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의 이모저모

국가, 이제 어머니가 되다

실다이 2010. 4. 21. 11:15

일시 : 2010년 4우러 16일 (금) 17시

장소 : 천안시 쌍용동 다온

주최 : 다온 

참석 : 30여 명의 천안시민

<금민_2010_04_16>

개요

 

프랑스의 경제학자 앙드레 고르는 〈경제이성비판〉에서 한 사회의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같은 양의 생산을 위해 갈수록 더 적은 양의 노동이 요구되므로,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노동 비례 소득을 유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며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지탱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는 대안으로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주장했다. 기본소득은 조건 없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보장과 다르다.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로 지급되며, 노동 요구나 노동 의사와 무관하게, 자산이나 다른 소득의 심사 없이 보장되는 기본적인 소득이다.

 

근거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들은 기본소득이 절대적 빈곤을 철폐하고 상대적 빈곤을 줄이며, 자유평등을 증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본 소득이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늘리며, 여성처럼 노동의 대가가 유형적으로 지불되지 않는 이들에게 자율성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사회 보장 제도가 이미 확립된 국가들에서는 기본소득을 통해 비용의 큰 절감 효과도 기대하는데, 어떤 시민이 복지 혜택을 받을 만한 사람인지 가려내기 위한 심사 기구를 운영해야 하는 전통적 사회 보장과 달리 기본소득은 일인당 일정액을 지급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복지를 위한 관료 행정 기구가 불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사회 구성원들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되면 구매력이 늘어나 내수가 증진되고 일자리가 확대된다거나, 지역 간의 격차가 해소된다는 등의 전망이 근거로 제시된다.

 

역사

 

16세기 초엽에 후안 루이스 비베스는 〈구빈문제에 관한 견해〉에서 빈민에게 최소 소득을 지급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샤를 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1748년 〈법의 정신〉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들에게 안전한 생활수단, 음식, 적당한 옷과 건강을 해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니콜라 드 콩도르세1795년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관〉에서 수급 자격을 사회 전체적으로 확장한 보험이라는 발상을 전개했다.

 

18세기의 사상가 토머스 페인은 공공 부조와 사회 보험에 한정되지 않는 급부에 대한 발상을 내놓았다. 그는 토지공공재이므로 그 지대 수입으로 모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며, 모두가 자연 유산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근거를 댔다. 샤를 푸리에1836년 〈잘못된 산업〉에서 “기본적 자연권을 누리지 못하는 탓에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기본 생존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프 샤를리에1848년 〈사회 문제의 해법 혹은 인도적 헌법〉에서 진정한 기본소득에 대해 최초로 정식화했다. 그는 자산 심사와의 연계나 유급 노동과의 연계 모두를 거부하고, 토지 소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일정 소득에 대한 조건 없는 권리의 기초로 보았다. 이후 1894년 〈사회 문제의 해결〉에서 그는 이를 ‘토지 배당’으로 명명했다.

 

존 스튜어트 밀1849년 〈정치경제학의 원리〉 2판에서 “분배에 있어서, 특정한 최소치는 노동을 할 수 있거나 없거나 간에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 먼저 할당된다. 생산물의 나머지는 노동, 자본 그리고 재능이라는 세 요소들 사이에 사전에 결정되는 특정한 비율로 분배된다”라고 서술했다.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 〈자유로 향하는 길〉에서 생계에 충분한 소득을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리포드 휴 더글러스1924년 국가 배당을 모든 가구에 매월 지급하자는 ‘사회 크레디트’를 주장했다. 조지 콜1935년 ‘사회 배당’을 주장했는데, 1953년 저서 〈사회주의 사상사〉에서 기본소득(Basic income)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미드 역시 1930년대 중반의 저서에서 ‘사회 배당’ 개념을 옹호했다.

