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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려면 아이들 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 글을 잘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는 아이들 글의 갈래를 어떻게 구분해 보아야 할지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데 갈래를 구분하여 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글 한 편을 놓고도 ‘일기’라고 하기도 하고 ‘생활문’이라거나 ‘서사문’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글은 감상문인지 논설문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다. 어떤 문집을 보면 설명문을 감상문이라고 해놓거나 감상문을 논설문이라고 해놓은 것도 있다. 이렇게 갈래를 제대로 보는 일이 어려운 것은 갈래를 보는 방법을 익히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갈래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탓도 있다.
조동일 교수는 문학의 갈래 이론을 새롭게 펼치면서 ‘각 갈래를 하나씩 설명하지 않고 갈래들 사이의 체계적인 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갈래의 차원을 큰 갈래와 작은 갈래로 구분해 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 두 차원을 혼동하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다. 조 교수가 나눈 큰 갈래는 서정, 서사, 희곡(극), 교술의 네 가지이고, 작은 갈래에 우리가 아는 시, 소설, 수필 따위이다.
아이들 글의 갈래도 이처럼 큰 갈래와 작은 갈래로 나누어 보면 생활문과 서사문을 구분하지 못하는 따위의 혼란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이 정리해 놓으신 갈래를 바탕으로 하여 나름대로 조금 보충하는 의견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
2. 글쓰기의 네 가지 방식
먼저 큰 갈래를 나누는 바탕이라 할 수 있는 글쓰기의 네 가지 방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 나온 거의 모든 ‘문장론’ 책이나 ‘작문’ 책에는 글을 쓰는 방법으로 서사, 묘사, 설명, 논증의 네 가지를 들어 놓았다. 이 분류는 브룩스와 워렌이라는 서양 학자가 한 것인데, 우리에게도 타당하다고 생각되어 그대로 따르는 모양이다. 서사, 묘사, 설명, 논증의 특징을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 서사(敍事 narration)란 ‘사건’ 다시 말하면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서 진행되는가?’를 보여 주는 글쓰기 방법이다. 사건은 시간 속에서 진행되고, 사람의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서사에서 다루는 사건은 서로 관련이 없는 낱낱의 사건이 아니라 시작과 진행과 끝이 있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2) 묘사(描寫 description)란 어떤 대상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그림 그리듯이 글로 쓰는 것을 말한다. 묘사는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귀, 코, 혀 같은 모든 감각 기관을 통하여 느낀 모양, 빛깔, 맛, 소리, 냄새, 감촉 따위를 그대로 적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도 묘사라고 한다.
(3) 설명(說明 exposition)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알기 쉽게 풀이하는 방법이다. 다시 말하면 ‘무엇인가? 어떠한 것인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설명에서 알려 주는 것은 정보 또는 지식이다.
(4) 논증(論證 argument)이란 아직 분명하지 않은 사실이나 의견에 대하여 진실 여부를 증명하고, 나아가 읽는이를 설득시키기 위한 글쓰기 방법이다. 어떤 사람은 논증과 설득을 구분하여 논증은 이성에 호소하는 방법이고, 설득은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이라고도 한다.
서사와 묘사의 같은 점은 구체로 사물의 모습을 또렷하게 그려 낸다는 데 있다. 차이점은 서사가 움직임을, 묘사가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붙잡아 쓴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은 한 문장 속에서도 섞여서 나타날 때가 많고, 움직임을 그려내는 것도 묘사라고 하는 경우가 있으니, 엄밀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설명과 묘사도 사물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설명이 대상을 일반화하고 유형화해서 나타내는 데 견주어 묘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는 점이 다르다. 설명은 읽는이의 정신에 작용하여 관념을 형성한다면, 묘사는 읽는이의 감각에 작용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글쓰기 방법은 한 편의 글에서 한 가지로만 쓰이는 경우보다는 몇 가지가 섞여서 쓰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3. 아이들 글의 갈래 나누기
지금까지 여러 가지 문장론이나 글짓기(작문) 책에서 글의 갈래를 나눈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일기, 서간문, 감상문, 서정문, 기사문, 기행문, 추도문, 식사문, 논설문, 수필 ㉡ 리포트와 논문, 답안지, 수필, 서간문, 연설문, 기사문, 광고문과 선전문, 이력서 ㉢ 수필, 기행문, 보고문, 기사문, 일기, 편지 ㉣ 일기, 편지, 기행문, 기사문, 보고서, 실화와 전기, 수필, 식사문 ㉤ 서간문, 논설문, 광고문, 수필, 일기문, 기행문 ㉥ 일기, 생활문, 편지글, 설명문, 논설문, 기록문, 기행문, 독서 감상문, 동시, 동화, 희곡, 수필
㉠~㉢은 일반 문장론 책이고 ㉣, ㉤은 고등학교 작문 책이다. 글의 갈래에서 어떤 원칙이나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은 어린이용 글짓기 책인데, 동화, 희곡을 갈래에 넣은 것이 어른들 책과도 다르고, 고등학생 책과도 다른 점이다.
이런 문장론이나 작문 책에 나와 있는 갈래는 서로 다른 차원의 글을 같이 늘어놓아서 갈래와 갈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고, 갈래별 글쓰기 지도가 어떤 차례나 단계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오덕 선생님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서 서사문, 감상문, 설명문, 주장하는 글의 네 가지로 글을 나누었고(시는 따로 두었음), ≪우리 문장 쓰기≫에서는 서사문, 감상문, 설명문, 논설문, 관찰 기록문, 조사 보고문, 편지글, 일기글, 극본, 시 이렇게 열 가지로 나누고 다시 다음과 같이 작은 갈래로 나누어 놓았다(이 갈래는 어른들 글에 적용한 것이다).
서사문 속에 사생문과 기사문이 들어 있고, 감상문은 다시 작게 생활 감상문, 독서 감상문, 학습(연구) 감상문, 방송‧신문‧만화‧영화‧연극‧미술‧음악‧체육 감상문, 시사 비평, 수필‧수상으로 나누어져 있다. 설명문은 물건을 소개하는 글, 그림‧사진‧공작품 들을 설명하는 글, 책의 내용을 알리는 글, 사전의 말풀이, 지리와 역사를 설명하는 글, 일반 시설 이용 알림글과 고적 알림판의 글, 자기를 알리는 글로 나뉘어 있고, 논문에는 자기 주장을 쓴 글, 시사 평론, 문화와 문학에 관한 비평을 들어 놓았다. 보고문에는 노동 현장 보고, 영농 보고, 도시 빈민 생활 실태 보고, 연구 보고, 견학 보고, 실습 보고, 회의 상황 보고, 그 밖에 여러 가지 보고를 들어 놓았다. 편지와 일기도 다시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시를 제외한 줄글(산문)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서 가른 네 가지가 가장 기본이 되는 갈래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 여기서는 서사문, 설명문, 감상문, 논설문을 큰 갈래로 삼고, 그 아래 다시 여러 가지 글을 작은 갈래를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갈래와 갈래의 관계가 뚜렷해지고, 아이들 글을 살펴보는 데도 여러 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
서사문, 설명문, 감상문, 논설문의 성격을 간단히 살펴보면, 서사문은 보고 듣고 겪은 사실(또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쓴 글이고, 감상문은 사실보다는 느낌이나 생각이 중심이 되는 글이다. 설명문은 어떤 대상에 대한 설명이 중심이 되어 있는 글이고, 논설문은 어떤 문제에 대한 의견이나 견해를 근거를 들어 내세우는 글이다.
