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용서해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고명섭 기자
이정아 기자
» 김형경(오른쪽)·박미라(왼쪽)씨의 ‘치유 대담’
김형경·박미라씨의 ‘치유 대담’
아픔이 깊어 멍이 든 사람들이 있다. 훤한 대낮인데 우울이 한밤처럼 내려앉은 사람들이 있다. 다 마음의 병, 관계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다. 소설가 김형경(오른쪽)씨와 ‘치유 글쓰기’ 강사 박미라(왼쪽)씨는 이 아픈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침을, 마음 기울여 들었다. 2005년 봄부터 만 1년 동안 두 사람은 〈한겨레〉 지면에 상담꼭지 ‘형경과 미라에게’를 연재했다. 삶의 돌부리에 치인 사람들이 속이야기를 전해오면, 성심을 다해 그들의 고민에 번갈아 답했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 마주 앉았다. 박미라씨가 연재 글을 기초자료로 삼아 ‘감정 치유 에세이’ 〈천만번 괜찮아〉를 펴낸 것이 이 만남의 계기다. 김형경씨는 먼저 지난해 겨울 같은 연재물을 갈무리해 ‘심리 치유 에세이’ 〈천 개의 공감〉을 낸 바 있다. 〈천만번 괜찮아〉와 〈천 개의 공감〉은 오랜 친구처럼 다정했다. 박미라씨는 나이가 위인 김형경씨를 ‘선배’라고 불렀고, 김형경씨는 ‘미라씨’라고 불렀다. 인생길의 선·후배이자 도반이고 멘토인 두 사람은 〈천만번 괜찮아〉를 이야기의 밑자락에 깔고 ‘치유 대담’을 했다. ‘선배’와 ‘미라씨’의 만남은 지난 25일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이루어졌다.
사랑이란 같이 성장하는 것…실패 두려워 말아야
김형경=〈천만번 괜찮아〉를 읽고 새삼스럽게 느낀 건데, 내가 쓴 〈천 개의 공감〉과 겹치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나는 여성들의 내적인 자기 성장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데, 미라씨는 인간관계 안에서 생기는 문제에 더 집중한 것 같아요.
박미라=난 전혀 의식을 못 하고 썼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연재할 때도 주제가 부딪친 적이 한 번도 없었잖아요.
형경=난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니까 아무래도 자기 치유나 자기 성숙 쪽이 더 친숙한 것 같고, 미라씨는 결혼한 사람이니까 가족이나 부부 같은 관계가 더 눈에 들어온 것 아닐까?
미라=그런데 좀더 생각해 보면 선배랑 나랑은 삶의 과정이나 관심에 차이도 있지 않나 싶어요. 선배는 소설가로서 경력을 시작했고, 나는 페미니즘(여성주의) 운동에서 출발했잖아요.(박미라씨는 페미니즘 잡지 〈이프〉의 편집장을 지냈다.)
형경=맞아요. 그래도 내가 보기엔 공통점이 더 많아요. 나는 정신분석학에 관심이 있어서 그쪽을 공부하다가 종교적 초월성이랄까 영성 쪽으로 다가간 셈이고, 미라씨는 페미니즘에서 시작해 종교적인 영역으로 들어갔고 ….
미라=페미니즘과 종교가 만나는 지점이 있어요. 여성의 자기실현이나 권리 획득은 영적인 차원의 평화와 해방으로 이어져야 하거든요. 그래서 두 흐름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할 때 더 확신이 서더라고요. 이를테면, 부모-자식 관계를 이야기할 때 특별한 기대나 환상이나 집착을 품지 말라고 조언하는데, 집착한다고 해서 삶이 풀리는 것도 아니고, 또 집착에서 벗어나야 관계가 오히려 더 좋아지기도 하거든요. 이건 연인관계도 마찬가지죠.
형경=집착 하니까 바로 사랑이 떠오르네요. 사랑이야말로 집착으로 떨어지기 쉬운 관계잖아요. 난 사랑이란 필요의 산물이라고 생각해요. 생존에 필요한 것을 주는 게 사랑이라고, 사랑의 본질이라고 봐요. 아이 때는 부모에게 매달리고, 어른이 되면 나를 지켜주고 채워주고 키워주는 사람을 찾고 ….
