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저/임희근 역 | 학고재 | 원제 Lettre a D | 2007년 11월
씨밀레 김현채님의 거처를 정리하면서, 이제야 그가 권한 책을 읽었다.
산책을 갔다가 어느 무덤가에 앉으면
함께 세상을 살다가 함께 저세상으로 간 그들 이야기를 꺼내곤 했던 김현채님.
그러나 5.18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그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훌쩍 세상을 떠났다.
묘지석에 이름을 나란히 새기고 싶어 했지만 그런 준비도 해두지 못하고 떠났다.
나중에라도 함께 묻히고 싶어 했지만, 그도 5.18 묘역 한 자리에 겨우 누웠다.
KBS 다큐도 갓 떠난 그를 그렇게 매장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걸 평가할 순 없지만 잘못 산 셈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를 비롯해서 5.18시민군이었던 민중들의 삶을 사랑한다.
타고난 기질대로 열렬하게 살았던 김현채님을 존경한다.
그가 남긴 옷, 사진, 편지, 추억, 5.18 자료.
'봄날'을 읽은 후 수년 뒤에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비로소 5.18이 뭔지 느꼈고,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라는 영화를 보면서 산산히 부서진 꿈의 파편이 눈에 박힌 채 살아야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
그이 없이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울화만 치민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미래를 함께 상상하곤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겪은 트라우마, 지금도 광주유족들이 겪고 있을 그 몹쓸 것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어린 시절, 혹독하게 자랐던 앙드레 고르와 도린은 트라우마 때문에 자식도 두지 않고 둘이서 살았다.
자식을 두면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굴레는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5.18 단체가 안고 있는 문제들, 자식들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결하면서 살고 싶어했던 게 김현채님의 바람이었다.
앙드레와 도린이 서로 협력했던 것처럼
우리도 노인이 되어서까지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협력하며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산 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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