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소개)
* 폴 임
1940 년 서울에서 출생한 풀 임 씨는 1969 년 미국 유학, 조지아 주
IBC대학에서 "종교 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고, 캘리포니아 페파다인
대학에서 "응용 심리학", 아주사 대학에서 "구약 성서"를 전공했다. 사립 대학에서
영문학을, 현대 건축학원에서 건축법과 노동법을 강의하는 등 미국 스미쇼리안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정규 회원으로서 고고학과 인류학 세미나에도 여러 번
참석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한국일보사의 FM-서울, RADIO-KOREA에서 미국
역사와 미국에 관한 이야기 프로를 진행하기도 했다. "책 속의 책 1995"(전 3권)와
"한눈으로 보는 세계사 1000장면"(전 5권)으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그는 현재
하와이에 거주하면서 "책 속의 책 1998" 출간을 위해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차 한잔 속의 폭풍", "문학 작품 속의 사랑 이야기", "폭소",
"수학하는 학문의 기쁨", "영어 단어의 로맨스", "체험적 진리가 흐르는 강",
"세속적인 세상을 사는 지혜" 외 20여 권이 있다.
(저자의 말)
우리가 모르는 무한한 지식의 세계를 향하여
고독하며 절망하며 방황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의 마음에 꿈을 심어주는 농부의
이야기를 "책속의 책"을 통해서 말해왔다.
"우리가 모르는 지식의 세계"에는 "책 속의 책"에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너무나 귀중해서 비밀리에 감춰두었던 보석처럼 반짝이는
자료들을 정리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젊은이들이여, 이 책만 곁에 두고 있으면 풍요로운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 차
있게 될 것이며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변할 것이며 대화의 영웅이 될 것이다. 이 책
한 권만 읽고 나면 어느 장소에 가서 누이 책 한 권만 가지고 있으면, 일생동안 무엇을 하든지 간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편지나 수필을 쓴다든지, 대학에서 리포트를 쓴다든지, 웅변을 한다든지 등
무엇을 하더라도 이 책은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성 베네딕트에 까마귀를 기르게 된 연유
지난 1,400 년 동안, 이탈리아의 성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6세기경 이 수도원의
건립자인 성 베네딕트의 목숨을 구했던 까마귀의 후손을 반드시 한두 마리씩
길러왔다.
그 당시 수도원에 날아다니던 까마귀 한 마리가 성 베네딕트의 손에 들고 있던
독이 든 빵조각을 물고 달아나 그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이
수도원에서는 까마귀를 기르기 시작하였으며 1,400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풍습이
끊이지 않고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실례지만, 당신의 나이는?
아래에는 숫자들이 6세트로 묶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세트 안에는 숫자들이 세
줄로 나열되어 있다. 이제 게임을 시작해보자! 누군가의 나이를 알고 싶으면, 그
사람에게 자신의 나이가 속해 있는 각 세트를 지적하게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의 나이를 포함한 각 세트들의 맨 왼쪽 줄의 제일 처음에 있는 숫자들을 찾아
모두 합해라. 그 합계가 바로 그 사람의 나이가 될 것이다.
예) 나이가 25세라면, 아래에서 25에 * 표시한 세트의 맨 왼쪽 줄의 제일 처음에
있는 숫자 8과 1과 16을 더하면 25가 나오게 된다.
(1) 8 27 46
9 28 47
10 29 56
11 30 57
12 31 58
13 40 59
14 41 60
15 42 61
24 43 62
* 25 44 63
26 45
(2) 1 23 45
3 *25 47
5 27 49
7 29 51
9 31 53
11 33 55
13 35 57
15 37 59
17 39 61
19 41 63
21 43
(3) 16 27 54
17 28 55
18 29 56
19 30 57
20 31 58
21 48 59
22 49 60
23 50 61
24 51 62
*25 52 63
26 53
(4) 4 23 46
5 28 47
6 29 52
7 30 53
12 31 54
13 36 55
14 37 60
15 38 61
20 39 62
21 44 63
22 45
(5) 32 43 54
33 44 55
34 45 56
35 46 57
36 47 58
37 48 59
38 49 60
39 50 61
40 51 62
41 52 63
42 53
(6) 2 23 46
3 26 47
6 27 50
7 30 51
10 31 54
11 34 55
14 35 58
15 38 59
18 39 62
19 42 63
22 43
가장 잔인한 물고기 파이레나
남미 지방의 호수나 여울목에는 은빛 바탕에 작은 갈색의 점무늬가 있는, 아주
조그맣고 얌전하게 생긴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바로 파이레나라고 불리는
물고기인데 이것의 몸집의 크기나 생김새만 보고 잘못 다루었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가 있다. 이 물고기들은 생긴 것과는 달리 어른 한 명쯤은 몇 분 안에
뜯어먹어 치우는 대단한 식욕을 가진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파이레나의 억센 입에는 면돗날보다 날카로운 이들이 왕관처럼 촘촘히 박혀
있는데 이 삼각형으로 생긴 이가 어찌나 단단한지 남미 원주민들은 이것을 활촉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치명적인 면돗날로 무장한 파이레나는 상대의 종류나 몸집 크기에 상관하지 않고
주저없이 덤벼든다. 한 마리의 파이레나가 덤벼든다 해도 충분한 위협이 될 터인데
보통 수백 마리가 때로 덤벼드는 잔혹한 공격에서는 아무리 큰 덩치의 동물이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은, 파이레나는 물을 건너는 소의 다리는 절대로 공격하지
않지만 만일 소의 다리가 날카로운 바위에 부딪혀 한 방울의 피라도 내기 시작하면
떼로 덤벼들어 소가 다리를 쓰지 못할 정도로 물어뜯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소가 무릎을 꿇고 물 속을 잠기게 되면 이 파이레나가 덤벼들어
순식간에 소 한 마리를 뼈다귀로 만들어버린다.
파이레나는 왕성한 식욕을 갖고 있어서 아무런 미끼에라도 덤벼들기 때문에
낚시에 곧잘 걸려 올라오지만 이 파이레나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싶은 낚시꾼들은
낚시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재빨리 물 밖으로 끌어내야 될 것이다. 이 파이레나는
낚시에 걸려 끌려가는 동료도 순식간에 뼈다귀로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식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착시
점 'A'를 응시하고 있으면 썰매가 마치 뒤집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그림: 묵자책 13쪽 참조
* 그림설명: 썰매가 그려져 있고 썰매 앞 부분에 A자가 있음(주:교정자)
10 대의 손자들을 볼 때까지 살았던 할아버지
중국의 칸수에 살고 있는 아크웨이는 10 대 자손들을 보는 그날까지 살았다고
한다. 즉 자신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을 볼 때까지 살았던 것이다. 즉 그는 또 행복하게 황금 시대를 만끽하며
살았다. 그래서 중국의 황제가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고 있을 때, 칸수
마을의 지도자는 아크웨이를 추천했다.
1790 년에 손자의 손자의 손자 등 10 대 손자들을 볼 때까지 살았던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때까지 보았던 손자들의 수는 130 명이라고 한다.
왼손잡이들
메다가스카의 안다나라스 종족의 사람들은 종족 모두가 왼손잡이라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상 유명했던 종족이었다. 물론 몇몇의 예외는 있었다. 그 종족에서는
원래 오른손잡이들이 희귀했던 터라, 행여나 오른손잡이로 의심받을 만한 소년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은 사람들에게 비밀스럽게 전해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는
오른손으로 그 일을 해" 하고 말하는 대신에 "난 늘 왼손으로 그 일을 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린 부모
1910 년 1월 8일, 아주 건강한 중국 아이가 태어났다. 아기의 어머니는 여덟
살이고 아버지는 아홉 살이었다.
이것은 중국 후키엔 성 아모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시' 집안에서 일어난
경사이며 이 그림(그림 묵자책 16쪽 참고)은 성에서 발행되는 권위 있는 신문에 난
사진을 복사한 것이다.
사람은 전날 밤보다 아침에 조금 더 키가 크다.
이 현상은 척추골 사이에 있는 섬유질로 된 연골판이 늘어나 있기 때문이다.
연골판은 신체에 가중되는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체중이나
온갖 종류의 긴장, 이외에도 걷기와 모든 범위와 육체 운동으로 야기되는 심장
박동의 변동 등 인체상에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흡수한다. 따라서 하루가 끝날 쯤에
연골판은 빽빽하게 압축되어 있지만, 밤새 수면을 취한 뒤에는 다시 원래의 크기로
돌아오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사람의 키는 커지게 되는 것이다.
4.8km의 화폭
1840 년, 뉴욕 출신의 25세 청년 반바르드는 뗏목에 몸을 싣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400일 동안, 뗏목을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근처의
풍경을 화폭에 담는, 미술 역사에 길이 남을 획기적인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반바드는 그 후 5 년 동안 "미시시피 강의 파나로마"라고 이름 붙인 작업에
정진하게 된다. 미시시피 강 어구로부터 뉴올리언즈 강으로 흐르는 1,920km
미시시피 강 풍경을 그리는 이 작업에 높이가 3.8m이고 길이가 4.8km인 캔버스가
소요되었다.
이 거대한 규모의 그림은 결국 회전하는 2개의 커다란 원통에 감겨 관람객들에게
보여지게 되었는데 이것을 다 보려면 2시간이 걸렸으며 미국의 전도시와 유럽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거둬들인 돈만도 200,000 달러가 넘었다. 그 후 이 그림은 한
영국인에게 팔렸지만 현재 그림 소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뱃멀미를 하는 물고기
물고기가 뱃멀미를 한다니 믿기지 않겠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물고기도 뱃멀미를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어항에 인공으로 풍랑을
일으켰더니 그 안에 있던 금붕어가 뱃멀미 증세를 보였던 것이다.
또한 지중해에서도 실험을 했는데, 900g과 32kg의 무게가 나가는 크기가
각각 다른 물고기들을 배에 싣고 나가 거친 파도로 인해 심하게 흔들린 후, 그
물고기들을 살펴보니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처럼 멀미를 하였다고 한다.
열매 하나의 무게가 7kg이나 되는 소시지나무
서양의 정육점 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소시지들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시지나무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무는 모든
식물들 중 가장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나무의 하나가 될 것이다. 보통
9--12m의 높이로 성장하는 이 아프리카 산 나무는 밤에 커다란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은 쥐의 몸에서 나는 것 같은, 아주 특이한 냄새를 발산하고 있다. 이 나무의
꽃가루를 옮겨 주는 박쥐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나무를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그 꽃의 냄새보다는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나무에 열리는
열매들이다.
이 나무의 열매들은 각 가지 끝에 연결된 끈처럼 생긴 줄기에 주렁주렁 열리고
있는데 그 길게 늘어진 모습이 소시지와 너무 닮아 있다. 보통 이 열매들은
30--90cm 길이로 자라며 그 중 큰 것은 무게가 무려 7kg이나 된다. 대부분의
열매들이 하나씩 열리지만 간혹 바나나와 같이 한 뭉치로 열리기도 하는데 활짝
뻗친 가지 밑으로 소시지 같은 열매들을 매달고 있는 이 나무의 모습은 매우 기이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상한 자살
미국 센 퀀틴 형무소의 사형수 감방에 갇혀 있던, 저주받은 한 사형수가 평범한
트럼프 카드로 만든 사제 폭탄을 터뜨려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갇혀 있는 한
사형수의 두뇌에서 나온, 가장 천재적으로 '교수대를 피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폴란드 계의 무식한 벌목꾼이었던 윌리엄 코거트는 주머니칼로 한 여인을 살해한
죄로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다. 모든 희망을 잃고 감방에 앉아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눈앞에 사형대의 올가미가 어른거리고 있었고
사형대로 향하는 13개의 층계를 밟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갑자기 그의 충혈된 눈에 한 줄기 섬광이 빛났다. 그리고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였다. 침대에서 속이 빈 짧은 쇠파이프를 빼낸 후 몇
점 안 되는 자신의 소지품을 뒤져 평범한 트럼프용 카드를 꺼낸 그는, 그 카드에서
빨강 다이아몬드와 하트가 인쇄되어 있는 부분을 모두 떼어 아주 잘게 조각을
내었다. 유난히 고요한 그날 밤은 무척 길었지만 이웃 감방에 있던 8 명의 다른
죄수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는 잘게 조각이 난 빨간색의 카드 종이를 세면대에 담가 물에 적신 후 그것을
꺼내 옛날 구식 나팔총에 화약을 다져넣듯이 쇠파이프에 넣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용된 빗자루 막대기가 이 괴상한 폭탄을 만드는 데 동원된 또 하나의 도구가 된
셈이다. 그는 이 빗자루를 사용하여 종이 조각들을 파이프 안에 공기가 들어갈 틈이
없게 다져넣은 것이다.
그는 이 카드가 강한 폭발성이 있는 트리니트로(질산의 종류)에서 합성된 섬유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폭탄이 준비되었다. 그는 난방과 조명을 겸용으로 사용하는 램프를
조심스럽게 내려 불을 켠 후 그 조그마한 불꽃 위에 파이프를 올려놓았다. 잠시 후
파이프에서는 수증기와 가스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파이프가 충분히 뜨거워지자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머리를 그 살인적인 장난감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지만 형무소의 회색 벽에 먼동이
비칠 무렵 갑자기 무시무시한 폭탄이 터지면서 그 소리가 형무소 주위 몇 킬로미터
반경까지 울려 퍼졌다. 인근의 민가에서 잠을 자던 간수들이 깨어나고 감방에 있던
죄수들이 침대에서 나뒹굴어졌다.
형무소의 비상 경보가 울리자 간수들은 그 폭발음이 죄수들의 탈출 신호인 줄
알고 자신들의 근무 초소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하지만 허둥지둥 달려가던
간수들의 흥분한 듯한 발길은 흉측하게 부서진 1651 호 감방 앞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사형수 윌리엄 코거트는 교수형을 감쪽같이 피했던 것이다.
3 명의 장정을 태울 수 있는 수련의 잎
연못에 떠 있는 수련의 잎에 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한두
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정 3 명을 태울 수 있을 만큼 큰 잎을 갖고 있는
수련을 본 적이 있는지.
이 거대한 수련은 남미의 아마존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빅토리아라고 불리는
수련인데 방석과 같이 생긴 둥근 잎이 어찌나 큰지 보통 그 직경이 1.8m가 넘는다.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한 영국의 탐험가에 의하면 이 수련의 잎에 3
명의 장정이 올라타도 가라앉지 않았다고 한다.
이 거대한 빅토리아 수련의 잎은 병충을 방지하는 훌륭한 역할을 맡고 있다.
새들이 이 방석 같은 잎에 날아와 앉아 수련을 해치는 벌레들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모세처럼 홍해를 건넌 나폴레옹
"나폴레옹은 맨발로 홍해를 건넜다." 이것은 그의 저서 "성 헬레네의 회고록" 1권
2 페이지에 실린 나폴레옹의 말이다.
홍해를 건넜다는 모세와 이스라엘인들의 이야기는 종교적인 힘이 가져다준
불가사의한 기적은 아니다. 다음은 그것이 기적이 아님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첫째, '바르 에 콜줌(익사의 바다)'라고 불리는 수에즈 만 근처의 마을에서
나폴레옹은 홍해를 건넜는데 이때 홍해는 모래톱 때문에, 수심이 아주 낮았고,
1.6km 정도의 너비로 펼쳐져 있었다.
둘째, 조수의 높낮이는 1.5--2.1m였다.
셋째, 1 년 중 9개월 동안 북서쪽으로 불던 강풍이 썰물에 영향을 미쳐, 썰물의
높이는 1m 정도의 변수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보자. 위에 언급된 것처럼 바람, 조수, 모래톱,
그리고 수에즈만의 낮은 수심 등을 고래해 본다면 나폴레옹의 말은 거짓이 아님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 조건하에서는 홍해가 아니라 어떤 바다라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이블에 등장하는 많은 도시들(종교적 도시든지 아니든지
간에)도 나폴레옹의 말이 진실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참고로 다음의
책들을 권한다. 바이블 백과사전의 홍해편, 주교 찰스 세이므어 로빈슨의 저서
"이집트"의 1권 85 페이지, 그리고 다른 많은 책들에도 이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을
것이다.
썩은 고기 냄새가 나는 캐리온 플라워
캐리온(썩은 고기)이라는 말에 아주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을 가진 이 식물은
'스테필리아 그랜디 플로라'라는 원명을 가진 아프리카 산 식물이다. 그 모양은 물론
냄새까지도 썩은 고기와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어 이것을 썩은 고기로 착각한
파리들이 몰려들어 이 꽃에 알을 까기도 한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 꽃의 직경은 약 30cm인데, 그것을 펼쳐 놓으면 냄새는
물론 그 불그스레한 반점이 있는 모양까지 썩은 고기와 아주 흡사하게 닮아 있다.
깜빡 속은 파리들이 이곳에다 알을 깔 때 이 꽃의 가루가 파리의 몸에 묻어 다른
꽃으로 옮겨지게 하는 것이 이 식물의 유일한 수정 수단이다.
재미있는 금기 사항
옛날 사람들은 어떤 것들은 만지면 안 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것은
터부(금기)라고 불린다. 그것들 가운데 남자가 만지면 안되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시체, 솜과 털이 섞여 있는 것 등이 있고, 성스런 날에는 불을 만지지
말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남의 부인을 건드려서는 안되었다. 이 금기 사항의
하나라도 범하면 죽음을 의미했다.
겨우살이는 마술의 식물로 여겨져 왔다. 떡갈나무에 생긴 겨우살이를 금으로 만든
낫으로 베어 성전에다 보관하였다. 이것은 간질과 중독, 암을 낫게 해준다고
여겨졌고, 마귀를 몰아내고 여자에게 아기를 갖게 해주는 의식에 사용되었다. 특별히
이것은 낭만적인 사랑의 표시로도 사용되었다. 지금까지도 겨우살이 아래에서
로맨스가 싹트고 있다.
고대의 어떤 나라에서는 쥐를 신성하게 여겼다. 쥐를 죽이는 것은 불법이었다.
만일 쥐로 인해 들이나 집에 해가 생기면 아주 '친절한' 방법을 동원하여 쥐를
몰아냈다. 그리스에서는 쥐에게 '이 밭을 떠나 옆집의 밭으로 가주세요'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인도에서는 쥐가 논을 못쓰게 만들면 두 마리의 쥐를 잡아 하얀 천으로 치장을
시키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대접한 뒤에, 여기의 쥐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가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고대 켈트족은 5 년에 한 번씩 이상한 축제를 벌였다. 그들은 이것을 불의
축제라고 불렀다. 이 축제의 가장 중요한 행사는 살아 있는 포로들로 만든 커다란
축제용 화톳불을 사르는 것이었다. 포로들이 불에 타죽을 때까지 사람들은 화톳불
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축제가 끝나면 포로들이 타버린 자리에서
나온 뼈와 재를 비료로 썼다.
그리스 사람들은 누가 죽으면 매장을 하기 전에 시체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었다.
그 동전은 죽은 자가 지하 세계에 있는 신비의 강 '스틱스'를 건너갈 때 치러야 할
비용으로 쓰이게 된다.
로마 사람들은 매 끼니 때마다 식사가 끝나면 벽난로에다 케이크를 던졌다. 불의
여신인 베스타에게 저녁을 공양하기 위해서이다.
고대 줄루족은 적과 싸울 때 두려움 없이 적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믿음으로 죽임을 당한 적의 눈알과 눈썹을 먹었다.
고대 멕시코에서는 '신을 먹는다'고 불리는 이상한 의식을 치렀다. 그들이 섬기는
신의 모양으로 만든 커다란 케이크를 서로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 가장 이상하고도
가장 역하게 만드는 이야기는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 케이크를 옥수수
가루로 만드는데 그 속에 어린애의 피를 섞어서 반죽하는 것이다.
초기 로마 사람들은 전갈에 물린 사람을 살려내는 신기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전갈에 물린 사람의 얼굴을 당나귀 꼬리 쪽으로 오게 했다. 고대 의사들의 기록에
의하면 이렇게 하면 전갈의 독이 사람으로부터 당나귀에게로 옮겨간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이 열병을 얻으면 의사는 환자의 손톱을 짧게 깎아 내어 동이 트기
전에 이웃집 문에다 붙여놓았다. 그러면 열병은 옆집 사람에게로 옮겨간다고
믿었다.
담배 종이 속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아래의 다이어그램들 중 위의 것은 본래 종이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을 그
아래에 보이는 것처럼 선을 그린 후 그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자르고, 종이를
사방으로 잡아당기면 누구라도 담배 종이 속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종이 폭은
넓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때 종이가 잘려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주
간단하지 않은가!
(묵자책 34쪽 참조)
뒤로도 날 수 있는 벌새
벌새들은 다른 새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날 수 있다. 우리는 관념상 모든
새들은 비행기처럼 앞쪽으로 완만한 고저를 보이며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벌새들은 헬리콥터처럼 난다. 즉 벌새들은 자유자재로 급상하고 급하할 수 있으며,
떨어지지 않고 한곳을 선회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벌새는 뒤로도 날 수 있는 유일한
새이다.
왜소하지만 밝은 색깔을 띤 벌새들은, 보통 새들과 달리 이름 탓에 노랫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이다. 그러나 날아다닐 때, 벌새는 하도 빨리 날개짓하기 때문에
이때는 허밍 음처럼 들린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빨라서 날개짓하는 모습도
어슴푸레하게만 보인다고 한다.
벌 허밍 새라고도 알려져 있는 벌새과에 속하는 한 종류의 새는 세계에서 가장
왜소한 새이다. 머리에서 꼬리 끝까지 총 5cm 길이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게는 3g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누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썼을까?
셰익스피어가 썼다고 일컬어지는 희곡들이 정말 셰익스피어에 의해 씌어졌는지
아니면 베이컨에 의해 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학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거리가 되었다.
베이컨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교육을 받지 못한 백정 소년이었고
무식한 동네에서 살았으며 오늘날 그의 작품이라고 알려진 희곡들을 창조해내는데
필수적인 광대한 지식을 접할 기회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셰익스피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첫째로 셰익스피어가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둘째,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들도 천재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경우가 문학계에서 종종 있어 왔다고 반박한다.
더 나아가 그들은, 베이컨이라면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할 실수들을 셰익스피어는
계속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는 시인이고 베이컨은 학자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교육보다는 상상력이 월등히 풍부했던 셰익스피어였기 때문에
내륙지방인 보헤미아에 해변을 설치하고, 헥토보다 700 년이나 후대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헥토가 인용하기도 하고, 로마의 휴일을 의미하는 루퍼
칼리아를 로마의 언덕이라 부르고 있다.
덧붙여 셰익스피어 지지자들은, 시인으로서의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베이컨이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못박았다. 베이컨이 철학가로서는 훌륭한 자질이 있으나
시인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세한 것을 너무 따지는 사람은 크나큰
환상의 날개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 두 반대파들의 주장에 대해 가장 훌륭하게 답변한 사람은 아마도 마크
트웨인일 것이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셰익스피어에 의해 씌어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에 의해 씌어진 것이 분명할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자루와 같은 둥지를 짓는 아프리카 산 박새
펜듈라인 틸마우스라는, 덩치에 비해서 제법 긴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조그마한
아프리카 산 박새는 다른 새들보다 특이하게 생긴 둥지를 만든다.
수컷이 둥지를 짓는 작업을 맡게 되는데 정교하게 엮어져 나무에 매달린 이
둥지는 마치 입구가 접혀진 자루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접혀진 입구에는
공간이 있어 이곳을 통하여 새들이 드나들고 있다.
머리 가죽에 쓴 편지
옛날 어떤 왕에게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동맹국에 중요한 서신을
전달해야만 했었는데, 편지를 믿고 맡길 만한 병사나 노예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노예 한 명을 불러다 삭발을 시키고 그의 머리 가죽 위에다 편지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머리털이 다 자라길 기다렸다가 그 노예에게 어명을 내려
심부름을 보냈다.
그 노예는 안전하게 왕의 동맹국 궁전에 다다라 "시아낙시스 왕께서 내
머리털을 잘라내라고 말하였습니다"라고 전하였다.
동맹국 왕이 시아낙시스 왕의 말대로 삭발을 시킨 다음, 노예의 머리 가죽
위에 씌인 편지를 읽는 동안, 그 노예는 강대한 두 나라의 왕을 연결하는
중대한 역할을 자신이 해냈다는 생각에 기뻐서 당당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쁨과 긍지는 얼마 가지 못했다. 편지의 끝에는 그 노예가
생각지도 못했던 결언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뒤에 편지가 씌어 있는 이 머리를 잘라버리시오."
자신의 피부 속에 메시지를 숨겨온 스파이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는데, 미 육군 하사관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를 자신의 피부 속에 숨겨오지 않았더라면,
스페인의 승리로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피부 속에 숨겨온 메시지! 얼마나 아팠을까!
이 극적인 사건의 주인공은 토마스 P. 레드웨즈 하사였는데 그는 스페인-미국
전쟁 전에도 쿠바의 반란군과 싸웠던 용사였다. 그는 스페인의 포로가 되어 사형을
선고 받은 상태에서 쿠바 주제 영국 영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쿠바의 민간인들은 스페인의 요새를 나타낸 특수한 지도를 미국 육군에게
전해주고 싶어했었다(이때가 스페인과 미국 전쟁이 일어나기 1 년 전이었다). 이때
그들은 레드웨즈 하사에게 그 지도를 미국으로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는데, 그는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 지도를 미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였다.
그러나 그 문제는 예상외로 손쉽게 풀렸다. 아주 섬세한 실크 위에 그려진 2개의
지도는 다시 2개로 이등분되어 은으로 된 관 안에 들어 있었다. 레드웨즈 하사는
자신의 팔을 절개하고 그 안에 관들을 넣었다. 그리고 꿰맨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기를 기다렸다. 그리하여 현명하게 스페인 군인들의 눈을 피해 미국에 도착했고
결국, 그 당시 미 해군의 부참모총장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건네주었다.
그 지도를 손에 쥔 미국은 승산이 거의 없었던 가장 중요한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놀라면 기절하는 오파솜
대부분의 동물들은 적의 위협을 받게 되면 맞서 싸우거나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치지만 이 북미산 쥐 종류의 하나인 오파솜은 전혀 엉뚱한 동작을 취한다. 기절하여
죽은 시늉을 내는 것이다.
기절하여 쓰러져 있는 오파솜의 몸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한다.
어리둥절해진 상대방이 그 몸을 물어도 보고 뒤집어도 보지만 오파솜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은 동물을 먹이로 삼지 않는 습성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맹수들은 이렇게 싱거운 상대방의 몸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먹이를 찾아
떠난다. 그 후에도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던 오파솜은 20분 정도 경과되면 한쪽
눈을 먼저 떠 주위의 안전을 살핀 후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그 자리를 떠난다.
물론 이러한 오파솜의 '수치스러운 행각'이 항상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한번 기절하였던 오파솜이 그 잠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오파솜이 멸종되지나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번식력이 엄청난 이 오파솜은 포유동물 중 가장 많은 머릿수를 차지하고 있다.
오파솜은 보통 18 마리의 새끼를 1 년에 세 번씩 낳고 있다.
먹이를 씻어먹는 너구리
이 너구리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동물이다. 까만 마스크를 쓴 것같이 보이는 이
동물은 과일, 야채, 곡식, 꿀, 알, 전복, 개구리, 쥐를 비롯하여 깨끗하기만 하면 거의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잡식 동물이다.
너구리는 먹이를 구하면 반드시 가까운 물을 찾아가 그 먹이를 씻는다. 마치
더러운 것을 먹기보다는 차라리 굶겠다는 태도이다. 먹이를 씻을 물이 없을 때에는
입에 물고 흔들어 씻는 시늉이라도 하고 나서야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깨끗한 것을 찾는 이 너구리의 습성은 병적일 만큼 심각하다. 물가에서 쉴 때는
물가의 돌을 발로 문질러 깨끗이 씻은 다음 햇볕에 바짝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위에 몸을 눕힌다.
