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작가 : 공지영
이 작품은 두 편의 모노드라마처럼 짜보려 한다. 즉, 명우의 그것과 은림의 것으로--- 다시말해 한 무대에서 두 편의 모노드라마가 진행 된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좀 특이 한 것은 그 둘 외에 다른 인물들이 등장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대는 자연스럽게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명우와 은림의 공간으로--- 필요한 도구로는 작품이 진행되면서 지적되겠지만, 공중전화 박스가 필수적이다.
제 1 장
조명이 흐릿하게 밝아오면 한 여자가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서있다. 전화의 소리 발신음 4번.
전화의 소리로 "네에. 여기는 김명우의 사무실입니다. 저는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연락처와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삐--- -"
여자. 아무런 소리없이 전화를 끊는다. 무대 한쪽에 명우 등장. 들어오자마자 일상적으로 응답기의 재생 스위치를 켠다. 응답기소리 "삐--- , 뚜우뚜우, 삐--- " 4번 반복후에 "뚜우뚜우--" 응답기의 스위치를 끄고 외투를 벗는데 전화소리 울린다.
[명우] (수화기를 들고) 네에. (사이)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은림에 조명 차츰 밝아지면
[은림] 저--- 은림이예요.
[명우] (굳어진 얼굴로) ---
[은림] (망설이다) 여보세요--- 말을 꺼내려니까 이상하다--- 잊어버렸어요? 나 노은림이라구. 노 은림--- 여보세요?
[명우] 듣고있어.(헛기침)
[은림] (침묵을 깨뜨리는 웃음. 그저 허탈한 웃음) 하하하---
[명우] (다급하게) 여보세요?
[은림] (웃음을 멈추고) 미안해요. 그냥 웃음이 나왔어. 생각해보니까 우스운 것 같아서--- 여기 지하다방이야. 꼭 내가 스물 여섯 살 적에 형한테 몰래 전화 걸던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명우] ---
[은림] 이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이제는 형을 만나도 될 것 같아서---
[명우] 알았어, 기다려. 내려가지.
전화 끊는 은림. 은림의 공간 암전.
아직 수화기를 들고있는 명우. 전화소리 "뚜우뚜우--" 계속.
[명우] 은림이었다. 저렇게 말하는 여자. 노래하듯 경쾌한 서울 토박이 말씨로 얘기하는 여자. 칠년 만에 전화를 걸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냥 웃을 수 있는 여자.
전화 소리 커졌다 작아지면.
[명우] 이 단조로운 기계음, 뚜우뚜우--- 마치 주문처럼--- 기억은 현기증처럼 몰려왔다. 언젠가 길거리의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은림이 끊어버린 수화기를 붙들고 이런 무의미한 발신음을 듣고 서 있던 때가 있었다. (전화를 끊고) 습기찬 가을 저녁이었다. 그 날 불던 바람--- 아주 높은곳에서 후들거리던 전선들. 그날 밤 굉장한 폭우가 쏟아졌었다. 스믈 일곱 먹은 그 해 가을에---
명우 공간 암전되고 은림에 조명.
[은림] (박스에서 나오며) 오늘 밤엔 제발 비가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랬는데--- 오늘밤 걸어다녀야 할 길이 아주 많이 남았는데--- 하지만 가을도 다 가버렸어---
은림. 가방을 들고 한 걸음 옮기는데 건섭 등장. 칠 년전의 그들의 집.
[건섭] (외친다) 대체 이유가 뭐야?
[은림] (걸음을 멈추고) 그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사 알았기 때문이야.
[건섭] 미쳤군. (돌아서 들어가려 한다)
[은림] (그의 팔을 잡고) 난 믿었었어--- 하지만 아니었어. 이 깨달음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건지 건섭씬 모를거야.
[건섭] (뿌리치고 들어가며) 원래 불륜의 맛이란게 그렇게 짜릿한 거야.
건섭, 들어가면 명우 구역에 조명 들어오고 무대에 다시 둘만 남는다. 서로 쳐다보고 마치 두 편의 드라마가 서로 상관없이 병행되듯이 서로의 감정이 엇갈이며 진행된다.
[은림] 짐은?
[명우] 우리, 이래서는 안 돼.
[은림] 말했어. 형이랑 창원으로 가겠다구. 거기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건섭씨한테도 그렇게 이 야기 했구.
[명우] 명선배를 만났어 어제--- 이건 옳지 않아. 우린 용서받지 못해. 우리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거야.
[은림] 명선배가 그래? 옳지 않다구? 형은 누군가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우리를 용서하기를 바랬던거야?--- 난 다 정리했어요. 형의 마음이 사흘만에 이렇게 변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어--- . 난---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명우] 이런건 옳지 않아--- 우린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
명우 공간 꺼지고
[은림] (천천히) 그러면--- 뭐가 옳아?
다시 명우 공간 켜지고
[명우] 스물 일곱 살에 불륜이라는 멍에라니--- 그건 너무 이상했다. 스물 일곱 살에 스물 여섯 살짜리 유부녀하고--- ? 그건 괴상했다. 절대로 내 인생에 끼어들어선 안 될 이물질 같았다. 갑자기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어떤 격정--- 웃음 같기도 하고 눈물 같기도 한--- 그 두가지가 뒤범벅된 혼돈--- 난 나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뱉고 말았다.
"나중에 다시 연락 할게!"
은림 공간 꺼지고, 명우 혼자 서있다.
잠시후 암전.
제 2 장.
93년, 까페의 음악과 함께 조명 들어오면 무대 우측 구석에 은림, 담배 연기에 싸여 앉아있다.
명우, 들어와 주위를 살핀다. 은림을 발견하고 그의 등뒤에 선다.
[은림] (등 뒤의 명우를 의식하고 뒤돌아보며 미소짓는다.) 내가 너무 갑자기 전화했었나 봐요.
명우, 말없이 서있다 잠시 후 은림의 시선을 피하며 앉는다.
[은림] 고개 좀 들어 봐요. 정말 형이 맞나 보게.
명우, 고개를 든다.
[은림] 형 정말 아저씨가 다 됐다 그지? 그런데 너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나이에 맞지 않게. (은림의 장난에 명우 웃어준다.) 사실은 한 마흔 여섯 살쯤 돼서 흰머리 염색 할 때쯤이나 형을 볼 수 있을거라 생각 했어요.
[명우] 건섭이 소식은 들었다.
[은림] --- 경주에 있어요.
[명우] 잘 지내지?
[은림] 응. 거기 들러서 책이랑 넣어주고 오는 길이예요. 난 자주 못 가봤어요--- 시댁 식구들이 자주 가니까--- (사이) 나, 서울로 아주 올라왔어요. (사이) 몸이 안 좋아졌어요. 더 머무는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정리하려고 해요.
[명우] 몸 어디가?
[은림] 으응 그냥--- 영양실조쯤 되겠지 뭐...(말을 돌리며) 나 이 가방 참 오래들고 다니죠? (사이) 칠년 만이죠?
[명우] 응.
[은림] 칠년 만에 만나서 이렇게 좋은 기분으로 마주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나쁘 지 않네요. (사이) 참 형 딸내미가 있다면서요?
[명우] 응?--- 응.
[은림] 몇 살?
[명우] 만 두 살. 우리 나이론 네 살이고.
[은림] 이름이 뭐야?
[명우] --- 명지.
은림, 일어나 앞으로 나오며
[은림] (혼자서) 명지?--- 명지! 참 이쁜 이름이야! 형이 결혼했다는 소식 듣고 내가 어떤 생각 을 했는지 알아?
[명우] (혼자서) 어떤 생각을 했니?
[은림] (혼자서) 난 가끔 상상하곤 했어. 만일 형이랑 결혼한 그 연숙씨가 아이를 낳으면 혹시나 내 이름 중에 하나를 형이 그 아이 이름에 넣어 주지 않을까 하고--- 연숙씨 눈치 못채게 한 글자만은 자는 너무 나약한 느낌이 드니까--- 림자? 그러면 내가 먼 훗날 어딘가에서 형의 아이를 보면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 적어도 그 아이에게 깃들어 있는 정령 중의 반은 내 것이다.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을거라구.
[명우] (혼자서) 난--- 난 이혼했어.
[은림] (혼자서) 형 왜 그랬어?
[명우] (혼자서) 모르겠니?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니?
음악 소리 커졌다 작아진다.
