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를 위한 일인극- 시높시스
꽃뱀이 나더러 다리를 감아보자'하여
조광화
연희자는 바리더기와 花蛇를 주로 연기한다. 그외의 여러 인물을 한 몸으로도 오브제를 이용하기도 하며 연기한다. 고수는 남자다. 일인극에서 흔히 그러듯 고수와 연희자가 말을 주고받아서는 안된다. 고수는 북, 장구, 해금, 그리고 口音을 사용하여 음악과 효과음만을 만들어준다.
舞臺, 오브제
무대는 텅 비울 수도 있다. 만일 채운다면 이렇다. 기본 무대는 갈대 숲이 우거져 있다. 그리고 장에 따라 변화를 준다. 1장은 넓직한 바위, 2장은 수 개의 갈대 발이 드리워지고, 3장은 빈 무대, 4장은 작은 샘, 5장은 다시 갈대 발이 드리워진다. 오브제는 이 연극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기를 도와주고 때로는 역할도 담당한다. 빈 무대라면 그네에 사용할 오브제들을 걸어 놓는다.그네는 일종의 오브제 박스가 된다. 오브제 중 바리더기의 다리에 감긴 화사는 가장 적극적 역할을 담당한다. 화사는 바리더기를 맡은 배우가 손인형처럼 조작하여 움직이고 복화술로 말한다.
1.작품의도
1) 생명력의 여성모형
이 희곡은 생명력과 파괴력에 찬 여자를 그려내고자 합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여자는 팝박받고 한을 인내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제가 우리네 여자들에게 느끼는 감동은 그런 인내의 수동적 모형이 아니라 삶과 싸우는 능동적이며 심지어 호전적이기까지 한 모습입니다. 그런 생명력은 역사의 앞에 나타나 거대한 사회를 움직이는 거추장스러운 행동이 아닙니다. 그녀들 스스로가 생명력에 차있는 것입니다. 그녀들 몸안에 있는 생명잉태의 가능성과 그것을 지켜나가는 본능 그리고 또한 그것을 파괴하는 본능을 봅니다. 그녀들은 한 손에 죽음을 한 손에 재생을 들고있습니다. 저는 늘 여자에게서 남자보다도 강한 본능적인 생명력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학이나 예술에는 그런 여성모형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항상 지치고 쫓기는 지지리 궁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여자들은 무섭도록 생동감이 넘치고 또 한편 섬뜩하도록 파괴적입니다. 그녀들은 기존의 가치를 부수는데 온 정열을 쏟습니다. 전 그런 모습들에서 호전적인 전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 희곡 「꽃뱀이 나더러 다리를 감아보자'하여」는 여자의 본령인 걷잡을 수 없는 생명력과 그것이 극에 달해 나타나는 파괴력을 담아 볼 것입니다. 그 두 힘이 이 연극의 맛이 될 것입니다.
2) 신화의 재창조
생명과 파괴의 여성 모형을 찾던 노력은 바리더기를 발견하면서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신화는 그 폭넓은 울림이 한편의 연극으로 담기에는 너무도 거대합니다.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 또한 일화의 나열 식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벌리지 않고 집약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일인극은 대개가 요설과 춤, 노래 등을 적당히 혼합한 원맨쇼가 되왔습니다. 단순한 볼거리였지 성격의 창조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일인극도 드라마가 있어야 겠습니다. 극적 압축미가 있어야겠습니다. 이야기는 버려진 딸이 여섯 언니의 핍박을 물리치고 병든 부모를 위해 약수를 찾아온다는 기본 구조만을 빌렸습니다. 죽은 자를 생환시키기 위한 그녀의 영웅적인 (전사적인) 모습에 중점을 두고 새로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중심 줄거리 이외의 이야기는 모두 창작입니다. 바리더기 이야기 구조의 기본만을 빌렸지 전여 새로운 인물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펼쳐진 사설조의 무가가 연극의 극적 짜임을 획득하자는 것입니다.
3) 배우(이야기꾼) 의 마력
연극의 감동은 궁극적으로 배우가 만들어낸다는 것은 연극을 할수록 절감하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꽃뱀--- 」이 드러내고자 여자의 생명력, 파괴력은 바로 배우가 관객에게 숨을 멎게하는 마력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배우가 무엇을 하던간에 무대 위에서 몸짓을 벌리는 열정은 생명력 그 자체이고, 그것만으로도 관객의 혼을 빼앗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꽃뱀--- 」은 배우의 에너지를 충분히 쏟고 거둬들이고 던질 수 있도록 배려할 것입니다.
마치 소리꾼이나 광대가 그렇듯이, 연기는 물론이고 창, 몸짓, 소리, 인형 놀리는 재간을 때론 신들린 듯 때론 시처럼 풀어놓을 것입니다.
2.극의 톤
「꽃뱀--- 」은 힘이 넘치도록 역동적이며 동시에 신비로운 체험이 될 것입니다. 현실과 몽환과 신화를 꿈처럼 넘나들며 생명수를 찾아 여행하는 여성전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신비와 열정의 만남은 기묘한 환상을 체험토록 할 것입니다.
3.형식
1) 이야기 전개의 모티브-일인극의 전통
흔히 일인극은 연극에 필요한 여러요소들이 제거되어졌다는 개념에서 연극의 특수한 모습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일인극 안에 총체극 못지않은 스펙타클이 숨겨져 있습니다. 일인극으로서도 하나의 완결된 드라마가 가능합니다. 판소리를 듣다보면 소리꾼 혼자서 산천을 들었다 내렸다 합니다. 저혼자 조조가 되었다 심봉사가 되었다 합니다. 제 앞에다 동해물을 풀기도 적벽을 옮겨 놓기도 합니다. 이야기 전개의 중심구조는 그런 소리꾼의 방법을 본으로 삼습니다. 여배우 혼자서 여러가지 연극적 방법을 사용하여 무대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연기의 형식이 극의 형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배우는 판소리, 민요에 능하여야 합니다. 거기에 보조적으로 인형 놀리기, 복화술, 역활바구기, 춤, 지전 오리기 등의 연극적 요소를 사용하여 극이 진행됩니다.
2) 무대, 오브제
무대는 텅 비울 수도 있습니다. 만일 채운다면 이렇습니다. 기본 무대는 갈대 숲입니다. 그리고 장에 따라 변화를 줍니다. 1장은 넓직한 바위, 2장은 수 개의 갈대발이 드리워지고, 3장은 작은샘, 4장은 다시 갈대발입니다. 오브제는 이 연극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연기를 도와주고 때로는 한 역활도 담당합니다. 빈 무대라면 그네에 사용할 오브제들을 걸어 놓습니다. 일종의 오브제 박스입니다. 여배우는 그곳에서 사용할 오브제를 손에 들면 장면이 만들어지고, 다시 그네에 걸면 장면이 끝납니다
4.구성
1장.
