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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민관합동 토론회] 고교평준화로 황금알 낳을 거위를 키우자

실다이 2011. 10. 19. 02:38

 

민관합동토론회_김난주_20111022.hwp

 

 

고교평준화로 황금알 낳는 거위를 키우자

 

 

김난주 (평등교육실현을위한천안학부모회 공동대표)

 

 

 

 

 

 

 

1. 두 집 살림 하는 평준화와 비평준화

1) 평준화 교육정책으로 상향평준화 되었다

2) 평준화는 껍데기만 남기고 비평준화로 변신하고 있다

2. 학생 죽이는 교육 시장화

1)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으로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잊었다

2) 공교육 부실 해결책이 사교육 조장하고 성적 조작인가

3) 조전혁 의원이 수능 성적을 공개한 것은 법률위반이었고 서열화를 조장하였다

4) 얼마나 많은 학생이 죽어야 부질없는 시도를 멈출 것인가

3. 서열화 교육의 가해자와 피해자

1) 공약을 회피하는 김종성 교육감

2) 천안 모 초등학교 입구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3) 중학생 다섯 명이 출판한‘십대소녀들의 서유럽 견문록’

4) 천안으로 전학 오고 싶었던‘히죽’

5) 공부 못해서 농촌 인문계 다닌‘후니’

6) 짐승 같았던 중학 시절의‘오롯이’

7) 공부 잘 하는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

4. 황금알, 그리고 황금알을 낳을 거위

 


 

 

 

1. 두 집 살림 하는 평준화와 비평준화

 

 

1) 평준화 교육정책으로 상향평준화 되었다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고교평준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2009년도 OECD국가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 65개국 만 15세 학생 47만 명 중 읽기 1~2위, 수학 1~2위, 과학 2~4위로 최상위 수준을 보였다고 교과부가 발표하였다. 성적 하위 학생들이 더욱 줄어들었기 때문에 상향평준화가 되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의『학교 대 과외』(이주호․홍성창, 2001) 보고서가 발표되었을 당시 조선일보는 3월 5일부터 5월 31일까지 약 3개월 동안 [교육, 이대론 미래 없다]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했다. 교육전문가도 아닌 경제인이 낸 보고서는 중앙과 동아를 이어 여러 경제언론지가 다루었고, 이들 언론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민간경제연구소, 경제학자 등의 ‘평준화 해제’ 주장과 ‘시장주의’ 논리를 여과 없이 그대로 중계할 뿐 아니라 지지의 칼럼과 사설까지 썼다.

 

 

이러한 보도태도에 힘입어 평준화제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동안, 정․재․학계를 중심으로 명문학교 출신의 기득권층이 유대관계를 끈끈하게 유착시켰고, 그 돈독함으로 교육시장화의 물살을 거세게 휘젓고 있다. 이들은 ‘목소리가 크면 이기는 판’을 만든 뒤 고교다양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특이하게도 소통의 시대에 두 귀는 꽉 틀어막은 채, 하향평준화로 인해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주장하기만 했다. 신뢰할만한 근거도 없이 말이다.

 

 

교과부는 학생들을, 지구촌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국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적자원으로 보고 있다. 우수생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학부모 입장에서야 출산과 양육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지금, 등골이 휘도록 키우고 뼈 빠지게 학업 스케줄 관리해서 키운 자식들이 황금알을 낳으면, 그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물가가 비싼 천안에서 사교육비 챙기기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가능하기 때문에, 안 먹고 안 입고 막내까지 줄줄이 키워놓고 나면 노년 대책은 궁색하기 마련이다. 황금알, 오죽 기대되겠는가. 그래서 이웃과 경쟁하고 동료와 비교하는 심정에서 자유롭기는 너무 어렵다.

 

 

2) 평준화는 껍데기만 남기고 비평준화로 변신하고 있다

 

 

과연 기성세대는 차세대에게, 친구에게 져서는 안 되고 친구를 이겨야 생존 가능한 사회를 물려줄 수밖에 없을까. 동반성장과 동반생존은 불가능할까. 문제없는 삶은 없으며,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하는 게 인간(人間)이다. 고민이 생기면 기댈 수 있는 게 사람이고, 힘들 땐 백짓장도 맞들면 나으니까. 그래서 스승이 제자에게 우정을 가르치고, 부모가 자녀에게 우애를 신신당부한다.

