중학교를 바꿔놓은 원동력이냐고 물어보면 ‘그렇다’라고 선뜻 대답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배움의 공동체’가 혁신 학교의 유일한 수업 모델일 수 없고, ‘배움의 공동체’가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학교에 적응하면 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배움의 공동체’를 한낱 수업 모델의 한 종류라고 보는 시각에도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곡중학교는 혁신 학교를 추진하면서 제일 중요한 변화 목표를 수업 혁신으로 설정을 했고, 그 혁신의 방법으로 ‘배움의 공동체’를 선택한 것이다. ‘배움의 공동체’를 선택한 이유는 그것이 지향하는 목표가 혁신 학교의 정책과 많은 부분이 같았고, 장곡중학교의 교사들이 원하는 학교 혁신의 방향과도 맞아떨어졌기에 그것을 선택하고 추진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랬기에 수업 공개나 수업 연구회에 대한 불평 불만은 그리 많지 않았고, 오히려 수업 공개를 자원하는 교사들이 많았다. 또한 이런 수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학교 구성원들의 노력도 뒤따랐다.
학생자치부는 학생들의 행복한 등굣길을 위한 노력을 늘 기울이며, 학칙이나 학교 생활 규정도 학생들과 함께 학생 중심으로 사고하고 개정하고 운영하였다. 이런 노력은 학생자치부 뿐만 아니라 진로 인성부에서 학생복지를 위한 사업을 1년 동안 기획하여 실행하는 것도 모두 학생들이 학교의 주인으로 중심에 서게 하려는 노력들이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학생들은 학교를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교사들을 믿고 신뢰한다.
3. ‘수업 혁신’이 일으킨 변화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장곡중학교의 변화의 중심은 수업이다. 우리 학교는 수업의 모델을 ‘배움의 공동체’로 잡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학생 중심’의 수업으로 변화시켰다. 그렇기에 장곡중학교의 이야기를 하려면 ‘배움의 공동체’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장곡중학교’ = ‘배움의 공동체’라고 알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약도 모든 사람에게 맞지 않기에 ‘혁신 학교의 수업 = 배움의 공동체’라는 단순한 공식은 상당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곡중학교의 수업 혁신은 단순히 배움의 공동체라는 모델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장곡중학교의 구성원들이 ‘배움의 공동체’라는 수업 모델과 수업 철학과 학교 혁신의 비젼에 동의했기에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변화에 자신을 맞추었으며, 연구하고, 협력하고, 실천하였다. 장곡중학교를 보려면 바로 이 부분을 눈여겨봐야 한다.
장곡중학교는 구성원들은 학교 혁신을 위해 수업을 바꾸자는데 마음을 모으고, 그 모델을 ‘배움의 공동체’로 삼았다. 그랬기에 ‘배움의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수업 개방이라든지 상설적인 수업 연구회에 모두 동의하였다.
장곡중학교가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하면서 3가지 부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첫째는 학생들의 모습이며, 둘째는 교사들의 변화이고, 셋째는 학교의 변화로 후자의 변화는 전자의 두 가지 변화가 가져온 결과이면서 앞으로는 두 가지 변화를 더욱 공고하게 받쳐줄 배경으로서의 변화다. 또한 이 변화는 공교육 정상화의 모델을 제시하는 변화이다.
가. 학생들의 변화
‘배움의 공동체’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수업을 하는 모델이 아니다. 지금껏 수업의 주인공은 교사였고, 학생들은 교사가 펼치는 버라이어티 쇼의 관객이었다. 그랬기에 배움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주입하는 지식을 받아 적기에 급급했고, 주인공이 아닌 관객은 그 공연판에서 신나고 재미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배움의 공동체’는 철저하게 학생 중심의 수업을 한다. 학생들이 한 시간 한 시간의 수업에서 일어나는 배움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배움을 지향한다.
이 모습을 이야기하는데 가장 손쉽게 이해가 될 장면 하나를 소개하겠다. 9월 6일의 이야기다. 개학 한 지 딱 일 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정읍중학교에서 우리 학교가 궁금하다고 하여 방문했다. 10시쯤에 도착한 선생님들이 2교시와 3교시 수업을 둘러보고 4교시에는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 후에 점심을 먹는데 정읍중학교의 국어 교사가 질문을 했다. “조금 전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고 했더니 전부 읽고, 글을 쓰라고 했더니 전부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가까이 가서 무얼 쓰는지 보았는데 솔직히 쓰는 학생도 있고, 못 쓰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못 쓰는 학생들이 떠들거나 장난하거나 그냥 멍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쓰려고 고민하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내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이 왈칵 밀려들었다. 교과서 읽으라고 하면-국어 시간에 대표 낭독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개별적으로 읽으라고 해도 한 사람도 멍하니 있지 않고 모두 몰입해서 읽는다. 설혹 한 둘 몰입을 못 할지라도 그런 경우는 교사가 몰입하도록 개입할 수 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고개 숙여 교과서에 몰입하는 학생들을 매일 보면서도 그 광경에 감동하지 않는 나의 무신경이 생각났다.
