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

나, 독립한다

실다이 2009. 6. 24. 18:28


도서출판 일다에 문의하셔야 주문이 가능합니다.

책 받으실 분의 이름과 주소를 메일(
ildaro@ildaro.com)로 보내주세요.
입금이 확인되는 대로 책을 발송해드립니다.

신한은행 110-178-208564 (1권 당 9,800원)

책이 도착하는 데에는 이틀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주위에 홍보를 부탁드려요. 지역과 학교도서관에도 신청해주시고요~

문의 및 연락처: 02-362-2034


모든 여성들은 독립을 꿈꾼다



21세기 여성들의 화두는 ‘독립’


 오늘을 사는 여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 추구하는 바는 사랑도, 명예도, 결혼도, 가정도 아닌 ‘독립’이다. 여성들은 나이와 지역, 직업을 불문하고 자기 삶의 정체성을 찾기를 원하며 독립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기를 꿈꾼다. 《나, 독립한다》는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 적극적으로 살아나가려는 모든 여성들에게 공감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건네줄 것이다.



독립을 왜 하려고 해?


 오늘을 사는 여성들에게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행복한 삶의 기준도, 선택하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 수많은 선택의 지점에서 여성들의 욕구는 무엇보다 ‘독립’일 것이다.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독립을 권하지 않는다. ‘여성의 행복한 삶’에 대한 이미지와 판타지가 넘쳐 나지만, 사회가 정한 선을 넘어서려 할 때는 어김없이 경고가 날아온다. “여자가 왜 독립을 하려고 해?”라며 구슬리고 때로 위협하면서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여성들의 발목을 잡곤 한다. 인터넷 신문인 여성주의 저널 일다(www.ildaro.com)에서는 이런 현실 속에서 여성들의 삶의 정체성 찾기와 관련된 변화에 대해, 그리고 독립이라는 화두에 대해 소통하고 고민하는 장을 만들고자 2006년 <변화와 독립>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여성들 삶의 정체성 찾기와 관련한 ‘변화’에 얽힌 사연과 시도들, 그리고 ‘독립’에 대한 일상의 경험을 담은 글들이 쌓여가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지지가 쏟아졌다. <변화와 독립> 칼럼은 현재도 독자들의 커다란 지지와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연재 중에 있다.

 <도서출판 일다>의 첫 출간 도서인 《나, 독립한다》는 독립을 선택한 여성들과 이를 지지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담아 탄생했다. 저자들은 다른 매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경이 보이는 집에서 우아하게 와인 한 잔 마시는 장면’은 독립한 여성의 진정한 실체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나, 독립한다》에는 훨씬 구체적이고 솔직하며 매력적인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덟 빛깔의 독립


▲ 부모로부터의 간섭과 의존에서 벗어나, 남자친구의 보호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20대 여성의 좌충우돌 독립 성장기

▲ 아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 여성, 시간이 훌쩍 지나 딸과 극적으로 재회했지만 이제 또다시 선택을 해야 한다.

▲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장애여성이 말하는 나의 독립, 나의 30대

▲ 가족도 결혼도 원하지 않는다. 인생 최초로 ‘세대주’가 되어 독립의 첫 발을 내딛는 20대 여성의 이야기

▲ 10년간의 감옥 같은 결혼 생활에서 탈출하고 이혼을 통해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는 40대 여성의 이야기

▲ 세상이 말하는 것과 조금은 다른 연애, 연인과의 동거를 통해 관계로부터의 독립을 깨닫는 20대 레즈비언의 이야기

▲ 독립이 젊은이의 전유물은 아니다. 황혼의 새 출발을 시작한 50대 여성의 연륜이 묻어나는 독립 이야기

▲ 달랑 몸 하나만 가지고 집을 나와서도 독립은 가능하다. 백수로 출발한 독립의 길에서 만난 세 여자 간의 연대를 말하는 30대 여성의 이야기



화려하지 않아도 좋아


 저자들은 TV광고에 나오는 아파트 속에 들어가 명품을 걸치고 친구들에게 김치냉장고를 자랑하는 여성들의 삶이 전혀 부럽지 않다고 말한다. 방 한 칸에 행복을 느낀다. 나는 독립했으므로. 박제된 삶에서 벗어나 소중한 인생의 의미를 찾았으므로. 누군가 만들어놓은 규율이 아닌, 나만의 방식대로 사는 삶이 주는 행복을 알았으므로.