이 네 갈래의 글을 객관(사실)과 주관(느낌), 감성과 이성의 틀 속에 넣고, 공통점과 차이점에 따라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서사문과 설명문은 둘 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지만, 서사문이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있었던 구체 사실을 쓰는 글인 데 반하여, 설명문은 되풀이되는 일, 일반 사실을 쓰는 글이다. ‘아버지’를 글감으로 쓴 글 두 편을 읽고 서사문과 설명문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아버지는 농사꾼> 강원 사북초등 5학년 서상원
아버지가 옥수수를 베다가 손가락을 베셨다. 엄마께서 헝겊을 가져 오셨다. 피는 한참 흘렀다. 할아버지께서 “괜찮을까?” 하고 물어 보시니까 괜찮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았다. 나는 가슴이 아팠다. 엄마께서 옥수수를 베지 말라고 하니까 그래도 베셨다. 한참 베니 점심 때였다. 점심을 먹고서 조금 쉬고 또 베기 시작했다. 나는 아버지가 베어 논 것을 집으로 안고 갔다.
<우리 아버지> 강원 사북초등 2학년 박현태
난 아버지를 가끔 기다린다.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오시면 난 “아버지.” 하고 소리친다. 난 아버지랑 집으로 갈라고 할 때 맨처음 인사를 한다. 아버지랑 집으로 간다. 아버지는 집에 도착하시자마자 씻으시고 애기 미연이를 돌보아 주신다. 아버지는 애기를 돌보아 주시다가 잠옷을 입으신다.
아침 해가 뜨면 아버지는 옷을 갈아 입으시고 밥을 먹고 일을 가신다. 난 또 인사를 한다.
앞 글은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아버지가 한 일(구체 사실)을 썼고, 뒷글은 되풀이되는 아버지의 일과(일반 사실)를 썼다. 이렇게 구체 사실을 쓰는 서사문은 글월맺음이 주로 ‘~ 했다’는 과거형으로 이루어지고, 일반 사실을 쓰는 설명문의 글월맺음은 ‘-이다’ ‘-한다’ ‘-하다’와 같이 지정사나 형용사의 기본형이나 동사의 현재 진행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서사문과 설명문은 모두 사실을 중심으로 쓰는 글이지만, 아이들이 쓰는 글에서는 자연스럽게 느낌이나 생각이 담기게 마련이다. 또 느낌이나 생각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어야 글맛이 난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느낌이나 생각이 중심이 되어 있으면 서사나 설명이 들어 있더라도 감상문으로 보아야 한다.
<공부> 서울 대현초등 4학년 김수연
엄마들은 매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만 하라고 그러신다. 나는 커서 어른이 되면 그렇게 애들을 공부하라고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기상 6시 30분, 책읽기 80분, 문제집 1시간, 일기 매일 쓰기, 피아노 40분, 영어책 40분, 영어 비디오 40분, 이빨 닦기, 매일 이 정도면 됐지, 우리가 무거운 공부를 지고 가는 노예인가? 어쩔 때는 그렇게까지 생각된다. 그리고 하루에 저기 위(계획표)에 있는 것 다 하고 남은 시간은 좀 놀려고 하면 그것도 안 된다.
그리고 나처럼 학원 많이 다니는 아이가 어디 또 있는지 모르겠다. 영어 학원 두 곳, 피아노 학원, 글짓기 학원, 문제집 학원, 벌써 네 곳이다. 그 전에는 성악도 했는데 그것도 두 곳인데 시간이 모잘라 두 곳 다 끊었다. 좀 시간이 있으면 못 놀게 하는 것은 엄마가 아니고 학원이다. 문제집은 우리 집에서 현재 길잡이까지 합쳐서 15개이다. 그것은 문제집을 집으로 가져다 주는 것이고, 문방구에서 산 것은 두 개이다.
어른들은 우리가 롤러스케이트처럼 굴리면 무조건 가는 건 줄 아나 보다. 나는 무조건 어른이 되면 강제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되겠다. 그리고 어린이를 노예로 공부한테 팔지 않겠다. 난 그렇지만 일기는 좀 친근감이 간다. 모든 것을 써도 받아주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일기인데, 몇 군데 설명이 들어가 있지만, 공부에 시달리는 마음을 털어놓은 감상문이다. 감상문과 논설문은 주관의 글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차이가 있다. 어떤 문장론 책에서는 논증을 객관의 글로 보았는데, 글쓴이의 견해나 의견을 객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확인의 논증이라 하더라도 글쓴이가 밝혀낸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여 ‘공인된 사실’로 굳어지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견해일 뿐 객관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아이들 글을 볼 때, 감상문인지 논설문인지 가리기는 참 어렵다.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근거를 별로 밝히지 않고 쓴 글이 감상문이고, 어떤 일이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논리를 세우고, 근거를 내세워 따져서 쓴 글이 논설문이라고 우선 정의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주장을 썼더라도 근거를 내세우지 않고, 논리가 서 있지 않은 글은 제대로 된 논설문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어떻게 하자’는 주장은 나타나 있지 않더라도 어떤 문제에 대해 근거를 들어 자기 의견을 밝힌 글이면 논설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번> 서울 이수초등 3학년 이새롬
우리 학교에는 가는 곳마다 거의 주번이 있다. 난 주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한다. 지각을 하면 3~6학년은 주번이 벌을 주는데, 좋은 일을 하다가 늦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길을 못 찾는 사람을 도와 주거나 아픈 친구의 책가방을 들어주며 함께 천천히 걸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계단에서 뛰거나 같이 나란히 오거나 손잡이를 잡아도 주번이 벌을 준다. 급한 일이 있어서 뛸 수도 있고, 친구와 친해서 같이 올 수도 있으며, 길이 미끄러워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운동장 연못에서 아래 받쳐 있는 돌을 밟아도 주번이 벌을 주는데, 물고기가 신기하거나 귀여워서 그럴 수도 있고, 물레방아나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그럴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도 주번에게 걸린 적이 한 번 있는데 그 이유는 연못에 있는 돌을 밟고 올라가서 물고기를 봤기 때문이다.
난 그저 ‘자연’에서 배울 물고기의 생김새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하여 그랬던 것이었다. 주번은 뜀뛰기를 10번 하라고 했는데 나는 오랫동안 뜀뛰기를 하지 않고 버티었다. 주번이 이해가 안 갔다. 주번이 자꾸 생기는데 그러면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도 주번이 벌을 줄지도 모른다. 나같이 활발한 사람들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나는 주번이 있으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이 글이 감정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감상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논설문이라고 본다. 주번에 대한 자기 의견을 밝혀 놓았고, 그를 뒷받침할 사실 근거를 세 가지 들어놓았다. 이 아이의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는 다른 문제이고, 논설문의 구성 요소는 갖추고 있다고 본다. 논설문을 객관의 글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논설문에도 얼마든지 감정이 담길 수 있는 것이다. 논설문의 대표가 되는 보기는 신문의 사설인데, 위 글과 같은 성격의 사설은 거의 날마다 신문에서 볼 수 있다. 논설문이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근거나 추론의 과정에서 감정이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확인의 글이 아닌, 이른바 ‘가치 명제’나 ‘정책 명제’를 다루는 논설문은 어디까지나 글쓴이의 감정이나 주관이 강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겪은 일을 위주로 써 놓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썼더라도 그 글은 서사문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어떤 어린이가 불이 난 것을 본 일을 자세하게 쓰고, 끝에 ‘우리도 불조심을 합시다’고 썼을 경우 글 전체로 보면 서사문이 된다. 그러나 이 글을 처음부터 다시 논리를 세워 견해를 밝혀 쓰고, 근거로서 겪은 일(불이 난 일)을 쓰면 논설문이 될 것이다.