바리더기가 늙은 부모를 위해 삼을 찾으나 없고 도리어 다리에 화사가 감겨든다. 돌중으로부터 얻은 화살을 쏘고 돌아오니 부모가 그 화살에 맞아 죽어있다. 다시 돌중에 찾으니 편지가 기다리는데 생부가 따로 있으니 찾으란다. 생명은 죽어야 태어난다한다.
2장.
화사의 눈을 가려 궁에 가니 생부모는 병들어 있다. 여섯언니들은 바리더기를 시험한다는 구실로 뒷간에서 여섯언니의 의복을 지으라 한다. 바리더기는 악취를 참고 의복을 짓지만 여섯언니는 바리더기에게 칼을 휘두른다.
3장.
바리더기가 비몽사몽간을 걷는다. 그녀가 다리의 화사를 찾으나 화사는 없다. 계속 걷는데 화사의 소리가 들려온다. 바리더기가 가랑이 속을 들여다보니 화사는 그녀의 자궁 속에 들어가 앉았다.
4장.
바리더기는 금강산 초입에서 수수꼐끼를 풀고 신선계로 들어간다. 신선 장정을 만난다. 바리더기는 장정을 안심시키기 위해 얘를 일곱씩이나 낳고 현모양처 된다. 애들은 하나같이 뱀의 형상을 닮았다. 애 낳아준 댓가로 약수를 훔쳐 뒤 안보고 떠난다. 일곱 아들마저 데리고 떠난다.
5장.
이승으로 돌아오니 화사가 다리에 다시 감긴다. 여섯언니가 약수를 뺏으려 한다. 바리더기는 일곱아들을 시켜 여섯언니를 죽인다. 그리고 화사를 풀어 잡아먹게 한다. 죽은 부모 찾으니 이미 다 화장하고 난 뒤다. 화사가 그녀의 다리를 떠나 승천한다.
[장] 1장
(거친 삼베 치마 저고리에 댕기머리의 처녀, 잠에서 금방 깬 듯 어리둥절하다. 고개를 설래설래 눈을 찡긋찡긋 손목을 덜렁덜렁, 자뭇 애쓴다.) 이게 어디야? 이게 어느때야? (제 가슴을 뒤적인다.) 이게 있나? 없나? 응--- 있구나! 그럼 내가 여자네? 응, 그거? 그거는 있나, 없나?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휘젖는다.) 그거 없네. 그거 없으니 여자네--- (갑자기 완고한 할머니의 태도로 말한다.) 버려! 기둥이 턱 버티고 서도 견딜까 말까하는데, 오목 연못이 벌써 여섯 개나 파졌어. 내다 버려! 연못 일곱씩이나 파면 영영 기둥 설 자리가 없잖여. (아이의 비명처럼) 아이고 어머니! (멍--- 하다.) 무셔라. 눈 부라린 할멈이 날 내버리라고 호통이네. 그냥 빨갛고 파랗고 희끗희끗한 구렁이가 날 물고서 냅따 뛰고--- ! 하이구--- 하이구--- 어머니, 미안해요. 나, 삼 찾아 나왔다가 깜빡 잠이 들었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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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고 망태 매고 일어나 민요조의 삼 찾는 노래를 부른다.)
산은첩첩 물은 첨벙
산삼캐는 저처녀야
너의집이 어디길레
해가져도 아니가니
아흔아홉 고개너머
듣도보도 못할부모
함께가도 모를테니
알고프면 따라를와
(이마 위에 손으로 모자를 만들어 휘 둘러본다.) 터벅고개 아흔아홉을 넘었는데 보이질 않는구나. 늙은 우리 부모 행여 회춘할까 의원께 물어보니, 아흔아홉 고개 너머 꽃무늬 두루박힌 구렁이 화사가 구백구십구년 품은 삼을 먹이면 혹 그럴까--- 화사는 고사하고 지랭이도, 삼은 커녕 도라지 하나 뵈질 않는구나. 아이쿠, 높이 올라보니 아래가 아찔한 것이 오금이 저리고 소피가 급하다. (치마를 뒤집어 소피를 본다. 소피보는 아래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데 비명이 울리고 화사가 뛰쳐나온다. 기겁을 하고 넘어진다. 치마를 걷어부치니 다리를 감은 꽃뱀이 대가리를 획 내민다. 제 손으로 뱀의 머리를 놀려 말을 주고 받는다.) -엇 뜨거러!
-어이쿠!
-어허 제미럴, 뜨거운 것이 퍼부어 엇 뜨거러 감고 올라온 게 하필 아녀자 다리고, 눈 뜨자마자 본게 그거네.
-에그 부끄러워---
(치마로 얼른 살을 가린다.)
-벌써 다봤다.
-그놈 못나기는 되게 못나게 생겨먹었네.
-날 놀리는 사람은 또 첨일세. 내가 누군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누구냐?
-내가 화사다.
-올커니 너 잘 만났다.
-잘 만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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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살았다.
-남들은 날보면 모도 죽었다고 우는데 살았다니?
-우리 엄니, 우리 아비 이젠 살았다.
-네 부모 살는지 죽을는지 몰라도 자넨 죽었다. 내가 정정한 사내만 구백하고도 아흔아홉으로 잡아먹고 이제 음양조화를 맞춰 숫처녀 하나만 더 잡아먹으면 승천하는 화사다. 그런 중 마침 네가 나타나 참 잘 되었다.
-처녀가 아니면 어쩌는데?
-처녀가 아니면 먹지를 못한다. 오히려 평생 그녘 종노릇하게 된다. 그렇게 돼있다.
-거 안됐다. 난 유부녀다.
-끌끌 이미 다 봤다. 딱 보니 참 숯, 숫처녀더라.
(바리더기, 결연하다.)
-좋다. 날 잡아 먹어도 좋다. 대신, 승천하기 전에 삼일랑 우리 부모한테 주고 가라.
-오호, 자네도 삼을 탐하고 왔는가.
-늙은 우리 부모, 죽을 날 기다리는 우리부모 저승길을 이승길로 돌릴 구백구십년 묵은 삼을 구하러 왔지.
-늙었으면 죽는 게 당연하지 뭘 살릴려구---
-삼만 주면 날 먹든 말든 맘대로 해라.
-안됐다.
-뭐가?
-삼은 내가 사람 잡아먹으려 만든 거짓말이다.
-아이구 어머니, 아이구 아버지!
-자 이제 널 먹어야겠다.
-얘, 잠깐만 우리 부모 살릴 방도 찾지 못하고 죽을 순 없다.