 

 

시간이 걸리고 의견이 다르더라도 학부모, 교사, 학교장, 교육장, 교육감이 후세들을 위해 머리를 맞대 대화하여 동반생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동이 노력할 수 있는데 왜 그런 협력이 오래토록 부족한가. 교과부의 정책들은 제대로 된 공청회나 토론과정을 거쳐야 마땅함에도 과정의 민주주의를 져버리면서까지 특목고 늘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세상이 되어가는 중일까.

 

 

특목고가 생긴 뒤, 초등학생 때부터 특목고 입시준비를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과연 학생이나 학부모는 평준화 때문에 학력이 하향평준화 되었다고 믿고 있을까. 그래서 자립형사립학교나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원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진정한 우수생이 된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현재 학교들이 서열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서열에서 더 높은 등급을 차지하고 청년실업 사회에 경쟁력 좋은 등급으로 살아남으려 하는 것이다. 특목고는 교육 영재를 기르려고 예외적으로 특수학교를 설립해, 국가적 특혜를 많이 준다. 과학고 학생들은 국비 지원으로 외국연수도 간다.

 

 

 

 

2. 학생 죽이는 교육 시장화

 

 

1)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으로 사교육비는 하늘 높은 줄 잊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공약으로 사교육비 절반, 자율형 사립고 개설을 공약했다. 교육과학부 발표에 따르면 2009년에,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3만 3천 원( 5.0% ↑ )이고,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전체 규모는 '20조 9천억'이었다. 경제가 하강국면에 진입하고, 정부에서 학원비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하였음에도 사교육비는 줄지 않고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년 평균 7.5% 정도의 사교육비 증가가 예측되었었다.

 

 

영어 편중교육, 전국 초중고 일제 학업성취도 평가와 서열정보 공개, 대입 자율화와 입학사정관제 시행, 국제중 및 자율형사립고 설립, 무한경쟁 가중 속 창의적 체험학습 보고서 애듀팟 입력 등. 현 교육정책들은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으면 인생을 포기해야 할 처지로 교육가족들을 내몰고 있다.

 

 

2) 공교육 부실 해결책이 사교육 조장하고 성적 조작인가

 

 

교과부는 사교육비 증가 원인으로 공교육 부실과 후진적인 대입정책을 지적했다.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과부가 막대한 교육예산으로 교육을 관장하면서 공교육 부실을 핑계로 전국의 초중고 학생들을 문제집 풀기에 몰아세워서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 대입정책이 후진적이라며 감당할 능력도 없는 대학에 입학사정관제를 권장함으로써 역시 스펙과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한 사교육을 부추기는 식이 현 교육정책이다.

 

 

2009년에 모 교육청이 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현 정부의 교육목표가 무엇인지 진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을 진정한 배움으로 이끌겠다는 게 아니라 교육을 시장화 하여 잇속만 차리겠다는 속내를 가진 자들의 네트워크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까. 생존경쟁에 다름 아닌 서열화 정책으로 미성년자들을 무한경쟁에 내몰고도 제 배를 두드리며 몰래 웃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구조가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3) 조전혁 의원이 수능 성적을 공개한 것은 법률위반이었고 서열화를 조장하였다

 

 

2009년 10월 12일 조선일보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상위 1~100위를 차지한 학교들의 실명이 공개됐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넘겨받은 수능 원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 등을 둘러싼 고교 입시 경쟁이 더 과열될 여지가 생겨서, 학생과 학부모는 더욱 경쟁에 몰입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행정법원의 판결을 보면 원래 공개 요구 목적과 달리 외부로 유출될 경우 교육과학기술부는 손해 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조전혁 의원이 교과부로부터 연구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전제 하에 자료를 제공받고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서열 100위권 학교에 대한 요인과 환경 분석조차 없는 공개로,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법률을 위반하였고, 법대로 집행해야 하는 정부가 앞장서서 위반을 방조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연구나 대안은 빠져있었다.

 

 

4) 얼마나 많은 학생이 죽어야 부질없는 시도를 멈출 것인가

 

 

학교별 성적 결과는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높이고, 평준화에 속한 일반고라든지 비평준화 지역 비선호 학교에 대한 기피 현상도 가속화시킨다. 입시교육으로 인해 쉴 틈 없이 학업에 시달리다가 1등을 못한 것에 비관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자살청소년도 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더 죽어야 우리 어른들이 이 부질없는 시도를 멈출까.

