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알고주알

꽃이 여자의 목을 간지럽히는 봄날

실다이 2016. 4. 7. 17:40



나를 고요히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

왕자산 자락의 청송사 쪽 산길을 오른다.

하얀집이 문을 열었으면

구운 호떡을 세 장씩이나 먹고 허전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에

이 곳으로 산책 오기를 더 즐기는 거다.

달달한 흑설탕 맛으로

슬픔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끌어올려 꺼낼 수 있으니까.

키위생과일주스와 호떡으로

당 떨어지는 기분을 구출하고 점심 요기도 했다.



산길을 오른다. 태조산 구름다리 쪽으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봄을 누리는 꽃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미친다. 상하좌우 가리지않고 멋대로 쿵쾅거리며 뛰는 심장...


모든 일상을 싸서 구석에 밀어넣고 어디론가 계속 가고만 싶다. 그런데 발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내 마음이 너무 측은하다. 고민거리가 늘어나는 일상을 그냥 떠나도 좋을 하루 아닌가.


00 언니로부터 '며칠 전부터 맘이 서글퍼 두 눈이 세상을 향해 시선을 거두고 젖어있다'는 소식을 들었더니 '여자의 일생'을 부르는 이미자의 목소리가 상복부를 가늘게 흝어댄다.


마누라로 살면서 더군다나 엄마로 산다는 것, 심지어 할머니로 산다는 것이 하염없이 붉게 힘낼 일이라는 것, 시들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일까...



"남편과 소통이 안 되면 울고싶어지는데도 눈물은 안 나고 가슴만 아플 때

'내가 쇴구나' 싶어서 더 서글퍼!

그래도 이런 마음은 딸한테도 못보여줘.

사실 안 보여주지.

나중에 우리 딸한테 힘든 일 생기면 딸도 힘들어할까봐... 혼자 견뎌."



꽃들이 마음을 이빛 저빛으로 물들이는 때,

봄을 예순 번 가까이 만난 언니의 목을 대단하게 간지럽히고 있다.

꽃들은 해마다 새롭게 흐드러지는데

'당신하고 봄놀이 가봐야 운전대 잡으면서부터 실랑이 하니까 힘들어~' 하는 말을 목구멍 밑으로 삼킬까

아니면 '올봄에는 친구들끼리도 봄놀이 갈래~'  하고 3박4일 주부파업 선언할까

고민스러운 언니의 봄날.

나는 일터로 돌아가지 않고 딴길로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