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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숙감독과의대화] 경계도시 2 : 송두율 _20100609

실다이 2010. 6. 10. 11:18

    

 

 

 

 

                 2010. 6. 9
                 천안영상미디어센터

 

                ▲ 홍형숙 감독 

 

                 ▲ 천안영상미디어센터 양민지

 

                

<물음1> 예정보다 제작 기간이 길어졌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함> 제작 기간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된 것은, 합리적으로 분석이 안 되는 태풍 혹은 소용돌이에서 떨어져나오는 데 시간이 길었기 때문입니다. 송두율 교수와 부인 정정희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진 충격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했고, 제 자신을 위로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거리두기가 절실했던 거죠. 저는 87년부터 <서울영상집단>이라는 독립영화 제작단체에서 활동하며 다큐를 했는데 이 영화를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인생에서 어떤 것은 기어코 끝을 맺어야 다음이 가능하다는 절박한 것이 있는데 이 것이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마무리 해야겠다는 마음이 7년을 지나서까지 지탱할 수 있게 된 힘이었습니다.

 

 

<물음2> 레드 컴플렉스는 어떻게 해야 극복이 가능할까요?

<답함> 극복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이 컴플렉스는 사투의 결전을 벌이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내면의 혼란을 일으키는 이것은 너무 깊이 박힌 뿌리거든요. 북한이나 남한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송두율 교수와 그 가족들도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성인으로서의 탈민족주의 입장을 전향적인 태도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했는데도 그를 믿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남한의 보수 국민들이 그를 사형에 처해야한다고 생각하고 북한에 가서 김정일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일 국적까지 포기하면서 자신의 뿌리이자 고향인 제주도와 남한에서 공존에 기여하고자 하였지만 결국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물음3 > 경계인이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어떨까요? 불가능하다면 어떨까요?

<답함> 입장에 따라 유관하거나 무관한 것이 사회입니다. 경계란 위태로운 외줄같아서 삐끗하면 이쪽이거나 저쪽이 되어버리는 곳입니다. 어쩌면 선을 중심으로 한 기회주의와 같아 보이기도 하죠. 그러나 선이 지역이라면, 좁더라도 어떤 공간이라면, 숨 쉴 틈을 확장시키는 것은 가능하다고 봅니다. 경계인은 그 숨 쉴 틈을 확장시키는 자가 아닐까요. 경계인으로서는 남한에서 발딛고 살 수 없다는 지인들의 충고에도 끝까지 입장을 견지할 수 있도록 송교수를 대변한 부인, 정정희 선생님은 다만 도와주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로 살았기 때문에, 그녀 없이 송두율은 존재 불가능한 동반자입니다.

 

 

<물음4> 송두율 교수는 상처를 크게 입은 들짐승 같다고 본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김형진 평론가는 홍형숙 감독님을 '경계인'이라고 봤습니다. 영화에 담긴 윤리적 태도를 깊이 존경한다고 표명한 셈인데, 어떻게 그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었는지요.

<답함> 국정원에서 만나자고 그 당시에 연락이 왔드랬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자를 미화하고 대중을 선동하였으므로 실정법으로 엄히 다스릴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영화를 만들었고, 조중동은 무심한 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발견과 질문! 이것으로 얻을 수 있는 영화의 재료는 무궁무진합니다. 경계도시 2.5든 경계도시 3이든 말할거리는 너무 많습니다. 오늘 점심식사를 하면서 여담을 더 나누려고 시간을 넉넉히 잡아서 천안에 왔습니다만, 제가 살고 있는 성미산 마을에 홍익재단이 학교를 짓겠다고 어제 포크레인으로 두 시간 가냥 파헤쳤기 때문에 빨리 올라가서 영상을 찍어야 합니다. 아쉽지만 서둘러 올라가야 하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여성 관람자들이라 차분한 호흡으로 대화할 수 있어서 저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홍형숙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