[명우] (은림에게) 난--- 난 이혼했어. (사이) 그냥 사는게 그랬어. 살다보니 일이 그렇게 되버린거야--- 모든게 사실은 그냥 우스운 일이였는지도 몰라--- 그땐 그랬잖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잖니--- (사이) 그리고--- 난 지금--- 사귀는 여자가 있어.
[은림] (자리에 앉아서) 다행이야. 형이 혼자서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명우] 그래?
[은림] 사람들이 형을 나쁘게 얘기 하는걸 들었었어. 연숙 언니를 버렸다구--- 건섭씬 형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1년도 넘게 숨겼었고--- 내가 또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까봐 겁이 났었나보지?
[명우] 왜 연락하지 않았니?
[은림] (웃으며) 그때 저질러 버릴걸 그랬나?
[명우] (정색하며) 모든게 어리석었었어. 우린 모든 걸 잃어 버린거야. (사이)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도 아니었어--- . 구십년대 이곳에서 일어났다면 얘기 거리도 못되는 일들이었겠지.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는데---
[은림] (사이) 저어기 어떻게 하지? 이젠 가봐야 할 시간이예요.
[명우] 그래. 일어나자. 가야지. (그러면서도 명우, 새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집안은 모두--- ?
[은림] 아버진 오빠 그렇게 된 다음에 돌아가셨고, 엄만 앨에이 이모네로 가셨어 오빠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아 버렸거든.
[명우] 은철이 소식은 동창회에서 전해 드렸다. 병원비는?
[은림] 몰라요. 보태주지도 못할거면서 물어 보질 못했어--- 나도 한 대만 태우고 (담배를 피워 문다) (사이) 형, 정말 형 말대로 우리가 어리석었던 걸까?
[명우] 아니야. 우리가 그때 그렇게 했더라도, 같이 떠났더라도 후회 했을 거야. 이제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은림] 형은---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고 있구나--- 난, 난 그런 이야기가 이니었는데.
[명우] ---
노래와 함께 암전
"그 날, 그 날 불던 바람.
바람을 맞고 서 있을 그의 무거운 어깨, 그의 침묵---
지나간 정열의 시간들--- .아!"
제 3 장
무대 좌측 밝아지면, 전화 벨소리, 자동 응답기 돌아가는 소리, 그 속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는 명우.
[소리] 김명우씨 있으면 전화좀 받아 보세요. 나, 여경이예요.
명우 잠이 깨어 돌아 눕는다.
[소리] 전화 좀 해달라고 했는데 왜 안했어요? 정말 없나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사흘동안 이나 전화도 안하고. (장난기있게) 나 그럼 오늘은 열쇠 열고 쳐들어간다! 명우씨! 김명우! 야, 명우야!--- 이상하네--- 어쨌든 들어오면 전화해요. 오늘까지 전화 없으면 마음 변한 걸로 알 거야.
명우, 침대에서 부시시 일어난다. 주위를 둘러보고 흐트러져있던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신다. 마지막 한방울---
[명우] (혼자말로 두서없이) 나는 왜--- 호랑이가 되었는지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한다--- 지금--- 나는 왜 한때 인간이었나--- ?
명우, 주위를 돌아다니다 테이프 레코더의 스위치를 켠다.
[소리] 사장이 되고나서도 고생했던 옛날을 잊은적이 없어. 그래서 우선 사원 복지에 신경을 썼지. 아 나 혼자 잘 살자고 봉림전자 차린 건 이니니께! 그래서 학교를 세웠어. 옛날에 몬 먹고 몬 배운 생각이 나서--- 나 정봉출이 돈만 아는 놈이 아니라이거여!--- (기침소리) 애들도 고용했겄다 뭐 이런 저런 생각 않고 우선 공부 위주로 시간을 짰지. 불쌍한 아들 아니겄어? 고생이 뭔지 모르고 큰 이 정봉출이도 아니었응께--- . (기침)
명우, 스위치를 끈다. 무대 우측에 조명 들어오면 은림, 건섭, 명선배.
은림은 열심히 타이프라이터를 치고 있다.
[건섭] (분노하여) 말이 학교지, 산업체 부설학교란게 다 그런거 아냐?
[명선배] 계속되는 잔업에 공부는커녕 잠잘 시간도 없고, 식사라는건 거의 소금물에 짠지뿐이니---
[건섭] 그래도 학교가 있는 공장에 애들이 몰리는걸 보면 참 희한해요.
[명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바로 그거야.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학교가 필수적이다 이거지. 만일 A란 공장에서 월급을 10만원을 준다고 해도 소녀들은 학교가 있는 B공장에 8만원을 받고 나가는거야. 공부 하고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오빠나 남동생 학비 때문에 서울로 떠 밀려온 그런 애들이 누렇게 시들어 가는 곳이지.
[명선배] 문제는 봉림전자야. 사장이 정봉출인가 하는 작잔데 그 방면에서 아주 악명이 높거든.
[건섭] 모든 것이 아주 최악이야. 작업환경도 그렇고, 게다가 구린데가 있어선지 감시도 심하고---
[명우] 하지만 그런 데서 착취당하는 애들을 그냥 방관만 할 수도 없잖니.
[명선배] 전에 연희가 들어갔다가 위장취업이 들통나서 치도곤히 당한일도 있어서 쉽게 나설 사람이 있을까?
[은림] (나서서) 그렇다면 제가 가겠어요.
[건섭] (놀라 말리듯) 은림아!
무대 우측 어두워 지고 좌측에 명우 혼자.
[명우] 은림을 눈여겨 본 건 그때부터였다. 눈에 잘 띄지 않던 그녀였다. 소녀도 아니고 처녀도 아닌--- 삐적 마른 몸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녀의 눈은 참 아름다웠다. 특히 어둠 속에서 올려다 보는 그 눈빛--- 어떤 참담함 속에 잠겨있는 듯한---. 그래서 예전에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부르곤 했다--- 러시아의 눈동자---. 그리고 그런 그녀가 내가 가장 아끼던 후배 건섭과 결혼한지 마악 일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난 오히려 그녀에게 무척이나 친근감을 느꼈던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는 내 친구이자 동료인 은철의 누이였고--- 그러니 내가 은림의 거처에 들르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후배의 아내가 아닌가? 비록 둘은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 별거중이었지만--- . 그러나 그녀는 자연스러웠다. 김치에 비벼서 밥을 두 공기나 해치웠고 '씨익' 웃으며 부러진 성냥으로 이빨 사이의 고춧가루를 떼어 냈다. 그리곤 방 한 쪽에서 명선배에게서 받은 유인물을 타이핑 또 타이핑 했다.
무대 우측에 조명. 은림 타이핑하고 있다.
[명우] 정말 괜찮겠니? 너 어제도 밤 샜다면서.
[은림] 할 일이 있으면 난 잠을 자지 않아요. 나를 매혹시킬 일만 있다면 영원히 잠들지 않을 수도 있는걸? 언젠가 누가 점을 봐 주었는데 내 사주는 온통 불이래. 불하고 나무하고 같이 활활 타고 있대. 가끔 그 말이 생각나. 날 너무 잘 알고 하는 소리 같아서. 난 사실 잘도 활활 타오르거든. (웃으며) 명선배가 이 소릴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거야. "얜 이게 탈이야. 조금만 칭찬해 주면 이렇게 꼭 비과학적으로 나온다니까."
초인종 소리와 함께 우측 어두워진다. 명우 그대로 있고 여경 등장.
[여경] (들어와 불을 키면 명우를 발견하고 놀라서) 어머! 깜짝이야! 명우씨! 집에 있으면서도 사람을 놀래키다니.
[명우] 지금 일어났어. 막 문 열려던 참이었는데.
[여경] 아유! 술 냄새. 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명우] --- 좀 많이.
[여경] 누구랑 마신거야? 내가 그렇게 전활 했는데. 전화도 없이 (웃으며) 이 여경이 보다 중요한 사람이었나보지?
[명우] 응--- 그냥 친구---
[여경] 친구, 누구? 난 모르는 사람이야?
[명우] 모를거야--- 좀 오래된 친구니까.
[여경] 그랬어? 그 사람 지금 뭐하는데?
[명우] (머뭇거리다) 그건 안 물어봤어.
[여경] 어떻게 그런걸 안 물어 볼 수가 있어? 그럼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술을 마신거야?
[명우] 그냥 그렇게 됐어. 너무 오랜만이니 뭐 할 말이 있어야지. 그쪽도 바쁘고 나도 그랬고.
[여경] 그럼 둘이 앉아서 술 만 마신거야? 아무 말도 없이?
[명우] 응?--- (얼떨결에) 응.