 

 

함께 성장하고 협력해야 할 친구들끼리 위화감에 시달리게 해놓고도, 자존감 완성 시기인 중고등 청소년들에게 사회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부모의 경제적 능력으로 인한 출발선의 다름을 감수하는 것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사회. 약 80%의 청소년이 우수 수학능력을 인정받고 대학에 입학하여 고액 등록금을 투자하여도 취업조차 어려운 실정. 실업계를 졸업하여 취업을 해도 고졸이라는 주홍색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 평균수명이 길어지는데도 실패감에 빠져서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낙오자로 주눅 들어 살게 하는 시선의 따가움.

 

 

 

 

3. 서열화 교육의 가해자와 피해자

 

 

1) 공약을 회피하는 김종성 교육감

 

 

1974년부터 서울과 부산에서 고교평준화 입시 제도를 도입했다. 기초학력을 갖춘 중학생이면 선지원 후추첨으로 집 가까이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이 제도는, 대구와 광주 등 대도시로 확산되다가 천안은 1980년부터 94년까지 평준화를 실시했다. 그러나 성적 우수학생들이 공주지역 등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성적에 따라 진학하는 입시제도로 퇴보하였다. 25만 인구 규모일 때도 15년간이나 시행했던 평준화인데, 시기상조라며 재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김종성 교육감은 후보 시절에 천안시 평준화 추진협의회를 2010년 내에 구성하여, 타당하면서 찬성이 많다면, 천안시 고교입시 제도를 평준화로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보궐에 이어 민선 5기에 재당선된 김 교육감은, 공약대로 연내 평준화에 대한 재검토 준비를 하겠다더니 한 해를 거저 보내고 있다. 8월에 추경하여 타당성 검토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였지만, 회의 두 번에 그친 채 예산을 묵혀버렸다.

 

 

천안은 비평준화로 고교 서열화가 분명함에도 특목고를 지정하여 명품교육을 하는, 기형적인 고교입시제도 지역이다. 그런데도 김종성 교육감은 평준화 주장에 공감하지만 워낙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는 대답으로 면담 때마다 공약이행을 회피해왔다. 아산 주민과의 대화 때에는, 농산어촌 학교의 교육환경이 열악하여 평준화 실현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한국은 평준화와 비평준화 양립을 위한 교육환경구축에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 전국 중학생의 70% 이상이 평준화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재, 성적 우수학생들의 선택권과 수월성 교육을 위해 마련된 특목고‧과학고‧예술고‧외고 등을 확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예산을 부어 농산어촌 학교마다 기숙사를 짓고 있다. 서열화가 극심한데 기숙사를 지었다고 농산어촌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을까. 가난하니까 어쩔 도리가 없는 가정의 자녀들이 별수 없이 실업 교육을 받고 고졸 출신으로 취업하여 기피업종의 인력난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래도 기숙사가 빈 것은 기숙사비가 부담되는 가정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환경 개선의 노력이 문제해결 지점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시 고교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 과정의 바람직한 태도는, 이해 당사자들의 발언권을 골고루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모두의 이익을 확대하면서 동시에 모두의 고민을 보완하기 위한 해법 모색에, 교육청이나 교육 전문가 뿐 아니라 다양한 학부모 입장을 대변할 수 있도록 대화 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2) 천안 모 초등학교 입구에 걸려있던 플래카드

 

 

모 중학교에 전교 1등으로 입학한 000 학생 경축!

 

 

2010년. 3월에 이미 입학하여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의 이름을 여름이 될 때까지, 후배 초등학생들이 등교할 때마다 읽게 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칭찬하자는 취지였겠지만, 앞으로 졸업하는 6학년 중 1등 입학자가 되지 못하는 대부분의 제자들에게 미리 부끄러움을 심어주는 게 좋은 가르침일까. 서열화 교육이 과연 교육적인 교육일까. 왜 학교는 똑같은 교육비 내고 공부한 학생들 중에 특정 과목 잘 하는 아이들만 편들어 주고, 성공할 기회까지 몰아주는가.

