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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의 카운셀링 모델

실다이 2016. 2. 10. 09:37

1.    상담을 보는 관점

 

심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신신경증을 두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개성이 미발달된 집단적인 성격들 띤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류와, 과도한 개성의 개인주의자들로 이루어진 부류이다. 전자의 경우는 집단적응의 길로, 집단적으로 통용되는 진실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적응시키는 것이 목표가 된다. 후자의경우, 모든것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현대인)에게 앞서의 정상화는 의식의 수준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그 자신의 고유개성을 개발하도록 Individuation의 과정을 밟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개성화 과정은 내담자를 본래의 그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담자는 더 심한 신경증을 겪을 수도 있다. 이때 내담자는 상담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증상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자신의 깊은 요구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융은 종종 자신의 신경증적 증상에 감사하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는 내담자를 많이 만났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증상은 그가 자신이 밟아야 하는 개성화의 길을 언제, 어디에서 이탈했는지, 어떠한 중요한 문제를 무의식에 남겨놓았는지를 이해하도록 자신들을 도와주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담의 형식은 내담자의 문제 양상에 따라 달라야 하며, 모든 경우에 심리분석이 유용한 것은 아니다. 가장 간단한 경우와 철저한 고백만으로도 충분히 치유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유아적 욕망 추구와 권력의지가 문제시 되는 경우, 프로이드와 아들러의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 충분히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프로이드와 아들러의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방법이 상담의 정체를 가져오는 경우, 변증법적 과정 및 개성화 과정과 같은 해석적 방법 혹은 합성적 방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내담자가 자신의 꿈을 이해하도록 시도함으로써 무의식의 내용이 점차적으로 의식과 합치되도록 하기위해서 상담은 초기 일주일 네번을 시도한다. 그 후 두 번 정도로 줄이면서 내담자가 자신의 길을 가도록 유도한다.

  

 

2. 상담 목표 : Jung에게 있어 정신병은 인격의 병

내담자의 Individuation Process를 돕는 과정

무의식과 의식의 통합과 조화

자아의 실현

 

상담은 어떤 현상이 시작되어 반전이 되는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삶의 의미와 대상의 상실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보고 융은 그것을 우리시대의 보편적 신경증이라고 보았다. 연령에 있어서도 인생의 3분의 2를 넘긴 인생 후반기의 사람들이다. I am stuck이 그들을 표현할 수 있겠다. 삶의 한쪽으로만 치우쳐졌을 때, 정체와 방향상실이 일어난다. 그리고 나서 정신적 에너지가 갑작스럽게 상실되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활동에 흥미가 없어지고 의미를 잃게 되는 것이다. (신경증적 해리)


이러한 정체감은 의식이 더 이상 나아갈 길을 보지 못하여, 무의식이 이 견딜수 없는 정체 상태에 반응함으로써 생기는 사건이다. 이것은 인간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되어 많은 신화나 민담의 모티프가 되어온 하나의 전형적인 정신적 사건이다.( 동굴의 문을 여는 참깨 방망이 ) 이러한 정체상황에서 인격의 다른 발달 가능성은 종종 과거의 어딘가에 파묻혀 있다. 그것에 관해서는 내담자나 상담자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꿈은 그 자취를 들추어 낼 수 있다.


꿈을 해석하는 과정은 꿈꾼 사람에게 하나의 재검토를 의미하고, 이 과정에서 내담자는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참여하게 된다. 이것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정체상태를 극복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담자에게 연상할 기회를 주고, 상담자 자신의 의견을 제공하고, 거기서 어떤 이해의 과정이 일어난다면 꿈은 환자와 함께 작용 즉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무의식의 의식화의 시작을 내딛게 되는 것이고, 내담자는 스스로의 충동을 깊이 사색하게 되고, 나중에는 스스로의 원하는 방향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성화의 과정이라고도 자아실현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    상담의 실제


상담자의 자세로서 융은 상담자(혹은 정신과 의사)는 그 자신이 개별적인 인간의 정신치료를 하고자 하는 한, 좋든 싫든간에 모든 권위, 영향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나 내가 더 잘 안다는 온갖 마음들을 포기해야만 한다고 했다.