[여경] 이거--- 이상한데--- 수상한데! (침대에 올라가서) 생각해봐. 만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면, 아주 오랜만에, 나라면 이렇게 물어 볼거야. 결혼은 했니? 회사는 어떻고? 아이는 있고?
[명우] 왜 그런걸 물어봐야하지?
[여경] 그러면 설마 이렇게 물어 본단 말이야? 넌 요즘 무슨 책을 읽니? 소설책이니? 철학책이니? 그것도 아니면--- 그러니 대체 어떤 분위기 였냐구요? 설사 옛날 애인을 만났다고 해도--- .아! 맞다! 옛날 애인. 옛날 애인이야! 명우씨 옛날 애인 만났구나!
[명우] --- .
[여경] (기쁜 얼굴로 그의 어깨를 잡으며) 맞지? 그치? 여자지, 여자? 그럴 줄 알았어.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라고 눈치를 챘어야 하는건데.
[명우] (테이프 레코더의 스위치를 켜며) 그래. 맞췄으니 날 좀 내버려둬. 할 일이 많단 말이야.
여경, 스위치를 다시 끄고 뒤에서 명우를 안는다.
[명우] 서로 작업중에는 이러지 않기로 했지?
[여경] 진짜 뭐하는 여자야? 결혼은 했대?
[명우] 대학 4학년때 했으니까 벌써 10년 됐어. 이제 됐어?
[여경] 그럼 아줌마네. 남편은 뭐한데?
[명우] (여경을 바라보기만 한다)
[여경] 어? 얼렁뚱당하기야? (생각 난 듯) 맞아. 그 여자 이혼했지? 그치? 그래서 명우씨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고 하지? 잃어버린 과거의 사랑을--- 아냐, 아냐. 이건 너무 시시해.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어요" 이건 너무 연속극 같은가?
[명우] 그는 갇힌 사람이야.
[여경] 무슨 소리야?
[명우] 그는 감옥에 있어.
[여경] 남편이?
[명우] --- ---
[여경] 왜?
[명우] (여경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 .
[여경] 아직도 갇힌 사람이 남아있단 말이야?
[명우] 그래--- 그래. 아직도.
무대 좌측 어두워지고, 우측에 미결수복의 건섭과 면회 온 은림.
[은림] 괜찮아?
[건섭]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로) 많이 받게 될 것 같아--- 은림이 넌 니 갈 길로 가. 뒷일은 우리 식구들한테 맡기고--- 넌 이제 자유야.
[은림] (목이 메어) 책 넣었어. 미순 언니가 안부 전하래. 건강해. (돌아서며) 또 올게. 건섭, 돌아서려다 다시 은림을 본다. 서로 응시. 건섭 돌아서 들어간다.
[은림] (혼자 말로) 왜 그런 말을 해? 그래도 우리는 오랬동안 같이 걸어 왔잖아?
무대 우측 어두워지고, 다시 명우와 여경.
[여경] 명우씬 학교 다닐 때 뭐 했어요?
[명우] 글쎄--- 뭘 했었지? (사이) 술을 마셨지. 싸움을 했고, 그리고 노래를 불렀어.
[여경] 무슨 노래?
[명우] --- 지금은 다 잊어버린 노래--- 흐르는 지나간 그 노래들---
[여경] 뭘 생각해요?
[명우] 그냥---
여경, 명우에 긴 키스---
여경, 일어나 창가로 가 밖을 내다보다--- 돌아서 명우에게
[여경] 밖에 비가 오고 있어요.
[명우] 어젯밤에도 비가 왔던가?
[여경] 그런데 명우씬 왜 내게 한번도 결혼 하잔 말 안해요?
[명우] 결혼하자면 할테야?
[여경] 한 번 물어봐요.
[명우] 결혼해 주겠어?
여경 천천히 고개를 흔든다.
[명우] (혼자서) 아주 어렸을 때, 아직 이 세상이 푸른빛으로 보였을 때, 한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어. 그 여자는 후배의 아내였고. 우린 같이 떠나기로 했어. 말하자면 같이 도망가기로 한거야. 하지만 난 약속을 어겼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지. 오래 전부터 날 따르던 여자, 나이는 동갑---
무대 우측 어둠 속에 연숙 등장
[명우] 언젠가 야학에서 내가 가르친 적이 있는 회사의 노조에서 활동하던 여자였어.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었지.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나봐. 그래도 난 나 자신에게 타일렀어 "사랑에도 방식이 있다. 아니, 사랑 따위라니, 그런 건 너무나 사치스런 거야!"---
우측, 연숙에 스포트
[연숙] 그래요. 당신에게 사랑이라니--- 당신에게 결혼이란 게 뭐였나요? 직업적인 혁명가로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가정을 꾸미는 것, 그 대상이 다행히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
[명우] (혼자서) "열 몇 살에 서울로 올라와 봉제공장에서 가방공장의 시다로 그리곤 미싱사가 되었던 고단했던 그녀의 손을 위해 내 생애를 바친다." 그런 결심 같은거였어.
연숙, 스포트 아웃되고, 여경 ,명우에 다가와서.
[여경] (장난스럽게) 난 결혼 같은거 하기 싫어. 늙어 죽을 때까지 연애만 할 수 있다면 좋겠어. (사이) 하지만 생각하면 겁이나. 지금은 괜찮지 만 사오십이 넘고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어지면, 그때 자식도 남편도 없이 어떻게 하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요?
[명우] 아니.
[여경] 그래도 할 수 없어. 난 여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그런 욕망에 대해 우선 정직해야 하고.
여경, 명우를 안고 그에게 입맞춤--- 어둠 속에서 전화 벨 소리. 응답기소리. "김명우씨 댁 맞지요? 여기 강서 경찰서인데요. 노은림이란 여자아시죠? 그 여자가 지금 좀. 아무튼 그러니까 연락 좀 주세요."
음악(박노해의 하늘)과 함께--- .암전.
제 4 장.
무대 우측 밝아지면 은림 혼자서
[은림] (싯구를 외운다)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이 아닌 서로 받쳐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사이) 그땐 이 시들이 마치 성서의 한 구절 같았어요.
무대 좌측 밝아지면 명우 혼자서
[명우] 우리처럼 책장을 한가지 사상으로만 가득 채웠던 세대가 또 있을까?
[은림] (가방에서 책 한권을 꺼내며) 그리고 그 책들이 이제는 아무 쓸모가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이렇게 짊어지고 다닐 세대가 또 있을까요?
은림, 마치 따스한 양지에 앉아있듯이 한가로이 책을 읽는다.
잠시후 건섭 등장.
[건섭] 은림씨.
[은림] (그를 보지 않고) 네?
[건섭] 무슨 책이죠? 보기 좋은데요.
[은림] 헷세요. 헤르만 헷세.
[건섭] (비꼬며) 낭만적이군요. 은림씬. 하지만 그건 한낯 쓰레기일 뿐이죠.
[은림] (그를 빤히 쳐다보고 일어나며) 아직 다 읽진 않았으니 쓰레기인지 아닌지 모르겠군요. 다 읽고 나서 치워 버릴께요. 정말 쓰레기라면.
[건섭] (열을 내며) 저기 끌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요? 저기 광주의 주검들이 보이지 않나요? 누이들이 피를 흘리며 철야를 해도 한 달에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착취 당하고 있는데 은림씬 그 비싼 옷들이 부끄럽지 않아요? (건섭 나가며) 그런걸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해요.