-안됐지만 할 수 없다.
(바리더기, 잠시 생각한다.)
-내 잠시 우리 부모님께 하직인사나 하자.
-그래라. 나도 이땅에서 마지막인데 좋은 일 하자.
-고개 좀 돌리고.
-그러자.
(바리더기, 지팡이를 잡고 입술을 문다. 그러더니 제 지팡이로 제 처녀를 푹 찌르고 만다.
하혈이 인다. 화사는 놀라서 호들갑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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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쿠, 아이쿠,이게 무슨 짓이냐?
-이놈아. 난 이제 처녀 아니다. 넌 승천 다했다.
-구백하고도 아흔아홉해를 기다렸는데--- 난 어쩌냐?
-내 알 바 아니다. 다 애꿎은 사람 잡아먹은 죄지.
(화사, 커이커이 곡을 한다.)
-얘, 징그럽다. 다리 풀고 저편으로 가서 울어라.
-풀고 싶어도 못푼다.
-건 왜 그렇니?
-내가 그동안 사내들만 보다 아녀자 구멍은 처음봐서 몸이 굳어버렸다. 너를 잡아먹으면 몸도 풀리고 승천도 할텐데 이제 처녀가 아니니 낭패다. 승천도 못하고 굳은 몸 풀길 없어 다리 감고 이러고 살아야겠다. 감고 살다 어디 처녀라도 만나면 가르켜 다고.
-그러면 그 처녀를 잡아먹겠다는 거냐?
-척척일세. 해도 처자 허락이 떨어져야 먹지 내 멋대로는 못 먹네.
-에이 보기싫다. 들어가 있어라. (치마를 내리니 감쪽같다.) 꽃무늬만 화려한 늙은 구렁이한테 속아 시간만 보냈으니--- 어쩌까. 늙은 우리 부모 나 기다리다 그만 기함하겠네.
(화사가 머리를 내민다.)
-내가, 신통한 중을 하나 안다. 내가 중은 먹질 않아서 놔줬는데 머리에 돌을 얹고 앉았는 희한한 중이다. 그 중이 신통해 뵈던데, 혹 네 부모살릴 방법을 알지 모른다.
-그게 어디냐?
-저 고개 하나만 더 넘으면 된다.
-옳지!
(바리더기, 고개타령을 한다.)
고개를 넘는다
고개를 넘어
아흔아홉 고개
넘는다 넘어
남은 고갤랑
하나 더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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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모 병은 부모
살려보자 넘어간다
고개를 넘는다
백고개 넘어
자리를 봐라
자리를 잘봐
고개넘다 잘 살펴라
이 고개에 약 없으면
저 고개에 삼 있을터
천년 삼을 달여먹고
천년만년 살고지고
삼놓친다 자리봐라
자리를 봐라
자리를 잘 봐
(노래를 마치고 턱 돌아앉아 머리 위에 돌을 얹는다. 돌을 얹었으니 영락없는 돌중이다.) 기다렸읍지. 진즉 올 줄 알았읍지. 이 돌중이 열여덟 해를 기다렸읍지. 그렇습지. 처자의 나이와 같은 햇수입지. 생명이 늙는 것은 말입지. 세상에 미련이 많아져서입지. 큼직한 미련 두마리가 부모를 죽이고 있습지. 그 미련을 죽이면 그곳이 무상신선이 세계입지. 죽질 않습지. 내빨간 화살과 파란 화살을 줘야겠습지. 그 화살을 들고 뒤보지 말고 돌아가십지. 가다보면 지레 겁먹은 두 마리의 미련이 요귀로 나타날 것입지. 그 요귀들을 차례로 쏴버려야합지. 그러면 처자는 부모의 생명을 보겠읍지. (바리더기, 망태와 지팡이는 버리고 파랗고 빨간 활과 화살을 든다. 그리고 당당한 목청으로 호령을 하듯 소리하는 사설을 친다. 사설에 맞춰 몸재간도 부리는데 가히 호전적이다.) 내가 간다, 내가 간다. 주먹은 불끈, 다리는 펄쩍, 산천초목 휘휘 후루룩 지나도록 냅다 달려간다. 꿩이 놀라 푸드드득, 토끼라 놈 귀가 쫑긋, 여우는 캥캥, 멧돼지 꽥, 호랭이 어흥, 고개 놀라 계곡 되고 계곡 놀라 마루로 솟는구나.밤을 낮삼아 달리고 낮은 그냥 낮으로 여겨 사흘밤으로 사흘낮으로 침 삼키고 땀으로 목 축여 후닥닥- 저기 저것이--- 어이쿠야! (요귀 들을세라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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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화사야, 그 돌중이 말하던 두 요귀 중에 파란 놈이 나타났다. 너 거기 숨 죽이고 가만 있어라. 내 파란 화살로 쏘아 맞추리라. (시위를 당겨 쏜다. 살피더니 파란 활은 버린다.) 아따 그놈 나타나기도 소리없이 의뭇하게 나타나더니 죽기도 킥소리 없이 잘 죽는다. (북이 더쿵 때린다.) 어이쿠 이게 무슨 소리냐. 또 한 마리 나오나 보다. (사설을 친다.) 솔이파리 삐쭉뾰쭉,떡갈잎이 푸르르륵, 불길이 화륵, 바위가 쿵쾅! 그놈 요귀라고 장허긴 장허더만 내가 요귀잡는 활 가진줄은 몰랐더냐. 적궁에 철전 멕여 주먹이 툭 터져라 줌통을 꽉 쥐고 탁 때리니 기세도 좋다 수르르르르르르르 요괴 가슴에 턱, 그놈 요동하는 꼴 봐라. 앞으로 펄떡, 뒤로 떽떼구르르르 아이쿠 요귀 죽네-(숨을 돌린다.) 그놈들 잘 죽었다. (화사가 머리를 조심스레 내밀고 살핀다.) -밖이 왜 그리 소란하요?
-내가 우리 부모한테 가는 길 막은 두 요귀를 죽였다.
-거 잘했소. 화살은 다 썼소?
-다 썼다.
-그럼 갑시다.