《나, 독립한다》에서는 수많은 삶의 방식 중 ‘독립’을 선택한 여덟 명의 여성들을 통해 다양한 독립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젊은 여성이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만이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나이 육십에 접어든 여성도, 장애를 가진 여성도,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도, 방을 마련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여성도 독립을 갈망하고 독립적으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여성들이 얼마나 독립적인 삶을 원하는지, 각자 놓여 있는 자리에서 다채로운 독립을 어떻게 일궈 가고 있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모두가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독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자신의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로부터 자신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 혹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만나는 경험은 ‘행복한 삶의 방식’을 찾고 있는 여성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다.《나, 독립한다》를 통해 독립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넬 수 있기를, 그래서 더 많은 여성의 독립 이야기를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한다.



저자 소개


* 김희수

스물여덟, 학원 강사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극히 소심하고 평범하나, 남들은 나를 '사고뭉치'라 부른다.

* 윤하

마흔, 어린이 창의성ㆍ철학 프로그램을 계발ㆍ교육하며 아이들에게서 미래와 희망을 발견하면서 살고 있다.

* 장미

서른다섯, 지역에서 장애인들이 어떻게 자립해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일을 하고 있다. 답답하면 가끔 여행을 가기도 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 이승민

스물여덟,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일어난 큰 변화는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하며 스물여덟 해 동안 잠자고 있던 운동 신경을 발견한 일이다.

* 숙경

마흔 셋, 여성단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체니’(체 게바라+스콧ㆍ헬렌 니어링)라 불리길 좋아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생태적이며 대안적인 삶을 꿈꾼다.

* 권정연수

스물넷, 정신없는 기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는 사회 초년생. 앞으로 상담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꿈이 있다.

* 이옥임

쉰아홉, 이십삼 년간 교직에 몸담았고 은퇴한 후 서울근교에 있는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내게 남겨진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시를 쓰며 자연과 벗하여 살고 싶다.

* 정희선

서른여섯, 몇 년간의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얼마 전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다. 당분간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오늘만 생각하며 분주하게 살고 싶다.



추천의 글


 ‘조신하게’ 한 가정에 소속되어 있다가 사회가 인정하는 다른 가정을 이루어 분가하는 것을 정석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학교 혹은 직장처럼 ‘합당한 이유’ 없는 독립은 일종의 금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젊은 날엔, 타 지역으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창작업이 아니라 먼 곳에 근무해야 하는 직장을 꿈꾸기도 했다. 덜컥 저지르듯 독립을 해 버린 어느 날, 결혼한 친구의 집들이에서 돌아와 깨끗한 아파트와 반짝이는 신혼 가구에 대비되는 빈한한 자취 살림에 한숨을 내 쉰 일도 있다.

 이제 독립 가구주 십오 년차, 책을 읽으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린다. 독립하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많은 일들,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들. 그리고 하나의 결론.

 ‘그때, 저지르길 잘했어.’                                                  

- 만화가 한혜연 -

                     

                 

오랫동안 독립을 꿈꿔 왔던 나도 올해 초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혼자 꾸려 나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비슷한 과정들을 거쳐 독립의 길에 올랐을까. 몰래 웃으며 글을 읽는 동안 독립의 길은 끝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과연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들, 나를 규명할 수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독립적인가. 독립적이기 위해 어떤 행복을 버릴 이유는 없지만, 왠지 그 자유가 내게 또 다른 행복을 줄 것 같다.                             

- 싱어 송 라이터 소히 -


                                                           

목차


도시 사막 한가운데서 - 김희수 p. 10

내가 선택한 아이 - 윤하 p. 34

이 여름이 끝나면 - 장미 p. 50

작은 식탁 - 이승민 p. 76

이혼, 나를 성장시킨 힘 - 숙경 p. 98

환절기 - 권정연수 p. 124

이사하는 날 -이옥임 p. 146

발아래 별이 있다 - 정희선 p. 164



< 도시사막 한가운데서 >
 


 오늘 아침에는 한바탕 개미와의 전쟁이 있었다. 벌써 삼 일째. 푹신한 이불 속에서 이제 막 깨어나려던 찰나, 함께 사는 친구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사이쯤에서 지르는 비명에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굳이 나가 보지 않아도, 사태가 어떠할지 대충 짐작이 간다. 현관문에서부터 벽을 따라 냉장고의 냉동실 문 안까지, 한 줄로 개미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을 게다. 부모님 집에서 나와 산 지 사 년째. 어지간한 살림과 세금계산, 부동산 거래, 은행 대출 등에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출몰하는 개미떼에는 손을 못 쓰겠다. 나는 스물여덟, 미혼의 독립녀이다.
 

