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ㅣ연극놀이-활력옹달샘

현대희곡촌극 모음_말짱도루묵_쓸모 없음의 쓸모_회색공포_엄마의 집_

실다이 2010. 1. 28. 17:12

 

 

 

■ 안동대학교 1999학년도 2학기 <현대희곡론>강좌의 촌극대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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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조

 

말짱도루묵

 

때 : 19xx년의 평범한 어느날

장소 : 경북 포항 죽도시장 제 2 어시장

등장인물 : 최씨아지매, 울진댁, 서천댁, 혁이엄마, 장복애비, 동삼이, 신혼댁, 신혼남, 시장관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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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무대 양쪽으로 최씨댁과 울진댁, 서천댁과 혁이엄마가 도마와 칼을 앞에 놓고 생선행상을 하고 있다. 이따금, ‘가재미 사이소’, ‘떨이시더. 떨이’, 같은 넋두리를 종종 내뱉으며 떠들기도 하고, 칼로 생선을 가르며 손질하기도 한다. 그 때, 장복애비 한 손에 좀 두툼해보이는 비닐 봉지를 들고는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등장한다. 울진댁, 서천댁, 혁이엄마 앞을 지날때마다 각각 ‘장복아베요, 이거 좀 사가소’, ‘장복아베! 이거마 살이 꽉 찬게 참 맛있니더’, ‘장복아베요, 이거 간이 알맞게 배긴게 조~옿니더’ 등을 내뱉으며 장복애비를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정작 장복애비는 최씨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은근히 미소지으며 최씨댁을 바라보는 장복애비.

 

최씨댁 : (별로 반갑지 않은 듯 바쁜 척하며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뭐하러 왔노?

장복애비 : (부드러운 표정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은근히) 그라지 말고 저 조기 한 마리만 좀 두가!

최씨댁 : (계속 시선을 피하며 퉁명스럽게) 싫다, 마! 외상이나 빨리 갚그라.

장복애비 : (타이르듯) 내도 장복이 어마이 제사는 지내야 될 거 아이가......그라지 말고 조기 한 마리만 좀 두가!

최씨댁 : (계속 쌀쌀하게) 외상부터 갚으라 카이!.....벌써 삼만 이천원이구만!

장복애비 : (조금씩 약이 오르는 듯 약간 인상이 궂어지며) 어~따 거 참, 디게 짜내. 거, 사람 유돌이 좀 봐 주라.

최씨댁 : 내사 마 싫다. 돈 주기 전에는 마 조기 대가리도 못 띠준다.

장복애비 : (점차 언성이 높아진다) 거, 사람 드럽게 만드네. 내가 이래 애걸하는구만! 내 다음주에 장복이 퇴원하면 주꾸마.

최씨댁 : 싫다 카는데 와 이라노. 디~게 찔기네!

 

이 때, 보다 못한 울진댁이 한마디 끼어든다.

 

울진댁 : 최씨 아지메요. 그라지 말고 조기 한 마리만 주소, 마! 어마이 제사라 안 카는교.

서천댁 : (거든다)맞니더! 우옛든간에 제사는 지내야 될 거 아잉교. 사람이 너무 그캐도 안 좋은 기라예.

 

혁이 엄마도 같이 동참한다.

 

혁이엄마 : 예, 맞니더. 아지메요, 제사라 카면...

서천댁 : (혁이 엄마를 툭 치며 말을 끊는다) 밥 안되믄 가마 있그라.

혁이엄마 : (기가 죽는다)

최씨댁 :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끝내 못이기는 척, 내키진 않으나 마지못해) 이버이 마지막이다. (조기 한 마리를 성큼 꺼내어 비닐에 싸며) 우야든동 제나 잘 지내그라. (여전히 퉁명하게) 이거는 마, 돈 안 받을테이 신경쓰지 말고..... (건네준다) 자, 여 있다.

장복애비 : (금새 표정이 밝아지며) 내사 마 최씨 없음 우예 사꼬! 고맵다이, 내 마 외상 그음방 갚으꾸마. (능글맞게) 오늘 마, 최씨 어억시로 이뻐빈데이....

최씨댁 : (귀찮다는 듯) 내가 어데 자네 이뻐가 주는 줄 아나! 어매없는 장복이가 꼭 애비없이 공부하는 우리 재석이 같애가꼬 하도 애처로와서 주는기다. 아바이라고 하나 있는게 술만 처물 줄 알았지 어데 이 쁜데가 있어야제!

장복애비 : (달래며) 와 또 그래쌌노! (능글맞게 웃으며) 헤헤헤, 고로케 퉁퉁거리니까 더 이뿌구마!

최씨댁 : (민망한 듯 화를 내며) 씨끄럽다, 마! 얼렁 가그라!....좀 있다가 우리 재석이 서울서 오면은 자꾸 외상 가간다고 확 일랐불라마!

 

그 때, 멀리서 관리소장의 목소리 들려온다.

 

관리소장 : (우렁차게) 여어~ 아지매들 마이 팔았는교!

 

관리소장 특유의 역겨운 미소를 지은채 뺀질거리며 등장한다. 툭 튀어 나온 배에, 머리는 기름으로 확 넘기고 번듯한 양복에 윤기나는 구두가 꼭 제비족같아 보인다.

 

울진댁 : (마치 불청객을 대하듯) 소장님이 또 왠일인교!

관리소장 : 와요! 내는 오면은 안되는 댄가 보지요?

서천댁 : 또 뭔소리 할라고 왔는지 불안해서 그카는거 아인교.

혁이엄마 : 빨리 얘기하소. 사람 불안하게 하지 말고.

관리소장 : (계속 뺀질대며) 진정하소, 진정하소! 와 이케들 급한교! 날 못 자아무서 안달이구 마.....(장복애비를 발견하고는) 어? 오형도 와있았네요.

최씨댁 : (다그치며) 오형이고 뭐고간에 빨리 얘기 안하나?

관리소장 : 아따, 최씨아지매. 짬밥도 장내 최고이신 분이 뭐가 그래 급한교. 인자부터 얘기할 테이까네 진정들 하소. (입맛을 한 번 다신다) 오늘 내가, 아니 이 시장관리소장이 이렇(강조하며) 직접 친히 여 죽도 2 어시장까지 온 것은 (뜸을 들이며) 에.......딴 게 아이고...... 에.......

혁이엄마 : (답답한 듯) 뭔교? 퍼뜩 좀 하소.

관리소장 : 딴게 아이고....에......아지매들한테 조~오은 소식 하나 말해줄라고 왔니더.

서천댁 : (다그치며) 글케 그게 도대체 뭔대요?

관리소장 : 인자 얘기 안하는교. (다시 목청을 가다듬고) 이번에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왔는데요.... 거 이름이 뭔고 허니......... (또박또박) 구역개발 정리사업이라 카는 거시더.

네명모두 : 그게 뭔데요?

관리소장 : 그게 뭐냐 카면은 ...... 에...... 여 죽도 2 어시장에 이번에 건물을 짓기로 했다 이거시더.

네명모두 : (놀라며) 뭐요?

소장 : 그이까 이번에 정부에서 여길 재개발한다 이거시더. 그래가꼬 여기에다가 커다란 종합 회타운 건물을 만든다 아인교!

최씨댁 : (기가 막힌다는 듯 버럭 화를 내며) 누 맘대로 여 건물을 지아!

울산댁 : (따지듯) 아니, 엄연히 여 자리 주인인 우리들이 있는데!

관리소장 : 엄연히 따지자면 여는 정부 소유라요. 그동안 아지매들은 정부에서 빌려준 땅에서 장사한거고! 아 지매들이 이 땅 사가꼬 장사한 거 아이잖아요. 그래가꼬, 정부가 이번에 그 땅 다시 찾아가꼬 좀 더 발전적인데 쓰자카는거 아인교! 그게 바로 재개발이라 카는거시더. 놀고 있는 정부 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는거, 이게 바로 토지 개혁 아인교!

최씨댁 : (불안한듯) 그라믄...... 우린 우째 되는기고!

관리소장 : (깐죽거리며) 지금 정부가 어떤 정분교! 구우욱민의 정부 아인교! 아지매들 살 방도는 다~ 마련해 주는 기라요.

서천댁 : 우예 해주는데요?

관리소장 : 내가 첨에 좋은 소식이라 안 카든교!... 아지매들 한 사람마다 정부에서 공짜로 생계대책 보조금이 나간다 아인 교. (역겹게 웃으며) 하,하,하, 얼마나 좋은교. 공짜로 큰 목돈도 생기고....

혁이엄마 : (다급하게) 울마씩 주는데요!

관리소장 : (약간 뜸을 들이다가) 개인당 84만 7천 7백원씩 나가니더.

 

순간, 청천벽력같은 소장의 말에 격분하여 관리소장을 무섭게 몰아부친다. 모두 벌떡 일어나 목 에 핏대를 세워가며 관리소장의 옷자락을 붙잡고 따지기 시작한다.

 

최씨댁 : (옷자락을 붙잡고 따지듯이) 그 돈을 갖고 누 코에 붙이노.

울산댁 : (흥분한 어조로) 우리가 무슨 걸뱅인교.

서천댁 : 아~들 껌값도 안되는게 생계대책이가!

혁이엄마 : 우린 인간도 아이가. 그 돈으로 우째 사는교!

관리소장 : (상황이 심상치않음을 알고는 애써 달래며) 와들 이카는교. 내 말 좀 들어보소.

최씨댁 : 니같으면 진정하겠나! 우리 밥줄이 끊키게 생겼는데.

관리소장 :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 말 좀 들어보라 안 카는교.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혼잣말로) 무식해가 꼬는 마! (다시 모두에게) 지금 아지매들이 생선파는 그 땅요, 그거 많아봤자 한 평 남짓 될까 말까시더. (품에서 서류를 꺼내들며) 이거 보면은 알겠지만 그거 현시가로 따져보면 최대한 받아봤 자 11만 2천 칠백원밖에 안되요. 거다가 정부서 앞으로 살아가는데 보태라고 73만 오천원이나 더 얹어준다 아인교. 원래 정부땅이라 안 캤는교. 땅주인이 이방인 내보내는데 땅값에다 보조금까이 주면은 고맙다 칼 일이지 오히려 따지고 들긴 와 따지고 드는교. 그냥 안 쫓아내고 돈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구만.

최씨댁 : (달려와 관리소장의 멱살을 붙잡고는) 니 지금 뭐라캤노. 뚫린 입이라고 주께면은 다 말인줄 아나.

관리소장 : (멱살을 뿌리치며) 와 내한테 이카는교. 나는 중간에서 말만 전해줄 뿐이구만.

서천댁 : 그라믄 시에 찾아가믄 되겠구만요.(모두에게) 우리 시로 가시더.

관리소장 : 지금은 시로 가도 소용없니더.

네명모두 : 와요?

관리소장 : 그게 말이시더.....(머뭇거리며) 그게........그.......

울진댁 : (흥분한 어조로) 와 시로 가도 소용없는교?

관리소장 : 그......원래는 이 자리가 정부땅인데, 정부가 아지매들한테 보조금을 줄라카면 돈이 있아야 될 거 아 인교. 그래가꼬..........이 땅을 정부가 돈을 받고 팔았다 이말이시더.

네명모두 : (기가 막힌다는 듯) 예?

