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1991
벼랑 끝 액셀
아내가 그저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길 바라기 때문에 친구와 여행을 가려해도 절대 안 보내줬을 그런 남편(아빠도 아니면서)과의 삶에 숨이 막혔던 델마. 델마는 결혼 후 자신을 위해 악셀레이터를 밟아본 적 없고 독신생활 중인 루이스는 결혼 관계에 관해서 시동을 아예 꺼버린 거 아니었을까. 그녀들은 그럭저럭 안녕(?)해 보이는 일상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인공호흡을 한달까, 혹은 자기 숨통을 연달까,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디에나 흔해빠진 마초들이 여성과 어떤 식으로든 재미있기를 바라는 바람에 그녀들의 안녕을 곧바로 위협한다.
여행의 피로를 달래기 위해 조그만 술집에 들렀을 때 만난 한 남자가 델마에게 성폭력을 시도했을 때 루이스는 방어를 위해 겨눴던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만다. ‘놔주지 않으면 네 얼굴을 날려 버리겠다’고 소리쳤을 때, 그 남자가 루이스에게도 성폭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예측 못했던 이 순간에, 델마와 루이스는 여성들에게 ‘괜찮은 건 어쩌면 하나도 없는’ 세상과 분리되어,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조금이나마 안전한 세상에 들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게도 그토록 무례한 남자가 그녀들을 만나기 전에 더 빨리 안 죽은 건, 여성들 - 어머니/여동생/부인/아줌마 - 이 깨어있어 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게다. 신이 주신 특별한 능력(?)이라며 번식을 위한 출산과 양육에 여자의 일생을 바치도록 인류가 구조화되기 전엔, 정말 괜찮은 딴 세상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형사의 말처럼, 델마의 새 남친이 그녀들의 돈을 안 훔쳤어도 델마가 강도짓을 했을까? 루이스가 텍사스에서 성폭력 당하지 않았다면 델마의 댄스 파트너에게 루이스가 총을 쏘았을까? 그리고 남(강)자들 말인데, 여(약)자한테 그러는 건 어디서 배웠을까? 아무튼 우리의 고민거리는, 아직도 세상은 더 나아가야 할 공부의 길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고, 내 고민거리는 그 길 위에 나도 있다는 점이다. 아뭏든 공부가 덜 된 사람에게 마음을 쉽게 열거나 관계의 공간과 시간을 내주지 않겠다. 세상의 수준이 질퍽거리고 있다면 그 수준에 맞게 행동하는 게 상책이고, 소통이 절실하더라도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무시하는 게 안녕의 지름길이니까. 그리고 수억 마리 정자 중 받아들일 하나를 선택하는 난자처럼 어떻게 살 건지 혹은 어떻게 죽을 건지 찰라마다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을 잘 보기 위해서라도, 벼랑 끝에서의 생애동안 나는 더 분명하게 깨어있고 싶다.
Lillith, 20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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