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T03290
[제목] 나 때문에 우리가족 다투는 건 싫어요
[페이지] F01
♣ 정신지체아 가정의 가족기능 향상을 위한 집단가족치료 프로그램
♣ 주제연극 희곡대본
"나 때문에 우리가족 다투는 건 싫어요!!!"
이 희곡대본은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이 지역 내 정신지체 아동을 둔 14가정을 대상으로 집단가족치료(1년 단위 프로그램으로 총30회의 프로그램 개입실시)서비스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그 개입 프로그램중의 하나로 장애아동을 가진 가정의 가족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건강한 가족상을 찾기 위한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장애아 가정에 관한 기존연구와 상담치료를 근거로 하여 전문 희곡작가에게 의뢰하여 완성한 순수창작작품입니다.
☆ 본 희곡은 작가, 본 복지관의 사전 허가 없이는 무단 복제 및 전제를 금합니다. ☆
김은미 작
* 등장인물 *
▶ 명호 : 15세. 정신박약
▶ 미연 : 13세. 자폐아
▶ 명호 아버지 : 51세. 일고 노동자
▶ 명호 아머니 : 42세. 파출부
▶ 미연 아버지 : 47세. 회사원
▶ 미연 어머니 : 39세. 가사
▶ 진희 : 명호의 여동생. 11세. 국교 4년. 정상아동
▶ 종호 : 명호의 형. 18세. 고교 3년. 정상
▶ 민철 : 미연의 오빠. 15세. 중학 3년. 정상아동
▶ 노동자 3명
▶ 종호의 친구들 : 남녀 각 2명
▶ 경아 엄마, 현정 엄마
▶ 아이들 다수
▶ 그 외
방화2종합사회복지관
[페이지] 001
스놉시스
1. 내용
(태어날 때부터 정신박야아인 명호는 나이에 비해 무척 어린 행동을 보인다. 여동생 진희는 그러한 명호에 대한 근심이 크다. 어머니가 파출부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가사 일을 맡아 하고 있으나, 부모의 잦은 불화와 부모의 기대가 집중되어 큰 부담감으로 매사에 신경질적인 큰오빠 종호에 대한 불안감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환경으로 인하여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매우 조숙해 보인다. 그리고 명호의 아버지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나이도 잊고 살만큼 정신없이 살아온 그는 가난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늘 불만이 많으며, 그 불만은 명호를 볼 때마다 폭발하여 더욱 심한 폭언과 자학을 일삼으며, 한바탕 부부싸움을 하곤 한다. 이에 대해 늘 죄책감으로 예민한 어머니는 오직 신앙(기독교)에 의지하려 하며 남편과 마찬가지로 큰아들 종식에게 큰 기대를 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종식은 오히려 반항하려 들고, 명호에 대한 수치심과 동시에 미안함을 느끼며, 스스로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는다. 한편, 자폐아인 미연은 말이 없으며, 부모와의 대화조차 어려운 아이다. 종이를 보면 무조건 찢으려 하고 한 가지에 몰두하여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미연의 어머니는 과거 아들을 더 낳으려다가 낳은 딸이 더구나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심한 자책을 하며 초기에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기도 하고 심지어 무속에 매달려 보기도 한다. 그러나 평범한 회사원인 남편의 수입으로는 경제적 부담만 가중될 뿐이다. 더구나 회사 일에 늘 의욕을 잃어 가며 다른 동료들의 가정과 비교해 열등감이 심해진 남편을 바라보는 것 또한 그녀에게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그녀는 건강한 아들을 가진 이웃집 여자를 시기하여 심한 히스테리 현상을 보이며, 미연에 대한 수치감으로 미연만 방안에 가둔 채 외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와 방 안 가득 찢어진 종이들을 보고 아연질색하고 만다. 또한 미연의 오빠 민철의 미연에 대한 수치감은 더하여 친구들의 방문을 꺼리고 부모에 대한 불만으로 점점 폐쇄적인 성격을 보인다. 어느 날 민철은 초경으로 얼룩진 미연의 바지 뒤를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의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미연을 보고 수치감과 함께 새삼 연민을 느끼며 울음을 터뜨린다.
* 이상은 몇 가지 사건 중심의 줄거리이다.)
2. 구성
(처음 도입은 장애아인 명호, 미연과 정상아 진희의 시각으로 각각의 가정을 바라보고 그들만의 내면(음성)을 엿본다. 사건은 아이들의 기억의 부분 부분처럼 상기되어 떠올려지며, 일련의 줄거리가 한 흐름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그때그때 이에 맞추어 무대에 오른다. 중간에는 부모의 시각이 주가 되어 그들의 일상과 함께 그들의 내면이 문답(자신과, 혹은 다른 제3자인 듯)식으로 보여지며 처음과 같은 식으로 사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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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장
(무대 한쪽에 덩치에 비해 작은 세 발 자전거를 탄 명호 보인다. 조명은 동그랗게 명호를 비추고 있다. 명호는 계속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자전거를 움직이면서 연신 웃음을 짓고 있다. 자전거의 불규칙한 금속성이 요란하다.)
[음성(진희)] 나는 우리 반에서 항상 10등 안에 든다. 그러나 한 번도 5등 안에 든 적은 없다. 시험 때문이라도 내가 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아니 명호 오빠가 밖에 나가 말썽을 부리지 않아 준다면, 흙투성이가 된 빨랫감이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난 꼭 5등 안에 들것이다. 그럼 그때는 엄마도 아빠도 칭찬을 해 주실까?
(명호의 자전거 앞에 한 떼의 아이들이 와서 고무줄 놀이를 한다. 명호는 자전거를 멈추고 아이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아이들에게 접근한다. 아이들은 명호의 접근을 꺼려하며 귀찮아한다.)
[명호] 야, 나도 하자. (명호가 고무줄을 발에 마구 감자 아이들 놀이는 엉망이 된다.)
[음성(진희)] 엄마 오셨어요?
[음성(어머니)] 아니, 지금이 몇 신데 여태까지 쌀도 안 올려놓았데? 아이구 지겨워. 야, 진희야!
[음성(진희)] 알았어요. 곧 올려놓을게요.
[음성(어머니)] 명호는 어딨어. 자전거도 안 보인다. 얼른 나가 찾아봐.
(무대 밝혀지며 진희 등장. 명호는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 아이들은 결국 명호를 피해 사라진다. 물끄러미 아이들의 뒤를 보고 있는 명호에게 진희가 신경질적으로 다가간다.)
[진희] 오빠, 뭐하는 거야. 저런 쬐끄만 아이들하고 놀고 싶어? 얼른 가, 엄마 왔어.
[명호] (몹시 어눌한 말투로) 진희야, 우리도 저거하고 놀자. 나도 저거 할 수 있다?
[진희] 안돼. 엄마가 오랬어. 얼른 씻고 밥 먹어야지.
[명호] 그럼 밥 먹고 하자. 나 저거 할 수 있다. 학교에서 하--- 안 적 있어. 너---
[진희] 안돼. 다음에. 지금은 엄마한테 혼나. (명호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자전거를 끌어와 그 위에 불안하게 올라탄다. 진희는 한심한 듯 명호를 보며 금속성이 심한 자전거 뒤를 따라간다. 그때 책가방을 멘 종호 들어선다. 명호가 먼저 발견해 좋아한다.)
[명호] 큰오빠다. 저기.
[진희] (반색하며) 아, 큰오빠 일찍 왔네. 엄마 또 도서실 비 아깝다고 하겠다.
[종호] 시끄러. 엄마한테 나 못 본 걸로 해. (명호가 자전거에서 내려 종호의 가방을 만지작거린다.)
[명호] 혀엉, 공부했어? 나도 오늘 공부했다? (명호 종호에게 매달리자 종호가 떼어놓는다.) 뭐야, 임마. 진희 너 알았지. 어서 명호 데리고 집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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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오빠 어디가? (종호 바쁜 걸음으로 사라진다. 진희 종호를 부르며 따라간다. 다시 혼자가 된 명호. 자전거에 내려 바닷가에 주저앉아 패달을 손으로 돌린다.)
[음성(진희)] 난 큰오빠가 왜 그러는지 안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큰오빠가 매일 심통이 나 있는 이유를 명호 오빠도 아는데 엄마 아빠만 모르다니, 큰오빠는 나 보다도 공부를 못하는데 아빠는 자꾸 큰오빠에게 서울대에 가라고 한다. 오빠는 정말 자신이 없는걸--- 명호 오빠보다 어쩔 때는 큰오빠가 더 불쌍할 때가 있다. 물론 명호 오빠도---
[장] 2장
(건축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던 명호 아버지. 잠시 쉬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의 손에는 소주병이 들려 있다. 연신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소주병을 이로 딴다.)
[동료1] 이제 더위가 한풀 꺾여 다행이지만 이 짓도 날 추워지면 끝장이네 그려. 제기랄 이맘때만 되면 코딱지 만한 가게 차릴 밑천도 꿈쳐 두지 못한 게 후회라니까.