아기들을 위한 맥주
1 핀트(0.56리터 정도)의 맥주에는 약 200cal의 열량이 들어 있다. 이것은 283g의
우유, 142g의 소고기 살코기, 3개의 달걀 안에 들어 있는 칼로리의 양과 같다.
맥주에는 열량을 증가시키는 것과 인간의 몸을 회복시켜 주는 두 가지 요소가
들어 있다.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이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우유를
모조리 가져가 버렸을 때 프랑스의 아기들은 알코올 함량이 낮은 맥주를 섭취하면서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솝은 "이솝 우화"를 쓰지 않았다.
"이솝 우화"는 이솝이 죽은 지 몇 백 년 후, 바브리우스라고 하는 이탈리아
사람에 의해 씌어졌다. 그러니 '바브리우스의 우화'라고 명명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유명한 프리지아 사람인 우화 작가 이솝은 실제 생존했던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그가 편집했다고 알려진 우화들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이니까, 사실 현재 그의 작품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이솝의 명성은 이미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동물의 그림을 이용하여 도덕적인
주제를 다룬 이야기들은 심지어 '이솝풍'이라고 말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에는
소크라테스와 그 이후 세대 작가들의 공헌이 컸다. 그들은 바브리우스의 창작
우화에, 이솝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 즉 불멸의 현인 이솝의 이름을
수여하면서 동시에 바브리우스의 지혜를 바꾼 것이다.
성이 나면 침을 뱉는 라마
사람들이 부려먹는 동물 중에서도 라마는 짐을 지고 아주 높은 곳에까지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기후가 몹시 춥고 산소가 희박한 남미 대륙의 안데스 산악
지방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이 '털 많은 낙타'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이 라마에서 의복과 담요의 원료가 되는 털을 취하고
아이들에게 먹일 젖을 짜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 주민들의 유일한 연료는
라마의 똥을 말린 것이며 죽은 라마의 가죽 또한 유용하게 쓰여지고 있다.
하지만 라마는 말과 같이 혹사를 당해도 가만히 참아내는 동물이 아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짐의 무게를 너무 잘 알고 있어 조금이라도 무겁다고 생각되면 즉시
몸을 흔들어 등에 실린 짐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그 짐은 지고 가는 거리조차
스스로 제한하여 한 32km 정도 걸은 다음에는 털썩 주저앉아 농성을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라마는 고집 또한 대단해서 일하기를 거부하는 라마를 부려먹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라마의 습성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일하기를 거부하는 라마를 강제로
부리려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 그 사람은 아주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라마는 성이 나면 상대방의 얼굴에 입을 오므려 침을 뱉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푸른색이 도는 침을 내뱉는 라마의 솜씨는 아주 정확하여 절대로
목표물에서 빗나가는 법이 없다.
알파벳의 모노그램
아래의 다이어그램을 보면 그 안에서 모든 알파벳과 숫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묵자책 49쪽 참조)
가장 큰 풀과 식물 대나무
10층 건물 높이로 자라는 풀을 생각해보시라! 흔히 낚싯대로 사용되는 이
대나무는 집 앞뜰에 자라고 있는 풀과 같은 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어떤 종류의
대나무는 10층 건물의 높이로 자라기도 한다. 이 대나무의 성장 속도는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다. 물로카라는 대나무 종류를 예로 들면 24시간 이내에
60cm가 자라는 엄청난 성장 속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줄기의 성장 속도에 비하여
꽃을 맺는 시기는 한없이 느려 어떤 종류의 대나무는 20 년이 넘게 성숙한 후에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대나무가 쓰여지는 용도는 낚싯대 이외에도 무척 다양하다. 이 대나무는 우리에게
종이와 연료를 제공해주는 것을 비롯하여 건축 자재나 가구, 가정 용구, 수도
파이프, 배의 돛대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용도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죽순절임의 오묘한 동양의 진미도 이 대나무가 제공하고 있다.
기이한 문장
다음의 문장에서 적당한 곳에 구두점을 찍을 수 있습니까?
That that is is that that is not is not but that that is not that that is nor
is that that is that that is not.
다음은 답입니다.
That, that is, is; that, that is not, is not; but that, that is not, is not that
that is; nor is that. that is, that that is not.
다음의 문장에서 적당한 곳에 구두점을 찍을 수 있습니까?
The king and and and and Queen?
손바닥에 올려놓을 수 있는 쥐사슴
만일 독자가 말라야 정글에서 이 쥐사슴을 보게 된다면 아마 독자는 난쟁이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이다. 이 쥐사슴은 완전히 성숙되어도 30cm
정도로 작다는 것만 틀릴 뿐 숲속을 뛰어다니는 보통 사슴의 모든 부분을 옮겨놓은
완전한 사슴의 축소판이다.
이 축소판 사슴은 기가 막히게 아담하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다리는 너무
날씬해 마치 유리로 만든 막대기처럼 금방 부러질 것 같고 쥐보다도 작은 머리를
갖고 있다. 아마도 쥐와 같이 놓고 보면 쥐가 거칠어만 보일 뿐 몸집은 서로 비슷한
크기일 것이다. 그러나 정글에 사는, 같은 크기의 몸집을 갖고 있는 동물 중에서 이
쥐사슴의 뛰는 스피드는 추종을 불허한다. 팔딱거리며 뛰는 모습은 마치 고무공이
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미신
프랑스 사람들은 이름 전체의 문자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모노그램(합일문자)은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루이 16세의 여왕은 이런 미신을 믿지
않았는데, 결국 그녀는 후에 교수형을 당하는 불운을 맞게 된다.
요한복음 18장 38절의 신비
빌라도가 그에게 가로되, "Quid est veritas?(진리가 무엇이냐?)"
이 구절의 철자를 다시 풀어쓰면, "Est vir qui adest", 즉 당신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3'과 인연이 있는 비스마르크와 토머스 제퍼슨
'3'개의 학교를 거친 비스마르크는 '3'개국의 대사직을 역임하였고 '3'명의 왕을
모시는 동안 '3'번의 전쟁을 치렀으며 그의 밑에서 '3'마리의 말이 죽었고, 평화
조약에 서명한 것이 '3'번이 되며 '3'개국 동맹군을 결성하였고 '3'개의
이름(비스마르크, 스콘하우젠, 라우엔버그)과 '3'개의 호칭(백작, 공작, 왕자)을 갖고
있었으며 '3'번의 암살 위기를 넘겼고 사임을 '3'번 했으며 '3'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리고 그의 코트 소매에는 '3'개의 상수리 잎에 둘러싸인 '3'잎의 클로버가
수놓아져 있다.
미합중국의 '3'번째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그의 형제 중 '3'번째로
태어났으며, 그의 가문의 '3'번째 토머스였다. '3'개의 학교를 다녔던 그는 '33'세에
독립선언문을 작성하였으며 미합중국의 '3'번째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3'번째
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3'년을 근무하였다.
워싱턴 내각의 '3'번째 회원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미철학협의회의 '3'번째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토머스 제퍼슨이 싫어하는 것에 '3'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맹목적인 충성과 고상한 것과 열광적인 맹신이었고, 그가 일생 동안
사랑하던 '3'가지 예술은 건축과 미술과 음악이었다.
그는 후손들이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3'가지 업적을 자신의 비문에 넣어주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독립선언문'과 '버지니아 주의 모습',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이었으며 그가 대서양 헌장에서 강조한 것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라는
'3'가지의 이상이었다.
전투 물고기
지구상에 존재하는 용감한 동물들 중 몇몇은 고작 8--10cm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전투 물고기인데 그들은 대부분 싸우다가 죽는다고 한다. 이런 전투
물고기들의 싸움은 샴(태국)에서 오랫동안 가장 인기 있는 구경거리 중의 하나였다.
보통 수컷만이 전투를 하는데 수컷은 굉장히 난폭한 성질을 지니고 있어 두 놈이
똑같은 어항에 들어가 있으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결국 그 중 한 마리 혹은
가끔씩 두 마리가 다 죽기도 한다. 태국인들은 이 물고기의 싸움을 우리가 마치
권투 결승전을 보는 것처럼 열광적으로 지켜본다고 한다.
한 표의 위력
1800 년, 미국 대통령을 뽑는 하원 의원 선거에서 토머스 제퍼슨은 테네시의
클레아본 의원이 던진 한 표로 아론 버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1824 년 잭슨과 존 퀸시 아담스의 대통령직 경합은 한 표의 차이도 나지 않아
교착상태를 이루다가 스티븐 펜실라 장군의 한 표로 아담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 표 차이로 워싱턴, 오리건, 아이다호가 미국의 주로 병합되었다. 1843 년 5월
2일의 투표에 참가하였던 의원들의 의견은 51 대 51로 양분되었으나 마침내
마티유가 찬성표로 기울어 결국 50 대 52로 이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텍사스는 에드워드 헤네가 상원 의원이 던진 한 표로 미국의 주가 되었다. 이
당시 상원 의원들은 26 대 26으로 팽팽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던 중 헤네가 상원
의원이 마음을 돌려 찬성의 한 표를 던짐으로써 텍사스가 미국의 주로 합방되는
안건을 25 대 27로 통과시켰다.
루서포드 헤이스는 대통령 선거인단 투표에서 185 표를 얻어 184 표를 얻은
사무엘 틸덴을 한 표 차이로 눌러 승리하게 되었다.
1941 년 8월 12일, 징병 제도법의 연장안을 다루고 있던 미국 의회에서는 한 표
차이로 이 법안의 연장을 승인하게 되어, 결국 이 법안이 18개월 동안 연장되었는데
법안의 연장이 통과된 지 4개월 후에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었다.
1645 년 6월 10일, 영국 의회에서는 91 대 90이라는 한 표 차이로 크롬웰 장군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영국의 찰스 1세는 135 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의원회의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 중 68 명의 재판관들이 찰스 1세의 처형에 동의하였다. 한 표가 왕의 목숨을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영국의 왕권이 하누오버 왕가로 넘어가게 된 계기를 만든 '영국 주거 칙령'은
1701 년 5월 14일, 96 대 95의 한 표 차이로 통과된 법령이었다. 이 마지막 한
표는 웨일즈의 아더 오웬 경이 던진 것인데 이 한 표로 조지 1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1875 년에, 706 명의 대표들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탄생될 수 있었다. 그 당시 프랑스의 국가 형태를 놓고 다투던 이 의회에는 공화당
대표와 왕정당 대표의 수가 353 대 353으로 같은 수였으나 왕정단 의원 한 명이
배앓이로 불참하게 되자 결국 353 대 352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된
프랑스 제3공화국은 1940 년 6월, 그 전성기의 막을 내리게 되는데 그것은 공화당
의원 카밀레 샤템프스가 스스로 공화당에 반기를 들어 13 대 11로 공화당이
패배하였기 때문이다.
신비한 낙타
등에 혹이 하나 있는 단봉 낙타는 사막 지대의 기후와 환경에 적응하기에 매우
훌륭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간혹 '사막의 배'라고도 불린다. 어떠한
동물일지라도 사막의 열기와 갈증에는 몇 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지만, 이
성숙한 낙타는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않고 320km나 되는 사막길을 거뜬히 횡단할
수 있다.
낙타는 토끼의 입, 쥐의 위장, 코끼리의 발, 새의 피, 파충류의 체온, 그리고
백조의 목을 가지고 있으며 담낭이 전혀 없고 눈을 감고도 볼 수 있으며, 닫을 수
있는 콧구멍을 가지고 있다.
사막 기후를 견딜 수 있는 낙타의 이러한 신체 능력은 주로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는 위에서 비롯된다. 즉 이 단봉 낙타의 위장은 소 종류의 동물과 같이 위장이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위장의 벽은 수백만 개의 미세한 저장 세포로 되어
있어 몇 주일 동안 견딜 수 있는 물을 이곳에 저장해두고 있는 것이다.
맹물은 낙타에게 소위 혼도병을 유발시키며 낙타가 맹물을 마시게 되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게 된다. 낙타는 소금기가 있는 물을 좋아한다. 낙타의 속눈썹은 태양의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낙타는 물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랫동안 견딜 수 있는데,
이것은 낙타의 등에 있는 혹 내부의 지방층 때문이다. 혹에 저장되어 있는 지방질이
비상시에 영양 공급원으로 변하는 것이다. 잘먹은 낙타의 혹이 잘먹지 못한 낙타의
혹보다 크게 자라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낙타에서 유래된 영어의 알파벳이 2개 있다. 그것은 'C'와 'G'로서 이 글자들은
낙타의 등에 있는 혹을 묘사한 것이다. 낙타는 낙타의 시체를 보면 죽는다.
그리고 낙타의 걸음걸이가 버터를 탄생시켰다. 어떤 유목민이 소젖 한 자루를
낙타에 싣고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유난히 느린 낙타의 걸음걸이 때문에 낙타 등에
있던 소젖은 장시간 뜨거운 햇볕을 받아 버터로 변했던 것이다. 이 걸어다니는 식량
창고는 사막에서 살기에 적당한 재주를 또 하나 갖고 있다. 아주 뛰어난 후각
기능이 바로 그것인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물 냄새도 맡아낼 수 있는 낙타의
후각 기능 덕택에 수많은 낙타상들이 목숨을 건지고 있다.
일생 동안 낙타의 생태를 연구한 동물학자들은 이 동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낙타는 신비한 동물이다.
농담이 아닌 이야기
모든 큰 뱀들은 꼬리에 가까운 부분 밑에 퇴화된 다리를 갖고 있으며 그 다리와
등뼈가 연결된 부분이 바로 엉덩이다. 이것은 우스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절대로 농담이 아닌 심각한 사실이다.
모든 큰 뱀들은 엉덩이를 갖고 있다. 다리(퇴화된)가 있는 뱀들의 거의 전부가
골반대를 갖고 있으며 그 골반대와 다리가 연결된 부분이 바로 엉덩이가 되는
것이다.
뱀들이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도 조류학적으로 분류하면 이 뱀들은
땅 위에 사는 척추동물보다는 하늘을 나는 새 종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마도라는 물고기의 이름은 마치 'MADO'라는
글자처럼 보이는 그 물고기의 무늬에서 유래되었다.
서전트(상사)라는 물고기는 그 이름과 같이 몸집이 크고 뼈가 많으며 입이 크고
식욕이 왕성하다. 그리고 몸에는 해병대의 계급장과 같은 줄무늬가 있다.
냉각 기능을 가지고 있는 새
텍사스 산의 쏙독새류 밤새는 선천적으로 냉각 기능을 신체 내에 가지고
태어난다. 밤새는 목구멍 안에 위치하고 있는 이 냉각 작용으로 사막에서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수 있고 이글거리는 태양으로부터 알을 보호해줄 수도 있다.
6월에 사막의 기온이 100 도 이상으로 올라갈 때, 밤새의 암컷들은 알을 품기
시작한다. 그러나 태양열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암컷은 알을 그냥 놔두고
어디론가 갈 수 없다. 그러나 너무 더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단지
입을 열어 냉각 기능을 작동시켜 자신의 체온을 내려놓는다. 밤새들의 냉각 기능은
우리 인간들이 고안해놓은 에어컨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아무리 사막의 온도가 높다고 할지라도 밤새들은 그들의 둥지를 떠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밤이 되면 밤새들은 먹이를 찾으러 어디론가 날아가서 충분히
물을 섭취하곤 한다.
가장 짧은 내용을 담은 편지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가장 짧은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는 빅토르 위고가 쓰고
받은 편지이다.
왼쪽 편지는 "레 미제라블"에 관해 출판인에게 질문하는 편지이고 오른쪽은 그에
대한 답장이다.
(묵자책 64쪽 참조)
(왼쪽 편지는 ?표이고 오른쪽 편지는 !표이다--주:교정자)
전쟁을 301 년 동안이나 일어나게 했던 구레나룻
역사적으로 유명한 비운의 구레나룻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는 바로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이다. 그는 귀엔느와 프와투 두 지방을 마지막으로 다스렸던 공작의 딸
엘레나와 결혼했다. 그때 엘레나는 이 두 곳을 신부의 지참금으로 가지고 왔었다.
한편,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루이 7세는 이제 그의 구레나룻을 말끔히
면도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 왕이 진짜로 구레나룻을 없애자 왕비인 엘레나는 더
이상 왕을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이혼을 요구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왕과
이혼을 하고 영국의 헨리 2세와 재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두 지방의 소유권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응답으로 루이 7세는 헨리에게 선전
포고를 했고, 이때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났던 전쟁(1152--1453)은, 301 년 후
로엔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미친 대제 이야기
역사에 '미친 대제'로 알려진 러시아의 표트르 1세는 괴팍한 성격에 감정을
절제할 줄 모르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변덕이 심한 사람이었다.
1799 년 어느 날 아침 그는 호위병들을 점검하다가 갑자기 한 병사의 목단추를
보고 기분이 상하게 되자 곧 대제의 얼굴은 분노로 납빛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명령했다.
"얼굴을 들고, 앞으로 전진!"
"친애하는 대제시여! 어디로 말입니까?"
"시베리아로!"
소수 정예 부대의 400 명의 군사들은 한마디 불평도 못하고 길도 닦여 있지 않은
황폐한 북부 러시아 땅을 가로질러 시베리아를 향해 3,200km나 되는 행진을
시작했다.
식량도 없이 먹을 것을 구할 곳도 없는 데로 필요한 옷도 가지지 않고 그들은
그렇게 떠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유리뱀
유리뱀은 유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뿐더러 더욱이 뱀도 아니다. 그런데
유리뱀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조금만 건드려도 금세 부서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뱀은 도마뱀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큰 뱀처럼 보이기 때문에 유리뱀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눈꺼풀이 있고 단단한 턱뼈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뿐이다.
한편, 유리뱀의 몸뚱이 전체를 잡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적의
공격을 알아차리면 유리뱀은 대단한 힘으로 꼬리 근육을 수축시키는데 이때
몸뚱이가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약간만 스치게 되더라도
유리뱀의 몸은 종종 부서지게 된다.
유리뱀은 북부 아메리카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길(fathom)의 로맨스
'길'은 수심을 재는 데 쓰이는 단위(약 1m 83 cm)이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길은 에워쌈(고대 앵그로-색슨 말인 faetm에 어원을 둔다면)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국 국회의 법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둘러싼 연인의
팔 길이"로 길을 규정하고 있다.
아인슈타인도 수학 시험에 낙제한 적이 있었다.
근대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상대성 이론의 개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취리히의 연방 정부 공과대학의 입학 시험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16세였다.
그래서 뉴턴과 코페르니쿠스에 상당하는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아인슈타인도 소위
'벼락 공부'라는 것을 해야만 했다. 입학하려면 2차 시험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무를 올라다니는 개구리
이 말레이지아 산 개구리는 서식지인 물을 떠나 나무 위를 올라 다니는데 익숙한
동물 곡예사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페리오프탈무스 슐로세리'로 알려져 있다. 물이
빠졌을 때, 이 개구리는 재빠르게 진흙 속을 꿈틀거리며 헤엄쳐 나가서 곤충들을
잡아 물고, 나무 위로 기어올라가곤 한다.
이 개구리는 두 개의 단단한 다리 같은 지느러미를 이용해 나무 위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인데, 때때로 큰 눈을 부라리며 나무 위에서 지나가는 여행객들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재미있는 숫자 이야기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의 원장 J. R. 웰치는 1897 년 1월 18일자로 조지 존스가
곡물과 사료 딜러인 헨리 B. 스튜어트 앞으로 발행한 100 달러 짜리 수표의 시가를
결정하는 데 있어 현재의 가치보다 더 많은 금액을 언도했다(조지와 헨리는 모두
캘리포니아 주의 산 호세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언도된 금액은
304,840,332,912,685 달러 16센트였는데, 이는 원금 100 달러와 매달 10 퍼센트의
이자율을 합한 값이었다.
1을 9로 나누면, 끝자리가 .1111인 순환 소수를 얻게 된다.
2를 9로 나누면, 끝자리가 .2222인 순환 소수를 얻게 된다.
3을 9로 나누면, 끝자리가 .3333인 순환 소수를 얻게 된다.
4를 9로 나누면, 끝자리가 .4444인 순환 소수를 얻게 된다.
5를 9로 나누면, 끝자리가 .5555인 순환 소수를 얻게 된다.
세 자리의 숫자를 만든 후 좌우의 숫자를 거꾸로 하여, 큰 세 자리의 숫자에서
작은 세 자리의 숫자를 뺀다. 그렇게 해서 얻은 숫자에 다시 그 숫자를 거꾸로 하여
덧셈을 한다. 그렇게 하여 얻어진 숫자는 언제나 9의 배수이고 각 자릿수들을 모두
더하면, 총합 역시 9의 배수가 될 것이다.
피 묻은 제단
멕시코를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멕시코 국립 박물관의 안뜰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는 2m 정도의 타원 모양을 한 조각된 돌이 놓여져 있을 것이다.
그 돌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양의 피가 묻어 있다. 왜냐하면, 희생양이 된
아즈텍 사람들의 숨결이 그 돌에 스며 있기 때문이다. 그 돌 위에는 목숨을 잃은
수백만 명이 흘린 피가 맺혀 있다. 본래 타민족들과 비교해볼 때, 고대 아즈텍
인들은 온화한 성품을 지녔고 평화를 사랑했을 뿐더러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자비로운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신을 제물로 삼는 것을
성스러운 행위라고 믿고 있었다.
왕의 즉위식, 혹은 성전의 완공식 등 나라에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은 대량으로 학살당했다. 콜럼버스가 그곳을 발견하기 6 년 전 워코드
신전이 헌당되었을 때, 이 의식을 치르기 위해 몇 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모든 죄수들이 바깥에 나와 일렬로 줄을 섰는데 자그마치 그 길이가 3.2km나
되었다고 한다.
곧 죄수들의 행렬은 천천히 앞으로 움직여 갔고, 알몸이 된 죄수들이 돌 위에서
심장이 도려내질 때 지르는 비명 소리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려 퍼졌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대량 학살의 의식을 거행하는 데는 꼬박 4일이 걸렸다고 한다.
스페인의 의원들은 아즈텍의 거대한 감실인 테오칼리 근처의 신전 안에서 마야
문명의 신이었던 몰렉을 위해 희생양이 되었던 136,000 명의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한다.
옛날이야기
5개의 문자 블록들이 가지고 있는 문자의 총수는 30이다. 이 30개의 문자를
가지고 자릿수를 바꾸어 변형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경우의 수는
620,448,401,735,259,439,369,000이다. 한편 1초에 한 문자의 자릿수를 바꾼다고
가정할 때, 한 사람이 그 모든 경우의 수로, 가능한 문자 배열을 만드는 데는
1,967,428,975,879,120 년이 걸린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도와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해도 1,000,000 년이 걸릴 것이다.
숫자들을 곱절로 늘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옛날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만일 주인이 한 달 동안 매일매일의 일당을 전날의 두 배로 계산해서 준다면, 첫날
1센트부터 일할 수 있다고 말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소년은 그렇게 된다면 일당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이에 주인도 별생각 없이 그 소년의 제안을 수락했었다. 그러나 그
소년이 일한 지 한 달이 되는 날, 그 하루 동안의 일당은 5,368,709 달러 12센트가
되며, 한 달 동안 일한 월급은 총 10,737,418 달러 23센트가 된다는 것을 안 주인은
기절했다고 한다.
새보다 목뼈의 수가 적은 기린
기린의 앞발이 뒷발보다 길다는 고정 관념은 착시 현상에서 비롯된 그릇된
생각이다. 이 동물의 등과 목은 거의 45 도로 비스듬히 경사져 있기 때문에 이런
착각이 생긴 것이다.
기린은 여러 면으로 기이한 동물이다. 긴 목을 가지고 있는데도 다리가 너무
길어서 몸을 구부려 물을 마실 수가 없다. 그래서 앞다리를 멀리 뻗고 몸을
구부려야 물에 닿을 수가 있다고 한다.
기린의 목은 다른 어떤 생명체들보다 적은 수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어,
영국산 참새는 14개의 뼈를, 오리는 16개, 그리고 박쥐의 몸은 23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기린의 목은 단 7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워싱턴은 미국의 수도가 아니다.
미국의 법적 수도이자 미국 정부의 중심지는 콜롬비아 특별구이다. 헌법 8절 1
항에는 콜롬비아 특별구의 위치와 함께 의회의 승인 아래 콜롬비아 특별구가 미국
정부의 영원한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양도법, 국회법(1790 년 7월 16일), 특허권에 관한
서문, 1791 년 5월 30일에 제정된 개정 법률안 등에는 콜롬비아 특별구를 분명히
미국 정부의 영원한 중심지로 명시해놓고 있다. 그리고 아담스 대통령은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행한 연설에서 콜롬비아 특별구를 미국의 수도로 언급했다. 이에
응답이라도 하듯 미국 의회에서도 콜롬비아 특별구가 법적으로 미국의 수도임을
되풀이하여 강조했다.
그러나 의회는 미국의 수도와 관련된 법조항을 한번도 부정하거나 개정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의회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미국의 법적 수도는 워싱턴이
아닌 콜롬비아 특별구인 것이다.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준 위대한 청소부
프랑스의 귀족 정치가인 샤를 드 라 부쉬에르는 프랑스 혁명 동안 단두대에서
사라져 갔을 34,000 명의 프랑스 인들의 목숨을 구해준 인물이다.
그는 노동자로 가장하여 혁명 재판소가 있는 건물의 청소부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는 낮에 건물 구석구석을 청소했지만, 밤에는 재판소 안으로 몰래 들어가
사형 대상자들이 수록되어 있는 장부를 훔쳐냈다. 그리고 일부는 물에 담가 잉크가
번지게 해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와서 태워버렸다.
그 결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갈 수천 명의 프랑스인들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수천 명의 프랑스인들은 재판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
중에는 후에 프랑스의 황후가 된 제핀느와 세계에 널리 알려진 영웅의 부인인
라파^36^예트도 있었다.
하루는 48시간이다.
우리는 하루를 24시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지구상에서의 하루는 48시간이다.
예를 들어보자, 월요일은 한 변경선(자오선 180 도)인 지점에서는 일요일의
자정이 지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한 시간 후에 월요일은 한 변경선의 서경 15 도
지점에서 일요일을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두 시간 이후에는 월요일은 서경 30 도
지점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2시간 후에는 자오선 0 도의 그리니치에서
월요일이 출발하게 된다.
또 오후 6시에는 서경 90 도에서 월요일이 시작됨에 따라 월요일은 이때쯤이면
지구의 4분의 3을 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5시간 후인 오후 11시에는 또다시
자오선의 165 도의 중부 태평양에서 출발하게 된다. 다시 말해, 오후 11시에
월요일은 한 변경선의 동경 15 도인 지점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는 자오선 180 도인 지점에서 다음날인 화요일이 시작된다.
그러나 동경 15 도 지점에 있는 월요일은 동시에 25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즉
화요일이 자오선의 동쪽에서 출발한 것처럼 월요일도 자오선의 동쪽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하루가 서부 알래스카까지 도착하는 데는 24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곳
알래스카에서 출발하면서 하루는 또 다른 24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48시간이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 가장 낭만적인 단어를 탄생시킨 저택
모든 사랑하는 이들이 즐겨 쓰는 단어인 '스위트 하트'는 스코틀랜드 둠프리스에
소재한 스위트 하트 저택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저택은 1269 년에 사망한
버나드 성의 존 바리올의 부인인 데보르길라 부인에 의해 지어졌다. 남편이 죽은 후,
미망인 데보르길라 여사는 남편의 심장을 간직하고 있었다. 썩지 않게 만들어
상아로 된 작은 상자에 남편의 심장을 담아 간직하다가 자신의 무덤에 함께 묻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늘상 남편의 심장이 든 상자를 그녀만의 "스위트 하트이자
동반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죽기 직전 그녀는 가슴 위에 상자를 놓게 했는데, 이는 두 영혼을 영원히
함께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자신의 무덤 바로 옆에 '둘체 코르'라고 명명된
대저택을 짓게 하였는데 바로 이 저택의 이름이 후에 영어화되어 '스위트 하트'로
전래된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한 위대한 바닷물고기
쾌속 범선 쿠루사이더에서 선원들과 214 명의 승객들이 항해 중에 겪은 경험담은
이제까지의 어떤 이야기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1874 년 영국에서 뉴질랜드를 향해 떠난 이민선 쿠루사이더가 비스케이 만에서
출항한 지 닷새째 되는 날, 배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배에
펌프를 설치하고 펌프질을 했다. 그러나 힘차게 펌프질을 하면 할수록 바닷물은
점점 더 밀려들어 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펌프가 두 대나 파손되었다.