관리소장 : 원래 이 토지사업이라는게 항상 예산이 부족한 법이시더. 정부에서 어데 이런 중소도시로 예산을 마이 주는교! 그게 아이거든요. 그러이까 시에서도 죽을 지경인기라요. 구역정리 하라는 정부 지침 은 따라야 되고 돈은 없고..... 그래가꼬, 저 밑에 횟집하는 윤사장 안있는교.

서천댁 : 이번에 부동산 해가꼬 떼돈번 횟집 윤씨 말인교.

관리소장 : 야, 그 윤사장요. 그 윤사장이 이 죽도 2 어시장 다동 구역을 반드시 개발한다는 약속하에 샀다 아인교. 시 입장에서 보면은 부족한 예산은 예산대로 채우고 개발은 개발대로 하고, 일석이조 아인 교, 하하하!

최씨댁 : (버럭 소리를 지르며) 웃기는 미친 지랄 만났다고 웃나! 남은 지금 모가지에 밥이 걸레가 왔다갔다 하는구만..... (넋두리하듯) 내는 못나간다. 내쫓까 낼라믄 낼 죽이고 보내라. 내는 죽어도 못나간데이.

혁이엄마 : 우쨌든 시에서 관할할거 아인교!

관리소장 : (답답하다는 듯) 내말은, 이제 소유권이 정부에서 윤사장한테로 넘어갔다 이말이시더. 다시 말하면, 국영지에서 사유지로 됐다 이말이시더. 단지 시에서는 개발에 대한 관리감독만 하면 그만이라요. 혁이엄마는 그나마 요서 젤 젊으니까 쉽게 알아물 줄 알았는데 와 혁이엄마꺼정 그카는교.

서천댁 : (화를 내며) 젊고 늙고간에, 강짜로 내몰리게 생깄는데 우예 화가 안나겠는교. 혁이엄마는 한달 빠짝 생선대가리 팔아봤자 중학교 다니는 혁이 용돈도 제대로 못주는데 우예 눈이 안뒤집히겠는교. 힘없 는 서민한테 이라는게 어딨는교, 강제로 내쫓고...

관리소장 : (눈이 휘둥그래지며) 강짜라니요! 구욱민의 정부가 와 죄없는 국민을 강짜로 쫓아내요 그라믄 아까 그 보조금은 정부서 아지매들한테 빌린기라요? 그거는 아이잖아요. (타이르듯) 마, 모두 잘 살자고 이카는긴데 서로서로 협조 좀 하시더.

최씨댁 : (털썩 주저앉으며) 아이고 내는 못나간데이. 내 배를 째는 한이 있어도 절대루 못나간데이.

울진댁 : (탄식한다) 원래......힘있는 놈이랑 돈 있는 놈이랑 같이 술잔 부딪치는 법 아인교. 이노무 지랄같은 세상! 국민의 정분지 뭔지도 다~똑같은 기라요.

관리소장 : (한심하다는 말투로) 그케 봤자 아~무 소용없니더. 이미 이거는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는기라요.

최씨댁 :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며) 니 지금 법이라 캤나!

관리소장 : (의아해하며) 와요?

최씨댁 : 그래, 우리 법대로 함 해보자. 니 조금만 여 있그라. 좀 있다가 법공부하는 우리 재석이 서울서 오면 은 함 따져보자.

울진댁 : (반가운 어투로) 맞다. 아지매 아들래미 법공부하재.

서천댁 : (맞장구치며) 그래, 아지매 아드님 오면은 뭔 방법이 나오겠네요.

관리소장 : 은제 오는데요?

최씨댁 : 좀 있시믄 올끼다. 늘 오던 시간 다 됐으니까.....

관리소장 : (괜히 마음쓰는 척) 그라믄 쪼~매만 기다려 보시더.

 

여전히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채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지매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이 신혼남과 신혼댁이 티격태격 싸우며 등장한다. 짙은 화장에 짧은 원피스를 입고 쫑알거리는 신혼댁과 그 옆에서 쩔쩔매는 멍청한 표정의 신혼남.

 

신혼댁 : (신혼남에게 짜증을 내며) 나 이런데 오기 싫댔잖아. (코를 막으며) 아우~아 칙칙한 냄새! 데파트먼 트 가서 사도 될 걸 왜 꼭 여기서 사자는거야? 아우~짜증나!

신혼남 : (어린애같은 목소리로 쩔쩔대며) 미안해 자기야! 엄마가 꼭 여기서 사라잖아. 생선은 여기서 사야 싱싱하다며....

신혼댁 : (짜증섞인 목소리로) 유별나, 진짜! 이 더러워 빠진데가 뭐가 좋다고! (바닥을 보며) 아우~바닥에 더러운 물좀봐!

울진댁 : (신혼댁에게) 새댁이요. 이 간고등어 함 보소. 간이 잘 배인게 참 맛있니더. 입에 드가면 막 녹는다이까네요.

 

울진댁의 소리에 신혼남과 신혼댁 동시에 울진댁에게 시선을 준다. 그리고는 바닥의 물이 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울진댁에게 다가간다.

 

신혼댁 : (신혼남에게 알아서 하라는 눈치를 주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신혼남 :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저, 아줌마! 이 고등어 얼마씩 해요?

울진댁 : 두 마리 오천원 주소.

신혼남 : (돌아서있는 신혼댁에게) 자기야, 어떡할까?

신혼댁 : (귀찮은 듯 짜증을 내며) 몰라! 자기가 알아서 해.

신혼남 : 응, 알았어! (울진댁에게) 아줌마, 네 마리만 주세요.

 

울진댁, 고등어 네 마리를 비닐에 싸고는 건네준다. 그러나, 건네려는 순간 실수로 비닐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순간, 바닥물이 신혼댁에게 튀고 신혼댁, 극도의 흥분과 함께 어쩔 줄 몰라하며 마구 화를 내기 시작한다.

 

신혼댁 :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버럭 지르며) 아줌마, 조심 좀 해요. 더~리한 물 다 튀었잖아요.(손으로 옷의 물기를 털어내며) 아우~찝찝해.

울진댁 :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새댁요, 미안하니더. 내 고등어 한 마리 더 주꾸마.

신혼댁 : 지금 고등어가 문제에요? 누굴 거지로 아는거야 뭐야! (신경질적으로 물을 털어내며) 늙어서 기력없 으면 팔러 나오질 말든가.

울진댁 : (기분이 좀 상한 듯) 새댁요. 내 미안하다 안 카는교!

신혼댁 : 미안하면 다예요? 아줌마, 이 옷이 얼만줄이나 알아요? 그따위 생선 수십, 수백마리 팔아도 못사는건 데..... 아줌마가 물어줄 거냐구요?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최씨댁 보다못해 한마디 한다.

 

최씨댁 : (천천히 일어서며 흥분한 어조로) 뭐? 그따위 생선?......이 생선이 어떤 생선인데 그따우라니....젊은 샥 시가 주디서 나오는대로 쳐 주끼고 있구마!

신혼댁 : (이건 또 뭐냐는 식으로) 아니, 이 아줌만 또 뭐야?

최씨댁 : 내 여그 상인 대빵이다, 와?

신혼댁 : 아니 근데 이 아줌마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반말이!

최씨댁 : 내 딸같은 아한테 반말 좀 하믄 안되나?....그라고 너거는 (생선 하나를 집어들며) 이 생선이 그따우 정돈지는 몰라도 우리한테는 이게 금덩어리다. 울진댁이는 이 생선가지고 아들 둘이 학교 보내고 병든 지 서방 치료비 까이 대고 있다. 너거는 뱃때기에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울진댁이 한테는 이 생선이 너거 그 빛까번쩍한 옷보다 몇배 더 빛나고 중한 보석이다. 아나?

신혼댁 : (가소롭다는 듯) 아니 이 아줌마들이 이제 카~풀로 덤벼드네. 나이를 먹었으면 곱게 먹을 일이지.

울진댁 : (참다못해 뛰쳐나가서 신혼댁의 멱살을 불잡고는 큰 소리로) 이 가스나가 보자보자하이까 사람을 무슨 개똥심지로 아나! 여서 생선이나 팔고 있다고 사람 우습게 보는기가! 니가 내 나이 먹는데 보태준거 있나. 보태준거 있냐고!

신혼댁 : (신혼남을 보며 짜증낸다) 자기 뭐해?

신혼남 :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줌마, 이거 놓고 말로.....

신혼댁 : (한심하다는 듯 소리를 버럭 지르며) 자기야!

신혼남 : (화들짝 놀라고는 어설프게 큰 소리로) 아,아줌마! 지,지금 어,어,어디다가 포,포,폭력을 쓰고 그,그래 요? 이,이,이 손 노,놓지 모,못해.....요?

 

한참을 지켜보던 장복애비가 보다못해 말린다.

 

장복애비 : 모두 그만 하소. (최씨댁에게) 지금 땅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여서 싸우면 뭐하노! 그만 둬라. (신 혼댁에게) 아가씨도 그만 하소. 어른한테 그카믄 쓰나!

울진댁 : (자리로 돌아가며 처량하게 내뱉는다) 아이고~ 내가 이 더러운 꼬라지 안당할라믄 일찍 디져 브래야제!

최씨댁 : 이게 다... 돈없고 힘이 없어가 그런기라...(목에 힘을 주며) 법공부하는 우리 재석이만 와봐라. 너거같은 것들은 팍~ 기죽았뿔테이까네!

관리소장 :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근데 와 그 아들래미는 안오는교? (시계를 보며) 퇴근시간 다 되가는데....

최씨댁 : 쪼매만 더 기다려봐라. 곧 올끼다. (혼잣말로) 근데 야가 올시간이 넘었는데 와 이케 안오노!

 

그 사이 무대 우편에서 동삼과 회칼 등장한다. 반창고를 십자로 붙인 얼굴에 찢어진 청바지, 주먹장갑을 끼고 껌을 짝짝 씹는 모습이 영락없는 불량배다.

 

동삼 : (우렁차게) 아줌마들 마이 팔았으요!

 

동삼을 본 최씨댁 외 3명, 불쾌함과 두려움이 점철된 표정으로 무언가 열중인 척 허둥댄다. 동삼, 그들을 한 번 쭉 훑어보고는 혁이 엄마에게 다가간다.

 

동삼 : (비꼬듯) 아이고, 오늘은 생선이 좀 마이 남았네!

혁이엄마 : ..........

회칼 : (팔을 쭉 뻗어 손바닥을 까딱까딱 거린다)

혁이엄마 : .......

동삼 : (경고조로) 빨랑 줘요!

혁이엄마 : (품에서 만원짜리 몇 장을 건네주며) 오늘은 진짜 마이 못팔았다.

동삼 : (비꼬며) 내도 죽을 지경이요.

 

회칼, 돈을 낚아채듯 뺏고는 주머니에 쑥 집어넣는다. 그리고 서천댁앞에 서고는 역시 손을 내민다.

 

서천댁 : (잠시 머뭇거리다가 억지로 입을 뗀다) 오,오늘은 안된다.

회칼 :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나도 오늘은 안되요.

서천댁 : (애걸하며) 이거 내일 우리 월세 낼 돈이다. 안그라믄 별보고 자야 된다.

동삼 : (겁을 주며) 아~시발! 좋은 말로 할 때 줘요. 강제로 뺏기 전에...나도 이돈 못받아가면 별 보고 자야 되요.

서천댁 : (품안의 돈을 움켜쥐며) 진짜.....오늘은......안된다. 한 번만 사람 사정 봐 두가!

동삼 : (험악하게) 아니, 남에 땅에서 장사를 하면 자리값을 줘야 될거 아니요!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더러운 꼴 안볼라면 이쯤에서 주는게 좋을거요. (회칼에게 눈짓을 하며) 야, 회칼!