[동료2]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구먼. 나이 오십이 넘도록 이 바닥 큻고 다니는 팔짜가 워디 돈 끌어 앉고 있을 새가 있간디. 그렁저렁 자식새끼 고등핵교까지 보내면 장하지.
[동료3] 아, 그래도 형씨는 아들놈이 장학생이라며, 대학은 보내야 할 것 아닌감.
[동료2] 글쎄. 지 팔짜, 지 복은 지가 타고난다고 그 놈이 등록금 타먹고 장학생으로 들어가면 모를까. 언감생심 꿈이나 꾸간디.
[동료1] 그런 소리 마시오. 그래도 자식들 키우는 보람에 이 곡예 같은 짓 하는 거 아닌가. 히히, 저 철근 탑 꼭대기에서 아찔하다가도 참새 새끼들 같은 고 놈들 얼굴이라도 떠오르면 공방 기운이 난다니까. 안 그래? (그 동안 말없이 술만 마시는 명호 아버지에게) 아, 참 이형 작은 아들놈은 좀 어때. 아직도 그만 한감?
[동료2] 그 참 그것도 다 지 팔짜려니 해야지 워뵥뎌. 그라고 지 먹을 밥그릇은 다 타고난다 안하남.
[동료3] 젠장, 똥 빠지게 저 꼭대기 수백 번 오르다가도 자식새끼 몸 아프다고 하면 팍 그대로 뒈져버리고 싶은게 우리 심사지.
[아버지] (갑자기 술병을 내던지며) 야, 임마들아! 시끄러. 늬들이 뭘 알아. 뭘? 그래 팍 죽으라고? 그래 어디 오늘 한번 죽어 보자. (비틀대며 일어나 덤벼들려 한다.)
(동료들과 싸움이 붙어 제법 소동이 커진다.)
[음성(진희)] 우리 아빠는 맑은 정신으로 집에 들어오신 적이 없다. 매일 술이 취해 동네 입구에 들어서면 항상 종호야 하고 큰오빠 이름을 부른다. 그런데 한 번도 명호야 하는 작은 오빠를 부른 적은 없지만 아빠 소리가 나면 제일 먼저 명호 오빠가 나가 아빠를 맞는다. 공연히 더 화만 내시는걸.
(모두들 사라지고 명호 아버지만 술이 취해 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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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어머니)] (찬송가 소리)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
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아버지] 시끄러! 젠장 빌어먹을 놈의 예수, 예수 좋아하시네. (어그적대며 일어나 앉아 다시 술병을 들고 나발을 불며) 백날을 예순지 부천지에게 기도한다고 병신이 멀쩡한 놈 되고, 깡통 찬 놈이 그랜저 몬다냐? 끄윽, 다 웃기는 수작이지.
[음성(어머니)] 당신 왜 그래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당신이 지금 몇 살예요?
[아버지] 나? 몇 살이냐구? 아, 마흔--- 아홉? 아니지 쉰을 넘긴지가 언젠데. 젠장 쉰 둘인가 쉰 셋인가, 에라, 한 쉰 둘 쯤 해 두지.
[음성(어머니)] 그 나이 되도록 당신이 한 일이 뭐죠? 자식들한테 창피하지도 않아요? 더구나 나 혼자 명호 엎고 병원이다 재활원이다 뛰어다닐 때 어디 관심이나 가져 봤냐구요.
[아버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럼 내가 집구석에서 그 놈만 쳐다보고 그 놈만 들쳐 엎고 뛰란 소리야. 난 일찌감치 그 놈 포기했으니까, 당신도 시간 낭비할 거 없다구. 그리고 이 놈의 시끄런 세상 괴로워 술 좀 마셨다. 여편네가 그걸 이해 못해 그 따위로 쨍쨍대냐 말이야.
[음성(어머니)] 아무튼 이제 나도 모르겠어. 지긋지긋해. 명호를 좀 봐요. 그 애도 당신 아이예요. (무대 한 쪽 동그란 조명 아래 명호의 자전거 탄 모습 보인다.) 여보, 명호의 장래---
[아버지] 듣기 싫어.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고. 나도 꿈도 있었고, 나도---
[음성(어머니)] 이제 당신의 미래는 아이들이예요.
[아버지] 아, 그만!
(무대에는 명호의 모습만 보인다. 자전거 소리가 크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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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3장
(미연은 바닥에 앉아 연신 종이들을 찢고 있다. 미연의 표정은 매우 진지해 아무도 말을 걸 수 없을 지경이다.)
[음성(의사1)] 아이가 언제부터 그랬죠?
[음성(어머니)] 다른 데는 다 멀쩡한데, 글쎄, 세 살 때부턴가. 다른 아이들 말 한창하기 시작할 무렵 되도록 통 말도 안하고, 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더라구요. 그래도 좀 늦는 정도려니 했는데--- 이렇게
[음성(의사2)] 아이가 언제부터 그랬죠?
[음성(의사3)] 요즘은 어때요? 대개 이런 경우는 부모님의 인내력이 요구되지요.
[음성(의사1)] 대게 이런 경우 부모님의 협조와 인내력이 요구됩니다.
[음성(어머니)] 선생님, 제 아이가 나을 수가 있는 건가요?
[음성(의사4)] 아, 미연이라 그랬나? 미연이가 언제부터 그랬죠?
(무대 위의 미연은 계속 종이 찢기에 열중이다. 그때 민철이 등장하여 미연이 찢고 있는 책을 홱 빼앗는다)
[민철] 너 미쳤어? 그게 뭔 줄 알고 찢어. 아이 지저분해. 온통 어질러 놨잖아. 네가 다 치워. 난 몰라. 새로 산책인데. 에이! (민철 찢어진 책을 들고 들어간다)
(미연 다시 새로운 종이를 발견하자 다시 찢기 시작한다. 미연의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온다. 그는 매우 지쳐 있고 얼굴 가득 근심이 어린다)
[아버지] (미연에게) 나 참. 이게 뭐냐? 정신없군. 늬 엄마는? 살림하는 여편네가 어딜 갔는데 여태 안 들어와? 또 도졌군. 한 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아무런 대꾸도 없는 미연에게 그는 계속 말을 잇는다.) 네 오빤? (큰 소리로 민철의 방 쪽을 향해) 민철이 있냐? (그때서야 나오는 민철) 야, 애비가 와도 내다보지도 않아? (혼잣말로) 이젠 자식새끼까지 나를 무시하는군. (담배를 꺼내 물며, 길게 한숨을 쉰다.)
[음성(사장)] 박 과장, 왜 그래?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대충대충주의야? 집에 무슨 일 있어? 그러다 감원 대상에라도 오르면 어쩔 거야? 자네 나이가 몇인가? 지금 그런 식으로 버틸 때가 아니라구?
[아버지]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부벼 끄며) 젠장!
(미연의 어머니 등장)
[아버지] 당신 뭐 하고 다니는 사람이야? 집구석 꼴이 이게 뭐야?
[어머니] (눈치를 보며) 여보, 미안해요. 금방 치우고 저녁 내 올게요. (종이들을 치우며, 미연을 일으켜 들여보낸다.) 당신 오늘 더 피곤해 보이네요? 어서 씻으세요. (아버지 안으로 들어간다.)
(탁자 위에 전화벨 소리 요란하다. 미연의 어머니 전화 수화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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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여보세요?
[음성(할머니)] 에미냐? 나다.
[어머니] 아, 어머니세요? 별일 없으시고요.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다.)
[음성(할머니)] 별일이나마나 너 언제까지 고집 피울 테냐? 성하지도 않은 손주년 난 필요 없다. 내가 고추 달린 손주 놈 한 번 더 보자고 소원한 게 그리 독 품을 일이더냐?
[어머니] 무슨 말씀을?
[음성(할머니)] 아무튼 긴 말 필요없다. 네 그럼 정성 건강한 아들 낳게 해 달라고 쏟았으면 벌써 고추 서넛은 더 봤겠다. 몹쓸 것 같으니라구. (전화 끊는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 동안 멍해 있던 그녀는 서랍 속에서 몇 개의 통장들을 꺼내어 본다.)
[음성(어머니)] 도사님, 제발 우리 딸 좀 도와주세요.
[음성(무당)] 에이, 요망한 것. 아주 지독한 것이 달라붙었어. 하루 이틀 치성으로는 떨어질 위인이 아닌걸. 이 백일 정성에 한 판 거하게 벌려야 떨어질 둥 말 둥한 고약한 처녀 귀신이구먼. 에이, 급살맞아 죽은 귀신아, 어여 썩 물러나라.
[음성(목사)] 쯔쯔,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따님의 삶은 오직 하나님만이 책일지실 따름이지요. 자, 함께 기도합시다. (웅얼대는 기도 소리에 이어 찬송가 소리)
[음성(여인)] 미연 엄마, 아주 용한 분이 있다는데--- 그 분 손길만 닿고도 미친 사람이 금방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는데. 어때 나랑 한 번 가 볼래?
[음성(무당)] 허허, 그것 보세요. 벌써 효력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 이젠 아이 속에 있던 잡귀가 겁을 먹은 모양이니 머지 않아 말끔해질 겁니다. 그래도 아직 방심하기에는 이르니 계속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목탁 소리 한 동안 이어지다가 다시 찬송 소리와 뒤섞인다.)