 본문 p. 12

                                                                         

 나의 독립은 남자친구와의 동거 생활로 시작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남과 다를 것 없이 지내 오던 나는 대학 졸업을 한 해 정도 앞두고 본격적으로 독립을 결심했다. 집에서는 몰랐지만 대학 기간 내내 연애를 했었고, 애인과 자유롭게 성생활 하기에 집은 언제나 방해물이었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자취를 하고 있었고 나도 조금씩 돈을 벌기 시작하자 그와 편하게 한집에서 살고 싶었다. 나를 구속할만한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연애는 많이 하고 싶고. 제발 마음대로 편히 살아 봤으면……. 원하는 사람과 편안히 섹스하고, 편안히 잠들고, 편안히 깨어나는 일을 왜 그렇게 힘들게 숨어서 해야 하는 것일까.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새 집. 그것은 혼자서든, 사랑하는 사람하고든 쉬고 싶을 때에는 음악을 들으며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 것 정도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꿈이었다. 

본문 p. 14


- 가족으로부터의 분리, 연인과의 동거, 홀로서기 위해 필요한 시간들.

여자는 독립을 통해 성장한다.



< 내가 선택한 아이 >


 삶 속에서 우리는 항상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수없이 많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꼭 택해야 하고, 그것이 펼쳐보여주는 세상을 만난다. 그렇게 선택을 하고 나면 그 삶을 살아내야 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내 인생에서도 선택의 문제는 항상 중요하게 다가와 삶을 바꿔 놓았다. 그것이 이끄는, 때로는 잔잔하고 또 때로는 폭풍 같은 세월의 물결을 수없이 빠져나와서도 여전히 선택의 연속과 변화 속에 서 있다. 난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내 나이, 마흔의 선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순간 방향이 결정된 첫 발자국부터, 그 발걸음을 따라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온 세월의 강 너머, 나이 마흔에 서 있는 새로운 선택의 지점에 대해.

                                               본문 p. 36

아이를 낳기로 선택했던 것과 똑같은 관점에서 난 아이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아이를 포기한 것은 순전히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내 선택이었다. 아이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아이를 키우던 어느 날 아이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는 원망의 말을 단 한 번이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키웠다면 분명 더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을 것이고, 다른 평범한 어머니들처럼 보상 심리를 가졌을 것이 분명했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그때도 역시 소피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했다.

                                                              본문 p. 44 
       

- 결혼과 이혼 그리고 아이. 나를 이끌어 온 삶의 순간들은 언제나 나의 선택이었다.
       


< 이 여름이 끝나면 >


 이사를 나가던 날 밤은 가슴이 설레 잠도 오지 않았다. 막상 혼자 살게 되면서는 밥부터가 문제였지만 나는 지금도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컵으로 쌀을 붓는 것도 쉽지 않았다. 컵을 발로 잡아서 쌀을 포대에서 밥솥으로 옮기면서 몇 번을 엎질렀다. 얼마만큼 쌀을 넣어야 혼자 두 끼 정도 먹을 수 있을지도 알지 못했다. 쌀을 씻는 문제는 더욱 난이도가 높았다. 물도 엎지르고, 물을 따르면서 쌀도 엎질렀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시도해 모든 것이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밥솥을 싱크대에서 바닥으로 옮기다가 밥솥이 발에서 미끄러지면서 떨어져 바닥이 엉망으로 되기도 했다. 그때는 울고 싶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살다 보니까 내가 이런 것도 하네.’라는 생각으로 뿌듯했다. 밥과 간단한 요리지만 스스로 해 본 경험은 감격 그 자체였다. 언제나 남이 해 주는 것만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가 더는 아닌 것이다.

