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위에서 펼쳐지는 삶
뻥튀기, 우유, 김밥을 먹으면서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니 전철로 소풍을 나온 기분이다. 천안권에서는 그다지 북적대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조각보 가방을 든 여학생도 있고, 오른쪽 팔뚝에 문신을 한 유럽인도 있으며, 거침없이 통화하는 동남아 사람이 있는 건 당연해졌다. 규칙적 움직임이 있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긴 의자 하나에서 한 명 정도는 잔다. 다양한 소리가 나서 방해를 받을 것 같지만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주는 소리, 전철이 서고 가는 소리, 문 여닫히는 소리, 사람들 내리고 타는 소리가 나도 흔들어주는 엄마 품에서 자는 것처럼 잠에 푹 빠져들 수 있다.
이렇듯, 전철을 타면 21세기가 보인다. 아주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자 다양한 사람들이 같이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문 위에는 유방수술을 권하는 만화광고가 있고, 문 옆에는 미니소화기가 대기 중이다. 고객 40% 정도는 TV시청, 소통 등을 하면서 제한된 공간에서도 먼 곳 사람들과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60% 정도는 어학공부, 음악 감상, 피로회복, 회상과 반추 등의 자율 활동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거리감과 장벽도 있다. 지정석 위 안내판에 반은 그림이고 한글, 알파벳, 한문으로 쓴 안내문구가 있고 그 아래 마련해놓은‘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보호석’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 곳이 다 차서 일반석 앞에 엄마와 함께 서 있는 꼬마의 안전에 대해 이십 대 여성에게는 관심이 없다. 먼저 시집가서 자주 못 만나게 된 친구에게 모 대형할인마트 육아제품 할인정보를 전하기 바쁘다. 이십 분 이상의 통화 비용이 들더라도 생활 패턴이 달라진 친구와 우정을 유지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게다. 이웃집에서 키운 먹을거리보다 먼 곳 지인이 키운 먹을거리를 택배로 받아서 먹어야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 보는 세상인 것이다.
두정역에서 용산역까지는 급행전철로 1시간 25분 걸린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그러나 여러 번 갈아타거나 다양한 교통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승용차로 움직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모처럼 여유 시간이 생겨, 쫓기는 마음에서 벗어나 친구도 만나고 추억이 있는 곳도 다녀왔다. 가을볕이 한가로운 마음을 따사롭게 매만져주니 금상첨화였다. 오래 기다렸던 만남이지만 허락된 시간은 짧아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빠트리지 않고 싶었다. 어떤 말을 할 건지 고르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갔다가 눈빛으로 거의 모든 걸 주고받은 뒤 금방 헤어졌다.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에도 가려고 개봉역에서 신도림까지 가서 5호선을 갈아타고 신길역에 갔다. 다시 공덕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한강진역에 가서 지하를 빠져나왔더니 스스로 사람다움이 느껴졌다. 지하도시에서 벗어나야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이랄까. 버스를 타고 남산에 가는데, 바람을 탄 듯 스스로 신이 되살아나면서 기운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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