(통장들을 보다가 그녀는 맥없이 한숨을 쉰다.)
[음성(민철)] 엄마, 경아 엄마 오셨어. (미연 엄마 탁자 위 통장들을 정리해 서랍에 넣는다. 경아 엄마 등장)
[경아 모] 뭐 해? 왜 기운이 하나도 없어? 미연이가 또 무슨 일이라도 저질렸어?
[어머니] 무슨 일은--- ? 어쩐 일이야?
[경아 모] 으음, 별일 아니구, 우리 경아 이 번 토요일 날 무용 발표회잖아. 기분 전환도 할 겸 구경오라구. 민철이 하고 같이 와. 애들 정서에도 도움이 될 거고.
[어머니] 음--- 생각해 볼게.
[경아 모] 에이, 생각은 무슨 생각? 꼭 와. 소연이네랑, 준형이네도 올 거야. 우리 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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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뮁 학원에서는 제일 눈에 띈다고 그전부터 그러더니, 이번 발표회 때도 주인공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거 있지.
[어머니] 그래? 제법이네.
[경아 모] 아무튼 오는 걸로 알고 있을께. (미연 인형을 안고 등장) 미연이도 같이 가면 좋으련만--- (미연에게) 미연아, 아줌마가 나중에 미연이 건강할 때 초대할게! (퇴장하며) 민철이랑 이쁘게 차려 입고 와. 나 또 현경이네 가야 하니까 그만 갈게.
(퇴장)
[어머니]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미연의 인형을 빼앗아 던지며) 야, 네가 애기니? 다 큰애가 인형이나 끌어안고 다니게. 경아랑 아줌마한테 창피하지도 않아? 아니 경아랑 동갑인데 넌 경아한테 부끄럽지도 않냐구? 자존심도 없어? (미연은 바닥에서 인형을 주어 끌어안는다.)
[장] 4장
(자동차 소리가 요란한 곳이다. 명호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건물 아래 앉아 있다. 그의 입가에는 잔뜩 아이스크림이 묻어 있다. 한쪽에서 종호가 담배를 피우며 서너 명의 남녀친구들과 걸어온다.)
[남친구1] 야, 오늘 영화 죽이지? 거봐 내가 뭐라고 했냐? 확실히 부루스 윌리스 나오는 영화는 절대 후회 안 한다고 했잖아.
[여친구1] 다음엔 무슨 영화 볼까. 중간고사도 끝났으니까 이럴 때 보지 언제 보냐?
[남친구2] 난 다음에 홍콩 영화 볼래? 내일 미팅하기로 했으니까 개네들이랑 같이 보자.
[여친구2] 치, 너네 끼리 잘 해봐.
[남친구2] 종호야, 넌 어때?
[종호] 글쎄. 생각해 보고.
[여 친구1] 그래, 종호는 아마 우리랑 놀 거야. 그렇지?
[종호] 아니, 난 내일 바빠.
[여친구2] 왜? 혼자 도서실서 푹푹 썩겠다 이거야?
[남친구1] 그러다 너 정말 서울대 가겠다.
[종호] 그런 식으로 빈정대지 마. 사--- 실은--- (그때 명호, 종호를 보고 우스며 일어나 다가온다.)
[남친구1] (명호를 보고) 야, 누구 제 아냐? 우릴 보고 되게 좋아한다.
[여친구2] (인상을 찌푸리며) 세상에, 이상한 애잖아. 가까이 못 오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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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종호에게 다가가며) 형아, 나형아 기다--- 렸---
[남친구3] (종호에게) 야, 종호야! 너 제 알아?
[종호] (난처한 표정을 짓다가 화를 내며) 알긴 뭘 알아? 너 뭐--- 야, 재수 없게---
[명호] (여자애에게 다가가) 내 친구 수진이도 예쁘다?
[남친구1] 이거 뭐야? (명호를 한쪽으로 떠민다.) 얘들아, 가자. 참, 되게 피곤한 녀석이군. (여자 친구들은 명호를 피해 걸음을 재촉한다. 종호는 눈치를 보다가 친구들과 함께 사라진다.)
[명호] (종호의 무리가 사라진 뒤를 보며) 혀--- 엉 (자동차 소리 요란하다.)
[장] 5장
(명호 한 쪽에 앉아 졸고 있다. 명호 어머니가 손 지갑을 들고 맥없이 들어온다.)
[음성(여인)] 아줌마, 그 동안 수고했어요. 아줌마한테 정도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우리 애 아빠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아무튼 김치 맛이며, 청소 깨끗한 거며 아줌마 만한 사람 구하기 힘들 텐데. 정말 섭섭하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음성(사내)] 글쎄요. 당장 그 집 만한 데가 있겠어요? 우선 급한 대로--- 음--- 여기 이 식당에 가 보세요. 좀 늦게 끝나기는 하지만. 들어온 식당 중엔 제법 큰 덴데--- 아, 아니면 거리에서 광고 지라시 같은 거 나눠주는 일은 어때요? 그건 늦게까지 할 필요는 없거든요.
(그녀는 성경책을 꺼내 들고 중얼중얼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진희가 밥상을 들고 들어온다.)
[진희] (명호를 흔들어 깨운다.) 오빠 밥 먹어. (어머니에게) 엄마, 저녁!
[명호]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엄--- 마, 밥 먹어--- 요. (진희가 눈짓으로 명호를 만류한다. 그러자 명호 어머니 곁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다. 진희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다가 혼자 밥 한 숟가락을 뜨려다 말고 밥상을 들고 나간다.)
[어머니]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제 자꾸 힘이 빠지네요. 나약해지는 이 불쌍한 양을 거두어 주시어 아버지의 권능의 힘으로 일어서게 해주시고 그리고 제 이 불쌍한 어린양을 살피시사--- (종호 가방을 메고 들어서다가 두 모자를 보고 신경질적으로 안으로 사라진다. 두 사람 계속 기도한다.)
[음성(진희)] 난 엄마 때문에 교회에 나가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몸만 나갈 뿐이다. 난 진짜로 하나님을 믿질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짜 살아 있다고 해도 난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매일 술이 취해 하시는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돈을 내려 주시지도 않았고, 다른 친구들처럼 멋진 집도, 웃음도 주지 않으니까. 더구나 명호 오빠도 고쳐 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우리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도 오히려 매일 집안이 시끄럽기만 하다.
[아버지] (술이 취해 큰 소리로) 종호야. 내 아들 종호 어디 있냐? (어머니와 명호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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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책을 치우며 일어난다. 명호 웃으며 아버지에게 다가간다.) 저리 가. 너 말고 종호 말이야. 종호! (종호 등장)
[종호] 오셨어요?
[아버지] 그래, 오늘도 도서실 가서 공부 많이 했냐? 그래, 임마 난 너 믿고 산다. 네가 대학만 딱 붙으면 이 애비가 빛을 져서라도---
[어머니] 그렇게 허구 헌 날 술독에 빠져 있는 양반한테 뭘 믿고 누가 돈을 빌려 준답딥까. 안 그래도 명호 병원 비도 없어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더구나
[아버지] 아니 뭐? 이 여편네가? 이 짜식이 어디 돈으로 멀쩡해질 놈이야? 어디서 병신 자식 맹글어 놓고 유세야. 유세길?
[어머니] 뭐요? 아니 이 양반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억척스레 덤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한다. 두 사람의 싸움 커지자 종호는 뛰쳐나가고 명호와 진희가 싸움을 말리려 하나 힘들다.)
[어머니] (명호를 끌어안으며 울먹인다.) 이놈아, 우린 진작에 너랑 나랑 혀 깨물고 죽어야 했어. 아이고 불쌍한 것. 아이고! (아버지는 술기운에 지쳐 쓰러져 간혹 주절댈 뿐이다. 진희 두 모자를 멍하니 바라본다.)
[장] 6장
(무슨 생각엔가 골몰해 있는 미연의 어머니. 등장하여 의자에 앉으려다 주변을 둘러보고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고 어색하게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다.)
[어머니] 치, 못된 여편네. 감히 누구 앞에서 건방을 떨어. (경아 엄마의 말투를 과장해 흉내내며) '우리 경아가 유난히 눈에 띄게 잘해 주인공이나 다름이 없어요'. 웃기고 있네. 그래 어디 두고보자구. 계속 그 따위로 잘난 처거 하다가는 혼 줄이 날 줄 알라구, 내가 미쳤어? 거길 쫓아다니게. 아이고, 좋다고 벨도 없이 가겠다는 여편네들도 똑같이 한심한 것들이지. (그녀는 새 담배를 꺼내 다시 불을 붙여 피운다.) 우리 미연이가 수족을 못 쓰는 애도 아니고, 이제 제대로 건강만 찾으면 그까짓 광대 춤꾼 따위가 부러울까봐. 흥, 못된 여편네 같으니라고. 그리고 준형이가 반장 된 게 어디 동네 잔치할 일이야? 뉘 집에는 아들이 없나? 속 빈 것들. 다 밥 쳐 먹고 할 일 없으니까 별 볼 일 없는 것들이 나대느라고. 내가 여편네들 꼴 보기 싫어 이사를 가든지 해야지--- (그러나 갑자기 맥이 빠지며 멍해진다. 잠시 후 미연이가 입안 가득 밥을 넣고 양손에 밥 뭉치를 들고 나온다. 허겁지겁 그것들을 먹는 미연을 보고) 아니, 얘가. 너 아까 저녁을 그렇게 많이 먹고 그게 뭐야? 네가 거지야? (미연을 때리며 손에 쥔 밥을 뺏어 던진다.) 내가 밥을 안 줬어? 그러니까 밤낮 남한테 무시나--- (미연은 바닥을 밥알들을 주어 입에 넣는다. 어머니 자신의 입술을 깨물며) 그래. 네가 무슨 죄냐? 다 이 못난 애미, 이 년의 전생이 더러워 이 벌을 받는 거겠지.
