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자연의 아름다움 (2)
111. 잔들고 혼자 앉아: 윤선도 46
112. 잘새는 날아들고: 정철 48
113. 적설이 다 녹도록: 김수장 50
114. 지당에 비 뿌리고: 조헌 53
115. 청강에 비 듣는 소리: 효종 56
116. 청량산 육륙봉을: 이황 58
117. 청산도 절로절로: 김인후 61
118. 초생에 비친 달이: 김진태 64
119. 추산이 석양을 띠고: 유자신 67
120. 추월이 만정한데: 김두성 69
121. 칠곡은 어디메고: 이이 71
122. 한식 비갠 후에: 김수장 74
123. 흰구름 푸른 내는: 김천택 76
제3장 자연의 아름다움 (2)
111. 잔들고 혼자 앉아
윤선도
잔들고 혼자 앉아 먼 뫼를 바라본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우움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
-- 지은이: 윤선도 110. 참고
-- 말뜻
우움도: 웃음도
아녀도: 아니하여도
못내: 잊지 못하고 늘
-- 감상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고산 윤선도의 시 세계는 자연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데에 있다
내가 완전히 자연 속에 몰입된 상태, 자연이 곧 나요, 내가 곧 자연이라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술잔을 들고 거너한 기분으로 혼자서 먼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운 님을 만난 것보다도
더 반갑고 흐뭇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옆에 그 님이나 다정한 친구가 이야기하거나 웃지
않아도 즐겁기만 하다는 것이다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인간은 신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라 하여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자연이 곧 신이요, 신이 다름아닌 자연이기 때문이다 하늘도 자연이니 하늘이 곧
신이요, 신의 경지에 들면서 인간이 곧 하늘이다 인내천이라는 생각도 바로 이러함이
아닌가 한다.
112. 잘새는 날아들고
정철
잘새는 날아들고 새달이 돋아온다
외나무 다리에 혼자 가는 저 중아
네 절이 얼마나하관데 북소리 들리느니
-- 지은이: 정철 8. 참고
-- 감상
해는 지고 산촌에 땅거미지니, 잘새들은 보금자리를 찾아 날아 들고, 동녘 멧부리에 새달이
돋아 온다 시바세계에 사주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일 성싶은 외나무 다리를 혼자서 조용히
건너가고 있는 중의 고깔 쓰고 석장 짚은 뒷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로구나 이것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부분이다 거기에 반주하는 음악이 없어서야 될까 보냐 저 멀리 절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쇠북소리! 어느 명화의 한 장면이 이 정경을 이토록 여실히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래서 송강의 시 세계는 역시 예술 세계임이 분명하다.
113. 적설이 다 녹도록
김수장
적설이 다 녹도록 봄소식을 모르더니
귀홍은 득의 천공활이요 와류는 생심 수동요라
아이야 새술 걸러라 새봄맞이 하리라
-- 지은이: 김수장 21. 참고
-- 말뜻
적설: 겨우내 쌓인 눈
귀홍 득의 천공활: 가을에 왔다가 봄에 북녘으로 돌아가는 철새 기러기는, 하늘이 넓고
넓어서 의기양양하게 날아가고
와류생심 수동요: 냇가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버드나무(수양버들을 가르키기도 함)는 얼음이
녹아서 물이 움직임에 따라 춘심이 생기는구나! 잠자던 버드나무도 이제 잠을 깨고, 얼음에
갇혔던 물도 이제 활기를 찾아 흘러가는구나!
-- 감상
겨우내 쌓였던 눈이 다 녹도록 아직 봄이 온 것을 별로 못느꼈는데, 넓은 하늘을 훨훨 마음껏
날아가는 기러기떼와 냇가의 버드나무 실가지에 푸릇푸릇 생기가 돌고, 얼음에 덮였던 시냇물이
돌돌돌 흘러가는 것을 보니 봄이 완연하구나! 이제 완전히 봄이 왔구나 아이야, 새술을 걸러라
새봄맞이를 해야겠다 새봄을 맞이하는 밝은 마음, 즐거운 심정이 생동한다
한국의 봄은 버드나무 실가지에 먼저 오고, 한국의 가을은 오동잎이 누구보다도 먼저 알린다고
한다 아직도 만물이 죽은듯이 겨울 기분을 벗어나지 못한 이른 봄에 버드나무 실가지에는 어느덧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또 아직도 여름인 줄만 알고 있는데 뜰 앞의 커다란 오동잎이 뚝하고 떨어져 펄럭펄럭 땅 위에 내려앉는다 버드나무의 실가지와 둥그런 오동잎은 계절 감각의 첨병인가?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우리 나라를 꾸며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은 그대로 그린 말이다
산수가 좋아서, 자연 풍경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계절의 변화가 이렇듯이 규칙적, 율동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계절의 변화가 율동적 음악적이어서 산수가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4계절의 개성 발휘가 우리 나라처럼 뚜렷한 나라도 별로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봄은 따뜻하고 여름은 더우며, 가을은 시원하고 겨울은 추운, 이 현상에 예외는 없다
.
