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침실의 '백열등 부분조명'과 '하얀 침대시트'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조작적 정의'라고 한다.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론적으로 정의 내리는 것을 '개념적 정의'라고 한다면, 조작적 정의는 행복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반복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돈 이외에도 행복을 결정하는 외부적 요인들은 다양하다. 결혼, 직장, 종교, 건강, 사회의 민주화 정도 등이 행복과 연관이 있다고 심리학 연구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부적 요인들은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들 중 단 10%에 불과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소냐 류보머스키의 주장이다.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의 50%는 흥미롭게도, '유전적인 성격'이라는 것이다. 특히 유전적으로 외향적이고,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행복하다'고 한다. 또 사는 게 재미있어야 한다. 사는 게 재미있고 유쾌하면 사람들은 기본적인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다. 일단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망설임이 없다.
사람은 죽을 때, '껄, 껄, 껄' 하며 죽는다고 한다. 베풀고 살 껄! 용서하고 살 껄! 재미있게 살 껄! 왜 그토록 이미 소유한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그 행복을 느낄 여유도 갖지 못하고, 이토록 재미없이 살다가 가야 하는가.
리추얼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습관에는 '의미부여'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리추얼에는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된다. 사랑 받는다는 느낌, 가슴 설레는 느낌 등등.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슬퍼지는 이유는 이런 '함께 했던 리추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리추얼이 없는 삶은 정서가 메마른 건조한 삶이다.
후회한다는 것은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내가 행한 일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면 후회란 있을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은 후회라는 부작용을 낳게 되어 있다. 후회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외부로부터 병균이 우리 몸에 침입했을 때 몸의 면역세포가 분주히 활동하여 몸의 건강을 지켜내는 것처럼, 후회는 정신적인 병이 들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지켜내는 심리적 면역체계 기능이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는 반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바로 끝난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의 경우 심리적 면역체계가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주의집중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괴롭힌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가 정신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후회하는 편이,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우리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사실에 대한 '해석과 편집'이 실제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의미는 해석과 편집의 결과다. 중요한 것은 그 일부의 사실을 근거로 만들어낸 내 '의미부여'다.
'흰곰'은 우리가 원치 않는 기억이나 생각을 의미한다. 그 기억과 생각을 억업하려 하면 할수록,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억압은 집착으로 이어진다.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애증과 같은 모순적 감정도 결국 이 억압과 집착의 변증법적 관계인 것이다.
진정한 의사소통 행위에는 '정서공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서로의 정서를 공유하는 과정이 박탈된 논리적 의사소통 행위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어머니의 젖을 빨 때 아기는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또 다른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또 다른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인간의 의사소통 행위는 시작된다. 이를 철학적인 개념으로 '상호주관성'이라고 한다.
세상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 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나 자신과 소통하는 행위를 철학에서는 자기반성이라고 한다. 소통 행위의 부재로 야기된 불안은 소통의 회복으로만 가능하다.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만지고 싶은 것이다. 키스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뇌를 사용하여 느끼고 싶은 까닭이다. "만지고 만져지는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통한 의사소통 과정이 박탈당하면서 에로티시즘의 왜곡이 나타났다."고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주장한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가능케 하는 심리적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지각된 자유'라고 주장한다. 행복은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심리적 공간이 넓은 사람은 정서적 반응도 안정되어 있어, 폭력적인 장면이나 불편한 사건에 대해 심리적으로 그리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심리적 공간이 넓어야 정서적으로 안종될 뿐만 아니라, 주체적으로 느끼고 판단하며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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