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랑 2

[김슬옹] 발가벗은 언어는 눈부시다

실다이 2005. 7. 6. 11:33

 

어떤 조건에 관계 없이 꼭 읽어야 할 책

임영태가 권하는 책/북클럽 1996년 6월호/bookre.hwp


삶이 담긴 말을 주제로 한 에세이 : 김슬옹의 <발가벗은 언어는 눈부시다>


임영태

( 이 글을 쓴 소설가 임영태 씨는 92년 문화일보 문예공모에 중편소설로 등단했으며,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로 제18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는 <문밖의 신화><비가 와도 이미 젖은 자는 젖지 않는다>, <비디오를 보는 남자> 등이 있다. )


  요즘 ‘말’에 대한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타는 말이 아니라 입으로 말하는 그 ‘말’ 말이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옛 말이거나, 여전히 쓰고 있지만 그 어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고 있는 단어, 속담, 관용어들을 그 배경과 함께 풀이해 주는 책들이다.

 

  사실 일상의 대화속에서 그 말을 써먹고 있다면, 그러니까 현재 대충이나마 그 말의 뜻과 쓰임새를 알고 있다면 굳이 그 말이 생겨난 근원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근원이 무슨 상관이랴. 뜻을 알아 써먹고 있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일상 대화에서 자주 쓰지 않는 말에 이르러선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아는 말이 부족해 누구와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에(?) 새로운 말을 익힐 필요가 뭐 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역시 그뿐이다.

 

  그래, 그런 사람들은 이 짧은 서평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지금 아는 상식과 지식만으로도 살아가는 데에 문제는 없다. 하나 몰랐던 것을 새로 알 때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로 해서 삶이 좀 더 맛깔스러워지고 풍요해지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변변치 않은 서평도 의미는 있다.

 

  <발가벗은 언어는 눈부시다>(김슬옹 지음/동방미디어 펴냄/6,000원)라는 책은 요즘의 비슷한 책들 중에서도 좀 더 유익하다. 이 책은 어원들을 수집해 편집만 해 놓은 방식이 아니라 나름대로 학구적인 시선과 주관을 가지고 써 내려간, 그러니까 ‘말’을 주제로 한 고급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말 하나하나의 생성 배경을 찾기 위해 그 관련 지방마다 발로 뛰어다닌 흔적이 역력하며, 말의 근원에 깔린 우리 민족의 얼과 향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결국 중요한 건 ‘충주 자린고비’라는 말이 왜 생겼고 ‘안성맞춤’이니 ‘수원깍쟁이’니 하는 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가 아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라는 속담에서 신선들이 바둑을 두었다는 장소가 충청북도 괴산군의 선유구곡이라더라 하는 이야기도 그걸 지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거 모른다고 월급 깍이지 않는다.

 

  하지만 ‘강경장에 조깃배 들어왔나’ 하던 시절 강경이 어느 만큼 풍요롭고 삶의 활기가 넘쳐 흘렀는지. 조선의 3대 시장이라던 그 강경이 어떤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삶의 뒷전으로 물러났는지를 듣는 말은 각별하다. 말 속에 깔려있는 삶의 애환. 풍속의 흐름. 시대의 변천사가 선하게 떠오르며 살풋 고즈넉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어미는 굽고 정일랑 조려 먹세!’라거나 ‘아, 홍두깨에 꽃이 핀다는 말도 몰라!’하는 식의 말을 하지 않는다. 고등어 한 손이 몇 마리고 김 한 톳이 몇 장이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 대신 ‘집게 놓고 에이자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대상의 변천에 발맞추어 가는 당연한 변화인가? 그런 일면이 꼭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말이란 당대의 풍속과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변화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미 있어온 말들을 통해 우리 정신의 본뿌리를 더듬어 보는 일은 필요하다. 오래된 말일수록 우리네 삶의 모습이 풍부하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