114. 지당에 비 뿌리고
조헌
지당에 비 뿌리고 양류에 내 끼인 제
사공은 어디 가고 빈 배만 매였는고
석양에 짝잃은 갈매기는 오락가락하노매
-- 지은이: 조헌(1544__1592)
자는 여식, 호는 중봉, 이이, 성혼의 문인으로, 전적, 감찰을 거쳐 통진현감을
지냈다 여러 차례의 상소와 직간으로 파직, 유배의 쓰라림도 맛보았으나, 임진왜란에는 의병장으로 의병을 일으켜 금산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선조 37년(1604)에 이조판서, 영조 때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어 '문열'의 시호를 받았다
-- 말뜻
지당: 연못
양류: 버들 수양버들
내 끼인 제: 안개가 끼었을 때
석양: 저녁해
노매: '__노매라'의 준말로 감탄형 종결어미 __는구나!
-- 감상
아늑한 느낌의 멋진 한 폭의 동양화다 연못에 가랑비 내리고, 버들 숲에 안개가 자욱한데, 사공 없는 빈 작은 배 하나 강가에 쓸쓸히 매여 있고, 해 저무는 저녁 하늘에는 짝잃은 외로운 갈매기들이 짝을 찾느라고 그러는지 부산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풍경이다 뜻있는 선비들이 고관대작이나 부귀영화도 마다하고, 곧잘 그 품에 안기던 '강호'다 이런 자연 속에서 우리 겨레는 자라고, 또 물아일여의 겨레 정신을 길렀다 따라서, 물외한인의 호연지기도 여기에서 배웠고, 안빈낙도나 안분지족의 품격도, 군자의 풍도도 여기에서 길렀던 것이다 나아가서는 고매한 한겨레(한민족)의 정신세계나 종교적인 경건성도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것이다.
115. 청강에 비 듣는 소리
효종
청강에 비 듣는 소리 그 무엇이 우읍관데
만산홍록이 휘두르며 웃는고야
두어라 춘풍이 몇 날이리 우울대로 우어라
-- 지은이: 효종 35. 참고
-- 말뜻
비 듣는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비 내리는 소리 '듣다'는 떨어지다 '듣듣다'도 같은 말
우읍관데: 우습기에
만산홍록: 온 산에 가득 피어 있는 꽃과 풀 '홍'은 꽃, '록'은 풀
휘두르며: 몸을 흔들어 대면서
우울 대로 우어라: 웃을 대로 실컷 웃어라
-- 감상
강물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무엇이 그리 우습기에 온 산의 화초들이 저렇게 몸을 흔들어
대면서 웃는 것이냐 내버려두려무나 따뜻하고 상쾌한 봄바람이 며칠이나 더 불겠느냐 그
즐거운 봄도 한때요, 곧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니, 삼춘 가절이 그리 긴 것이 아니니, 지금
마음껏 한번 웃어 보라고 내버려두어라
우거진 숲에 비가 쏟아질 때에 후두둑 빗소리가 요란하고, 화초들이 모두 몸을 흔들어 대는
광경을 즐거워서 춤을 춘다는 뜻으로 포착한 착상이 기발하다 의인법의 묘를 얻었다 하겠다
무슨 그럴듯한 우의가 담겨 있을 것 같은 시조이다.
116. 청량산 육륙봉을
이황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 지은이: 이황(1501__1570)
자는 경호, 호는 퇴계 율곡 이이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대성리학자
향리 안동에 도산서원을 세워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벼슬은 예조판서, 공조판서,
대제학 등을 지냈으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사단칠정론이 그의 학문의 핵심이며,
'이기이원론'을 주장하였다 오늘날 '퇴계학'은 일본, 중국 등 외국에서 오히려 그 연구열이
더욱 대단한 것을 보면, 그의 학문의 깊이와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말뜻
청량산: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산으로, 산세가 아름답고 특히 가을 경치가 좋기로 이름이
있다 신라 김생이 10년 동안 글씨 공부를 한 김생굴과 고려 공민왕이 머물렀던 공민왕당과,
퇴계가 학문을 닦던 오산당이 있다 높이 870m
육륙봉: 36(6x6) 봉우리라고도 하고 12(6+6) 봉우리라고도 한다
백구: 갈매기의 한자말
헌사하랴: 떠들어 대랴?
