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남산공원의 삼복더위 단상
김난주
계단 오십 여개를 거의 다 내려온 팔십 노인이 힘을 모아내느라 서있다. 소서와 대서, 초복과 중복이 낀 칠월 더위 피하던 남산공원에서 내려오는 사이, 다시 덥고 힘마저 빠지는 게다. 계단 아래 오른쪽에 있는 건물 (사)한국전통예악계발총연합회 천안지부 연습실에서는 군인들이 발맞춰 걷듯 정확하게 모아진 사물놀이 소리가 차츰 숨죽이고 잦아들어 긴장하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상쇠를 따라 맞추는 장단은 당장 나가 싸워서 누구라도 이길 기세지만, 전쟁 나면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은 젊은이들 몫이다.
그러나 2006년 한국청소년개발원이, 전쟁 나면 앞장서 싸울 건지 청소년들에게 묻자, 일본은 41.1%, 중국은 14.4%, 한국은 10.2%가 싸우겠다고 했다. 이 결과가 걱정이라면 돌이켜 볼 점이 있다. 외세에 의해 내 땅이 갈라진 것도 모자라서, 남들이 그어놓은 선을 넘었느니 하며 동족끼리 싸우다가, 남부끄러운 휴전상태로 후손에게 물려주는 건 어른의 도리일까. 더구나 동족보다 외세를 더 신뢰하고 편드는, 질수밖에 없는 국가관으로 가르치면서 겨레를 지키라 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라 하면 어느 젊은이가 싸우겠다고 나설까.
일제강점기에 조선팔도 어디서나 그랬던 것처럼 천안사람들은 지금의 중앙동 남산공원 자리 신사에서, 도둑의, 아니 강도의 신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일부 조선 젊은이는 두려움에 짓눌려 나약하게 살면서 굴욕을 삼키는 것은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며, 객지로 나가서 겨레 되찾는 일을 도모하고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1945년, 삼복더위보다 더 타오르는 마음으로 객지에서 훈련을 하고 있던 독립군과 장군들은 나라를 침범해서 꿰차고 사는 자들을 스스로 쫓아낼 기회마저 빼앗기는 팔월이 오리라곤 예기치 못했다. 말만 번지르르 할 뿐 속내는 토끼 간 빼 가려는 남생이처럼, 또 다른 외세는 원자폭탄으로 일장기를 내리고 연합군 위세로 성조기를 올렸다. 자주독립의 기회마저 빼앗기고 불볕더위와 싸우며 준비했던 자치의 노력마저 짓밟혔으니 기막힐 노릇이요 태풍이며 물벼락이었다.
공원 옆 중앙시장 주차장 위로 어느 새 무지개가 떴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기세등등한 바람에 밀려온 구름에 가려 겨우 한 쪼가리만 보이는데, 하늘이 또 물을 퍼붓기 시작한다. 낯만 가리고 선 어른들로부터 허리 병 걸린 나라를 물려받아 성장을 멈춰버린 젊은이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볼까. 다민족 중국은 뭉쳐 사는데 한 민족 우리끼리 평화협정도 맺지 못한 이 땅은 젊은이들을 꿈꾸게 할까. 어쨌든 새들은 남북을 넘나들며 알을 낳고, 버섯은 놀랄 만큼 성장한다. 또 애벌레들은 망설임 없이 변태해서 나비ㆍ매미ㆍ사슴벌레가 되고, 배롱나무는 춤출듯한 몸 매무새를 드러내며 저마다의 빛깔로 꽃망울을 터트린다. 뿐인가. 풀뿌리들은 기지개를 펴고 힘차게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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