설명과 의견이 섞여 있을 때에도,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의도가 강하면 설명문으로 보는 것이 좋겠고,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로 사실에 대한 설명이 들어가 있으면 주장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어린이 글이 뚜렷하게 나뉘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대체로 어느 한 갈래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나의 하루> 서울 방배초등 5학년 이지영
나의 하루는 요즘 너무 바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요즘 쉬는 것도 힘들다. 요즘 아이들은 화장실도 재촉하며 가는 것 같다. 나만 해도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양치질하고 옷 입고 가방 메고 학교로 꾸불꾸불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학교를 갔다 온 다음 학원을 두 군데 갔다 온다. 요즘에는 병원까지 다니고 있어서 더욱 힘들다. 우리 엄마는 “지영아,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라. 방학이 되면 좀 덜할 거야. 그리고 방학 때 속셈은 쉬게 해 줄게.” 하신다. 매일 그 소리만 하신다. 나도 이 소리에 질렸다. 하지만 ‘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린데 뭐.’ 이러고 넘겨 버린다. 이러는 게 좋긴 좋다. 아빠께서 들어오실 때는 카폰으로 연락을 해서 공부 안 하나 하나 물어 보시고 공부를 하면 내 선물을 한 아름씩 사 오신다. 또 오늘은 전화로 연락을 했더니 아저씨 보내서 무엇을 주신다고 하셨다. 학교 생활을 본다. 1교시에는 ‘국어’ 능력껏 듣는다. 2교시에는 ‘산수’ 능력껏 듣는다. 3교시에는 ‘사회’ 능력껏 듣는다. 야 한 시간만 있으면 점심 먹는다. 4교시에는 ‘자연’ 능력껏 군침을 돌리면서 기다린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점심 시간. 야 이젠 누구랑 먹을까.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다닌다. 하루가 이렇듯이 우리가 커서 사회인이 되어서 이렇게 바쁘다면 정치하는 사람은 아주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연예인(가수)들도 정을 줄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어른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엄마 아빠, 우린 힘들어요.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위 글은 ‘나의 하루’라는 제목을 내주어서 쓴 글이다. 그런 경우 아이들 글은 설명문이나 서사문으로 씌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아이는 감상문 속에 설명을 담은 형태로 글을 썼다. 게다가 뒷부분에는 어른들에게 호소하는 말도 덧붙어 있다. 이 글은 서사문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설명문인지 감상문인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네 갈래 구분은 벽으로 막힌 네 개의 방으로 생각하기보다 좌표 개념으로 생각하여 네 가지 갈래의 특성이 섞여 있는 정도를 살펴보고 글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더 알맞을 것 같다.
서사, 설명, 감상, 논설의 네 가지 갈래 밖에도 아이들 글의 갈래가 몇 가지 있다. 일기와 편지, 생활문, 기록문, 보고문 따위가 그것이다. 일기와 편지는 특정한 목적으로 쓰는 글이다.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편지는 남에게 보내는 글이라는 점에서 특수한 글의 형식이다. 일기에도 위에서 말한 네 가지 갈래가 나타나고, 편지에도 그렇다. 그러니 일기와 편지를 위의 큰 갈래와 같은 차원에 놓지 말고, 다른 차원에 놓고 보아야 한다. 생활문도 마찬가지로 생활을 글감으로 쓴 서사문, 감상문, 설명문, 논설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록문의 경우는 흔히 생활 기록문, 관찰 기록문, 견학 기록문, 조사 기록문으로 나누는데, 기록문이란 말이 ‘써 둔다’는 정도의 뜻밖에 없으니 따로 큰 갈래로 잡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큰 갈래 네 가지는 모두 ‘무엇을’ ‘어떻게’ 쓴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갈래 사이의 관계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 보고문이라는 것도 누구에게 ‘알린다’는 뜻 말고는 어떻게 쓴다는 규정이 없으니, 기록문과 마찬가지로 큰 갈래로 삼을 수 없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기록문이나 보고문은 서사문과 설명문 사이에 걸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아니면 일기나 편지처럼 특수한 목적을 가진 글의 갈래로 보는 것이 좋겠다.
4. 큰 갈래와 작은 갈래
(1) 서사문
서사문은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쓰는 글로, 다시 생활(기록)문, 기사문, 사생문, 관찰 기록문, 기행문, 견학 기록문 따위의 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생활(기록)문 : 흔히 생활문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서사문의 작은 갈래인 생활 기록문을 말한다. 그런데 생활의 기록이라고 해도, 되풀이되는 일과를 쓰면 설명문이 된다. 생활 기록문의 대표가 되는 글은 바로 겪은 일을 쓴 일기이다.
<버너> 6학년 김철중
오늘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나와 영재 형은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다. 영진이 형이었다.
영진이 형은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조그마한 통을 꺼내었다. 그리고 통을 열더니 그 안에 불을 붙였다. 그 안에 타고 있던 덩어리가 어느새 녹아서 타고 있었다.
형은 냄비에 물을 떠서 그 위에 올려 놓았다. 영진이 형은 그 버너는 형이 산 것이라고 하였다. 물이 끓자 라면을 넣었다. 조금 후, 라면의 맛을 보았다. 맛이 참 좋았다.
라면을 먹고 통 속의 불을 끄자, 다시 덩어리가 되었다. 나도 그런 버너가 있었으면 좋겠다.
② 기사문 : 사건을 여러 사람에게 객관으로 알리는 글이다. 보도문이라고도 한다. 흔히 육하 원칙에 맞추어 쓰는데, 이는 서사문과 마찬가지이다.
<제2회 연필 깎기 대회>
제2회 연필 깎기 대회가 7월 2일 성일국민학교 6학년 1반 교실에서 열렸다. 요번 제2회 연필 깎기 때회는 제1회 연필 깎기 대회보다 아이들이 연필 깎는 솜씨가 더욱 좋아졌다. 으뜸상에는 전혜영이 차지해서 부상으로 선생님께 ‘새싹들’이란 책을 받았고, ‘칼이 아깝다’상은 김지혜가 차지하여 수박 한 쪽을 받았다. 연필을 칼로 깎으면 손재주도 좋아지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연필 깎기 대회가 있을 때만 연필을 칼로 깎아 쓰지 말고 평상시에도 연필을 깎아 써야겠다. (학급문집 <배워서 남주자>에서)
③ 사생문 : 앞에서 말한 글쓰기의 네 가지 방법에서 ‘묘사’를 위주로 쓰는 글이다. 독립된 글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고, 다른 글에 섞이어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글쓰기 공부의 바탕이 될 만큼 중요한 것이 사생문 쓰기이다.
