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김철식.
내가 퇴행을 각오하면서까지
너의 네 줄 가로무늬를 주술처럼
지니고 있는 이유를 나는 모른다
내 몸 속의 또 하나의 나인 너를
철갑으로 껴안고 있는 이 고집도 알 수 없다
오직 너의 예민한 촉각에 굴종하기 위하여
빛깔 없는 나의 노래는
허공을 흔들고, 단 한순가
천년을 떨게 하는오르가즘을 위해
그 황홀 같은 기적을 위하여
음지를 기어가며 너와 나의 살점을 뜯는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하든
그것이 소통이 아니라 하든
아, 그것이 소멸이고 폐허라 하든
운명처럼 너 있는 곳에 내가 있고
내가 토하는 모든 슬픔이 네 안에 고임에야
하여, 장마철 나의 힘겨운 산란은
너를 위한 아름다운 퇴화가 되고
너의 네 줄 무늬는
치욕으로 잉태한 나의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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