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회 독서모임 2.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서경식, 노마 필드,카토 슈이치 공저
최시내: 오늘 함께 할 책은 교양,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책이 두껍지는 않지만 ‘교양’이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오늘은 1장과 2장을 토론내용으로 해볼까 합니다. 형식은 지난번과 같이 자유롭게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전홍진: 이 책에서 프리모 레비라는 작가를 소개하는데 아우슈비츠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한 ‘이것이 인간인가’에 대한 책에 대한 언급을 보고 나쓰메 소세키에 이어 책을 읽고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더불어 독서모임의 흥미로운 점이 이런 점이 아닌가 싶었구요. 이 모임이 다시금 저에게 청년시절의 독서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운 마음도 있네요.
최형묵: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는 설교시간에도 한번 얘기 했는데... (웃음)
사실 이 책은 대학 신입생들에게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을 이야기일 듯해요.
전홍진: 그런점에서 대학 초년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교양이라는 과목이 어떤지 궁금하네요.
최시내: 제 생각에는요. 대학에 가면 공부다운 공부도 하고 고등학교때와는 뭔가 다를 그런 공부를 할 줄 알았어요, 물론 제 마음 상태도 그랬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지 않더라구요. 교양과목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니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많이 달랐구요. 한 학기를 마친 지금 대학이 재미없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대학 1학년 1학기인데 주변 친구들이 벌써부터 취직 이야기를 해요. 한번도 취직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구요. 대학때는 순수하게 배우고 싶은걸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속에 있으면 제가 많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만 구시대적인 것 같은 느낌도 받구요. 그래서 이 책 읽으면서도 교양이 이렇게 중요한간데 우리가 뭔가 잘못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안정규: 저도 기대에 찬 마음으로 대학을 갔어요. 주로 제목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 수업들을 교양과목으로 신청하구요, 댄스 스포츠, 스포츠 마사지 이런거요. (모두 뭇음) 그러다 어쩌다 점수를 채우기 위해 신청한 수업들을 들으면 수업시간에 들어가지 않기도 하고 자게되더라구요.
전홍진: 저는 전부터 교양이라는 말까지는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가치에 대해서는 줄 곧 생각해왔어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에 대한 거죠.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었구요. 이 책을 읽은 후 교양이란 결국 제가 생각했던 가치의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였지만요.
저자 카토 슈이치가 다이너마이트를 예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이 기억이 나는데요. 노벨이 다이너마트를 발명했을때는 군사나 살생의 목적에서 만든 것이 아님에도 분명한데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전쟁을 일으키고 살생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학문의 기초는 교양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거죠. 인간의 가장 뿌리는 교양이라는 거예요. 자연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인문학적인 토양. 즉 교양이 없으면 노벨의 다이너마이트처럼 본래 의도인 인간을 풍요롭게 하던 것을 벗어나 인간을 죽이는데 사용하는거죠. 카토슈이치 박사 역시 교양이 없으면 언제고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든 모든 것이 인간을 죽이는데 사용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교양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어요. 그래서 가치중심, 인간이 살아가는데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형묵: 교양은 요즘 말로 인문중심이라고 하지요. 배우는 사람들과는 거꾸로 교양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강의실에 한 백오십명이 앉아있어요. 삼분의 이는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고 들어가요. 학생들에게 요청하는 건 공부하는 학생들을 방해만 하지 말라는 거예요. 더욱이 기독교 과목이기에 학생들을 전도하거나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아예 잠을 자라는 거지요. 하나의 고전으로서의 성서, 또는 인류의 보편적인 정신문화유산으로서의 접근임을 설명해요. 그것도 일종의 교양이니까요. 놀랍게도 앞자리의 삼분의 일은 눈이 빛나요. 저는 그 아이들 보고 수업하죠. 그 학생들이 과제를 잘 해서 점수를 잘 받기를 바랄뿐이지만요. 학생들이 많아서 일일이 그 학생들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성적평가가 끝난후의 일이예요. 정말 귀찮을 정도로 성적문의 전화가 와요. 거기에서 느껴지죠. 학생들이 내용보다는 성적, 취업에 관심이 있구나 하구요.
열심히 했는데 왜 점수가 이렇냐는 식의 문의는 그나마 나아요. 장학금 받아야하고 취업해야 하니까 점수 막무가내로 점수를 올려 달라는 학생도 있어요.