가족은 가장 치열하게 나를 보여주는 수행 장소
미라=난 사랑의 종착점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어요. 출발은 생존의 필요지만, 끝은 좀 달라요. 연인에게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이 뭘까. 필요를 넘어서 영적인 차원의 사랑에까지 가 닿고 싶은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사랑을 연인이 곧바로 줄 수 있는 건 아니고, 내가 연인을 통해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거죠. 그래서 나는 실패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깨지고 좌절하고 반성하면서 사랑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거죠.
형경=현실의 연인관계를 보면, 같이 성장하는 게 참 중요해요. 서로 성장을 도우면 파탄이 나지 않는데, 한쪽만 성장하면 삐걱이고 깨져요. 그래서 함께 성장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러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존중하고 그러면서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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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경=난 가족이란 가장 치열하게 자기를 보여주는 장이라고 생각해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자기 내면의 양가성, 분열성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그걸 통합하는 장이 가족이에요.
미라=맞아요. 그런 통찰에 이르러야 가족관계, 부부관계가 성숙해져요. 결혼은 수행의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는 것도 좋죠. 내 안에 괴물이 있는데, 그걸 관념으로만 느끼는 걸로는 부족해요. 자식이나 남편 앞에서 그 괴물이 튀어나오는 걸 겪으면서 그 괴물을 다스리는 거죠. 그런 수행의 관점에 서면 가족관계가 훨씬 더 풍부해질 수 있어요.
형경=그래요.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양가성 통합이나 미라씨가 말하는 ‘결혼 수행’이나 결국은 같은 말이죠.
주체적으로 사는 법 배우려는 용기 필요해요
미라=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족관계가 다 좋다는 건 아니에요. 최선을 다해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죠. 그래도 안 되면 자책하지 말고 자기를 돌봐야 해요. 나쁜 여자라는 말을 듣는 것도 감수해야 해요.
형경=‘나쁜 여자’란 남성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볼 때 ‘나쁜 여자’일 뿐이에요. 착한 여자는 죽어서 천국 가고 나쁜 여자는 살아서 어디든지 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미라=현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해요. 관계 때문에 죽도록 고통받으면서도, 현실적으로 풀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만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잘하면 잘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말고,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법을 배우려는 용기가 필요해요.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말이죠.
형경=책 제목이 참 가슴에 와 닿아요. 천만번 괜찮아 ….
미라=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치유하는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 ‘괜찮아’ 훈련을 해요. 매번 자기가 죄의식을 느꼈던 것을 써 보고 후렴구처럼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라도 괜찮아”라고 쓰거든요. 거기서 따온 겁니다.
형경=‘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말도 있어요.
미라=맞아요. 자기 용서의 깊이는 한도 끝도 없어요.
글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46가지 마음의 병에 건네는 위로
<천만번 괜찮아>박미라 지음/한겨레출판·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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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 용서’ ‘자기 위로’다. 수많은 여성들이, 또 남성들이 이유 없는 자책감과 죄의식으로 마음이 황폐해지는 걸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내 잘못일지도 몰라. 내 탓일 거야.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 아,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을까. 나는 쓸모없는 존재인가 봐. 내가 자초한 불행이야. 나는 운이 없는 것 같아 ….” 우리 안에는 초라하고 위축된 마음이 숨어 있어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내민다.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거기에는 예외가 거의 없다. 지은이는 인류의 95%가 어떤 식으로든 열등감을 느끼고 산다는 통계를 끌어들여 말한다. “아무리 당차고 야무져 보여도, 아무리 큰소리치고 있어도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큰소리치고 사납게 구는 태도야말로 자책감과 죄의식에 떨고 있는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며, 분노에 날뛰는 행동이 극도의 불안감의 표현이라면 여러분은 공감하실 수 있을까요?”
지은이는 자신의 지난 삶이 그랬다고 고백한다. “잔뜩 위축되고 초라해진 나 자신과의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여러분의 주눅 든 마음에 더욱 공감이 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갖가지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쓴 위로의 글이자 지은이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자기 치유의 편지다. 지은이는 낮은 목소리로, 그리고 삶에서 얻은 깨달음의 확신으로 이야기한다. “정말 괜찮아. 천만번이라도 괜찮아.” 이 책은 마지막에 가서 한 번 더 말한다. 누구든 삶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속삭인다.
고명섭 기자
- 2007.6.29.자 한겨레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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