우리 아이들이 보이는 놀라움은 비단 활동에 몰입하는 것만이 아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면 놀라울 정도로 경청을 한다. 내가 작은 목소리로 수업을 해도-올해 수업을 하고 난 다음 목이 아픈 적이 없었다.- 누군가 작은 소리로 발표를 해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자기 발표만 큰 소리로 하고선 다른 사람이 발표할 땐 두리번거리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친구의 발표를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의 공책에 새로운 점을 메모한다.
그렇기에 학생들의 표현력은 또래의 중학생과의 비교를 무색하게 한다. 시 쓰기를 하여도 논술문을 쓰게 해도, 수필을 쓰게 해도 몰입해서 쓸 뿐 아니라 그 결과는 본인도 만족시키고, 듣는 이도 만족시키고, 교사를 감동시킨다. 30명이 쓴 글 중 25편 이상이 훌륭한 작품들이며, 분량 또한 800자 이상을 써 내려간다.
이런 변화는 올해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하면서 만들어진 변화이다.
나. 교사들의 변화
학교 개혁이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은 교사들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를테면 ‘교원평가’와 같은 정책을 도입을 하려고 애를 쓰지만 이것은 오히려 교사들을 더 완고하게 버티게 만들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옷을 바람이 더욱 꽁꽁 여미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배움의 공동체’는 국가에서도 못 하는 교사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껏 교사 중심의 교수 학습을 하다 갑자기 학생 중심의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혁신 학교를 추진하며 우리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하기로 전 교직원이 마음을 모았다. - 새롭게 교재 연구를 해야 했고, 수업 진행도 새롭게 해야만 했다. 전에 만들지 않았던 활동지를 만들었으며, 수업도 공개했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교사들의 업무가 폭증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교사들이 느끼는 업무 스트레스는 수업 준비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보다는 잡무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
또한 수업 공개도 수업을 공개한 개인에게 상처만 될 때 공개를 꺼리지만 수업 공개가 교사 개인의 성장과 성찰을 일으킬 때는 교사들 스스로가 수업을 열겠다고 나선다.
장곡중학교의 수업 공개는 수업자의 성장 뿐 아니라 참관하는 교사의 수업을 성장시키는 좋은 자극이 되었다. 어떤 수업이든 배울 점이 없는 수업이 없다. 그렇기에 한 번의 수업 공개는 공개한 교사 개인에겐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고 자신이 못 보던 학생들의 배움의 세세한 과정을 알게 되어 다음 수업을 구상할 때 충분한 참고가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들의 소통이 끊어진 학교 사회가 교과끼리, 학년끼리, 수업을 본 사람끼리 온통 수업과 학생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연구실이 되었다.
가끔 이런 질문도 받는다. “얼마나 자주 협의회를 갖나요? 매주 한 번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때론 당황한다. 시간을 딱딱 정해서 꼭 협의회를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는 매일 매일, 매 시간마다 수업에 대해 계속 동료 교사와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이거 공부할 거지?”, “어떻게 구성했어?” 수업 끝나고 나오면서 “그렇게 하니까 어때?” “다음엔 이렇게 할까?” 퇴근 전엔 “그쪽 애들 작품은 어때? 자 이거 한 번 읽어봐. 괜찮지?” “다음 단원은 어떻게 할까?” 이렇게 쉼 없이 수업에 대한 구상, 진행, 피이드 백, 다음 시간 구상을 함께 하고 공유하는데 이것들을 다 협의회라고 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얼마 전 서울시 교육 연수원 연수 담당 장학사가 우리 학교를 방문했었다. 마침 수요일이라 학생들이 일찍 집으로 가고, 우리 학교 교사들이 교실에서 교과 협의회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시간은 2시 30분 정도였을 것이다. 그 장학사가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교실에 모여 앉아 연구를 하는 모습을 처음 봅니다. 어떻게 선생님들이 저럴 수가 있을까요? 이런 학교가 과연 전국에 몇이나 있을까요? 이 학교 선생님들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나도 그런 모습을 보면 때론 묻고 싶다. 이런 풍경이 과연 ‘배움의 공동체’로만 만들 수 있는 풍경이겠는가?