[은림] 그래. 그땐 그랬지. 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삶을 어떻게 좌우했을까? 그가 구테타를 일으켰을 때 난 학교를 잘 다녔고, 그가 광주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을 때 난 식구들하고 야유회를 다녀오고 있었는데--- 그게 나의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을까? (사이) 괴롭긴 했었지. 끌려 가는 사람들 갇히는 사람들, 사라지는 사람들--- 하지만 괴롭다고 자신의 삶을 수정하는 바보는 없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렴풋이나마 은철 오빠에게서 맑스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들을 찾아가게 되었어요. 사실 은철오빠는 동생인 나에게 그런 고민을 떠맡겨도 좋은가 어떤가를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지만---. "나 공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확신이 더 들면 그때 싸우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맑스의 신봉자가 된 건 아니였어요. 날 매료시킨 건 선배들이었어요. 오빠도 그렇고. 왜 미션이란 영화 있잖아요? 그들의 삶은 꼭 그 선교사 같았어요. 폭포를 기어올라가서 죽음을 당해서는 폭포를 떠내려오고, 그 동료의 시체를 묻은 신부가 또 폭포를 기어오르고--- 그들이 믿은 건 뭐 였을까? 그들에겐 하나님이 약속한 천국이있었지만--- 우리에겐?--- 있었다면 가난과 투옥과 고문뿐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날 끌었어요. 모르겠어요. 난 원래 선배들 지적대로 늘 비과학적이었지만--- 자기만 위해 살지 않을 수도 있는 거구나. 이토록 이타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도 있는 거구나. 그것도 참 비과학적인 거지만--- 난 그런 생각에 감동 받았던 것 같아요. (사이) 그리고 오빠가---
[명우] 넌 누구보다도 오래 그곳에 남아 있었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자부하던 나보다.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던 선배들 후배들 보다 더 오래---
[은림] (주위를 둘러보고 혼자임을 알고) 날 떠나지 못하게 한 건, 그토록 매료 시켰던건 그건---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였어요. (사이) 난 어쩌면---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건지도 몰라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에 유토피아라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모든 좋은 세계에 대한 상 상을 사회주의 속에 다 가져다 부워 놓고, 그것이 단지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 보지도 않았어요. 다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었죠. 굳게--- 그리고 아직도--- 아직도 그 미망에 사 로잡혀 있으니까요.
조명 밝아지고 명우, 은림에게 다가간다.
흐르는 짧은 노래
"별보다 아름다운 불빛들, 강변의 차도
반겨주는 사람 없는 도시의 불빛--- . 그 속의 외로움."
[명우] (걱정스레) 괜찮아?
[은림] ---
[명우] (일깨우며) 노 은 림!
[은림] (이제야 알아듣고) 왔어요? 미안해요. 내가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어요. 폐가 되는건 알지만 연락 할 사람이 아무도---
[명우] 잃어버린 건 없니?
[은림] 응. 서울에 오면 묵기로 약속한 언니가 있었는데 찾아가니까 한달전에 이사를 갔데. 가방을 들고 무작정 걸었는데.
[명우] 경찰한테 얘기 들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더구나. 빗속에 쓰러져 있어서.
[은림] 그랬어?
[명우] (정색을 하고) 네 병 얘기도 들었다.
[은림] (아무렇지도 않게) 아, 그거? 결핵이야. 요샌 유별난 병도 아닌데 뭐.
[명우] 언제부터?
[은림] 두어 달 됐어요.
[명우] 왜 약을 먹지 않았어?
[은림] 자꾸 잊어 버려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다)
[명우] (입의 담배를 뺐으며) 담배 피우지 마라!
[은림] (큰소리로) 왜--- 왜 그러는 거야! (사이) 내가 정말---
[명우] (동시에) 난--- 말해봐.
[은림] 먼저 하세요.
[명우] 왜 몸을 그렇게 함부로 하지?
[은림] (대들며) 그래서 쓰러지고, 그래서 다른 사람을 빗속에 달려오게 하고. (사이) 귀찮을거란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비오는 밤을 골라 일부러 몸이 아팠던건 아니잖아요?
은림, 비닐 우산을 피고 밖으로 나간다
[명우] (자신의 큰 우산으로 받쳐주며) 귀챦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야. 이젠 자기 몸은 간수 할줄 아는 나이---
[은림] (말을 자르고) 난 안죽어요!
[명우] 누가 죽는다고 했니?
[은림] (담배를 피워 문다.)
[명우] 정말 고집 불통이군.
은림, 발작적으로 기침을 한다.
[명우] (다급해서) 괜찮겠니? 다시 병원으로 갈까?
[은림] (주저 앉아서) 그냥--- (사이) 미안해요. 갑자기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피까지 토한건 처음이야.
[명우] 열심히 약 먹어. 바보 같은 생각말고. 나랑 약속 할 수 있지?
[은림] 아까 응급실에서 비명 지르던 사람들, 남의 일 같지 않았어. 언제부터인가 나도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 같았던거야. 아무도 듣지 못했었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랬던 것 같아. 잠시 그 비명 소리가 내 것인 것 같은 환각에 빠졌었어. (사이) 명우형, 만일 내가 죽으면 누가 날 기억해 줄까? 아버지도 없고, 엄마도 가고 오빠마저--- 동료들도 떠나고.
[명우] 쓸데없는 소리.
[은림] 형은 죽는 거 생각 안 해?
[명우] 난 그런 생각 안 해.
[은림] 난 해. 만일 죽고 나면, 죽어서 저 세상이 있다면, 누군가 물을거야. 네 나이 서른 둘, 뭐하고 살았니? 대체 뭘 하고 살았던 거니? 하고.
[명우] 가자. 집으로 가서---
[은림] (갑자기) 명우형, 우리 옛날에.
[명우] 옛날에 뭐?
[은림] 옛날에--- 생각해 보면 그리 옛날도 아니지만. 그때, 그때 말이야---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옛날 얘기가 무슨 부질 있겠어.
무대 좌측에 조명 들어오고 은림과 명우 들어간다.
이미 앉아있던 여경, 일어나고, 셋 어색한 침묵.
[여경] (침묵을 깨고) 안녕하세요. 노은림씨 되시죠?
은림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명우 난감한 표정.
[여경] 전 문여경이라고 해요.
[은림] 네--- 안녕하세요.
[명우] 웬일이야? 아직 안 갔었나?
[여경] 난 가봐야 해요. 너무 늦었어. 걱정이 돼서 기다렸던 것뿐인데. (은림에게) 그럼 편히 쉬세요. (명우에게) 주차장 까지만 바래다 줄래요?
여경과 명우 밖으로 나가고 무대 좌측 어두워진다.
명우 먼저 저벅저벅 걷고 여경 그 뒤에서
[여경] 화 내지 말아요. 난 단지 노은림이란 사람을 보고 싶었을 뿐이야.
[명우] 자기 얼굴을 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어. 넌 어떻게 너만을 생각하니?
[여경] 그렇게 그 여자를 잘 이해하나요?
명우 우뚝서서 그녀를 바라본다.
[여경] 나, 명우씨 이해해--- 저런 얼굴을 하고 있더니--- 나보다 겨우 여섯 살 위인데--- 저런 절망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니--- 나, 화 안 났어요. 나 때문에 화났다면 풀어요. (사이) 하지만 왜 하필 형한테 전화 했을까? 남편이 감옥에 있다해도 다른 식구들도 있을텐데. 나라면 그렇게 안 해. 게다가 남자 혼자 있는 집에 까지--- 나라면--- 정말 불쾌해요. 혹시 질투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아니, 질투라도 상관없어.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야? 내 말이 상식적이지 않아?
[명우] ---
[여경] 내일은 가는 거겠죠?
[명우] ---
[여경] 그러면?
[명우] 잘 모르겠어.
[여경] 부모도 없나? 형제라도 있을 거 아냐.
[명우] 오빠가 있지. 내 동창인데--- 걘 정신 병원에 있어.
[여경] 미쳤단 말야?
[명우] --- 그래.
[여경] (갑자기 차분해 져서) 명우씨. 우리 만난지 얼마나 됐죠?--- 우리 만나는 동안 나는 명우씨한테 좋은 사람이였나? (사이) 말 해 줘요. 날 사랑 하는지.
[명우] 여경아. 난---
[여경] 문여경인 여기 있어요. 노은림씨는 저기 있고요. 그리고 당신은 저리로 들어가겠죠?--- 무엇이 두렵나요. 그녀가 바로 당신을 이혼시킨 바로 그 여자라서요? 노은림이라는 여자가 그저 친구의 여동생이 아니라 그런 사이라고 말을 한다면 이 문여경이가 펄펄 뛰면서 하이힐이라도 벗어서 당신의 머리통을 후려칠까 겁이 나나요?
[명우] (소리친다) 여경아!
[여경] (어둠 속으로 뛰어 나가며) 둘 사이에 내가 이상하게 끼어드는 것 같아 느낌이 안 좋아요.
여경이 떠난 자리에 서있는 명우.
노래와 함께--- --- --- --- --- 암전
"깨어 있고 싶어. 나의 생이라면 언제나 깨어 있고 싶어.
그 한복판에서 나를 찾아보리--- 깨어 있고 싶어. "
제 5 장.
무대 밝아지면 명우의 방. 다음날 아침.