<나물 파는 할머니> 군포초등 5학년 김효지
시장 입구 쪽에 늙은 할머니가 나물을 팔고 계셨다. 쌀자루를 펴놓고 그 위에 쪽파와 나물을 놓고 팔고 계셨다. 아기들이 먹는 맘마밀 빈 통을 깔고 앉으셨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는 흰머리가 많았다. 머리를 핀으로 올리시고 누추한 스웨타를 입으셨으며 펑퍼진 바지를 입고 계셨다.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나물 파는 할머니 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물 파는 할머니는 쪽파를 다듬고 계셨다. 쓰레기 봉지를 앞에 두고 쪽파 하나씩을 깨끗이 다듬고 계셨다. 허리가 구부러지신 데다가 추우신지 몸을 웅크리고 계셨다. 할머니는 쪽파를 다듬으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많은 사람들은 옷가게나 가방 등에 관심이 있을 뿐 나물이나 쪽파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나물 파는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 보았다. 전과 같이 나물과 쪽파는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할머니는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계셨다. 조금 더 젊었으면
“나물 사세요. 쪽파 사세요.”라고 말할 텐데 너무 늙어서 그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팔리지도 않을 나물을 놓고 앉아 계신 할머니는 얼마나 속상할까? 늙으셔서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나도 늙어서 그런 모습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나물 파는 할머니가 불쌍해 보였다
④ 관찰 기록문 : 앞의 사생문과 비슷한 글이다. 주로 동물이나 식물, 자연 현상이나 과학 실험을 통해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쓰는 글이다. 다섯 가지 감각으로 관찰하는 대상의 모습과 움직임을 잘 붙잡아 써야 한다. 계속 관찰할 경우에는 관찰 일기나 일지로 쓰게 된다.
<개미> 경산 중앙초등 6년 현종학
개미가 굴에서 나왔다. 친구들과 먹이를 찾으러 가는지 길을 나서고 있다. 여기저기 살펴 본 개미는 넓은 밭으로 향한다. 가다가 개미는 발을 잘못 짚었는지 굴렀다. 구르는 순간 위에 있던 조그만 흙뭉치가 개미 위를 덮쳤다. 개미는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흙뭉치를 옆으로 밀어냈다. 다시 먹이를 찾으러 길을 나섰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먹이를 구하였다. 그 먹이는 조그만 벌이다. 그 개미는 얼른 친구들을 불러 왔다. 서로 힘을 합하여 무사히 벌을 옮기다가 한 마리의 개미가 다른 벌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가 있는 힘을 다해서 끌어당긴다. 그러나 그 개미는 벌을 운반하지 못하고 힘만 빼었다.
개미는 지쳤는지 서 있는데 옆에 있는 하수구 구멍에서 이상한 벌레가 나와서 개미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있는 힘껏 달아난다. 자기 집 입구까지 도착했다. 개미는 재빨리 굴로 들어간다. 이상한 벌레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개미집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끝내는 간다.
개미는 살았다는 듯 머리를 조금 내어 보다가 재빨리 집어넣고는 한참 동안 나오지 않는다.
⑤ 기행문 : 여행에서 있었던 일과 보고 듣고 느낀 일을 쓰는 글을 말한다.
<할머니 댁에 다녀와서> 서울 이수초등 3학년 이정웅
고속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을 향해 달린다. 가는 동안에 밖은 하얀 눈에 덮인 들과 산밖에 없다. 할머니 댁에 도착해 시간이 늦어 할아버지 제사를 시작했다. 나는 제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절차가 아주 간단하였다.
밤 1시에 끝났다. 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못 보았다. 그런 것도 나에겐 궁금증을 많이 만들게 했다. 누나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기억 못한다. 누나한텐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 계셨으면 좋겠다. 할아버지의 사진만 바라보며 슬픈 표정이신 할머니를 보면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나 보다.
아침 일찍 할아버지 산소에 갔다. 할아버지 무덤은 태양이 질 무렵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이다. 할아버지 산소 자리는 참 좋다. 산소 앞에 비석은 없다. 할아버지가 하늘 나라에서라도 편안히 계셨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날, 산과 들도 제삿날 삼베옷을 입은 것처럼 하얀 눈이 뒤덮여 있었다.
⑥ 견학 기록문 : 박물관이나 고적 따위의 장소에 가서 보고 배운 것을 적는 글이다. 기행문과 비슷한 점이 많다.
<현대 미술관에 다녀와서> 서울 신목초등 2학년 이인재
오늘은 온 가족이 과천 현대 미술관에 갔다. 입구로 들어가니 한눈에 수많은 텔레비전으로 쌓은 탑이 보였다. 화면을 이용한 움직이는 미술품이라고 한다. 그 다음 장소에는 은빛 나는 줄이 가득 매달려 있었다. 그 속에 들어가 보니 꼭 내가 괴물이 된 것 같아 재미있었다.
빙빙 도는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먹물로 그린 우리 나라의 그림들은 산과 나무가 있는 풍경을 많이 그렸다. 초상화도 있었는데 내가 전에 본 일이 있는 그림이 있어 반가웠다. 서양화실엔 여러 가지 종류의 그림들이 붙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헝겊으로 만든 꽃 그림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왜냐 하면 내가 가운데 꽃이 되어 여러 꽃 가운데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추상화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잘 들여다보니 물방울 같기도 하고 촛대 같기도 한 그림도 있었다. 붓글씨 작품에는 병풍이 있었다. 엄마가 그 한자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모든 일을 지혜로 해결하라는 말이었다. 한글로 써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도 했다. 조각실엔 거의 옷을 벗고 있는 여자의 모습도 많았다. 내가 보기엔 창피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한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조각 중에서 코뿔소가 가장 좋았다.
한 큰 방에 들어가 보니 대나무를 엮어 우주의 신비를 나타내 놓아서 나는 맘껏 다녔다.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세뱃돈으로 엽서를 샀다. 이 미술관에서 전시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미술관 밖에는 흰 눈이 쌓여 있어서 더 아름다웠다.
(2) 감상문
감상문은 어떤 것(일)을 보거나 듣거나 겪고 마음속에 생긴 느낌이나 생각을 쓰는 글로서, 생활 감상문, 독서 감상문, 영화 연극 감상문, 음악 미술 감상문, 시사 감상문 따위의 작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① 생활 감상문 :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느끼고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쓰는 글이다.
<야단> 부천 약대초등 2학년 김지연
난 내가 해야 될 걸 조금 안 하는데 왜 다 안 한 것처럼 어른들은 야단만 할까? 난 야단 속에서 살아야 한다. 야단을 맞을 때마다 어른들은 내가 무엇을 잘못 했기에 야단을 치나, 이런 생각을 한다. 속이 답답해 죽겠다. 야단을 맞을 때 왜 속이 답답하냐면 내 마음대로 말을 못하고 소리를 못 치기 때문이다.
② 독서 감상문 : 책을 읽고 느낌을 쓰는 글이다. 줄거리와 느낌을 함께 쓰기도 하고 느낌을 위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줄거리만 써서는 독서 감상문이라고 할 수 없다.