선창 안에 급속도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자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때 선장은 모든 승객들을 구명보트로 이동시킬 준비를 해야만 했기에
갑판 위에 있는 선원 모두에게 이를 명령했다. 그때 갑자기 선실에서 펌프질하고
있던 선원들 입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더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두 배로 더 힘차게 펌프질을 하여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남은 기간 동안의 항해는 훨씬 순조로운 편이었다. 드디어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 삭구를 늦추기 위하여 선장이 칼메르 둑에 선박을 정박시켰을 때,
선원들과 승객들은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바닷물고기의
꼬리가 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대한
물고기의 꼬리가 선박의 밑바닥에 있던 구멍 안에 꽉 끼여 있었는데 세찬 바다
물결에 휩쓸려와서 그렇게 막았던 것이다.
그 후 이번 항해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존'을
기념하고자 '쿠루사이더 승객 협회'라는 모임을 조직하였다. 회원 자격은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들의 가까운 인척들에게만 주어졌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리틀턴과 크리스트 교회에서 만나 모두 물 속으로 가라앉을 뻔했었던 선박을 구해낸
기적 같은 일들을 회상하곤 했다.
1백만 달러의 그림
오늘날 1백만 달러로도 살 수 없는 그림이 단 25센트 짜리의 음식값을 갚기 위해
팔려진 적이 있었다.
바로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의 그림이다. 천재 화가 라파엘로는 어느 날 저녁
우연히, 큰아들은 옆에 데리고 어린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낮게
노래하는 여인을 목격하게 되었다. 너무나 인상적인 장면이라 라파엘로는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난했던 그에게는 이젤도 캔버스도
살 돈이 없었다. 그때 라파엘로는 주위에 떨어져 있는 오래된 술병을 발견했다.
그는 곧 그 술병의 둥근 바닥 위에 그 장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림을 완성한 후 라파엘로는 25센트 짜리 음식값을 갚기 위해 그
그림을 여인숙 주인에게 팔았다고 한다.
오늘날 그 그림은 세계의 걸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일명 "세디아의
마돈나"라고 알려진 것으로 현재 플로렌스에 있는 피티 왕궁에 걸려 있다. 한편
1939 년, 이탈리아 정부가 뉴욕 만국 박람회에 그 그림을 팔았고, 그때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대작품으로 전시되었다.
아버지로서의 인생
'아버지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최고의 아버지'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아왔다. 더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나는 벨지알 콩고에 위치한
버드키의 지도자 무쉬디 왕을 최고의 아버지로 추천하고 싶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에게는 정확하게 몇 명이라고 추산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부인이
있었다고 하는데 예측하건대 5,000 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은 901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로안가의 왕에게 종속된 무쉬디
왕은 수백 명의 부인들에 대한 조공을 매년 바쳐야 했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의
힘은 약화되었다. 그러다가 무쉬디 왕은 비운의 종말을 맞게 되었다. 벨지알 정부가
무쉬디 왕을 살인자라는 명목으로 체포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들 중 29 명을
암살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리하여 곧 유죄 판결을 받고 1906 년 사형되었다.
'최고자'에게는 가장 불행한 최후일 것이다.
다음 후보자는 마호메이의 배한진을 다스렸던 아프리카의 왕이다. 그는 902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였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 중 60 명은 왕위에 올랐으나, 220 명은
거리의 청소부로 막일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또한 그는 서부 아프리카 왕국 내의
가장 출중한 외모의 총각 5,000 명으로 구성된 아마존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왕실 군대였던 아마존 군대의 병사들만 가죽 신발을 신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외의 군사들은 맨발로 뛰어나가 목숨을 잃곤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비극의 종말을 맞았다. 1894 년, 프랑스는 그의 극악무도한
행위를 이유로 그를 왕위에서 내쫓았고, 1906 년 유배 생활 중 그는 쓸쓸히
죽어갔다.
마리 레티티아 라모리노
모나코의 어머니라 불리는 '마리 레티티아 라모리노'는 1750 년 코르시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자시오 왕실 법정의 재판관 보자관인 카를로 보나파르트와 결혼을 하여
12 명의 자식들을 두었다. 그 중 4 명은 프랑스의 왕이 되었고 2 명은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 내외의 가장 유명한 아들은 둘째 아들로 후에 프랑스의
황제가 되는 나폴레옹이다. 또한 큰아들인 조제프는 스페인의 왕이 되었다.
이외에도 제롬과 루이는 각각 베스트팔리아와 홀랜드의 왕이 되었다.
딸들 중에서 마리 아눙치아타 카롤린은 나폴리의 여왕이었고, 그녀의 여동생인
엘리사도 토스카나의 여왕이 되었다. 이외에 다른 두 아이들인 루시앙과 마리
폴린은 다른 자식들에 비해 지위가 낮은 편이었는데, 즉 루시앙은 카니오의 왕자,
그리고 마리 폴린은 구아스탈라의 공작부인이 되었다.
그로부터 20 년 후, 그녀의 가문이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도 마리 레티티아
라모리노는 생존해 있다가 1836 년, 죽음을 맞았다.
국채를 갚은 스코틀랜드인
스코틀랜드, 화이프쉬어 태생의 제임스 스완(1754--1830)은 어렸을 때
매사추세츠로 옮겨왔으며 그 후 보스턴에 자리를 잡고 대사업가로 성공했다.
그 후 1787 년 제임스 스완은 프랑스로 이주하였는데 이곳에서도 역시 부와
명성을 누렸다고 한다.
그 당시 미국은 프랑스에게 2,024,899 달러 92센트의 빚을 지고 있었다. 현재
미국의 부채가 2억 5천만 달러가 넘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액수이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의 빚이었다. 어쨌든 미국 정부는 그
돈으로 혁명 이후 최대의 혼란을 맞고 있는 미국의 경제를 어느 정도 회복시킬 수
있었다.
제임스 스완은 그 부채를 청산하리라 결심하고, 개인 자신에게는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나라를 위해 그 많은 돈을 내놓았다.
그리고 1795 년 7월 9일, 제임스 스완은 미국 정부에 보고했다. 미국의 국채를
완전히 갚았으니 이제 더 이상의 빚은 없다고.
1억 달러 가치의 광산을 발견한 당나귀
지금은 켈로그 마을이라 불리는 마을 근처의 아이다호 언덕 위를 목적 없이 배회
하고 있던 '길 잃은 당나귀'는 은과 납의 매장지로서는 미국 최대의 광산인 땅 위에
멈춰 섰다. 물론 우연의 일치였다.
언제부터인가, 몰고온 당나귀가 제멋대로 돌아다니자 광맥을 찾고 있던 사람들은
화가 날 대로 나 당나귀를 찾고 있었는데, 은과 납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는 곳에
당나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자, 방금 전의 화난 마음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곳이 바로 오늘날 그 유명한 '번커 언덕과 술리반 광산'이다.
그러나 그 광산은 누구의 것일까? 사실 그 탐굴자들은 당나귀를 빌렸을 뿐
당나귀의 실제 주인은 아니었다. 실제 당나귀의 주인은 자신의 당나귀가 그 광산을
찾아냈으니 그 광산의 임자는 자기라고 주장을 했다.
'길 잃은 당나귀.' 1885 년 아이다호의 연방 법원 판사인 노르만 버크는
공식적으로 그 당나귀가 광산을 발견했다고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그 당나귀의
주인은 이 광산에서 생기는 이익금의 50%를 받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에게
지급된 총액은 4천 3백만 달러에 이른다.
성경과 결혼한 남자
'가짜 메시아'라는 이름으로 더욱 유명한 세바타이 제비는 유태인의 메시아와
같은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왔노라며 동포 유태인들을 속인 사기꾼이자
신비론자였다. 특히 그가 저지른 행위들 중 가장 뻔뻔스러웠던 것은 그가 성경을
신부로 삼고 결혼식을 올린 일이다. 신부가 입을 예복 안에는 율법 명부를 성스럽게
놓게 했으며, 그 사기꾼은 아주 경건하고 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결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그리스와 사로니카의 주민들은 이 별난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세바타이는 그의 가짜 포교 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런 가짜 결혼식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터키의 술탄(17세기)에게 처형 받지 않기 위하여
세바타이는 후일 이슬람교를 신봉하게 된다.
사람을 잡아먹는 조개
사람이 조개를 먹는 것이 아니라 조개가 사람을 잡아먹는다. 1.2m 길이에
230kg의 무게가 나가는 말레이지아 산의 이 거대한 조개는 벌어진 입안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들여놓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단번에 잡아먹어 버린다고 한다.
이 조개들 중 크기가 거대한 어떤 조개의 껍질은 파리의 성 술피스 성당에서
성수를 담는 그릇으로 이용되는데, 조개 자체의 무게는 거의 320kg에 달한다.
그러나 껍질의 무게만 해도 250kg이며 길이는 1.5m나 된다고 한다.
말 황제
12--41 년까지 로마의 황제였던 칼리굴라는 그의 애마 인치타투스에게
집정관이자 공동 통치자라는 직위를 수여하였다. 따라서 그의 애마는 직위에 맞는
사무실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상아로 만들어진 마구간이었다. 그리고 왕으로부터
금으로 된 술잔을 하사 받았는데 거기에 담긴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11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의 귀재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언어학자인 요셉 카스터는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생을 언어를 습득하며 보냈는데, 그 결과 72개의 방언 이외에도
11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가 있었다.
114개의 언어들 중에 54개 국어에 관한 한, 그 언어를 모국어로 해서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수준으로 언어를 구사한다는 평을 받았던 언어의 천재이다. 그는
다른 언어들보다 중국어를 습득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4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이탈리아를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만했던 여자, 클레오파트라
미모와 지성으로 유명했던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근친 결혼으로
태어난 4 대의 직계 자손이다.
클레오파트라는 오빠와 언니의 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모 또한, 그들
부모의 언니와 오빠 사이에서 태어난 복잡한 혈연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부모의 부모, 즉 클레오파트라의 조부모들 또한 자신들의 언니와 오빠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편, 클레오파트라 개인의 천성적인 미모와 지혜로움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내려왔던 혈족간의 결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는 그녀의 오빠 두 명과 결혼했으며 후에 그들을 죽였다. 프톨레미
14세는 물 속에서 숨지게 했고 프톨레미 15세는 독살시켰다.
고대의 왕실 관습이었던 오빠와 누이 간의 혈족 결혼은 프톨레미 왕가가 이집트를
다스리는 동안 줄곧 지켜졌다. 왕은 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즉 신의 아들)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왕의 반려자도 이와 동등한 조건을 갖춘, 즉 출생의 근원이 같은
그의 아버지의 딸인 누이밖에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 중 이런 혈족 결혼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 밖의 이집트 왕조들을 살펴보아도 오빠와 누이 간의 혈족 결혼은 13세대 동안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은 모두 총명했으며,
다음 후손들 사이에서 모두 사내만 태어나 그들과 결혼할 누이들이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순간까지 이러한 관습은 계속 지켜져왔다고 한다.
유태인은 '티투스 아치' 아래로 지나갈 수 없다.
그 유명한 티투스 아치는 이제 폐허가 된 상태로, 화려했던 로마 광장의 유적지에
우뚝 서 있다. 옛날에 그 아치 아래를 지나간 유태인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아치가 18개국 이상의 나라들로 통하는 지름길을 열어주는 지금도 유태인들은 그
아치 아래로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티투스의 아치는 황제 티투스를 경의하는 표시로, 그리고 티투스의 군대가
유태인들을 멸망시켰을 때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70 년에 건축된
아치이다.
따라서 티투스 황제는 유태인 신전의 파괴자로서, 그리고 모든 유태인들의 나라를
멸망시켰으며 유태인 대학살을 자행했던 도살자로서 모든 유태인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았었다.
또한 그 아치 아래로 지나가는 유태인들을 처벌할 의도로 최고 종교의회에서는
'하렘'이라는 법조항과 이에 따른 제재를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어떤 유태인도 그
아치 아래로는 지나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 아치를 이용하지 않고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콜롯세움에서 수도로 연결되어진 그 아치와 파라틴
사이에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범죄의 대부
프랑스 클레르몽의 크레티엥 가족은 모두 범죄자이다. 범죄의 대부인 아버지는
주위의 환경에 휘말려 이단을 믿었던 파면된 성직자였다.
그리고 그는 방화범 가족의 후손과 결혼을 했다. 그 후 그의 아들 장 크레티엥과
세 명의 손자들인 피에르와 토마와 그리고 장 밥티스트는 절도와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피에르의 아들인 장 프랑스와도 절도와 살인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외에도 토마의 두 아들인 프랑스와와 마르탱도 둘 다 교수형을
받았다. 마르탱의 아들인 마르탱 2세는 카엔에 있는 프랑스의 교도소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장 밥티스트의 아들과 며느리인 장 프랑스와와 마리 장
프랑스와도 감옥에서 죽었다.
마지막으로 장 프랑스와와 마리 장 프랑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여섯 남매,
베느와, 크렝, 마리 렌느, 마리 로즈, 빅토르, 그리고 빅토린느도 모두 살인과
절도죄로 교수형을 당했다.
국화를 먹는 일본 사람들
일본에서 국화는 의약품인 동시에 음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국화의 의학적 효능은
수백 년 전 가무 황제 시대부터 알려져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몇 해 후부터,
국화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되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장 일반적인 요리 방법은 국화의 잎과 꽃을 함께 끓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를 푹 고아서 설탕과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먹기도 한다. 한편 국화 축제라
불리는 키쿠노세꾸 동안에 그 꽃잎을 술에 담가 향을 우려내어 마시기도 한다.
일본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고 있는 샐러드는 다음과 같은 이상한 조리법으로
만들어진다. 일단 약 스무 송이의 국화를 몇 번이고 헹구어 깨끗이 닦은 후 산성의
소금물에 담가 하얗게 만든 다음 끄집어내서 천 위에 말린다.
그 다음 감자, 엉겅퀴 뿌리, 새우 꼬리, 백화채 나무, 그리고 식초와 그 말린
꽃잎들을 섞어 샐러드로 만든 후 붉은 사탕무와 찐 계란으로 색깔을 맞춘다. 간을
맞추기 위해서 사프란 등을 넣는다.
믿거나 말거나
론 오크 공원에는 나무가 한 그루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알은 상어알.
튜브 라디오는 핀 위에서 만들어진다.
어떤 나무의 이름은 '자살나무'이다.
어떤 원숭이는 담배를 피워서 잡혔다.
제일 작은 우체국은 떠다니는 케그(작은 나무통).
주기도문이 핀의 머리 위에 새겨져 있었다.
알폰소는 원래 왕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사해는 바다가 아니다.
웨일즈에는 굴뚝 속에 자라는 나무가 있다.
어떤 물고기는 비늘 대신에 털을 가지고 있다.
뱀은 혀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엉덩이도 가지고 있다.
구멍 난 허파를 가지고 10 년이나 살았던 사람이 있다.
암벽 속에서도 자라는 나무가 있다고 한다.
해안이 없는 바다도 있다.
고양이가 쥐의 새끼를 기르기도 한다.
추운 시베리아에는 남자용 공중 변소가 두 개밖에 없다.
5센트만 받고 5 년 동안 일한 사람이 있다.
인간은 6m 길이의 통나무를 들 수가 있다.
케나리 섬들은 개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라고 한다.
백인은 색칠될 수 있지만 흑인은 더 이상은 색칠이 불가능하다.
산타 클로스는 도둑들의 수호 성인이다.
우리가 산타 클로스라고 알고 있는 성 니콜라스는 마이라의 주교인데, 그는 많은
악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호하는 수호 성인이다. 특히 '성 니콜라스의 기사들'은
손버릇이 나쁜 사람들을 지칭하는 은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전당포 주인들의 수호 성인이라고 하는데, 그들을 상징하는 표시는
성 니콜라스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해적들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들의
깃발에는 성 니콜라스의 모습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외에도 미혼
여성들과 선원들도 성 니콜라스의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모든 뱀들 중에서 '날아다니는 뱀'은 아주 유명하다. 자바와 말레이지아에서만
발견되는 희귀한 뱀이다. 그리고 나무뱀이라고도 하는데, 리본 모양으로 몸을 가로로
쭉 펴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다니기 때문이다. 싸움이
벌어지면 날아다니는 뱀은 코브라가 적을 공격할 때 목을 쭉 펴는 것처럼 똑같은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땅으로 내려올 때 날아다니는 뱀은 유선형으로 나무를 타고
내려온다고 한다.
이 뱀을 북부 지방에서 번식시키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옮기는 도중에
모두 죽었다고 한다. 이 뱀의 공식적인 명칭은 크리소펠리아 오르나타이다.
누에(silkworm)는 지렁이(worm)가 아니다. 그것은 유충(caterpillar)이다.
멕시칸 점핑 콩(Mexican jumping bean)은 콩(bean)이 아니다. 그것은 유충이나
자궁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이다.
캐러웨이 씨앗(Caraway seed)은 씨앗(seed)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익은
건과를 말한다.
스쿨 초크(school chalk)는 분필(chalk)이 아니다. 그것은 파리에 있는 석고상을
말한다.
파나마의 모자(Panama hats)는 파나마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만들어진다.
드라이 클리닝(dry cleaning)은 건조하지 않다. 드라이 클리닝할 때, 모든
옷가지들을 액체 세제가 들어 있는 세탁기 안에 넣어 완전히 적시기 때문이다.
개똥벌레(forefly)는 파리(fly)가 아니다.
개똥벌레의 유충(glowworm)은 지렁이(worm)가 아니다. 그들은 곤충이다.
2 쿼터의 물과 2 쿼터의 알코올을 섞었을 때, 그 부피는 4 쿼터가 되지 않을
것이다. 원래 물과 에틸 알코올을 섞으면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난다. 물과
에틸 알코올의 화학 결합시 두 물질의 분자 사이의 공간들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과 알코올을 섞었을 때, 총 부피는 수학적인 계산으로 예측되는 부피보다
4% 가량이 줄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은 1841 년 8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함대 사이의 해전에서 일어났다.
치열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지휘관인 미국의 존 코가 이끄는 우루과이의 함대가
해전 중 가지고 있던 모든 포환을 다 써버렸을 때 팽팽했던 해전은 아르헨티나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때 화약은 남아 있었지만, 존은 그 화약을 이용해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몰랐다. 아르헨티나의 함대를 지휘했던 대영제국의 윌리엄 브라운
장군은 우루과이의 이런 상황을 알아차리고 즉시 우루과이의 함대를 에워쌌다.
우루과이 함대를 섬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코 장군은 갑판 위에 회색빛의 둥그스런 물건들이 더미로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포 안에 들어갈 만한 적당한 크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 딱딱해서 먹기에 적합하지 않은 독일제 치즈였다.
코 장군은 군사들을 시켜 치즈를 포 안으로 집어넣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 후
우루과이의 함대는 한쪽 뱃전에 있는 모든 포를 동원해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르헨티나 함대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그들에게 포환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이런 일제 사격에 모든 아르헨티나의 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첫 번째 일제 사격으로 치즈 덩어리는 산산조각이 되어 적들의 함대에 부딪혔다.
곧 우루과이 함대는 두 번째로 일제 사격을 했다. 그러자 아르헨티나의 함대는
뱃머리를 돌려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딱딱한 독일제 치즈와 이를 이용한
코 장군의 재치 덕분에 우루과이의 함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꿩과 아주 흡사하게 생긴 이 오스트레일리아 금조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수금과
같은 꼬리깃을 갖고 있다. 이 꼬리깃은 수놈만이 가지고 있으며 수놈들은 이것을
활짝 펴서 암놈을 유혹하고 있다.
이 수금조가 암놈을 유혹할 때는 나뭇가지를 모아 둥그렇게 만든 무대 위에
올라서서 꼬리깃을 활짝 편 다음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수금 타는 소리와 같다고
한다.
또한 금조는 다른 동물의 울음을 곧잘 흉내내는데, 새뿐만 아니라 개 짖는 소리나
사람의 말소리까지 똑같이 흉내내고 있다.
961 년 이후 내내 스페인의 발렌시아 성당 앞에 위치해 있는 이 법정은 매주
화요일 11시에 개회하여 그 구역의 농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관개와 물
분배에 관한 사건들에 대해 판결을 내리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 법정에서는 그 지역 농부들에 의해 선출된 7 명이 벨벳으로 된 소파에 앉아
사건들을 처리한다. 이 법정에서는 사건에 관한 기록, 선서, 변호사도 없을 뿐더러
판결 유예, 항소 등의 절차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발렌시아 특유의 사투리로
일단 판결이 내려지면, 그 지역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이 판결을 따랐다.
거의 1,000 년 동안, 20 명의 스페인 왕들과 지배자들이 이 오래된 법정의 활동
영역을 줄이려고 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 법정은 그들보다 오래 시민들의 곁에
남아 지금도 그 지역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들을 다루고 있다.
문자 파이는 원의 직경과 원둘레 사이의 측정될 수 없는 관계를
나타내 준다. 보통, 파이의 가치는 3.14159로 측정되어 진다. 그러나
수학자들에 의하여, 소수점 이하 707번째 자리까지 연구되어졌다. 주로 이런
707자릿수까지는 언급되지 않지만, 아마추어 수학자들의 호기심에 의하여 여기까지
밝혀진 것이다. 다음은 그 707자릿수까지의 파이의 가치이다.
3.14159 26535 89793 23846 26433 83279 50288 41971
69399 37510 58209 74944 59230 78164 06286 20899
86280 34825 34211 70679 82148 08651 32823 06647
09384 46095 50582 23172 53594 08128 48111 74502
84102 70193 85211 05559 64462 29489 54930 38196
44288 10975 66593 34461 28475 64823 37867 83165
27120 19091 45648 56692 34603 48610 45432 66482
13393 60726 02491 41273 72458 70066 06315 58817
48815 20920 96282 92540 91715 36436 78925 90360
01133 05054 88204 66521 38414 69519 41511 60943
30572 70365 75959 19530 92186 11738 19326 11793
10511 85480 74462 30798 34749 56735 18857 52724
89122 79381 83011 94912 98336 73362 44193 66430
86021 39501 60924 48077 23094 36285 53096 62027
55693 97986 95022 24749 96206 07497 03041 23668
86199 51100 89202 38377 02131 41694 11902 98858
25446 81639 79990 46597 00081 70029 63123 77381
34208 41307 91451 18398 05709 85
가위(scissors)의 어휘를 음성학적으로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58,366,440
가지가 있다.
가위의 발음 기호는 S-I-Z-E-R-S이다.
영어에서 음소 S는 17개의 문자로 표현될 수 있다.
음소 I는 36개의 문자로 표현될 수 있다.
음소 Z는 17개의 문자로 표현될 수 있다.
음소 E는 10개의 문자로 표현될 수 있다.
음소 R은 17개의 문자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을 기초로 해서 수학자들은 가위를 나타낼 수 있는 58,366,440가지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S-I-Z-E-R-S의 6개 음소를 나타내는 모든 것들을 알고
싶다면, 알렉산더 존 엘리스에 의해 씌어진 "철자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라는 책의
35--39 페이지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이 게임은 당시 러시아의 속국이었던 터키의 이스탄불이라는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러시안 위스트'란 게임 이름을 붙여 그곳에 있던 러시아
사람이 이 게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1884 년 영국으로 전래되었을 때, 이 게임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게임을 익혔던 그레이트 달비 가와 레이체스터쉬어 가라는 두 집안은
서로 번갈아 방문하면서 이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서로간의 집을 방문하려면
밤에는 다소 안전치 못한, 돌로 만들어진 오래된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래서 게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간 쪽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휴! 무사히 건넜다! 자 이제 내일은 당신들이 이 다리를 건너는 차례야!"라고
말하곤 했다.
그 후 이 게임의 이름은 점차 '브리지 위스트'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위스트라는 이름은 사라졌고, 브리지라는 이름만 남아 우리는 이 게임을 브리지, 즉
다리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리투아니아의 최고 랍비인 엘리야 더 가온은 한번 읽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유명한 역사가인 그레테즈 교수는 가온은 2,500권의
책 안에 든 모든 내용을 암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다.
엘리야는 성경, 미드라쉬, 메킬카, 스프레 토세프타, 세다올람,
탈무드(바빌로니아와 예루살렘의 언어로 씌어진), 조하, 법전, 라쉬, 람밤 등의 모든
내용들을 암기하고 있었으며, 원한다면 모든 문장을 인용해서 말할 수도 있었다.
위대한 엘리야는 당시에 유태인들의 거주지로서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던
리투아니아의 고대 수도인 빌나에 살았다. 그리고 현대까지도 동부 유럽의
유태인들은 그런 엘리야의 기질을 숭상했으며, 위에 있는 엘리야의 초상화는
대부분의 그리스 정교회당의 동쪽 벽에 걸려져 있다고 한다.
길이 30cm 도 되지 않는 작은 물고기가 거대한 몸집의 무시무시한 상어를
죽였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것을 사실이다. 남부 아메리카의 작은 물고기 성게는 특유의 방법으로
길이 8m의 상어를 죽이곤 한다. 연약한 피부 위에 뾰족한 가시들을 가지고 있는 이
물고기는 스스로의 몸을 늘여 공처럼 둥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마치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그 물고기의 표면은 온통 가시로 덮이게 된다.
한편, 상어에 의해 먹혔을 때 성게는 순순히 먹히지만 상어의 위를 비롯하여 몸
속의 구석구석을 가시 돋힌 채로 헤집고 다님으로써 상어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홈, 스위트 홈"을 지은 작가는 정작 집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노래의 작가는
존 하워드 패인이라는 사람인데 그가 파리에서 돈없이 떠돌아다닐 때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닌 방랑자였다.
1851 년 3월 3일, C. E. 클락에게 보냈던 편지에 그는 다음처럼 그의 심경을
토로하였다.
"한번도 내 집을 가져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런 바람도 없었던 내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 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야!"
그는 이 편지를 쓴 지 1 년 후에 투니스라는 곳에서 죽었다. 물론 그때도 그는
집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주검은 묻혀 있던 무덤에서 그의 출생지로 보내졌는데
결국 "홈, 스위트 홈"의 집 없는 작가는 워싱턴의 오크 언덕에 있는 공동 묘지에
그의 영원한 집을 갖게 되었다.
다음에 언급될 이야기는 체스 게임의 유래와 관련되어 있는 전설이다. 체스
게임을 무척 좋아했던 동부 인디언의 어떤 지도자는, 그 게임을 고안해낸
노예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때 그 노예는 체스 판에 그려져 있는 각각의 정사각형 안에 밀 낟알을
놓되, 첫 번째 정사각형 안에는 한 알, 두 번째에는 두 알, 세 번째에는 네 알, 네
번째에는 열 여섯 알, 즉 다음의 정사각형 안에는 바로 직전의 정사각형 안에
놓았던 밀알들의 수에 제곱을 하여 놓을 경우 맨 마지막의 정사각형까지 놓아진
모든 밀알들을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에 그 노예의 소원이 무리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그 지도자는
일단흔쾌히 승낙했지만, 나중에서야 인디언 지도자는 설사 그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땅에서 나오는 밀을 추수한다 할지라도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체스 판 위에 놓아질 밀알의 총수는, 1,844,674,473,709,551,615이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인도 만두라 지방의 힌두교 사원인 시바 신전은 석고를 부어 만든
우상 3천만 개로 치장되어 있다고 한다. 3천만이라는 숫자는 조금 과장된 것이라고
쳐서 그 숫자를 백만으로 줄인다 하더라도 이 사원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할 수 있다.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영토가 넓은 한 인도 왕국의 도읍지였던 이 만두라에
웅장한 신전들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티물라 왕이 집정하던 때였으나 그 건물들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힌두교의 신전들과는 거리가 먼 파괴의 신 시바에게 바쳐진,
흉측한 모습으로 표현된 우상들로 치장된 신전이었다.