어주자: 어부 고기잡이꾼
-- 감상
청량산 육륙봉의 빼어난 경치를 알고 있는 것은 나와 갈매기뿐이로다 말 못하는 갈매기야
수다스럽게 떠들어(청량산의 경치가 좋다고)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겠느냐 아무래도 믿지 못할
것은 복숭아꽃이로다 복숭아꽃 네가 떨어져서 냇물에 흘러가게 되면, 어부들이 알고 떠들어서
뭇사람이 알게 될까 걱정이로다 이것은 옛날, 중국 진나라 때에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거슬러 올라가 무릉도원을 발견했다는 옛이야기를 인용한 것이다 소재의 선택, 구사가
비범한 솜씨이다 '청량산 육륙봉'의 첫머리가 어감이 얼마나 경쾌한가?
청량산 육륙봉의 신비경을 나만이 알고 싶다는 구절이 '어주자가 알까 염려스럽다'는 이 심정과, 율곡의 '고산구곡가'의
이곡은 어디메고 화암에 춘만커다
벽파에 꽃을 띄워 야외에 보내노라
사람이 승지를 모르니 알게 한들 어떠리
와는 아주 대조적인데, 두 대학자의 학문하는 태도 내지 세계관에 그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17. 청산도 절로절로
김인후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 지은이: 김인후(1510__1560)
자는 후지, 호는 하서 김안국의 문인으로, 성균관에 들어가 이 황과
학문을 닦았다 박사, 설서, 부수찬을 거쳐, 현종 때에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양관 대제학이
추증되었다 을사사화 후에는 병을 이유로 고향 장성으로 내려가 자연을 벗삼고 지내며,
성리학 연구에 정진하였다 저서로 '하서집' 등이 있다
-- 감상
푸른 산도 자연이요, 푸른 물도 자연 그것이로다 산도 자연이요 물도 자연이데, 그 산수
사이에 살고 있는 인간인 나도 자연 그것이로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자연대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자연대로 하리라
자연 속에서 자연대로 살고 늙는, 모든 것을 대자연에 내맡긴 옛풍류객의 생활 태도는
엄숙하면서도 집착이라는 것이 없어서 더욱 좋구나 마음에 집착이 없으니 절로 매인 데가 없고,
매인 데가 없으니 따라서 모든 것이 허허요 자재로다 이쯤되면 사람도 부처가 될 수 있고,
신의 경지에도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시조는 모두 44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0자가 '절로절로'라는 단어가 되풀이됨으로써
그 어감도 좋거니와 리듬도 잘 살리고 있다 우림ㄹ 'ㄹ' 소리의 음악성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말장난을 부린 듯하지만 운율을 음미하면서 잘 보면 오히려 엄숙미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동가요'에는 송시열의 작품이라고 적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하서집'에 '자연가'라고
해서 다음과 같은 한시가 실려 있다
청산자연자연 녹수자연자연
산자연수자연 산수간아역자연.