은림, 침대에 잠들어 있고 명우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잠시 후 은림 깨어나고 명우 그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딴청을 피운다. 은림 일어나 명우를 보고 어색해 한다. 은림 씩 웃고 가방을 뒤진다. 무언가 찾는 듯. 하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가방 안의 물건들이 다 꺼내지고 칫솔을 손에 쥔다. 그리고 다시 물건들을 가방에 집어넣고---
[은림] (칫솔을 들어 보이며) 바로 이거였어.
은림, 씩 웃으며 욕실로 들어간다.
[명우] (은림의 가방을 들어 보고는 혼자서) 언제나 칫솔을 안주머니에 꽂아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칫솔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정착하지 못 한다는 의미였으리라. 언제 어떤 곳에 가더라도 가장 인간답게 자신을 가꾸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가 바로 칫솔이었다. (사이) 서른 두살 은림이는 아직도 칫솔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은림, 들어온다. 손에는 칫솔과 타올이 들려있다. 타올을 개어 놓고 칫솔을 가방에 다시 집어넣는다.
[명우] 잘 잤니?
[은림] 저 땜에 불편했지요?
[명우] 아니---
은림, 맑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방안을 둘러본다.
[은림] 어제 그 아가씨, 사귄다는 그 사람?
[명우] 응.
[은림] 꽤 똘똘하게 보였어. 감성도 예민해 보이고.
[명우] 그래?
[은림] (천천히) 잘 어울려 보였어요.
명우, 어색하게 웃는다.
[은림] (침대에 앉으며) 재혼 해야죠?
[명우] ---
[은림] 형은 뭘 하고 지내요?
[명우] 글을 써.
[은림] 무슨 글? 소설?
명우 고개를 젓는다.
[은림] 형이 학교 다닐 때 대학 문학상 받았다는 얘기는 오빠한테 들었어요.
[명우] (담배를 피워 물고) 난, 다른 글을 쓰고 있어. 말하자면 자서전 같은거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은림] 그럼--- 위인전 같은걸 말하는 거예요?
[명우]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현대의 위인들--- 그러니까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살아 남은 사람들. 이긴 사람들. 돈이라든가, 성공이라든가, 그 외에는 어떤 것도 애초부터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들의 자서전--- 네 말대로라면 한번도 바보가 되어 보지 않았던 사람들--- .
은림은 아무말도 안 한다. 대신에 잔기침---
[은림] (새삼스럽게) 연숙언니도 잘 있나요? (담배를 피워 물고) 명지는 보고 싶지 않아요? 이쁘게 생겼겠죠? (잔기침)
명우, 은림의 담배를 뺏어 거칠게 꺼버린다.
[은림] (날카롭게) 왜 그래요?
어색한 침묵, 오랬동안---
이때 초인종 소리 명우, 의아해서 문을 연다. 여경이 들어온다.
[명우] (의아해서)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여경] (밝게 웃으며) 잘 주무셨어요? 두분. 아직 아침 전이시죠? 김밥을 좀 싸왔어요. (보자기를 풀며 은림에게) 김밥 좋아하세요? 맛이 없더라도 좀 드세요.
[은림] --- 고마워요. (김밥을 먹는다)
[여경] (먹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그런데, 생일이 언제죠? (웃으며) 제가 별자리 점을 보아드릴려구요. 전 사월 생 이고 산양자리거든요. 명우씬 처녀자리예요. 우습죠? 처녀자리의 특징은요, 말 그대로 처녀처럼 까다롭고 수줍어하고 그러면서 예민하게 군다는거예요. 명우씨한테서 그런거 느끼시죠? (조르듯이) 말씀 해 보세요. 몇월생이예요?
[은림] 난 음력으로 호랑이 띄예요. 양력으론 일월생이고.
[여경] 음--- 그러면요. 그러면 물병자리예요. 물병자리의 특징은? 제일 추울때 태어났기 때문에 이성이 아주 발달 해 있다는 거예요. 실날한 비판력을 가졌죠. 하지만 그런 강한 비판력도 느낌이나, 직관이나 감정의 흐름 앞에서는 무기력해져요. 그래서 그들은 정직하죠. 아니,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일이면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하지만, 싫은 일이면 죽어도 하지 않죠. 어때요? 제 분석이? 맞죠?
은림, 조용히 웃는다.
[여경] 그러니까 이런 물병자리들은요 남이 시키는 단조로운 일 보다는 언제나 창조적인 일들을 해야해요--- ---
은림과 여경은 죽이 맞아 무언가 열심히 대화한다.
명우, 앞으로 나와 혼자서.
[명우] 그때 은림의 나이 스믈 여섯 이었다. 바로 지금의 여경의 나이였다. 지금의 여경처럼 저렇게 조잘대기를 좋아했고 지금의 여경처럼 항상 반짝이는 얼굴로 나를 향해 웃었었다. 다만 여경이 별자리를 믿는 반면 은림은 사주를 믿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고 또 그때 은림은 언제나 비과학적이라고 비판을 당했지만 지금 여경을 비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은림과 여경 소리내어 웃는다.
전화 벨 소리.
명우 전화를 받는다.
[명우] 여보세요. 김명우입니다--- .웬, 웬일이야?--- .내 말은 안 하던 행동이라서--- 알았어. (전화 끊는다.) --- .명지 엄마야. 명지가 간밤에 열이 심해서--- 근처 병원 응급실이래.
[은림] 그럼 가봐야죠.
[명우] 지금은 좀 나아져서 잠들었대--- . 지금 아래층에 있는데--- 이리로 온다는군.
순간 얼어붙는 은림과 여경. 은림, 가방을 들었다 다시 놓는다.
긴 사이.
[여경] 그렇다면 저는 가 보는게 좋겠네요.
여경, 보자기를 싸는데 초인종 소리.
명우, 망설이다 문을 연다. 연숙, 들어오다 은림을 발견하고 굳어져 그녀를 쏘아본다.
[은림] 언니--- 오랬만이예요.
[명우] 어떻게 된거요?
[연숙] 뭐가요? 아이가요? 아니면 내가요?
[명우] 명지 말이야. 열이 심하다---
[연숙] (명우의 말을 자르고 날카롭게) 그런 걱정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요? 당신이?
[명우] 앉지들.
연숙,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문다.
[연숙] 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명우] 어제 왔어.
[연숙] 당신한테 묻는 게 아니예요. (은림에게) 언제 왔지, 여긴?
[은림] 언니, 전--- 칠년 만에---
[연숙] 변명 같은건 필요 없어. 서울에 올라와서 이래도 되는건가? 니 남편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데, 니가 이래도 되는거야?
[명우] (연숙을 말리며) 왜 이래?
[연숙] 왜 이러냐구요? 내가 이 여자한테 이럴 권리 쯤 없나요? 내 인생을 뒤집어 놓은 여잔데, 한번쯤 이런 한 풀이도 할 수 없나요? (은림에게) 서울엔 언제 왔지?
[은림] --- 열흘 전 쯤에요.
[연숙] 어디서 묵고 있지? 지금.
[은림] 아직 안 정했어요.
[연숙] 아직 안 정한 게 아니라 여기 머무르고 있는 거겠지. 그도 아니면 아직 감옥에 있는 사람하고 이혼 신고는 못한겔께고. 어떻게 내가 온다는데 태연히 여기에 앉아있을 수가 있니? 어떻게 이렇게 뻔뻔스럽게.
[은림] 언니, 우린--- 언니 그러지 말아요. 난 언니한테 잘못한 게 없어요. 그건 아주 옛날 일 들이예요. 대체 왜 이러세요?
[연숙] 대체 왜 이러세요? 옛날 일이예요. 잘못한 게 없다구? 내가 널 용서할 줄 알아? 니들 둘이 날 바보로 만들었어. 우리 같이 가리봉동에서 자취할 때, 내가 물었었지? 명우씨하고 너 너하고 이상한 사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이니? 그때 너는 말했어. 언니 우린 동지예요. 난 얼마나 내 자신을 책망했는지 몰라. 동지애라는건 그런 의심을 받을 정도로 소중하고 애뜻한 거구나. 그래, 설마 남편이 있는 여자가 그럴 수가 있을까. 결혼을 할 때까지도 난 몰랐어. 사람들이 수근거려도 난 믿지 않았지.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발견 한거야. 나는 껍데기하고 살고 있다는걸, 너하고 저 인간하고 어떤 일들을 벌였었는지 너무 늦게 알아 버린거야. 동지애? 동지애 좋아한다! (거의 울부짖듯) 니들 때문에 망친 인생들이 하나둘인줄 아니? 니들은 이렇게 떠나버리면 그만이었던걸 우린 희망을 가졌던 거야. 희망을 걸고 그리곤 버림받고--- 알아? 떠나면 그만인 니들이 그런걸 알기나 해?