서천댁 : (애처롭게 울먹이며) 오늘은 진짜 안된다....한번만 봐도!

회칼 : (서천댁의 도마를 발로 걷어차며 큰 소리로) 아~시발! 진짜 열받게 하네!

 

이에 놀란 서천댁 소리없이 서럽게 울기 시작하고, 보다 못한 관리소장이 한마디 끼어든다.

 

관리소장 : (근엄한 목소리로) 이 봐!

동삼 : (관리소장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넌 뭐냐는 식으로) 뭐?

 

동삼의 눈빛에 기가 죽는 관리소장.

 

관리소장 :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아니 저.......젊은이 발 조심하라고....

동삼 : (크게) 남의 땅을 써놓고는 배를 째?

서천댁 : (울먹이며) 이게 우예 느거 땅이고!

혁이엄마 : (이제야 생각난다는 듯) 맞다, 이거 정부땅이라 카드만, 우예 너거 땅이고.

회칼 : (따지는 투로) 누가 그래요?

혁이엄마 : (관리소장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카더구만!

관리소장 : (화들짝 놀란다)

동삼 : (인상을 험악하게 그리며 관리소장에게) 아저씨가 그랬어?

관리소장 : (모기소리로) 아니, 이게 원래....

동삼 : (더욱 인상을 쓰며) 원래 뭐?

관리소장 : (와들와들 떨며) 원래......자네들 꺼 맞다고!

 

그 때 동삼, 소장옆의 신혼댁을 발견하고는 건들거리며 다가간다.

 

동삼 : (위아래로 훑어보며) 오~ 쌈빡한데.....(입맛을 다신다)

신혼댁 : (신혼남의 뒤로 숨으며 겁에 질린 소리로) 자기야~

신혼남 :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다)

동삼 : (신혼남에게) 넌 또 뭐야?

신혼남 : 예? (어쩔 줄 몰라하다가 갑자기 신혼댁에게) 아니 이 여자가 왜 갑자기 남의 뒤에 숨고 난리야?

 

그 때, 참다못한 최씨댁,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최씨댁 : (큰 소리로) 야!

동삼 : (황당하다는 투로) 어쭐씨구리... 이제 최씨 아줌마까지?

최씨댁 : (분노가 극에 달하여) 니 지금 뭐하는기고. 너거 어마이 같은 사람한테 행패를 부리지 않나, 결혼한 처자한테 찝쩍거리질 않나!

 

옆에 있던 울진댁도 거든다.

 

울진댁 : (일어서며) 젊은 사람이 등쳐먹을게 없어가 다 늙은 노인을 등쳐먹나! 와 어른을 괴롭히고 그카노!

동삼 : (기가 막힌다는듯)아니 이 아줌씨들이 오늘 날 잡아가꼬 셋트로 개겨보겠다는 거야, 뭐야?

최씨댁 : 니가 지금은 이칼줄 몰라도, 좀 있다가 법공부하는 우리 재석이 오면 니같은 놈은 바로 콩밥인기라! 니가 내 앞에서 아무리 인상써도 내는 하나도 겁 안난다. 우리 재석이만 와봐라,마!

동삼 : (경고하듯 주먹을 만지작거리며) 최씨아줌마가 아직 뭘모르나본데 원래 법은멀고 주먹은가까운 법이요!

최씨댁 : 오~ 그래! 니가 지금 낼 겁줄라 카는긴가 본데 그라믄 (얼굴을 들이밀며) 어데 한 번 쳐 봐라. 어이? 함 쳐봐라, 쳐 보라고...

 

최씨댁의 머리에 뒤로 밀리는 동삼, 참다못해 최씨댁의 멱살을 한손으로 붙잡고 한손을 번쩍 들어올린다. 회칼 역시 주먹을 날리려 한다. 그 때, 여지껏 조용하던 장복애비가 우렁찬 소리로 한마디 한다.

 

장복애비 : (크게) 니 그 손 못놓나!

동삼 : (귀찮다는 듯 짜증을 내며) 아저씬 또 뭐야? (멱살을 푼다)

장복애비 : (동삼앞에 나서며) 내 비록 술에 찌들어가꼬 마누라 죽이고 아들새끼는 건달짓 하다가 병원신세 지게 만들었지만, 니놈처럼 힘없는 사람 괴롭히고 살진 않았다. 젊은 놈이 되가지고 늙고 힘없는 사람들 도와주지는 모할 망정 괴롭히기나 하고!

동삼 : 낸들 어디 이카고 싶은 줄 아슈? 나도.....그냥 조용히 살고 싶다고요! 하지만 여기서 자릿세 받아가지고 우리 형님 병원비 안 만들어가면 난 다른 형님들한테 맞아죽는데 우짭니까!

장복애비 : (한탄하듯 한숨을 쉬며) 하기사......깡패짓 하다가 병원간 우리 장복이나, 여서 이카는 니놈이나 뭔 차이가 있겠노!

동삼 : (놀라며) 예?.........(의아해하며) 아니 아저씨가 우째 우리 형님 존함을 아시는교!

장복애비 : 뭐?

동삼 : 그라면......아저씨가......장복이 형님이 얘기하던 그 담쌓은 고주망태 아버지....

장복애비 :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라믄.........장복이가.....(입술을 파르르 떨며) 장복이가......시케가....여서 돈 뜯는기가!

동삼 : (끄덕이며) 예!

아지매 모두 : 뭐라꼬?

 

장복애비, 양손에 들려있던 비닐봉투를 바닥에 툭 떨어트리고는 털썩 주저앉는다.

 

장복애비 :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넋나간 사람마냥) 아이다.......그럴리가 없다...........아이다.........아이다.....

 

이때 한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관리소장이 불쑥 끼어든다.

 

관리소장 : (좀전과는 다른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내 그랄줄 알았다. 정부땅을 저거땅이라고 우기는 놈이 누군 가 했더만. 오형 아들래미였구만.

혁이엄마 : 이보소 소장요! 우예 말을 그래하는교

최씨댁 : (분노한채) 니는 인간도 아이다, 여기 (동삼을 가리키며) 야보다도 훨씬 모한 인간이다. 아나?

관리소장 : 그래도 좋니더. 내사 원래 이런 놈이니께! 우쨌든간에 내일까지 자리나 비워주소 (나가려한다)

최씨댁 : 어데 가노?

관리소장 : 인자 갈라꼬요.

최씨댁 : (어조를 부드럽게 풀며) 잠깐 기다래봐라. 재석이 곧 올끼다.

관리소장 : 올시간 넘었다메요! 오지도 않는거 뭐할라꼬 시간 허비해가며 기다리는교!

최씨댁 : 아이다, 금방 올끼다. 5분만 더 기다려도. 여 사람들 밥줄 문제 아이가!

관리소장 : (시계를 가리키며) 퇴근시간 넘었니더. 내도 집에 가야지요. (우편으로 퇴장한다)

최씨댁 : (애처롭게) 이봐라, 소장아! 이봐라!

관리소장 ; (퇴장하다가 돌아서며) 법대 아들이고 뭐고 간에 백날 기다려보소, 오는가! 저거집 하나도 제때 못 구해주는게 법 공부한다고... (코웃음치며 퇴장) 내일꺼정 자리 비우세이~

 

모두들 관리소장이 나간 자리를 한참 바라본다. 최씨댁, 망연자실한채 터벅터벅 무대 앞으로 걸어나온다.

 

최시댁 : (탄식하며) 이제는 끝난기라.....인자는 마.....완전히 끝난기라.....모가지 피토하도록 악써봤자.....아무소용 없는기라......인생살이 세상만사......말짱 도루묵이다....말짱 도루묵이라고.........

- 암 전 -

암전속에 뉴스 시작한다.

 

앵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8년 8월 15일 광복절 저녁 뉴스디스큽니다. 오늘은 광복절이자 또한 대한민국의 건국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 첫소식은 건국 60주년에 걸맞지 않은 법조계 비리뉴스로써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다시 법조계 비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오늘 국정 감사과 특별 감사본부는 법조계 최대의 떠오르는 태양 김재석 검사 등 전․현직 판․검사 및 변호사 34명의 뇌물수수 및 재판 조작 혐의를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법조계 최대의 거물로 급부상하던 김재석 검사는 뇌물수수와 재판 사전 모의 조작 혐의 외에도 공권력을 빙자한 불법 도청 및 감청과 조직 폭력배와 결탁, 협박에 의한 허위증언 유도 혐의 등 무려 14개 조항에 걸친 위법 혐의가 포착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에서는 즉각 대응하겠다고 나섰으며 이는 엄연한 행정부의 사법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사법권의 독립성을 인정치 않는 정부의 행동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서서히 잦아들며) 이는 건국 이래 최초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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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음의 쓸모

 

*등장인물

정은: 평범한 집안의 딸.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새내기. 윤리교육학과

5세 때 회전목마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함.

무의식적으로 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짐.

이성교제를 하면서도 아직 성접촉보다는 유아적인 관계를 원함.

성격: 대인관계 원만함.

마리아: 카톨릭 집안의 딸.

재수를 하고 대학을 들어옴. 윤리교육학과

어릴때부터 부모에게 강압적인 가정교육을 받음.

부모에 대한 반항심으로 문란한 성관계를 가짐.

이성교제: 순간의 감정에 솔직.

성격: 직설적이고 자기중심적임.

석인: 정은의 - 3년동안 사귄- 남자친구. 군대를 갖다온 타과 복학생.

사랑을 한다면 혼전성관계도 괜찮다고 생각함.

경숙: 성을 추하게 생각함. 성에 관한 언급자체를 불결하게 여김.

위향: 성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옳다 그르다를 구별할 수 있는 건강한 성의식을 가짐.

사랑하는 감정과 충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과는 혼전성관계도 긍정적으로 생각함.

한복여자, 한복남자, 70년대 여자, 70년대 남자, 90년대 여자, 90년대 남자1, 90년대 남자2

*1막

-거리- 데이트하는 장면.

(정은과 석인이 행복한 표정으로 벤취에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다.)

정은 : (석인을 쳐다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석인 오빠, 모레가 무슨 날인지 알아?

석인 : (정은을 쳐다보며 다정하게) 그럼~우리 그날 뭐하며 재미있게 보낼까? 너한테 맨 날 받기만해서. 음…요즘 재밌는 영화하던데 그거 보러 갈래?

정은 : 응. 오빠랑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아, 케이크도 자 르고 싶어.

석인: (흥쾌히) 그래. 뭐든 말해. 우리 정은이랑 함께라면 뭐든 다 행복하니까.

정은: (행복한 목소리로) 정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음… 말 할까말까? 오빠, 기대해. 그 날 오빠가 생각지도 못할 특별한 일이 있을테니까. 아, 어쩌면 오빠가 짐작했을지도 몰 라. 이제는 우리도 해야할때니까.(부끄러워한다.)

석인: (뭔가를 기대하며…은근하게)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정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하 긴 우리도 이제는 특별한 일이 있어야 하지 않겠니? (심각한말로) 이제 만난지 1000일 이나 됐는데. <방백>(즐거워하며) 정은이가 너무 순진해 보여 말꺼내기가 어려웠었는 데, 먼저 얘길 꺼내 주다니. 맞아,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 사귄지 3년이나 됐는 데…

-2막-

(1000일날. 영화를 보고 나온 정은과 석인. 팔짱을 끼고 석인의 집으로 들어간다.)