118. 초생에 비친 달이
김진태
초생에 비친 달이 낫같이 가늘다가
보름이 돌아오면 거울같이 두렷하다
아마도 인지성쇠가 저러한가 하노라
-- 지은이: 김진태 16. 참고
-- 말뜻
초생: 초승 음력으로 그 달 첫머리의 며칠 동안 달을 보통 초승달, 보름달, 그믐달로 구분하여 말한다
두렷하다: 둥글다 만월
인지성쇠: 사람의 번성하고 쇠퇴하는 일
-- 감상
초승달을 낫에다가, 보름달을 둥그런 거울에다가 비유하는 것은 너무도 흔해서 이제 와서는
신선미가 없다는 평을 받을지 모르나, 옛시조로서는 귀에 익어 그렇게 거부 반응까지는 일지
않는다 또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사물의 성쇠에 비기는 것도 상식적이기는 하나 흔히 쓰는
방법으로서, 만인공감의 일이니 탓할 것이 없다 우리는 이 시조에서 초승달이 보름달이 되어
다 차게 되면, 다시 기울어 그믐달이 되는 것처럼 우주의 만유는 변하여 마지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수 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 겨울이 오고, 그 겨울이 가면 또다시 새봄이
돌아온다
피었던 꽃이 지고, 그렇게 무성했던 녹음도 가을이 되면 낙엽이 되어 땅 위에
떨어진다 그리고 썩어서 거름이 된다
나고 자라고 늙고 죽고, 그 다음에는 자손이 뒤를 이어 또 나고 자라고...이것이 인생이요,
대자연의 순환이요, 시계바늘처럼 정확한 우주의 법칙이다
내려다보고 살 때보다 쳐다보고 살 때에 더 희망이 있다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그 다음에는
괴로움이 온다 행복이라는 말은 불행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있다 행복도 극에 달하면
불행으로 바뀐다 그것은 마치 정상을 정복한 다음에는 내려오는 길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생겨난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난 자는 어김없이 헤어진다(생자필멸 회자정리)'는
불교 경전의 이 말은 제행무상을 설파한 것인데, 위에서 말한 바로 그 이야기이다 이 시조에서
말한 범위는 '낫같이 가늘던 초승달이 거울같이 두렷산 보름달'이 된, 성장만을 나타낸 것
같으나, '인지성쇠가 그러하다'는 종장의 구절을 미루어 보았을 때 '성쇠'를 모두 다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119. 추산이 석양을 띠고
유자신
추산이 석양을 띠고 강심에 잠겼는데
일간죽 둘러메고 소정에 앉았으니
천공이 한가히 여겨 달을 조차 보내도다
-- 지은이: 유자신(1533__1612)
광해군의 장인으로 형조참판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동지중추부사로,
세자 광해군을 따라 평안북도 강계에 갔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국구로서 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인조반정으로 다시 깎기어 버렸다
-- 말뜻
석야을 띠고: 저녁 햇빛을 받고 석양에 비친 단풍든 산은 더욱 아름다운 것
강심: 강 속
일간죽: 한줄기의 대나무 장대라는 말이니, 낚싯대를 이르는 말
소정: 작은 배 매상이
천공: 하늘을 인격화한 존칭
달을 조차: 달까지
-- 감상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산이 저녁 햇빛을 받고 강 속에 잠겨 있는데, 낚싯대를 둘러메고 가서
작은 배 위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앉아 있노라니, 하늘이 한가로이 여겨서 달까지
보내주는구나! 강심에 잠긴 가을 산의 석양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낚싯대를 드리우고
작은 배 위에 앉아 있는 멋 또한 비길 데 없다 게다가 동녘 하늘에 달까지 둥실
솟아오르니, 이 기분을 그 무엇에 견주리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다 천공이 한가로이
여겨 달을 보내 주었다는 표현은 자연의 혜택에 감사하는 진심이 담겨 있어 더욱
호감이 간다.
120. 추월이 만정한데
김두성
추월이 만정한데 슬피우는 저 기럭아
상풍이 일고하면 돌아가기 어려우니
밤중만 중천에 떠 있어 잠든 나를 깨우는고
-- 지은이: 김두성(자세한 연대는 미상)
조선조 숙종 때에 김천택, 김수장 등과 더불어 경정산가단에서 활동한 가인 그의 시조 19수가 전한다
-- 말뜻
추월이 만정한데: 가을 달이 휘영청 뜰 안에 가득히 비치고 있는데
상풍이 일고하면: 서리치는 찬바람이 한번 높이 일면
-- 감상
4계절 중에서도 가을 달은 유난히 맑고 밝은 것 그것이 뜰에 가득 휘영청 밝으니, 그러지
않아도 감상에 젖기 쉬운 가을인데, 높은 하늘에는 슬피 울며 날아가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처량하구나 겨울을 나려고 가을에 북쪽에서 날아오는 저 기러기야, 차가운 서릿바람이 한번
일게 되면 돌아가기가 힘들 터인데, 한밤중에 하늘 높이 떠서 나의 잠을 깨우는구나! 가을 밤,
더욱이 달밤과 기러기 울음소리, 이것은 시의 좋은 소재가 되고도 남는다.