[여경] (나가며) 전 이만 가겠어요.
연숙, 침대에 주저앉아 울고 있고 은림은 고개를 떨구고 있다. 명우 피하듯 옷을 들며
[명우] 명지한테 좀---
[연숙] (고개를 들고) 이제 다시 우리 명지 볼 생각 말아요!
[명우] 그래도, 그 애는 아파. 옆에 나라도---
[연숙] (소리친다) 아프면? 설사 죽는다해도 당신이 무슨 참견이야!
[명우] ---
[연숙] (은림에게) 나쁜 계집애! 남편을 감옥에 두고 어떻게. 넌 천벌을 받을 거야!
연숙 나가고 둘 망연히 서 있다. 명우,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는다
[은림] 연숙이 언닌---
[명우] 응?
[은림] 너무 많이 약해 졌어요.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명우] 내가 명지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었어--- . 나를 몹시 미워했지. 명지를 임신 한 것도 이혼하기 전까지 숨겼으니까.
[은림] 우린--- (사이) 서로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들하고 살았던 거군요.
[명우] (의아해서) 우리라면 그럼--- ?
[은림] 왜요? 건섭씨, 나 안 좋아했어요. 당연하지 않아요? 다른 남자랑 도망가려 했던 여잔데.
긴 사이. 은림 가방을 챙겨 들고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다 멈추어 돌아서서
[은림] 저도--- 사실은 아이를 가졌었어요.
[명우] 가졌었다면, 그럼--- ? 미안하다--- . 말하기 거북하면.
[은림] 아니예요. 임신했었는데 사산해 버렸어요.
[명우] ---
[은림] (허공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사내 아이였어요. 임신 칠개월 째 였는데. 파업이 너무 길어 지는 바람에 그만---
[명우] 그 몸에 농성을 했니?
[은림] --- 빠져나갈 수가 없었어요.
[명우] 그렇다고 바보같이.
[은림] (명우를 빤히 쳐다보고 다시 돌아서서) 아니야 그, 그건 오래 되었어요. 옛날 일인걸--- 그건--- 그건 칠 년 전 일이야--- (무대 우측으로 간다.)
[명우] (놀래서) 칠년 전--- 이라고?
노래와 함께 암전
"단 한번의 사랑이 남긴 무참한 공허.
다신 이루지 않으리 그저 모르는 채 남아 있으리--- "
제 6 장.
파업. 구호 소리, 사물 소리 섞여 들린다.
무대 우측 밝아지면 건섭과 은림, 유인물과 시위도구를 챙기고 있다.
[건섭] (일에 열심인 은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챦니?
[은림] 응. 견딜만 해. (다시 일에 열중)
건섭, 은림에 멀어져서 창밖을 보고 있는데
명 선배 허겁지겁 들어온다.
[명선배] (숨이 차서) 개새끼들! 이젠 아주 각개전투로 달려든다니깐!
[은림] 언니, 무슨 일이야?
[명선배] 이탈자가 생기고 있어. 회사에서 한 명씩 붙잡고 회유를 해 대니까. 게다가 밖에는 순전히 깡패들로 구사대를 만들어서 조져 대면서 겁을 주거든.
[건섭] 아까 밖을 보니까 벌써 반이나 준 것 같은데.
[명선배] 큰 일이야. 이렇게 겁먹고 우왕좌왕하면 끝장나는 건데.
[은림] 집행부는?
[명선배] 그냥 버텨보자는 거지.
이때 한 여공이 뛰어 들어오며
[여공] (소리친다) 분위기가 이상해요! 쇠파이프 들고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고 있어요. 그냥 밀어 붙이려나봐요.(겁에 질려서) 어떻게요. 언니! 예?
모두 우왕좌왕 하는데 은림, 배를 잡고 쓰러진다.
[은림] 아! 으아! 아!
[명선배] 은림아! 왜 그러니? 은림아! 얘 이상있는거 아니예요? (건섭에게 소리친다) 건섭씨! 얘이상해요. 아이가!
[건섭] ---
[은림] 아--- !
[여공] 지금 나갈 수도 없어요. 쳐들어오는 판인데.
[명선배] (여공에게) 우리가 가자! 의사를 불러 와야해!
둘, 뛰어 나가고, 은림 고통스럽게 구르는데 건섭 바라보기만 할 뿐 속수무책. 건섭도 뛰어 나간다.
은림, 숨을 가다듬고 일어난다.
[은림] 울산에 내려가서 좀 있다가 알았어. 공장에서 난 이미 일을 조직하고 있을 때였어. 우리부부는 이미 그곳에서 함께 살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건섭씨 아일 가진 걸로 알았지--- 건섭씨만 빼고--- 내가 파업현장에서 병원으로 실려가니까 건섭씬 병원까지 따라와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나를 위해 보호자 도장을 찍었어--- 좋은 사람이지. 주위 사람들이 문병을 와서 건섭씨한테 말했지. "얼마나 상심이 크세요?" 그러면 건섭씬 대답했어. "괜챦습니다."(사이) 그 후로 우린 좋은 동지처럼 지냈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동지처럼은 아니였어요. 사이가 좋아야 마땅하지만 그럴 수 없는 동지처럼--- 건섭씬 날마다 일이었고, 술이었어. 우린 부부처럼 살 수 없었어요--- 차라리 오누이처럼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술에 취한 건섭이 들어온다.
[건섭] (소리친다) 이제 그만해!--- 제발!
[은림] 건섭씨---
[건섭] --- 제발.
[은림] 그래. 이제 그만해. 그만--- 이건 고문이야!
건섭, 소주를 들이킨다.
은림의 따귀를 때리고 그녀를 쓰러뜨린다.
[은림] (반항하며) 건섭씨!--- 왜이래--- .응?
[건섭] 할 수 없어.
건섭,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다.
은림, 코피를 닦고 일어난다.
[은림] 작년엔 정말 헤어지려고 합의했는데--- 건섭씬 덜컥 들어가 버렸어.
무대 좌측의 명우. 정면을 보고.
[명우] 왜, 내게 말하지 않았지? 네가 떠난 후에도 한참을 난 결혼하지 않고 있었는데.
[은림] (역시 정면을 보고) 왜 말하지 않았냐구?--- 글세 왜 그랬을까?
[명우] 날 용서 할 수 있었니?
[은림] --- 처음엔--- 힘들었지--- 그랬어. 하지만 나중엔 그것조차 내 미련이라는 걸 알았어. 그래서 미워하는 것도 그만 두었어.
은림, 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는데, 무대 우측 어두워진다.
[명우] 우린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거야. 이상한 방법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명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앉는다.
어둠 속에서 전화 응답기에 녹음된 소리들.
"삐--- 저 여경이예요--- . 듣고 있나요?--- 여기 한계령 이예요. 한가하냐구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사랑싸움 때문에 일을 팽개칠 만큼 어리석은 여경이는 아니니까요--- (격양된 목소리로) 나는 당신이 싫어 졌어요.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그런 게 싫어요--- .너무 구질구질해요. 내 말은 끝났어요. 나한테 할 말 없나요?"
끊기는 소리--- 삐---
"나 은림이야. 녹음기에다 얘기하려니까 이상하다. 서울서 만나기로 한 언니하고 어렵게 연락이 됐어요. 그리고 이모 집 근처 삼양동에 방을 얻었어요. 그리고 취직자리도 알아보고 있구요.--- 이상하다. 기계에다 얘기하려니까--- .다음에 또 걸께요."
끊기는 소리--- 삐---
"야! 이 미친놈아! 나 경식이다. 뚱딴지 같은 놈. 한밤중에 전화 걸어서 뭐? 왜 호랑이가 되었나했더니, 뭐? 왜 한때 인간이었나? 하하하--- 분명히 네놈 목소리였어. 네놈 전화 번호 알아네는데 오래 걸렸다. 투정은 간단히 하고 본론부터 얘기할게. 딴 게 아니라. 은철이 말이다. 이번에 민주 동문회에서 은철이에 대한 사업을 하기로 했거든. 변호사 대서 정식 재판도 청구하고, 언론에도 적극적으로 피해 상황을 알리고 말이야. 그런데 그 사업의 자금 모금을 이 형님께서 맡았다 이거다. 그러니까 너도 한번 사무실에 들러 주라. 니들 제일 친한 사이였잖냐. 그럼 연락 기다린다."
끊기는 소리--- 삐.
