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말씨ㅣ글 쓰기-치유마중물

글의 첫머리 쓰기와 끝마무리

실다이 2006. 2. 4. 03:52

첫머리 쓰기는 섯 숟가락질 하기

- 잘 쓴글과 못쓴글은 '서두'에서 판가름 난다.

 

1. 첫머리 쓰기는 첫 숟가락질하기와 같다.

 

어머니께서 식탁 위에 저녁밥을 차리셨다. 이 날의 특별 요리는 갈비찜이었다. 그래서 식

탁 한가운데는 갈비찜 냄비가 놓여 있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하얀 밥.된장국.생선구이.김치.

구운 김.젓갈.깍두기 들이 둘러 앉아 있다.

자, 우리는 이제 그 식탁 앞에서 무엇부터 먹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먼저

젓가락을 들 것인가, 숟가락을 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정할 수 있으니까.

그 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얹힐까 싶으니까 국부터 한 숟가락 떠 먹고 다른 것을 먹기 시작 해라, 천천히 꼭꼭 씹

어서" 어머니께서 국을 한 숟가락 떠 먹고 나서 다른 음식을 먹으라고 하는 것은, '먼저

입 안을 국물로 적시어 혀가 잘 움직일 수 있게 한다음, 목구멍과 위에게 음식 받아들일 준

비를 하라'고 일러주려는 뜻이다.

만일 어머니의 말씀이 옳다면, 이 날 특별하게 많이 먹어야 할 음식이 갈비찜이라 할지라

도, 우리는 젓가락 보다는 숟가락을 먼저 들고 국물부터 떠 먹어야 한다.

양식당에서 식사할 때도 그렇다. 우리는 자리를 잡아 앉은 뒤, 차림표를 보고 음식을 주문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식탁위에 가장 먼저 놓여지는 것은 방금 주문한 그 음식이 아니다. 그

음식을 먹기 전에 먼저 수프와 야채 등의 가벼운 음식(전채요리)으로 미각을 돋운뒤에야 비

로소 주문한 음식(주요리)을 먹게 된다. 그 식사를 마치고 나면, 끝으로 후식이 나온다. 다시

말해 전식(전채요리)과 본식(주요리), 후식의 순서를 밟는다는 것이다. 이 때, 전식은 대체로

국물(수프)이고, 본식은 주문을 한 음식이며, 후식은 차나 과일인 경우가 많다(이것은 글쓰

기의 짜임과 똑같다).

즉, 동양이나 서양이나 첫 숟가락질은 대부분 국물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 한다는 것이다.

국물 있는 것은 대개 부드러우므로 그리 오래 씹을 필요가 없으며, 목구멍으로 쉽게 넘길

수 있다. 먼저 입 안의 천장과 혀와 목구멍과 위 속을 적셔 놓아, 그것들이 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해 놓은 다음 본식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갈비나 돈가스가 식탁위에 차려져 있는 것을 보면, 한 점

이라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아아, 맛있는 갈비다!", "야아, 돈가스다!"하면서 고기부터

집어먹을때가 있다. 이렇듯 국물로 목을 축이지 않은 채 질긴 갈비나 기름진 돈가스를 먼저

먹게 되면 위가 놀라 체하게 마련이다.

가령 우리가 영양 보충을 하기 위해 그것을 먹어야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먹어야만 체하

지 않는지, 또 몸 속 곳곳에서 고른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화가 고흐는 화폭에 그려야 할 '무엇'이 깃들기 전에는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화폭에

'무엇'인가가 깃들이게 되려면, 먼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인가 그려져야 한다. 또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그려지게 하려면, 그 전에 그려야할 대상을 세심히 관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왜 그 대상을 그리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그

림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려는 내용이 종이 위에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펜을 들지 않

아야 한다. 어떻게 써야겠다는 대강의 요령이 떠올랐다고 해서 섣불리 펜을 들면, 가장 중요

한 부분 몇 마디, 즉 글의 중간에 나와야 할 말들이 먼저 튀어나와 버리기 쉽다. 그렇게 되

면 겨우 그 몇 줄만 써 놓고 난 뒤, 다음을 이어 쓰지 못해 쩔쩔매게 된다.

 

2. 첫 문단, 첫 문장, 첫 낱말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샏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애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나도형의 <그믐달>중에서

이 글은 첫 문장을 '나'로 시작하고 있다. 이처럼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는 매우 평

범하고 쉬운 서두법(첫머리 쓰는 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글쓰기

를 즐겨 하는데, 이방법은 글이 매우 순탄하게 풀린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나'라는 말을 반드시 앞에 써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다도 '나'로부

터 시작되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글도 있으니까.