상담의 시작과 효과는 상담가와 내담자의 치료적 상호관계(Rapport) 영혼의 교감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의사의 인격과 정신사에 대한 지식에서 우러나는 설득력과 관찰력에 의해 좌우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때 의사의 개성과 인격은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에서 간과할 수 없는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한 경우게 의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상담자의 이론이나 도구는 모두 제쳐두고,  상담자의 인격이 내담자에게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하는, 오직 이 한가지 사실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때 상담자보다 뛰어난 감수성과 인격의 넓이를 갖춘 내담자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앞에서 언급한 신뢰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융은 말하고 있다.  즉 의사의 인격의 도덕적인 분화가 가장 큰 중심이 되는 것이다.

 

상담의 과정에서 수행되는 분석을 위해 융은 처음으로 분석가 자신도 분석되어야 한다고 처음으로 제안하였다. 이점에 있어서는 Freud 역시 분석가 자신도 역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몇 개의 맹점이나 편견을 갖게 된다고 인정하였다. 분석가 자신이 분석을 받아야 된다는 요구는 변증법적 방식에서 그 필요가 확연히 들어나는데, 변증법적 대화의 과정에서 분석가는 묻는 자일뿐만 아니라 대답을 하는 자로서 다른 정신체계(내담자)에 발을 들인자로서 신천지에서 당황하고 있는 자연인이 그 기본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때 분석자는 자연인으로서의 그 자신의 선호도나 편견이 여과없이 드러나게 되고, 이것은 내담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Counter-transference). 동시에, 분석자 자신이 내담자의 건강하지 못한 정신에 의해 그 자신의 의도와 정신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Transference). 이때 분석가는 이미 우월한 자도 많이 아는 자도 아니고, 재판관이나 충고를 주는 사람도 아니며 함께 체험하는 자로서, 내담자라고 부르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변증법적 과정 속에 속해 있는 것이다.

 

 

< 상담의 기법 >

 

덕망이나 재능은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특질이어서, 치료의 대상이나 이론의 대상으로 삼는 일반 보편대중의 특질로 볼 수는 없고, 따라서 상담의 기법은 보편적으로 효과가 있다고 믿어지는 방법이어야 한다. 예전의 최면술이나, medicine man의 부적 또한 같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적인 방법에 대한 치료자, 혹은 상담자 자신의 믿음이다. 치료자의 자발적인 노력과 헌신은 집단인간 즉 대중의 정신적 영토가 도달할 수 있는 만큼 치유작용을 한다.

 

변증법적 대화


Thesis(주장, 혹은 진술) Anti-thesis( 반대주장, 혹은 반대 진술) Syn-thesis( 합일을 지향하는 진술)


융은 처음으로 이러한 변증법적 방식이 정신치료의 가장 새로운 발전 단계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는 이 방법이 심리학적 사실에 대해 편견 없는 태도를 갖기 위하여 이전의 것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상담가는 대화의 주체라기 보다는 개인의 발달과정을 함께 체험하는 매개 역할(Miterlebender)을 수행한다. 이것은 상담가와 내담자가 서로 함께 자신들이 문제 삼고 있는 정신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꿈의 분석 무의식과 의식의 분석 심리분석

 

The psyche is a self-regulating system that maintains itself in equilibrium as the body does ---We can take the idea of compensation, so understood, as a law of psychic happening. --- The relation between conscious and unconscious is compensatory. This fact affords a rule for dream interpretation. (Balance) The dream content should be treated as a contributory factor in framing our conscious outlook.

 

Freud에게 있어 꿈은 증상(Symptom)으로 파악된 반면, Jung에게 있어 꿈은 상징(Symbol)이었다. 프로이드는 꿈을 인과적 으로 관찰하였는 반면, 융은 꿈을 목적 지향론적으로 설명하였다. 프로이드는 꿈이 유아적 욕구, 성적 욕구의 표현이고 꿈을 통해서 억압된 욕구를 만족시키고 해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융은 꿈이 개인의 심리적 자가 조정자역할을 함으로써, 꿈꾼자를 벌하기도 하고, 도덕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꿈을 읽은 것을 배워야하는데, 꿈들의 맥락(Context)을 수립함으로써 꿈을 읽는데 성공할 수 있다. 자유연상의 도움이 아니라, 모든 해석은 hypothetical이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은 텍스트를 읽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꿈을 Series로 바라볼 때, 더 중요한 의미가 들어난다. 중요한 내용과 기본적인 테마가 들어난다. 실제로 꿈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현실상황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없이는 꿈의 진정한 의미는 모호한 채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의식적인 인격(conscious personality)의 진정한 가치가 제대로 존중되어야만 꿈의 내용이 제대로 연관을 갖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this or that의 문제가 아니라 this and that의 문제라고 consciousunconscious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꿈의 해석이 의식의 균형 혹은 평형(the conscious status quo)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꿈의 상징에 대한 취급은 분석자가 꿈꾸는 사람의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 입장등을 제대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꿈을 꿈꾸는 자의 고정된 인격의 증상이나 신호로(symptom or sign) 받아들이기 보다는 아직 의식에서 인식되지 못한 어떤 것 혹은 개념적으로 공식화되어있는 어떤 것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비교적  고정된 상징이 없다면, 무의식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그러한 폭넓은 통찰력을 얻게되는 것도  비교적 고정화된 상징들에 대한 그의 경험덕분이다. 그러한 통찰은 진단(diagnosis)이나 예견(Prognosis)에 대단한 가치를 발휘한다.