(정은, 석인의 방문을 열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정은: 와, 오빠방 정말 좋다. 깔끔하구.

석인: (정은을 쳐다보며) 영화 재밌었어? (정은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언 제 어디서나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그 둘 정말 멋있었지? 영화보는 내내 남자 주인 공이 부럽더라. (의자를 빼주며) 여기 앉아.(그리곤 자신도 의자를 빼 앉는다.)

정은: (석인이 빼 준 의자에 앉으며) 오빠는 그랬어? 나는 그 여자가 어떻게 그럴수 있는지 이해가 안되던걸. (뺨 위에 손을대며)

석인: 왜?

정은: (얼굴을 붉히며) 베드씬이 너무 많았잖아. 아무리 영화라지만 걔네들 만난지 얼마되지 도 않았고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오빠랑 봐서 그랬나? 암튼 좀 그렇더라. (양팔을 탁 자 위에 세우고 고개를 숙인다.)

석인: (석인 다시 일어나 와인을 준비함) 뭐 어때? 걔네들 정말 서로 사랑했잖아.

(석인이 촛불과 와인을 준비하자 정은이 불을 끈다. 석인, 정은을 돌아보며 초에 불을 붙인다. )

정은: 내가 작가라면 그렇게 쓰지는 않을거야.

석인: 자, 우리 그 얘긴 그만하고…(정은을 바라보더니 다가가 어깨를 감싼다.)

오늘밤 난 널 완전히 소유하고 싶어.(석인이 정은을 껴안고 키스하려하자 )

정은: (깜짝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오빠, 우리 불켜고 얘기해.

석인: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왜? 이게 더 좋잖아?

정은: (급기야 석인을 밀쳐낸다)

석인: 왜? 네가 기대한 것도 이거였잖아?

정은:(벌떡 일어선다.)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 것도 다 이런걸 원했기 때문이었어? (가 방에서 반지를 꺼내 조용히 탁자위에 얹어놓고-심각하게) 난 몰랐어.-퇴장

석인: (탁자위의 반지를 들고 보며 한숨쉰다.)

(불이 꺼지고 막이 바뀜)

-3막- 정은과 마리아의 방

(방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뭔가를 끄적거리며 석인과의 일을 고민하는 정은. 옆에서 손톱 정리를 하고 있는 마리아)

마리아: (문득 생각난 듯) 어제 석인씨랑 재밌었어?

정은: (침울한 표정으로)…그냥.

마리아: (눈을 흘기며) 에이, 뭐가 그래? (계속 손톱정리를 하며) 3년씩이나 만난 사이가. (갑자기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니지? 뭔가 재밌는 일이 있는거지? (일부러 뚱하게) 너 자꾸 시시하게 그러면 앞으로 석인씨 전화 안 바꿔준다.

정은: (힘없이 숨을 내쉬며) 아니래두…

마리아: (재미없다는 듯) 에이. 관두자. (손톱정리를 끝낸 마리아. 한쪽으로 밀쳐 놓고 거울 을 이리저리 본다.)

정은: (화제를 돌리려고) 참, 마리아. 너 어제는 왜 안들어왔니? 얼마나 기다렸다구...

마리아: (여전히 거울을 보며)어제? 나 나이트 갔다가 부킹떴거든.

정은: 부킹? (호기심에 찬 눈으로 마리아를 향해 돌아 앉는다.) 그래서?

마리아: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야? (그제서야 정은쪽을 돌아본다. 건조하게)갈데까지 갔지뭐.

정은: 갈데(말끝을 흐리며)까지. (시간을 좀 두고) 응..

마리아: (정은를 보며) 바보야~

정은: (마리아를 쳐다보며, 화내지 않고) 응?

마리아: 너 체육과에 승엽이 알지?

정은: 응, 투포환한다는 애? (난대없다는 듯) 걔는 왜?

마리아: (의미심장하게)걔 보다 더 낫더라.

(경숙과 위향. 객석계단에서 등장. 그 때 정은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 노트에 정리를 하고 있고 마리아는 엎드려서 잡지책을 보고 있다.)

위향: (경숙의 팔을 잡고 끌며) 경숙아, 그냥 같이 가자.

경숙: (가기 싫어하며) 너 혼자가면 안돼? 나는 걔 별루란 말야.

위향: (경숙의 팔을 잡은 채 계단 끝쯤에 서서 ) 알고 보면 마리아도 그리 나쁜애는 아니야. 그리고 너랑 친한 정은이도 있는데 뭐가 그리 싫으니? 이런 친구랑도 사귀고 또 저런 친구랑도 사귀는거지.

(위향. 계속 경숙의 팔을 잡고 끈다. 경숙은 가기 싫지만 끌려가고 있다.)

(딩동딩동) 위향의 뒤에 경숙이 내키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다.

정은: (문을 열며) 어, 위향이 왔네.

마리아: (엎드려서 하던일 계속하면서 목소리만) 누구왔어?

위향: 야, 네가 학교를 하도 안나와서 이 몸이 직접 찾아왔다.

(그제서야 마리아 고개를 든다. 그러나 여전히 엎드린채로.)

(위향, 경숙. 방으로 올라간다.)

정은: (마리아를 보며) 경숙이도 왔어.

마리아: (혼자말로) 귀한신 몸이 왠일이래?

위향: 어제 부킹한 남자랑은 재밌었니?

마리아: (웃음을 흘리며) 그럼. 죽~였지.

위향: (다소 딱딱하게) 집에 가서 전화했더니 안 받던데. 도대체 몇 시까지 같이 있었던거 야?

마리아: (눈을 흘기며) 알면서 묻기는.

위향: 너 그러다가 큰일난다.

경숙: (궁시렁덴다) 또 갈데까지 갔구나. 내 그럴줄 알았지.

정은: (경숙을 보며) 경숙아, 그게 무슨 소리야? 갈데까지 갔다니. 아까 마리아도 그러던데 도무지…

마리아: (위향에게) 쟤가 저렇다니까 아무것도 몰라요.

경숙: (마리아에게. 입에 담지 못할말을 하는 듯) 잤단말이지 뭐니?

(정은. 깜짝놀라며 석인과의 일을 떠올리고 고민에 빠짐.)

위향: (한숨을 뱉으며)으이구. 그러니까 한집에 사는 거겠지만. (마리아를 보며) 아무 남자 하고나 자는 생각 없는 너나, (정은을 보며) 바보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너나 똑같다 똑같애.

마리아: (발끈하며) 내가 어때서? 위향이 너는 다 좋은데 내 사는 방식에는 관여하지 않았 으면 좋겠어. (잠시 휴지) 한 번 살다 죽을 거 내맘대로 사는건데. 내가 오늘 영철이 랑 자고 내일 승엽이랑 잔들, 너희가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 너희가 너희 나름대로 사는 방식이 있듯, 나도 내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건데.

경숙: (마리아를 쳐다보다 혼잣말로) 역겨워.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거야.

정은: (머뭇거리며) 저. 지금 내 얘길해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어렵게 말을 꺼냄) 어제 석인 오빠집에 갔었는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함)

위향: (정은이 힘들어하자, 말을 막는다.) 정은아, 됐어. 얘기 안해도 눈에 훤하네. 너희 두 사람만 있었어? (정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 사람이 이상하게 굴디? (정은은 또 고개 를 끄덕.)

마리아: (아까 화냈던 것은 어느새 잊고) 3년쯤 사귀었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그게 뭐가 이상 하냐? 어차피 없어질 순결. 그깟게 뭐라고 그렇게 아까워하는지. (웃으며) 석인씨 무척이나 민망했겠다, 얘.(마리아는 계속 웃고 그런 마리아를 눈빛으로 나무라는 위 향.)

정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갑자기 석인 오빠가 남같이 느껴졌어.

경숙: 내 그럴줄 알았지. 뭐 그런 더러운 인간이 다 있니? 남자는 다 똑같은 늑대라더니. (잠깐, 휴지)부드러운 말로 여자를 유혹하지만, 여자들이 그 달콤함에 혼란을 느낄 때. 그 틈을 노려, 한 입에 삼켜버리는 아주 잔인한 것들이라구. 사랑? (코웃음을 치며) 그 런게 다 미끼지.

마리아: (고개를 끄덕이며) 사랑은 무슨 사랑? 그냥 즐기는거지.

(정은. 침울하게 고개를 떨군다.)

위향: (정은에게 다가가서 팔을 잡고 경숙과 마리아를 나무라며) 니들! 너무 니들생각만 하 는거 아냐? 정은이는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데 정은아. 넌 석인씨를 사랑하 면서 왜 성관계는 안된다고 생각하니? 석인씨의 그런행동은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지만 우리는 아직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까.

경숙: (혼잣말로, 함께 하는 것이 억울한 듯이)왜 사람들은 모이면 이런 얘기만 하는지 몰 라. 불결하게.

위향: (경숙을 향해) 아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성이 왜 불결하니? 성이란 신비하고도 자연스러운거라구. 난 말야, 둘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행동에 확신만 있다면 섹스 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마리아: (위향의 말을 막으며) 섹스에 대해 여러말 할 것 없어. 어차피 즐기면 그만이니까.

경숙: 야, 그러다 애라도 덜컥 배면 어쩔건데? 요즘 그런애들이 어디 한 둘이야?

위향: 내가 말하는 섹스는 아무때 아무하고나 하는 문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거. 경 숙이 너도 잘 알지 않니?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데, 다른 걱정들 때문에 피하는 것 은 어리석다고 생각해. 정말 사랑하고 그 순간이 소중하다고 판단되면 섹스를 선택할

수 있을 이성이 있다구. 이제는.

(정은. 고개를 끄덕인다.)

정은: 위향아, 네가 말하는 이성은 서로에 관한 믿음과 사랑이니?

위향: 응. 그리고 네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너의 생각. 사실 요즘에는 생각없이 쾌락만 을 즐기는 애들도 많지만 그런 애들도 언젠가 후회할 날이 있을거야. 그 애들도 그것 이 잘못된 것이라는걸 알거든.

(마리아 곰곰히 생각에 잠긴다.)

경숙: (얼굴을 찌푸리며, 짜증투로) 다들 그만좀 해. 더 이상은 못듣겠다구. 우리 그런 얘기 따윈 집어치우고 TV나 보는게 어때?

(정은. TV를 켠다.)

-TV속 장면 1-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처자가 무대 중앙으로 나오더니 버선을 벗고 발을 씻는다. 그 광경을 몰래 훔쳐보던 남자. 처자가 발을 다 씻고 퇴장한 후 처자가 퇴장한 쪽으로 천천히 점점 힘이 빠지며 쓰러진다. 처자가 발 씻는 장면을 본 남자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는 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임.)

위향: (어떻게 저럴수 있냐는 듯 친구들을 치며) 저 남자 좀 봐. 죽었나봐.

경숙: 상사병인가봐.

정은: 가슴 아프다. 그래 맞아. 예전엔 모두 저랬을거야.

마리아: (정은을 흘겨보며)놀고들 있네. 리모콘 이리 줘봐.

마리아 채널을 바꾼다.

-TV속 장면2-

(70년대 배경. 남녀가 10미터정도 거리를 두고 걷다가 벤취에 앉는다. 남자는 손수건을 깔아서 여자를 앉히고.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손을 잡는 것 조차 조심스러워하는 모습.)

마리아: (어이 없다는 듯)가도가도 끝이없네. 도대체 요새 PD들은 뭐하는거야? 시대에 덜떨 어진 저런거나 방영하고.