-그래, 가자! 부녀 모녀가 상봉이요, 재회요, 상면이요! (무대를 재주넘듯 휘돌아든다. 거기가 제 집이다.) 어머니, 나왔오. 아버지, 나왔오. 이제 죽을 염렬랑 안해도 만년장수요!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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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참--- 어머니, 아버지- (그때 천장에서 인형 둘이 덜커덕 떨어져 메달린다. 인형은 석자 남짓하다. 한 인형은 수염 달린 할아버지요, 다른 것은 허리 구부러진 할머니인데 각각 파란 화살과 빨간 화살을 가슴에다 꽂았다.) 이! 이, 이 일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바닥에 누인다. 화살을 확인한다.) 이게 틀림없는--- 내가 쏜 화살이네! (바닥에 주저앉는다. 허망하여 기운이 다 달아났다. 말하는 것이 허공을 잡는 듯 하다.) 어이구우 어머니, 어이구우 아버지이. 내 손으로 우리 부모 죽였네. 아버지, 말 좀 해보시오. 이게 왜 여기와 꽂혔소. 어머니, 일어나 날 좀 안아주시오--- 참말 죽었나--- 혹 숨이 돌아올려나. (부모의 저고리를 허겁지겁 벗겨 왼손으로 목을 잡고 오른손으로 허리를 잡아 흔든다.) 할비요- 할비요- 할비요- (할아버지 위에 덮는다. 가슴에 귀를 댄다. 고개를 젖는다. 다시 할머니의 저고리를 흔든다.) 할미요- 할미요- 할미요- (할머니 위에 덮는다. 가슴에 귀를 댄다. 소식이 없다. 허랑하다.) 숨이--- 안 붙네--- 에그, 그예 죽었네! 이를 어쩌면 좋아--- 나 혼자 두고 가셨네--- (제 부모를 안아 든다. 만가를 부른다.) 어가리넘너 너흐넘어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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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허어허허
어넘차넘넘
이 세상에 올적으
백년이나 살까만으
어이가리넘
너허넘어넘
(부모를 한켠에 모두어 두고 돌아선다. 눈에 핏발이 선다.) 그 돌중놈! (쿵 덕쿵, 장구가 요란하다. 바리더기, 휘돌아 닥치니 돌중 앞이다.) 너 이놈아. 우리 부모 살려달랬더니 그나마 죽게 하더냐. 그나마 내손으로 내 부모를 죽이게 하더란 말이냐. 그러고도 살 줄 알았더냐. 내 부모를 죽였으니 그 죄억겁을 두고 갚아도 다 못 벗겠으니 너 하나 더 죽인다고 어디 티라도 나겠느냐. 너 돌중아 나한테 죽을 각오를 해라. (반응이 없다.) 이놈이! 돌처럼 굳었네. 돌을 머리에 얹더니 그예 돌이 되버렸네. (화사가 머리를 내민다.)
-저기---
-이놈이 지레 겁을 먹었나.
-저기 봐라. 편지 있다. (누런 종이에 글이 적혀 있다.바리더기, 읽는다.) 그래서 보살은 속 편해진 것입지. 생각해보십지. 양부모를 두고 생부모를 찾는게 얼마나 짐스러울 것인가 말입지. 잘된 일입지. 내심 즐거워야 할 일입지. 말입지,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다른 한 생명이 죽어야 합지. 죽어양 제대로 된 생명이 태어납지. 무릇 극복해야 할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여야 합지. 그것이 생명의 천리입지. 그래서 참생명을 얻을려면 거짓생명은 죽여얍지. 그래서 생명은 잔인합지. 진짜 부모를 만나기 위해선 양부를 죽여얍지. 암 죽여얍지. 처자가 죽인 노인들은 양부입지. 낳아준 부모는 따로 있습지. 이 나라 오구대왕입지. 공주만 내리 여섯을 낳다가 일곱번째도 딸이라 버려진 것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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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가 살아있으며 처자는 결코 생부를 안 찾아갈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습지. 그게 미련입지. 생부도 죽어가고 있습지. 무릇 부모란 다 죽어가게 마련입지. 모릅지. 혹 생부만이라도 살릴 수 있을지 말입지. 찾아가얍지. 찾는 길은 뒤에 일렀습지. 명심해야합지.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합지. 그것은 처자의 생명도 마찬가지입지. (편지의 뒤를 살핀다.) 내 이놈의 생명이 뭔지,숨 붙어 산다는 게 뭔지 끝까지 알아볼 게다. 내 살라고 부모 죽이고 형제 주기는, 이놈의 생명이란 게 뭔지 악착같이 살아볼거다. (화사가 불쑥 머린 내민다.) 잘한다.
(바리더기, 화사 머리를 탁 치니 화사는 들어간다.)
[장] 2장
(바리더기, 바닥에 앉아 치마를 걷어올렸다. 화사의 머리를 천으로 둘둘 말아 눈을 가린다.) -어, 어, 이거 뭐하는 거야?
-눈 감고 얌전히 있어라.
-눈을 왜 감겨?
-들으니 나한테 여섯 언니가 있다더라.
-어, 좋다. 구경 좀 하자.
-구경시켰다간 네놈이 우리 여섯 언니 다 잡아먹으라고?-그럼, 처년가?
-사내 한번 못 본 숫처녀라더라.
-거 좋다. 꼭 봐야겄다.
-들어가라.
-못 들어간다.
-한대 탁!
-들어간다, 들어간다.
[페이지] 011
(화사, 치마 속으로 들어간다. 바리더기, 일어서 한 숨 크게 쉰다. 고개를 들어 휘 둘러본다.) 으리으리, 번쩍번쩍! 보기 썩 좋다. 저 성 안에 내 생부, 생모가 있고 여섯 언니가 있으렸다. 근데 어째 이리 조용할까? (소리친다.) 이보시오- (대답이 없다.) 할 수 없지. 그냥 들어가는 수 밖에. (쓱 나선다. 그러나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머리를 싸안고 뒹군다.) 어이쿠야!
(치마가 이리 툭 저리 툭 불거지는게 화사가 밖이 궁금한 모양이다.)
-뭐야, 뭐야, 밖에 일났나?
-어이구야, 누가 돌을 던지네---
-거 성문을 막무가내로 열려니 그렇지.
-그럼 어쩌냐?
-기분나게 소리로 해봐라.
-소리?
-흥이 나야 문을 열지, 그냥이야 뻗뻗해서 열리겠어?
-그래 해보자.
(바리더기, 민요조의 소리를 친다.)
문문직아 문열어라
어느문을 열어주리
동남문을 열어주게
열쇠없어 못열겠네
그러랑저러랑 들어가세
(성문을 보니 그대로다.)
-열렸지?
[페이지] 012
-소용없다.
-그럼 춤으로 구색을 맞춰봐. (바리더기, 몸을 불린다.) 오방성문이 들썩들썩- (한바탕 요란스럽게 놀고 나더니--- ) 이크, 열린다, 열려.
(바리더기, 다소곳하게 앉는다.)
-괘씸하구나! 오구대왕 오구부인께서 병이 깊은데 노래와 춤이라니!-병이라뇨? 가서 봐야겠소!
(달려들다 뒤로 벌렁 나뒹군다.)
-아니 왜들 이러시오?