오늘아침 자습시간에 같은 반 친구 은영이로부터 빨간색 색지에 쓴 고운 편지를 받앗다.

편시 속 이야기를 대하던 중, 가장 반가웠던 사연은 '믿음아, 오늘 눈이 온다더라'였다.

또 글의 제목이 명사일 경우에는, 바로 그 명사를 첫머리의 낱말로 삼을 수도 있다.

겨울, 내가 '겨울이구나' 하고 생각이 든 때나, 누군가가 그렇게 말하면, 내 마음은 고삐

풀린 망아지 혹은 갈 속 없는 떠돌이 처럼 괜히 들뜨고 설레인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는 사람일수록 첫문장은 길게 쓰지 않는 편이 좋다. 첫 문장이 길어지

면, 그것을 매끄럽게 마무리하기가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가능한 짧게 끊어 쓰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 첫 문장에서부터 멋을 잔뜩 부려 장황하게 쓰려고 하면, 내용이 얽히

고 설켜서 써 나갈 방향을 놓쳐 버리기 쉽다는 것이다.

 

3. 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첫머리

 

사람은 누구든지 어머니 뱃속에서 막 태어날 때, "응아!"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것은 절댈

로 아파서 내는 소리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알리는 외침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 자기가 분명하게 있다는 사실(존재)의 확인인 셈이다.

사람들은 그 '응아' 소리를 질러 대는 순간부터 자기 갊의 폭과 깊이를 조금씩 넓혀 나가

기 시작한다. 자기로부터 가족으로, 가족에서 나라로, 나라에서 세계 인류사회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나 가치'는 태어나면서 외친 그 첫소리, 즉 '응아' 소리

가 가지고 있는 의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것, 장차

직장인이 되어 나와 내 가족, 내 나라, 세계 인류를 위하여 끊임없이 분투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의 존재 확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글의 첫머리도 태어남의 첫소리인 그 '응아' 소리와 마찬가지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그 우렁찬 소리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듯이, 글의 첫머리에도 읽는 이의 관심을 끌

어낼 수 있어야한다. '응아' 소리의 우렁찬 정도를 두고 사람들이 아기의 건강과 미래를 점

치게 되는 것 처럼, 글의 첫머리에서도 말하려는 대상이나 내용, 그 글을 쓰는 목적 등을 내

비춰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읽는이가 글의 방향을 쉽사리 잡아낼 수 있으니까. 다시말해,

글의 첫머리는 주제로 나아가는 길목의 안내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다음 글은 첫 문장과 주제가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글의 지은이가 첫 문장을

왜 그렇게 시작했는지 글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꼼꼼히 살펴보길 바란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길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

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

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

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는 물질력으로 3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인

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

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

이 이석이라고 믿는다. -김구의 <내가 원하는 나라> 중에서

 

4. 모든 글은 '나'와의 간계로부터

 

찬바람이 불면 코와 귓불이 유난히 빨개져 겨울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나이지만, 눈

만 오면 끈 풀린 강아지처럼 유난을 떨며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본다.

아파트 옆 터미널의 시끄러움 가지 덮어버린 새하얀 눈 위에서 마음껏 뒹굴고 뛰어다닌

다. 그러다 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에 휩싸여 코 아래로 흘러내리는 콧물

까지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깊은밤에 아무도 모르게 내려 발목까지 수북히 쌓인 눈 그것도

모르고 깊이 잠든 사람들을 제쳐두고 아무도 밟지 않은 그것을 밟고 호흡할때의 기분은 게

으름뱅이들은 알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눈부시도록 하얀 눈을 바라보면서 그것은 어쩌면 산타 할아버지가 만인에게 주는 유년의

꿈과 추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낭만을 선물하

고......

코트에 묻은 눈을 털고 흐르는 콧물을 힘껏 들이킨 뒤 다음번의 더 희고 깨끗한 눈을 기

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집 쪽으로 이끈다.

안에서 내다본 눈이 유독 새하얀 거울이다.

글쓴이가 이 글에서 나와 '눈', 혹은 나와 '겨울의 추위'와의 관계를 이야기 하려 한 듯하

다. 글은 이렇게 자기와 관계 깊은 사람, 즉 절친한 친구나 부모님, 현제붕 누구한테 이야기

를 하듯이 편한 마음으로 써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

글은 자기가 쓰려고 하는 대상(글감)이 이러이러할 때에, '나'는 그것에 대하여 어떤 반응

을 나타내는가를 잘 관찰하여 말(진술)하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그 진술 속에는 다음

과 같은 것들이 들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은 나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나는 왜 하필 그 대상에 대하여 이

렇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대상에 비추어 볼 때 결국 '나'라는 인간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글의 첫머리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의 첫 실마리를 풀어내는 곳이다.