<‘아이들만의 도시’를 읽고> 서울 이수초등 6학년 이경찬
어머니께서 한 달 전에 ‘에이브’라는 동화 소설 전집을 사 주셨다. 그 중에서 ‘아이들만의 도시’란 책이 흥미가 끌려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틴폐틸이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쓴 것인데 내용은 이렇다. 틴폐틸에는 해적단이라는 아이들이 만든 나쁜 짓을 일삼는 단체가 있었다. 13살 어린이 중에서 해적단이 아닌 아이들은 토마스, 하인츠, 교수, 파울뿐이었다.
어느 날 해적단의 횡포에 견디지 못한 어른들은 아이들을 혼내 주기 위해 도시의 발전소를 꺼 버리고 숲으로 떠난다. 그런데 모르고 국경을 넘었기 때문에 여러 날이 지나서야 돌아오게 된다.
그 동안 아이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발전소를 움직이고 교수, 토마스 대통령의 지휘 아래 도시를 멋지게 이끈다. 이에 반대하는 해적단원들은 사사건건 방해하지만 결국은 무너져 두목인 오스칼과 월리는 감자 깎는 일을 맡는다. 나는 참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해적 두목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흘 후에야 어른들이 돌아오셔서 상봉을 한다. 나는 토마스의 연설이 맘에 들었다. 그것은 어린이들도 힘을 합하면 나라, 아니 세계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토마스나 만프레드 교수같이 씩씩하고 어른스럽게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③ 영화 연극 감상문 : 영화나 연극을 보고 줄거리와 함께 느낌을 중심으로 쓰는 글이다.
<벤허> 서울 사당초등 3학년 장효원
저번에 유다 벤허라는 특선 만화를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벤허는 메살라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메살라는 벤허의 많은 재산이 탐이 나 있었는데 벤허와 벤허 누이동생 틸자는 군대가 행진하는 걸 보고 더 자세히 보려고 앞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기왓장이 떨어져 로마 총독이 맞게 되었을 때 메살라는 옳지! 하며 벤허를 끌어내고 어머니와 틸자는 지하 감옥에, 그 재산, 집은 나라 것이 되었다. 갤리선 노예로 벤허가 끌려갔을 때 예수님이 물을 주셨다. 그것이 벤허와 예수님의 첫 만남이었다. 그 뒤로 아리우스는 벤허를 양자로 해서 벤허는 유대인이자 로마인이었다. 그러나 진정으로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다 벤허 아버지 하인이 많은 아버지 재산을 주었다. 그 땐 내가 돈을 많이 받은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메살라와 벤허의 마차 경기가 가슴을 두근두근거리게 했다. 아슬아슬하게 일등 이등을 하고 있던 중 메살라가 마차 경기에서 죽자 슬프기도 했으나 통쾌하였다. 벤허의 어머니 동생을 찾을 때는 더욱 기뻤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려고 할 때 틸자와 벤허 어머니가 문둥병에서 낫게 돼서 더욱 기쁘고 신이 났으나 예수님이 억울하게 돌아가시자 슬펐다. 마지막으로 벤허가 은혜를 갚기 위해 물을 주고 끝났다.
벤허는 나중에 원수 메살라를 진정으로 용서했다. 신앙심도 깊었다. 죄수(예수님)에게 물을 주다니! 그런 짓을 했다가 어떤 벌을 받을까 두려울 텐데! 그리고 벤허의 재산은 아마도 기독교를 위해 쓰고 평온하게 잠들었을 것이다.
④ 학습(실습) 감상문 : 공부하거나 일을 해 보고 그 일에 대한 느낌을 쓰는 글이다.
<내가 만든 수제비> 서울 송화초등 4학년 이한
<방학 생활>에 ‘나도 요리사’라는 과제가 있는데 수제비를 만드는 것이다. 정말 재미가 있다. 그래서 칼질도 배웠다. 정말 재미가 있다. 아마 이렇게 재미가 있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정말 정말 재미가 있다. 그리고 맛도 정말 좋다. 너무 너무 맛이 좋아서 나는 날아갈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가 하신 수제비보다 맛이 덜하다. 하지만 엄마와 나와 동생인 지은이가 열심히 한 덕분에 맛이 없지는 않다. 내가 만든 것치고는 정말 맛이 괜찮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요리를 잘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다 엄마께서 도와 주신 덕분이다. 하지만 나도 이 다음에 커서 나 혼자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 것이다. 지금은 라면 1개도 끓일 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잘 할 것이다. 또 이런 음식 만들 기회가 오면 좋겠다.
⑤ 시사 감상문 :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뉴스를 보거나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을 적는 글이다.
<소말리아의 굶주린 사람들> 서울 이수초등 4학년 이새롬
윷놀이를 하고 있는데 보롬이가 “저것 좀 봐!” 하고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그 텔레비전에서는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굶주린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너무 말라서 뼈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어떤 아이는 얼굴만 크고 몸은 완전히 뼈처럼 되어 있어서 가분수처럼 보였다. 다리, 팔, 손가락도 뼈에 살이 얇게 얇게 붙어 있는 것 같다. 이들은 뼈도 두께가 너무도 얇았다.
보기 흉한 몸, 얼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되지가 않았다. 그들은 손톱 만한 파리가 얼굴에 앉았는데 쫓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파리를 먹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럴까?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가뭄’이라고 한다. 올해에는 단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하루에 죽는 사람이 2000여 명쯤 된다고 하니 남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앞으로 소말리아는 멸망하지 않을까?
모든 것이 의문이다. 소말리아의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 모든 굶주림에 가득한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동정심만 한다면 나는 그들을 더욱 괴롭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지금은 소말리아에 사랑의 빵 보내기가 한창이다. 나도 지금부터 열심히 저금을 해서 소말리아의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야겠다. 사람은 서로 더불어 가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⑥ 상상하는 글 : 흔히 ‘내가 만일 OO이 된다면’ ‘나의 장래 희망’ 같은 제목의 글을 쓰게 하는데, 이런 글도 생각을 쓴 글이므로 감상문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 글 가운데 어떤 사물을 의인화해서 쓴 글도 어쩌다 보게 되는데, 이것도 상상하는 글이다.
<내가 나쁜 사람 꿈에 나타난다면> 서울 사당초등 3학년 곽동아
내가 만약에 나쁜 사람의 꿈에 나타난다면 나쁜 사람에게 바른 지도를 해 줄 것이다. 그러면 나쁜 사람은 착하게 살 수 있으며 떳떳한 국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 나라에는 인신매매, 깡패, 유괴범 등이 없어지고 착하고 자기 일에 성실히 하는 사람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올바르고 착한 사람에게는 꿈 속에서 상을 내릴 것이다. 착한 사람이니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지 않고 감사히 여길 것이다. 우리 나라가 착하고 올바른 사람만 살면 행복하고 평화스럽고 자유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판소리의 길> 부천 원종초등 6학년 신영란
난 어렸을 때부터 오늘날까지 판소리를 배워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국악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이 판소리는 무엇보다도 우리 고유의 전해 내려오는 문화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판소리에 소질이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쉬운 것도 아니다. 판소리는 소중한 것이고 없어지지 않는 문화이다. 내가 왜 이 판소리를 택하게 되었냐 하면은 TV에서 보았는데 심청이라는 소녀가 ‘아이구, 아버지, 저는 갑니다. 부디부디 눈을 뜨게 되어 만수무강하옵소서.’ 하는 구절이 너무 슬프고 처량하며 감동적이어서 이것을 고른 것이다.