-네 이년! 네가 누구간데 함부러 들어가려냐?
-소녀가 이곳 오구대왕님의 일곱째 딸로서, 어릴적 버려졌다가, 돌중의 가르침대로, 나를 낳아주신 아버님 어머님을 찾어왔습니다. (큰절을 올린다. 엎드려 말하니 어디 성문에서라도 울리는 듯하다.) 네가 온다는 말은 들었다만, 험한 산중에서 자라 성 안의 예절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 염려되니라. 허니 너는 삼일동안 측간에서 살며 여섯언니의 의복을 지어올리도록 하여라. 그 악취를 이기는 것이 너의 인내를 시험함이요, 여섯언니의 의복을 지음은 너의 맵시를 보고자 함이다. 이것으로 네가 궁에서 살 일곱째의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할 것이니라. (바리더기, 일어나 석자 남짓한 한지와 가위를 든다. 측간에 앉듯 다리 벌리고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한지 여섯장을 겹쳐 오리며 흥얼댄다. 그 태도가 몰라보게 우아하기도 하지만 똥통 위에 앉은 터라 우습기도 하다.)
주인어른 대문을 두드려
은근은근 묻기를
큰 딸은 집에 잇나
사냥하러 나갔어요
[페이지] 013
둘째 딸은 있나
싸움하러 갔죠
셋째 딸은 있나
기도하러 갔어요
넷째 딸은 있나
결혼 구경 갔어요
다섯째 딸은 있겠지
아이들과 소풍갔죠
여섯째 딸은 있나
다락에 숨었어요
(한지가 다 오려진다. 사람이 사지를 벌리고 서있는 모습의 紙人形이다. 화사가 툭 튀어나온다.) 으아 똥냄새!
(바리더기, 화사를 쥐어박아 다시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일어나 지인형을 갈대 발에 하나씩 붙인다.)
그럴람 그렇구나
일곱째 바리더기는 있나
음, 있어요
가마타고 화등보러 가자
못가요
정말 못갈려나
머리비녀 없어서요
머리비녀 빌려주지
꽃신이 없어서요
꽃신도 빌려주지
비단옷 없어서요
아예 하나 지어주지
화등보러갑시다
(바리더기, 치마를 걷고 측간 위에 앉아 똥 ?는 시늉을 한다.) 여봐라, 일곱째 딸 가마에 태워라
예- 이-
(예-이-하고 힘주는 시늉하는데 요란한 장구소리 울린다. 바리더기 후닥닥 일어나 황급히 여섯 지인형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페이지] 014
이렇게 여섯 언니네들을 뵈오니 마음이 푸근하군요. 그런데 어째 아버님 어머님은 뵐 수가 없는지요? (고개를 세우고) 참견을 말라니? 어찌 그리 야박하시오. 내가 생부와 생모를 뵙자고 우리 양부 양모를 죽였소. 길에 채이는 돌도 이치가 커서 다 조화의 이유가 있는데, 사람을 죽게 할 지경이면 그 조화 연유가 오죽 하겠소? 아무튼 언니네들이 막네를 이쁘게 여겨서 어머니 아버지를 만나도록 길을 열어 주시오. (갑자기 장구소리 격렬해지면 바리더기 얻어맞는 시늉을 한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우리에 갇혀 매맞는 원숭이 처럼 표독스럽게 구른다.) 아구! 아구구! 왜 때리시오! 아 뜨거라! 아야! 아야야! 아니 이 언니네들이 실성을 하셨나. 악, 아구! 그만, 나죽소!(바리더기, 쓰러진다. 어느 틈에 여섯 지인형 중 하나를 이마에 붙히고 말한다. 그 말이 갖은 기교를 부리고, 하는 모양이 우아한 티를 잔뜩 낸다.) 측간 삼일을 견디고 우리 여섯형제 옷도 지었다만 병중인 부모 두고 춤 노래를 즐겼으니 궁에 드는 법도에 어긋나 궁에는 들어갈 수 없다. 더구나 사람을 죽이고 왔으니 그 죄가 따러 들어올 터인 즉 더욱 들여보낼 수 없지. 어머니 아버지 병이 심해 백약이 무효니 죽어 출상하는 날이나 멀리서 봐라. (이마에 지인형을 붙인 채로 흥얼대며 쓰러졌던 자리에 도로 눕는다.)
리리리릴리 리라리런루
니라리라리 릴리리리루
넌러리릴리 럴럴럴
(손을 들어 휘휘 내저으며) 하면 수영산 생명수는 먹였소? (벌떡 일어나 발을 쳐대고 흔들어 여섯 지인형이 술렁인다. 여섯 언니들이 깜짝 놀라 소란을 떠는 것이다.)
[페이지] 015
어이쿠야, 저, 저것이. (모여 수작한다.) 저것이 아무래도 우리 여섯 형제 재산을 뺏을 것 같으니 저걸 처치하자. 혹여 생명수라도 구해와 오구대왕, 오구부인을 살리면 우리야 여전히 딸로 만족해야 할 판. 저것을 죽이고 우리가 살자. (장검을 집어들고 칼을 뽑는다.) 막내야, 이리 와 놀아보기나 하자. 장검섬광이 번쩍번쩍- (한바탕 검을 후돌리며 춤을 춘다. 그러다 갑자기 멈춘다.) 헉! 저, 저, 저것, 치마 틈께로 얼핏 보이는 울긋하기도 불긋하기도 한 것이 무어냐?너, 가 들처봐, 어서,--- (여섯 지인형 뒤에 번갈아 서서 발을 흔들며 말하니, 저마다 나서며 말하는 것일터다. 여태까지의 품위를 잃고 대담한 것은 철벅철벅 나서기도 하고, 소심한 것은 발 뒤에 고개만 빼틀 내밀고 벌벌 떨기까지 한다.)
-헉, 꽃뱀이다. 꽃뱀!
-저 잡것, 사내가 얼마나 욕심이 났으면, 하필 다리에다 뱀대가리를 달아, 그 대가리로, 꽃무늬가 탐스런 그 대가리로, 색근인양, 밤낮 그짓인가 부다.
-아니다. 저 막내가 혹 계집인 줄 알고 버렸더니, 사실은 구렁이만큼이나 큰 색근을 달았던 사내 아니었을까?-언니들 저걸 죽이느니 차라리 저 대가리 타고 앉아 놀라요.
-얘, 막내야, 그거 타고 놀아보자.
(얼굴도 안 붉히고 음사를 푼다.)
둥뚱땅 법 중
두리뚱땅 법 쿵
널랑 멧돌 웃짝되고
날랑 멧돌 아래짝
떨구렁 찌컥
떨구렁 찌컥
[페이지] 016
둥뚱땅 법 중
두리둥땅 법 쿵
여섯 언니 여섯 자매
줄줄이 서설랑
떨구렁 찌컥
떨구렁 찌컥
-아이구야, 근데, 저 큰 것 타고 놀다간 내 그게 남아나질 않겠다.