앞서 인용한 글은 첫머리와 중간부분을 아주 매끄럽게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끝으로 가

면서 조금씩 힘이 없어지더니 나중엔 다소 엉뚱하게 끝을 맺어 버려 읽는 이로 하여금 아쉬

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대상(글감)은 나에게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 나는 그 대상에 대하여 왜 이런 진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채

펜을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써 놓은 한 편의 글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실력을 한데 합쳐서 만들어 낸

조형물(모양을 가진 물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 낼 만한

실력을 기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생각해 봅시다.

 

1. 한편의 글에 있어서 첫 문장은 처음 마주치는 사람의 첫인상 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첫 문장은 그 글에 있어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기 위헤서

는 첫 문장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서로 이야기해 보자.

 

2. 글의 첫머리는 주제로 나아가는 길목의 아내자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글의

첫머리에는 어떠한 내용을 담는 것이 좋을까?

 


 

줄곧 달려가야 하는 골인지점

-글 마무리 잘 돼야 잘 쓴 글 된다.

 

1. 먼저 골인지점을 설정해야

 

남편은 징용에 끌려가 목숨을 잃고, 아들은 월남전에서 가루가 되어 돌아오고, 기댈 데라

곤 손자 하나밖에 없는 늙은 여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자까지 여자 문제로 칼부림

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손자가 죽은 지 며칠 뒤, 그 늙은 여자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억누르며 밭에 앉아 김을 매었다. 그 때, 누군가 우리민요 <아리랑>을 부르면

서 재를 넘어갔다. 다 알다시피<아리랑>에는 아주 재미있는 가사가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사랑하는 임아, 나를 버리고 가려는 생각일랑 아예 버려라.' 이것은 임과 이별하기 싫은

우리 선인들의 마음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노래를 들은 그 늙은 여자는 슬프

게 중얼거렸다.

"발병도 안나고 잘만 가더라"

이것은 내가 쓴 소설 <아리랑 별곡>에 나오는 대목이다. 결말 부분에 나오는 이 말은 이

소설의 주제를 한 마디로 함축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

들은 내곁을 잘만 떠나가더라는 한스러움,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살아 배기려는 인간의 생명

력......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이미 이 결말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말을 향해

모든 이야기를 몰고 갔던 것이다. 글을 잘 쓰는 비결은 이렇듯 글을 쓰기 전에 먼저 골인

지점을 확실하게 설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줄거리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또 아무리

좋은 인물이 설정되었다 하더라도 결말 부분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글을 써 나가지 않는

게 바람직 하다.

만일 첫머리로서 그럴 듯 하다 싶은 문장이나 일화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해서, 무

작정 써 나가게 되면 오래지 않아 쓸 말이 막혀 글쓰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써 나가는

도중에 결말을 정하게 되면, 이 때껏 써 온 것들과 방향이 달라져 그것들이 모두 쓸모 없어

지기 십상이니까.

나는 소설을 삼십 년째 써 오고 있는데, 어떤 소설을 쓰든지 맨먼저 결말 부분을 미리 머

릿속에 마련해 놓은 다음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결말 부분이 떠오르지

않으면 절대로 펜을 들지 않는다.

글쓰기는 여행이나 마라톤과 똑같다. 출발점(출발선)이 있고 도착지점(골인 지점)이 있다.

부산에 가려고 작정했다면 자기가 살고있는 곳의 터미널이나 기차 역에서 출발하여 반드시

부산에 도착해야 한다. 순간순간의 느낌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이나 대구에서 내려 버리

면 안 되는 것이다. 출발 역(출발선)은 종착 역(골인 지점)으로 달려가기 위하여 있는 것이

고, 골인지점은 그 경기를 끝맺음 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대개의 마라톤 출발선은 곧 골인지점이라는 사실, 그것은 아주 재미있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떤 글의 첫 문장은 곧 그 글의 결말이 갖고 있는 의미와 닿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

이다(특히 논술의 경우, 결말은 반드시 서두와 긴밀한 연관을 가져야 한다.)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이것은 황순원이 슨<소나기>의 결말 부분이다. 이것은 작가 황순원이 그 소설의 끝 부분

에 설정해 놓은 골인 지점이다. 작가는 결국 이 한마디의 말을 하기 위하여 그 기나긴 이야

기를 한 것이다. 그 결말에는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다시말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을 보여 주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

다는 뜻이다.

