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랑

피아노 _ 1994 _ 제인 캠피온

실다이 2011. 5. 2. 01:03

피아노

The Piano

1994

감독: 제인 캠피온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감독 제인 캠피온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을 <피아노>의 위력을 빼놓은 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고, 그 여파로 한국의 극장들은 <내 책상위의 천사>나 <스위티> 같은 이전 영화들을 속속 불러들였다. 그는 이제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산업의 지역적 변방성에 여성이라는 성적 변방성이 지운 이중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여성감독이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엄청난 국가적 재정지원에 힘입은 오스트레일리아영화의 국제적 부상과 그 안에서 나날이 이루어지는 여성영화인구의 증가라는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 있었다. <스위티>에서 시나리오, 촬영, 편집을 여성들과 함께 한 그는 <피아노> 역시 여성제작자인 잔 채프만과 결합해 만들었다. 여성들로 일단 전선을 구축한 다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 여성의 삶과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그의 작업스타일인 셈이다.

 

얼핏 보기에 진부한 삼각관계 이야기인 듯 싶은 <피아노>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식민지였던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시대와 공간이 여성에게 주는 억압, 특히 성적인 억압을 보여준다. 주인공 아다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새 남편과 아버지의 교환수단이 된다. 그리고 자기의 표현수단인 피아노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남편과 낯선 남자 사이에 거래된다. 여기서 아다는 벙어리이다. 이 여성의 침묵과 피아노라는 표현수단의 설정은 억압적인 가부장제 언어체계 안에서 침묵이 저항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입술을 통하지 않고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열정적인 피아노 소리로, 딸에게 보내는 신호로, 종이 위에 연필로 쓰는 글로, 연인의 몸을 쓰다듬는 손길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의 자기 표현이 남편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은 남편이 그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데서 확실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제인 캠피온은 아다의 성적, 정서적 각성을 왜 빅토리아 시대라는 이미 지나간 시대 속에 구조화시켰을까? 우선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성욕의 억압과 동의어인 시대다. 또한 남성지배적인 역사에서 여성의 경험은 거의 완전히 감추어져 왔고 여성들의 상상력을 해방시키고 현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과거는 가장 흔한 공격대상이 된다. <피아노>가 한 여성의 과거에 대한 단순한 여성영화가 아닌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이 영화는 또한 남성들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어떤 것이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지를 묻는다. 구획을 짓기에 익숙한 자본주의적 인물이자 도끼로 상징되는 스튜어트라는 남편을 버리고 원주민과 친한 베인즈를 아다가 선택하는 것은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 할리우드적 관습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이용한 이 영화의 접근법은 분명 아직도 낭만적인 사랑의 각본을 믿고 싶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리라.

 

변재란/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