명우 고개를 드는데, 암전
제 7 장.
무대 좌측 푸르게 밝아지면, 정신병원 침대에 멍청히 앉아있는 은철. 철문이 열리고 명우 들어
온다.
[명우] 은철아.
[은철] ---
[명우] 나, 누군지 알겠어?
[은철] (태연히) 그럼. 명우 아니냐?
[명우] 지내기가 어때?
[은철] 그저 그래---
옆방에서 들리는 남자의 노래소리.
"오직 오늘 뿐 애오라지 오늘 뿐
진정 이 몸은 이리 아름다워도
내일만 되면 , 아 아 내일만 되면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가? "
[명우] 밥은 잘 먹고?
[은철] 그저 그래.
[명우] 은림이랑 같이 오려 했는데 연락이 안됐어.
[은철] (안심이 되서) 그래. 은림인 잘 숨을거야.
[명우] 저기--- 친구들이 네 일을 모두 의논하고 있어.
[은철] 으응. 신문에서 봤어. (갑자기 악의에 차서) 놈들이 나를 모략하고 있는 얘기를.
[명우] (얼굴이 굳어져서) 은철아!
[은철] (명우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비밀을 지켜줄 수 있겠니?
[명우] 응.
[은철] 우리 집 바깥 쓰레기통에 시체가 있었는데, 놈들이 버리고 간거야 일부러. 고문을 받아서 내장이 다 터졌어. 어서 이 사실을 알려야해. 넌 내말 알지? 애 엄마도 완전히 그놈들 쪽에 넘어갔어. 지금 엄청난 공작이 진행되고 있다구. 여론화 시켜서 알려야해. 내 말 알겠지?
옆방의 노래소리 계속.
"아름다워서 그대 내 것이건만
죽음이 온다. 아 아 죽음이 온다--- "
노래소리와 함께 명우, 피하듯 뛰쳐나온다.
무대 좌측 어두워지고 무대 우측 은림의 방.
명우 취한 걸음으로 들어온다. 불을 켜면 방은 비어있고 명우 텅 빈방에 우두커니 서있다. (사이) 방바닥에 퍼질러 앉아 주머니의 소주병을 꺼내 마시는데 이때 은림이 들어온다.
[은림] 언제 오셨어요?
[명우] (화가나서) 어딜 갔다 오는거야? (사이) 어제도, 그제도 집을 비웠더군.
[은림] (앉으며) 미안해요. 오실 줄 몰랐어요. (사이) 저 취직이 되었어요.
[명우] 취직?--- 어디에?
[은림] 요 아래 수퍼요. 카운터를 구한다고 해서.
[명우] 카운터라---
[은림] 어떻게 해요? 그럼. 자격증이 있나, 재주가 있나. 게다가 난 병자이기까지 한데--- (사이) 그래서 어딜 좀 다녀왔어요. 그러다 보니 사흘이 후딱 갔네요.
[명우] (큰 소리로) 경주에 다녀왔니? 건섭이한테? 취직?다구?
[은림] ---
[명우]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은림 앞에 던지고) ("노은철 사건 대책위원회") 경식이가 한번 들르라더라.
[은림] (봉투를 열어보고) 그런데 아직--- 은철 오빠한테 희망이 있는걸까요?
[명우] (퉁명스럽게) 희망이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한테는 그런게 있겠지.
[은림] 내가 뭘 잘못했나요? 사흘 동안이나 연거푸 날 찾아왔다가 허탕을 쳐서 그래서 화가 난건가요?
[명우] 아니! 내 자신한테 화가 났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니가 취직이 된 기념으로 건섭이한테 간 동안 설마 니가 연탄가스라도 맡은 건 아닐까, 혹시라도 건섭이하고 연루된 사건에 다시 엮여서 안기부 수사실에 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날마다 찾아왔던 나 때문에 화가 난거야.(사이) 미망이라? 제각기 다르긴 하지만 은철이도 거기 사로잡혀 있더군. 노은림이도 그렇고, 그리고 이번엔 나야.
[은림] 오빠한테 갔었나요?
[명우] 갔었지. 노은림이가 남편한테 간 동안 난 하마터면 처남이 될 뻔한 친구에게로 갔었지. (명우 또 술을 들이킨다)
[은림] (술병을 뺏으며) 그만 마셔요! 다들 똑같군요. 모두들 절망의 포즈들이예요.
[명우] 왜냐하면 우린 어리석었으니까.
은림, 방바닥의 봉투를 탁 소리가 나게 한구석으로 던지고 머리를 감싸 안는다.
[명우] 바보 같았어. 노동자들이 돼지우리 같은데서 비비고 살든 말든 지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못난 나라의 학생으로 태어나서 무슨 지랄이라고 부모들 가슴에 못을 쾅쾅 박으면서--- 어리석었어. 하다못해 그 시간에 운전이라도 배워 뒀어야지. 영어회화를 익히고 그도 아니면 연애라도--- 뱃속의 아이까지 죽이면서 이뤄야 할 일이 대체 무엇이었단 말이니? 응?
은림, 고개를 들고 명우를 쏘아본다.
[명우] 그래 슬프지. 기가 막힌 얘기야. 더 애기해 줄까? 적당히 빠져 나왔어야해. 나 하나쯤 하고--- 끌려가서 왜 고문을 견뎌? 대체 무엇 때문에 벌겨벗겨진 채로 하염없이 자신을 짐승처럼 느껴야 했던거지? 어차피 굴복하고 말걸, 어차피 다 불거면서. 미쳐버린 채로 제똥 주워 먹으면 서 다 불어 버릴 거면서 대체 뭐하러?
[은림] (힘겹게) 나한테--- . 나한테,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난 아직 형을 다 용서하지 않았어요
[명우] ---
[은림] 건섭씨 말이예요? 그래요 경주에 갔었어요. 감히 형이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건섭씬 날 버리지 않았어요. 날 미워하고 내내 고문하듯이 괴롭혔지만 날 떠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형은 날 버렸지요. 단 하룻밤, 나를 차지하려고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대가를 치룬 것은 형이 아니라 나하고 죄도 없는 건섭씨였지요. 그래요. 형 말대로 대체 이루지도 못할--- (목이 메어서) --- 그래요. 턱도 없는 희망에 사로 잡혀서 내가 뱃속의 아이를 죽이고 이미 죽어버린 형의 아이를 사산하기 위해 두 다리를 벌리고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내 손을 잡아 준 것도 그 였어요. 그런데 형은 내가 잠깐 건섭씨한테 다녀왔다고한 때 형의 친구였던 오빠까지 들먹이며 빈정대고 있어요. 고작 이건가요? 한때는 운동이란 이름으로 날 팽개치지 않았었나요?
은림 흘러내린 눈물을 맨손으로 닦는다.
명우, 멍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명우] 그, 그만하지--- .
[은림] 뭐가 그렇게 절망스럽나요? 뭐가 그렇게 어리석었나요?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보고 고시공부 한번 하지 못하고 지낸 젊은 날이, 그래서 이제 와서 그렇게 안타까운 건가요? 그래서 이제와서 우린 어리석었었다고 우린 다 잃어버렸다고 그렇게 쉽게 얘기하는 건가요? 우리가 애썼던 날들하고 바꿀 수 있는 게 고작 운전면허예요? 아니요.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요. 잊지 않는 사람들--- 죽어간 친구와 그런 사람들을 기억하는 이들--- 그들이 곧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게 되요. 이제 곧 우리 세대에서--- . 가짜들말고 진짜들, 그것도 권력이라고 운동하지 않는 불쌍한 친구들 주눅들게 하면서 거들먹거렸던 사람들 말고, 이제와서 어리석었다고 그 세월전체를 매도하는 인간들 말고, 진짜들. 끌려가는 친구들도 있는데 미안해서, 정말 미안해 서 테니스 채를 사 놓고 한번도 치지 못했던 친구들, 길거리에 누워서 끌려가지 않으려고 서로서로 사슬을 얽어매고 울었던 그 친구들.
명우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다.
은림 그를 잠시 쏘아보더니 계속한다.
[은림] 그런데도 언제 불쑥 나타날지도 모르는 형을 위해 내가 날마다 여기 석고상처럼 앉아 있기를 바랬나요? 바람소리에 창문만 덜컹여도 혹시나하고?--- . 이제 혁명은 사라지고 그래서 세상이 끝났으니까 스무살 때 못했던 사랑이나 해보려구. 고작 더러운 브루조아들 자서전이나 대필 해 주는 형을 아직도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본격적으로 바람이 나기를 바랬나요? 그걸 내가 바라고 있나 아닌가, 정말 그런가, 그걸 확인하러 오는 건가요? 그런가요?