121. 칠곡은 어디메고
이이
칠곡은 어디메고 풍암에 추색이 좋다
청상이 엷게 치니 절벽이 금수로다
한암에 혼자 앉아서 집을 잊고 있노라
-- 지은이: 이이(1536__1584)
자는 숙헌, 호는 육곡, 석담 퇴계 이황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성리학의 태두 일찍이 어진 어머니 사임당 신씨의 가르침을 받아 문필이 뛰어났으며, 29세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선조 때에 대제학, 이조판서, 우참판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기 전에 유명한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여 국방에 힘쓸 것을 역설하였으나, 안일주의에 빠진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임진란의 7년 풍진을 겪었다 벼슬을 그만둔 후에는 황해도 해주 고산에
은거하며, 학문과 교화에 힘썼다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났다
-- 말뜻
칠곡: 고산 아홉 굽이의 일곱째 굽이
청상: 깨끗한 서리 곱게 내린 서리
금수: 비단에다 수를 놓음
한암: 찬 바위 싸늘한 바위
-- 감상
'고산구곡가' 중 제7곡을 읊은 것 황해도 해주 석담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그곳 수양산
아홉 굽이의 경치를 읊은 연시조 10수 중의 하나이다
단풍이 곱게 물든 바위의 가을 경치가 좋기도 하구나! 맑은 서리가 곱게 살짝 내리니
절벽이 온통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구나! 싸늘한 바위 위에 혼자 앉아서 그것을 바라보노라니
그 경치에 도취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잊고, 번거로운 세간사도 다 잊고 있다
망아의 경지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고산 일곱째 굽이의 황홀한 경치에 넋을 잃고 있는 율곡은
자연 속에 자아를 던져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요산망귀'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122. 한식 비갠 후에
김수장
한식 비갠 후에 국화 움이 반가왜라
꽃도 보려니와 일일신 더 좋왜라
풍상이 섞어칠 제 군자절을 피운다
-- 지은이: 김수장 21. 참고
-- 말뜻
한식: 명절의 하나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4월 5__6일쯤이다 이날은 나라에서는
종묘와 능원에 제사를 지냈고, 민간에서는 성묘를 하는 풍습이 있다 옛날 중국 진나라의 현인
개자추가 이날 산에서 불에 타 죽었으므로, 그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었다는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반가왜라: 반갑구나! 반갑도다! 다음에 오는 '좋왜라'도 마찬가지로, '__왜라, __웨라'는
감탄형 종결어미이다
일일신: '대학'에서 나온 말인데, 날로 새롭다는 뜻
군자절: 군자의 절개 국화는 매화, 난초, 대와 더불어 4군자의 하나
-- 감상
한식 철에 내리던 비가 개면 봄이 열린다 국화의 움(새싹)이 트는 것을 보니
반갑구나! 앞으로 꽃도 보려니와 움이 트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하는, 나날이
새로워지는 그 생성 발전이 더욱 좋다 그렇게 자라서 가을 바람 불고 서리칠 때에
너 홀로 활짝 피어서 군자의 절개를 보여 줄 것이 더더욱 반갑도다!
점층법을 써서 새싹을 발견한 경이의 기쁨, 일일신의 그칠 줄 모르는 향상 발전, 오상고절을
자랑할 군자절, 한포기의 국화에도 이런 철학이 들어 있구나!
123. 흰구름 푸른 내는
김천택
흰구름 푸른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추풍에 물든 단풍 봄꽃도곤 더 좋왜라
천공이 나를 위하여 뫼빛을 꾸며내도다
-- 지은이: 김천택 39. 참고
-- 말뜻
푸른 내: 내는 연기이니, 저녁 나절에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산 기운(이내)을 말한 것
골골이: 골짜기마다
봄꽃도곤: 봄꽃보다 도곤은 '두곤'이라고도 하여 '__보다'의 옛말
좋왜라: 좋도다! 좋구나! '__왜라'는 '__우에라(웨라)의 모음조화에 의한 변화로, 감탄형
종결어미
천공: 하늘에 의인화하여 존칭을 붙인 것 하느님 조물주
뫼빛: 산빛 산의 경치
-- 감상
아름다움의 대명사격으로 불리는 봄꽃보다도 가을 단풍이 더 아름답고 좋다는 것이다 푸른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산골짜기에는 골짝마다 푸르스름한 이내가 산의 정기처럼
끼어 있는데, 가을 바람에 노랗게, 빨갛게, 혹은 주황으로, 혹은 자주빛으로...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어 있는 단풍이 봄꽃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눈부시구나! 이것은 조물주가
모처럼 이곳을 찾아온 나를 위하여 이렇게도 아름답게 꾸면 놓은 것이 분명하구나!
하느님의 혜택, 조물주의 은공을 새삼스럽게 의식할 정도로 단풍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있는
그 사람은 과연 자연을 알고 조물주와 대화할 수 있는 철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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