악몽으로 나타날 것 같이 무시무시하게 장식된 이 신전의 벽은 사방이 300m이고
그 사면의 주위는 수많은 회랑과 복도와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피라미드 식으로
된 10개의 입구는 그 높이가 20층 건물에 달하며 계단식으로 나누어진 수없이 많은
각층에는 수많은 조각된 우상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석고를 부어 만든, 수많은
신들과 여신들, 혹은 악마들의 모습이 묘사된 우상들은 주로 빨간색과 초록색의
야한 색으로 칠해진 후 냄새가 역한 버터와 같은 번들거리는 기름으로 발라져 더
한층 흉측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다음의 이야기는 카발느 박사의 저서 "레 시지엠므 상"에 실려 있는 프랑스의
의정서의 내용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아홉 살 짜리 소녀가 임신 7개월이라는 뉴스가 파리와 황실에 알려지자 많은
프랑스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마담 라 도핀느(프랑스의 황태자비)의 개인
산과 의사는 당대 최고의 의료진들과 상의를 한 후, 루니 르노와 마그들렌느
라프레쉬의 딸인 마그들렌느 샤롯트 자켓 르노를 루 마자린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분만시키기 위해 데리고 왔다. 그리고 1756 년 새벽 3시 30분에 그 소녀의 복부
왼쪽을 절개하여 건강한 사내아이를 분만시켰다.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었다.
아홉 살 난 소녀에게서 태어난 갓난아기는 보통 나이의 산모들이 낳은 아기들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건강했다. 그 사내 아기는 성 앙드레 데
자르크의 소교구에 있는 성전에서 세례를 받았고 장 루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
아기의 생모는 매년 1,500 프랑의 연봉을 평생 동안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회복한
후에는 수도원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한편, 아홉 살의 나약한 소녀를 성폭행 했던 소년 마르샹은 6월 9일에 죽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는 최고법에 따라 최고로 잔인한 처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사를 재인쇄할 수 있는 허가권은 파리에서 1756 년 7월 4일, 황실의
공증인이자 경찰의 최고 지위에 있던 베리에게 주어졌다.
물고기와 개구리, 심지어는 쥐까지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것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1924
년 3월에 오스트레일리아의 퀸스랜드 롱그리치라는 마을에서 실제로 하늘에서
물고기들이 떼로 떨어졌는데, 그때까지 살아 있었던 물고기의 크기는 2.3cm에서
7.6cm 정도였다.
그런데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는 쉽게 설명되었다.
얕은 시냇물 위로 세차게 내리는 비와 함께 회오리바람이 불자, 그 엄청난 기세에
밀려 시냇물 속에 있던 물고기와 개구리, 심지어 올챙이들까지 바람과 함께 날아가
전혀 생소한 곳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소위 '기적 같은 소나기'라고 불리는 이런 현상은 실제로 기적이 아니며
땅 위에서 발견된 물고기, 개구리 등도 원래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외에도 핏빛의 비가 내리는 이유도 인시류(나비 나방)에서 발산된 빨간 빛깔의
용액이 공기 중에 섞여 날아다니다가 비가 내릴 때 함께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혹은 빨간 빛깔의 물질을 내포하고 있는 담수 플랑크톤과 강과 저수지의 조류들이
갑자기 증식됨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아프리카 산 독수리의 일종인 서기조는 다리가 길며, 오직 도마뱀이나 뱀만을
잡아먹고 사는 동물이다. 이 새는 햇볕을 쬐러 나온 독사를 발견하면 활짝 편
날개를 방패처럼 사용하여 독사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억센 발톱으로 상대의 머리를
움켜잡는다. 또한 독사의 공격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재빨리 뛰어 물러서는데
이때의 몸놀림이 가공할 정도로 빠르다.
이윽고 독사가 완전히 지치게 되면 이 새는 독사를 물어 공중에 몇 번 휘두른
다음 그 머리를 쪼아 부순다. 매우 사나운 새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와 비교해볼 때 영어 단어는 비교적 간결한 편이다. 단어 하나를
만드는 데 많은 알파벳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어에는 한 단어의 뜻을
나타내는 데 많은 알파벳이 쓰여졌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가장 긴 단어는 무엇일까? 다음은 한때 가장 긴 단어로 여겨졌던 몇
개의 예들이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는 honorificabilitudinitatibus 인데, 이 단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사랑을 위한 노력은 헛되다"의 5장 1 막 44줄에 나타나 있다.
이외에도 퓨리탄 성직자였던 바이펠드는 incircumscriptibleness 라는 단어를, 또한
윌리엄 E. 글레드스톤은 disestablishmentarianism 이란 단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해내려오는 화학 용어들을 보더라도 이와 같은 몇 개의 예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paraoxyment amethoxyally benzene, tetra hydroparame thyloxy
quinoline 등이 그것이다.
독일어에서 근대에 만들어진 단어들 중에는 Schtzeng rabenve rnichtung
sautomobile가 있는데, 군사 용어로 탱크라는 뜻을 나타내는 이 단어에는 무려
36개의 문자가 필요하다. 영어는 어떠한가! Tank라고 하면 간단하지 않은가!
또한, '콘스탄티노폴리탄의 백 파이프 제조업자들의 터키인들의 모임'은 독일어로
Constantino politanisch edudelsacksp feifenmacher gesellschaft 라고 표현된다.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비스마르크는 약제사를 늘상 Gesund heitswieder
herstellung smittelzu sammenmi schungsver hltniss kundiger 라고
불렀다. 그리고 무척 화가 났을 때는 다음과 같은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Himmel herrgottk reuzmillionen donnerwetter!
Damenmant elschneide rinnung skranken kassen hauptvor standsmit
gliederver sammlung은 '여성 외투 재봉사들의 후원 자금을 위한 방침 목록'이란
뜻을 가진 독일어이다. 그리고 비엔나의 어떤 클럽 명칭은 Donaudampf
schifffahrt selectricitaeten haupt betriebswerk bauunter beamteng esellschaft
라고 하는데 총 81개의 문자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체코어는 독일어보다는 훨씬 간결하다. 가령, Strc prst skrz krk는 문자
그대로 해석할 때, '손가락으로 목을 찌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음의 예문은 여러분들이 발음하기에 훨씬 쉬울 것이다. Chrzaszcz szumi w
tracinie 인데 이 말은 '갈대밭에서 곤충들이 부부 소리를 내며 다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만일 지구상에 있는 모든 중국인들을 4열 종대로 어느 한 지점을 지나게 한다면
결코 그 지점을 지나는 행렬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 사실은 꿈에서나
입증해 보일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1403 년 이후부터는 중국의 인구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구상에 존재하는
중국의 인구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계산을 해본 결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중국인의 수는 13억 명이다(이 숫자는 1995 년 현재 몽고,
만추리아, 중국 본토, 티베트, 말레이시아, 남해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모든 중국인의 수를 합친 것이다.)
이 많은 중국인들이 미 육군 야전 규칙에 따라 중국인들이 행진을 시작한다면, 즉
4열 종대나 소대 행진 스타일로 한 시간당 4.8km씩 하루 평균 24km의 일정한
속력으로 행진한다면, 정해진 한 지점을 통과하는 데는 44 년 302일이라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1 년에 26,280,000 명의 중국인이 한 지점을 지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의 신생아 출생률을 10%라고
가정한다면(이것은 유태인들의 출생률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신생아들의 절반
가량이 걸음마도 배우기 전에 죽어버린다면, 1 년에 60,000,000 명의 새로운
중국인들이 이 행진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면 그 행렬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1402 년과 1403 년에 중국의 황제는 인구 조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사형을 내릴
것이라 겁을 주면서 중국의 인구에 관한 유일하게 믿을 만한 통계 자료를 수집했다.
1402 년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총인구 수는 56,301,026 명이었고 1403 년에는
66,598,337 명이었다. 따라서 1 년에 19%의 증가율을 보여주고 있으며, 베이징
시에 한해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중국인의 사망률은 연간 2.5%라고 한다.
90 년 전 한 단어가 꽤 값이 나가는 상품으로 취급된 적이 있었다. 1867 년,
이집트의 총독 이스마일 1세는 그 단어를 얻기 위해 300,000 달러를 지불했다.
그것은 터키의 술탄에게서 키디브(터키가 수여하는 이집트의 총독이란 칭호)를 얻기
위한 뇌물로서, 이스마일이 터키의 수상 푸아드파샤에게 지불한 금액이다. 그 당시
이집트는 터키 왕국의 종속국이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여성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할 때는, 그 여성의 이름에 쓰인
알파벳(중복되는 알파벳도 개별적으로 계산했다)의 수만큼 술을 컵으로 마셨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수상인 프린스 벤젤 폰 카우니츠-리트부르크(1711--1794)는
이제까지의 어떤 남자들보다 가장 의상에 신경을 쓴 사람이었을 것이다.
57 년 동안, 그는 하루에 30번씩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의 기준으로 그가 하루에 8시간의 수면을 취했다고 가정해본다면, 그는 남아
있는 16시간 동안 매 32분마다 옷을 갈아입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데만 그는 하루 중 4시간을 소모한 셈인 것이다.
그리고 보통 로코코 시대의 신사들은 오늘날의 현대인들보다 많은 의복을 가지고
있었으며 의상에도 꽤 신경을 썼다고 한다. 레이스와 약간의 장식품을 달았을 뿐
아니라, 모든 의복 안에 6개의 시계를 지니고 있었고 장식띠, 시계 주머니, 사슬로
된 시계줄을 달았으며, 하다못해 휴지 상자까지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또한
외모에도 관심을 쏟아 화장을 하고 애교점을 그렸으며 가발도 썼다고 한다.
한편 카우니츠가 일생 동안 의상에만 신경 쓴 시간을 헤아려보면 10 년이나 되고
매년 400,000 달러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의상과 외모에만 관심을 보인
정치가는 아니었다. 그는 42 년 동안 유럽 정치사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예리한
안목과 진취력으로 전쟁을 계획 지도했으며 정치계의 거물로서 두각을 나타내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ROTAS
OPERA
TENET
AREPO
SATOR
위에 보여지는 것은 수백 년 동안 학자들에게 신비함을 불러일으켰던 사각
회문이다. 또한, 'PATER NOSTER A O'의 아나그램(문자, 철자를 만들어 새글을
만들기)이기도 하다. 이 유명한 사각 회문은 트레모나에 있는 피에브 테르쟈니
교회로 이르는 인도에서 발견되었고 카페스트라노 근처에 있는 성 피터 교회와
영국과 프랑스에 있는 몇 개의 고대 교회들은 이 회문을 새겨두었다.
이 회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그러나 판자라고 하는
이탈리아 중세 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이 회문은 바람과 바퀴가 성경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 즉 '영원'과 '무한함'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 회문을 해석한 사람은 영국의 윌리엄인데 그는 수년 전 이
문자들을 대칭적으로 배열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어낼 수 있었다.
ORE TE PATER ORO TE PATER SANAS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에게 기도합니다.
당신은 고통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일본 무사시 지방 출신인 하나와 호키치(1722--1823)는 역사상 이름난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천재적인 기질을 타고난 기인이었지만, 불행히도 일곱 살 때
눈이 멀었다. 그러나 94 년이라는 남은 생애 동안 교육과 글쓰는 데에만 전념했던
학자였다. 그리고 그의 글은 언제나 그의 나이보다는 훨씬 성숙한 스케일의
글이었다고 한다.
그의 기억력은 유달리 뛰어나서 전생애 동안 모았던 400,000권이나 되는 책 속의
모든 내용들을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그는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2,820권에 이르는 "군소 루이주"를
편집했는데, 출판 역사상 최고의 부수를 가진 전집이었다. 그리고 이 전집은 1910
년 재판되었고 몇 세대에 걸쳐 일본의 학생들과 역사가들이라면, 꼭 알아두어야 할
귀한 필독서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호키치는 와가쿠소 학교를 창립하여 그
학교에서 얼마 동안 일본 고전 문학에 관한 수업을 했다.
그리고 어떤 일본 화가는 그가 강의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았는데, 어둠 속에 싸여
있는 청중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서정 시인이자 드라마 작가인 카를로 엘레산드로
구이디(1650--1712)는 오식으로 인해 죽음을 당했다. 그는 16세기 영국에서 출간된
"설교의 책"을 오자가 하나도 없게 라틴어로 완역했다. 그리고 처음 인쇄가
되자마자, 그는 서둘러 바티칸으로 갔다. 이 책을 교황 클레망 11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바티칸으로 가는 도중, 그는 책을 훑어보다가 우연히 단어
sine(^36,36^이 없는)이 sin(죄)으로 오식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때의 쇼크로 죽어버렸다.
누구든지 한번쯤 엘 도라도(El Dorado)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금으로 만들어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원래는 '엘 옴브레
도라도'(금으로 만들어진 인간)인데 옴브레는 생략되고 엘 도라도라는 말만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직후, 벌떼같이 많은 모험가들이 대서양을 건너기
시작했다. 금을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콜럼버스와 그의 일행이 발견한 신대륙은
장안의 화제였다. 그때 그 이야기를 듣고 힌트를 얻어 모험을 시작한 스페인의
콘퀴스타도르 군인들은 그들도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손에 십자가 대신 칼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그들은 어떤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사랑이
아닌, 금을 얻고자 하는 욕심에 이런 모험을 시작했다.
스페니쉬 메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엘
옴브레 도라도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즉 그들은 카리브 해 섬주민들부터 남쪽
어디엔가에 금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러나 카리브 해 섬주민들은 다른 목적에서 이 이야기를 스페인 사람들에게
해주었다.
이 말썽 많고 이상한 백인들을 하루라도 빨리 남쪽으로 쫓아보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에게 금은 어떤
중요한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금은 단지 장식품의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금덩어리가 매혹적이라고 생각하는 스페인 사람들을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단지 남쪽만을 가리키면서 엘 도라도가 그쪽에 있음을
넌지시 알려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믿었던 스페인 사람들은 금을
우습게 여기는 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한편 원주민들은 엘 도라도를 쉽게
그리고 금방이라도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것처럼 말했는데 막상 탐험을 해보니 그
금사람은 스페인 사람들 앞에서 날아가고 있는,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을 부르는
유령처럼 나타날 듯 말 듯 선뜻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어디엔가에 있을 행복을 찾아 이 세상을 방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만큼, 금으로
된 어떤 인간이 미지의 땅 저 멀리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스페인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금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엘 옴브레 도라도는 있었다. 그러나 퀴토 근처의
구아타비타라는 인디언 종족들의 왕이 온몸에 금가루를 묻히고서 산 속의 호수로
가야만 했던 종교 의식을 지키고 있는 것일 뿐, 실제로 금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이런 신성한 종교 의식을 행하기 전에 그 왕은 몸에
기름을 발랐는데 이는 금가루가 몸에 더욱 잘 붙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하여
그는 진정 엘옴브레 도라도처럼 태양 아래서 더욱 환히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는 철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러시아의 경우만 제외하고, 전문명화된 근대 국가들은 현재 4.85 피트의 표준
치수를 적용하여 철도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치수를 적용했던 이면에는
역사적인 일화가 숨어 있다. 표준 치수는 기원전 55 년 줄리어스 시저의 군대가
영국을 침략했을 때 공격 무기였던 로마의 전차에 의해 정해지게 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백 년을 거치는 동안, 로마 전차의 4.85 피트의 깊은 구멍은
영국의 도로 위에 아로새겨진 채 남아 있게 되어, 그 결과 영국 제도의 원주민 켈트
족도 이 고대 전차들의 흔적을 그들의 철도로 이용해야만 했다. 그 결과 자동차들은
그 구멍에 맞는 폭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시저가 영국을 침략한 지 20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근대식 철도는 그
트랙에 맞게 건축되어야만 한다. 로마의 시저에 의해 생긴 흔적이 아직도 깊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너스 플라이트랩은 동물의 원형질이 분해할 때 생기는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가는 소위 육식 식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그들이
필요한 영양분을 대기, 흙, 태양, 그리고 물에서 얻는 반면, 육식 식물들은 이외에도
곤충을 잡아먹음으로써 다른 영양분, 즉 질소를 얻는다.
그러나 곤충을 잡으려면 어떤 식물이든지 우선 그 곤충을 사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하여, 식물 왕국은 이에 적합한 식물들을 만들어냈는데 그 중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비너스 플라이트랩인 것이다.
비너스 플라이트랩은 비교적 질소의 함량이 낮은 케롤리나스 해안의 습지대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이 식물은 꽃과 12개 정도의 잎으로 둘러싸인 긴 줄기를 가지고
있는데, 그 잎의 끝은 곰을 잡기 위한 덫처럼 움직일 수 있는 챙 모양으로 되어
있다. 그 챙은 주맥의 끝에 달려 있고 챙의 끝에는 아주 뾰족한 가시가 나 있다.
붉은빛을 띠고 있는 각 챙의 중앙에는 꽃즙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당액을 분비한다.
곤충들은 아마 이런 달콤한 냄새에 유혹되어 호기심을 나타낼 것이다. 각각의
챙에는 3개의 아주 예민한 유인 털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곤충이 이 털들 중의
하나를 건드린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하나가 아닌 2개의 털에 닿을 경우,
혹은 똑같은 털에 두 번 닿을 경우, 챙들은 갑자기 튀어나와 그 곤충을 덮치고 챙
끝의 뾰족한 가시들은 그 곤충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두어 놓는다. 이런
움직임은 아주 빨라 거의 0.5초 내에 이루어진다고 한다.
먹이가 덫에 걸리면, 열편 안에 있는 분비선에서는 그 곤충을 녹일 소화^36^액을
뿜어낸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챙들은 다시 열리지만, 그 곤충은 미풍에도 날아갈
정도로 앙상한 모습으로 남게 된다.
1721 년, 독일의 뤼베크에서 태어난 크리스천 프리드리히 하이네켄은 생후 8주
만에 말을 했는데, 그것도 고급 어휘를 섞어가며 자유롭게 구사했다고 한다. 한 살이
되어서 모세의 5경을 읽었다. 그 다음해인 두 살과 세 살 사이, 그는 구약과 신약을
읽고 이해했다. 세 살 때에는 역사와 지리 분야를 섭렵했으며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 후 이 천재 소년에 관한 이야기가 유럽에 퍼지자, 덴마크의 왕은 크리스천을
코펜하겐에 있는 왕궁에 초대하여 그의 천재적 기질을 보이게 했다.
그러나 지적인 수준과는 달리 그는 몹시 허약했다. 손가락이 너무 약해 펜 하나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단단한 음식을 씹어먹을 수 있는 힘도
없었다고 한다. 그 후 네 살 때, 크리스천은 곧 죽게 될 거라는 예언을 했었는데,
불행히도 그의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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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초의 작가
프랑스의 화가이자 소설가인 니콜라 에드메 레티프 드 라 브레통(1734--1806)은
203권이나 되는 책을 지었다. 그러나 그 중 152권은 문자로 씌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머릿속에 든 생각을 직접 인쇄판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는 문자 그대로 완벽한 사람이라고 한다. 비록 일부 그의 책들 중 어떤
것들은 부도덕한 것들이라고 비난을 받긴 했지만, 대체로 문학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17, 18세기 편집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그의 책을 읽었다.
프랑스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1573--1642)는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비싸고
무거운 옷을 입었다. 그 옷에는 23kg이나 되는 39,000개의 동양산 진주와
3,000개의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고 그 옷에 달린 백합들은 진주를 깎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옷값은 시가 19,000,000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1606 년 9월 14일 아들의 세례식 때 단 한 번 그 옷을 입었다.
칼리프 압두라만 3세(891--962)는 49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을
다스렸다. 그 제국의 1 년 동안의 수익금은 336,000,000 달러였으며, 당대의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해군과 육군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그는 제국 전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6,321 명을 뽑아 모두 부인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618 명의 자식을 두었다. 한마디로 그는 현명했고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리고 2,600,000,000 달러 정도의 돈을 축적했었다. 사후 그의 유서가
공개되었는데,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었다.
"49 년 동안의 부귀 영화를 누렸던 나의 재임 기간 중에 완전한 행복을 느꼈던
날들을 손으로 꼽아보았는데 불행히도 단 14일밖에 되지 않았다."
프랑스의 백작 시인 필립 데스포르테(1546--1606)는 단 세 줄로 된 시에 대해
3,300,000 달러 가치의 대우를 받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시를 읽어주고
싶어했던 프랑스의 왕 헨리 3세가 수여한 돈이었다. 다음은 원문 프랑스어를 번역한
전문이다.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이름이 없이도, 명예가 없이도
난 그렇게 태어나도 좋습니다
아마도 그 왕은 이 시에 굉장히 만족했었던 것 같다. 시인의 일생 동안 네 채의
대저택을 주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식으로 그는 역사상 최대의 금액인 3,300,000
달러를 받았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생물은 군함새이다. 지휘관 J. E. 켑스틱데일은
1941 년 크로노미터를 이용하여 군함새의 속도를 측정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
군함새는 시간당 418km의 속도로 날아다닌다는 것을 알아냈다.
가장 빠른 네 발 달린 동물은 치타로 시간당 112km의 속도로 달린다. 가장 빠른
물고기는 돛새치로 치타와 같은 속력으로 움직인다. 가장 빠른 곤충은
오스트리아산의 잠자리인데 시간당 88km의 속도로 날아다닌다. 인간은 최고의
속력을 내어도 시간당 36.8km밖에 달리지 못한다.
한편, 거북이는 4시간에 1.6km를 움직이는데, 가장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생물은
달팽이다. 달팽이는 1시간에 48m 움직인다.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플라밍고는 이제까지 알려진 어떤 새들보다 오래 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알을 품을 때나 목욕할 때만 앉아 있다. 그리고 플라밍고는 주로
한 다리로 서 있는데 그 이유는 두 다리로 서 있을 때보다 한 다리로 서 있는 것이
에너지를 덜 소모하기 때문이다.
회오리바람이 불면, 플라밍고는 얼굴을 날개 아래로 쑤셔박고 날개와 함께 단단한
쐐기형을 만들어 바람 쪽으로 몸을 구부린 채, 한쪽 다리로 서 있는다.
그들은 건초로 만들어진 3--4m의 원추형의 둥지를 튼다. 플라밍고들은 부화 기간
동안만 이 둥지 안에 앉아 있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플라밍고는 강렬한 빨간색을 띠고 있다. 그러나 플라밍고의 신체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피부 색깔은 변하게 된다. 이것을 몇 년 전 플로리다에 있는
히알리 레이스 트렉에서 뉴욕에 있는 뉴욕 동물원 협회로 보낸 몇 마리의
플라밍고들에게서 발견된 사실이다. 처음에 플라밍고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의
색깔은 빨강이었는데 차츰차츰 ^1256,12^은 핑크색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조사한 결과, 그들이 밀, 끓인 쌀, 후추, 생당근, 새우, 말린 파리들, 대구
간유와 양조용 이스트로 된 것들만을 먹었기 때문에 그들의 몸이 쇠약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부족했던 영양분이 재공급되자 그들은 다시 본래의 색깔을 띠게
되었다.
한편, 긴 부리 때문에 플라밍고는 머리를 숙여서 음식을 먹는데 불편함을 겪는다.
그래서 그들은 물을 벌컥벌컥 마셔서 그 속에 든 음식물들을 부리로 빨아들인다.
그러나 이때 플라밍고의 부리는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진다.
캘리포니아를 방문하여 이 세코야나무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 밑동을 뚫어
만든 터널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상록수의 모습을 사진을 통하여
보았을 것이다.
식물 왕국의 기둥과 같은 이 상록수는 지구상에 현존하고 있는 나무들 중 가장 큰
종류인 동시에 가장 오래된 생물이기도 하다.
이 세코야나무의 원종은 약 1억 년 전부터 이 지구상에 자생하기 시작하여 한때는
주로 지구 북반구 지역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나 빙하기 때 거의 멸종하여
지금은 단 두 종류만이 살아남게 되었으며 이 두 종류 모두 미국 태평양 해안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자라고 있다.
이 세코야나무의 한 종류는 보통 98m의 높이에 9m의 두께로 자라는데 수령이
4,000 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높이만을 따지자면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는 단연 삼나무로서 이 나무는 최고 100m, 즉 30층 건물의 높이로 자라기도
한다.
어쨌든 세코야나무는 매우 훌륭한 건축 자재로 쓰이고 있다. 이 거목의 껍질은
불에 잘 견디고 곰팡이와 벌레에도 강한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거대한 나무가 오랜 세월 동안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습성의 결과일
것이다.
좀 이상스럽고 몰인정해 보이기도 하지만, 어미 뱀장어는 새끼를 물 속에서
낳으면, 그 새끼들은 혼자 남겨져 스스로 그들의 어미들이 왔던 길을 찾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어미 뱀장어들은 유럽의 강지류들을 타고 멀리에서 왔기 때문에, 새끼들이 그들의
집을 찾는 데는 보통 3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새끼 뱀장어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모든 뱀장어들은 같은 장소에서 알을 낳는데, 그곳은 대서양에 있는
버뮤다 섬 근처이다. 보통 새끼 뱀장어들이 8 년에서 12 년이 되면 알을 낳게
되는데, 새끼를 낳게 되면 어미는 죽게 된다. 그리고 그 새끼들은 또다시 그들의
어미들이 왔던 길을 찾아 혼자만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미국에서 태어난 새끼 뱀장어들은 태어나자마자 그들의 어미들이 왔었던 길을
찾아 서툴게 헤엄을 치면서 해안 쪽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에서 태어난 새끼
뱀장어들은 그들이 왔었던 강과 시냇물로 올라가기 전에 일단 대서양을 가로질러
헤엄쳐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여행은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보통 10 년에서 12 년 사이에 새끼 뱀장어들은 완전히 성숙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깨끗한 물을 떠나 다시 위험하고 긴 여행을 거쳐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알을
낳기 위해서이다. 그리고는 죽는다. 그래서 뱀장어들은 언제나 소금물, 즉
바닷물에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수컷 오징어는 암컷이 상처를 입을 경우에 그런 암컷을 돕기 위해 항상
대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수컷이 상처를 입을 경우, 암컷은 그 수컷을 돌보지
않는다.
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이 꽃이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습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난의 몇 가지
종류는 정글에서 자라나던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정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이 꽃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빛을 받아야 하고 뻗어나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정글의 밑바닥에 있으면, 나무들과
키 큰 식물들의 무성한 잎에 가려 햇빛을 받을 수가 없다. 게다가 지면 바로
위에서는 순식간에 자라나는 잡초들 때문에 난은 숨이 막혀버리고 뻗어나갈 공간을
찾지 못할 것이다.
기품 있는 난꽃을 보고 찬사를 보내듯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난의
억척스런 생존 능력에도 우리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햇빛과 뻗어나갈 공간을
찾기 위하여 난은 키가 큰 정글 나무들의 가지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쉬워 보이지만 난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생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물을, 얽히고설킨 나무 꼭대기까지 빨아올릴 수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난의 세포
속에는 공기로부터 필요한 수분을 빨아들이는 작용을 할 수 있는 특수한 세포가
생겨났다.
또한 난의 생존을 도와주는 동반자나 하인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있다.