 

밀턴 프리드먼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다. 제임스 토빈은 공공 부조와 사회 보험을 대체하지 않는 최소 보장 소득인 데모그랜트(demogrant)를 주장했는데, 1972년 민주당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의 대선 강령에 이 데모그랜트가 담기기도 했다.

앙드레 고르1985년 “20,000 시간의 사회 서비스 제공을 조건으로 한 평생 동안의 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했으며, 1997년에는 조건 없는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로 돌아섰다.

 

1976년 알래스카 주는 주 헌법을 개정해 알래스카 영구 기금을 설치했다. 1977년에는 기본소득을 공식적으로 선거 강령에 담은 의원을 지닌 유럽 정당이 네덜란드에 등장했으며, 1982년 알래스카 주는 6개월 이상 알래스카에 거주한 모든 사람에게 나이와 거주 기간에 무관하게 영구 기금으로부터 매년 균일한 배당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1985년 네덜란드의 정부과학정책회의가 ‘부분 기본소득’의 도입을 제안한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네덜란드에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 1986년에는 각국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모여 기본소득에 관한 최초의 국제 회의를 개최했다. 이들은 국제 기구의 결성을 결의하고 이후 2년마다 총회를 치르기로 했다. 1988년에는 기본소득 유럽 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urope Network)가 결성되었다. 이 기구는 2004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0차 총회에서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로 전환했으며, 2010년 상파울로에서 총회를 열 계획이다.

 

 

기본소득으로 어머니가 되는 국가

나미비아

나미비아의 경우 매우 실험적인 기본소득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나라다. 전국적 수준에서의 도입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실험 프로젝트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이 될 경우 그 도입 움직임이 가속화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나미비아에서는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젝트 진행 1주년을 맞아 지난 2009년 4월에 평가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대상도 제한적이고 기간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경험적 결과들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파일럿 프로젝트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1]

▫ 대상 : 나미비아 오미타라 지역의 모든 주민(60세 미만인 930명)

        * 60세부터는 노령연금을 이미 받고 있음.

▫ 지급 금액 : 매달 N$ 100(한화로 1만 4~5천원 정도)

▫ 지급 방식 : 우체국 예금 계좌로 송금(처음 6개월은 직접 지급)

▫ 기간 : 2008년 1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24개월

▫ 비고 : 21세 미만은 돌봄제공자에게 지급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학계에서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의 곽노완 교수와 한신대학교 경제학과의 강남훈 교수가 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2]. 이수봉 민주노총 전 정책연구원장(현 홍보미디어실장)이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를 밝혔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금민이 기본소득 주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3] 정당 중에서는 사회당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 제18대 총선에서 ‘국민기본소득제도’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회당은 2009년 2월 1일 중앙위원회에서 당내에 '기본소득위원회'라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했으며, 기본소득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당은 2009년 11월 29일 13차 당대회에서 강령 개정과 부속강령(1)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본소득과 보편적 복지를 위하여' 제정을 통해 한국 정당 사상 최초로 기본소득을 강령의 핵심적인 지위에 올려놓았다.

 

2009년 1월 22일 대한민국의 사회단체인 사회대안포럼은 ‘기본소득제도의 사회대안적 가능성’이라는 행사를 개최했다[4]. 한겨레는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5] [6]를 보도했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4월호는 〈[Issue]일하지 않는 자도 먹을 권리가 있다: '일자리' 대신 '소득'을 나누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위원회도 2009년 4월 17일 기본소득 토론회를 열었다.

 

한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2009년 6월 25일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한신대 경제학과 강남훈 교수가 대표로 선출되었다.