난 이 판소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어깨춤과 처량함에서 난 판소리가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난 국악인이 하는 판소리도 하고 싶으나, 그 장단에 맞추는 거문고나 장구를 치는 그런 사람도 되고 싶다. 판소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을 다 익히어 훌륭한 국악인이 되겠다.
(3) 설명문
설명문은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일이나 대상에 대하여 남이 잘 알 수 있도록 풀이하는 글로서, 생활 설명문, 소개하는 글, 놀이나 일의 방법을 설명하는 글, 해설문, 알림글, 학습 조사 연구 보고문 따위가 설명의 방식으로 씌어진다.
① 생활 설명문 : ‘하루 일과’처럼 생활 속에서 되풀이되는 경험이나 일반 사실을 풀이하는 글이다.
<안경> 서울 이수초등 5학년 하승목
우리 가족은 다 눈이 나쁘다. 엄마는 렌즈를 했고 나, 동생, 아빠는 안경을 꼈다. 그래서 안경에 관한 사건이 참 많다. 내가 방바닥에 놓아 둔 동생 안경을 밟아 테가 부러진 일, 잠잘 때 안경을 끼고 자다 찌그러진 일, 세수할 때 모르고 안경을 끼고 한 일, 놀다가 안경알이 빠진 일, 해수욕장에서 썬그라스를 잃어버린 일 등 수없이 많다.
나만 해도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안경을 3번째 갈아 썼다. 이번 내 생일 선물로 안경을 또 바꿔 주신다고 하니 그러면 4번째 안경인 셈이다.
내가 시력이 나쁜 이유는 아마 유전인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부터 해서 고모, 고모부, 삼촌, 숙모, 고종사촌까지 다 안경을 끼고 있다. 물론 내가 텔레비전을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다. 나는 뿔테, 금테, 쇠테 등 여러 가지 안경테를 써 봤다. 그리고 나는 다른 아이보다 눈이 많이 나쁜 것 같다.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면 눈이 더 나빠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눈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겠다.
② 소개하는 글 : 자기를 소개하거나 다른 사람을 소개하는 글도 있고, 물건이나 동물, 집이나 마을이나 나라를 소개하는 글도 있다.
<우리 식구> 고양 행주초등 4학년 유성훈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누나,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식구이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택시 운전 기사이시다. 이 동네에서 몇 군데만 빼고 아실 만한 길은 다 아신다. 새벽 5시 30분쯤에 나가신다. 아침에는 능곡 병원 앞에 계시고 점심 때에는 집에 들어와 점심을 잡수시고 또 나가셔서 일을 하신다. 다른 때는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다가 탈 사람이 없으면 아무 곳이나 돌아다니신다. 한바탕 일을 하고 돌아오시면 허리가 조금 뻐근하다고 하신다. 그 이유는 뼈가 어긋났기 때문이다. 내가 3학년 겨울 방학 때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그 동안 우리는 이천 효구 삼촌 댁에 있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의 가장이므로 힘든 것은 아버지께서 다 맡아서 하신다. 그 중에 이삿짐 나를 때 아버지가 제일 힘쓰신다.
또 어머니께서는 차 닦으실 물 받아 두기 등등, 어머니께서는 야채 장사를 하신다. 새벽 2시 10분쯤에 나가신다. 그 이유는 물건을 사러 가시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서 식당에서 주문한 것을 갖다 주고 나서 12시에 집에 들어오셔서 점심을 잡수시고 나가셔서 본격적으로 파신다. 이 소리를 내면서. “야채 차가 왔어요, 야채. 감자, 무, 오이, 양파, 꼬리 고차나 풋고추, 호박이나 고구마가 왔어요. 야채 차가 왔어요, 야채.”
이렇게 스피커에 녹음시켜 놨다가 다시 틀면 어머니가 말을 안 해도 된다. 능곡에서 아실 만한 사람은 다 아신다고 늘 말씀하시곤 한다. 김장철에 바쁘게 뛰어다니셔야 한다. 그리고 우리들이 준비물 값 달라고 하면 돈이 무지하게 많이 나간다. 특히 누나가 제일 많이 가져간다. 일요일과 수요일날만 쉬신다. 얼마나 힘드실까?
우리 누나는 허구한 날 돈 돈 돈 돈타령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질 않나, 돈 달라고 하질 않나, 한심한 우리 누나. 정말 한심하다. 공부는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 잘 한다. 나와도 잘 싸운다. 특기는 피아노. 취미도 역시 피아노. 피아노에 정신이 팔린 우리 누나. 엄마가 시켜야지만 짜증내며 설거지하는 누나. 또 잔소리 듣고 씻는 누나.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누나는 밥 달라고 하면 거의 다 “니가 차려 먹어라.” 이렇게 말을 하곤 하지만 알고 보면 착한 누나이다.
나는 말썽꾸러기이며 우리 집의 기둥이다. 공부는 아주 조금 하고 놀 때는 잘 뛰어 논다. 취미 축구, 특기 축구 키퍼, 선생님께는 혼이 많이 나는 편이다. 친구들과는 사이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또 다른 꿈은 화가. 그림은 자신있다. 공부 시간에 시간이 있으면 그림을 그린다. 공부 시간에는 자꾸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기만 한다. 그러다가 선생님한테 걸리면 그대로 지압 치료. 발바닥을 맞고 나면 발엔 불이 붙는다.
③ 놀이나 일의 방법, 물건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글 : 이것은 과정을 설명하는 글이 되겠다. 이런 글은 차례에 따라 써야 한다.
<딱지치기> 대구 관음초등 3학년 김재호
지금부터 딱지치기 놀이를 설명하겠다. 딱지치기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놀이 중의 하나다. 딱지치기는 처음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사람이 먼저, 종이로 접은 딱지를 밑을 향해 쳐서 뒤집히면 딱지를 따서 가지는 것이다. 만약 뒤집지 못한다면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하고 그런 식으로 이어져 나가는 놀이이다.
딱지는 종이를 접는 것인데 2개의 딱지 접을 종이가 필요하다. 딱지는 무거울수록 잘 된다.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1개로 접는 방법도 있다. 대신 작다. 요즈음엔 고무로 만든 딱지도 나왔다. 옛날 엽전 모양이 있고, 그 다음 사람 모양이 튀어나와 있는 게 있다. 동전 모양도 있다.
고무 딱지는 하는 방법이 다르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이 딱지를 놓고, 이긴 사람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서 밑으로 뒤를 보고 세로로 힘차게 굴려서 뒤집어서, 뒤집히면 딴다. 어떤 아이들은 고무 딱지를 종이 딱지처럼 치기도 한다. 고무 딱지가 아이들에게 더 인기가 있지만, 나는 조상의 얼이 담긴 종이 딱지가 더 좋다.