 

2. 골인지점에서 뒤집어엎는 콩트의 묘미

 

결말 부분(골인 지점)이 특히 중요한 것은 콩트에서이다. 대개의 작가들은 콩트를 쓸 때

마지막 부분에서 독자들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뒤집어 엎어 버린다. 물론 그

러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도 될 만한 복선(독자들에게 주는 암시)을 깔아 두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모파상의 <목걸이>는 단편 소설이면서도 콩트의 묘미를 아주 잘 살려내

고 있는 작품이다.

평범한 하급 공무원의 아내인 르와젤 부인은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치장할 만한 옷이나 보석이 마땅찮은게 늘 불만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부자 친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빌려 걸고 파티에 나가 즐겁게 놀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옷을 갈아입다 보니 목걸이가 어디로 사라지고 없었다. 하릴없이 그녀는 그

것과 똑같은 목걸이를 사기위해 많은 빚을 지게 되었고, 그 빚을 갚기위해 10년 동안이나

갖은 고생을 다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초라하게 변해버

린 그녀는 산책길에 우연히 목걸이의 주인인 옛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에게 그간의 사

정을 이야기 하자, 친구는 깜짝 놀라 말했다. "어머 내 목걸이는 가짜였는데......"

모파상은 "어머, 내 목걸이는 가짜였는데......"라는 말 한마디를 준비해 놓고 그 이야기를

써 나간 것이다. 결국 <목걸이>의 주제는 그 한마디 속에 다 들어 있는 셈이다. 가짜 목걸

이 하나가 허영심 많은 한 여인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는...... 하지만 가짜 목걸이 때문에

운명이 바뀐 사람이 어디 그 여인 한 사람뿐이겠는가?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여인

처럼 뜻없는 무언가에 얽매여 헛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파상은 그 한 마디를 통해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우리 삶의 진실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이와 같

이, 콩트 쓰기의 재미는 결말 부분에 가서 독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에 있다. 독자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골인 지점(결말)을 설정해 놓고 독자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수필을 쓰

거나 논술을 쓸 때도 골인지점을 미리 정해놓고 써 나가야 하는 것은 똑같다. 나룻배가 건

너가야 할 강 저쪽에는 나루터가 있고, 기차가 달려가는 그 끝에는 종착역이 있는 것 처

럼......

 

3. 결말은 죽어가는 사람의 유언과도 같다.

 

'응아!'하고 힘껏 소리를 지으며 태어난(삶의 출발선에 오른)우리 모두의 종착점은 죽음이

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을 맞기 전에 무엇을 어떻게 이룩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무엇을

남겨야 하고, 또 마지막에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수없이 많은 가르침을 남긴 부처님은 제

자들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한 적이 없느니라"고 했고 (이 세상이 텅 비어 있음을 가리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아버지, 왜 날 버리시나이까?"하고 절망(인간의 절대적인 외

로움)했다. 또 어떤 사람은 "문을 열어라"고 했고, 어느 한국인 의사는 "내 몸을 제자들의

실험용으로 제공한다"고 했으며, 어느 스님은 "화장을 해서 날려 버리되, 절대로 나를 위하

여 비석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들이 남긴 유언들은, 앞에서 이야기 한 것들은 한데 마무르는 글의 결말(골인지점)처럼

아주 깊고 높으며 보석처럼 값진 것(진리 혹은 우리 삶의 진실)이다. 결국 우리가 글을 쓴다

는 것은 이처럼 결말 부분에서 독자들에게 우리 삶의 진실을 들려 주려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서두와 결말을 아주 잘 처리하고 있는 독자의 글 한 편을 읽어 보도록

하자.

오늘은 아침부터 운이 없다.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으로부터 꾸중을 들었다.

아침에 늦잠을 자고 나서 허둥지둥 바쁘게 집 안을 돌아다녔다. 이를 딱하게 보신 어머니

께서, "무슨 애가 그렇게 게으르니?" 차를 타러 나오는데 차 안의 운전수 아저씨께서 "또 늦

었군, 너만 타는건 아니니까 빨리 나와!" 오늘은 이것만...... 하지만 오늘의 꾸중의 여신이 나

에게 마음이 있었나 보다.

조회 시간, 이를 어째! 분명히 넣어두었는데, 난 몰라.

"성적표 안 가지고 온 사람, 오늘 청소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한숨만 푹푹, 아이들은 만세 삼창.

1교시 시작, 안걸리겠지? 날짜를 보니, 오늘은 9번대만 걸리는 날이잖아? 결국 오늘 하

루, 나만 걸리고 혼나고 또 걸리고 혼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 정말 오늘은 피곤한 하루였어. 열심히 수다를 떠는데, "학생 회수권 제

대로 넣은거야?" 이건 또 웬 날벼락이냐.