정승희: 교양이 없어서 그래요.(웃음) 참 챙피한 일인데 그게 부끄러운 일인줄 몰라요. 저는 애들이 그런식으로도 성적을 올린다는 걸 학교를 졸업할 때 쯤에야 알았어요.
최형묵: 교양을 다른 말로 이야기 하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한 가치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일텐데 그런것은 아예 찾아보기 어려운 세대가 되어 버렸다는게 참 아쉽죠.
나영주: 저는 학생들 뿐 아니라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님들의 양육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아이들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전혀 주지 않으니까요. 좋은 학교에 보내기 급급할 뿐이죠. 결국 부모가 사회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학교 공부가 단순히 상급학교를 가기위한 또 취직을 위한 관문일 뿐이니까요. 저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회에 문제가 더 크다고 봐요.
최형묵: 학생들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탓할 수도 없고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죠.
나영주: 저는 이 책을 보면서 일본지식인층을 새롭게 봤어요.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이 전쟁이 끝냈을 때를 해방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에게는 지배자였던 그들이 왜 해방이라는 표현을 썼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죠. 해방은 우리에게만 해당 되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구요. 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우리를 억압하고 지배했던 사람들로 인식해 왔던거죠. 일종의 피해의식이기도 했구요. 이 책을 통해 일본에도 우리처럼 지배층이 아닌 의식 있는 지식인들에게는 그들이 독재자였고 가해자였던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있는 것처럼요. 저로서는 새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지요.
최형묵: 그렇죠. 그쪽에서도 그 체제에 동의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해방이죠. 여기 이 책에도 ‘해공선’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일종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 할 수 있겠죠. 작가가 고문으로 피살되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 책이 요즘 일본에서 최고 인기라고 해요.
세계에서 경제가 발전 한 나라들 중에서 그래도 일본이 격차가 심하지 않은 나라로 평가 받았었죠. 한국도 소득면에서 그런 평가를 받긴 했지만 부동산에서 그 격차가 심하지만요. 아무튼 일본 역시 경제적 격차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합니다. 도쿄 한 복판에서 사고가 종종 발생하는 이유도 그렇구요. 비정규직과 실업 또 은둔형 외톨이가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과거의 해공선과 같은 소설이 요즘 들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공산당에 대한 사회적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구요.
또 앞서 나영주 교우님의 의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 또한 종종 일본 놈 미국 놈이라는 표현을 씀니다만 사실 그건 국가와 그 지배체제에 대한 문제이지. 전체가 될 수는 없구요.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 그걸 잘 구분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겠죠.
전홍진: 코바야시 타키제이가 해공선의 작가이죠. 참 흥미로운 책이예요. 이것이 인간인가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이런 소수의 작가들이 있어 후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걸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네트워크도 발달되어 있기에 연대를 통해 연결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저자 서경식이 말하는 것처럼 안과밖으로 연대해야 한다는 거죠. 교양이라는 큰 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자와 나누고 공감하는 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혼자 교양을 쌓고 끝나는 건 마치 갑속의 칼과 같지요.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누는 것도 일종의 연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난주: 그러면 보통 교양이 실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이 되지만 사실 굉장히 실용적이기도 하잖아요.
전홍진: 카토 슈이치가 냉전시대 소련을 방문한 일화가 나오는데 당시 미국과 쌍극을 이루며 그 힘을 겨루었던 소련이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라이타조차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요. 달나라까지 갈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있으면서도 정작 민중의 삶은 그들의 과학적 업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는 겁니다. 이건 뭔가 말이 안 되는 거죠. 소수만이 누리는 과학기술. 전 이런 것이 교양이 없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군사비용을 지출하면서도 정작 실생활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해결되지 않는 북한을 봐도 알 수 있구요. 막대한 자본을 들여 군사무기를 만들고 그에 대한 수요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 저는 이 모든 것이 교양의 부재에서 왔다고 보여집니다.
정승희: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이념이나 사상의 차이가 아닌 결국 돈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전쟁시장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결국 인간은 더 많이 가지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나누며 살자는 두 생각 사이에서 선택해야하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전홍진: 결국은 역지사지로서 상대를 대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과정없이 무조건 내가 더 가지겠다는 식의 태도는 결국 나 자신을 황폐하게 만드는거죠. 결국 돈도, 사람도 잃게 되는거구요.