④ 조사 연구 보고문 : 배운 것, 조사해서 알게 된 것이나 연구를 해서 알게 된 자료를 정리해서 쓰는 글이다. 이 연구 보고문은 나중에 독창적인 발견이나 논증을 통해서 논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외래어가 씌어 있는 간판> 5학년 이은미
우리 나라는 너무나 외국어가 많은 것 같다. 그 중에 외국어가 붙은 간판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광장을 다니면서 외국어가 쓰여져 있는 간판을 찾아 다녔다. 광장에는 간판들이 무척 많았다. 그 중에서도 외국어가 쓰여 있는 간판도 많이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간판 이름을 적었는데, 그 수를 세어 보니 약 60개는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외국어가 쓰여져 있는 간판의 개수와 우리 글이 쓰여져 있는 간판의 개수를 구별하였다. 외국어가 쓰여져 있는 간판은 모두 42개였고 우리 글이 쓰여 있는 간판은 모두 18개였다. 60개의 간판 중에 42개 정도의 간판이 외국어 간판이라는 것은 우리 나라의 부끄러움이다.
간판을 보면 멋있고 순수한 우리 글로 지어진 민속촌, 우리두리 분식, 소명 분식 등이 있었다. 그런데 외국어 간판 이름은 리디에터, 럭키, 로렌스, 럭키 프로페셔날, 에로리카, 므슈리꼴라인, 씨그린, 카샤빌, 바이킹 호프 등 많았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애써 만든 상품에 어째서 우리들이 발음하기도 어렵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외국어가 잔뜩 쓰여져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외국어가 쓰여 있는 물건은 멋이 있다고 생각하여 외국어가 쓰여 있는 물건을 자주 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외국어를 자주 쓰다보면 우리 글인지 외국어인지 구별을 못할 때도 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국어를 쓰는 것을 반성하고 외국어 이름 대신에 아름답고 순수하고 쓰기 좋은 우리 말로 고쳐야겠다.
(4) 논설문
논설문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생각이나 의견을 내세우는 글로서 어른의 글로는 사설이나 평론, 논문 따위가 논설문의 갈래에 들어간다. 아이들의 글로는 호소하는 글, 주장하는 글, 비판하는 글, 옹호하는 글의 네 가지 작은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글에는 비판하는 글이나 옹호하는 글이 있다.
① 호소하는 글 : 어떤 문제에 대하여 어른들에게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호소하는 글로, 왜 그런 부탁이나 호소를 하는지 까닭을 밝혀서 쓰는 글이다. 호소하는 글은 논리에 맞게 쓰기는 어렵고, 상대방의 감정을 움직여 설득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글은 고학년뿐 아니라 저학년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의 성격상 편지 형식으로 쓰는 것이 알맞다.
<대통령 후보님들께> 부천 원종초등 5학년 황연정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인 황연정입니다. 저는 밤마다 뉴스에서 대통령 선거에 대해 많은 보도를 보고 듣고 있습니다. 연설을 들을 때 매번 생각하는 게 있습니다. 정말 후보님들께서 연설에서 말씀하신 대로 대통령이 되어서 정말 이 나라에 지역감정 등을 없애고 우리 나라를 부강하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지 생각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선거를 해서 당당하게 대통령이 될지 말입니다.
연설을 하실 때 “나는 올바른 선거, 깨끗한 선거를 할 것입니다.”라고 외치시지만 저는 정반대이다고 생각합니다. 뇌물로 시계나 수건 등을 주고 돈도 주고 관광도 시켜 주었고, 흑색 선전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어떻게 올바르고 깨끗한 선거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바라는 것은 뇌물을 주고, 흑색 선전을 하지 않는 올바르고 깨끗한 선거를 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제발 올바르고 깨끗한 선거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② 주장하는 글 : ‘어떻게 하자’는 의견을 내세우고,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를 밝히거나, ‘어떻게 하자’는 의견을 더 구체화해서 방법을 알리는 글로 쓴다.
<교실에서 폭력을 쓰지 말자> 옥포초등 5년 곽보혜
얼마 전에 우리 반에서 끔찍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용의와 준엽이가 싸웠습니다. 준엽이가 코피가 나서 우리는 겁이 났고 어쩔 줄 몰랐습니다.
우리 반에는 이런 무서운 싸움이 많이 일어납니다. 주먹으로 하는 폭력도 무섭지만은 말로 남자들이 여자를 심하게 하는 폭력도 있습니다.
폭력은 한 반 친구들 사이를 멀게 하고, 그것 때문에 공부도 잘 안됩니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만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폭력은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폭력은 친구를 아껴 주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기에게 조금 거슬린다고 해서 자기 생각만 하고 다른 아이를 욕하고 힘이 약하면 때리니까 폭력이 생깁니다. 힘이 약하다고 맞기만 하는 바보가 없습니다.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면 싸움이 있게 되고 싸움이 일어나면 우리 반 분위기는 엉망이 됩니다. 우리 모두 우리 반에서 폭력을 몰아내어 따듯하고 즐거운 5학년 1반을 만듭시다. 우리는 폭력을 반대합니다. 폭력을 제발 쓰지 맙시다.
③ 비판하는 글 : 어떤 문제나 쟁점에 대하여 잘못되었음을 근거를 제시하여 비판하는 글이다. 같은 문제나 쟁점을 두고 여러 아이들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비판하는 글이나 옹호하는 글을 써서 발표하고 토론한 다음 다시 고쳐 써 보게 함으로써, 논증과 설득의 방법을 익히도록 할 수 있다.
<숙제는 없어야 한다> 고양 능곡초등 5학년 문용은
난 숙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오면 피곤하다. 게다가 학원에 다니거나 다른 어떤 일들을 하는 아이들은 쉴 시간이 필요한데 할 일을 하고 나면 남은 시간에 숙제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하고 피곤하게 된다. 게다가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더 하려는 사람은 학원도 다니면서 공부를 한다. 그만큼 공부하면 충분한데 왜 숙제까지 해야 하는가? 숙제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숙제는 학교에서 공부할 것을 예습하거나, 배운 것을 복습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학교에서 해도 괜찮으므로 숙제를 내 주지 않아도 된다. 숙제하는 시간에 차라리 전과나 교과서를 훑어보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것이 시간을 더 뜻있게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숙제는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고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숙제를 많이 한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어머니들은 우리들만 보면 “숙제 다 했니?” 하시고 숙제를 안 했으면 마구 화를 내신다. 모르고 숙제를 안 해 가면 벌을 받는다. 또 복잡한 숙제를 하려면 아이들의 머리가 아프게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까닭으로 아이들은 거의 다 숙제를 싫어한다. 아이들의 골칫거리인 많고 복잡한 숙제. 시간만 빼앗고 다른 일을 못하게 하는 숙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있더라도 아주 적었으면 좋겠다.
④ 옹호하는 글 : 어떤 문제나 쟁점에 대하여 두 주장이 부딪칠 때 비판하는 의견에 맞서서 올바름을 증명하는 글이다.