위향: (웃음을 머금고) 왜? 재미있는데 뭐. 너희 엄마 아빠도 저렇게 데이트 하셨을걸?

(엄마 아빠 얘기에 일글어지는 마리아의 표정.) 정은아, 그래도 솔직히 좀 재미없다. 우리 다른거 보자. 쇼 프로 같은 신나는거 좀 안하나?

(위향이 리모콘을 뺏어 채널을 바꾼다.)

-TV속 장면3-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담배를 물고 등장.)

90년대 여자: 에이, 오늘은 완전히 황이네. 물이 이렇게 안 좋아서야.

그 때, 남자 둘이 여자를 힐끔거리며 오고 있다.

남자들과 여자가 마주치는 지점. 모두들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남자1: 어때?

여자:(손가락으로 남자2를 가리키며) 여기도?

(남자2와 1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남자들 사이에서 팔짱을 끼고 같이 여관으로 들어간다.)

경숙: (역겹다는 듯) 저 여자 좀 봐. 완전히 남자 홀리는 여우다 여우.

위향: (놀라며)와.

마리아: (과장되게) 야! 진짜 끝내준다. 저 여자 너무 멋있지 않니?

정은: (매우 놀라며) 쟤네들 처음 만났는데...

위향: 내가 염려하는게 저런 문란한 성이라니까.

(또 성에 관한 얘기가 나올까봐, 경숙이 위향의 소매를 끌고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며 빨리 갈 것을 요구한다.)

위향: (경숙을 의식하며 시계보는 포즈를 취하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마리아와 정은 을 보며) 우리 그만 가볼게. 마리아, 너 내일은 꼭 나와라.

마리아: (TV를 끄며) 벌써? (잠시 휴지) 그래, 잘 가.

정은: 조심해서 가.

정은은 엎드려서 아까 마리아가 읽던 책을 읽고 마리아는 자려고 한다.

-전화벨소리-

정은: 여보세요? 응. 응. 뭐? (흠찟 놀라 벌떡 일어나며 전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마리아: (같이 일어나 앉으며) 무슨 일이야?

정은: (심하게 몸을 떨며) 죽‥었대.

마리아: 뭐? 무슨 말이야. 자세히 좀 해봐.

정은: 자살했대. 내‥ 친구 민‥희가 .

마리아: 자살? 왜?

정은: (울면서) 걔가 어제밤에 성폭행을 당했는데. 오늘 유서만 남기고. (흐느낀다)

마리아: 뭐? (조금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작게) 바보같이 그런 일로.…(그러다 말을 마구 쏟아낸다) 병신같은년. 그깟 처녀막이 뭐가 대수라고 아까운 생명을 버려? 버리길. 그 따위 정신상태로는 차라리 죽는게 나아. 잘 죽었다. 병신. (호흡을 고르다가) 그 렇다고 꼭 죽을건 뭐야. 다른방법도 있었을텐데. 바보같은년.

(정은은 바닥을 보며 앉아만 있다. 어깨가 떨린다.)

마리아: 울지마. 그깟년 때문에 울면 너만 손해야. 공부만 잘하면 뭘 해? 그런 정신상태로.

정은: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긴 힘들지만 민희를 변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정 은. 마리아를 올려다보며) 마리아,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민희가 얼마나 깊은 상 처를 입었으면 죽기까지 했겠어? 걔가 평소에 얼마나 생각이 많던 아인데.

마리아: 야, 지가 잘못해서 생긴 일도 아닌데, 죽으면 지만 손해지. 성폭행 한 놈이 신경이나 쓸 줄 알아? 그 놈 감옥에다 쳐 넣고 죽던지. (비꼬며 자조적으로)그래, 저 혼자 고 상한년이고 나같은건 더러운년이지.

정은: (마리아의 얘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듯) 생각만해도 이렇게 끔찍한걸.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마리아: 무슨 말이야? 너도 그런일을 당하면 죽겠단 말이야?

정은: 어쩌면‥

마리아: 놀구있네. 똑같은 것들끼리 친구라더니.

정은: (폭발하며 마리아를 보고) 네가 뭘 안다고 그러니? 성폭행의 끔찍하고 섬뜩한 기분을 우리가 알기나 할까? (관객들을 보며)내가 겪었다는 기억없는 경험으로도 이렇게 두려 운데. (다시 마리아를 보며) 난, 민희를 이해할 수 있어.

마리아: (매우 놀랐으나 조심스럽게) 정은아. 무슨말이야? 네가 겪었다는게.

정은: ‥

마리아: (정은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싼다.) 뭐가 널 그렇게도 두렵게 만드니?

정은: (심호흡을 한 후) 나도 잘 몰라. 수치스럽다는 것 밖에는. 고등학교 1학년때, 나는 첫 생리를 시작했어. 나도 너무 늦다고 느꼈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현 상이려니 했었어. 그런데 그 해에 엄마에게서 들은 얘기는 (울음을 삼킨다.) 내가 5살 때 회전목마 타러 갔다가 (울면서) 성추행을 당했었나봐.

마리아: 개자식.

정은: 멀리서 엄마가 보셨대. 그래도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었구. 난 사랑을 하지 못할 줄 알 았어. 그러다 석인오빠를 만나게 됐고. 오빠는 다르다고 생각했었거든.

마리아: 무슨말인지 알겠다. 근데, 정은아. 섹스가 무조건 나쁘다는 네 생각은 빨리 치유됐 으면 좋겠어. 물론 어렸을적의 네 기억과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같이 사는 내가 좋 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위향이의 말처럼, 더럽고 추한 것 만은 아니야.

정은: 알아, 내가 성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거. 아까 위향이 얘기 들으며 많이 깨달았어.

마리아: 너도 그랬냐? 난 꼭 걔가 말하는 문란한 성 얘기가 나를 두고 하는 것 같아서 좀 부끄럽더라.

정은: 너는 후회하지 않니?

마리아: 뭘? 순결을 잃은걸? (휴지) 아니, 난 순결을 잃었지만 자유를 찾았어. 요즘 난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거든. (조금 생각을 한 후.) 물론 내 마음이 완전히 편한 것 만은 아니야. 정은아, 넌 마리아란 내 이름. 어떻게 생각해? 나와는 맞지 않는 이름이지?

정은: 응? 이름?

마리아: 우리 부모님은 내게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시고는 동정녀 마리아처럼 살 것을 강요하셨어. 지독한 카톨릭 신자들. 어렸을땐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지. 내 어렸 을 적 장래희망이 뭔 줄 알아? 빌어먹을. 수녀였어. 수녀. 우리 오빤 신부를 시키고 나는 수녀를 시키는게 우리 부모님의 소원이셨지. 난 그런 부모님에게 맞추어 살려 고 무척이나 노력했었어. 그러다 매일 하는 기도와 성경읽기에 염증을 느꼈을 때. 나 는 집을 나왔어.

정은: 미안해. 그런말까지 하게 만들어서.

마리아: (후련하다는 듯) 아니, 누군가에겐 털어놓고 싶었었는데, 구실이 좋았지뭐. 내가 생 각 없이 사는 것 같지? (정은. 강하게 고개를 흔든다.) 아까 니 친구 민희를 많이 욕 했던 거. 사실은 오래전 나를 보는 것 같았거든. 처음 누군가와 섹스를 했을 때, 나 도 민희처럼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었어. (휴지)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민희도 그 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않았을텐데.

정은: 우리, 함께 산지 꽤 오래됐는데, 서로를 너무 몰랐나봐.

마리아: (웃으며) 네가 너무 순진하니까. 그렇지?

정은: 그래. 나는 또 매일 석인오빠 만나느라 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미안해.

마리아: 그럼 이제 석인씨랑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정은: 글쎄, 아직 혼란스럽긴 하지만 우선은 만나보려고 해. 네 말대로 석인씨가 무조건 잘 못한 것은 아니잖니. 물론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 성 을 두려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아.

마리아: 민희의 장례식에 나도 따라가도 되니? 그냥, 그러고싶어.

정은: (마리아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물론이야, 민희도 네 맘 알고 고마워할거야.

마리아: 정은아. 지금으로선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이제 세상을 향한 반항심으로 나를 다치 게 하는 일은 하지 않을거야. 너도 도와줄거지?

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은: 나, 지금 석인오빠에게 전화할거야.

정은이 석인에게 전화하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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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공포

 

● 3조

때: 1999년 11월

등장인물- 형사1:남자 형사로 지은의 동료

이지은:형사이며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 소영 민주와 친구 동거 함

권소영:태권도 사범이며 활달함 민주 지은과 친구, 동거

강민주:컴퓨터 프로그래머 소영 지은과 친구, 동거

교주:교주 인간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다는 목표아래 교(敎)를 만들어 살인사건을 지휘함

부교주

신도들

목격자:김박사 살인현장 목격

< 문명의 발달은 극으로 치달아 신의 영역인 생명창조까지 손을 뻗고 인간은 점점 과학문명에 존엄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제1막

(엠블런스와 사이렌 소리 울리며 불이 켜진다. 가운데 피묻은 천에 쌓인 시체가 누워있고 두 명의 형사가 시체를 조사한다. 남자 형사는 천을 들추며 시체를 조사하고 여자 형사는 뭔가를 적고 있다. 또 여자 형사가 다가온다.)

형사1: 왔어? (냄새를 쫓으려는 듯 손을 저으며 지은을 본다)도대체 몇 번째야?

지은: 이번엔 최초로 동물복제에 성공한 김재석 박사(천을 들추어본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2명이나 희생됐어. 뇌를 도려낸 동일한 수법이군.(생각)

형사1: 거참 고약하군. 왜 하필 뇌야!

지은: 그런데 목격자는?

형사1: 곧 도착할 거야. (목격자 들어온다) 아! 마침 저기 오는군.

(목격자는 시종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은과 눈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지은: 사건을 목격하셨다구요.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어요?

목격자: (두리번거리며 두려운 기색을 보인다.) 나...난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못봤어요.

형사1: (화를 내며) 이러시면 안됩니다. 도와주셔야 범인을 잡죠! 좀 부탁드립니다.

목격자: (역시 두리번거리며) 난 정말 아무것도 못봤어요.(조심스러운 듯 낮게 그러나 단호한 어조)

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는다) 좋아요. 오늘은 이만 하기로 하고, 내일 경찰서로 좀 와주시겠습니까?

목격자: (우물쭈물하며 땅만 본다.)....가긴 가겠지만 난 정말 아무것도....(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형사1: 하나같이 목격자란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 버리는군.

지은: (한숨)

 

-암전-

 

제2막

 

< 소리와 함께 불이 서서히 켜지고 시끄러운 시계소리와 함께 소영이가 급히 일어난다.>

소영: 아이씨 큰일났다, 큰일! 에이씨 늦었어.(후다닥 책상위에 놓인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뛰어간다.)

민주: 야, 소영! 소영! 오늘은 일요일인데...

소영: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나며 소영 등장) 진작 쫌 말했어야지.(TV를 켠다) 근데 일 요일인데도 지은이는 안 들어왔냐?

(뉴스속보 입니다. 오늘 새벽 2시 경 국립과학연구소 김모 박사가 시체로 발견 됐습니다. 김박사는 일주일전 살해된 이모 박사와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것으로-채널바뀜-일본 고베에서 강도 7.4의 강진이 일어나-체널바뀜-세계최초로 사이버 섹스 프로그램이 프로그래머○○○씨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남녀의 신체접촉 없이 섹스가 가능한 것으로 출산과 섹스가 별개가 되었습니다.)