최형묵: 예전에 이런 말이 있었죠. ‘도덕성이 밥 먹여주냐’ 실제 밥을 먹여 주죠. 도덕성이 없으면 몇사람은 배부르겠지만 나머지의 다수는 굶어죽게되죠. 하지만 도덕성이 살아있고 정의가 살아있으면 모두가 사는거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아마티아 센이 강조하는게 그거예요. 제가 논문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한 분이죠. 그분이 말하길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곳에서는 극단적인 경제이익이 없다는 거예요. 경제발전에 민주주의가 좋으냐 안좋으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요. 흔히들 알고 있기를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해야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지요. 그중에 한국이 포함되구요.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그 반대사례가 많구요.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건 서구의 나라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구요. 하지만 그 관계는 복잡해서 한마디로 설명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건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나라에서는 극단적인 경제위기를 겪지는 않는다는 거죠. 극단적인 기아현상은 민주주의가 확립되지 않은 권위주의체제의 나라에서 주로 발생하구요.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해요. 인간은 이기적이다. 경제동기 역시 이기적 동기에서 움직인다. 하지만 아마티아 센은 조금 다르게 말해요. 그는 인간이 이타적 이라고 하지요. 인간의 이타성은 현대 경제학으로 설명 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진화 생물학자들도 이를 뒷받침하죠. 이타적일때 공동체가 훨씬 더 잘 유지되고 구성원의 생존율이 더 높게 나온다구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가치고, 도덕이고, 윤리가 되겠죠.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윤리가 밥 먹여 주느냐. 도덕성이 밥 먹여주느냐’얘기 했죠. 그리고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그런 생각으로 이명박에게 투표했구요. 하지만 지금 경제 상황을 보면 나아진거 있나요?
나영주: 자기 발 등을 찍고 있는거죠.
최형묵: 그런 점에서 보면 윤리나 가치가 실생활과 물질적인 생활과 떨어져 있는게 아니예요. 그런 가치가 살아있어야 굶주림의 문제가 해결되는 거구요.
전홍진: 실생활에서 우리가 살다보면 계약이나 이런 게 참 불공평해요. 계약의 관례라는게 이미 기득권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게 사실이구요. 그런 불평등한 계약을 못하게 사회적으로 제도화시키고 그런 가치가 확산된다면 그게 바로 교양이 아닐까요. 내가 당장 돈을 버는 건 아니지만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니까요.
최형묵: 교양의 실용적인 면을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지만 교양과 실생활이 무관하지만은 않다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교양이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현실적인, 물질적인 삶을 변화시키고 개선하는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면 될 듯해요.
김난주: 가치를 기득권자에게 위임하는 건 우리가 무언가 그들로부터 얻는 게 있기 때문이잖아요. 그게 뭐길래 우리는, 우리사회는 여전히 그러고 있는 걸까요?
최형묵: 중세사회의 봉건제도는 권한을 위임함으로서 보호를 받았었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얻는게 없다고 봅니다. 대의정치로서는 민주정치가 실현될 수는 없구요. 그런 점에서 저는 대의정치는 깨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표 얻을 때만 머리 조아리지 그 다음엔 아무것도 없잖아요. 이게 대의 정치의 한계가 아닐까 싶어요.
김난주: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보자면 물론 극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테레사 수녀의 날개 아래서 먹고 자고 또 편안함을 누렸던 그 사람들은 왜 자기 스스로 일어나려 하지 않았을까라는 거예요. 결국 그 점이 테레사 수녀를 성녀로 만들고 노벨 평화상을 받을 수 있게 해줬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라는 거죠.
정승희: 저는 인간의 노예근성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의존성이요. 저 역시 자주 제 안에 안주하고 싶고 가만히 있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일부러 바지런을 떨지 않으면 미루고 싶은 일이 태반이구요. 또 개인적으로 저는 성공의 의미를 떠나 하나님이 제게 주신 달란트를 다 쓰고 죽고 싶어요.
지난주에 정경록 교우님께 자활센터 운영에 대해 여쭤봤어요. 프로그램운영이며 성과에 대해서요. 그런데 놀랍게도 잘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기 힘으로 뭔가를 배우고 또 자신의 노동력의 대가로 살아가는 것보다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수급을 더 바란대요. 일 안하고 그 기초수급 받고 사는 걸 더 원한다는 거죠.