박테리아라고 알려진 이 단세포 식물은 난의 뿌리에 붙어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식물들이 없이, 또 난이 기생충처럼 붙어사는 나무들 없이
귀족 같은 자태를 뽐내며 난은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엄격하게 이야기해서 원숭이가 나무에서 살 듯이 이렇게 사는 난을
기생충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무에서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않는 난에 비해서 나무
열매를 따먹는 원숭이가 더 의존적이라 할 수 있다. 햇빛이 더 잘 들어오고 습기가
더 많은 이층집에 살고 있는 정도로 여기면 된다.
북극의 왕인 북극곰은 세계 제일의 고기잡이이다. 조용하게 얼음 위에 누워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면 그의 힘센 발을 휘둘러 한 번에
물고기를 집어 올린다.
한번은 이런 일이 보고된 적이 있었다. 어떤 북극곰이 물 속에 있는 해표를
단번에 끄집어올려 한 방에 얼음 위에 쓰러져버리게 만든 일이었다.
북반구 숲에 사는 곰들은 냇가에서 꾸준히 기다리고 있다가 그 커다란 발로 물
속에서 연어떼를 한 번에 훑어낸다.
연방 법정의 '살인 재판'에서 부엉이의 말이 증언으로 받아들여져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법정 역사를 통틀어 가장 희귀했던 이 재판은 1934 년, 아이다호의 보아즈에 있는
미국 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애니 드링크 멕길이라는 인디언 여인은 자신의 13세인
딸인 메이블 소여(혹은 애니라고도 불림)가 실종되어 죽었다는 메시지를 부엉이가
자신에게 보내주었다고 증언했다. 그 증언은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부엉이가 그
소녀의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주었을 때, 그 소녀는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죽은 소녀의 어머니는 할머니의 집에 있던 딸이 잘 있는지 보기 위해 자신이
둘러보지 않았던 사실을 부엉이가 말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때 부엉이의 목소리는
신비스럽게 들렸으며 부엉이가 딸의 살인 용의자인 도티 루이스의 집으로 가는
방향의 어디엔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확실히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때 애니 멕길의 증언은 반노 부족의 인디언 통역관인 톰코스그로브에 의해
통역되었다.
인간에게는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생각하는 힘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끈적이
곰팡이류의 한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은 축축한 나무 기둥에 붙어서 자라는데 눈에
잘 띄지 않는 덩어리로 뭉쳐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 식물은 동물의 잔부스러기를
먹고 사는데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할 것을 분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식물은 또한 자기들 중에서 암컷을 구별해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진기한 식물이 있는데, 이것은 생각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하는 것 같다.
밤이 다가오면 클로버는 잎을 모두 접고 겉으로 보기에는 잠을 자는 것 같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자연학자들은 식물이 '생각'을 한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여러 가지 사건을
관찰하였다. 보스턴 담쟁이를 매일 관찰해보면 마치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갈 길을 결정하듯 덩굴손이 벽돌에 들러붙기도 하고 그대로
뻗어나가기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 들러붙을 곳을 찾아 끊임없이 줄기가 둘레둘레 돌아다니는 식물도 있는데,
칠레의 어떤 식물은 1시간 15분 만에 나무 하나를 완전히 빙 돌아갔다. 이런 기이한
식물들 가운데 가장 '머리가 좋은' 것은 아마도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일 것이다. 이
식물들은 자기가 잡은 것이 곤충인지 먼지인지를 가려낼 수 있다. 곤충이면
먹어버리고 먼지이면 도로 내보낸다.
마지막으로, 호수에 사는 찌끼를 이루는 식물 중의 하나인 크기가 아주 작은
단세포 식물이 있다. 이 작은 세포들은 마치 동물같이 돌아다닌다. 이것들은 먹는
습관이 동물들 같고, 또 동물처럼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물질이 따로 있다. 정말
이들은 지능이 높은 동물들과 똑같은 행동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만일 이들에게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면 시행 착오를 수행하는 사고력을 지니고 있는 마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만일 싫어하는 어떤 것이 자기를 괴롭히면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해보다가 올바른
길이 나타나면 그리로 도망을 갈 수가 있다. 이러한 행동 양식은 분명 동물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 원시인의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식물은 과연 살아
있고 사고력이 있는 존재라고 간주해야 할까? 누가 알 수 있으랴? 아마도 옛 시인의
시 속에서 그 진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빛을 그리워하고 꽃들은 사랑을 갈구하노라."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생물은 거대한 악어나 독뱀이 아닌 15cm 길이의
조그만 물고기일 것이다.
그 물고기는 피라냐라고 불리는데 비록 몸집은 작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물고기일 것이다. 피라냐가 공격하면 모든 것들은 삽시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피라냐는 가까이에 있는 것들, 가령 물고기, 동물, 심지어는
사람까지 잡아먹기 때문이다. 작은 몸집과 작은 입을 가지고 있음에도, 피라냐는 단
한 번에 사람의 손가락을 물어뜯을 수 있다. 그리고 피라냐는 언제나 1,000 마리
이상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데 이들 피라냐는 단 5분 만에 사람을 해골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철저한 낭비'를 한 것에 대해서 말하자면 인도 푸나 지방에 있는 프란다하르
성채를 따라갈 수 있는 게 없다. 이 성채 자체의 호화스러움도 낭비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성문 밑바닥은 순금 덩어리로 기초를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이 성채는
1290 년, 그 지역의 제후 베다르의 명에 의하여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성문이
들어서게 될 곳의 지반이 단단하지 못하여 모두 걱정하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 베다르는 꿈에 지반을 황금 덩어리로 채우라는 계시를 받고 이것을 실행에
옮기도록 명령하였다고 한다.
3.6m 깊이의 구덩이에 채워진 금 덩어리의 무게는 모두 12,231kg으로 현재
시가로 400,000,000 달러의 가치가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낭비가 제 값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 성문은 700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건재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원숭이는 훌륭한 연기자일 뿐만 아니라 재미있게 문제를 풀 줄 아는 동물이기도
하다. 원숭이의 손에 약간 미치지 않게 바나나를 매달아놓으면 이 교활한 녀석은
맛있는 음식에 손이 닿을 때까지 상자를 겹쳐 쌓고 올라갈 것이다. 만일 상자가
충분하지 않고 작대기가 하나 있다면 상자 위에 올라서서 작대기로 바나나를 밑으로
내릴 것이다.
만일 긴 장대 하나만 원숭이에게 주면, 이 장대를 곧바로 세워 놓고 타고 올라가
장대가 쓰러지기 전에 재빨리 바나나를 움켜쥐고 땅으로 뛰어내릴 것이다. 구멍을
끼워 맞출 수 있는 작대기를 몇 개 주면 그 작대기를 끼워 맞춰 가지고 바나나를
밑으로 끌어내린다.
만일 원숭이에게 여러 가지 종류의 기구를 준다면 갖가지 교묘하고도 색다른
방법으로 먹이를 확보할 것이다.
원숭이는 자전거를 굉장히 잘 타고 롤러 스케이트 역시 잘 탄다. 담뱃대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썰매에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기도 하며, 옷을 차려입고 이를 닦으며
머리를 빗고 다른 짐승들과 어울려 놀기도 한다. 원숭이는 아기를 돌볼 줄도 안다.
어항 안에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금붕어나 열대어들의 자태를 무색하게
하는 물고기가 있다. 멸치의 한 종류이며 길이가 13cm 정도 되는 구루니온은
해마다 남부 캘리포니아 해변을 무대로 마치 서커스에서 훈련받은 것처럼 멋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봄과 여름에 이 물고기는 조수 간만과 달빛이 적당할 때를 골라 캘리포니아
해변으로 몰려 올라온다. 일단 모래사장으로 올라 온 물고기들 중 암컷이 먼저
모래에 꼬리를 세워 흔들어 몸이 잠길 만큼 구멍을 파고 알을 낳은 후 빠져나오면
이것을 기다리던 수컷이 그 구멍에 수정을 한 다음 파도를 타고 함께 바다로 다시
헤엄쳐 돌아간다. 이 모든 과정이 30초 안에 끝난다.
모래에 파묻혀 있던 이 알들은 다음 밀물 때에 부화되어 꼬리를 흔들며 모래에서
빠져나와 바다로 들어갔다가 이듬해에 다시 여기로 찾아와 부모한테 물려받은 이
신기한 '달밤의 춤'을 이어간다.
옛날 사람들은 행동도 크게 하고 생각도 크게 하기를 좋아했다. 이집트에 있는
조각상들은 높이가 27m이고, 초기의 바빌로니아 왕들은 120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최초로 만들어진 책들은 거대한 돌 위에 새겨졌다고 한다. 이런 책들
가운데, 수메르 인이 쓴 책인 "길가메쉬의 서사시"나 이집트 왕들의 역사가 담긴
책은 한 권의 무게가 몇 톤씩 나간다고 한다.
고대에는 책뿐만 아니라 편지도 진흙이나 돌덩어리 위에 씌어졌었다. 요정같이
귀엽고 작은 이슈타르(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의 사랑과 풍요의 여신)나 아루루에게
보내는 고상한 연애 편지를 무거운 돌덩어리 위에 적어서 보내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 시절에 당신이 우편 배달부였다면 또 어땠을까?
캥거루는 단연코 점프의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괴상하게 생긴 캥거루라는
동물은 걷지는 못하면서도 뛰는 것에 있어서는 어느 것도 따라갈 수 없다. 한 번에
4.5--6m의 거리를 뛰어넘는 이 캥거루가 경주를 한다면 시속 64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장시간을 계속하여 뛸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캥거루는 간혹 32km의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뛰는 것을 볼 수 있다. 뛰는 높이 또한 대단하여 키가
1.5m 정도 밖에 안 되는 이 캥거루가 차 한 대를 뛰어넘는 것은 예사이다.
캥거루는 새끼가 완전히 성숙할 때까지 주머니에 넣어 기르는 습성을 갖고 있는
유대 동물이다. 갓 태어난 캥거루 새끼(2.5cm도 채 안 된다)는 즉시 어미 캥거루의
배에 달려 있는 털주머니로 옮겨져 4--5개월 동안 안락한 자세로 성장한다. 물론
이러한 습성은 새끼들을 안전하게 기르기 위한 배려이지만 어미에게도 새끼를
데리고 어디로든지 갈 수 있는 편리한 면을 제공하고 있다. 캥거루 새끼는 자신의
몸집이 주머니에 맞지 않을 정도로 커지면 주머니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어미와 같이
뛰는 연습을 한다.
식물성 동물인 캥거루는 간혹 다른 동물을 공격하기도 하며 선수처럼 권투 장갑을
끼고 권투를 하도록 훈련을 시킬 수 있다. 캥거루는 앞발을 이용하여 때리거나
휘두르는, 놀라운 펀치력을 갖고 있으며 꼬리를 여분의 다리처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훈련받은 캥거루는 상대방 선수가 녹초가 되어 쓰러질 때까지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다.
텔로에 있는, 바빌로니아의 도서관은 아마도 세계 최초로 책을 모아둔 곳일
것이다. 이 도서관은 벽돌로 만든 집이 아니라, 벽돌 위에 씌어진 서첩이 3 만
장이나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도서관은 책을 대출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팔꿈치에다 이 벽돌책을 끼고 집으로 가져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고대의 벽돌 서가에서 우리는 산수책, 사전, 문법책, 성가곡집과 바빌로니아를
휩쓸었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서사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바빌로니아 홍수 이야기에서 노아와 같은 역할을 한 사람의 이름은
우트나피슈팀이었다. 노아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도 방주를 만들어 갖가지
종류의 새와 짐승들을 데리고 들어가 결국 온 인류를 홍수에서부터 구출해냈다.
이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에 따르면, 우트나피슈팀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영생을
선물 받았다고 되어 있다. 신들은 "가장 높은 산 저 멀리, 가장 먼 바다 저 너머"에
있는 곳에 그를 거처하게 하고 그곳에서 "모든 인간의 자식들에게 삶의 지혜와
죽음의 공포에 대하여 가르치며 바로 오늘부터 영원의 삶을 사는 축복"을 그에게
선사하였다.
3 만 장의 벽돌로 만든 책이 있고 대홍수에 관한 서사시가 보관되어 있는 텔로의
이 도서관은 5,500 년이나 오래된 곳이다. 그 중에서 우리는 앗시리아의 한 왕이
남긴 글을 보며,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나, 아슈르바니팔은 좋은 책을 즐겨 읽으며, 전장에서 잡혀온 포로들의 코와 귀를
잘라내는 것 또한 즐겨한다."
한 단어의 잘못된 발음으로 42,000 명이 살해되어 유태인의 한 지파가
멸종되었다. 이 십볼렛이라는 단어는 '옥수수 한 자루'라는 희랍어로서 '쉬'(shi)를
시(si)로밖에 발음하지 못하는 에브라임 족(Ephraimites)(현재의 스페인과 루타니아
사람들의 조상)을 가려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성경(사사기 12장 5절과
6절)에 씌어져 있다.
"그리고 그가 십볼렛이라고 하며 그것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자 그들은
그를 요르단으로 가는 길목으로 데려가 죽였다. 이렇게 죽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42,000 명이 되더라."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경전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아마도 "코란"일 것이다.
"코란"의 저자인 마호메트는 이것을 천국에서 썼다고 주장한다. 1 년에 한 번,
가브리엘 천사가 이 경전의 일부분을 천국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지고
내려왔다고 그는 말하였다. 동시에 그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매년 가브리엘은 마호메트에게 "코란"의 일부를 낭송하여주었다.
가브리엘이 불러준 내용은 마호메트의 비서에게 전달되었다(마호메트 자신은 쓸
줄을 모른다). 그러면 그녀는 손에 잡히는 아무 물건 위에다 허둥지둥 경구를
써넣었다. 조약돌, 양의 견갑골, 낙타의 뼈, 야생 대추나무의 잎, 또는 양피지
조각에도 썼다. 이것이 마호메트교의 경전이 씌어진 경로이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과정을 거쳤지만, "코란"에는 진리를 깨우쳐 주며, 순수하고도
신뢰가 가는 예지로 번득이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 신약과 구약 성서에서 찾을 수
있는 진리의 정수를 마호메트도 역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겸손하고
경건한 우에 대한 다음의 글을 들어보자.
"너희들의 노예들에게 너희들이 먹는 것과 같은 것을 먹이고 너희들이 입는
것과 같은 것으로 입힐지어다. 너희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그들이 범하거든 차라리
그들을 팔아버려라. 그들 역시 신의 자식들로 고통을 받을 수 없느니."
"인간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잘 이해하여라. 모든 인간은 자기 이웃의
형제이거늘 신 앞에 평등하도다."
마호메트 교도들에게 있어 "코란"은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코란"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하여 많은 회교 사원에서는 1 년
365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경전이 낭송된다. 상당히 많은
분량을 어떻게 매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페이지가 바뀔 때마다 돌아가면서 읽기
때문에 가능하다. 30 명의 사제가 돌아가면서 읽기를 끝내면 다른 집단이 새로이
차례를 맡는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어떤 마호메트 교의 사제들은 "코란"을 70,000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가대의 남성 소프라노를 맡고 있던, 이탈리아의 나폴리 출신의
칼로브로스치 파리넬리는 세상에 알려진 가장 비범한 소프라노 가수이었다.
1734 년 그가 런던에 출연하였을 때, 청중들의 열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명성이 스페인의 왕궁에까지 알려지자 그 당시 극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던
필립 4세는 그를 자신의 왕궁으로 초청하였다. 그 후 10 년 동안 파리넬리는 필립
4세를 위하여 매일 밤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파리넬리는 보통
사람보다 7--8 도 이상의 높은 음을 낼 수 있었으며 그 음들은 모두 우렁차고
일정한, 그리고 매우 깨끗한 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한 가지 음정을 6분 동안 계속해서 낼 수 있었다.
힌두 인들에 의해 문학사상 가장 눈에 띄는 두 권의 책이 저술되었다.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가 그것이다.
"마하바라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책에 속한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불운한
안토니", "포사이트 가의 이야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과 같은 장편 소설들이
최근 들어 많이 발표되기는 하였다.
이 소설들은 대하 소설로 씌어진 것들로 한 권이 보통 1,000 페이지에 달한다.
그러나 "마하바라타"에 비하면 이런 소설들은 미미한 상상력의 발동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하바라타"는 7,0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작품의 저자는 과연 누구일까?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수천 명이 되는
시인들의 작품을 모아놓았기 때문에 어느 누가 자기 이름을 감히 붙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힌두 인들의 방식은 그렇다. 그들은 아마도 역사 속에서 가장 심오한
사색가이기도 하면서 가장 겸손한 민족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마하바라타"는 유명한 호머의 "일리아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일리아드"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싸움과 복잡한 관계에 관한
서사시이다.
또한, 한 나라의 아름다운 여인을 다른 나라에서 빼앗기면서 발생되는 갈등 구조
역시 "일리아드"와 비슷한 점이다. 찰스 엘리어트 경 같은 사람들은 순수 문학적인
면에서 볼 때 "마하바라타"가 "일리아드"보다 더 훌륭한 시라고 간주하고 있다.
길고 따분한 부분도 있긴 하다. 하지만, "마하바라타"는 7,0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어떤 문학서에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구절들이 들어 있다. 그
아름다운 구절 중의 하나가 "신의 노래(바가바드기타)"이다. 이 "신의 노래"는 힌두
인의 신약으로 불려진다. 우리가 성경 위에 서약을 하듯 인도 사람들은 법정에서
이것의 이름을 걸고 서약을 한다.
천상의 장엄한 쇼가 적도의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다. 별들의 화려한 잔치가 남쪽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북극성이나 북두칠성은 볼 수가 없으며 그 대신 십자성과 거꾸로
된 달의 얼굴이 보인다.
달은 지구를 도는 동안 자전축을 중심으로 하여 스스로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우리에게 지역적으로 제한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을 연상케 하는 달 표면의 모양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모양일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이러한 달의 모습이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독자는 매우 놀랄 것이다.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틀린 관측 장소에서 달을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둥근 달의 모양은 '달의 얼굴'이 거꾸로 보이는 남희귀선을 비롯하여 서로 다양하게
틀린 모습으로 보인다. 즉, 아르헨티나에서 보이는 울퉁불퉁한 달 표면의 모습이
북쪽 지방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달의 차고
기우는 모습에도 똑같은 이론이 적용된다.
'신의 세면대'라고 불리는 타이티카카 호수는 크기가 거의 에리 호수의 면적에
맞먹는다. 이 호수의 수면은 하늘에 닿을 것같이 높아 워싱턴 산을 모두 합쳐 쌓아
놓아도 그 꼭대기마저 이 호수에 잠길 정도이며 이 호수의 한가운데에서는 가까운
내륙 지방의 안데스 산맥 정상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육지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이 호수의 물은 신성한 느낌을 줄 정도로 신비하다. 이 물에서는 쇠가
녹슬지 않으며, 달걀이 삶아지지 않고 단 한 종류의 물고기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어젯밤부터 '고야'라는 훌륭한 배가 퓨노의 산꼭대기에 닻줄을 내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데스 산꼭대기, 구름 위에 배를 띄운다는 것이 참으로 신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독자는 어떻게 헐(Hull)에서 만들어진 이 고야라는 배가
영국에서부터 안데스 산까지 항해해왔는지 궁금할 것이다.
영국에서 건조된 이 1,600 톤 짜리 선박은 우선 파나마 운하를 거쳐 페루의
칼라오 항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항구에서 조그마한 조각으로 분해되어
페루 인디언들의 등에 실려 5km 높이의 산 정상의, 이 잉카의 갈리리 해안 가에
옮겨진 후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복원되었던 것이다.
신대륙에서 살고 있던 민족들 중 가장 뛰어난 문명을 갖고 있던 잉카족들이
신성하게 취급하던 타이티카카 호수의 거울같이 잔잔한 수면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2개의 섬이 있다. 해와 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두 섬에는 태양신으로부터 잉카
제국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고 하늘에서 내려온 두 남매, 멘코와 칵펙의 전설을
비롯하여 한때 이 섬이 금과 은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투팍 잉카
유판쿠이가 이곳에 그의 제국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과 태양신을 위한 신전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금도 마치 그 금빛 찬란한 궁전의
모습이 먼동과 노을을 따라 이 호수의 수면에 평화스럽게 비치는 듯하다.
지금은 부서진 성벽과 돌기둥의 폐허만이 남아 있지만 잉카의 갈리리 해안의 진흙
밑바닥에는 찬란하였던 금빛 문명의 이미지가 번쩍이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는
구릿빛 나는 어부들이 발사스라는 추가 달린 갈대 그물로 그 신성한 호수에 살고
있는 오직 한 종류의 송어와 비슷하게 생긴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있다.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커즈코는 태양의 자녀들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의미로
타반틴수요, 즉 '지구의 네 모퉁이'라고 불리고 있다. 천상에 살고 있던 그들은 가끔
해발 3.4km의 지상으로 놀러 내려왔으며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온 그들은 재빨리
몰려온 백인들의 심술궂은 전염병에 의하여 쓰러지고 만다.
고대 잉카 민족은 참으로 독특하고 신비스러웠던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거친 옷(옷이라도 있었다면)을 입고 뛰어다닐 때 그들은 이미 태양을
신으로, 그리고 무지개를 깃발 삼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쓰거나 읽는 문자 대신 '쿠이푸스'라는 매듭으로 유일하게 그들의 뜻을
기록하고 있었으나 아직도 이 매듭은 몇몇 전문가를 제외한 사람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기계, 쇠붙이 연자, 바퀴 같은 것들을
모르고 있던 시대인데도 그들은 훌륭한 도로와 튼튼한 다리를 비롯하여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궁전과 신전들을 세우고 있었다. 그 당시 그들은 조그맣고 나약한
라마라는 짐승만을 기르고 있었을 뿐, 말이라는 짐승도 피자로가 왔을 때에야
비로소 처음 구경하였다. 잉카 사람들이 말을 탄 스페인 군사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 병사가 그들에게는 타고 있는 짐승의 한 부분으로 보여졌을 정도이었다.
잉카는 오래된 민족이지만 그 문화의 흔적은 아주 미약하다. 찬란하였던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쿠이추아라는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머리에 쏟아져 내리던 뜨거운
햇살뿐이다.
하지만 커즈코는 아직도 이들 가슴속에 인간 혹은 세월의 손이 영원히 닿지 않는
성역의 도시로 남아 있다. 커즈코는 이미 금빛으로 치장된 신전이 있는 위대한
도시는 아니지만 아직도 '태양의 도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오소리는 족제비과에 속한 동물 중에서는 가장 덩치가 크고 용맹스러운 성질을
갖고 있다. 주로 추운 지방에 서식하고 있는 이 독종은 잔인한 사냥꾼으로서 주로
바위나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먹이를 향해 몸을 날려 물어 죽인다.
오소리는 비록 1.2m 길이에 18kg 정도의 가벼운 몸집을 갖고 있지만 180kg이
넘는 순록을 비롯하여 눈에 띄는 거의 모든 동물을 먹이로 삼을 정도로 난폭한
성질을 갖고 있다.
또한 오소리는 난폭한 만큼이나 교활하여 아무리 정교한 덫이라도 피해갈 수 있는
지능을 소유하고 있다. 사냥꾼들의 표현에 의하면, 이 오소리는 두더쥐같이 땅을 잘
파고 수달처럼 헤엄도 잘 치며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한다.
프랑스 계 캐나다 사람들은 이 오소리를 대식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것이나
먹어치우는 오소리의 습성에서 연유된 표현이다. 하지만 이 오소리는 사람에게는
덤벼들지 않는다.
껍질이 마치 울퉁불퉁한 돌멩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돌치라고 불리는 이
물고기는 주로 더운 지방의 바다 밑바닥에 서식하고 있는데 산호초나 바위틈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모습은 실제로 돌덩이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이 못나게 생긴 돌치에게도 무시하지 못할 면이 있는데 그것은 이 돌치의
등지느러미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맹렬한 독이 분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끼리는 지구에 살고 있는 제일 큰 포유동물이다. 특히 아시아 산 코끼리보다
비교적 큰 몸집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 산 코끼리의 무게는 5 톤이 넘는 경우가
흔하다.
주로 나뭇잎, 풀, 과일을 먹이로 하는 순수 초식동물인 코끼리가 이 거대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8시간씩 쉬지 않고 먹어대야 하는데, 동물원에 있는
코끼리들이 하루에 먹는 양을 달아보면 45kg이 넘는 풀이나 엄청난 양의 과일과
채소를 먹어 치우고 있다.
왕성한 식욕 다음으로 이 동물이 갖고 있는 특징은 물론 기다랗게 늘어진
'코'이다. 어떠한 동물도 이 코끼리 앞에서 자기의 코를 자랑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코끼리는 이 코를 감각 기관으로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먹이를
집어 올리거나 물을 빨아올리는 일에 사용하는 한편, 성난 것을 알리는 나팔
대용으로도 한다. 때때로 살인 무기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코끼리는 이 코에만 사람의 몸 전체에 있는 근육의 숫자와 비슷한 40,000개의
독립된 근육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힘과 더불어 매우 섬세한 감각을 갖고
있다. 한 번의 조임으로도 사람을 능히 죽일 수 있는 힘과 더불어 매끄러운
바닥에서 한 가닥의 실을 집어 올릴 수 있는 섬세한 감각도 갖고 있는 것이다.
특정한 종류의 백조나 오리와 같이 이 벼슬농병아리도 특이한 방법으로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다. 위험을 감지한 어미 새는 먼저 새끼들이 등에 오를 수 있도록
수면에 잠기게 등을 낮춘 다음, 새끼들이 모두 탄 것이 확인되면 쏜살같이 헤엄쳐
안전지대로 피신하는 것이다.
위기의 순간을 훨씬 넘긴 이후에도 새끼들이 어미의 등에서 내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꼬마들은 어미의 등에 업혀 다니는 것이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노르망디에서 1.6km 떨어진 영국 해협 위에 솟아 있는 몽 생 미셸 도시의 모습은
마치 환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높이 솟아오른 수도원의 뾰족탑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풍의 가옥들이 중세기식 성벽에 둘러싸인 이 도시의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이 도시는 그 아름다운 외양만큼이나 절절한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이 도시가
들어서 있는 곳은 원래 프랑스 본토에 접해 있던 땅으로서 상수리나무 숲을 뚫고
우뚝 솟은 75m의 정상에는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그 후 로마가 북유럽을 침공할 당시 이 신전은 로마인들에 의하여 주피터 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바뀌게 되며 수세기가 흐른 뒤에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교회가 바로
이곳에 세워지고, 708 년에 또다시 이 교회는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바뀌게 된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이곳의 토양이 비교적 농사에 적합하여 한때 많은 농부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나 725 년, 지진으로 범람하였던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로는 이
지역의 땅은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으로 변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몽 생 미셸 해안 농경 마을'이 '몽 생 미셸 섬'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하느님이 지진으로부터 지켜준 성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수도승들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수도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후 성역으로 소문나기 시작한 이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가고 이에 따른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자 탄탄한 재정을 갖추게 된 이 수도원의 권위는 한층 향상되었다.
흰 돌로 쌓은 성벽과 자연 그대로의 암석으로 이루어진 성곽, 그리고 접근을 가로
막는 거센 파도로 둘러싸인, 천연적인 요새의 조건을 갖춘 이 몽 생 미셸은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의 북부 지방이 영국에 점령당했을 때도 여전히 프랑스 영토로
남아 있게 된다. 영국군이 수차례 공격을 시도하였으나 이 섬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에 두 번씩 이 몽 생 미셸로 밀려오는 밀물의 파도는 그 높이가 1.5m로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파도로 기록되고 있다. 물이 빠진 후의 이 몽 생 미셸은 본토와
이어지는 8km 거리의 모래사장이 드러나는데, 1875 년 이곳은 밀물 때에도 건너갈
수 있는 돌길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250 명의 인구가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고 해발 150m의 정상에는
1,200 년의 역사를 가진 수도원이 바다를 굽어보고 서 있다.