                                                  본문 p. 64~65

        

처음에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는 대문의 문턱이 높았고, 대문 밑으로 나 있는 계단 때문에 전동휠체어가 들어올 수 없었다. 싱크대도 의자에 앉아 다리를 올려놓기엔 너무 높아서, 처음에 사용할 때는 몸이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물을 받곤 했다. 그래서 직접 동사무소와 복지관에 다니면서 문의를 했더랬다. 처음에 동사무소로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동사무소 직원은 어이없어했다. 내 딴에는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해서 동사무소에 들어가 ‘가정복지과’ 담당 직원을 찾은 것이었다. 그곳이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생활과 전혀 무관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장애인인데, 집에 문턱이 있고 대문 밖으로 계단이 두세 개 나 있어서 드나들기 어려워요. 혹시 이것을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개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동사무소 직원은 일언지하 “그런 건 없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생뚱맞게 뭐 이런 걸 동사무소에 와서 묻는 여자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이다.                                       

본문 p. 70


- 나는 휠체어 장애인이다. 내가 꾸리는 일상의 힘으로 오늘도 나는 독립을 만들어 간다.

         


< 작은 식탁 >


  “그게 독립이니? 가출이지. 집에서 살기 싫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살기 싫어서 나간 거지. 이제 그만 들어와라.”

지난겨울 어느 날 엄마는 말했다. 그날도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엄마와 마주앉은 저녁 밥상 앞이었다. 말없이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응, 그래서 집 나온 거 맞아요.’하고 대답했다. 손질해 놓은 꽃게와 갈아 놓은 마늘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타박타박 골목길을 걸으며, 내가 이 사람을 외면하기 힘들 거라는 걸 다시 알았다. 내게는 ‘독립’, 그리고 엄마에게는 ‘가출’이 되었던 나의 선택. 

본문 p. 79


 힘이 들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나는 함께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과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 사람들과 살고 싶었다. 서로 거리를 인정할 줄 알고,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 그런 공존이 불가능해질 때에는 서로의 분리 역시 받아들일 줄 아는 태도. 이것이 혈연 가족으로부터 간절히 독립을 원했던 이유이다. 나는 가족으로부터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같은 공간에 있었을 뿐이다. 함께 살려면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본문 p. 84


                   - 스물여덟, 독립의 첫 발을 내딛으며 ‘가족’이 아닌 ‘관계’를 꿈꾸다.



< 이혼, 나를 성장시킨 힘 >


 불행하고 악의에 찬 결혼 생활을 십 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혼 여성에 대한 주변의 부당한 시선들을 물리칠 수 있는 단호함과 홀로서기를 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확한 대답이다. 겉으로는 똑똑한 척, 당당한 척 소리치며 살아왔지만 나는 홀로서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독립을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인생에서 독립이 어떤 의미인지, 일상 속에서 어떻게 독립의 문제를 풀어 가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본문 p. 110


 이혼을 한 후 내게는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턱없는 자신감이다. 컴퓨터가 망가지고 전기선을 제거해야 하거나 변기가 고장 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해 보니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힘이 좀 부족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세상살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여유가 생겼다. 세상과 만나고 자신과 만나는 일들이 자연스러워졌고 일상이 되어 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모든 것이 원만하지는 않다. 불안정하고 위협적인 요소가 상존해 있다. 하지만 더는 걱정하지 않는다. 내게 더 소중한 자유와 독립이라는 두 날개가 주어졌으므로.

본문 p. 121~122

             

              - 이혼이 내게 준 자유와 독립은 나를 성장시킨 힘이다.



< 환절기 >


 대부분 사람들은 독립을 단지 가족한테서 떨어져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지 않기 때문에 더 가족의 간섭을 많이 받게 되거나, 스스로 강하게 의존하는 경우도 보았다. 어쩌면 물리적인 공간이나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독립보다 심리적인 독립이 더 어렵고도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십대 시절, 가정폭력이 심한 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가족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도 심적으로는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요령이 필요했다. 그리고 동성의 여자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부터는, 가족들에게서 받는 기대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차별적 시선들에서 심리적으로 거리를 둘 필요도 생겨났다.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고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 섞인 시선에 나 역시 휘말려 버린다면, 결국 동성을 향한 솔직한 이끌림을 부정하고 회피하게 될 테니까.

   본문 p. 130

        

 나는 독립을 한다는 것이 독립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차가워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함께 있는 그 순간에는 따뜻하다가도 멀어질 때는 묵묵히 보낼 줄 아는,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쿨한 사람이고 싶었다. 고통을 호소하지 않고, 외롭다고 기대지 않고, 아쉽다고 붙잡지 않는 그런 사람……. 