다. 학교의 변화
1학기말 나와 수업에 대해 이야기 하던 교무부장이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 학교 선생님들 애들 안 때리지? 교무실에 매가 없어. 작년만 해도 교무실에서 맞고, 꿇어앉아서 반성문 쓰고, 북새통이었는데 올해는 신기하지 않냐?”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올해 교무실에서 맞는 학생 본 적 없고, 큰 소리로 야단맞는 학생도 없었다. 꿇어앉아서 반성문 쓰는 장면도 없었고,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야단치는 소리도 한두 번 정도 밖에는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생들은 밝고 명랑하지만 무례하지 않고, 교사들도 표정이 밝다. 또한 학교 운영이 비교적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를 꼭 집어 ‘배움의 공동체’가 가져온 변화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배움의 공동체’를 통해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된 학생들과 가르치는 일이 업인 교사들 사이의 갈등 상황이 아주 많이 줄어든 것이 큰 원인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또한 소통이 중요한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진행하려면 학생들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학생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이 따라야 한다. 교문에서 등교하면서 인권이 무시당하면 교실에서 어떻게 배려와 존중이 되겠는가? 그렇기에 우리 학교는 교문에서부터 학생들을 배려하고 존중한다.
학생 자치 활동과 학생 복지 활동들이 모두 학생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그 바탕으로 해서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순하고, 교사에게 덤비는 학생이 없다. 이것은 교사들의 에너지를 학생 지도에 뺏기는 것을 막고 수업에 집중하게 만든다. 학생 지도 건수가 줄어들었으며 폭력도 줄어들었다. 교사를 무시하거나 기타 다른 이유로 학생들과 갈등도 줄어들었다.
학교의 운영이 수업을 위한 지원 체계로 변하되고 있으며, 경영자들의 사고도 변하고 있다.
3. 나오며
그 동안 우리 학교는 한 달에 한 번씩 수업을 공개했다. 그 때마다 수업을 참관한 교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협동학습과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배움의 공동체’가 모둠 활동을 기본으로 하는데 협동학습이나 기존의 모둠학습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일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해줄 수 있는 대답은 ‘배움의 공동체’는 수업의 모델이기도 하지만 학교에 대한 비젼이며, 교육에 대한 철학이라고 했다.
협동학습이나 모둠학습은 수업의 기술적인 면이라면 배움의 공동체는 학교를 운영하는 원리이며, 교사가 수업을 대하는 철학이라고 지금까지의 경험의 결과와 깨달음으로 대답했고, 앞으로도 특별한 깨달음이 있을 때까지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특히, 우리 학교 교사들이 그 동안의 수업을 지금까지는 교수 중심으로 생각했던 것을 ‘학생 중심의 수업’으로 설계하고 진행하겠다고 하는 실천적인 선언이 ‘배움의 공동체’로 표현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말을 할 땐, 그 이면에는 수업을 바꾸고 싶다면 굳이 수업 모델을 ‘배움의 공동체’가 아니라도 된다는 의미가 있다. ‘배움의 공동체’가 아니라도 ‘학생 중심’의 수업이라면 그 어떤 수업 모델이라도 수업을 혁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수업을 ‘학생 중심’으로 설계하고 진행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발상의 전환은 한 학교에서 한 두 명의 노력과 의식의 전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교직원-백 프로면 완벽하겠지만-이 동의해야 하는 것이며, 이런 전환이 있는 학교에선 그 동안의 굳어진 관행들이 하나씩 깨어져 나가고, 그 깨어진 틈에서 새로운 학교의 문화가 싹을 틔울 자리가 생겨난다.
학교가 가진 관행, 이것들 때문에 학교는 외부로부터 불신과 개혁의 요구를 받아왔다. 체벌,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교실, 권위가 사라진 교사, 소통이 부재한 교무실과 교실, 학생 인권이 무시되는 학교...... 이런 것들은 이미 학교라는 교육적인 공간에서 사라져야 할 전근대적인 유물이었으나 세월은 흘러 근대가 가고 현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세월의 흐름을 무색하게 하는 문화가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리하여 40대도 30대도, 20대도 똑 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교칙을 가지고, 똑같은 권위주의의 문화에서 생활했기에 학교에 대한 추억이 신기하게도 똑 같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군대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롭게 바뀌고 있는데 학교만 그대로였다.
이 그대로인 공간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관행을 깨고 현재에 걸맞는 학교의 새판을 짜자는 것이 바로 경기도교육청에서 이야기하는 혁신 학교이며, 교사들이 염원하는 새로운 학교다. 이런 새로운 학교의 문화가 각 학교마다 구성원의 특성과 지역의 특성, 그리고 학교의 실정에 맞게 만들어질 때,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앉을 것 같은 교육의 다양화와 특성화 개별적인 맞춤화 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것은 곧 공교육의 정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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