서양의 민가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 '찾아내다' 혹은 '파헤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ferret out'이라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은 원래, 아직 쥐약이 개발되지
않았던 옛날에 농가에서 담비를 이용하여 쥐를 쫓아내던 습관에서 유래된 말이다.
족제비과에 속하며 흰 털을 가진 담비는 몸집의 크기도 고양이와 거의 비슷할
뿐더러 이들이 쥐를 쫓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농부들을 도와 쥐를 쫓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것같이 보인다.
담비는 매우 날씬하고 매끄러운 몸통을 갖고 있어 좁은 쥐구멍을 드나들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며 분홍색이 도는 그의 눈은 또한 아주 깜깜한 곳에서도
조그만 물체를 놓치는 법이 없다. 농장의 우리에 갇혀 사육되던 담비는 추수 때가
되어 쥐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면 쥐잡기에 풀려진다.
농부는 먼저 담비를 주머니에 넣은 다음 쥐구멍을 찾아나선다. 일단 쥐구멍을
발견한 농부가 담비를 그 구멍 앞에 내려놓은 다음 살짝 밀어주면 이 담비는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쥐를 찾을 때까지 어두운 쥐구멍을 샅샅이 뒤진 다음 잔인하게
공격한다.
처음에는 마구 발악하던 쥐들이 차차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의 힘을
감지하고 밖으로 튀어나와 도망가지만 담비는 절대로 이들을 놓치지 않는다. 밖으로
나온 쥐들은 쥐구멍에서 경험하였던 공포보다 몇 배나 무서운 담비의 추적을
받는다. 드디어 벼락같이 쫓아온 담비의 이가 쥐의 목을 꿰뚫는다.
담비가 이렇게 쥐구멍을 하나씩 차근차근 뒤져나가며 쥐들을 쫓아내고 있을 때
농부가 할 일은 그 옆에 앉아 담비의 작업이 끝나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움직임'이란 동물의 세계에만 국한된 단어는 아니다. 간혹 그 속도가 극히 느리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띄지만 않을 뿐, 수많은 식물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어쨌든
어떤 식물의 모습을 장시간 지속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본다면 이러한 식물의
움직임을 뚜렷이 포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폐션 플라워(passon flower: 순교화,
시계초)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보면 그 덩굴이 마치 문어발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패션 플라워의 곧은 덩굴은 대체로 원을 그리며 밖으로 뻗어가다가, 근처의
다른 식물이라든가 어떤 물체에 부딪히면 그것에 감기기 시작한다.
이 꽃의 이름은 초기 미 대륙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치 이 꽃이 예수의 순교를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즉 스페인
사람들은 이 순교화의 10개의 꽃잎을 십계명으로, 5개의 수술을 예수의 다섯 군데
상처로, 세 가지로 분류되는 이 꽃의 종류를 예수님의 손톱 3개로, 왕관처럼 생긴
이 꽃의 모양을 예수가 썼던 가시관으로 비유하였던 것이다.
15세기에 살았던 프랑스와 비용은 "우리들의 불행하고도 악독한, 쾌활하면서도
미친 형제"라고 불렸다. 그는 파리에서 가장 꾀가 많은 좀도둑이기도 하였으며,
프랑스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보다 더 흉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도
드물다. 그리고 그보다 더 완벽한 시를 읊은 사람도 드물다.
야수적인 면과 고상한 기품의 양면성을 지닌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20세에 그는
소매치기의 대가가 되었고 25세에 사제를 죽였으며, 30세에 목을 잘라 죽이는 깡패
조직의 두목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시기에 그는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올리는
시를 썼다.
빈민가에서 태어난 프랑스와는 12세가 되자 비용이라는 이름의 점잖은 사제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자기 후견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비용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시인의 이름이 되는 영광은 받기도 하였지만 그의 나쁜 행동으로 인해 먹칠을
당하게도 되었다. 이 자비로운 늙은 사제는 그에게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법을
가르치는 데 성공했지만 정직하게 사는 법은 가르칠 수가 없었다.
그의 후견인은 비용을 대학에 보냈다. 그러나 이 젊은 시인은 그의 동료 학생들과
사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대신 도둑놈들과 교제하는 쪽을 택하였다.
그는 도둑놈들의 계관시인이 되었다. 도둑들 중의 한 명이 교수형 선고를 받았을
때 비용은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좋은 여행'이란 시를 지어, 음탕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지옥으로 전송하였다.
그는 언제나 곤경에 빠져 있는 신세였고 그의 후견인은 항상 그를 구해 주었다.
그의 삶은 한 감옥에서 다른 감옥으로 계속되는 긴 여행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의
후견인에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나는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훔친 돈은 모두 여자와 술을 사는 데 썼다. 그는 굉장한 미남이어서 사창가의
여인이든 궁중의 여인이든 그에게 저항을 하지 못했다.
1456 년의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는 나바레 대학에 도둑질하러 들어갔다. 파리를
빠져나와 체포된 그는 오랑 감옥에 갇혔다. 그는 두 번이나 사형 선고를 받았었지만
두 번 다 친구들의 알선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그의 몸이 감방에서 썩어갈 때, 그의
마음은 "위대한 약속"이라는 시를 꽃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시는 진흙탕에서
하늘의 별까지를 망라하여 읊은 아주 훌륭한 시이다.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죽은
숙녀의 발라드"라는 구절에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혀지지 않는 후렴과 함께 씁쓸하게 직시하고 있다.
"아아, 지나간 해의 눈송이는 모두 다 어디에 있는가?"
비용의 이 "위대한 약속"은 그의 추한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시이기도 하면서
신의 용서를 솔직하게 간구하는 시이기도 하다. 자신의 묘비명과도 같은 문구로 이
시는 끝을 맺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모한 이 미친놈의 삶은 어디에도 머무를 데가 없다.
죽음이 그를 이 세상 밖으로 쫓아내기 전까지는 결코 안식하지 못하리. 자비로운
신이시여, 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영원한 평화를 그에게 내리소서."
그는 결코 평안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파리에
안개가 자욱이 낀 어느 오후였다. 사형 선고는 영원한 추방으로 대체되었다.
그리하여 비용은 다 떨어진 배낭을 어깨에 메고 밀려드는 저녁 어스름 속으로
사라져갔다. 강건한 마음과 비틀린 영혼이 뒤섞인, 문학사에 있어 가장 병적이고도
기묘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식물원을 구경하던 독자가 이 꽃 앞에 서게 되면 마치 거인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될 것이다. 토란과에 속한 이 꽃의 덩치가 어찌나 큰지 남의 어깨에
올라서 손을 뻗어도 그 끝에 닿지 않을 정도이다.
이 거대한 식물은 인도네시아의 큰 섬인 수마트라 정글에 자생하고 있는데 이
식물의 꽃부분은 녹색의 반점이 있는 불염포(꽃잎과 같은 기능)가 노란
육수화(불염포에서 수직으로 자라나는 육질의 이삭)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보통 육수화는 2.4m 높이로 자라는 불염포 위로 또다시 2.1m의 높이로
자라고 있어 이 식물의 총 높이는 4.5m가 넘으며 성장한 잎을 펴면 그 넓이가 13.5
평방미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염포에 둘러싸여 있는 이 식물의 꽃은 아랫부분에는 암술을 갖춘 암꽃들로,
그리고 윗부분에는 수술을 갖춘 수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독립된
꽃으로는 제일 큰 꽃이라고 할 수 없지만 식물계에서 제일 큰 불염포와 육수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과 그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두 가지 면에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많은 화초 애호가들이 크러비 꽃나무를 정원에 심어볼 욕심도 품어보겠지만, 이
식물은 뜨겁고 습기가 많은 지방에서만 자랄 수 있으며 그 꽃도 만개한 후 불과
며칠 안에 시들어버리는 결점과 그 꽃이 풍기는 냄새 또한 지독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크러비를 자신의 정원에서 키우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인들의 성에 대한 숭배는 농작물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미개인들은 사람이 아기를 갖는 똑같은 방법으로 농작물에게도 신령이 아기를 갖게
만든다고 믿었다. 숫기 없는 신령들을 자극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밭으로 나가
어떻게 아기를 갖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미개인들은 색에 탐닉하는 것이
종교적 의무라고 여겼다.
더 원시적인 종족들은 한 부락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함께 밭으로 나가 성의
잔치를 벌였다. 그 후 개화되어가기 시작하면서는 사제와 처녀가 사원으로 가서
남근 모양의 조각 앞에서 그들의 의식을 치렀다.
고대 힌두 인들은 성의 숭배에 관해 아주 특이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성욕을 너무도 혐오한 나머지 그 속에 아주 빠져 버렸다. 불로써 불을 끈다는
논리였다. 영혼을 정화시키기 위해서 극도의 타락 속에 육체를 빠뜨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이 그렇게 믿기로 한 대로, 그들이 섬기는 신의 성스러운 요구를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티베트 산 들소인 이 짐승은 소의 머리와 말의 꼬리에 들소의 골격과 염소의 털을
갖고 있으며 마치 돼지와 같은 소리를 낸다.
제데디아 벅스톤이라는 미련한 사람은 아무의 도움이나 필기 도구도 없이
1.6km의 입방체에 586,040,972,673,024,000가닥의 인간의 머리카락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한 달 동안의 계산 끝에 알아내었다.
또 석 달에 걸친 계산 작업 끝에 영국의 1 파싱(0.25 펜스, 1961 년에
폐지됐음)을 140번 제곱하면 725,958,238,096,074,907,868,531,
656,993,638,851,106 파운드 2실링 8 펜스로 불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더욱 미련하게도 2개월 반이라는 시간을 다시 소비하여 위의 숫자를
제곱한 값이 527,015,363,459,557, 385,673,733,542,638, 591,721,213,298,966,
079,307,524,904,381, 389,499,251,637,423, 236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로마 제국의 페르티낙스가 사망하자 그 당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황제
근위대는 로마 제국 전체를 경매에 부쳤다. 193 년 3월 28일, 드디어 수많은 경쟁
끝에 로마의 거상, 디디우스가 이 로마 제국을 현재 5,000,000 달러의 가치가
나가는 금으로 사게 되어 로마의 원로들은 디디우스에게 충성을 서약하게 되었다.
이 소식이 영국에 파견나가 있던 로마 군단에게 알려지자 이에 분노한 로마 군의
사령관 셉티무스는 군사를 이끌고 황급히 로마로 돌아와 디디우스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후 목을 베어버렸다(193 년 6월 2일).
물론 그 후 셉티무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빌라빌라이레보 (Vilavilairevo)'란 후지 섬 사람들의 불 위를 걷는 연례
의식으로서 후지 원주민들이 하얗게 달구어진 돌 위를 맨발로 춤추며 걸어가도 전혀
화상을 입지 않는 이러한 현상은 오랫동안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끌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돌 위를 걸어도 물집 하나 생기지 않으니 아마도 이들은 통증에 면역이
생긴 모양이다.
먼저 직경이 약 10m쯤 되는 낮은 웅덩이에 마른 나뭇가지와 장작을 채워넣는다.
그런 후 거기에 불을 붙인 다음에 돌들을 던져 넣고, 그것들이 충분히 뜨거워지도록
반나절을 기다린다. 돌들이 충분히 달구어지면 그 위에 젖은 나뭇잎을 뿌리는데
이때 솟아오르는 수증기와 연기들이 더한층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면서 예식이
시작된다. 아! 하지만 모든 것에는 속임수가 숨어 있는 법.
쉿! 이 후지 인들의 속임수가 공개되는 순간이다. 이 의식에 사용된 돌들은 모두
구멍이 숭숭 뚫린 화강암이어서 열기가 남아 있지 않으며 그 위에 뿌리는 젖은
잎들이 또한 그들의 맨발을 열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릿광대들은 대체로 눈물을 감추기 위하여 웃는 심각한 사람들이라고 G. K.
체스터슨이 말한 바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크 트웨인은 어릿광대 중의 왕일
것이다. 왜냐하면 마크 트웨인은 미국 문학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나이면서도 가장
유쾌하게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가장 잘 웃는 방법을 배우는 법이다. 마크
트웨인의 웃음은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책 속에 나오는 희극적인 요소에
친밀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인생의 비극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크 트웨인(그의 본명은 사무엘 클레멘스이다)은 슬픔을 알았다.
중서부 지방의 개척자 마을에서 자라난 트웨인은 곤장을 맞는 노^36^예들과
길거리에서 총을 맞아 죽는 사람들을 보며 자랐다.
1847 년에 그의 아버지가 죽자, 이 열한 살의 삐딱하고 누추하고 체구가 작고
병약하고 신경질적인 꼬마 깡패 사무엘은 학업을 중단하고 일터로 뛰어들어야 했다.
아버지의 죽음뿐만 아니라 그는 누나와 형의 죽음까지도 목격하여야 했다. 그는
마을의 하층민들과 어울려, 치고 박는 생생한 삶의 수업을 받았다. 미시시피 강의
증기선 폭발로 그의 형이 죽었을 때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는데 그의 머리는
벌써 세기 시작했다.
그의 전기를 집필한 알버트 비글로우 페인의 말을 인용하자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너무도 절망해서 "장전한 총을 머리에 갖다 대었으나 방아쇠를 당길 만한
용기마저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첫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 두 번째 아이도 마크 트웨인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폐렴으로
쓰러졌다. 눈이 오는 날 아기를 데리고 마차를 몰고 나갔는데 눈보라를 막을 수
있을 만큼 단단하게 감싸주는 것을 잊어버렸다. 또 다른 아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가다 그의 부주의로 인해 가파른 언덕 아래로 굴려 간신히 목숨만 살린 일도
있었다.
몇 년 후, 그가 성공적으로 순회 강연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아끼던
딸 수지가 그가 없는 동안에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났다. 1909 년 12월 23일 그의 가족들은 크리스마스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딸 진은 크리스마스 나무를 다듬고 선물을 포장하고 이름을 적어
넣으며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다. 밤이 되어 그녀는 아버지에게 항상 그래왔듯이
입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목욕을
하다 간질 발작이 일어났던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설탕이 발라진 듯이 재미있는 유며 속에 쓰디쓴 마음의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그의 책을 읽으면 아주 우스운 농담 끝에
따가운 벌침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의 유머는 간지러운 것이
아니다. 채찍으로 핥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 인간 정신의 괴상한 측면이 있는 것인데 마크 트웨인은 결코 그의
불행에 불평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는 그저 웃을 뿐이다.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몸 속에는 개척자의 핏줄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에 웃음을 보낼 줄 아는 개척자의 길을 갔던 것이다. 그것은
미국을 건설하였던 밝고 용맹한 정신력이기도 하고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과 같은 걸작을 만들어낸 정신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폭풍" 속에서 폭풍이 휘몰아치는 장면 묘사가 미국 작가의
작품에서 빌려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미국 작가는 윌리암
스트레이치로서 1609 년에 배를 타고 버지니아까지 항해하다 만난 폭풍에 대해서
쓴 절묘한 작품을 남겼다.
미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윌리암 모텔이 쓴 시 "노바 앵글리아"는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씌어졌다!
미국의 최초의 시인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검둥이 노^36^예 소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필리스 위틀리였다. 이 흑인 소녀의 시를 조지 워싱턴이 좋아해서 매일
아침에 읽었다고 한다.
미국 문학사에서 한 문장으로서 가장 긴 것은 존 퀸시 아담스 대통령의 첫
취임사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문장은 700 단어로 되어 있는데 보통 간행물의
크기로 세 장에 달한다.
1793 년까지 보스턴에서 연극 상연은 금지되었었다. 그러나 '윤리 강연'이라는
변장 아래 때때로 연극이 상연되었다.
초기의 미국에서 발간된 책에는 가끔 괴상한 제목이 붙은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아버지", "엘비라, 사계절 공기의 요정", "미라니아 대학의
일반적인 개념" 등이다. 이 제목들이 너무 길고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 출판된 책들의 이상한 이름들과 비교해 봄직하다.
"죄를 위하여 일곱 번 흐느끼는 한 서러운 영혼", "꿀 빨아먹는 새 한 줌과 여러
개의 함축된 작은 시들, 그리고 지금 새롭게 임명이 되었다", "시온의 죄인들을 위한
슬픈 한숨, 세속의 배에 뚫린 구멍으로 숨을 쉬면서, 사무엘 휘쉬의 이름으로 사람들
가운데 알려지다", "사랑의 물로 삶은 자선의 달걀", "열정으로 인해 영혼이
재채기를 하게 만드는 정신적 겨자 단지".
미국 원주민들을 소재로 한 책 "모히칸 족의 최후"의 저자인 제임스 훼니모어
쿠퍼는 단 한 번의 장담으로 작가가 되었다. 그는 퇴역한 해군 장교로서 작가가
되려는 생각은 해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영국 소설을 읽던 그는 너무나 시시한
이야기에 그 책을 집어던지며 외쳤다.
"나라도 이것보다는 더 잘 쓸 수 있다고 장담하겠다!"
이 소리를 들은 그의 친구 하나가 허세 부리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쿠퍼는 소설가가 되었다.
롱 펠로우는 시인이 되기 전에 소설가가 되려고 했다. 그는 산문체로 된 사랑
이야기를 세 권 썼다. 그러나 세 권 모두 실패작으로 끝나버렸다. 그리하여
실패하는 소설가보다는 성공적인 시인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월트 휘트먼은 성공적이었던 소설 쓰기를 집어치우고 시인이 되어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의 첫번째 소설은 금주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는데 20,000권이
팔렸고 그는 성공을 자축하기 위하여 모든 친구들을 초대하여 술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오래된 언어는 인도의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서
그들이 쓰는 말은 힌두 어나 아랍 어, 혹은 페르시아 어도 아닌, 50,000 년 전에
처음으로 코끼리를 길들여 사용하던 혈거인들의 말이다.
다른 어떤 언어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코끼리들도 이 전통적인 언어만은
기본적으로 기억하여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에 있는 테멀톤 폴리오트 교회 마당에서 아직도 자라고 있는 이 코플스턴
참나무는 한 흉악한 살인자가 치러야 했던 유일한 형벌이었다. 이 살인자는 그 당시
부유한 지주였던 존 코플스턴이라는 사람으로서 1580 년 어느 일요일에 예배를
마치고 나오던 그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교회 마당에서 자신의 손자를 때려
죽였던 것이다. 결국 그 자리에서 체포된 그는 많은 증인들 때문에 꼼짝없이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 살인자에게 내린 형벌은 살인이 벌어졌던 그
교회 마당에 참나무 한 그루를 심으라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그에게 너무나 관대한 형을 내린 것은 코플스턴이 그 당시
소유하고 있던 13개의 성을 여왕에게 자진해서 헌납했기 때문이다. 이 13개의 성의
규모가 어찌나 컸던지 각 성주들에게는 각각 독립된 사법권이 주어져 있었다.
물론 아일랜드 산 굴이다. 아일랜드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사납겠는가?
도네갈의 북동쪽 해안에 있는 섬들에 서식하고 있는 쥐떼들은 물가에서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썰물이 빠지면서 굴들이 바닥에 드러나면 쥐들은 굴의
벌어진 부분에 주둥이를 들이밀고 그 살을 파먹으려고 하지만 매우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는 굴은 무서운 힘으로 껍질을 닫아 주둥이를 놓아주지 않는 것이다. 덫에
갇혀 발버둥치던 쥐는 밀물에 잠기게 되고 승리의 왕관은 굴에게로 돌아간다.
베네딕트 카르프조우는 1620 년부터 1666 년까지 독일의 라이프지그 지방의
판사장을 역임하던 인물로서 그는 이 긴 역임 기간동안 주로 좀도둑이나 마녀의
혐의로 체포된 사람들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30,000건의 사형 언도를 내렸다.
20,000건 이상이 되는 사형 언도는 주로 마법을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여인들에게 내려진 것이다. 또한 죄수들이 처형되는 장면을 직접 보기를 즐겼던
그는 반드시 죽은 개나 쥐들을 죄수들의 시체와 함께 파묻도록 지시하였다.
하루에 5건의 사형 언도쯤은 일상적인 일로 생각하고 있던 이 판사는 교회를
열심히 나가고 있었으며 일생을 통하여 성경을 50번 통독하였다는 사실을 매우 큰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아끼던 애견이 죽은 지 몇 분 후에 그 충격으로 사망하였다.
제시 오웬이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시의 이스트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그는 이미 국내 고교 육상 경기 신기록을 3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오하이오
국립대학에 진학한 후에 그의 기록은 점차 향상되어 1936 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여 니그로 스피스터(검은 주자)라는 획기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오웬의 실력이 가장 눈부시게 나타났던 경기는 1935 년 5월 25일, 미시건
주의 안 아보르에서 개최되었던 빅 텐(Big Ten) 육상 경기였다. 그 당시 병에서 막
회복된 오웬은 첫번째 경기였던 100야드 달리기에서 세계 신기록과 같은 9.4초를
수립하였으며 10분 후에 벌어진 넓이뛰기에서는 단 한 번의 시도로 7.8m라는 세계
신기록을, 그리고 곧이어 9분 후에 벌어진 220야드 달리기에서도 20.3초를 기록하여
또다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였으며 경기 개막 후 45분 후에 벌어진 220야드
장애물 경기에서도 22.6초라는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였다.
하루 동안 그것도 45분 만에 4개의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이 오웬의 기록을 깬 인물은 없다.
기원전 15세기경, 이집트의 왕 아멘호텝 3세는 테베 시 근처에 자신의 신전
무덤을 만들면서 그 입구를 지키는 2개의 거상을 세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집트인들은 항상 동이 틀 무렵이 되면 이 2개의 거상에서 신비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역시 이 현상을 신비스럽게 생각하던 그리스인들은 이 거상을 전설 속의
반신반인인 멤논이라고 부르며 하루에 한번씩 흘러나오는 노랫소리는 그 멤논이
'새벽의 여신'인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올리는 문안 인사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지진에 의하여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파괴되어 셉티무스 황제가 그것을
복구하였으나 그 신비스러운 노랫소리는 영영 중단되고 말았다(요즘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 거상으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요즘 그 신전 무덤까지 사라진 사막의 폐허에는 2개의 거상만이 쓸쓸히 침묵을
지키고 서 있지만 아직도 호기심 많은 과학자들은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가 떠오르면서 사막의 기후는 급격한 변화와 함께 거센 기류 현상을 일으킨다.
이 공기의 흐름이 거상의 헐거운 접속 부분을 지나면서 신비스러운 마찰음을 만드는
것이며 복구된 후에 이러한 소리가 영영 사라진 이유는 복구 작업 때 거상들의
헐거운 접속 부분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곧 신비스러운
소리의 정체가 오르간 파이프의 원리로서 설명될 수 있다면 이 거상들은 괴상하게
조각된 역사상 유일한 작품이 될 것이다.
미궁 속에 한번 들어가 보면 당신은 몹시 놀랄 것이다. 용맹한 테세우스가 그
미궁 속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두렵고 가슴이 섬뜩하였을까? 기원전 1500 년에,
아리아드네가 그에게 실패를 주지 않았다면 테세우스는 라뷔린토스의 미궁에서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테세우스가 라뷔린토스의 미궁에서 겪은 모험담을 들어보기로 하자.
라뷔린토스는 아름다운 크레테 섬에 있는 신비스러운 궁전이었다. 이 궁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길과 낭하가 많아서 한번 들어간 사람은 다시 되돌아나오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 궁의 주인인 미노스 왕은 미노타(미노스의 황소)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매년마다 미노스 왕은 아테네
사람들에게 일곱 명의 젊은이와 일곱 명의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였다. 불행한
이 청춘 남녀들이 크레테에 닿으면 미노스 왕은 그들을 라뷔린토스의 미궁에다
집어넣었다. 그들은 이 미궁 속을 헤매다가 미노타에게 잡혀 먹히곤 하였다.
결국 테세우스 왕자가 나타나 그 일곱 명의 젊은이들 속에 자기가 끼겠다고
나서기까지 그리스 사람들은 크나큰 근심 속에서 살아야 했다. 테세우스 왕자는
미노타를 제거하든지 자기가 죽든지 양자 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크레테의 수도인 크노소스에 다다랐을 때, 테세우스 왕자는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 공주를 만나게 되어 둘은 사랑에 빠졌다. 테세우스 왕자가 라뷔린토스의
미궁으로 들어가기 직전 공주는 실패와 한 자루의 검을 그에게 몰래 갖다주었다.
그는 실패에서 실을 풀면서 미궁 속으로 들어가 미노타와 맞부딪히게 되었다.
격렬한 격투 끝에 그는 괴물을 죽이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실을 좇아 미궁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하여 아리아드네를 신부로 맞아 아테네로 데리고 갔다.
이 이야기의 끝은 그렇게 아름답지가 않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에 닿기도 전에
아리아드네에게 싫증이 나서 그녀를 에게 해에 있는 섬에다 버리고 만다.
이것은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리스 신화의 대부분이
듣기에는 무척 환상적이지만 대개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고증으로 밝혀졌다. 1900 년에 에반스 경의 지휘 아래 크노소스에 탐사대가
보내졌다. 다른 여러 가지 흥미 있는 물건들 가운데 일꾼들은 땅속에서 복잡하게
설계된 방과 낭하가 있는 궁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고대 라뷔린토스 궁과 많이 닮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사실은
그때까지도 선명한 색깔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여러 점의 그림들이었다. 이
그림들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황소와 싸우는 그림이었다. 테세우스와 미노타와의
유명한 싸움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렸다는 것을 짐작해볼 만한 작품들이었다.
중국의 조신 링 웬은 그의 황제 융로(1360--1424)의 면전에서 변절자라고 욕을
퍼부은 죄로 참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다. 형 집행일이 가까워지자 그의 주변
사람들은 황제에게 사정하여 참수형만은 내리지 말라고 권해 봤지만 링은 "내가
죽은 뒤에도 그를 변절자라고 부르겠다!"라고 하며 단호히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드디어 형이 집행되어 그의 목이 땅에 떨어지자 그의 잘라진 목에서 뿜어나온
핏줄기는 모래 위에 뚜렷한 문자로 '변절자'라고 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놀란
황제의 입에서는 "마지막 유언이구먼"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 후 이에 충격을
받은 융로 황제는 그의 수도를 난징에서 지금까지 중국의 수도로 남아 있는
베이징으로 옮기게 되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음악이 인간의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믿음을 철학적
이론으로까지 정립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 사람들은 음악의 윤리성인
에토스(ethos)를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시인들과 음악가, 또한
일반 사람들도 이것을 당연시하였다.
그리스 사람들의 음악의 힘에 대한 이해는 아름다운 오르페우스의 이야기 속에서
정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오르페우스는 전설적인
시인이며 음악가였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오르페우스에게 수금(일곱 줄로 된
손으로 타는 악기)을 주었고 예술의 여신인 뮤즈가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음악으로써 사람과 짐승들을 매혹시킬 뿐만 아니라 나무와
바위도 감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비극적인 오르페우스의 삶이 그의 아름다운 예술을 더욱 감동적인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내 유리디케가 죽자 오르페우스는 그의 보호신에게
유리디케를 황천에서 구해올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의 보호신은
오르페우스의 청을 들어주었는데 다만 지하 세계에서 다 빠져나올 때까지
유리디케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을 세웠다.
그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오르페우스는 지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지키고 있는
무시무시한 괴물을 비롯해 모든 장애물을 다 부수어 버렸다. 그런데 오르페우스를
보고 기쁨에 넘친 유리디케는 왜 남편이 자기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딱 한 번만 자기를 쳐다봐달라고 오르페우스에게 간청하였다.
지상의 세계로 통하는 문에 닿기 바로 전인데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애원을 뿌리칠
수 없게 되었다. 뒤를 돌아본 순간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유리디케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히 그의 시야에서 멀어져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음악극을 위해서도 아주 이상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많은 오페라가 작곡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 2개는
몬테베르디와 글룩의 것이다.