본문 p. 131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이전에 가졌던 이런 생각들이야말로 내가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다. 실제로는 관계에 쩔쩔매고 있었으면서도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인지, 나는 최소한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내게서 상냥하고 명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나를 곁에 두고 오래 알아 온 친구들만이 나의 친절이 벽이 된다는 것을 느끼고, 내가 자기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라거나 우울함이 있는 축에 속한다는 것을 짐작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애인을 괴롭힌다더라.”라는 식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생활을 원만히 하더라도, 개인적인 친밀함이 요구되는 관계 안에서 평화로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오히려 사적이고 폐쇄적인 관계일수록 그 안에 침몰하고 집착하며, 독립적인 자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나 역시 애인과의 교제가 깊어지면서 얼마나 관계 맺는 일에 서투른지 깨닫게 되었다. 특히 동거를 시작하자, 우리 관계 속에서 이미 불거지고 있었으나 모른 척하고 있었던 문제들이 드러났다.           
                                                                                                                                       
본문 p. 132

- 연인과의 친밀한 동거는 ‘공간으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라,
‘관계로부터의 독립’을 깨닫게 했다. 



< 이사하는 날 >


 전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조촐한 꿈이 산산조각나 버릴 줄 짐작이나 했겠는가! 뇌수술 후의 남편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듣는 것도 싫어하고 보는 것도 싫어하고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어쩌면 다섯 살 어린아이 같다고나 할까. 남편의 입으로 “예전의 천사 같던 아내가 악마로 보인다.”라고 표현할 만큼 내가 싫다는 걸 어쩌랴. 눈앞에 아내가 얼씬거리는 것조차 싫은 걸 어쩌랴. 아내의 목소리도 모습도 다 싫은 걸 어쩌랴!

 그러니 ‘서울 근교에 텃밭 딸린 집’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대화가 단절된 부부. 손은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는 부부. 처음 몇 해는 꿈이라도 꾸었다. 애원도 해 보고 기도도 해 보고 싸움도 걸어 봤다. 그러기를 오 년 이상 넘기고 나니, 이제 더는 꿈이고 뭐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어느새 ‘내 인생 오십에서 이대로 소멸해 버리고 말 것인가.’하는 막다른 골목에 와 있었다.

 분문 p. 158


 남편은 이런 나를 두고 ‘아내가 바람났다.’라고 했다. 둘째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네 엄마가 요즘 바람났다!”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남편뿐 아니라 시댁 쪽 사람들이며, 심지어 큰딸까지도 내 외도를 ‘바
람’이려니 여겼다.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미심쩍은 시선과 의미심장한 말투에서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다. 내 집(엄밀히 말하자면 내 방)을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은 행여 이 여자의 바람기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은근한 기대를 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하늘을 향해 고개 들고 다닐 것이다. 지금의 이 행복한 외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본문 p. 161

                                              

                             - 남편과 자녀로부터 떠나 오십대 후반에 찾은 행복, 나의 독립.

   노년의 삶을 독립으로 채울 수 있어 행복하다. 



< 발아래 별이 있다 >


이천만 원 이상을 모으기 전에는 절대 독립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그 돈 없이도 지금은 나만의 공간에서 살고 있다. 이 년 전, 가족들과 더는 지낼 수 없었을 때 옷가지만 챙겨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

 그동안 ‘조건이 되어야 독립할 수 있다.’라는 생각에 낙심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던 내가,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오고 나서 새롭게 살 집이 생긴 것이다. 지금보다 어리고 수입이 많았을때 독립의 걸림돌이라고 여겼던 조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본문 p. 167~168

가족 이외에 다른 관계를 맺어 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적당한 거리와 깊은 교감을 병행하는 데 익숙지 않다. 그러나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방 한 칸이 독립의 큰 밑천이 될 수 있다. 혼자 살면서 방이 하나 남는다면, 독립하고 싶어도 당장 방법이 없는 친구에게 그 방을 세놓길 제안한다. 단, 능력에 맞게 방세를 내도록 계약하고 사생활을 존중해줘야 한다.

                      본문 p. 170

       

        - 독립의 길에서 힘이 되어준 것은 서로의 독립을 지지해준 친구들, ‘여자들의 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