 

 

3) 중학생 다섯 명이 출판한 ‘십대소녀들의 서유럽 견문록’

 

 

북중학교와 쌍용중학교에 다니는 여중생 외 다섯 명이 2011년 1월에 21일 간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4월에는 책을 냈다. 사교육이 전혀 없는 프랑스의 학교도 가보고 5개 국가를 둘러보니 많이 부러우면서도 상대적으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출발하지 않은 지점에서는 이 길이 좋은지 저 길이 좋은지 판단할 수 없는데도, 오로지 대학을 나와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한국사회가 미워졌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성공과 실패로 평가되는 양갈래길만 낸 뒤, 오직 한 쪽 길만 성공으로 통하는 길이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특기적성을 발휘하라며 창의력 향상까지 기대한다. 체험을 통해 창의적으로 성장하라고 하지만, 사회, 가정, 학교의 시선과 인식의 변화는 없이 아이들더러 창의적으로 쑥쑥 자라길 기대하는 건 모순이다. 경쟁교육을 탈출해서 자신만이 지닌 꿈을 키우고 싶은 청소년이 있어도, 그 어떤 평가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걱정 없이 자기다움을 찾아가도록 기다려주고 지켜봐주는 어른이 얼마나 되는가. 학교 수업이 창의력을 보장하거나 배려하기는커녕 창의적 체험학습마저 평가와 실적과 대학입시에 결부시키고 있으니, 학생들에게는 부담감만 늘어난 것이다. 뇌는 휴식을 통해서 똑똑해지는데, 똑똑해지라면서 왜 쉴 틈을 안 주는가.

 

 

4) 천안으로 전학 오고 싶었던 ‘히죽’

 

성남에서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던 학생이 집안 사정으로 천안에 이사하게 되어 입학할 학교를 알아봤다고 한다. 학교마다 찾아가 봤는데, 자리가 없지만 성적을 보자 하더란다. 성적, 성적, 성적. 그나마 걱정 없는 나이에도 이토록 천안에서 살기가 걱정 되는데, 부모님 마음은 오죽하시겠냐 한다.

 

 

고등학생을 둔 가정이 천안에 이사를 오게 되면 교육문제로 뜻하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부득이 아빠만 천안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고, 평준화 지역으로 다시 이사를 가는 가족도 있다. 인구 증가를 원해서 대학생들에게 주소를 천안으로 옮기도록 캠페인을 벌이기까지 했는데, 정작 실제 거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턱이 너무 높을 뿐 아니라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이주해 온 가정마저도 내모는 격이다.

 

 

5) 공부 못해서 농촌 인문계 다닌 ‘후니’

 

 

‘후니’는 지방 국립대 공대생인데, 중3때까지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렇다고 학원을 안간 것도 아니라 사교육이란 사교육은 다 했단다. 주말에도 학원에 가서 놀지 않고 자습해도 성적은 안 오르는 후니. 모의고사를 봤는데, 반평균 깎아먹은 후니와 10여명의 미달자들은 각각 교실에서 좌우로 앉혔고 중간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평균, 평균 이상, 모의고사 커트라인 점수 통과자였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한다. 반 친구들 중에 ‘너희는 그냥 노가다나 가라’는 농담까지 해서 충격이었고, 실업계는 가기 싫어서 농촌의 인문계고로 진학을 했고, 친척들이 학교 어디 다니느냐 물어보면 집근처의 고등학교라고 둘러대고 3년 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 학교를 다녔다.

 

 

천안 명문고를 다니려고 조치원이나 아산에서 통학하는 아이들. 천안에서 통학하기도 너무 먼 지역의 우수생들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경기도나 서울로 고등학생 때부터 유학을 간다. 등급관리에도 유리하고 도시 규모에 의한 교육 수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6) 짐승 같았던 중학 시절의 ‘오롯이’

 

 

서울에서 모 자율화 고교에 다닌 ‘오롯이’는 근처 인문계 학교 중에서는 꼴통 소리 좀 들었지만, 학창시절에 개같이 맞거나 쥐잡듯이 볶이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억압당해서 나쁜 추억만 있는 것 보다는 낫다며 2010년에 이런 글을 썼다.

 

 

“중학교 때 비평준화 지역의 지방에 살았을 땐 짐승 같았어요. 어차피 상위 몇 프로만 보듬고 갈 거면서 애들을 짐승 다루듯 하는 학교, 아무리 돌이켜봐도 이해가 안갑니다. 책임을 지지 못할 거면 그냥 애들 풀어주세요. 그런 환경에서 선생님에 대한 예의와 존경, 그런 걸 어떻게 배우겠습니까? 몇 명 건져서 서울대 보내자고 그 많은 학생들에게까지 지옥 같은 학창시절을 강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3년 내내 학습 활동에서 받을 중학생의 입시 스트레스가 해소되면, 부적응 중학생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중학교 교실 내에서 급우 간 협동학습이 가능해지고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한 진로를 선택하고 준비할 수도 있다.