[페이지] 010
[장] 7장
(명호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있다. 잠시 후 이웃집 여자가 명호를 끌고 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그녀의 손에 고장난 장난감 로봇이 들려 있다.)
[여자] 명호 엄마! 명호 엄마 있어?
[어머니] 민식이 엄마가 웬일이야? 우리 명호가 무슨?
[여자] 아이, 말도 마. 이게 몇 번째야? (장난감을 들어 보이며) 이 거 저녁에 사준 거야. 한 이웃에 살면서 명호가 안 됐구 해서 우리 민식이랑 놀 때도 그냥 놔두곤 했는데--- 이게 뭐야? 명호가 몇 살이유? 우리 민식이 7살밖에 안 됐어도 이렇게 심하지 않아.
[어머니] 미안해. 민식 엄마. 내가 그거랑 똑같은 거 사줄게 (명호를 노려본다.)
[여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머니] 명호야! 너 민식이 거 막 만질래? 너 오늘 혼 좀 나야겠다. (돈을 꺼내 여자에게 주며) 미안해. 앞으로 조심시킬게.
[여자] 내가 명호 엄마 얼굴 봐서 참는 거야. 명호야! 너 다음에 또 그러면 아줌마한테 혼난다. (퇴장)
[어머니] (명호를 잡고 엉덩이를 마구 때리며) 너 동네 다니며 계속 말썽 부릴래? 이제 15살이면 어느 정도 나아져야지. (계속 때리며) 또 그럴 거야? (명호 두 손으로 싹싹 빈다. 진희가 책가방을 들고 들어오자 명호가 진희 뒤에 숨는다.)
[진희] 오빠 또 무슨 일 저질렸구나? 엄마 그만 하세요.
[어머니] 명호, 너 이젠 집에만 있어. 또 밖에 나가 애들 하고 어울리면 그땐 죽을 줄 알아? 내가 속상해서---
[진희] 명호 오빠, 왜 그랬어?
[명호] 나는 로보트 없잖아. (로봇 흉내를 내고) 그건 팔에서 퓽하고 총이 나온다?
[어머니] 그래도 얘가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때리려 하자 진희가 만류한다.)
[진희] 오빠, 나중에 내가 돈 벌면 사 줄게.
[명호] 정말? 자동차도 사줘야 돼. 그럼 내가 진희 구두 사줄게.
(두 남매의 얘기를 듣다 어머니 피식 웃는다.)
[어머니] (웃으며) 네가 무슨 돈으로 진희 구두를 사?
[명호] 대학가면--- (웃으며 슬며시 어머니 품으로 가며) 엄마도 구두 사줄게.
[페이지] 011
[어머니] 아이구, 내가 늘그막에 명호 덕에 호강하겠다. 아무튼 밖에 나가서 말썽만 부려봐. 다시 몽둥이를 그냥--- (밖에서 갑자기 다른 이웃 여자의 음성 들린다.)
[음성(여자)] 명호야! 명호 있니? 동진아, 이거 명호가 그런 거 맞아? 명호 엄마!
(명호 엄마 다시 명호를 끌고 나가며 때린다. 고개를 설래설래 흔드는 진희)
[장] 8장
(미연의 어머니가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하나씩 들어 보이며 미연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미연모] (사과가 그려진 카드를 들고) 이게 뭐지? 미연아, 다시 잘 봐야지? (대답이 없자) 사과. 사과잖아. 미연이가 좋아하는 사과. (다른 카드를 들어 보이며) 이건 뭘까? 부릉 부릉 하는--- (미연 탁자 위에 다른 카드들을 들고 찢으려 한다.) 안돼. 그건 찢으면 안돼. 엄마 화낸다. (미연의 손에 있는 카드를 빼앗으며) 자, 이걸 잘 봐야지. 자동차. (미연의 엉뚱한 행동에 점점 화가 난다.) 이건 뭐야? 이건? (신경질적으로 큰소리로) 집. 이건 새, 개, 닭, 비행기--- 미연아, 미연아, 네가 몇 살이야? 몇 살이냐구?--- 관두자. 다 집어치우는 거야. 백날 해봐야 다 헛수고지.
(담배를 꺼내 문다)
[미연] (물끄러미 엄마를 보다가) 어--- 엄--- 마. 어 엄마아.
[미연모] (다시 담배를 부벼 끄고) 그래 미연아 다시 해보자. 이건 자동차. 이건 비행기 그리고 이건 사과. 알았지? 다시 볼까? 이건 뭐지?
(조명이 어두워지며 미연 엄마의 질문 소리만 잠시 들리다가 조명은 미연만을 동그랗게 비춘다. 미연 천천히 일어나 큰 거울에 립스틱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미연의 표정은 진지하다. 거울 속엔 나무와 새, 꽃 등이 가득하다.)
[음성(교사)] 자, 다시 묻는다. 네 이름이 뭐지? 음, 그럼 지금 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뭐니? 자, 선생님이 들고 있는 건 뭘까? 아이, 여길 봐야지--- 오, 그래 처음부터 다시 해야겠구나. 네 이름이 뭐지? (천천히 다시 반복한다.) 네 이름이 뭐지?
-미연의 상상-
(무대 다시 환해지자 많은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무리 속에 미연 보인다.)
[아이1] (두 팔을 높이 들고 흔들며) 나는 나무다. 나는 나무다. (계속 같은 몸짓으로 반복)
[아이2] (난간에서 두 팔을 벌려 저으며 뛰어내리며) 나는 비둘기다. 나는 비둘기다. (반복)
[아이3] (무대를 계속 가로질러 달려오며) 나는 바람이다. 나는 바람이다. (반복)
[아이 4] (두 손을 양쪽으로 동그랗게 휘저으며) 나는 자동차다. 나는 자동차다. (반복)
(그외 여러 움직임으로 분주한 아이들. 미연은 아이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끔씩 부딪치곤 한다.)
[페이지] 012
[미연] (아이들 한 명씩에게 다가가 그들의 몸짓을 따라 하며) 나는 나무다--- 나는 비둘기다--- 나는 바람이다--- 나는 자전거다--- 나는 밥이다--- 나는--- 꽃이다--- 나는--- 나는--- 나는 나다.
[장] 9장
(종호가 요란한 음악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다. 그 옆에 명호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음악 소리에 맞춰 어설프게 몸을 흔들다가 점점 잠이 들기 시작한다. 음악은 점점 팝에서 명호 어머니의 자장가로 바뀐다.)
-명호의 꿈 속-
(천사들이 춤추는 곳. 명호가 어머니 품헤서 잠을 자고 있다. 어머니는 천사처럼 고운 흰옷을 입고 있다. 그 옆에는 명호가 기타를 치고 있으며, 진희는 책 속에 빠져 큰 소리로 혼자 웃기도 하며 행복한 모습이다. 그때 아버지가 한 아름 선물을 안고 들어온다. 그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하다. 잠이 깨어 명호는 아버지를 반기며 그에게 안긴다. 꿈속에서 명호는 정상아이다.)
[아버지] 오, 그래 나의 사랑스런 아들 명호야! 널 위해 선물을 갖고 왔지. (선물 상자를 풀어 보자 장난감들이 가득하다.)
[명호] 고마워요. 아빠.
[아버지] 그래, 우리 큰아들 종호와 예쁜 공주님에게도 선물을 줘야지. (종호에게는 멋진 기타를 주며) 종호야, 이젠 천천히 쉬면서 공부하렴. 대학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니란다. 난 네가 건강하고 착한 아들로 자라 준 것만으로도 고맙단다. 자, 그리고 이건 뭘까? (진희에게 선물을 준다.)
[진희] (선물을 꺼내자 원피스가 나온다.) 아, 예뻐라. 아빠 너무 멋져요.
[어머니] 여보, 내 선물은 없어요?
[아버지] 물론 있지. 당신 것을 빠뜨릴 리가 있나. (커다란 상자를 건넨다.)
[어머니] (그 안을 열자 돈 뭉치가 그득하다.) 어머나, 이럴 수가--- (행복한 웃음으로 그 돈을 만지며 뿌려 보기도 한다.)