그의 금발(blond)인 머리 색깔에서 유래된 '브론딘(Blondin)'이라는 예명을 갖고
있던 진 프란코이스 그란뎃은 아주 대단한 모험꾼이었다. 1859 년 그는 330m가
되는 나이에가라 폭포 양쪽에 8cm 두께의 로프를 수면으로부터 48m 높이에 건
다음 두 손에 쥔 1.2m의 막대기를 균형봉으로 삼아 자전거를 타고 이 줄을 건넜고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눈을 가리고 줄을 타기도 하였으며 어떤 날을 손수레를
밀면서 이 줄을 건너기도 하였다.
한번은 그가 장정 한 명을 등에 업고 이 줄을 건너겠다고 하자 수천 명의 미국과
캐나다 사람들이 이것을 구경하려고 모였는데 아무도 브론딘의 등에 업혀 줄을
건너겠다는 사람이 없어 결국은 그의 매니저를 업고 건넜는데 이 당시 그의
매니저가 어찌나 부들부들 떨었던지 그 후 브론딘은 다시는 사람을 업고 건너는
모험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기를 즐기던 브론딘은 줄 위에서 재주를 넘기도
했으며 폭포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모자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내게 한 적도 있었지만,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모험은 프라이팬과 난로와
달걀을 가지고 줄을 탔던 일이다. 그가 그 취사 도구로 줄 한가운데에서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먹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가 가장 꿈꾸고 있던 모험은 달빛도 없는 야간에 밝은 불빛을 받고 있는
줄을 건너다 도중에 그 불을 완전히 끈 다음 칠흑같이 어두워진 상태에서 나머지
거리를 줄을 타고 건너는 것이었다.
1860 년 9월 8일, 그 당시 미국을 방문중이던 영국 황태자가 참관하고 있는
가운데 이 브론딘의 재주가 펼쳐지게 되었다. 줄을 건너는 브론딘의 양 발목에는
고리가 달린 각반이 매어져 있었으며 그 고리는 줄에 끼워져 있었다.
황태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중간쯤 건너온
브론딘의 몸이 갑자기 줄에서 미끄러지며 물 속으로 거꾸로 떨어지는 듯하였다.
사람들의 비명 속에 기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람객들은 모두 그가 줄에서
떨어져 죽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머리를 거꾸로 한 브론딘의 몸은 줄에
매달린 채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줄 위에 올라서는 것이 아닌가! 브론딘이 아무도
모르게 준비하고 있던 발목의 고리가 사람들의 눈에 보였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자세를 갖춘 브론딘은 유유히 줄 위를 걸어 캐나다 쪽으로 건너가고 있었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구성 요소를 갖는다. 가락과 박자와 화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화성은 상당히 진보된 형태의 요소로서 지난 1,000 년 사이에 음악에서
중요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락과 박자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생겼는데 그 시기는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믿어진다(약 5,000 년
전).
인간 문화의 역사에 대해, 아니면 최소한 초기의 문화 형태에 대해 알고 싶으면
미개인들의 문명화 과정에서 그 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세기말에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원시 문화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음악에 있어
음의 높낮이는 단조롭다 싶을 만큼 간단하였다. 간단한 몇 개의 음률이 계속 바뀌어
가면서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박자는 현재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리만큼 발전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이
미개인들과 그들의 어린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2박자나 3박자를 동시에 잘
맞추었으며 3박자와 4박자도 역시 잘 맞추었다(3박이나 4박은 더욱 어려운
과정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박자와 강약을 다루는 음악적 변화와 미묘함은 현대
재즈에서 실제로 찾아볼 수 있다.
미국 흑인들이 재즈 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절묘하고 능숙하게 박자를 다룰 줄 아는 성향은 자기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며 오랜 시간 동안 잠자고 있던 이 성향이 재즈 음악의 풍부한 박자
감각을 꽃피우려고 긴 잠을 깬 것이다. 아프리카 미개인들의 음악에서와 같이 재즈
음악에서도 타악기가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18세기에 중부 유럽의 여러 국가의 왕실에서는 카펠마이스터
(Kapellmeister)라고 불리는 직분의 사람들을 고용하였다. 이 직위는 궁중
악장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단어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교회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이 사람의 역할은 우선 종교인이 되어야
한다. 교회 성가대 지휘를 맡고, 오르간을 연주하고 예배를 위한 음악을 준비하거나
때로는 작곡까지 하여야 했다. 세속적인 순서도 맡아야 했는데 그 왕실이 어떤
나라에 속해 있는가, 아니면 어떤 교회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연주회가 되기도 했고
제례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하이든은 헝가리의 에스테루하지 왕자의
궁중악장이었다. 모차르트는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와 함께 잘츠부르크의 대주교
콜로레도에게 고용되었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도 몇 군데의 그런 왕실에서 일을
하였었다.
그 당시의 소공자들은 음악가들을 시종으로 거느렸는데 그의 경제적인 능력이나
음악적 기호에 따라 거느리는 사람의 수는 마음대로였다. 이런 음악하는 시종들의
우두머리가 카펠마이스터이다. 그의 임무는 필요한 때에 맞추어 적절한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다. 훌륭한 카펠마이스터는 음악을 연주하고 지휘할 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내에 주인의 기호에 따른 여러 종류의 음악을 작곡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작곡가는 수준작을 만들기 위해서 일상 생활과 격리되어
1 년이라든가, 혹은 그 어떤 여가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작가가 잘 묘사하였듯이 "이 카펠마이스터들은 새벽에 일어나 새 곡을
작곡하고 낮 동안에 연습하였다가 저녁에 공연을 했다." 카펠마이스터를 포함하여
이 음악가들의 위치는 하인의 신분이었다. 하인의 복장을 하고 하인방에서 자고
하인의 상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의 시간은 엄하게 감시를 받았다. 헝가리
소공자와 하이든 사이에 맺어진 구두 계약에 따르면 그 소공자는 하이든의
음악인으로서의 임무보다는 의식을 치르는 일과 규율에 엄격해야 한다는 등의
문제에 더 신경을 쓴 것 같다. 모차르트는 그런 하인의 지위에 대해 굴욕감을
느꼈던 표시를 분명히 나타냈으며, 실제로 그는 주교에게 반항함으로써 돌아오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층계 아래로 발길질을 당했다.
만일 이 음악가들이 어떤 의미에서 철창에 갇힌 죄수와 같다고 해도 하이든과
같은 천재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창을 부수고 나올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랬다. 마이클 브레넷의 말을
빌리자면, 베토벤은 "많은 독일의 음악가들이 주인에게 완전히 얽매여 그들을
물질적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또 다른 노예임을 확인시켜주는 그 명예를
단연코 거부하였다."
베르베르 족에게는 여성 해방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들의
유명한 여왕 카헤나는 이미 오래 전 400 명의 남편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카헤나 여왕의 적수가 될 수 있는 테레사 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국 여인이
있었다. 1922 년 12월 19일, 25세의 이 여인은 적합한 이혼 절차를 밟지 않고
재혼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녀의 신원을 확인하던 경찰은 이 여인이
그 동안 수많은 중혼을 해오고 있다는 증거를 잡게 되었다. 결국 이 여인의 자백에
의하여 5 년 전 첫번째 남편과 이혼한 이래 영국, 독일, 아프리카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려 61 명의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 달에 한 명의
남편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한 알의 씨앗이 싹틀 수 있는 능력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까?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 주어진 여건만 양호하다면 싹틀 수 있는 씨 한
알의 능력은 아마도 영원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자면 1,400 년 묵은 탄성분이
축적되어 있는 만주 지방의 토양에서 간혹 발견되고 있는 연의 씨에 작은 구멍을 낸
후 물을 주면 금방 싹이 터 완전한 연으로 성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음의 사실에 비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1967 년 북극 동토 지방에 서식하고 있는 한 종류의 관목의 씨가 최소한 10,000
년이 넘은 것으로 측정되는 동물의 잔해와 함께 얼어 있는 채로 발견되었는데 이
씨앗들을 배양에 알맞은 환경으로 옮겼더니 모두 48시간 이내에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끈질긴 생명의 힘이 북극 관목에게만 있는 특정한 능력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다.
구렁이과에 속한 뱀 중에서 제일 큰 종류는 동남아시아에 서식하고 있는데 보통
7.5m까지 성장한다. 그렇지만 길이가 8.4m에 무게가 100kg이 나가는 구렁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이 거대한 구렁이는 힘이 어찌나 센지 동물원에 있는 이 구렁이를
옮길 때에는 12 명의 사육사가 덤벼들어야 할 정도이다.
한번은 죽은 구렁이의 배를 갈라 봤더니 완전히 성숙한 표범 한 마리가 들어 있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표범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들도 이 거대한
구렁이의 괴력 앞에서는 전혀 맥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인도에 아주 신성한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이쑤시개라고 불리는 열매 속에서 싹트는 그런 나무였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부처님께서 이 이쑤시개를 하나 땅 위에 떨어뜨렸다. 그리하여 나무가 그
속에서 싹터 나왔다고 한다.
인도의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한번은 코끼리의 공격을 받았는데,
부처님께서는 즉시 사랑의 화살을 쏘아 위험을 모면하였다고 한다.
불교 승려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복락을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승려들은 음악과 춤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극장에도 못 가고 놀러도 못 가고
게임을 봐서도 안 된다. 누구와 다투어서도 안 되고 농담을 하여서도 안 된다. 사고
파는 행위도 해서는 안 되고 돈을 가져서도 안 된다. 결혼을 해서도 안 되고 여자와
이야기를 해서도 여자를 쳐다보아서도 안 된다.
기독교인에게는 지옥이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 불자들은 128개의 지옥이 있다고
믿는다. 불교에서 지옥의 악마는 특히 밉살스럽게 생겼다. 뿔이 2개나 나 있고 코는
납작하고 이는 굉장히 크며 손과 발에는 무시무시한 톱이 달려 있다. 젊은 여자들이
오면 유혹을 하고 젊은 남자가 오면 골수를 빨아먹기 위하여 길게 누워서 기다리고
있다.
매년 봄, 인도의 중앙 지역에 사는 부호 마하라아는 하나의 자갈과 덤불을
결합시키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결혼식에 무려 500,000 달러라는 거액을
아낌없이 쓰고 있다.
유럽 왕족의 결혼식이 무색할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지는 이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찬란한 금장식과 보석으로 치장된 8 마리의 코끼리를 선두로 한
이 행렬에는 수많은 선물을 실은 12,000 마리의 낙타와 4,000 명의 기병에 이어
마지막으로는 이 지역의 회교도인 300,000 명이 따르고 있다.
이방인들에게는 이러한 결혼식이 한없이 신비스럽게 보여지고 있지만 정작
마하라아 본인에게는 이 결혼식이 가장 성스럽고 심각한 예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살라그라마라고 불리는, 반들반들하게 닦여진 자갈 하나가 특별히 치장된
코끼리의 등에 만들어진 신랑의 자리에 놓여 있다. 조개의 화석이 들어 있는 이
자갈은 거듭 태어난 비쉬누 신을 상징하고 있으며 툴시라고 불리는, 신부 역할이
주어진 덤불은 죽은 후에 비쉬누의 배우자가 되기를 열렬히 기원하던 시타가 거듭
태어났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살라그라마와 신부 툴시는 루도라에 있는 신전으로 옮겨진다. 17개의 축포로
시작된 결혼식이 끝나면 자갈 군과 덤불 양은 신전에 남아 다음해까지 1 년간의
신혼 생활에 들어가게 되며, 다음해 봄이 되면 또다시 수백만 개의 자갈 중에서
특별히 뽑힌 하나의 자갈은 히말라야 산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에 깨끗이 씻겨져
다시 반복될 새로운 결혼식을 준비한다.
18세기 초, 영국에서는 사형 집행관이 자기 자리를 아들에게 대물려주는 관습이
있었다. 1726 년 찰스 진 산손 집행관이 사망하자 그러한 제도에 의해서 그 자리는
겨우 일곱 살 먹은 아들에게 물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의 처형 방법은 대부분 참수형이었는데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은 산손이
너무 어려 목을 베는 도끼를 다룰 힘이 없자 영국 정부는 그에게 도끼를 다룰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특별한 허가를 내려주었다. 도끼를 다룰 사람은 구했지만
산손만이 집행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공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형 집행 때마다
그의 참석이 반드시 요구되었다. 마침내 산손이 12세가 되어 도끼를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기자 비로소 그의 목베는 임무를 아무의 도움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
족제비과에 속하는 이 동물은 북미 대륙의 호숫가 혹은 시냇물가에 주로 서식하고
있다. 언뜻 보면 마치 물개를 닮은 것 같은데, 매끈하게 빠진 몸매와 갈퀴가 달린
발과 납작하게 생긴 꼬리가 물 속에서 헤엄치기에 알맞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비이버가 수달과 어울려 이웃에 서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 두
동물은 밤과 낮처럼 서로 습성이 전혀 다르다. 비이버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일에
몰두하는 '열성 일꾼'인 반면 수달은 모든 시간을 놀이에 바치는 '장난꾸러기'이다.
비이버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방죽 쌓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수달은 눈
덮인 언덕의 비탈길에서 미끄럼 타기에 정신이 없는 것이다. 배를 깔고 눈 덮인
비탈길을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즐기는 이 수달은 매끄러운 배와 운전대처럼
사용하는 꼬리를 이용하여 재빠르게 미끄럼 타고 내려와서 짝꿍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언덕으로 다시 뛰어올라가 미끄럼질을 계속하는데 그대로 물
속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장난을 가장 즐긴다.
또한 이들의 동작은 몇 안 되는 동물만이 따라갈 수 있을 정도로 재빠르다. 이
장난꾸러기가 물 속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번개같이 빠르다. 이쪽의 얼음
구멍에 머리가 솟았는가 하면 어느 틈엔가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다른
구멍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다.
많은 사냥꾼들의 말에 의하면, 얼음 위로 머리를 내민 수달을 향해 총을 쏘았더니
재빠르게 물 속으로 몸을 감추더라는 것이다. 총알이 닿기 전에 몸을 피하는
스피드를 갖고 있는 이 수달이야말로 날아가는 총알보다 빠른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들소가 미 대륙의 평원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야자수는 더운 지방에 사는 주민들의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야자수는 식량뿐만이 아니라 의복이나 주거지를 비롯하여 모든 일상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것들을 제공하고 있는 잡화점과 같다.
야자수는 대추야자, 코코넛야자, 빈랑야자, 사고야자, 종려야자를 비롯하여 무려
2,500종이 넘으며 대부분의 종류가 우리의 일상 생활에 유익하게 쓰여지고 있다.
고대 힌두 지방의 한 민요에, 종려야자 한 종류만 갖고도 801가지나 활용할 수
있다고 노래되고 있을 정도로 이 야자수의 용도는 지극히 다양한 것이다.
야자수 중에서 제일 크게 자라는 종류는 아프리카 오일야자수인데 보통 24m
크기로 성장하여 1 년에 90kg의 열매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 야자수는 주로 가구나
바구니, 또는 로프를 만드는 데 사용되지만 잎, 줄기에서는 연료를 얻을 수 있으며
그 열매는 가축의 사료, 술, 식초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다른 종류의
야자수들로부터는 주로 설탕, 왁스, 술, 비누, 마가린 등의 식품을 얻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야자수에서 생산되고 있는 야자유는 가장 훌륭한 식용유로 사용되고 있다.
가장 큰 잎을 피우고 있는 야자수는 브라질 산 라피아 타에디게라야자수이다.
비교적 짤막한 키로 자라는 이 야자수의 잎은 새의 깃과 같이 생겼으며 간혹 길이
21m, 넓이 6m로 자라기도 한다.
이 기어다니는 물고기는 아시아 지역에 서식하는 물고기 중 하나로서 자연의
질서에 도대체 무관심한 생물이다. 이 독특한 종류의 물고기는 살고 있던 웅덩이가
메말라 가면 스스로 그곳을 떠나 새로운 물을 찾아가는 본성이 있는데, 간혹 이
물고기들은 2km가 넘는 마른 땅을 기어다니기도 하며 물 없이도 일주일을 버티는
생존 능력을 갖고 있다.
이 '아나바스 스켄덴스'라고 불리는 이 물고기의 두개골을 열어 보면 복잡하게
얽힌 세포처럼 변하여 팽창된 뼈조직을 볼 수 있는데 그 물고기들은 그곳에 충분한
물을 저장하여 아가미의 막조직이 메마르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중앙 유럽에 있는 이 동굴을 방문해본 사람은 동굴의 천장이나 바닥 혹은 벽에서
번쩍거리고 있는 이끼를 보고 놀랐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동굴의 암석 자체가 빛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은 광경인 것이다.
스키스토스테가 오스만다시아라는 학명이 따라다니는 이 이끼에는 수많은
단섬유가 자라고 있는데, 렌즈 모양인 각각의 단섬유 세포에는 초록색이 나는 색소
가루가 묻어 있으며 이 단섬유 세포들은 아무리 약한 빛이라도 그 빛을
농축하였다가 다시 뿜어내기 때문에 이끼 전체가 초록색으로 빛나는 것이다.
중앙아메리카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버켓 올키드(bucket orchid: 난초과 식물)의
수정은 주로 '호기심에 취한 벌'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 식물은 꽃가루
주머니 바로 밑으로 꼭지가 달린, 마치 버켓(양동이)과 같이 생긴 꽃을 피우고
있는데 그 버켓은 특수한 분비선에서 분비되는 꽃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강한 향기에 유혹되어 버켓 올키드의 꽃잎에 날아온 벌들은 지독한 꽃향기에
정신을 잃고 꽃물 속에 빠지게 된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벌은 자연히 꽃가루
주머니를 통과하게 되는데, 이때 벌의 몸에 묻어 있던 꽃분이 암술에 떨어지거나 이
꽃가루 주머니에 있던 꽃분이 벌의 몸에 붙게 되는 것이다.
이 버켓 올키드는 작동을 멈추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즉 꽃가루 주머니에 빠진
벌이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는 스스로 향기의 발산을 멈추고 벌을
정신차리게 하여 빠져나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리고 벌이 빠져나간 후에는 다시
향기를 발산하기 시작하여 또 다른 벌을 유혹한다.
수킬로미터 깊이의 해저, 즉 해면보다 수천 배의 높은 수압과 한 줄기의 광선도
통과되지 않는 이 깊숙한 해저에 사는 동물들은 지구의 어떤 동물보다도 더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야광 미끼를 사용하여 먹이를 잡는 '암놈
아귀'이다.
아귀의 등에는 낚싯줄처럼 물에 뜨는, 10cm 길이 정도의 가느다란 살점이 붙어
있으며 이 천연 낚싯줄의 끝부분에서는 작은 물고기들을 유혹하기 위한 야광이
발산되고 있다. 빛을 보고 다가오는 작은 물고기를 재빨리 잡아먹는 것이다.
이 야광 미끼의 원리는 반딧불의 생체 발광과 같은 것으로서, 이 물고기에게는
물질을 분해하여 광선 분자로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능은 암놈 아귀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수놈은 암놈보다
덩치가 작으며 순전히 암놈에게 기대어 산다. 수놈 아귀는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
때부터 암놈의 몸에 들러붙어 살게 되는데 간혹 한 마리의 암놈 아귀에 여러 마리의
수놈 아귀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암놈의 몸에 들러붙은 수놈의 입과 혀는 점차 암놈의 살을 파고 들어가 하나로
붙어버리며 두 물고기의 혈관이 서로 연결되면 생식 기관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수놈의 기관은 퇴화된다. 이때부터 수놈은 완전히 암놈의 핏줄로부터 모든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살아간다.
행동이 느리며 어두운 서식 환경에 외로이 살고 있는 아귀들에게는 이렇게 붙어
다니는 방법만이 배우자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리너구리는 마치 오리와 같이 알을 낳기도 하고 넓적한 부리와 물갈퀴를 갖고
있지만 개나 고양이처럼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젖먹이
동물이다. 쥐와 같이 땅굴을 잘 파는 이 동물은 독사와 같이 치명적인 독을
뿜어내는 송곳 돌기를 갖고 있으며, 동물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류 중의 하나에
속한다.
이 오리너구리는 젖을 먹이는 습성 때문에 주로 젖먹이 동물로 분류되고 있지만
사실상 한 과로 한정하기는 너무나 특이한 습성을 갖고 있는 동물이며 그 서식지
또한 온갖 희한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지방이다.
물과 땅을 오가며 살고 있는 이 오리너구리는 조류, 파충류, 포유류의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 발을 보게 되면 물을 잘 헤칠 수 있게 물갈퀴가
달려 있는 한편, 땅을 파기에 편리하도록 날카로운 발톱이 있고 발의 안쪽에는 뼈
조직으로 된 매우 날카로운 송곳 돌기가 달려 있는 것이다. 독사의 이처럼 속이 빈
이 송곳 돌기에서는 치명적인 독이 뿜어져 나오고 있어 어떠한 맹수일지라도 이
독에 중독 되면 목숨을 잃고 만다.
이 오리너구리는 오리와 같이 물갈퀴를 이용하여 물 속을 헤엄치며 물밑 바닥의
진흙 속에 숨어 있는 지렁이나 벌레들을 잡아먹고 다른 젖먹이(개미잡이는 제외)
동물과는 달리 알을 낳는다. 강둑 밑에 땅을 파서 만든 둥지에 알을 낳는 이
오리너구리는 알을 품고 있는 모습도 마치 오리와 같은 데다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은 털 빠진 다람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희한한 동물은 동물원에서 항상 환영을 받고 있지만 이 오리너구리는
생포하기도 대단히 어렵거니와 우리 안에 가두어 기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동물이라서 그 모습을 보려면 직접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지독한 스컹크의 방어 수단에 혼이 나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식물계에도 스컹크와 같은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북부 멕시코 지방에서 자라는
코끼리 나무는 동물로부터 잎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안개를
뿜어낸다.
버르세라 마이크로필라라는 원명의 이 코끼리나무는 그 이름과 같이 특히 나무
밑둥치가 코끼리의 다리와 흡사하게 생긴 것을 비롯하여 그 전체의 모습이 마치
코끼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몇 개의 가지에서 아주 적은 수의 잎과 복숭앗빛의 열매를 맺는 이 코끼리나무는
스컹크가 내는 것과 같은 지독한 냄새가 나는 수액을 뿜어 잎사귀를 먹으려고
접근하는 동물들을 쫓아내고 있다.
이 수액은 나무껍질의 틈에서 1m 정도의 사정거리를 두고 분사되며, 그 냄새에
한번 혼난 동물들이 다시 이 나무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물론이다.
이 거대한 동물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 동물이 어떻게 먹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아주 괴상하게 생긴 이 남미산 동물은 입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주둥이는 마치 빗자루처럼 길죽하며 턱이나 이가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동물도 아무런 문제없이 먹이를 삼키고 있으니까. 창조주가 이
동물을 만들 때 그의 턱을 잊어버리긴 했어도 그 대신 이 동물은 그것을 보충할
만한 멋진 혓바닥을 갖고 있다.
그 주둥이의 끝은 파이프와 같이 구멍이 뚫려 있으며 이곳으로 마치 분홍색
밧줄처럼 보이는 끈적거리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는데, 간혹 이 혓바닥의 길이가
30cm가 넘는 경우도 있다.
개미집을 발견한 개미핥기는 먼저 앞발로 개미집을 부순 다음 놀란 개미들이 떼를
지어 우왕좌왕할 때 끈적거리는 혓바닥을 쭉 뽑아 개미떼의 한복판을 휘저은 다음
입안으로 거두어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삽시간에 한 개미 군단
전체가 이 개미핥기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이 개미핥기는 비교적 온순한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다루었다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우선 그 덩치만 해도 가끔 '개미곰'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곰과
같이 우람하고 그 앞발에 달린 3개의 발톱은 단단하고 예리하기가 마치 날이 선
단검과도 같으며 발바닥에는 강철같이 단단하고 뾰족한 돌기가 있는데, 개미핥기가
이것을 휘둘러 섣불리 덤벼든 동물의 몸뚱이에 단숨에 구멍을 낸다. 사나운
표범들까지도 이 동물은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개미핥기의 실력은 정글 안에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동남아에 자생하고 있는 엽란의 꽃분은 주로 벌, 나비, 딱정벌레, 박쥐와
같은 생물들에 의하여 옮겨지지만 달팽이에 의해서 옮겨지는 희한한 경우도 있다.
이 엽란은 지면 가까이에 낮게 종 모양의 아주 조그만 꽃을 피우고 있으며, 이
꽃잎을 먹기 위하여 몰려드는 달팽이의 몸이 땅에 떨어진 꽃분을 묻혀 다른
엽란으로 옮긴다.
2.4m의 키와 135kg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타조는 조류 중 가장 덩치가 크다. 물론
이러한 덩치의 새가 날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새는 결코
느린 동물이 아니다. 한걸음에 7.5m의 거리를 뛰는 타조가 제일 빨리 뛸 때는
경주마보다 빠른 시속 96km의 속도로 달리는 것이다.
흔히 믿고 있는 것처럼 위험에 몰린 타조가 간혹 머리를 모래에 파묻는 멍청한
행동을 보인다고 하지만 타조는 쉽사리 잡히는 동물이 아니다. 빨리 뛰는 타조를
궁지에 몰아세울 수 있는 속도를 가진 동물일지라도 치명적인 힘을 갖고 있는
타조의 발을 조심해야 될 것이다. 어떤 지방에서는 그 털을 얻기 위하여 타조를
기르고 있으며 아르헨티나 초원 지대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볼라스(bolas: 양끝에
둥근 추가 달린 짧은 밧줄)를 이용하여 타조를 잡는다.
매우 희귀한 건축 방법으로 만들어진 무덤이 있는 고대 도시 페트라는 오랜
세월에 걸친 붉은 모래 폭풍에 의하여 형성된 높은 절벽들로 둘러싸인, 남부
요르단의 깊은 계곡에 숨겨져 있다. 이 특수한 지리 조건 때문에 오랫동안 외부
세계에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고 있던 이 도시가 1812 년, 탐험가들에 의하여
발견되자 온 세계는 절벽을 깎아 만든 수많은 분홍색 무덤 건물의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기원전 4세기경 로마에 의하여 점령된 이래, 로마 군들의 전초 기지로 이용되어
오던 페트라 시는 점차 낙타상들의 교역 중심지 또는 회교도들의 전략 기지로
이용되었으며 기독교 박해 당시에는 기독교 저항 세력의 보루가 되기도 하였다.
깎아 세운 듯이 높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천연적인 요새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 도시에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절벽
사이에 난 매우 좁은 길뿐인데, 이 길은 어찌나 좁은지 사람이 서서 양팔을 벌리면
두 손이 모두 절벽에 닿을 정도이다. 아무리 많은 군사가 쳐들어와도 10 명 정도의
군사가 이 길목만 지키면 도시는 충분히 보호될 수 있는 것이다.
수세기를 통하여 페트라 시에 살고 있던 부유한 상인들은 인근 도시들과 견줄
만한 훌륭한 신전과 무덤을 건축하기를 원하였지만 입로가 너무 좁아 이런 건축
자재들을 외부로부터 들여올 수 없는 문제점에 부딪히자 페트라의 통치자들이나
상인들은 그 대신 절벽을 깎아 만드는 희한한 건축 방식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결국 세기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 탄생한 것이다. 황사가 만든 천연
절벽의 분홍색을 띤 거대한 기둥과 계단들을 수없이 거느리고 서 있는 건물의
웅장한 모습은 마치 거인을 위하여 지은 건물과도 같다.
암벽을 깎아 만든 건물 중 가장 높은 것은 15층 건물의 높이와 견주어지는데
현관의 높이만도 12m가 되고, 문턱은 기어올라가야 할 정도로 높게 만들어져 있다.