 

 

7) 공부 잘 하는 자식과 그렇지 않은 자식

 

 

어떤 택시기사는 자녀 중 한 명이 공부를 잘해서 명문고에 입학을 시켰다. 부모들끼리 계모임을 만들고 이런 저런 모임이 있지만 그냥 일에만 충실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식 하나는 명문고에 못 가서 나중에는 이웃과도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자존심마저 밟으면서 서열화 하는데, 사교육 시키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그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존심은 인간에게 중요하다. 자존심을 짓밟힌 사람과 자만심이 생긴 사람이 어떻게 한 지역사회에서 똑같이 사회발전을 위해 참여하겠는가. 공생과 상생을 가로막는 편가르기가 지역사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주범이다.

 

 

학벌주의 사회는, 학벌 없는 사람을 멸시하고 학벌 좋은 사람에게는 비굴해야 한다는 이치를 만들었다. 자신이 못났다는 열등감은 피해망상증을 전염시키고, 자신만 잘났다는 우월감은 과대망상증을 전염시킨다. 그럼에도 학벌을 중시하고 견고히 하려는 의도가 이어지는 것은 교육적 목적보다 정치적 목적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치켜세우는 게 아니라, 가치관과 입장이 다르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정서가 살아있을 때,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들에게도 진정한 보람이 돌아간다.

 

 

 

 

4. 황금알, 그리고 황금알을 낳을 거위

 

 

계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 철이 드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그래서 지금은 국가를 위해 지방이 예속되었던 때를 지나와, 지방을 위한 국가로 철들고 있는 지방분권시대이다. 지역이 중요하고 개인이 소중한 시대에 직접민주주의로 누구나 똑같이 한 표씩 행사하며 평등살이를 시작한 이상,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이제 범죄에 해당한다. 특정 소수에게 특권을 부여하던 시대를 건너왔기 때문에 옛날 방식은 훌훌 벗어던져야 한다.

 

어떤 선진국은 대학평준화까지 실현하고 있는 시대이다. 한국 40년 평준화의 역사에서 천안이 80년대 90년대에 실현했던 고교평준화 정책을, 아직도 갑론을박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논란이다. 전지역 비평준화 충남과 같은 상황이었던 강원도마저 평준화 재출발의 기적을 울리고 있는데, 천안은 지금 막차를 바라보며 망설이고 있다.

 

 

지방분권시대에 천안지역사회에 참여할 기초역량을 갖춘 개인이 몇 %가 되길 기대하는가. 특목고 출신만으로 ‘빠른 천안’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적극 참여하는 인재가 되도록 차세대를 모두 키우려면 자신감과 자존감을 지켜줘야 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과연 어떻게 하면 기대효과를 얻을 것인지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겠다. 교육정책으로는 기초학력과 타고난 특기적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학교라는 둥지를 따스하게 데우고 모든 청소년들을 품는 것이다. 그 자신감을 지탱하도록, 뼈대이자 척추인 자존감을 세워줘야 한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은 나지 않을 거라고들 한다. 그러니 우리는 한국에서, 천안에서, 스티브 잡스의 탄생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스티브 잡스가 될 지도 모르는 인재의 싹을, 떡잎만 본 다음 짓밟아 왔다면!

 

 

고교입시 전형 개선으로 고교간 교육격차를 해소하면, 소수 엘리트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온라인 소통 수준을 갖추고 자랄 것이다. 관계를 단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재들이 발랄하게 미래를 함께 설계할 때, 분권과 참여의 날개를 달 것이고, 행복지수가 높은 천안을 낳을 것이다. 황금알을 낳을 거위는, 천안에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자라는 청소년들이다.

 

 

천안 청소년 중 천여 명 이상이 교문을 나와서 학교에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 가족과 친척들의 고민으로 지역사회가 어둡다. 성적지상주의와 서열화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제도, 지역 학교들이 골고루 명문교라 불릴 수 있는 제도,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는 물음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상처받지 않아도 되는 제도. 고교평준화야말로 천안지역의 학생과 학부모에게 희망을 되찾아 줄 수 있다.

 

시 승격 50주년을 앞둔 천안, 하늘 아래 편한 땅! 이 고장의 정신을 새로이 세워 힘차게 출발하고 싶다면, 구식과 엘리트식 교육에서 밀려나 자포자기하는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배움의 문을 열어주는 창의력을 발휘해보자. 사람이 최우선이다. 고교입시 평준화를 추진하고 평등교육을 실현하여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리더십을 보이자.

 

민관합동토론회_김난주_2011102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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