[명호] (한아름 꽃을 안고 나오며) 이건 제 선물 이예요. (가족들에게 꽃 한 다발씩을 선사한다.)
[어머니] 오늘은 가장 근사한 음식을 마련했어요.
[아버지] 오, 그래. 궁금한데? 자, 그럼 어서 당신 솜씨 맛 좀 볼까? (모두 행복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천사들의 춤 계속된다. 그때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아버지의 고함소리)
[페이지] 013
[음성(교사)] 집안 분위기가 단란한 것이 아이에겐 큰 치료 효과를 거두게 하지요. 두 분 모두 열심히셔서 현정이가 더 의욕적으로 배우려고 하는군요. 현정아, 뭐가 제일 갖고 싶니?
[현정] (수줍어하다가) 강--- 아--- 지
[현정모] 얘 아빠가 강아지를 사준다고 했거든요.
[음성(교사)] 강아지 예쁘겠다. 다음에 올 땐 선생님한테 강아지 얘기해 주기다?
(잠시 어둠)
(미연의 어머니가 미연과 함께 어색한 표정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매우 긴장한 얼굴이다.)
[음성(교사)] 어서 오세요. 안녕! 미연이. 자, 거기 앉으시죠. 미연이도 엄마 옆에 앉을까? (미연과 함께 의자에 앉는다) 힘드시죠?
[미연모] (어색한 웃음) 네. 그렇지요 뭐.
[음성(교사)] 미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뭔가요? 아, 이를테면--- 오래 집중할 수 있는 행위라든지, 만족한 표정을 지을 때 말 이예요.
[미연모] 음--- 미연이는 계속 만지작거려요. 종이를 자주 찢기도 하고--- 인형을 좋아해요. 그건 여느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지만 좀 지나치게 집착해요. 한번 안기 시작하면 아이가 잠에 깊이 빠지기 전에는 그걸 떼어놓을 수가 없으니까요.
[음성(교사)] 네. 그렇군요. 어머니께선 미연을 가르치시는 데 매우 열심히세요. 미연이 아버지께서도 물론 협조가 많으시겠죠.
[미연모] 그이는--- 그이도 처음엔 물론 저보다 더 미연이 때문에 걱정도 많이 하고 신경을 썼지만--- 생각처럼 미연이가 진전을 보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물론 바쁜 회사 일 때문에.
[음성(교사)] 알았어요. 미연이 아버지도 한 번 뵙고 싶어요. 어머니도 잘 아시겠지만 이런 경우는 무엇보다 가족들의 관심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더구나 부모님의 경우는 절대적이죠. 그리고 미연에게 오빠가 있다고 하셨는데.
[미연모] 그엔 워낙 말이 없어서. 미연이와 싸우지는 않아요. 그리고 중학교 삼 학년이다 보니까 공부하는 게 워낙 힘들기도 하구요. 그 앤 지 동생한테 잘 하는 편 이예요.
[음성(교사)] 미연이의 건강은 어떻죠?
[미연모] 건강은 좋아요. 뭐든 잘 먹죠--- (웃음) --- 너무 잘 먹는 편이죠.
[음성(교사)] 미연이를 사랑하세요?
[미연모] 네? 이 앤--- 내 딸 이예요. (잠시 어둠)
(명호, 명호 어머니 등장. 역시 그 긴 의자에 앉는다.)
[음성(교사)] 집에서 주로 명호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은 누구지요?
[명호모] 명호 여동생 진희죠. 그엔 얘 누나처럼 잘 돌봐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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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실-
[아버지] (술이 취해 들어와 음악을 듣고 있는 종호에게 화를 내며 듣고 있던 카세트를 던져 박살을 낸다) 종호야! 나쁜 놈 너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그렇게 해서 대학 문턱이나 가겠어?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이렇게 날 실망시킬 수 있냐구? 네가 나한테 어떤 놈인데, 내가 누굴 믿고 이 짓을 하고 다니는데 이놈아. 차라리 같이 죽어 버리자. 이 놈--- (옆에 있던 명호는 안절부절이다. 그러나 종호는 부동자세로 서서 말없이 두 주먹에 힘을 주고 있을 뿐이다.)
[명호] (아버지가 종호의 뺨을 치자 만류하며, 무릎 끓고 빌며) 아아부지, 자알못했어요.
[종호] (명호를 일으켜 세워 떠밀며 약간 울먹이는 음성으로) 일어나, 이 등신아, 네가 뭘 잘못했다고 나서. (이들의 소란 계속)
[음성(진희)] 난 요즘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거의 모두 과외를 몇 개씩이나 하는데--- 난 하나도 하지 않는다. 이번 시험에선 항상 나보다 공부를 못하던 영미보다 4등이나 밀려났다. 아, 자존심 상해. 요즘은 나도 공부가 하기 싫어진다. 공부를 못 하면 나중에 커서 은행에 들어갈 수도 없는데. 내가 은행엘 꼭 들어가서 돈을 많이많이 벌어야 엄마 아빠가 늙어서 죽게 되어도 명호 오빠를 돌 볼 수 있을 텐데--- 이젠 나도 정말 큰오빠만 믿을 수 없다는 걸 안다. 아휴, 아무튼 오늘은 아빠랑 큰오빠 때문에 청소할 게 더 많아졌다. 엄마는 어제부터 새 식당엘 나가더니 12시가 다 되어 들어오신다. 숙제도 안 했는데--- 어떻게 하지? 할수 없지. 내일 아침 또 미자 걸 베껴야지--- (그 사이 종호는 밖으로 뛰쳐나가고 아버지는 주저앉아 한탄을 한다. 명호 한 구석에 주눅이 든 채 웅크리고 있다.)
[장] 10장
(무대 위에 한 개의 긴 의자가 놓여 있다. 현정 어머니가 뇌성마비인 현정과 함께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음성(교사)]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 현정이는 더 예뻐졌네?
[현정모] 수고가 많으세요.
[음성(교사)] 별 말씀을. 현정이 아버님도 안녕하세요. 지난주엔 아버님께서 오셨는데.
[현정모] 오늘도 얘 아빠도 같이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가게 일이 급해서 여기까지 데려다 만 주고 갔어요.
[음성(교사)] 요즘 현정이가 더 밝아진 것 같네요. 현정아, 요즘은 무슨 공부하니?
[현정] 이--- 름--- 써--- 요.
[현정모] 한글 쓰는 일에 제법 열심히에요. 그래서 얘 아빠가 요즘 저녁마다 붙어 있어요. 어제는 제 이름 쓰는 걸 공부했거든요.
[음성(교사)] 그래요? 현정이 선생님한테도 예쁜 이름 써 주고 가야겠다.
[현정모] 얘 아빤 요즘 현정이만 찾아요.
[페이지] 015
[음성(교사)] 명호가 자주 말썽을 피우나요?
[명호모] 예. 동네 꼬마들하고만 노니까 가끔 말썽을 피우곤 해요. 아직 큰 사고를 내진 않았어요. 애는 착해요. 아직도 제 나이 값을 하려면 먼 것 같아요.
[음성(교사)] 명호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지?
[명호] (그저 히죽이죽 웃으며 입안에서만 웅얼웅얼 대다가 수줍게) 엄마, 진희, 아부지, 형아.
[음성(교사)] 어머니, 명호 아버지는 명화와 대화를 자주 하는 편인가요?
[명호모] 대화요? 저도 이 애와 얼굴 맞댈 시간이 없는데. 얘 아버지는 더 하죠. 더구나 워낙 하는 일도 험하고. 말도 말아요. 허구헌날 술에 절어 지낸다구요. 그리고 괜시리 쌈박질만 걸지요. 그 통에 도리어 명호한테 불똥이 튀곤 한다구요.
[음성(교사)] 싸움을 자주 하시는 군요--- 명호야? 집에선 주로 뭐하고 지내니?
[명호] 자아전거--- 그리고 피리도 불 줄 알아요. (손짓으로 피리 부는 시늉을 한다.)
[명호 모] 어릴 때 타던 세발 자전건데 여태 그것만 가지고 놀아요. 그리고 요즘은 학교에서 배웠는지 피리를 들고 다니며 빽빽대는 바람에 며칠 시끄러웠죠.
[음성(교사)] 재밌겠다. 명호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뭘 가장 하고 싶지?
[명호] 하나님.
[음성(교사)] 하나님? 왜 그럴까?
[명호] (수줍게 웃으며) 도온--- 벌어야지.
[장] 11장
(지하철 안이다. 미연의 부모가 미연과 함께 사람들 틈에 서 있다. 미연이 옆에 있는 젊은 여자의 치마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자꾸 신경이 쓰인 여자는 짜증을 부린다. 어머니가 사과를 하고 아버지와 함께 다른 곳으로 가 떨어져 선다. 미연이 다시 다른 여자의 가방에 달린 장신구를 잡고 놓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 집중된다. 미연의 부모는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미연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노려본다.)
