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

[김해화] 꽃편지 _ 삶이보이는창 _ 2005

실다이 2011. 5. 3. 17:07

 나팔꽃 연가

 

천 년쯤 이를 갈면

몸에 가시 돋겠습니까

가시 돋힌 몸 곤두세워 나 지금 환삼덩굴로 기어오르는 울타리

 

하룻밤 음모만으로도

이런 울타리 수백 수천 세상을 나누고 찢고

언 땅 깊이 뻗어나갈 수 없어

끝내 이 경계를 넘지 못하는 계급의 뿌리

나는 지금 시들어가며 손을 놓으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울타리를 넘으려고 합니다

 

가슴에 지닌 사랑 얼마나 맑아져야

덩굴손이 돋겠습니까

사나움 날카로움 독살스러움으로 피 묻혀

가시 돋힌 울타리

긁힌 가슴에조차 맑은 이슬 방울지는 사람

일편단심

세상의 경계를 넘으려고 합니다

 

언뜻 발돋움해 들여다보아버린 서러운 땅을 향해

밝고 푸른 생애의 가장 말금한 순간

꽃을 피우려는 사람

씨앗 맺으려는 사람

지쳐버린 내 생애와 뒤엉키려고 합니다

 

 

 

선암매

 

그동안 무성해진 그리움도 잘라내고

제법 굵어

그늘지는 사랑도 잘라내자

 

여기저기 돋아나는

새순 같은 이름까지 잘라내 피 흘리고 나면

아픔에도 많이 무디어지리

 

세상 저물어 상처 다 아물도록 서 있다가

새벽 오면 삶의 수액 끌어올려

꽃 한송이 피우고 싶다

 

당신 한 사람

환하게

갖고 싶다

 

 

 

 바람 부는 날

 

당신을 부릅니다

기다리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부르다가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