"넣었는데요"

아, 창피해 누명까지 쓰다니.

내일부터는 제발 꾸중의 여신이 운 나쁜 나에게 질려서 멀어져 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것은 또 무슨 호통소리인가.

"수남아! 가방은 챙기고 자는 거니?"

이 글의 지은이는 매우 익살스런 진술을 하고 있다. 머리 글의 결말을 설정해 놓은 다음

글을 써 나갔기 때문에 서두나 결말을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또 조리있게 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글쓴이는 문장을 너무 과감하게 생략하는 버릇이 있어 독자를 당황하게

만든다. 가능하면 하나하나의 문장을 완결시켜 놓은 후에,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여유로운

습성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 물론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려는(형상화 하려는) 조력 또

한 꾸준해야 한다.

특히 논술의 끝마무리에서는 반드시 글 전체의 논지를 요약하여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용의 핵심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서술하는 게 좋다. 용 한 마리를 다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두 눈에 검은 점을 찍어 살아나게 하듯이.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글을 한 번 읽

어 보자.

요즘 시중에는 많은 상품권이 유통되고 있다. 추석을 맞아 웬만한 소비업체에서는 선물용

상품권을 발행하는 등 상품권 유통 붐이 일고 있는데, 여기서 파생된 문제점 역시 적지 않

다.

상품권을 보면 금액이 80%이상 구입했을 때에는 잔액을 현금으로 거슬러 주게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업체에서는 이 금액으로 다른 물품으로 구입하도록 종용하거나 현금 영수증이

라는 것을 끊어 주고 있다. 그리고 세일 품목에 대해서는 상품권을 가지고 쇼핑을 나가 보

면, 현금 사용의 불편을 덜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권이 현금을 사용할 때 보다 훨씬 많은 애

로 사항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난 1월 구두 상품권을 발행한 모회사의 부도로 겪었

던 많은 피해 사례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19년만에 부활한 상품권 유통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라도 이상의 문제는 시급히 고쳐져야 할 것이다.

상품권이 업계의 얄팍한 상술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어린 정성과 마음을 담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허정희 <상품권의 불편>중에서

 

4. 끝마무리를 방해하는 것들

 

글을 써 나가다 보면, 끝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방해하는 것들이 있다.

첫재, 자기가 쓰려고 하는 글의 주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글의 끝마무

리를 망치게 된다.

밀양에 있는 표층사에 가서, 땀을 흘리곤 한다는 비석을 구경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가다

가 대전이나 대구에 내리지 말고 곧장 밀양으로 달려가야 한다. 구경할 거리가 많은 경주로

가는 차가 보이더라도 바꾸어 타서는 안된다.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따라가서는 안 되며, 가장 친한친구가 중간에 내리자고 손을 잡아 끌어도 과감히 물리치고

기어이 밀양 역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리하여 표층사의 바로 그 비석앞에 서야 한다.

둘째, 지나치게 잘 쓰려고 하는 욕심이 끝마무리를 망쳐 놓는다.

낙동강의 도도한 물너울과 들판을 살피다가 내려야 할 밀양 역을 놓쳐 버리고 허둥대는

수가 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가 멈추어 서야 할 역이 있게 마련이다.

마라톤 또한 반환점을 분명하게 돌고 나서 정해진 골인 지점으로 달려가야 한다. 글도 마찬

가지이다. 욕심이 넘치면 멈추어 서야 할 곳(끝마무리)을 지나쳐 버리는 수도 있고, 그 곳을

찾지 못해 다른데서 헤메는 수도 있다.

셋째, 끝마무리에 대한 생각이 너무 약하면 끝마무리를 망치기 쉽다.

용 한 마리를 그린 다음에는 그것의 눈 한가운데다 검은 눈동자를 분명하게 찍어야 한다.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희미하지도 않은, 그 그림에 알맞게 검을 점을 찍어야 용이 생명을

얻어 살아나게 된다. 줄곧 맨 앞에서 달리던 마라톤 선수가 골인 지점을 1미터쯤 남겨두고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봅시다.

 

1. 글쓰기는 여행이나 마라톤과 똑같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출발점이 있고 도착점이 있

으며, 그것은 서로 길게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에 있어서 글 마무리(결말)는 여행이

나 마라톤에서의 도착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행이나 마라톤에서 반드시 다다르지 않으면

안되는 도착점, 즉 글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말해 보자.

 

2. 글 마무리를 아무리 잘 하려 해도 자꾸만 머리 끝을 따라다니며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

이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이야기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