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

[장석남 김선우]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_비채_2008

실다이 2011. 2. 26. 11:55

 

 

 

 

열애

                               신달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뜮 ㅣ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

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

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

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