<숙제는 있어야 한다> 고양 능곡초등 5학년 김미선
나는 숙제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 어린이들에게는 숙제가 지겹겠지만 숙제를 한 만큼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많다. 숙제를 하게 되면 자신이 다음날 배울 과목을 예습할 수 있고, 자료를 찾아 가면서 하니까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숙제를 해서 학교에 가져가면 숙제를 해 간 과목은 설명도 잘 들리고, 숙제할 때 모르는 것은 선생님께 질문을 해서 알 수도 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숙제를 빨리 끝내고 할 수도 있다. 또 학원을 많이 다니는 아이들은 학원에서 예습 복습을 하겠지만, 숙제를 할 때 학원에서 공부한 내용을 찾아 필기를 하면 학원에서 배운 것도 예습할 수 있고 학교에서도 잘 할 수 있으니 두 배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숙제를 못 한다고 하면, 학원에 다니는 것도 소용이 없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은 피곤해도 참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아이들은 ‘공부가 무슨 소용?’이라고 생각하고 숙제도 잘 해 오지 않는데, 그렇게 해서는 대학에 들어갈 수가 없다. 더구나 요즘 시대에는 대학에 붙어서 졸업하지 않으면 거의 사람 취급을 해 주지 않으니까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숙제도 공부의 하나이다. 숙제는 집에서 하는 것이라는 점을 빼면 학교에서 하는 공부와 똑같다. 숙제를 하기 싫어하는 어린이는 학교 공부도 하기가 싫을 것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데 공부하기 싫은 어린이는 학생 자격이 없다.
나는 숙제가 우리 어린이들이 공부하는 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5. 여러 갈래의 글을 지도하는 단계
보통 신문사에서는 젊은 기자에게는 일반 사건 기사를 쓰게 하고, 중견 기자가 되면 해설 기사나 논평 기사를 쓰게 하며, 대기자나 논설위원이 되면 사설을 쓰게 한다. 아이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서사문→설명문(감상문)→논설문의 순서로 발달하게 된다.
초등학교 1, 2학년의 경우, 서사문을 위주로 하여 가르치면서 가끔 감상문이나 설명문을 써 보도록 지도하는 것이 알맞다. 이때 아이들에게 글의 갈래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의도에 맞게 글의 갈래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한다. 호소하는 글도 3학년 1학기나 2학년 끝 무렵에 써 보게 할 수 있겠다. 3, 4학년의 경우는 서사문을 위주로 가르치면서 사생문과 기행문 따위를 써 보도록 한다. 설명문에서는 자기 소개, 식구 소개, 동무 소개 같은 글과 놀이 방법을 설명하는 글을 쓰도록 한다. 감상문에서는 영화 감상문이나 독서 감상문을 쓰게 한다. 4학년 2학기부터는 주장하는 글도 써 보게 한다.
5, 6학년의 경우는 서사문과 사생문, 관찰 기록문, 견학 기록문, 조사 보고문 같은 글을 쓰게 하고, 비판하는 글이나 옹호하는 글을 써 보도록 한다. 논설문을 쓰는 전 단계로 학급 토론이나 학급 재판을 해 보는 것도 좋다.
네 가지 글의 갈래를 초등학교에서 체계를 세워 지도하려고 한다면, 저학년에서 역점을 두어야 할 글의 갈래는 서사문이고, 중학년에서는 설명문과 감상문, 고학년에서는 논설문이라고 볼 수 있다.(물론 전체 글쓰기 지도의 중심은 서사문에 두어야 한다. 글쓰기를 나무에 견준다면 서사문은 뿌리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갈래이다.)
한 학년 안에서 글의 지도 단계도 마찬가지로 학년초에는 서사문에서 출발하여 설명문과 감상문을 지도하다가, 나중에는 논설문을 쓸 수 있도록 짜여져야 한다. 같은 원리로,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글쓰기도 그런 순서로 발전해 가는 것이 좋겠다(초등학교―서사문 중심, 중학교―감상문과 설명문 중심, 고등학교―논설문 중심의 차례로).
요즘 논술 고사라 하여, 대학 입시에서 논술문을 쓰는 능력을 재게 되니 덩달아 논술 학원과 과외가 널리 유행하고 있다. 또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논술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논술문을 쓰는 힘을 대학 입시에서 평가하는 것은 마땅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대학 과정을 마치려면 논문 한 편을 완성해야 하는데, 논문은 조사 연구 보고문과 논설문을 쓰는 능력이 있어야 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입 논술 고사에 대비한다고 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논술문 쓰기 연습을 하는 것을 잘못된 지도이다. 논술문을 쓸 수 있는 능력은 서사문 쓰기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익혀야 기를 수 있는 것이지, 앞 단계를 무시하고 논술문의 틀에 맞춰 되풀이 연습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사문 쓰기와 설명문 쓰기에서 아이들은 객관 사물(사건)을 다루는 힘을 기르게 된다. 서사문 쓰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관념에서 벗어나 구체화하는 힘을 갖게 되며, 설명문 쓰기를 통해서 일반화와 추상화의 힘, 개념화의 능력을 기르게 된다. 감상문 쓰기를 하면서 자기 느낌과 생각을 잘 정리해 주관을 분명하게 하는 힘과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이렇게 구체화하고, 일반화하는 힘, 객관과 주관을 다루는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논설문을 씀으로써 비판하는 생각 능력과 창조하는 생활 태도가 길러진다.
이러한 글쓰기 지도 단계를 무시하고, 논술문 쓰기 위주로 글쓰기 지도를 하는 것은 나무를 기를 때 뿌리에 거름을 주지 않고, 열매에 거름을 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6. 맺는 말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하는 교사의 자리에서 볼 때, 아이들 글을 바로 보는 일은 참 중요하다. 아이들 글을 바로 보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가 글의 갈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큰 갈래인 서사문, 설명문, 감상문, 논설문은 작은 갈래에 견주어 구별하기가 꽤 어렵다. 어떤 글이 일기인지, 편지인지, 기행문인지, 독서 감상문인지, 관찰 기록문인지 파악하는 것은 쉬운데, 왜 큰 갈래를 구별하기는 어려운가? 그것은 서사나 감상, 설명이나 논설이 글 한 편에 섞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어떤 것이 우세하고 중심이 되어 있는지 서술의 특성을 잘 살펴서 판단하여야 한다.
아울러 큰 갈래와 작은 갈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하고, 차원이 다른 갈래인 일기, 편지, 생활문, 기록문, 보고문 따위와 큰 갈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서사문, 설명문, 감상문, 논설문은 서술 방식에 따른 갈래고, 일기나 편지, 기록문이나 보고문은 구실에 따른 갈래다.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할 때는 구실에 따른 갈래가 편리할 수 있으나, 아이들 글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데에는 서술 방식에 따른 갈래 구분이 꼭 필요하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아이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할 때, 위에서 보인 서술 방식에 따른 갈래를 그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떤 글감을 주고 글을 쓰게 할 경우에도 아이들은 여러 가지 갈래로 글을 쓰는 수가 많다. 이를테면 ‘아버지’에 대해서 글을 쓴다고 할 때, 그 글은 설명문이 되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서사문이나 감상문이 될 수도 있고, 호소하는 글로 쓸 수도 있다. 따라서 무슨 글감을 주고 글을 쓰라고 할 수는 있어도 어떤 갈래로 글을 쓰라고 해서는 안 된다. 교사는 어떤 갈래의 글쓰기를 지도하려 할 때, 그런 갈래가 나올 만한 글감을 정해 주거나, 갈래의 전형이 되는 본보기글을 보여 주거나 들려주고 글을 쓰게 한다.
그리고 지도를 할 때, 서사문은 서사문답게, 설명문은 설명문답게, 감상문은 감상문답게, 논설문은 논설문답게 쓸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서사문을 서사문답게’라는 말은 서사문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빠뜨리지 않고 잘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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