소영: 야! 니 얘기 나온다. 이제 돈방석에 앉겠네 (TV를 리모콘으로 끄고 운동을 하면서)

민주:(아무말 없이 컴퓨터에 몰입한다.)

[딩동 딩동...]

민주:(벨 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컴퓨터에 열을 올린다)

소영: 지은이냐? (문을 열어준다)

가정부: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급히 볼일이 있으시다고 대신 저 를 보내셨는데요.

소영: 아줌마, 청소부터 하세요! (다시 운동을 시작한다.)

민주: (컴퓨터 화면을 보며 키득키득 웃다가 낯선 여자가 빗자루를 갖다 대자 발 한쪽씩을 든다)

가정부: 혹시 아까 TV에 나온 분 아니세요?

민주: 아줌마 할 일이나 하세요!(멈칫하며 소영이 옆으로 간다.)

소영: (전화를 집어들고 수다를 떨기 시작하다가) 아줌마, 저쪽으로 가세요! 예? (계속 수다 를 떤다.)

[문이 무겁게 열리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은 등장]

지은: (가정부를 보며) 누구십니까?

가정부: (조금 전 했던 말 반복)

지은: (가정부를 경계하듯 쳐다보며 물을 마시고 난 후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어두운 책상 으로 다가가 서류를 뒤적인다. 가정부는 지은을 흘낏 쳐다본다.)

민주: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낯선 여자가 걸레로 바닥을 닦자 발 한쪽씩을 든다.)

[여자의 비명 소리와 와장창하는 소리]

가정부: 무슨 소리예요? 이봐요?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민주: 누가 부부싸움이라도 하는 모양이죠.. 아파트에 살다보면... (무심하게 작업을 계속한 다.)

지은: (종이를 북북 찢고 벌떡 일어나 전화 있는 곳으로 가는데 소영이를 빤히 쳐다본다)

소영: 뭐라고? 너무했다. 하하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지은의 시선을 느낀다.) 왜?

지은: (나직히) 신경쓰여서 그러는데 나중에 다시 전화하면 안될까?

소영: 지금 하던 얘기만 다하고. 10초만 기다려(다시 수다를 떤다)

지은: (10초를 잰 후 전화를 뺏아 끊는다)

소영: 으이씨 (다시 전화를 건다)

지은: (다시 전화를 뺏는다. 그 때 지은의 핸드폰이 울리고) 네! 이형사 입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 잘 알겠습니다! (소영을 힐끔 돌아 본 후 나간다.)

민주: 어디 가냐? (일어나 커피를 타며)

지은: (그냥 나간다)

소영: 쟤 왜 저러니?(전화를 걸려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쳇, 기가 막혀서, 정말 웃겨! 나도 체육관에 나가 봐야겠다.(휙 나간다.)

민주: 아줌마! 아줌마!

아줌마: 왜요?

민주: (크고 활발한 목소리로) 재미있는 거 보실래요? 인류의 20대 재앙...

세계2차대전 5000만명 사망(1937~45), 유대인6000만명 학살(1940~45), 히로시마 나가사 키 원폭10만 5000만명 즉사(1945)....

아줌마: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든다) 쯧쯧. 어유 내 정신 좀 봐. 점심상 차려 놨으니까 드 세요.

민주: (여전히 모니터를 보며 즐거운 듯) 네, 문이나 잠그고 가세요.

민주: (기지개를 펴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 메일이 왔네?(메일을 확인한다.) “당신의 프 로그램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동물복제, 생체병기 그리고 사이버 섹스까지 이러한 인 간 자체에 대한 무시는 스스로의 멸망을 초래할 것입니다. 당신은 스스로 자멸을 불 러왔습니다. 이젠 되돌릴 수 없습니다. 당신은....”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손을 떨며 담배를 찾는다.)

 

(이때 뒤에서 한 남자가 식칼을 겨누며 민주를 향해 다가온다. 민주는 모니터에 비치는 이상한 그림자에 뒤돌아보는 순간 칼은 민주의 머리에 꽂히고 그대로 도려낸다. 민주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칼 든 남자는 흔들림없이 난도질을 계속한다.)

(그 때 야근 준비를 위해 집에 잠시 들른 지은이와 퇴근길의 소영이가 만나 함께 집으로 온다.)

소영: 으이그, 민주 얘 또 문 안 잠궜네. 못살아.

지은: 그 버릇 고치라고 단단히 말했는데도 말이야.

(거실에 들어선 둘은 피비린내에 멈칫한다.)

지은: 잠깐! 불 좀 켜봐! (총을 꺼내들며 소영을 벽 쪽으로 붙인다. 소영의 표정이 굳는다)

(지은, 총을 꺼내 겨눈다. 훅 끼치는 역한 냄새와 끔찍한 광경에 지은은 얼어붙고 만다. 남자는 아직도 난도질을 계속하고 있다. 뒤에서 소영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린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신들린 손놀림과 달리 눈빛은 멍하다. 지은이 총구를 갖다대며 “소..손들어!” 하자 남자는 순순히 잡힌다. 불이 꺼지며 경찰의 사이렌 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가 울리며...)

 

제 3막

 

<중앙에 탁자가 놓여 있고 촛불을 든 가정부가 서있다. 관객석에서 하얀 가면을 쓴 사람들 하나 둘 일어서 서서히 무대 중앙으로 모여든다. 모두 반원으로 선다>

부교주: 이제 교주님께서 나오시겠습니다.

(가면을 쓴 교주가 나온다.)

교주: (가면을 벗은 교주, 결의에 찬 모습으로 엄숙하게)우리의 형제가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단호하게)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 사람이 교주 앞에 꿇어앉는다.)

교주: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추악한 족속들은 스스로의 멸망을 불러올 것이며 이는 인류 전체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다. 땅에 떨어진 인간 존엄을 회복하여 진정 인간이 주인되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처단의 칼날을 멈출 수 없다.(엄숙하게 그러나 열띤 어조로 주먹을 쥔다.)

(사람들 숙연히 듣고 있다.)

교주: (숨을 고르며) 우리는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다가올 영광의 그 날을 위해 멈추지 않는다.(선언하듯이)

(다들 무릎을 꿇는다)

(교주, 자신의 앞에 꿇어앉은 사람에게 가 선다. 사진 한 장을 꺼낸다. 그에게 준다. 그리고 주위를 돌며 피를 뿌린다.)

교주: 그대가 성스러운 임무의 다음 수행자이니....가라!!

(앉은 사람 고개를 든다.)

(불이 꺼지며 갑작스런 여자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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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 4조  

배경 : 어느 가정집 거실

 

등장 인물 : 엄마(이숙자), 엄마의 영, 남편, 대학생 딸(대딸), 고등학생 딸(고딸), 막내 중학생(막중), 동네 아줌마(선희 엄마), 동네 아줌마 2 (영수 엄마), 동네 아줌마 3(경식 엄마), 외판원, 시계

 

제 1 장면 :

시계 : ( 6시를 알리고 따르르릉 소리를 내며 마구 뛰어다님)

엄마 :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펴며 피곤한 모습으로 무대 위로 올라옴. 엄마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커다란 짐을 메고 있으며 그것의 이름은 행복이다. 발에는 가족들의 이름이 쓰여진 풍선이 거추장스럽게 매달려 있다. ) 벌써 여섯 시야.

엄마의 영 : (엄마와 똑같지만 가방과 풍선이 없다. 엄마를 따라다니며 똑같이 행동한다.)

시계 : (엄마 등을 떼밀며 부엌으로 보낸다)

엄마 : (피곤한 목소리로) 알았다, 알았어. (시계를 원망스럽다는 듯이 보며) 어제도 고딸이 문 열어주느라 한 시에 잤는데. (곧 부엌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한다.)

엄마의 영 : (요리를 거든다.)

시계 : (7시를 알리며 엄마를 잡아 끈다.)

엄마 : (곧 상을 차리고 식구들을 부르러 간다.) (무대 오른쪽을 향해 소리친다.) 고딸아, 어서 일어나. 너 버스 타는 데 늦는다. (다른 방향을 향해) 여보, 아침 먹고 출근 해야죠, 아 차가 얼마나 막히는데 (다른 방향을 향해) 막중아 일어났니? (다른 방향으로) 대딸이 넌 오늘 약속 있댔었잖아.

엄마의 영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이하 엄마의 영은 엄마와 똑같이 행동한다)

고딸 : (교복 상의를 손에 든 채 무대 왼쪽에서 허겁지겁 등장) 아니 엄마 인제 깨우면 어떻게 해!

엄마 : 아니 니가 어제 늦게 왔길래, 피곤할까 봐.

막중 :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 잠이 덜 깬 듯한 표정) 엄마, 어제 내가 하던 거 어디갔어?

대딸 : (무대 왼쪽에서 올라오며) 엄마, 밥 줘. (혼잣말로)아 속쓰려 죽겠네. (엄마에게) 국 있지? 나 어제 술 먹어서 배 아파.

남편 :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 아 내가 어제 여섯시에 깨워 달랬잖아. 길이 얼마나 막히는 줄 알아?

엄마 : (남편을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아니 당신이 언제 그랬어요, 빨리 먹고 나가면 안 늦겠네, (식구들을 떠밀며) 다들 어서 식사해.

막중을 제외한 식구들, 상 앞에 앉는다. 식구들 식사를 하기 시작한다.

막중 : 엄마, 내 말 못 들었어? 내 게임팩 어쨌냐니까.

엄마 : (등을 찰싹 때리며) 다 치워놨다. 이 녀석아. 그래 게임을 하다가 그냥 잠들면 어떡. 어서 밥이나 먹어, 이른 시간 아니다.(막중을 상에 끌어다 앉힌다.)

막중 : (반찬을 보더니 벌떡 일어선다) 이게 뭐야, 먹을 건 하나도 없잖아. 나 안 먹어 (무대 오른쪽으로 퇴장한다.)

고딸 : (밥먹다 말고) 저게! 어휴 하여튼 저 인간은 죽도록 굶어봐야 돼!

엄마 : 넌 얼른 밥이나 먹고 학교 가.

남편 : (밥을 계속 먹으면서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보, 아 신문!

엄마 : (물을 갖다주면서) 아 밥먹으면서 무슨 신문이에요.

남편 : 무슨 소리야, 문화인이라면 신문을 필수적으로 읽어야지. 당신도 집에서 놀지말고 신문이나 좀 읽어.

엄마 : (핀잔을 주듯이) 내가 신문 읽을 시간이 어딨어요.

남편 : (약간 화를 내며) 아 얼른 신문 가져와.

엄마 : (신문 가지러 퇴장)

엄마의 영 : (엄마 따라 퇴장)

대딸 : 아빠, 우리도 컴퓨터 바꿀 때 되지 않았어? 요새 누가 486을 업그레이드해서 써. 그리고 인터넷도 안 되고 이번 기회에 싹 갈아치우자, 응?

고딸 : 맞어, 저게 컴퓨터야. 박물관에 줘도 되겠다.

대딸 : 더군다나 요새 컴퓨터 값이 좀 싼가, 뭐.

남편 : 나도 다 생각하고 있어, 임마. 나도 요새 새로 쓸 프로그램이 많은데.

대딸 : 우리집 껀 엑셀도 안 돼. 딴 데서 작업해서 오면 다 깨진다니까.

엄마 : (신문을 가지고 등장) 뭐가 깨져?

엄마의 영 : (따라 등장)

대딸 : 우리 컴퓨터 고물이잖아. 엑셀이 다 깨진다니까. 우리 프로그램도 다 바꿔야 돼.