-아니지. 저게 혹 사내면 우리 재산은 몽땅 저 애한테 넘어갈 터. 더욱 죽여야 겠다!(칼을 치켜 세운다.) 에라이 죽어라이 순!
(칼을 휘두르니 순식간에 암전. 찌르륵, 풀벌레가 운다.)
[장] 3장
(바리더기, 사지를 뻗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소리도 없다. 잠시 그러더니 부시시 일어난다. 지팡이를 짚어 흔들흔들 걷는다. 마치 꿈 속을 걷는 것처럼 고요하다. 오직 그녀가 걷고 있는 곳만 보일 뿐이다. 어딘지 알 수 없는 여행길이다.)
로리리런러 럴러리럴러
리리리런로 롤러리랄런
리리리 리리리 리리런리
로리릴럴러 럴러러럴러
러리리리럴 롤러러런러
리리릴 리리리 리리런리
(흥얼거림을 멈추고 걷던 것도 멈추고 주위를 얼핏 본다. 자근자근한 밤에 정적을 깨기 두려워 몰래 말하는 것으로 말한다.) 얘, 화사야--- 우리가 참 멀리도 왔다--- 그치--- 얼마나 걸었는지--- 내 뒤가--- 안보여--- 그치--- ? --- 너--- 잠이라도 자는 거니--- 응?
[페이지] 017
(바리더기, 치마를 들처 다리를 본다. 그곳에 있어야할 화사가 보이지 않는다.) 너--- 없구나--- 가면--- 간다구--- 말이나 하지---
(다시 걷는다.)
런--- 런--- 러리--- 런
런러리럴런 러러리론러
리리리런 리리리리너
러리런--- 러리--- 런
얘, 화사야--- 어디나 왔을까?--- 혹, 혹, 거기--- 설마 거긴 아니겠지--- 여기가--- 거기면--- 그럼--- 우린--- 죽은 게 되잖아--- 응, 화사야--- 너--- 듣는거니--- ?(다시 치마를 들처 다리를 본다. 역시 화사는 없다. 마치 처음 사실을 안 것처럼 말한다.) 너--- 없구나--- 어디갔니--- ? 가면--- 간다구--- 말이나 하지--- (다시 걷는다.) 러럴러런러 리리리루리 (그녀는 입을 움직이지 않는데 흥얼거림이 들린다. 바리더기, 놀라 걸음을 멈춘다. 소리도 멎는다. 바리더기, 다시 걸으니 어디선가 흥얼거림이 다시 들린다.)
-너로구나!--- 어딨니?--- 화사야---
-러럴러런러 리리리루리
(바리더기, 흠칫 놀라, 치마를 들추고, 허리를 구부려, 자신의 살을 통해, 자궁을 본다.) 너--- 거?구나--- 어떻게--- 거길 다--- 들어갔을까--- 내--- 자궁이--- 네 잠자리구나--- 우린--- 한 몸이구나--- 태기로다--- 좀 있으면--- 내가--- 너를 낳겠구나--- (바리더기, 허리를 세우고 웃음을 함빡 머금고 흔들흔들 걷는다.)
[페이지] 018
리릴리리리 리릴리리리
리린리리리 리리니린린
닌리리리루 린리리린리---
(걷기는 계속 걷고 흥얼거림이 잦아지기도 전에 그녀가 보이지 않도록 어두워진다.)
[장] 4장
(무대는 바리더기의 자궁 속이다.무대 한곳의 바닥이 들려 그 밑에 숨겨졌던 샘물이 드러난다. 샘물은 핏물같이 벌겋다. 이 장에서 연희자는 화사가 된다. 연희자는 화사와 같은 꽃무늬 천으로 만들어진 바지 저고리와 두건을 썼다. 두건은 두 눈과 입 부분에 표정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크게 뚫려있다. 결과적으로 화사가 바리더기의 자궁속에 뛰어든 꼴이다. 화사, 활기찬 소리에 뱀이 꿈틀대는 율동적 몸짓으로 농을 친다.)
랄라러럴 로리로리 롱롱
롤로리로 루리루리 랑랑
(혀를 낼름거리며 재밌어 죽겠다.) 흐흐흐, 나다, 화사가 여기 들어왔다. 처자 꼬라지 보니까, 당체 부모 만나기 힘들겠어. 내 도와줄테니까 가만 참고 있어. 하아! 들어오니 그 참 아늑하다. 이거 참말, 처자 자궁이 남근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먼저 들어왔으니 영광일세! 참! 나 좀 놀아야겠네. 왜 노냐? 그것이 길을 닦아놓겠다는 것이지. 내 미련한 허리로, 날렵한 대가리로, 자궁을 훑어놓아, 처자 자궁이 남근들에 익숙해지고, 남근을 기다리도록 만들 요량이란 말이지. 그래서 어쩌자구! 아들을 낳아! 아들을 낳아야 처자가 힘이 생겨. 그래야 여섯 언니 물리치고 부모를 만나! 허허허! 말란다고 내가 마나? 난 들어왔고, 또 우리 뱀이란 것이 피가 차디 찬지라, 내 몸뚱이로는 처자 자궁이 뜨거워 허리가 뒤틀 뒤틀! 그런 경운데 가만 있으라고 가만 있어지나.
(불림조로)
[페이지] 019
논다, 놀아! (빠른 박자가 튄다. 머리를 좌우로 놀리는데 뱀 혓바닥 놀리는 듯 하고, 허리를 뒤트는데 뱀이 먹이를 물고 목을 졸라 엉키듯 한다.) 아하 아하, 좋다! 그년 발악이구나! 찌르 찌르 찌찌르, 우허 우허! 아하하하하! 어떠냐? 다리가 배배 꼬이고, 숨이 턱 맥히지? 몸은 찌릿, 탁탁 튀기다, 맥이 쭈욱 풀리지? (이상한 감촉을 느낀다.) 어라, 이게 뭐야? (자지러지듯 몸을 뒤챈다.) 어 뜨거라! 어 뜨거워! 처음엔 오줌세레로 날 뜨겁게 하더니, 이번엔 이게 무슨 물이냐? 에헤, 도롱이라도 입어야 겠다. (화사, 비오는 걸 확인하는 양 천장질을 하고, 발을 쩍쩍 소리나게 떼는 시늉이다.) 아아아아아아, 흐이 참! 흐으 뜨뜻! 그넌, 물이 잔뜩 올랐구나!(머리에는 짚으로 만든 갓을 쓰고 어깨에 도롱이를 걸친다.) 준비 다 됐어! 길이 열렸다! 그 길이 어디로 열리는 길이냐 허면--- (화사, 샘물로 휘돌아 간다. 붉기도 붉은 샘물에 붉은 빛이 솟는다.) 샘물일세! 그 참 붉다.
