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 300 정예군의 저항
테르모필레 협곡은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좁은 길이다. 이곳에서 BC 480년 7월 제3차 페르시아전쟁 때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는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과 테스피스인 700명을 이끌고 페르시아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 그러나 이 고장 출신의 내통자가 페르시아군에게 산을 넘는 샛길을 가르쳐 주어 수만이 몰려왔다. 이에 최후의 스파르탄 300명의 정예부대만이 남아 페르시아군을 막았고 그 사이에 그리스 함대는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다. 이 전투로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전원이 전사하였다.
역사의 아버지라면 사마천이나 헤로도토스를 꼽는다. 역사 이전의 신화는 다양하고도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만 역사는 인과관계 서술로 재해석을 차단한다. 하지만 선택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의 문제점을 여전히 안고 있다. 역사는 일어났던 일이자 탐구해서 알아낸 지식이며 과거와 현재의 대화 창구이지만, 한편으로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사실과 사실 사이의 선택이 역사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 전에는 역사가와 감독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누가 어떻게 조리하면 어떤 요리가 되는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저자 헤로도토스는 하늘의 역사를 인간의 역사로 바꾼 인물이다. 고대인들이 신화적으로 역사를 서술하였다면 <300>은 그리이스 인들이 벗어나지 못했던 신화적 사고방식을 신탁의 비리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탈출하는 모험을 한다. 어떤 사정으로 페르시아 군인과 스파르타 정예군이 싸움을 하였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전제정과 민주정'이라는 정치문화의 차이가 어떻게 우리 삶과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인간답다는 게 무엇일까. 만약 지배욕이 과한 지배자라면 모든 문서를 불태워버리고 모든 역사가들의 눈알을 뽑아버리고 그 혀를 자를 것이다. 그러나 자유를 헛되게 했던 굴복의 역사마저도 기록하여 역사로 남기려는 것은, 인간답고자 하는 희망이 인간들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300 명의 스파르티안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항했다. 지배욕을 주체하지 못한 채 권력만 추구하는 광자들이 인간 양심 마비시키기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 근현대사만 되짚어봐도 알 수 있다. 세상 곳곳에서 전사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진화시켜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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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8월 21일 개관식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당시 82)와 강일출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는 죽기 전까지 조선 소녀가 일본군에게 당한 일을 전세계에 전하러 다녀서, 일본에게는 사과를 꼭 받고 싶다는 걸 힘주어 말했다. 할머니는 전시관의 시뮬레이션을 보면서 오랫동안 겪었던 고통-트라우마-을 또 겪으며 굳은 듯 서 있기도 했다. 열다섯 살이었던 어느 밤, 자고 있는데 군인과 여자가 와서 무조건 끌어내는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고 한다. 강일출 할머니는 독립기념관에 이나마 전시해서 위로 받았으나, 애초보다 여러모로 축소되고 어려운 점 많은 게 섭섭하단다. '우리가 당한 일을 후손들이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며, '64년이 지나도록 일본은 사과 한마디 없는데,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말하면서,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사진: 김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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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저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 사업이 독립기념관 이사회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7년 독립기념관 측은 제70차 임원이사회에서 위안부와 관련한 별도의 기구나 전시관 설립 일체에 반대했다. 당초 약 1650㎥(약 500평)의 단층 건물을 신축하려던 계획이 독립기념관 제2전시관 내 위안부 전시물을 보강하는 정도에 그친 것이다.
당시 이사회 회의록에는 "여성독립운동관의 이름으로 짓는 것은 가능해도 일본군강제위안부 피해자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독립기념관 내에 기구가 들어오는 것은 반대", "우리 독립기념관은 성역인데 이곳에 위안부회관을 짓는 것이 말이 되냐" 등의 발언이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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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안소 (독립기념관 축소 재현물) (사진: 김난주) | 힘도 있는 어른들이 변절하고 친일 하던 시절에 어린 여성들이 속임수에 휘말려 끌려가서 성노리개가 되었다. 국권을 되찾고 세계로 도약하는 한국이 그들을 부끄럽게 여기고 방치했지만, 수요집회에 나와 목소리를 내며 일본의 만행에 저항하고 있다. 힘이 없어 못했던 소녀들의 저항, 할머니가 되어서 힘 내는 것도 녹록한 일이 아니다. 한을 풀지 못하고 하나둘 씩 무덤에 갖히고 있는 그녀들에게 늦으나마 국가가 명예를 회복시키고 원한을 푸는 것이 국가의 도리이고 독립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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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끌려가는 조선 여성들 (독립기념관 축소 재현물) (사진: 김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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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은 과거의 유물에만 매몰될 일이 아니다. 서럽게 저 세상으로 간 친구들을 곧 따라가게 될 소수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과거에 끝내지 못했고 지금도 끝내지 못한 현재진행형 독립투쟁이 아닌가, 소수정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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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터 각지의 일본군 위안소 (독립기념관 전시물) (사진: 김난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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