그 당시에도 이 건물들의 건축 방식이나 규모가 어찌나 엄청났던지 그 주위
도시의 아랍인들은 이 건물들이 '마호메트의 영(신령 영)'이 지은 것이라고 믿을
정도였다.
흔히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늄이 세상에서 제일 큰 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꽃은 많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꽃처럼 보일 뿐이며 실제로 세상에서 제일 큰
꽃은 수마트라 우림 지역에서 자라는, 기생초(붙힐 기, 날 생, 풀 초)
레플레시아라고 할 수 있다.
이 식물은 잎이나 줄기가 전혀 없이 그저 덩치만 크고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냄새가 고약하기로 유명하다. 이 식물은 얼룩덜룩한 무늬의 두꺼운 꽃잎을
가지고 있는데 때때로 그 꽃잎의 직경이 90cm, 무게가 7kg에 이르며 그 한복판에
있는 꽃술은 60리터의 물이 담길 만큼 크다.
기생초인 레플레시아는 다른 식물들의 뿌리에 붙어 그 영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는데 특히 덩굴식물의 뿌리를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이 식물이 어떻게
덩굴식물의 뿌리를 찾아가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매우 이상한 방법이지만, 이
식물은 코끼리를 통하여 자신의 씨를 원하는 곳에 뿌리고 있다.
이 레플레시아가 죽으면 그 씨를 담고 있는 꽃은 아주 끈적거리는 점액질로
변하며 코끼리와 같은 동물들이 이 꽃을 밟을 때 씨는 그 점액질과 함께 동물들의
발에 들러붙게 된다. 점액질이 붙은 코끼리의 발은 시간이 갈수록 거추장스러운
나뭇잎이나 가지들이 묻게 되며, 코끼리는 이것들을 떼어버리기에 알맞게 생긴
덩굴식물의 뿌리에 발을 문지른다. 아주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레플레시아의 씨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씨를 뿌리게 되는 것이다.
물 속을 헤엄칠 수 있는 새는 매우 드물다. 이 뮤레 새가 그 중의 하나인데 이
새는 날렵한 날개를 노처럼 사용하여 물 속을 헤엄치며 조그마한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산다.
에스키모들이 이 뮤레 새의 고기를 즐겨 먹기도 하고 새의 가죽으로 아주 훌륭한
실내화를 만들어 신기도 하지만 이 새의 알을 프라이팬에 지지면 그 색깔이 찬란한
것을 볼 수 있다. 달걀과는 달리 이 새의 알은 하늘의 푸른 빛깔에 핏빛 같은
붉은색의 자위가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동물'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는 이 동물은 미 대륙 열대
지역에서 살고 있는 포유동물로서 이 동물은 거의 모든 시간을 나뭇가지에 매달려
절대로 필요할 때가 아니면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괴상하게 둥근 머리와 넓적한 얼굴의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늘보는 앞발에
발가락이 2개 달린 종류와 3개 달린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이 두 종류의
늘보는 모두 나무를 탈 수 있도록 날카로운 발톱을 갖고 있으며 행동도 똑같이
느리지만 이들의 행동이 게으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늘보의 발은 땅
위로 걷기에 적당하지 않을 뿐더러, 항상 배를 가득 채우기를 좋아하는 늘보가
이것을 소화시키는 데만도 일주일 이상 걸리기 때문에 음식물이 소화될 동안은 꼼짝
않고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동이 느리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되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정글의 어떤 동물도 이
늘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뭇잎을 먹고 사는 이 동물은 때때로 마치 죽은
나뭇잎의 뭉치와 같은 모습으로 나무에 웅크린 자세로 매달려 있으며 우기에는 이
늘보의 털에 이끼와 같은 것이 자라기 때문에 더욱 완벽한 위장을 할 수 있게 된다.
간혹 늘보는 자신이 매달려 있는 나무 밑에서 다른 동물의 기척이 들리면 그것을
쳐다보기도 하는데 이때의 행동은 아주 최소한도로 움직인 것일 뿐이다. 이러한
행동이 가능한 것은 그 목이 270 도까지 돌아갈 수 있는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 서식하고 있는 킹 코브라는 매우 위험한 동물 중의 하나이다.
몸집이 큰 독사들 중에서도 킹 코브라는 5.4m까지 성장하는 가장 큰 덩치의
독사이며 매우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는 주머니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다.
하지만 이 동물을 더욱 두려운 존재로 만드는 것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덤비는
맹렬한 습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맹렬성은 특히 발정기와 산란기에 그 도가 극에
달한다. 이때 킹 코브라의 수컷은 암컷이 알을 지키고 있는 주변에서 항상 몸을
세워 긴장 상태를 풀지 않은 채 접근하는 모든 동물을 공격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럴 때 킹 코브라가 있는 곳의 1.5m 이내로 접근한다는 것은 이미 목숨을 잃는
거나 다름없다. 태국에서는 거대한 코끼리도 킹 코브라에게 희생되는 경우가
허다하게 발생한다. 킹 코브라는 주로 코끼리 몸통이나 발톱 사이와 같이 비교적
연한 피부를 공격하며 여기를 물린 코끼리는 보통 3시간 내에 목숨을 잃는다.
방콕은 동양에서도 매우 훌륭한 불교 사원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운하를 주교통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간혹 '동양의
베니스'라고도 불리고 있는 이 도시에는 400개가 넘는 불교 사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취옥(물총새 취, 구술 옥) 불타 사원'이 가장 유명하다. 15세기경부터,
틸로카 왕에 의하여 '태국의 정신적인 지주'로 선정되어 모든 태국인들의 신앙
생활의 중심이 되어오고 있는 이 '취옥 불타 사원'은 태국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보물들이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며 거기에서 제일 걸작품은 건물
지붕밑에 보관된 연좌에 앉아 참선하고 있는 불상이다.
사실상 이 '취옥 불타 사원'은 거대한 전체 불교 사원 단지 중의 조그마한 일부일
뿐이다. 태국의 수도를 가로지르는 카오프라야 강변에 세워진 이 불교 사원 단지는
전체 길이 2.4km, 높이 4m, 그리고 그 두께가 3m나 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호화로운 장식으로 꾸며진 출입구가 63개나 있다.
이 불교 사원 단지에는 '취옥 불타'이외에도 고대 불경, 흰 코끼리 석상, 그림,
불교 성인들의 석상, 성골(거룩할 성, 뼈 골)을 보관하는 건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1 년에 한 번씩 방문이 허락되고 있는 만신전(만 만, 귀신 신, 큰집 전)에는
실제 크기의 역대 태국 왕들의 동상이 있으며 단지 전체의 마당에는 악귀를 쫓는
마신(마귀 마, 귀신 신)들의 석고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 단지에 있는 모든 건물들의 창문이나 대문, 그리고 석상이나 탑들은 모두 위를
향하여 뾰족하게 깎여진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타고 있는 불꽃 모양으로
구부려 만든 쇠붙이 장식이 있는 이채로운 건물이 눈에 띈다.
이 '왓 프라 카에오' 불교 사원 단지가 있는 카오프라야 강변 건너편에도 '새벽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사원 단지가 조개껍질이나 도자기 조각이 박혀 있는 흙벽돌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각 건물의 층을 받쳐주고 있는 수많은 기둥에는 마신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이 두 불교 사원 단지의
뾰족탑들이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모습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동양의 장관, 아니
세계적인 장관이라 할 수 있다.
'씨'라고 하면 보통 그 크기가 대체로 비슷비슷한 사과 씨나 참외 씨, 혹은 오렌지
씨나 앵두 씨 정도를 생각하겠지만 각 식물들의 크기가 다양하듯이 그 씨의 크기도
무척 다양하다.
백합의 씨 35,000,000개가 겨우 1온스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한편,
세이켈레스야자 씨 하나의 무게는 한 광주리의 사과보다도 무겁다.
아프리카 동부 해역의 조그만 군도 중의 하나인 세이켈레스 섬에서만 자생하고
있는 이 야자는 그 열매가 쌍으로 붙은 것같이 보여 때때로 '쌍야자'라고 불리기도
하며 그 모양이 여성의 골반과 무척 흡사하여 전통적으로 신비스러운 기능이 있는
열매로 취급되기도 한다.
또한 이 야자수는 '바다야자'라고도 알려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야자수가 씨를
바다에 떨어뜨려 먼 곳의 해안까지 그 씨를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따지자면 두꺼운 섬유질의 살과 껍질을 갖고 있는 이 야자 씨는
씨라기보다는 과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겠지만, 단 하나의 씨를 갖고 있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이것은 보통 씨로 취급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씨가 되는
것이다(사실상 세상에서 제일 큰 씨는 남미 대륙에서 자라고 있는 마라나무의
씨로서 큰 것은 15cm 정도까지 이른다).
이 거대한 세이켈레스야자 씨는 그 성숙 기간이 10 년이나 되며 그 크기는 직경이
46cm, 그리고 무게는 18--23kg이나 된다.
땅이나 바다를 모두 찾아봐도 엑소로톨(도룡뇽의 종류)이라고 불리는, 멕시코 산
양서류 생물처럼 이상하게 생긴 괴물은 없을 것이다. 이 희한한 생물은 다른
양서동물과는 달리 유충 시절의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즉, 개구리의 유충인 올챙이는 성장을 하게 되면서 올챙이의 모습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 엑소로톨은 올챙이 모습의 유충이 성장하면서 더 큰 올챙이로 변할
뿐이다. 이렇게 특수한 성장 과정 때문에 다른 양서동물들의 아가미는 자라면서
퇴화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엑소로톨은 성장 후에도 이 아가미를 여전히 사용한다.
20cm 정도의 크기로 성숙한 엑소로톨을 보면, 마치 둔한 발이 달려 있는
물고기와 같은 느낌이 든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통치자들은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혈투를 계속하는
검투사들의 살인 경기를 즐겨 구경하였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타소스 출신으로
무적을 자랑하던 테오기네스라는 힘센 검투사가 있었다.
테오기네스는 기원전 900 년경 왕위에 오른 테수스 왕자를 모시던 검투사였는데
이 테수스 왕자가 즐기던 혈투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것으로서 그 잔인성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이 혈투에 참가한 두 선수의 몸은 서로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놓여진 돌의자에 각각 묶어진 채 양 선수의 손에는 날카로운 쇠징이 달린
가죽장갑이 끼워진다. 신호와 함께 상대방을 쇠장갑으로 때리는 혈투가 시작되어 두
선수 중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 잔인한 경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긴 선수 생활을 통하여 뛰어난 격투술을 갖추게 된 테오기네스는 상대한 선수
1,425 명을 모두 죽이는 전적을 자랑하게 된다.
치명적인 독을 갖고 있는 코브라는 인간이나 그 밖의 동물들에게 가히 두려운
존재이다. 코브라의 독은 성인(이룰 성, 사람 인)을 1분 내에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코브라를 절대로 무서워하지 않는 동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몽구스라는 동물인데 조그만 몸집을 가진 동물은 코브라를
무서워하기는커녕 그 무시무시한 독사를 발견하면 주저없이 덤벼들어 물어 죽인다.
인도가 원산지인 이 몽구스는 76cm의 작은 몸집에 뾰족하고 짧은 다리, 작은 귀,
몸 길이와 같은 크기의 꼬리를 갖고 있으며 성질이 온순하여 쥐를 잡기 위한
목적이나 애완용으로도 널리 사육되고 있지만, 역시 이 몽구스는 그의 본업인
'코브라 잡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바짝 약이 오른 코브라와 마주선 몽구스의 모습을 보면 마치 전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스프링처럼 튕겨져 일어선 코브라는 부채처럼 활짝 핀 머리를 곧게 세운 채
좌우로 흔들며 까만 혓바닥을 신경질적으로 날름거린다. 코브라와 마주선 몽구스의
다리에 긴장된 힘이 들어가면서 등이 활처럼 휘어지고 몸의 털이 모두 곤두선다.
거의 코를 맞댄 거리를 두고 코브라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있는
몽구스의 몸은 마치 코브라와 한 몸이 된 듯하다.
갑자기 코브라가 공격을 한다. 하지만 몽구스는 번개같은 몸짓으로 뒤로 펄쩍
뛰어 물러선다. 코브라의 재빠른 공격이 재차 시도되지만 그때마다 몽구스는 몸을
날려 피한다. 성이 난 코브라의 공격은 더욱 치열해지지만 몽구스는 적이 지칠 때만
기다리며 여유 있게 공격을 피한다. 점차 코브라의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몽구스의
공격이 시작된다. 몽구스가 노리고 있는 것은 공격하던 코브라가 일단 찌를 듯이
앞으로 튕겼던 머리를 미처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있을 때이다. 이때를 포착한
몽구스의 날카로운 이가 코브라의 머리에 박히는 것이다. 머리를 물린 코브라가
최후의 힘을 내어 몸부림치며 몽구스의 몸을 감아 조이지만 몽구스는 코브라의
마지막 호흡이 남을 때까지 머리를 물고 늘어진다. 이윽고 코브라의 몸이 축
늘어지면서 승리를 확인한 몽구스는 그제서야 코브라의 머리를 물었던 입을 풀고
짧은 휴식을 취한 다음 천천히 코브라의 몸 전체를 씹어 삼킨다.
독주머니까지.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 몽구스를 신성하게 생각하여 때때로 미라로 만들기도
하였으며 고양이가 인간 사회에서 사육되기 이전에는 쥐 잡는 일에 주로 이
몽구스가 동원되었다. 한때 인도 산 몽구스들이 자마이카와 마틴쿠웨 지역의 독사
박멸에 수출되어 독사 잡기에는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후 야생적으로 변한
이 몽구스들이 가축들을 해치기 시작하여 거꾸로 자신들이 박멸 당해야 할 처지에
놓인 사실도 있었다.
이 지구라트 식 건축은 고대 수메르 족이나 바빌론, 그리고 앗시리아 인들의
피라미드 신전에 사용되고 있던 형태로서, 한때 계단식 피라미드라고 불리기도 한
이러한 형태의 거대한 건축물들은 메소포타미아 왕국들의 영토 전역에 세워졌었다.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도 그 높이에는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지구라트 식의
건축물이었을 것이다.
고대의 수많은 지구라트 식 신전 중에서도 '우르의 대지구라트 신전'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우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도읍지이며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곳으로서 남무 왕이 통치하던 곳으로 기원전 2060 년경에는 유프라테스
강을 이용한 무역 활동의 중심지가 되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남무 왕의 명에 의하여 이 도시의 번영을
상징하기 위한 대표적인 신전, 즉 지구라트 식 건축 형태의 신전이 도시 한복판에
세워지게 되었다.
달의 여신, 난나의 이름으로 바쳐진 이 신전은 피라미드 식의 3층 건물에 1층으로
올라가는 3개의 계단이 정면에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건축에 사용된 특수한 벽돌,
즉 '비투멘'이라고 불리던 특수한 역청을 발라 햇빛에 구운 벽돌 때문에 건물
전체가 번들거리는 빛을 띠고 있다. 그 당시 주로 흙벽돌로 낮게 지어진 가옥들이
가득 들어선 우르 도시의 한복판에 그들의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물이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이 지구라트 식 건축의 특징은 각이 진 건물의 외형에도 불구하고 직선이 절대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대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미 눈의 착각을 이용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즉 기둥을 직선으로 깎기보다는 그 중간이 약간 불룩 나오게
만들어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직선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우르 남무 왕의 지구라트 신전을 다시 개축하여 가장 규모가 큰 대지구라트
신전으로 만든 것은 바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이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원래
3층으로 지어진 남무 왕의 지구라트 신전을 7층으로 증축하는 한편 건물 정면에
있는 계단을 나선형으로 뜯어고쳤다. 1층부터 시작되는 나선형의 긴 계단이 전체
건물을 감아 오르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신전 건물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지만 이것이 유일한 통로는 아니며 그 외에도 건물의 꼭대기로
통하는 길들이 여러 곳에 있다.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뒤를 이은 나보니더스 왕의 뜻에 의하여 이 신전은 원래의
높이보다 2배 정도 높게 개축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높은 48m 높이를
자랑하는 이 신전의 꼭대기 층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달의 여신'을 위한 의자와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정복자들에 의해 파괴되기 시작한 우르 도시가 점차 폐허로 변하게 되면서 수천
년을 견디어오던 대지구라트 신전 건물도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거치른 사막의
모래에 덮이고 말았다. 금세기에 시도된 발굴 작업에 의하여 이 신전의 모습이 다시
드러나게 되었지만, 이미 모래 덩어리로 변한 그 어디에서도 찬란하였던
'대지구라트 신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리는 고체가 아니다
유리는 고체가 아니라 액체이다. 즉 유리는 고체가 갖고 있는 어떤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외에도 유리는 고체와 같이 어떤 명확한 형태를 가진 결정체도 아닐
뿐더러, 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
a black eye
'a black eye'는 독일어로 파란 눈을 의미한다. 그러나 프랑스어로는 '찔린
눈'으로 해석된다.
검정색과 흰색
검정 물감 몇 방울만 떨어뜨려도, 흰색 물감은 더욱 하얗게 변한다. 따라서 흰색
물감이 가득 든 양동이에 네다섯 방울의 검정 물감을 떨어뜨리면, 이때 검정 물감은
마치 표백제처럼 흰색 물감을 더욱 하얗게 변하게 한다.
물 속에서는 타지만 등유 속에서는 타지 않는 금속
금속인 나트륨은 물 속에서는 발화된다. 그러나 등유 속에서는 타지 않고 그대로
원형을 유지한다. 이때, 나트륨이 물 속에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탈 때 배출되는
수소가스로 인해 나트륨 수산화물이 형성된다.
동풍이 서풍보다 무겁다.
시속 80km로 불어오는 서풍의 공기가 동일한 속력과 공기의 함량을 가진 동풍의
공기보다 가볍다고 한다. 그래서 무거운 동풍이 언제나 서풍보다 낮게 부는 것이다.
이런 무게의 차이는 중력의 변이를 일으키는 지구의 자전 현상, 즉 지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하루 동안 돌 때 생기는 원심력 때문이라고 한다.
문맹 작가들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알려져 있는 호머와 소크라테스는 사실
글을 쓸 줄 모르는 문맹인들이었다. 전적으로 그들의 기억력에 의존하여 구술했다고
한다.
수도관
보통 가정집 내에 설치되어 있는 수도관 중에 온수 파이프는 냉수 파이프보다
빨리 얼어붙는다.
사자의 심장
이 세상의 용맹스러운 동물들 중에서 사자는 가장 작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전제 군주들 중에서 가장 겁이 많다고 알려진 스페인의 필립 2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큰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검은색의 비
1849 년 5월 14일, 검은 색깔의 비가 640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에 내렸다.
1880 년 6월 14일, 러시아에서는 빨간색, 흰색, 그리고 파란색의 우박이 내렸다.
이 개미잡이의 모습이 궁금하면 토끼의 귀와 돼지의 주둥이, 긴 꼬리와 억센 발톱,
짧은 회갈색 털의 산돼지만한 덩치의 동물을 상상하면 된다. 개미잡이를 처음 보게
되면 마치 화성에서나 볼 수 있는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동물이 사는 곳은
화성이 아닌, 중남부 아프리카의 평원이다.
남아프리카의 보에르 족들은 이 동물을 그들의 언어로 아아르드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것은 '땅돼지'라는 의미로서 이 동물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개미잡이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 평원의 토질은 벽돌같이 매우 단단하지만
개미잡이는 이 땅을 마치 해변가의 모래를 파내듯 불과 몇 분 만에 헤집어 자신이
살 땅굴을 만드는데 한 번 땅 속에 파묻힌 이 개미잡이를 끌어내기란 불가능하다.
보통 하루의 대부분을 이 굴 속에서 보내는 개미잡이는 땅거미가 깔리면 굴
밖으로 기어나와 저녁거리를 찾는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 2m의 덩치를 가진
개미잡이는 주로 자그마한 개미나 흰개미만을 먹고 산다.
아프리카 산 흰개미는 흙으로 쌓아올린 집에 살고 있다. 간혹 어른 키 정도로
높이 쌓아올려진 이 흙집은 뜨거운 아프리카의 햇볕에 구워져 단단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개미잡이는 날카로운 앞발로 이 흰개미 집을 단숨에 부숴 버린 후 그 길고
끈적끈적한 혓바닥을 내밀어 흰개미들을 핥아먹는다.
마모트(marmot: 모르모트)는 주로 록키 산 기슭에 살고 있는, 회백색의 털로 덮인
일종의 두더쥐이다. 대략 토끼 만한 몸집을 가진 이 마모트는 산악 지역의 땅에
제각기 판 굴 속에서 살고 있는데 록키 산의 한 등성이를 온통 차지할 만큼 매우 큰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 마모트의 집단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산등성이를
뒤덮은 수많은 구멍마다 머리를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을 즐기며 바위의 이끼나 풀들을 씹고 있는 이 동물들의 모습은
마치 맹수의 위협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들의 경계 태세가 절대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각 집단에서
뽑힌 한 마리의 보초 마모트가 높은 곳에 올라서서 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독수리와 같은 맹수의 위협을 감지하는 순간 이 보초의 천둥 같은 휘파람이 바람을
가르며 울려 퍼지면 한가롭게 놀고 있던 마모트들은 재빨리 제 구멍으로 몸을
숨기고 마모트가 사라진 산등성이는 삽시간에 아무런 생명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폐허로 변한다. 이윽고 독수리가 날아 지나가면 두 번째의 휘파람, 즉 공습
해제 경보가 울리면서 산등성이는 다시 활기 띤 마모트의 모습으로 가득 찬다.
마모트의 휘파람 소리는 매우 특이하다. 바위와 계곡에 울려 퍼지는 째지는 듯
우렁찬 소리는 마치 야간 열차의 기적 소리와 같이 들린다. 조그마한 동물의 몸에서
그렇게 우렁찬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마모트는 마치 땅콩 만한 크기의 성대를 갖고 있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소리는
사방 3km의 거리에서도 잘 들린다. 아마 동물이 내는 소리 중 가장 멀리 퍼지는
소리가 될 것이다.
바다쇠오리 새끼는 조류 왕국에서 가장 모성애가 극진한 어미를 두고 있다. 이
바다쇠오리는 1 년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어미새는 그 새끼의 덩치가
자기보다도 커질 때까지 새끼를 보살핀다.
너무나 비대한 몸집 때문에 먹이를 사냥할 능력이 없는 이 바다쇠오리 새끼는
어미와 떨어지게 되면 몸에 축적된 지방질로 견디다가 지방질이 빠져 날씬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스스로 먹이를 찾아 나선다.
1722 년 부활절, 네덜란드 탐험가 제이콥 로제빈은 남미 해안에서 4,0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 이스터 아일랜드를 탐험했다. 장시간의 항해 끝에 섬에
오른 그는 활동을 멈춘 활화산의 흔적들과 함께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수없이 많은
얼굴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이 거대한 돌상들은
신석기 시대의 한 부족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결론이 내려졌지만 어떠한 지리학자도
이 석상의 의미를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돌로 만든 거대한 얼굴들은 화산의 약간 경사진 언덕에 집단을 이루며 서 있다.
서로 거의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얼굴들은 지상으로 솟아 나온 얼굴의 높이만도
3--12m가 되며 땅 속에 박혀있는 부분을 합치면 그 무게가 50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무려 600개가 넘는 거대한 돌 얼굴들이 섬의 경사진 언덕마다
총총히 세워져 있는 이 광경은 마치 신비스러운 미술관에 들어와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이 작업에 쓰여진 바위들은 '라노 라라쿠'라고 불리는 화산의 채석장에서 생산된
무른 화산석(구멍이 많은 탄산석회석)이다. 폐허가 된 이 채석장에는 언덕 마루로
옮겨질 계획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얼굴이 150개 정도 남아 있는
것이 탐험가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완성된 시기가 각각 틀리게 추정되는 이 돌
얼굴들 주위에 연장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작업이 무언가의 방해를
받고 갑자기 중단된 후 영영 다시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강한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이 수수께끼를 풀고 싶어하는 지질학자들의 노력이 뜨거워질수록 이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석상의 발치에 뼈와 재가 묻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으며 한때 이 석상의 머리에 모자나 그 밖의 장식으로 올려져 있던
것으로 보이는 붉은색의 편편한 돌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이 석상이 박혀 있는
땅 밑을 파내려가던 학자들은, 이 석상이 얼굴 부분만이 아닌, 9m 땅 속에 박힌 몸
전체에도 조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많은
수수께끼들이 과학자들을 미치게 하고 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해 이 거대한 조각품을 조금도 다치지 않고 채석장에서 운반해 왔는지, 상당한
무게가 나가는 돌모자를 어떻게 아무 보조물도 없이 석상 위에 올려놓았는지, 그
거대한 석상들을 어떻게 9m의 땅속 깊이 파묻을 수 있었는지, 석상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그 작업이 별안간 중단된 이유는?
수세기를 통한 연구와 토론을 해도 밝혀지지 않을, 어쩌면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수께끼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먼저 가보고 싶고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 건물을 말하라면
당연히 그 의견들이 분분하겠지만 스페인 그라나다 지방의 알함브라 성의 이름이
그러한 리스트 제일 위에 올라갈 것이 분명하다. 호화스럽게 장식된 웅장한
복도들과 회랑, 그리고 수많은 부속 궁전들로 이어지는 화려한 정원은 한때 북부
아프리카와 스페인 지방을 지배하였던 고대 무어 족들의 문명을 대표하는 예술의
결정체인 것이다.
고도(옛 고, 도읍 도) 그라나다 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142 평방킬로미터 면적의
이 성은 오랫동안 스페인을 통치하던 역대 무어 족 왕들의 왕궁이자 성채였고
행정을 관리하는 중심지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대략 1230--1354 년 사이에
본격적인 완성을 보게 된 이 성채는 1492 년, 그라나다 지역이 스페인 족에게
점령당할 때까지 유럽 회교도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기도 하였다. 1492 년 당시 이
성채 건물의 많은 부분이 그라나다를 침공하던 스페인 족들에게 파괴된 것을
비롯하여 1812 년에는 그 망루 부분이 나폴레옹 군대에 의하여 부숴졌으며 1821
년에는 지진에 의하여 상당히 많은 부분이 파괴되기는 하였지만 1828 년에는
실시된 대규모의 복구 작업에 의하여 700 년 된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이 성채는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한바퀴
도는 데만도 한 시간 이상이 족히 걸린다(알함브라, 즉 '붉은'이라는 의미의 성채
이름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성벽에서 유래된 것이다).
모든 부속 건물 중 비교적 무어 문명 당시의 원래 모습이 손상되지 않았던
알카자바 건물의 실내 장식과 조각품들에 특히 고대 무어 족들의 손길이 남아 있다.
대리석이나 희고 매끄러운 석고에 새겨진 훌륭한 조각들이나 복도의 벽이나 바닥을
수놓은 아름다운 타일들, 윗부분을 야자수와 같이 퍼지게 깎은 대리석 기둥들,
그리고 햇빛을 가득 받고 있는 정원에 세워진 아름다운 분수대들은 그 당시
뛰어났던 무어족들의 미적 감각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알함브라 성채의 모든 건물 중 가장 아름답게 꾸며진 곳은 물론 성채의 중심이
되고 있는 왕궁이다. 왕궁의 한복판에는 하품하는 입에서 물을 내뿜고 있는 대리석
사자상으로 유명한 사자관, 그리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22.5m
높이의 원형 지붕이 있는 대사관이 들어서 있으며 도금양관(복숭아나무 도, 쇠 금,
계집애 양, 객사 관)의 3 평방 킬로미터 넓이의 연못에는 도금양나무의 그림자를
받고 있는 물 속에 찬란한 빛깔의 금붕어들이 놀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 성채는 많은 전설과 그것에 얽힌 유령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천국과 같이 아름다운 알함브라 성채를 잊지 못하는 옛 무어
사람들, 혹은 스페인 사람들의 혼이 아직도 이곳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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