김난주: 아까 승희씨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다 쓰고 죽고 싶다고 했는데 아마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마음이 있을거예요.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그런데 그걸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잃어버렸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그렇다면 이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냐는 거죠. 많은 사회 운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교양이 다시 화두가 돼야 하겠지만 이런 암담함 좌절 굉장히 많이 느껴요, 여기 책에서도 나와 있지만 참 어려운 일이구요.
하지만 우공이산이라고 하지요. 나에게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만들어져 가는 거니까 그렇게 가는 거지만 답답하고 힘들 때가 많이 있는 게 사실이예요.
정승희: 그렇다면 스스로 일어 날 수 있게 도와주는 그 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궁금해요. 각자 힘든사연이 있겠지만 충분히 일어설 수 있음에도 홀로서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와준다는 것이 정말 그 사람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돕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거 같아요.
김난주: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요. 혼자 밥 숟가락을 들고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지랖이 넓어 씹어서 입에 넣어 주면 안 된다구요. 굶을까봐 아플까봐 철이 들어 혼자 해야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입에 밥을 떠 먹여줘요. 그게 나눔이 아니라는거죠. 아까 테레사 수녀님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의도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한 경과 영향도 중요하다고 봐요.
최형묵: 전 답은 아니지만 요즘 엉뚱한 프로그램들이 있잖아요.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강좌 같은. (웃음)그렇게 무력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강좌를 듣고 확확 변하는 놀라운 결과들에 좀 주목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전홍진: 그와 비슷한 경우들을 이 책에서 보면 프레모 레비의 아우슈비츠의 경험과 같은거죠. 다른 사람들은 빵 한 조각 더 먹으려 할 때 프리모 레비는 동료에게 단테의 신곡에 나와있는 시를 읊어주며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해요. 이게 도대체 뭘까? 하는 거예요. 결국 인간의 삶과 교양이 뿌리 깊게 연결 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봐요.
아까 김난주 교우가 이야기한 테레사 수녀 밑에 있었던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는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면이 있다고 봐요. 자율성도 있고 타율성도 있죠. 결국엔 교육을 통해 타율적인 존재를 자율적인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자기성찰의 능력도 키우구요. 근데 그게 테레사 수녀의 한계라고 보여줘요. 한 사람이 모든 걸 할 수는 없지요. 일단 급한대로 의식주가 해결됐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줬어야 하는데 테레사 수녀는 그게 안됐던거죠. 이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과 대조적이예요. 운명에 순응해서 평생을 어부로 살 뻔 했던 그들을 예수님은 제자로 부르시죠. 당장의 빵이 아닌 깨우침이었고 다시 말해 교육이었던 거예요.
안정규: 다른 사람보다 십분 더 자면 뒤쳐지는게 현실인데 자신을 성찰 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을까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다른 교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구요. 사회는 이미 이기주의를 부추길대로 부추기는데 이런 사회에서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만 낙오자가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김난주: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바보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그 분은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구요. 그렇다면 이 바보와 안정규 선생님이 말하는 그 바보는 차이가 뭘까 라는 궁금증이 생기네요.
안종규: 과연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얼마나 갈까 하는 거죠.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은 것도 극단적으로 말하면 잘 먹고 잘 살자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목구멍이 포도청이 되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펴니까 이제야 반대하는 거잖아요. 말도 안 되는 서민정책을 펴는데도 여전히 민중은 우매한 모습을 보여요. 그런 사람들을 언제 다 깨우쳐 주나 그런 생각도 들구요. 그래서 회의가 들기도 해요.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일단은 악착같이 돈을 벌고 식구들 먹여 살리고 그 다음에 정치에도 관심을 가지는게 맞지 않나 라구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저처럼 생각 할 것 같구요. 답답한 마음에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선희: 안 선생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게 정말 절박해요.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우리 세 식구가 먹고 사는게 조금이나마 채워지지만 그렇게만 산다면 살아가는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한다면 남의 걸 훔쳐서도 먹고 살 수 있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내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 살아가는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게 교양 있는 삶이구요. 조금 느리게 갈 뿐이지 그런 삶이 인생의 낙오자는 아니니까요.