(민요조로 소리한다.)
홍아 홍아 붉어라
홍아 홍아 붉어라
저건너 힘센 총각
물지게 어깨지고
[페이지] 020
손 담그러 온- 다
(잠시 기분에 젖는다. 그러다 문뜩 주위를 깨닫는다. 어허, 근데 이 처자가--- ! 왜 드러눕니? 내가 너무 심했구나! 까무러치겄니? 죽는 시늉은 말어. 너 죽으면 난 영영 승천할 길 없롽니. 그러고 또, 그렇게 길에 자빠졌다간 말같은 사내들 참지 못하고 달려들 거다. 달려드는 거야 좋지만, 아무 씨나 막 받으려구 하니? 조선 팔도 놈, 상놈 막놈 다 달겨들면, 그거, 아우 복잡해! (혼자 소리로) 흐흐흐, 그치만 내 처지를 보자면, 차라리 그편이 낫겠다! 아니 참말 그리 되면 좋아 죽겄다! (바닥을 찬다.) 일나! (반응이 없다.) 어허 참! 그년 비몽사몽일세. 할 수 없지. 참말 하는 수 없이, 처잘도울 요량으로, 처자 자궁에서 일 좀 할란다.
(물통없는 물지게를 어깨에 짊어진다. 손에는 갈고리를 쥔다. 갈고리로 물 속을 휘 저어본다.) 아따, 물 깊다, 기이이이퍼! 이게 자네 생명수네. 이제 사내를 받아들이면 그 정수가 이 곳에 모여 수정하고 어린 것이 생길 참이거든! 음, 참 보기 좋겄다. 내가 여기 앉아 그 구경할라고 기다리는 것이지, 암. (무대가 흔들리는지, 좌로 쏠리고 우로 쏠리는 중에도 균형을 잡느라 소란을 피운다.) 왔다, 왔어. 어떤 잡놈인지, 망할놈인지, 우악스럽게도 들이미네! 이놈, 대가리만 내놔봐라. 기다리다, 네놈 정수를 뿌리 끝까지 훑어내고 뽑아 내리다! 처자, 기운을 내! (바리더기의 기운이 전해진다. 불림조로 외친다.)
[페이지] 021
요동, 요동! 힘 좋다! 받아라, 받아! 배 받는다! (종이배를 들고 쏟아지는 무언가를 받느라 이리 저리 분주하다. 신바람을 내어 사설하는 소리를 친다.) 이배 쪼르르르르르, 저배 쪼르르르르르, 이배 저배 졸쪼르르르르르르. 물건이 들어온다. 물건이 들어온다. 붉은얼굴 거친 숨 몰아쉬고, 귀떨어지고 코 떨어지고, 대가리가 매끈매끈. 들락날락 들락날락. 숨 한번 크게 쉬어, 어히! 들락날락 들락날락 들락날락 들락날락 들락날락--- 어허이구 되기도 참 되다. 받아라 받아라, 힘센 장정 힘센 정수로만 골라 받아라. 배로다 배로다. 한 배 받아 천하장수, 두배 받아 일등공신, 세 배는 효자, 네 배 부자, 닷 배 놀자, 엿 배 하자, 잇 배--- 흐흐흐 고자! (한숨 돌린다.) 이만하면 아들 일곱은 문제 없겠다. 하하, 그거 모다 모아서 북두칠성 삼으면 딱히 좋겠냐?(샘물에 종이배를 띄운다. 그리고 휘휘 젓더니 갈고리로 눌러 물 속에 처박는다. 바리더기가 한 말 한 모양이다.) 말라구? 안돼! 살려야지라. 병든 부모. 어허, 가만있어. 이게 특효약이야. 보약 중에 보약이지.
(불림조로)
깊은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물지게를 흔들고 갈고리를 휘두르며 한바탕 격렬한 춤을 춘다.) 이봐, 내가 처자 효도하라고 명약 내보내네. 가랑이 밑으로 손 받치고 깨지지 않게 잘 받어, 잉! (갈고리를 샘물 속에넣어 휘휘 국자 젓듯 휘젓는다.) 아하! 뭐가 걸리는데! (낚시하는 품새로)
[페이지] 022
비할 일 자, 다 치우고! 자식으로 치자면, 자넨 자궁이 있으니 언제든 생명을 만들어 낼것을--- (뭔가 한 소리 들었다.) 아들? 쯧쯧쯧, 임자가 왜 버려졌는지 잊었어? 딸만 내리 여섯을 낳다가 혹시나 하고 하나 더 낳았더니 일곱째마저 딸이라고 내버린 거야. 그런데도 아들 타령이야? 콱 죽여버려야 속 편하지. 이 꼴 보고 속 시원할 일이지. (물지게를 척 들이밀며) 가랭이 벌리고--- 받엇! (순간적으로 암전된다.)
[장] 5장
(무대 주위로 발이 다시 드리워져있다. 태아 일곱이 주렁거리는 물지게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바리더기, 악몽에서 깨어나듯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물지게를 보더니 기가 차 입을 떡 벌리고 눈이 휘둥그레하다.) 하이구! 하이구! 잠만 잤다하면! 어쩌누! 내가 참말, 일 저질렀네! (기운이 쑥 빠진다. 일곱 아들들을 위로하여 소리를 풀어놓는다.)
넋이야 넋이야
넋이로구나
녹양신사 저 넋이라
넋이란 넋반에 담고
신에 신체는 관에 담어
세상에 나오신 망제님
어이 놀고나 갈려나
(그러다 불끈한다.)
[페이지] 024
화사, 이놈!
(치마를 쓱 걷어 부친다. 다리에 화사가 감겨있는데, 그것이 축 늘어져 있다.) -너 왜 이러니?
-좀 쉽시다.
-이런 짓 하고, 뭐 맘이 편하다고 쉬어?
-내가 안했음 처자가 했을 일!
-하!
-처자 도울려고 대신 한 것.
-하아!
-치마 좀 내려, 나 쉴란다.
-기왕 내친 길, 끝까지 봐!
-쉴란다. 우리 좀 쉬었다 하자.
-저 피 보고 쉬어? 못 쉬어. 저 핏덩이들, 내 부모가 먹는 꼴 보기전까지 못 쉬어! 자꾸만 자꾸만, 내 살같은 목숨들 죽이는 우리 부모, 어떤 화상이어서 자꾸만 생명들 죽이려는지, 그 얼굴 봐야 내가 쉬어. 그전이야 복창이 터져 저려 쉬질 못해. (화사, 딴청을 부린다.)
