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글쓰기로 하는 가르치기와 배우기와 말 살리기
우리 글쓰기회가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교육을 목표로 하여 외롭고 험난한 길을 나선 지 어느덧 11년 반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군사독재 정권과 그 정권에 길들여진 행정 관료들의 한결같은 박해와 냉대에도 굽히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슬픈 남의 나라 글로 된 굳어진 관념의 체계가 만들어 낸 권위와 그 권위가 휩쓸던 시대의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이 땅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슬기를 다하고 힘을 다 바쳐 왔다. 그 결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란 말은 이제 우리 나라에서 참교육의 알맹이를 가리키는 말처럼 되었고, 글쓰기로 훌륭한 교실문화를 만들어서 온 나라 교육계에 본을 보여주는 회원들도 적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멀고 아득하다. 그리고 갈수록 삶을 가꾸는 일은 힘들고, 때로는 절망스럽기조차 하다. 아이들은 삶을 빼앗긴 채 서글픈 어른으로 되어가고, 이 땅과 백성들 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정치와 경제의 논리는 교육마저 마구잡이로 끌어 가고 있는 판이 되어, 이제 우리는 그 어느 어른이고 아이를 붙잡고 사람같이 살아 보자고 마음놓고 말할 상대조차 없게 되었다.
여기에다 농촌이 없어지고, 농촌을 중심으로 이어져 온 우리 말과 삶이 뿌리째 뽑혀 버려지게 되었으니, 어디서 어떻게 아이들의 삶을 가꾸겠는가?
올해는 포악한 일본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사람들은 분단 반 세기를 맞아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로는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가 닥쳐왔다. 그것은 겨레의 목숨인 우리 말이 아주 결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위기를 바로 보지 못한다면 우리 겨레의 앞날은 오직 암흑밖에 없을 것이다.
“‘글쓰기 연구회’는 글쓰기 교육과 우리 말 살리기와 글쓰기 공부,
이 세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이지만,
이 세 개의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굴대는 우리 말이다.
그리고, 이 바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원이 되는 힘은
글쓰기 교육의 정신이다.”
아이들을 살리는 글쓰기 교육은 이제 그 무엇보다도 먼저 겨레말을 살리는 교육부터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글쓰기 교육 연구회’가 ‘우리 말 살리는 모임’과 하나로 되어 ‘글쓰기 연구회’로 새 출발을 하게 된 까닭이 이러하다.
이것은 글쓰기 교육운동의 길을 바꾼 것이 아니다. 근본이 되는 문제를 깨달은 것이고, 겨레의 위기를 앞에 두고 나라를 구해 내는 교육을 해야겠다는 뜻을 굳힌 것이다. 우리 말을 살리는 일은 아이들에게 우리 말을 이어 주고, 아이들의 말을 지키고 가꾸는 것을 가장 큰 일로 삼아야 하게 되었다.
글쓰기 교육과 우리 말 살리기를 따로 보아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참된 글을 쓰게 하는 일과 어른이 스스로 글쓰기 공부를 하는 것도 우리 말을 살리고 삶을 가꾸는 일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글쓰기 교육과 글쓰기 공부와 우리 말 바로 쓰기는 하나인 것이다.
‘글쓰기 연구회’는 글쓰기 교육과 우리 말 살리기와 글쓰기 공부, 이 세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 수레이지만, 이 세 개의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굴대는 우리 말이다. 그리고, 이 바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근원이 되는 힘은 글쓰기 교육의 정신이다. 이 정신이 이와 같은 참된 길을 발견하게 했으니까.
먼 길을 이제 또 새 이정표를 세워서 떠나게 되니 아이들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 우리가 가져야 할 몸가짐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확인해 보자. 첫째는 스스로 삶을 채찍질해서 가꾸어 가고, 둘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 아이들한테서 배우고, 셋째는 깨끗한 우리 말을 쓰고. 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