[음성(경아모)] 왜 무용 발표회 때 안 왔어? 서운하더라. 그날 얼마나 좋았다구. 다른 엄마들은 다 왔었는데. 미연 엄마도 맨날 미연이만 안고 돌지 말고 그런데도 다녀야지. 민철이랑 왔으면 얼마나 좋아. 민철이 신경도 써야지. 아무튼 우리 경아 아버지는 벌써 경아 발레 유학까지 보내겠다고 야단이지 뭐야?
[음성(남자)] 박 과장. 얘기 들었어? 이 대리 말이야. 얼마 전에 회사 그만 두고 비디오 가게 냈다나? 아파트 상가 내에 차렸는데 수입이 이 월급장이한테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자랑하더라구. 그런데 참, 자네 얼굴이 요즘 왜 그래?
[음성(할머니)] 내 말 잘 들어라. 오늘이 늬 아버지 제사라 이런 말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직막 눈감기까지 제일 안타까워한 게 늬 내외다. 미연이만 생각하면 밤
[페이지] 016
잠을 다 설치신 양반이시다. 너희들 위해 하는 말이니. 정신 차리고 더 나이먹기 전에 건강한 아들 하나 낳을 궁리나 해. 내가 뭐라 그랬니? 성치도 않은 손녀딸 보자고 내가 이 나이 되도록 죽지도 않고 살았단 말이냐?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우리 가문에 무슨 천벌 받을 죄가 있어서---
[장] 12장
(무대 왼쪽에 미연 아버지 앉아 있다. 명호 아버지 등장하여 오른쪽에 놓인 다른 의자에 앉는다. 둘은 각각 다른 차단된 곳에 있는 것이다.)
[음성(교사)]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바쁘시다고 하셔서--- (미연 아버지 조용히 목례한다.)
[명호부] 왜 자꾸 오라고 하시우? 여기 내가 들락거린다고 우리 애가 멀쩡해지기라도 한답니까? 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사람이 어디 한가하게 불려다닐 신센 줄 아시유? 오늘은 비가 계속 추적추적 쏟아져 내 큰 맘 먹고 나왔지만--- 대체 알고 싶은 게 뭐요?
[음성(교사)] 네. 감사합니다.
[미연부] 진작 선생님을 찾아?어야 하는데. 당최 시간 내기도 그렇고--- 아니 솔직히 제가 다녀봐야 우리 애가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도 없었어요.
[음성(교사)] 처음 내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심정은 어땠지요?
[명호부] 후--- 뭐 내 팔짜려니 했지요 뭐. 그래도 애가 지금처럼 크기 전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지요. 제기랄 우리 같은 형편에 어디 병원이다 어디다 부지런 떨며 좇아다니지도 못하고---
[미연부] 우리 어머니는 처음엔 아들만을 고집하셨지만 전 은근히 딸을 더 원했답니다. 첫애가 아들이기도 하고 제 아내를 닮은 예쁜 딸아이를 갖고 싶었지요. 전 정말 제 딸아이를 예뻐했지요. 그런데--- 그건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충격이었어요.
[음성(교사)] 아이와는 주고 어떤 대화를 나누시죠? 아이가 뭘 좋아하는지 아세요?
[명호부] 참 나, 걔하고 무슨 얘기를 하겠소? 여태 쬐그만 동네 꼬맹이들이랑 놀고 밥쑤셔 넣을 줄만 아는 놈하고, 그저 동네 망신 안 시킬 만큼 사고 안 치고 다니는 게 다행이지. 그 녀석이야 어디 장난감, 딱지치기나 할 줄 알지요 뭐. 지어미가 워낙 바쁘다고 치닥거릴 못 해선지 어째 더 꾀죄죄한 게--- 그래도 후후, 짜식이 먹는 거 하나는 잘 챙기는 게 웃기지 않소?
[미연부] 난 한번도 그 애가 날 아빠 아빠하고 따르는 걸 못 봤어요. 다른 집 딸아이들을 보면--- 후후, 괜히 심통이 날 때도 있지요. 그래도 지 엄마는 좀 따르는 모양인데 난 왠지 그 앨 보면 속이 타기도 하고, 나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지요. 난 그 애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걸 보면 내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칠 때도 있었어요. 그건--- 내가 그 애한테 할 말이 없는 아버지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난 집사람을 이해해요. 안됐기도 하고--- 그런데 집사람이 넋 나간 사람처럼 아이한테만 매달리는 걸 보면 아무 소용없는 일에 기를 쓰고 집착하는 것 같아 화가 날 때도 있어요. 아, 그리고 뭐라고 물으셨더라--- 아, 미연이가 잘 하는 거라--- 후, 걘 종일 앉아 뭘 찢기를 잘 해요. 그래서 걔 때문에 집안이 항상 어수선하지요. 다른 아이들처럼 온전하다면 한참 이쁜짓을 할 텐테---
[페이지] 017
[명호부] 난 집사람이 교회에 다니며 시간 낭비하는 것은 딱 질색이요. 여편네가 예수만 잘 믿으면 애가 멀쩡해질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인데 어디 그 게 될 법이나 한 소리요. 아, 하나님인지 예순지 하는 작자가 있었다면 왜 우리같이 없는 놈들한테 병신 새끼를 맹들게 하고, 나중에 고쳐 주겠소?--- 거, 웃기는 소리 아니냔 말이요.
[미연부] 저도 처음엔 집사람과 함께 교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그땐 참 열심히 였지요. 물론 아이에 대한 희망이랄까 신에 대한 믿음도--- 후후 정말 집사람 못지 않았어요. 하지만 제 현실이라는 것이 점점 절 맥 빠지게 하더라구요. 직장에서도 그렇고 더구나 내 가정에서 가장이라는 나의 위치에 대한 회의까지 밀려드는데--- 언젠가 부터 우리 미연이가 영 넘늘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지더라구요. 금세 지쳐 버린 거죠. 그래서 집사람의 극성이 유난히 더 안타까워 성질을 부리곤 하나 봐요.
[음성(교사)] 아이를 사랑하세요?
[명호부] 사랑하냐구요? 그 자식 말고도 다른 식구들한테도 난 사랑이니 하는 따위 간지런 말은 해 본 적이 없수다. 물론 그 놈도 자식새낀데 맘이 영 안 가는 건 아니지. 그 놈 장래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하고--- 돈이라도 넘 들 마냥 많으면 또 모를까, 물려줄 거 하나도 없으니 말하면 괜히 열만 받치지--- 에이구, 술이나 먹어야 그나마 하루하루 견디지. 이 속 타는 거 선생님은 전혀 모를거외다.
[미연부] 난 다른 친구들처럼 승진을 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사업을 할 배짱도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아, 물론 그럴 자본도 없고--- 하지만 어쩝니까? 세상사는 게 이렇게 힘들어도 살아야 하는 거, 절대 주춤할 수 없는 이유가 뭐겠어요? 난 내 아내와 내 아들 그리고 내 하나뿐인 딸을 위해 살고 있어요.
[장] 13장
(어두운 집 앞, 명호가 자전거 위에 앉아 있다. 갑자기 차림이 단정치 않은 세명의 남학생이 허겁지겁 달려와 누구를 찾듯 두리번거린다. 명호는 영문을 몰라 눈만 껌벅일 뿐이다.)
[남1] 이 짜식 어디로 토꼈지?
[남2] 제기랄, 잡히기만 해 봐라. 이 쥐새끼 같은 놈.
[남3] 자, 저쪽 골목에서 우리 흩어져서 찾아보자. (세 명 사라진 후, 종호가 도망치듯 달려와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핀다. 명호가 종호를 보고 반긴다.)
[명호] 아, 혀 엉!
[종호] (갑자기 명호의 입을 막으며) 쉿! 조용히 해. 너 임마, 여태 안 자고 왜 나와 있어? 빨리 들어가.
[명호] 엄마도 안 들어 와--- 았--- 고, 혀엉도 안 들어 왔자않아? 혀엉 이제 어엄마만 오면 되--- 앤--- 다아. (그때 다시 세명이 등장하여 종호를 찾는다. 종호 명호의 입을 막고 한쪽으로 숨어 그들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종호] (혼잣말로 낮게) 어디 두고 보자. (세 명 사라지자 명호와 나오며) 좋아, 명호야,
[페이지] 018
형이랑 같이 엄마 기다리자. 그런데--- 아버지는?
[명호] 자. (명호 종호 얼굴을 보며 너무 좋아한다.)
[종호] (명호의 머리를 만지며) 명호야, 넌 뭐가 그렇게 항상 좋아 웃고 있냐?
[명호] (수줍게 웃으며) 후후후 그--- 그으--- 냥.
[종호] 너 이 형이 좋으냐? (명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난 너한테 좋은 형이 못 돼.
[명호] 혀엉아--- 진희도 좋고 혀엉아도 좋아.
[종호] 짜아식, 넌 임마 이제 애가 아니야.
[명호] 학교에 가면 내가 크다?
[종호] 너 학교에서 좋아하는 여자애 있냐?
[명호] (수줍은 웃음으로 고개를 가로 저으려다 다시 끄덕이며) 이--- 있--- 다.
[종호] (웃음) 짜식, 아, 그 수진인가 하는 애?
[명호] 으응--- 연희도 있다.
[종호] 제법인데? 야, 이쁘냐?