-아니, 근데! 허허 참참, 그거 참참, 참나무 소나무 참솔참솔. 처자 언니들은 뭐 하나? 부모 잘 모시고 있나?(갈대발이 뒤집혀 그 뒤를 보인다. 그곳에는 여섯 개의 지인형이 붙여 있다. 연희자가 흔들흔들 그 뒤로 간다. 가서 진인형의 뒤에 선다. 지인형들을 흔들어 대니 여섯 언니가 제각기 세간을 나눈다.) -명줄이 고래심줄처럼 질기던 우리 부모, 이제야 죽네.
-언니네야, 이제 늙은 애비 에미 죽었으니, 세간이나 갈릅시다.
-갈라야지. 내가 제일 언니니 금붙이 은붙이 쇠붙이는 다 나 갖을란다.
(세간 가르는 소리를 한다.)
세간을 가른다 세간을 갈러
온갖 세간 다 가른다
오동장롱 반다지
자개 함롱 귀다지
[페이지] 025
개다리 소반 온갖 전답
천석지기 개똥밭
백가구 종문서
세간을 가른다 세간을 갈러
온갖 세간 다 가른다
(남은 것 없나 살핀다.)
-다 가르고 바가지 하나 남았는데 이건 누가 갖나?
-그거 언니들 보다야 어린 내가 더 필요하지.
-너희들 보살피느라 고생한 내가 가져야지.
-그건 내가 아끼던 거니 내꺼요.
(지인형들이 싸우느라 수선하다. 그러다 그만 바가지가 깨진다.)
-아이쿠! 기왕 깨진 거 조각이라도 갈러 가집시다. (갈대발 사이에서 빠져나와 바리더기가 된다.) 하이구, 기맥혀라! 부모 죽는데 세간 다툼이라니! (바리더기가 들어서려는데 지인형들이 푸르륵 떤다.) 또 방해요? 이번에는 영약을 구해왔으니 길을 열어줘요. 이 가랭이에 묻은 피요? 그거 다 영약 만드느라 묻힌 거요. (불처럼 화를 낸다.) 그럼, 앉아서 우리 부모 죽기만 기다리까요? 내가 부모 허락없이 일곱 남자를 알아서, 일곱 아들 죽인 것이 다 눅 때문인가요? 이 피가 다 영약이요. 우리 부모 살 길이란 말이요. 피도 못 묻히는 언니들 보다야!(지인형 하나가 푸르륵 떨어 말을 한다.) 소용없어. 벌써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어. 벽돌 열겹, 돌 스무겹, 흙 마흔겹 쌓아, 무덤 만들었지!(화사가 나선다.)
[페이지] 026
걱정없어, 죽은 자도 살아나는 생명수인걸. 비켜라, 써글년들! 나, 저것들 잡아먹으면 어떠까? (바리더기, 긴 칼을 집어든다.) 언니들, 비키지 않으면 베겠소. (지인형들, 더욱 푸르륵 떤다. 두려움의 소리인 양 해금이 비명이다.) 그러니, 내손에 죽어야겠소! (칼을 휘두른다.) 패륜이오! (칼을 휘두른다. 지인형들이 차례로 베어진다.) 한갓 여자라는 꼬락서니로! 어머니, 아버지 만나러 숱한 목숨 죽이오!(마지막 지인형에 칼을 꽂고 손을 놓는다. 주춤 제 정신 차리니 숨이 턱 막힌다.) 하이구 이런! 내가 또 사람 죽이네. 어쩌라구 자꾸만 사람 죽이나. 이러다 이 약으로도 부모 못살리면--- 그 꼴을--- 그 꼴을 --- 어따, 어따, 참말!(가슴에다 손으로 망치질을 한다.) 바보같은--- 왜이리, 속이 탁 막히누! (마음을 독하게 고쳐 먹는다.)
-화사야, 여기 처녀 여섯이다.
-참말--- ?
-하나 남김없이 다 잡아먹어.
-진정--- ?
-얼른!
(바리더기는 등을 돌리고 외면한다. 다리에 감긴 화사만이 신이 나 덩
[페이지] 027
실덩실 춤을 추며 소리다.)
어흐하 승천이다
처녀먹고 승천이다
으흐 뜨거러!
(암전된다. 해금이 현란하게 울리고 화사의 흥소리가 요란하다.) 랄라러럴 로리로리 롱롱 롤로리로 루리루리 랑랑 (화사의 흥얼거림이 멀어진다. 다시 밝아지면 여태 가지고 놀았던 물건들이 바닥에 죽 늘어져 있다. 마치 폐허처럼 어수선하다. 안개가 흐른다. 바리더기, 죽대에 불을 붙인다. 무대는 바리더기의 부모가 묻힌 무덤이다. 관을 상징하는 조명빛이 직사각형을 만들어 바닥에 강렬하게 박힌다. 바리더기, 그 앞에 앉는다.) 나요. 일곱째 바리더기요. (대접 두 그릇을 양 손에 하나씩 들어올린다.) 자, 일곱 손자 푹 고아 만든 생명수요! (대접 둘을 앞에 놓는다.) 이거 자실라요? 일어나 한번 맛이라도 보실라요? 내가 얼굴도 못본 두 어른 때문에 몹쓸 짓 참 많이 했소. 어쩌자고, 두 분 살자고 여럿 죽이오?(대접을 빼앗듯 되가져 온다.) 그 생명 다했으니, 그냥 그렇게 돌아가시오. 애써 사실려다 여섯언니들 다 죽었소. 일곱 손자 핏덩이로 죽었소. 날 키운 할비 할미 죽었소. 그러고도 굳이 살아나고 싶으신가요?(바리더기, 대접에 담긴 생명수를 바닥에 쏟아버린다.) 그냥 그 관 속에서 천년만년 썩으시죠. 살아있으면 여럿 죽일 목숨, 어머니 아버지 죽어있으니, 이제야 내가 살 길이 보이는 걸!
[페이지] 028
(어디선지 화사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요! (바리더기, 반갑게 웃는다.)
-잘갔어?
-승천했소.
-잘 됐어. 잘 됐어.
-와서 보니 알았소. 댁네 자궁 속이 내 승천의 감로였어. 그 안에 들어서곤 아쿠 죽었다 했더니 그게 살길이었을 줄--- 헌데, 많이들 죽더군! 클클클--- (바리더기, 멍하다.) 그러니--- 내가 어미고--- 내가 아빈 것을--- 다 죽이고서야 난 나를 찾았구나! (소리조로) 어허이, 더질 더질--- (재채기 한번 크게 한다.)
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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