전부 버전이 너무 낮잖아. 차라리 새로 사자구.

엄마 : (아빠에게 신문을 건네주며) 아 그걸 언제 샀는데 또 사.

고딸 : 저거 1년도 넘게 썼어, 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하여튼 엄만 뭘 몰라.

남편 : (신문을 펴 들며) 그러게 집에서 놀지 말고 컴퓨터 같은 거나 혼자 연습하고 그래 봐. 나는 혼자서 다 배웠어, 학원 안가고.

엄마 : 아니 내가 그럴 시간이...

남편 : (말을 자르며) 신차장 마누라는 가계부도 컴퓨터로 쓰더라.

엄마 : (남편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문다.)

대딸 :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참! 엄마 내 옷 찾아 놨어?

엄마 : (의아해 하며) 무슨 옷?

대딸 : 내 갈색 코트!

엄마 : (그제서야 생각 난 듯이) 아아, 그거-. 어마 내 정신 봐라. 깜빡했다. 얘. 그거 오늘 입어야 되니?

대딸 : (숟가락을 탁 소리나게 놓으며) 내 그럴 줄 알았어, 보나마나 맡기지도 않았지?

막중 :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 교복 차림) 엄마 나 학교 가. 차비 줘.

엄마 : (지갑을 꺼내오며) 그래, 그래. 아침을 안 먹어서 어떡하니. 자, 오천원 줄 테니까 뭐라도 사 먹어.

막중 : (짜증을 낸다) 아 오천원 갖고 뭐하라구.

엄마 : (만원을 꺼내준다)

고딸 : (일어서서 가방을 맨다.) 나두 학교 갈 거야. 오늘 패스비 가져가는 날이야.

엄마 : 패스비가 얼마더라.

고딸 : (손을 내밀며) 3만원! 그리구 엄마가 늦게 깨워서 나 택시타고 가야 돼, 오늘.

엄마 : (4만원을 꺼내준다)

고딸 : 글구 엄마 학교 한 번 와, 우리 반에서 나만 엄마 안 왔다갔어, 우리 담탱이가 얼마나 갈구는지 알아?

엄마 : 뭐?

고딸 : 엄마 인사하러 오래.

대딸 : 나도 얼른 씻고 가야 돼. 오늘 약속 있으니까 용돈 좀 가불해 줘.

엄마 : 너 언제 용돈 받아갔어?

대딸 : 하나도 안 남았단 말야,

남편 : 아, 줘! 돈 없이 사람 어떻게 만나? (일어서며) 나 어제 기름 넣었어.

엄마 : (황당해하며)또요?

남편 : (겉옷을 챙겨 입으면서) 아 또는 무슨 또야. 차는 물 넣고 다니는 줄 알아?

엄마 : (못마땅해 하면서 남편에게도 돈을 준다.)

식구들 현관으로 몰려 나감. 신발을 신느라 북적대며 퇴장

 

제 2 장면

식구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섰다가 엄마는 엄마의 영과 함께 상을 치움. 설거지 감을 담그고 한숨 돌림)

시계 : 8시를 알리며 서성거림.

엄마, 엄마의 영 : (동시에) 휴, 일치렀다.

엄마 : (이마를 문지르며) 정신이 하나도 없네

엄마의 영 : 아니 근데 고딸이가 뭐라 그러고 간 거야, 숙자야?

엄마 : 맞어, 갑자기 담임한테 무슨 인사를 해. 매년 안 갔는데.

엄마의 영 : 아유, 눈치도 차암, 걔네들 우열반 가른다고 그랬었잖아.

엄마 : (손뼉을 치며) 아 그랬었다.

엄마의 영 : 고딸이가 공부를 좀 잘하니. 자식 투자는 이럴 때 하는 거야.

엄마 : (고개를 숙이며 시무룩하게) 그치만 돈이 좀 드나.

엄마의 영 : (엄마를 툭 치며) 아니 근데, 그럼 어떡해. 남들 다 들이는 돈인데 안 할 거야? 지 능력없어 그런 것도 아니구 고딸이가 만약 우열반에서 밀리면 억울해서 어떡해?

엄마 : (영을 쳐다보며) ...하긴 그렇지?

엄마의 영 : (엄마를 다독인다) 그래, 큰 맘 먹고 하는 거야. 성의만 보이면 되지. 한 열 장.

엄마 : (깜짝 놀라며) 열장...... 씩이나?

엄마의 영 : (엄마의 소심함을 비웃으면서) 고딸이 말 듣자 하니까 걔네 반 실장은 오십 장도 줬다더라.

엄마 : 걔는 공부를 못한대잖아.

엄마의 영 : (확실성 있는 말투로) 땡빚을 들이더라도 할 건 해야지.

엄마 : (잠깐 망설이다가) 그나저나 가면 언제 가 본담.

엄마의 영 : (과장된 말투로)이번 주는 숙부님 병원에도 가 봐야 되고 영희 결혼식도 있고 아이구, 그러고 보니 니 남편 출장도 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턴 너 부업 받아 하기로 했잖아?

엄마 : (풀이 죽어서) 그럼 금요일 오후 밖에 없네.

엄마의 영 : 어머, 숙자야. 너 그 날은 주부 대학에서 졸업생들 세미나있는 날이잖아.

엄마 : 그럼 어떡하라구... 못 가는 거지.

엄마의 영 : 아니 근데 얘는 처녀 적엔 안 그렇더니 왜 갈수록 이렇게 소심해지나 그래.

엄마 : (한숨을 쉬며) 나두 몰라. (일어선다)그나저나 막중이 녀석 아침도 안 먹고.

엄마의 영 : (팔짱을 끼며) 그 녀석은 편식이 너무 심해, 사내 자식이.

엄마 : (부엌으로 간다) 얘 너 그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집 정리 해 놓고 장 보러 갔다 와야지.

엄마의 영 : (빈정거리며)알았다 알았어, 내가 이 집 식모냐?

엄마와 엄마의 영 일어나 분주히 설거지, 청소를 한다.

시계 10시를 알리며 엄마와 영을 따라다님

제 3장면

벨이 울린다.

엄마 : (현관을 내다보며) 누구세요?

엄마의 영 : (말은 없지만 엄마와 같은 행동, 이하 계속 같은 행동)

외판원 : (목소리로만) 관리비 받으러 왔습니다.

엄마 : 아니, 그걸 언제 냈는데. (현관문을 연다)

외판원 : (거실로 뛰어들며) 안녕하십니까. 댁내 무고하시구요?

엄마: (외판원을 아래 위로 쳐다보다가) 아니, 책장사 아냐?

외판원 : 책이라도 보통 책은 아니죠.

엄마 : (외판원을 떠밀며) 아, 나가요. 우린 책 필요 없어요. 정말 별꼴이네

외판원 :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잠깐만요, 전 교양책 팔러 다니는 사람 아닙니다.

이건 교육 전문지라구요.

엄마 : (계속 떠밀며) 아 교육 전문지면 이렇게 불법침입해도 된댑니까, 나가요! 나가!

외판원 : (갑자기 엄마를 확 뿌리치며) 아 나 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이건 강남에서도

100부밖에 판매되지 않는 학습지에요. 이번에 고위직 인사들이 비리 사건으로 대거 구속되는 바람에 계약이 깨져서 민간층에 내려온 귀한 건데 나 원참 원체 무식한 아줌마들이라 뭘 알아야지, (책을 엄마의 코 앞에 들이대며) 말이야!

엄마 : (겸연쩍게) 아니, 저 나는... 그냥......, 근데 그게 뭔데요?

외판원 : 뭐 별 건 아니구요, 애들 성적 올리는 학습 방법에 관한 책이죠, 뭐.

엄마 : 그게 어떻게 성적을 올려요?

외판원 : (헛기침을 하면 거만을 떤다) 뭐, 얘기하면 뭐합니까. 입만 아프지. 살 것도 아니면서 (나가려고 한다.)

엄마 : (외판원을 잡는다) 아니 그러시지 말구요, 선생님.

외판원 : 어허 왜 이러세요. (엄마의 손을 뿌리치며) 이거 아무나한테 줄 책 아닙니다.

엄마 : (외판원을 잡아끌며 거실에 앉힌다) 뭔데요? 100부밖에 안 나오는 거면 뭐 좀 특별하겠다, 그죠?

외판원 : (목을 쓰다듬으며) 어허, 먼 길을 왔더니 목이 말라서.

엄마 : (손뼉을 치며) 아유! 그러시겠다! (잠시 퇴장, 음료수를 내 온다.)

외판원 : (혼자 좋아하며 웃다가 엄마가 오자 정색을 하며 음료수를 받아마신다.)

어이구 시원하다.

엄마 : (호기심 어린 말투로)인제 말씀이 좀 나오시겠지요?

외판원 : (그제서야 하는 수 었다는 듯이) 말이 필요 없어요, 이게 특수 학습 방법이라고 억대

억대 과외 하시는 분들 30명이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쓴 글이에요. 예를 들면 필

기를 할 때 팔의 각도는 몇 도여야 이상적인지, 잠은 몇 시 몇 분 몇 초에 자야 되는지,

밥반찬은 뭘 먹어야 성적이 오르는지 뭐 그런 거예요.

엄마 : (미심쩍다는 듯이)그런 게 공부랑 상관이 있어요?

외판원 : (책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아 이 아줌만, 정말 뭘 모르네. 애들 중에 공부 열심히 안 하는 애 있어요? 근데 왜 성적은 몇 명만 오르느냐. 이게 다 아주 사소한 차이에서 오는 거라구요. (머리를 가르키며) 이 뇌라는 게 얼마나 예민한지 적정 환경을 기가 막히

게 감지해 내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적정 환경에 놓여지면 잠재능력까지 죄다 끌어내는데

반대로 지금 애들이 하고 있는대로 하면 뇌도 불쾌해져서 능력을 발휘하지 않아요.그런

과학적 원리를 몇 십년에 걸쳐 연구하신 분들이 만든 거예요. 이해가 가요?

엄마 :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 예. 조,조금요....

외판원 : 하, 이 아줌마 보기보다 똑똑하시네.

엄마 : 근데...(망설이며) 비싸겠다, 그죠...?

외판원 : (픽 웃으면서) 책 값에 대면 값도 아니죠.

엄마 : (고개를 바싹 들이대고 조용히) 얼만데요?

외판원 : 뭐, (웃음이 나오는 것을 고개를 돌려 참으며) 우리도 정상가는 포기했구요, 한 40만원 정도로 기회를 드릴려구 해요.

엄마 : (깜짝 놀라며) 얼마요?

외판원 : (뻔뻔스럽게) 아, 이 책의 가치는 40만원 정도가 아니죠. 아줌마 아들 연대, 고

대, 서울대, 더 잘 하면 안동대도 보낼 수 있는데 자식 얼굴 TV에서 보게 될 텐데 이만

하면 싸죠ㅡ 싸.

엄마 : (걱정스럽게) 그래도...

외판원 : (엄마를 몰아세운다) 사실 말인데 저번 수능 수석자두요, 처음엔 평범했어요. 걔 200점도 안 나오다가 이거 보고나서 만점 받았다구요.

엄마 : (놀라며) 정말이에요?

외판원 : 나 참 속구만 사셨나. (가방을 챙긴다.) 안 되겠네. 아줌마가 똑똑해 보여서 선물

할랬더니 싫다는데 뭐. (일어선다)

엄마 : (다급하게) 저기요!