[명호] 이뻐---
[종호] (하늘을 보며) 넌 너무 착해. 아니 항상 아이처럼 순수해서 꼭 천당 갈거야. 저기 별 보이니? 저기 어느 별인가, 널 행복하게 해 줄 곳이 있을 거다.
[명호]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어기? 후후 나 천당 가? 거기 좋은 데야?
[종호] 그럼. (하늘을 보며) 거기 가면 돈도 필요 없고, 학교도 필요 없고--- 그리고 넌 더 멋진 남자가 될 거야.
[명호] (넋 나간 듯 듣다가 좋아하며) 화, 그럼 혀엉두 같이. 진희도 가--- 엄마도 아빠도.
(그때 어머니 지친 모습으로 등장. 명호 반기며 달려가 안긴다.)
[어머니] 너희들 왜 나와 있냐? 종호 도서관에서 오는 길이냐?
[종호] (주춤대다가) 아--- 네. 저 그런데 엄마 왜 이렇게 늦어요?
[어머니] 별 수 있니. 식당 문닫기 전까지 치우고 정리하고, 또 늦게 오는 손님도 있고--- 식당 일이 워낙 그렇지 뭐. 그나저나 넌 어때? 공부 잘 되가니?
[종호] 그저 그래요. 엄마, 저--- 기술학원 가겠어요.
[어머니] 뭐? 무슨 소리.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명호] 어엄마도 같이 천당 가자.
[어머니] (단호하게) 안 들은 거로 하겠다. 네 아버지 실망시키고 싶니?
[종호] 이제 제 문제는 제가 결정해요. 기술학원 나와서도 두 분 잘 모실 수 있어요.
[페이지] 019
[어머니] 그 소릴 늬 아버지가 오냐 하고 받아드릴 거 같니?
[종호] 그러니까 엄마가 아버지한테 잘 말씀 드리세요. 이젠 더 이상 숨이 막혀요. 그래서 저 당분간---
[어머니] 네가 이 엄말 조금만 이해한다면 그런 소릴 할 수 없을 거다. 물론--- 종호야, 공부라는 게 힘들다는 건 알아. 하지만 모두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에 가잖니. 더구나 넌 할 수 있어. 넌 장남이야. 우린 모두 널 믿는다.
[종호] 그럼, 전 누굴 믿죠? 아니 뭘 믿어야 하나요?--- 아니예요. 죄송해요.
(무대 안 쪽에서 세 명의 소리 "너 거기 서, 임마!" 하고 들리자 종호 후다닥 달려 사라진다.)
[어머니] 아니, 무슨 일이니? 종호야! 종호야!
[명호] 형--- 아!
[장] 14장
(빗소리가 크게 들린다. 명호의 아버지가 시선을 먼 곳에 두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 명호가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다.)
[아버지] 왜? 너도 한 대 피우고 싶냐? (짧게 미소한 뒤 길게 한숨을 쉬고 다시 먼 곳에 시선을 둔다.) 비가 제법 오래 쏟아질 참인가 보다.
[명호] 비가 와서 좋다. 맨날 맨날 비가 왔으면 좋--- 겠--- 다.
[아버지] 뭔 소리냐? 자식, 후후--- 그러다 정말 깡통 찰지도 몰라, 임마. 그래도 좋으냐?
[명호]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아버지 얼굴을 본다.) 비가 오면 술 안 팔잖아.
[아버지] 자식--- (웃음) 명호야,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명호]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한 듯 담배 연기만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 거 맛있어?
[아버지] (명호 어깨를 잡고 다시 천천히 질문한다.) 야, 명호야. 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명호] (수줍게 웃으며) 나--- 수진이랑 결--- 혼 할거야.
[아버지] 후후, 결--- 혼? 그게 뭔데? (두 사람 웃는다. 아버지가 명호의 머리를 쓴다.)
[명호] 아부지, 내일도 비 와?
[아버지] 글쎄다. 내일도 비가 오면 안 되는 거야. 이 아빠가 일을 해야 늬들 먹고살지, 숭밥 먹고, 학교 가고 하는 거랑 네 형 대학도 가야하고. 그래서 이 애비가 죽자고 땀을 빼는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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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호] 형아 대학 안 간데---
[아버지] 쓸 데 없는 소리. 늬 형만 믿어. 이제 턱 대학 뺏지를 달고 이 애비를 기쁘게 할 테니까.
[명호] 형아는 대학 안 가는데--- 아부지 대학이 멀어?
[아버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천장을 응시하며) 대학--- 멀지. 그래도 머지않아 늬 형은 골인할거다.
[명호] 그럼 형이 나도 데리고 가?
(아버지 소리 없이 웃다가 명호의 코를 살짝 잡아당긴다. 두 부자 웃는다.)
[음성(진희)] 명호 오빠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머무르려는가 보다. 엄마 아빠는 자꾸 늙어 가는데. 그리고 나도 어른이 될 텐데. 내가 어른이 되면 지금처럼 명호 오빨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 명호 오빠도 점점 어른이 되겠지. 단지 나보다 늦게 되는 것 뿐일거야.
[장] 15장
(민철이 긴의자에 길게 누워 과자를 먹으며 성인용 잡지를 보고 있다. 전화 벨소리 울리자 민철 수화기를 든다.)
[민철] 여보세요? 음, 준호구나. (사이) 넌? 난 아직 영어는 손도 못댔다. 내일이 시험 마지막이라 그런지 더 하기 싫어. (사이) 응. 내 동생이랑 둘이 있어. (미연이 인형을 안고 나와 바닥에 앉는다.) 엄만 교회 가셨어--- 응? (사이) 아--- 안--- 돼. 엄마 곧 오셔. 다음에 와. 나도 곧 공부해야지. (사이) 하지만--- 난 누구랑 같이 있으면 더 집중이 안 돼서--- (사이) 응. (사이) 그--- 그래. 열심히 해. (사이)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수화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미연을 보다가 다시 잡지를 본다.)
(미연이 인형을 만지작대다가 바닥에 널려 있는 다른 잡지 하나를 보다가 갑자기 찢는다. 표지는 야한 여자의 포즈를 담고 있다. 그 소리에 놀란 민철이 그걸 빼앗는다.)
[민철] 안돼. 그건 빌린 거란 말이야. 에이, 너 정말 맞을래. (때리려다 멈칫하고 다시 전화기를 들고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아, 성일이니? 나야, 민철이. 너 시험 공부 많이 했니? (사이) 아니, 저--- 너네 집에서 공부해도 되나 하고--- 빌린 책도 줄 겸해서 (사이) 그래? 할 수 없지 뭐. (사이) 그래 그럼 안녕. (수화기 내려놓고 잡지들을 정리해 치우고 영어 책을 꺼내 공부할 준비를 한다.) 미연이 너 좀 나가 놀 수 없니? (한숨) 너 얌전히 있지 않으면 오늘 나한테 혼날 줄 알아. (미연 인형만 만지작대며 잠시 눈치를 보는 듯하다가 입술을 조그맣게 달삭 거리며 혼잣말처럼 계속 중얼중얼 대다가 천천히 잠이 든다. 잠시 후) 미연아, 물 좀 갖고 와. 미연아! (짜증스럽게 일어나 잠든 미연을 보고 흔들어 깨운다.) 야, 방에서 자. (미연 쓰러져 눕는다. 인형을 안고 누운 미연의 바지 뒤에 붉은 핏자국 보인다. 미연의 초경을 본 민철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미연의 품에서 인형을 빼내고 미연의 머리에 쿠션을 베어 주고 한참을 빤히 미연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연의 뺨에 손을 대보고 나서 책을 들고 들어간다. 조명은 잠든 미연만을 비춘다.)
[페이지] 021
[음성(미연모)] 미연아, 난 널 사랑한다. 널 처음 어렵게 낳았을 때 네 까만 눈빛과 고달삭거리는 작은 입술은 얼마나 귀여웠는지. 난 네가 그저 건강하고 착한 딸로 자랐으면 하는 소망뿐이었지. 하지만 그 동안 네 몸도 여는 딸들처럼 커가고 있었구나. 네가 클수록 이 엄마의 어깨도 더 무거워지는 걸 어쩌지? 후후, 이젠 널 엎고 다니기엔 너무 커버렸으니까. 아, 널 위해 이 엄마가 보낸 지난 세월이 문득 헛된 욕심이나 집착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난 네 현실을 거부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미연아 이젠 너의 지금 그대로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 드리고 싶구나. 아, 물론 너의 바른 성장을 위한 기도와 정성은 계속 되겠지. 그리고 네 아버지도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걸 네가 깨닫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장] 16장
(침대 위의 산모. 곧 아기를 나을 듯하다. 주변에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있다. 그들은 가뿐 숨을 몰아쉬는 산모를 격려하고 있다. 무대 다른 한 쪽엔 산모의 젊은 남편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이고 있다.)
[음성(남편)] 여보, 우리 아기 이름은 어떤 게 좋을까?
[음성(아내)] 아이, 당신도---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잖아요.
