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학산 개암 깨무는 소리
김난주
먹고 일하고 놀고 사랑하는 것이 삶이라면, 숲은 그 모든 삶을 가장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어쩌랴. 사람들은 산골짜기를 떠나 도시에서 많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을 택했으니. 경제적 삶을 살았으나 경제문제로 시름 깊은 요즈음, 최고 자산이라 할 수 있는 몸과 맘을 잘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동안 웰빙 추세로 다방면의 생활문화가 바뀌었고, 웰빙의 중요 공간인 숲도 계속 가꾸고 있다. 운동기구를 설치하고 산책로를 정비하여, 지치고 힘들 때 언제라도 숲에서 건강을 가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등산이라기보다 산책 수준이기는 하지만, 한두 시간 걸어서 유산소운동 등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도시인에게는 중요하다. 숲이 주는 정신적· 심리적· 육체적 건강 유지와 치유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근린형 공원 숲에 대한 만족도보다는 산악형 도시 숲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다고 한다. 시설 위주로 조성되는 인공 공원보다는 자연과 문화자원이 풍부한 산악형 숲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힘을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태학산 자연휴양림의 산책로와 임로는 현대인에게 참 든든한 건강지킴이다.
태학산은 풍세면 삼태리, 광덕면 매당리, 아산시 배방면 수철리의 경계다. 신라시대 진산 대사가 태학사를 창건했기 때문에 태학산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산의 실제 이름은 태화산(太華山)이었다. 태학사는 해선암으로 바뀌었다가 폐사되었는데 1931년에 광덕사에서 토불을 모셔와 불당을 다시 지었다.
태학산에 1km 정도 들어가면 자연휴양림이 있다. 마루 몇이 품을 넓게 펼치고 있어서 무리지어 앉거나 누워 놀 수 있고, 마음은 솔 향 따라 나무 꼭대기에 올라앉아 쉴 수도 있다. 또 다른 편의시설인 숲 속 통나무집과 야외무대, 놀이공원을 지나 산책로를 약간 가파르게 올라가면 초등학생들이 벼를 키우는 논도 한 뼘 있다. 물이 고여 있는 곳에는 습지식물도 산다. 더 올라가면 법왕사(대한불교조계종)와 태학사(한국불교태고종)가 나란히 있다.
법왕사 안에 천연동굴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찬 어둠에게 따스함과 밝음을 주기 위해 자기 몸을 사를 줄 아는 초가 있어서, 고요한 눈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촛불처럼 삶을 사랑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절에서 조금 더 오르면 크기가 7.1m나 되는 마애불(보물 제407호)이 서있다. 고려 후기에 돋을새김으로 새긴 이 불상은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데, 작은 입에 비해 큰 귓볼과 긴 눈꼬리가 인상적이다.
태학사 옆 약수터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야생화를 키우는 곳이 있다. 흙 속에서 기다리는 힘을 키운 씨앗들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을 터이니 야생초와 사람들이 설레이기는 매한가지인 때다. 약수터 주위를 둘러보면 개암나무가 있다. 제법 키 큰 감나무들이 둘러서 있는데 개암나무도 그 못지않게 가지를 한껏 펼치고 있다.
지난 가을에 개암이 다닥다닥 열렸었는데, 얼마나 예쁜지 혼자 따 갖기는 아까워서 그대로 뒀다. 숲을 찾아온 사람들이 개암을 보고 함박 웃었으면 했다. 옛이야기에 개암 깨무는 소리를 들은 도깨비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면 남은 게 있었다고 한다. 헛도깨비들의 오랜 장난질에 세계경제가 경기(驚氣)를 하는 이 때, 다 같이 개암을 야물게 깨물면 살림살이 좀 펴지려나. 개암나무 사는 숲으로 산책을 자주 가면, 주름살과 구김살은 펼 수 있겠다.
천안아산좋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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