안정규: 저는 그래요. 제가 지금 신학을 하니까 나중에 가난한 목사가 된다면 제 아이가 생일인데 케익하나 못 사주는 입장에서 아이 친구는 빕스에서 생일파티를 한다는 이야길 들으면 기분이 몹시 나쁠 것 같아요.
김난주: 제가 생각하기에 그 해결책은 빕스 갈 수 있는 아이 친구와 관계를 끝는 것입니다. (모두웃음)
전홍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을 다 부정하고 교양만 추구할 수는 없지요. 먹고 살기 위해서만 산다고 한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죠. 물질적인 걸 다 포기하는게 아니라 조금 더 그것을 넘어서보자는 거죠.
김난주: 사실 나이만 많이 들었을 뿐이지 제대로 철들은 어른이 몇이나 되겠어요. 중산층이 느끼는 자괴감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상류층이 만들어 놓은 소비문화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거잖아요. 그걸 견디지 못해서 어떡해서든 그 문화를 따라가려 하구요. 그것조차 못하는 먹고 살기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을 비하감에 빠지게 만드는게 먹고 살만한 우리들이구요. 우리는 매순간 문화를 선택하는 기로에 놓이는거죠. 그런 문화를 고착시키는데 일조할것인가, 아니면 먹고 살기조차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이 두가지 선택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어떨 땐 타협하면서 살고 있죠. 저 역시 그런면에서는 철부지 어른이구요.
최형묵: 아이가 어렸을때 그런 질문을 해요. ‘아빠 우리 가난해 부자야?’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가난은 아니라는 뜻도 되죠. 확실히 가난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질문도 하지 않았을테니까요. 점차 자라면서 보는 눈이 달라졌겠지만요. (웃음) 저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결코 부유하지는 않다 하지만 너희들은 누리는게 많다라고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도 해주구요. 글쎄요. 자식의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경제적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처지와 환경이 참 많아요.
나영주: 맞아요. 경제적인 것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 하거나 아버지를 부끄러워 하지는 않아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잘 되어 있었다면 그럴리는 없다고 보구요. 우리 아이들에게 브랜드 신발 한번 사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버릇없이 자신들을 키워주지 않은것에 대해 감사해 하고 있구요.
안정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저 역시 신학교 일년 이후부터 고민해왔던 바예요. 이대로 목사가 돼서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히 살지는 못 할거 같고 그래서 저는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도 해요. 아이입장이 아니라 부모된 입장에서 제가 자식들에게 남보다 못해주면 마음이 너무 안좋을거 같아요.
김남주: 아까 목사님도 말씀 하셨다시피 경제적인 부분이 아닌 다양한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매스 미디어가 집중하고 있는 것만을 기준으로 삼고 결핍감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는 것 이것이 우리가 우매함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인 것 같구요. 결혼하고 자식을 안낳겠다고 하는데 힘을 독점하는 사람들과 맞짱을 뜨려면 머리수라도 되야해요. 교인들이 함께 길러 줄테니 애들 많이 나으세요. (모두 웃음)
최형묵: 교양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소양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은 세계를 보는 눈이라고 보거든요. 빕스 못가봐서 그 욕망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죽도록 일해도 빕스 못 가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진정한 교양의 눈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면 그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숙제가 되야 겠지요. 내가 설령 거길 가도 나 말고 못가는 사람들은 계속 있어요. 그런 현실을 볼 수 있는게 교양이 주는 능력이라 할 수 있구요.
김난주: 맥도날드의 실상을 알면 돈이 남아돌아도 안사먹지요. 한 끼를 굶을지언정 먹지 않겠다는 생각이 분명 우리에게 있다는거죠. 우리가 알고 느낀 것만 실천하려고 마음먹어도 그런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죠. 우리에게는 선택 할 수 있는 힘이 있구요.
정승희: 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 역시 우리안에 힘이 없다면 날마다 쏟아지는 매스컴의 미의 기준, 부의 기준에 계속 휘말릴 수 밖에 없을거 같아요. 또 거기에 동조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다 듣고 있노라면 제가 누구인지도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결국 그 힘은 나를 돌아보는 데서 나오구요. 때때로 나를 성찰하고 고민하는 힘에서 내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를 알고 그리하여 나의 길을 걷고 나의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시내: 네, 긴 시간 모두들 함께 해주셨는데요.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네요. (웃음)다음 이 시간을 기약하며 오늘 순서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슴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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