브라질

브라질의 경우 2010년 ‘시민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기본소득 제도의 전국적 시행을 앞두고 있다. 관련법은 2004년에 최종적으로 통과되었으나 그 시행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많았던 셈이다. 브라질의 경우 전국적 수준에서 최초로 이 기본소득 제도가 실시된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의 시행이 급작스럽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브라질은 지금까지 볼사파밀리아(Bolsa Familia)라 불리는 소득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브라질에서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고 있는 가구는 모두 1130만 가구에 이른다.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03년 당시 혜택을 받았던 것이 350만 가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놀랄만한 성과다. 이 볼사파밀리아 프로그램이 대략 브라질 인구 1억9030만 명의 4분의1에 해당하는 4500만 명을 끌어안음으로써 브라질의 평등지수인 지니계수는 2002년 0.58에서 2007년 0.55로 개선되었다.

 

기본소득의 강력한 지지자인 브라질 노동자당 상원의원 수플리시가 기초한 시민기본소득 관련 입법안이 브라질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은 것은 지난 2002년 12월이었다. 이듬해인 2003년 12월에는 이 법안이 브라질 하원에서도 승인되었고, 2004년 1월 8일에는 룰라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브라질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제도화하는 법률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국가가 되었다.

 

이 시민기본소득은 처음에는 2005년부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부터 단계적으로 혜택을 줄 계획이었다. 법에 따르면, 행정부가 이 지급 액수를 정하고 전체 인구가 혜택을 받을 때까지의 점진적인 도입 속도 또한 결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는 물론 국가 경제의 발전 정도와 사용가능한 재원의 수준에 따라 제약을 받는 것이었다. 아무튼 애초 계획보다는 늦어지긴 했지만,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어 차츰 모든 사람들로 그 대상이 확대될 예정이다. 여기에는 브라질에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까지도 포함된다.

알래스카 주

미국 알래스카 주의 사례는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해당한다. 석유라는 자원에서 나오는 막대한 수입이 없었다면 이러한 시도는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자연자원으로부터 나오는 재원이 풍부한 나라들 모두가 이런 시도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풍부한 재원이 있다 하여도 기본소득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이 가져올 긍정적인 사회적 효과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이러한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델의 도입에는 1970년대 중반 알래스카의 공화당 소속 주지사 제이 하몬드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는 북미에서 가장 커다란 석유지대인 프루도 만의 석유 채굴로 얻어진 커다란 부가 오직 주의 현재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도록 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석유로부터 얻어진 수입 일부의 투자를 통해 이러한 부가 축적되는 것을 보장해주는 기금의 설립을 제안했다. 그리고 1976년 주 헌법의 개정으로 알래스카영구기금(APF)이 설치되었다. 알래스카 주민들이 이 기금의 성장과 지속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주지사 하몬드는 모든 거주자들에게 그들의 거주 햇수에 비례하는 배당을 매년 지급하는 것을 구상했다. 그런데 다른 주들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이유로 미국 대법원에 제소된 이 제안은 수정 연방 헌법 제14조인 “동등 보호 조항”에 위배되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이에 따라 이 제안은 수정되었고, 보편적 기본소득에 가까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1982년 이 프로그램의 시행 이후 알래스카에 적어도 1년 이상 공식적으로 거주한 모든 사람은 나이나 주에서 거주한 햇수가 얼마나 되는지 간에 매년 일정한 배당을 받아왔다. 이 배당은 초기에는 매년 1인당 300달러 수준에 머물렀지만 2000년에는 2,000달러 가까이에 달했다. 지난 2008년에는 애초 1인당 2069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는데, 1,200달러의 일시 리베이트가 추가로 지급되어 2008년 배당금은 최대 3,269달러가 되었다.

 

한편, 2002년 이전 10년간의 통계를 보면, 미국의 부유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이 26% 증가한 반면, 가난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은 12% 증가에 그쳤다. 그러나 알래스카에서는 같은 기간 동안 부유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이 7% 증가에 그친 반면, 가난한 가구 20%의 평균 소득이 무려 28%나 증가했다. 이를 통해 뚜렷하게 알 수 있듯이 알래스카 주는 이것의 시행 결과로 인해 미국의 주들 가운데 가장 평등주의적인 주가 되었다.

 

 

 <박영기_2010_04_16>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