외판원 : (심드렁하게) 왜요? 아줌마 40만원 있어요?

엄마 : 그, 그거... 할부 되죠?

외판원 : (신이 나서) 아, 그럼요!

외판원 가방을 내려놓고 계약서를 쓴다.

외판원 : 아, 이 집은 뭐가 달라보이더라니, 뭘 좀 아시는 분이 사시는구만. 책은 1주일

후에 발송하지요. 입금은 틀림없이 제 때 하셔야 됩니다! (외판원 서둘러 퇴장)

엄마의 영 : (엄마 행동 따라하기를 멈추고) 얘, 숙자야. 열심히 사니까 이런 복이 다 온

다?

엄마 : (기뻐하면서) 글쎄 말야. 어휴, 이걸 우리 막중이 주면 녀석 성적이 팍팍 오르겠지?

엄마의 영 : 게다가 우리집은 쓸 사람이 둘이니 값도 싸지. (엄마와 손뼉을 치고 즐거워한

다.) 고딸이는 원래 잘하니까 어휴, 어쩌면...?(웃는다.)

엄마 : (갑자기 생각난 듯이) 근데 할부금은 어떻게 붓지?

엄마의 영 : 얘, 돈많은 이웃두고 무슨 걱정이야. 빌려.

엄마 : 그치만 또?

엄마의 영 : 순희 엄마 뻐기는 꼴은 웃기지만 돈은 틀림없어, 얘. 월급날 멀었는데 다른

방법 없잖아. (엄마 등을 두드리며) 얘, 생각 난 김에 전화해라!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는지 확인해 보고 수화기를 건네준다.)

엄마 : (엉겹결에) 어, 어..순희 엄마? 나야. 응,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내가 점심 사 줄게.

순희 엄마 : (목소리만) 어머 웬일? 금방 갈게. 글찮아도 우리 집에 다들 놀러 와 있거든.

엄마 : 빨리 와~

전화를 끊고 엄마와 엄마의 영 웃는다.

 

제 4장면

벨이 울림

동네 아줌마 1, 2, 3 등장. 엄마의 영,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선희 엄마 : 어휴, 웬일이야. 짠순이께서.

엄마 : 내가 뭐 짜고 싶어 짠 줄 알어?

영수 엄마 : 글쎄 막중엄마, 선희 엄마 옷 좀 봐.

선희 엄마 : (뻐기면서 한 바퀴 돈다)

경식 엄마 : 수입제란다.

엄마 : ( 마지못해 맞장구치면서) 그래? 좋아보인다. (방백) 저 여편네는 나라 살림 어려운 것도 모르나?

선희 엄마 : (옷을 만져 보면서) 역시 수입제라 때깔이 달라.

경식 엄마 : 지 서방이 사 줬댄다.

엄마 : (계속 못 마땅해 하면서) 으응.., 좋겠다. (방백) 돼지 목에 진주지.

영수 엄마 : 근데 막중 엄마, 우리 뭐 사 줄건데?

엄마 : 급하기는. 내가 탕수육 시켜 줄까?

선희, 영수, 경식 엄마 : 좋~지!

엄마 : 그래 내 탕수육 시켜 줄 테니 앉어, 앉어, (수화기를 들고 ) 거기 궁전 반점이죠?

송천동 388번지에 탕수육 하나요. (수화기를 내려놓고 아줌마들을 앉힌다.)

영수 엄마 : 우리 심심한데 한 판 칠까?

선희 엄마 : 좋다, 100원짜리야?

엄마 : 우리 형편에 무슨, 10원짜리 쳐.

경식 엄마 : 어쨌거나 치자구.

4명, 화토장과 판을 가져다 고스톱을 치기 시작한다. 선희 엄마 패를 돌린다.

엄마 : (조심스럽게) 근데 선희 엄마, 나 돈 좀 필요한데...

선희 엄마 : (패에 신경쓰면서 거만하고 무심하게) 얼마?

엄마 : 한... 40만원.

선희 엄마 : (눈을 치뜨면서) 40? 막중 엄마가 웬일로? 일이만원에 벌벌 떠는 사람이?

엄마 : (간절하게) 꼭 필요한 데가 있어.

선희 엄마 : 어려울 건 없지만 (갑자기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선희 엄마를 쳐다본다) 이달 말엔 줄 거지?

엄마 : 그럼...

영수 엄마 : (끼어들며) 아, 화투나 쳐!

경식 엄마 : 그래, 그래, 선 빨리 해.

아줌마들 시끄럽게 고스톱을 치기 시작한다.

그 때 막중 무대 왼쪽에서 등장

막중 : (큰 소리로 길게 빼면서) 다녀 왔습니다.

엄마 : (놀라면서) 어마, 너 벌써 왔니?

막중 : (고스톱판을 벌인 아줌마들을 유심히 보고 불만스럽게 엄마를 쳐다본다.)학원 책 놔

두고 갔어.

아줌마들 화투판을 거두며 당황해 한다. 막중, 아무 말도 없이 엄마를 쳐다보고 있다.

엄마 : (무안해 하며) 그래? 얼른 챙겨라...

막중 : (퉁명스럽게 무대 오른쪽으로 퇴장)

아줌마들 재빨리 현관으로 나감

아줌마 일동 : 막중 엄마, 우리 간다, 잘 있어~

엄마 : 아니, 탕수육은 먹구 가지.

영수 엄마 : 담에 먹지 뭐.

선희 엄마 : 내 돈은 내일 준비해서 줄게, 걱정마-

제 5 장면

엄마 :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며) 어휴 쟤가 어떻게 생각했을까.(발을 동동 구른다. )

챙피해 죽겠네.

엄마의 영 : (당당하게)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엄마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가버리니 그래. 나쁜 자식.

엄마 : (시무룩하게) 그래도...

엄마의 영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엄마 : (다시 흐뭇해하며) 그래, 그래도 책은 잘 샀지?

벨이 울린다.

대딸 등장, 엄마의 영은 다시 엄마와 같은 행동.

대딸 : (무심하게) 다녀왔습니다.

엄마 : (대딸을 잡아끌며) 어 너 잘 왔다. 일루 와 봐.

대딸 : (의아해하며) 왜요?

엄마 :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으응, 내가 오늘 책을 샀거든, 막중이 주려고. (잠시 퇴장)

대딸 : (혼잣말로) 아이 빨리 나가 봐야 되는데 참!

엄마 : (책을 가지고 등장) 이거야, 이게 그렇게 좋은 책이란다. 값도 얼마나 싸게 줬다구.

대딸 : (의심스런 눈빛으로) 엄마가 책을 사? 이거 얼만데?

엄마 : (당황해 하며) 응, 5만원 밖에 안 줬어, 그보다 책 괜찮은가 봐라.

대딸 : (마지못해 책을 펴 본다.) 그럴 줄 알았다. 이거 요새 유행하는가 봐?

엄마 : (불안해하며) 왜, 왜?

대딸 : (책을 흔들며)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근데도 속아사는 아줌마들 많더라구. (엄마를 불만스럽게 쳐다본다.) 이걸 왜 샀어, 이러니 책장사가 밥먹고 살지, 5만원이라구

? 그 돈이면 식구들 외식도 하겠다.

엄마 : (목이 메이는 걸 참아가며) 이게... 그렇게 엉터리니?

대딸 : 당연하지, 이런 것 좀 덥석덥석 사지 마! 아빠 불쌍하지도 않아?

엄마 : ... (암담하게 서 있다.)

대딸 : (책을 엄마에게 준다.) 몰라, 나 약속 있어, 다시 나가야 돼. (혼잣말로) 하여튼 무

식한 아줌마들한테 사기쳐서 돈 벌어먹으려고.

대딸 퇴장

엄마 : (당황하면서 발을 구른다) 이걸 어떻게 해. 이걸... 40만원이나 줬는데! 아이참, 이

걸 어쩌지, (눈을 비비며) 정말 이걸 어떡하나! (주저앉는다.)

엄마의 영 : (묵묵히 죄스럽게 엄마를 지켜본다)

 

제 6장면

남편 ; (컴퓨터를 들고 등장하면서) 얘들아, 나 왔다.

엄마, 대딸, 막중, 등장.

엄마 : (컴퓨터를 보면서) 그게 뭐예요?

대딸 : (반색하며 달려가 컴퓨터를 받아든다) 와, 컴퓨터다! 신형이네!

막중 : (달려붙으며) 어디 어디? 와 죽인다, 최신형이다.

엄마는 뒤에 서 있고 아빠와 대딸, 막중은 거실에 컴퓨터를 내려놓고 설치한다.

막중 : (신이 나서) 와, 이거 인터넷도 돼?

남편 : (자랑스럽게) 그럼, 다 배워 왔지. 금방 깔면 돼. 오락도 80종이나 있다.

막중, 대딸 : (아주 신나한다.)

엄마 : (걱정스럽게) 그걸 무슨 돈으로...

가족들 엄마의 말을 무시하며 컴퓨터를 갖고 그 주변에 몰려 놀고 있다.

엄마 : (한참 보고 섰다가) 어디, 뭐데? (가까이 가 보려 한다.) 어이쿠.(갑자기 뭔가에 부

딪친 듯 넘어진다.) 이게 뭐야!

엄마는 당황하며 일어선다. 다시 가까이 가 보려 하지만 또 부딪혀 밀려난다.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붙어 그것을 밀어내려 하나 꼼짝도 하지 않는다. 식구들은 아랑곳없이 즐겁게

놀고 있다

엄마 : (계속 애쓰면서) 어디 나도 좀 봐요! (보이지 않는 벽을 밀면서) 나도...!

엄마 계속 애쓰다가 아무 소용이 없자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남편 : 컴퓨터는 막중에 방에 두는 게 좋겠다.

막중 : (기뻐서 소리지르며) 와 정말?

주저앉아 있는 엄마를 보이지 않는 듯이 무시하며 식구들 퇴장한다. 그런 식구들을 엄마는

넋놓고 바라보고 있다.

 

제 7장면

엄마는 책을 만지작 거리며 딸을 기다리고 있다. 책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결국은 집어던진다.

고딸 등장

엄마 : (반색하면서) 어, 고딸이 왔니?

고딸 : (피곤하다는 듯이 한 번 쳐다보고 만다.) ...응. (가방을 질질 끌며 방으로 가려 한다.)

엄마 : (고딸을 잡아끌며) 배 안 고파? 엄마가 밥 좀 차려 줄까?

고딸 : (퉁명스럽게) 됐어, 살쪄.

엄마 : (걱정스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왜, 무슨 일 있었어?

고딸 : (엄마를 귀찮다는 듯이 한 번 쳐다보고는 비꼬면서) 아무 일 없어. ...얼른 학교에나

한 번 와.(퇴장하려고 한다.)

엄마는 무대 건너편으로 나가려는 딸을 가만히 지켜 본다.

고딸 : (퇴장하려다 무대 끝에서 돌아보며) 엄마, (한심하고 짜증스런 목소리로) 엄마도

제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 마.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드는 거랬어. (퇴장한다.)

엄마 무대 중앙으로 힘없이 걸어나온다. 위를 쳐다보다가 가만히 자리에 쪼그리고 무릎을

감싸 안는다. 엄마의 영은 죽은 듯이 구석에 쪼그려 고개를 묻고 있다.

엄마 : (한숨을 쉬며) 나도 이렇게 사는 게 싫어, 그치만 내가 나 하고픈 대로 다 하고 살면 니들 엄마는 대체 누가 하니...

 

막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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