은림 말을 마치고 얼굴을 감싸고 운다.
[명우] (은림에게 다가앉는다) 미안하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 난 단지 걱정이 되었던거야--- . (일어나며) 갈께---
[은림] (고개를 들고) 잠깐만요. (사이)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죠?
[명우] 두, 두려운거 없어---
[은림] 그럼 왜 늘 내 앞에서 허둥지둥이지요? 왜 언제나 심술을 부리거나 자학을 하지요?
명우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돌아서 나간다.
은림, 나가려는 명우에게 갑자기
[은림] 명우형!
그 소리에 명우 돌아서 은림을 본다. (사이) 은림에게 다가와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은림, 그를 감싸 안는다.
노래와 함께 암전.
"가까이 오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
하지만 사라지는 그 소리
눈물이 흐르는 이 낮고 음울한 평화
멀어지는 그 소리--- "
제 8 장.
공중전화 박스에서 전화를 거는 7년 전의 명우.
전화 발신음 계속.
[건섭의 소리] 여보세요.
명우 당황하여 아무 말 못한다.
[건섭의 소리]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말없이 수화기만 들고 있는 명우.
[건섭의 소리] 잠깐 기다리십시오. 받아봐 네 전화야.
[은림의 소리] 여보세요.
망설이는 명우.
[은림의 소리] (집히는 듯이) 여보세요. 혹시, 명우형이야?
명우 뭔가 말을 하려다 그만둔다.
[은림의 소리] (다급하게) 여보세요. 여보세요!
명우, 전화를 끊고 나온다. 전화소리 "뚜우뚜우--- "
[명우] (혼자서) 그랬다. 그 전화를 끊으면서 난, 백년이 지나도 나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다. 설사 내가 희망을 건 역사가 나를 용서 한다해도 난 끝끝내 내 자신이 비겁했음을 숨기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는건 용서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의미였을까?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 대해---
노래와 함께 암전
"은림의 노래"
오랜 날들, 많은 시간들--- 소중했던 많은 기억들
언제나 간직했던 책갈피 속 낙엽의 풋풋한 흙 내음
고귀한 영혼들의 충고, 세상을 바르게 사는 사람들
하루하루 나를 지켜주던 삶에 대한 건강한 의지
기억은 문득 아프게 다가오고 또 외로움--- .
하늘이고 싶었던 자유의 열망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면
순수의 그 날을 꿈꾸는 아이가 되어
거친 도시의 숨결 속에 고요히 잠들리.
엠브란스 소리.
무대 우측에 스포트, 은림.
[은림] 고열에 몹시 추웠던 것 같았다. 그냥 쭈그리고 누웠었는데--- 엠브란스 소리에 잠이 깨 고, 꿈결에 명우형이랑 경식이 형을 본 것 같고--- 밖의 하늘은 흐릿하다. 첫 눈이 오려나? 이상하다---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어떤 여름날이 지나간다. 햇볕이 쨍쨍 내려 쬐고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 이파리 팔랑거리던 그 언덕--- 내년 여름이 올 때까지 건강해 질 수 있을까? 약해지지 말아야지.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고 신비이고 환희이지 않은가--- .
엠브란스 소리
무대 좌측에 스포트, 명우.
[명우] 의사는 무슨 말인가를 더 했지만 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리 친다) "선생님, 어떻게 어떻게든--- 평생을 병원에서 보낸대도 좋으니 은림이를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을까요?"
무대 우측 은림. 명우 그녀를 보고.
[명우] 아직도 나를 용서하지 않았지?
[은림] 그건--- 그건 형. 내가 그때 그렇게 말 한 건---
[명우] 그건 내 회한이야, 이 자식아. 내가 얼마나 거기서 벗어나려고 했는지 아니? 겨우 거기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니가 이런 꼴로 다시 나타나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니가---
[은림] 울지 말아요, 형. (사이) 오늘이 몇 일이야?
[명우] 십이월 칠일
[은림] 시간은?
[명우] 열한시 사십분.
[은림] 눈이 왔었어?
[명우] 아니.
[은림] 명우형 부탁이 있어. (사이) 우린 서로가 가엾었던거야. 이젠 그런 상처들 잊어. 상처 같은 건--- . 잊으라고 만들어진거야. (사이) 그리고 또 하나. 우리, 우리 이야기를 써주겠어?--- 우리 이야기--- 이긴 사람들 말고, 잃어버린 사람들. 하지만 빼앗기지는 않은 사람들--- 잃어버고도 기뻤던 우리들--- 그때. (사이) 오빠일--- 약속해 줘 나 없어도 오빠 일 마무리 해 주고,그리고--- 건섭씨한테--- 편지 가끔 해주겠다고.
[명우] 그래.
[은림] 미안해 명우형 난, 건섭씰 그래도 사랑했던 것 같아--- . 그땐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이) 명우형. 나 형을 용서 안한 적 없었어. 예전에--- 혹시 아주 바람 불던 어느 가을날에--- 형 나한데 전화했었지? 그게 형 맞지?
[명우] (고개를 끄덕인다.)
[은림] 나--- 실은 그 날--- 형을 다 용서 했었어. 내가 정말 용서 못했던 건 그리움이었어. (사이) 울지마--- 명우형--- 이제 난--- 좀 쉴테야.
은림을 비추던 스포트, 서서히 어두워진다.
명우 은림의 일기장을 펼친다.
[명우] (읽는다) 가끔씩 나는 나 자신에게 묻고 싶어진다. 너는 무엇을 바라는가? 눈부신 햇살과 흰 신작로, 멀리서 일렁이는 호수, 파스스 떠는 진초록의 나뭇잎, 그리고 모란이 지는 그와 나와 또 미래 아이들의 뜰--- 돌절구와 연못, 그리고 대청 마루에 깃드는 서늘한 평화, 그를 만나기 위해 몰래 밤거리로 뛰쳐나갔을 때, 어느 집 담장에 핀 월계꽃 향기--- 모든 이들의 가엾음, 모든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분노, 모든 여린 것들에 대한 사랑에 점점 무디어져가는 네 자신을 경계하라.
명우의 방이 밝아지면 들리는 여경의 노래소리.
[여경] 차표한장 손에 들고 떠나야 하네. 예정된 시간 속으로 떠나야---
[명우] (여경에게 다가가서) 그래. 한계령엔 첫 눈이 내렸디? (사이) 그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해? 걱정했잖아.
[여경] 거짓말.
[명우] 연락도 없이 가버리니까 마음이 편했어?
[여경] 왜 이렇게 늦게 다녀요? 술 마셨어요?
[명우] (고개를 끄덕인다)
[여경] 누구하고?
[명우] 옛 친구하고.
긴 사이
[여경] 명우씨 어렸을 때 얘기 좀 해 줘요.
[명우] 갑자기 무슨---
[여경] 그냥. 난 명우씨 어린 시절에 대해 아는 게 없어.
[명우] 왜 갑자기 그런걸 생각했지?
[여경] 나 명우씨 아이를 갖고 싶어요. 나와 결혼 해 주겠어요?
[명우] --- .
[여경] 아무 말 말아요. 그냥 이대로 있어요. 나, 생각했어요. 당신의 아이를 키우고, 찌개를 끓이고, 거품을 잔뜩 낸 부드러운 수건으로 당신의 등을 밀어 주고 싶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당신 의 얼굴을 보고. (사이) 명우씨.
[명우] 어렸을 때 바닷가에 산 적이 있어.
[여경] 그 얘긴 전에 들은 적 있어요.
[명우] 바다, 그 파란 바닷물에 잠기면 아주 따듯하고 안온해. 검고 푸른 해초들이 종아리에 부드럽게 감기고, 맑은 날이면 무수히 수면을 통과해 부서져 내리던 햇살들--- (사이) 가끔씩 방파제 멀리로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이며 고등어 떼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어. 살아있는 고등어를 본적 있니? 그건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 떼--- 화살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가진 탱탱한 생명체들--- (사이)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진 채로--- (사이) 그들은 생각 할 거야.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 할 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사이) 하지만 난 푸른 바다에서의 그들을 잊을 수가 없었어. 나 역시 한때 그들과 함께 넉넉한 바다를 헤엄쳐 다니던 등이 푸른 자유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자유를 포기 할 만큼 소금에 절여져 있지는 않았으니까--- .
음악과 함께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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