[음성(남편)] 아들이든 딸이든 당신처럼 잘 생기고 건강한 놈이면 돼지 뭐. 이름은 만약을 대비해 두 개를 지어 두자구.
[음성(아내)] 좋아요. 당신 좋은 아빠가 될 자신 있어요?
[음성(남편)] 걱정 말라구.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당신과 내 아이만은 꼭 든든하게 지킬테니까.
[음성(아내)] 우리 아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 크게 들린다. 기쁜 표정을 짓는 남편, 그러나 그의 얼굴엔 여전히 초조함이 어린다.)
[음성(아이)] 엄마, 아빠 사랑해 주세요.
(무대위에는 모든 조명이 꺼지고 14가정의 아동의 목소리가 들린다.)
14가정 아동의 녹음된 목소리
1. 엄마, 사랑해--
2. 아빠, 사랑해요.
3. 형, 사랑해---
4. 누나, 사랑해---
5. 내 동생 ♥♥야, 사랑해---
6. 할머니 사랑해요---
[페이지] 022
[장] 17장
(어두운 무대 한 곳에 떨어진 조명 안에 의자에 앉아 있는 사회자 (혹은 의사) 보인다.)
[사회자] (무릎 위 책을 덮고, 안경을 벗어 접으며)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경험했던 이야기, 또는 언젠가 경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두 가정을 통해 지켜보았습니다. 정신박약아인 명호와 자폐아인 미연이. 이들 가족의 갈등과 그로 인한 고통은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아, 물론 장애아들을 둔 가정 가운데는 나름대로 가족간의 화목을 유지해 가며 장애아동의 긍정적인 성장에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 가정도 있습니다. 더구나 장애아동을 위한 가족의 정성을 모으는 동안 더 큰 결속력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오늘은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장애아동을 둔 가정의 부모를 중심으로 한 각 가족구성원 간의 심리적 갈등과 문제점, 그리고 장애아동을 위한 가족의 역할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부모는 태어날 우리아기가 건강하고 정상이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는 달리 장애아동이 태어났을 때, 그 부모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고 말지요. 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그 부모들이 직면하는 위기들을 단계적으로 분석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아이에 대한 충격과 슬픔이 차츰 그 사실을 거부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고 현실 상황으로부터 피하려 하지요. 이것은 결국 죄책감과 분노, 극도의 불안감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많은 의료기관을 쫓아다니게 되고, 심지어는 지나치게 종교나 무속 등에 의지하기도 하지요. 바로 미연이 어머니의 경우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을 통해 때론 자신감을 갖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동의 장애에 차츰 적응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지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부모의 전 생애에 걸쳐 되풀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아이가 신체적으로 성장할수록 부모는 아이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학교, 진학, 취업, 결혼 등--- 앞 서 본 명호와 미연의 부모처럼 그들의 심한 스트레스는 부부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른 형제들에게 보상심리로 지나친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 정상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장애 형제에 대한 미안함,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편한 시선에 대한 수치감, 분노를 느끼기도 하지요. 아, 물론 우리의 등장인물 진희와 같이 적극적으로 오빠에게 다가가려 하는 예도 있습니다만, 진희 역시 가정에 대한 불안과 장래에 대한 걱정을 보여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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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러한 가족 내 갈등을 해소하고 장애아동의 치료와 긍정적인 성장을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가족 모두의 낙관적인 협력, 그리고 장애아동에게 가족간의 사랑을 인식하게 하고 그들 모두 존중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장애아동의 현실을 가족 모두 수용하고, 갈등이 생길 때에도 서로의 좌절과 생각을 자유롭게 털어놓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의료기관이나 재활기관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서도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댁의 아이에게 장애가 있기 때문에 지금 당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아이의 눈빛을 보십시오. 이제, 부모님의 욕구와 기대로 인해 고통받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의 우리아이를 수용하고 더디지만 그 아이의 속도에 함께 발맞추어 주십시오. 그 아이에겐 누구보다 순수하고 충분히 아름다운 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 아이들의 세계를 인정하고 행복을 지켜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누군가 자신의 호흡을 아끼고 사랑해 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 그들의 세계와 잠재역량을 하나씩 하나씩 우리에게 선물로 보여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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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화면에 13명의 아동의 얼굴과 자연스런 모습을 담은 화면을 계속 띄우면서 읽어 주세요. (형제의 목소리로 읽어 주시고, 잔잔한 배경음악을 삽입해 주십시요)
나의 동생 재민아, 진수야, 영후야, 우진아, 성수야, 승현아, 승정아! 나의 영훈이 오빠, 병근이 오빠! 나의 미진이 언니, 미라 언니, 화영이 언니!
((남들과 다른 나의 동생, 오빠, 언니로 인해 난 내게 그런 형제 자매가 있다는 사실로 때론 나 자신을 비하하기도 하고, 그런 나의 형제자매를 수치스럽다고 느끼면서,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장애를 지닌 언니, 오빠, 동생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부모님의 나에 대한 과잉기대와 보상심리로 때로는 숨이 막힐 것도 같았고, 그래서 나의 형제에 대한 분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난 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하나라는 암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잠깐동안 침묵을 유지하십시오.)
((그러나 나의 형제를 부정하고, 거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타인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많은 욕심속에 흐트러질 때 누구도 미워할 줄 모르는 그를 보면서 흐트러진 나를 바로 잡게 해 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오늘 나의 언니, 오빠, 동생의 손을 꼭 잡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멋진 동행자가 되어 줄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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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화면에 13명의 아동의 얼굴과 자연스런 모습을 담은 화면을 계속 띄우면서 읽어주세요. (엄마의 목소리로 읽어 주시고, 잔잔한 배경음악을 삽입해 주십시요.)
나의 아들, 딸 재만아, 영훈아, 미진아, 진수야, 미라야, 영후야, 우진아, 성수야, 화영아, 광일아, 승현아, 민우야, 병근아, 승정아! 엄마는 너를 임신했을 때 건강한 아이를 원했지. 니가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무척 많은 기대를 했었단다. 그러나 니가 장애아동임을 처음 알았을 때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깜깜하고 암담한 충격을 받았단다. 그리고 설마 내 아이가 그런 장애를 가질까 하는 거부와 부정의 맘으로 너를 병원, 한의원, 교회, 절, 재활원, 갖가지 치료 센타 안가 본 곳이 없단다. 성장하는 너를 보면서 엄마는 때로는 타인에게 너를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하면서 너를 집에만 가두기도 하고, 때로는 너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암담하고 화가 나서 너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만 있다면 보내고 싶었단다. 엄마는 때때로 너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받나 하는 원망도 했고, 네 또래의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서 질투의 맘과 열등감으로 고통받을 때도 있었단다. 그리고 때론 엄마의 어떤 잘못이나 죄 값 때문에 니가 장애를 입은 것으로 생각되어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니가 왜 그리 측은해 보이는지--- 그래서 어떤 땐 널 과잉보호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널 지독히 미워하고 배척하기도 하지--- 엄마는 너를 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너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했단다. 차츰 무거워지는 너를 느끼면서 엄마는 니가 학교는 갈 수 있는지--- 교육을 받을 수는 있는지--- 누군가 너에게도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지 걱정되었고, 10대를 넘어서는 너의 신체적 변화를 보면서 마냥 아이로 남아 있는 너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 주어야 하는지--- 니가 취업을 해서 너의 밥벌이는 할 수 있을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지--- 때론 아득히 숨히 막히고, 때론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단다. 우리 가족이 너로 인하여 다투고 미워할 때 사람들은 니가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지만 엄마는 니 눈 속의 두려움을 느낀단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너에게 큰 나무가 되어 줄 수 있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이 세상을 떠나면 누가 너의 곁에 부는 비바람을 막아 주고, 누가 너에게 살아갈 열매를 줄 수 있을지--- 인간이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너를 끝까지 지켜 주고 싶구나.
(잠시동안 침묵을 유지하십시요)
엄마는 언젠가 한번은 너에게 엄마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말해 주고 싶었어! 그리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너로 인하여 엄마가 얼마나 엄마의 인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알려 주고 싶었고--- 끝으로 너에게 꼭 한 가지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어! 때론 엄마는 너로 인한 혼란과 위기의식으로 고통받지만 동시에 너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누구에게도 맘 아프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과 우리의 무사한 일상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며,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빠도 말은 하지 않지만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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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화면에 13명의 아동의 얼굴을 띄우면서 읽어 주세요.
(사회자의 목소리로 읽어 주세요)
재민이, 영훈이, 승정이는 다운증후군이지요. 의학적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 다운증후군은 성세포인 21번째의 염색체가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미진이, 미라, 영후, 승현이는 뇌성마비의 아동으로 경직성 신체장애를 동반하고 있는 중복장애 아동입니다. 광일이와 우진이는 자폐 아동으로 자기 속에만 갇혀 있고 우리들과의 교류를 거부합니다. 성수, 민우, 화영이는 전형적인 정신지체 아동으로 그들은 우리들 같이 내일을 걱정하거나 어제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근심걱정이 없고, 시기와 질투도 없습니다. 그리고 진수는 편 마비가 있는 정신지체 아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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