 

A satisfactory agreement- 꿈의 의미에 도달하는 과정은 상담가와 내담자의 변증법적 대화에 의해 밝혀지는 점진적인 과정일뿐 아니라, 내담자의 전이와 상담자의 역전이가 일어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하고 아무런 성공의 보장이 없는 일이다. 실제로 내담자의 꿈을 series로 취급하여, 그가 처한 현실적인 상황과 그의 의식상황과의 결합속에서 의미가 해석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상당한 인내와 시간을 요하는 일이고, 편견과 오해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일이다.

 

꿈의 분석의 예)

 

한 예: Zurich의 한 동료. 나는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었네. 경사지고 눈으로 덮힌 등선을 타고. 나는 점 점 더 높은 산을 올라가고 있었고, 날씨는 환상적이었지. 내가 더 높이 올라갈수록, 기분은 점 점 더 좋아졌지. 나는 꿈속에서 생각했었지. 내가 이렇게 산을 영원히 오를 수만 있다면! 하고 말이지. 내가 정상에 올랐을 때, 나의 행복감과 우쭐함은 더욱 강해져 나는 내가 우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느낄 정도였지. 나는 공중을 계속 오르고 있는거야. 나는 정말 아찔한 환희(ecstasy)속에서 잠에서 깨었네.

 

이때 융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했다. 이보게 나는 자네가 산오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니 제발 이제부터는 혼자서 산에 오르지 말게. 산에 오를 작정이거든, 부디 두 명의 가이드를 데리고 가게. 그리고 그들의 말을 따를 것을 당신의 명예를 걸고 엄숙히 선언해야 하네. 그 동료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웃었다. 삼 개월 후, 결과는 나타났다. 그 동료는 자기보다 어린 친구와 함께,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은 채 산에 올랐다. 아래로 그를 지켜본 한 alpinist(알프스산을 오르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는 문자 그대로 발을 헛디뎌 공중으로 떨어져 바위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는 그 밑에서 기다리던  친구의 머리에 부딪혀, 둘 모두 시신이 산산조각이 났다고 한다.

 

두번째 예)


한 젊은이가 다음과 같은 꿈을 가지고 왔다. 나의 아버지가 그의 새차로 집을 운전해 나오고 있군요. 그는 운전을 능숙하게 하지 못했어요. 나는 그의  칠칠치 못한 운전을 보고 흥분해 있어요. 그는 이리로 갔다가 저리로 가고, 앞으로 갔다가 뒤로, 반복해서 차를 좁은 장소로 몰고 있는거에요. 마침내 그는 벽에 부딪혀 차를 심하게 망가뜨리고 말았어요. 나는 완전히 꼭지가 돌아서, 소리를 질렀죠. 제발 제대로 좀 처신하세요. 아버지는 그냥 웃기만 하고, 그때서야 나는 그가 만취상태라는 것을 알았죠.


이 꿈에 대하여 아무런 사전 설명은 없었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꿈에서조차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꿈을 꾼 그 자신은 차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것; 그 자신은 매우 조심스런 운전자라는 것; 알코올에 있어서도 그는 매우 신중하다는 것; 특히 그가 운전을 해야할 때는 더욱; 형편없는 운전과 차의 망가짐은 그를 대단히 분노케 했다는 것; 아버지와 그와의 관계는 좋다는 것; 그는 아버지를 성공한 사람으로 존경하고 있다는 것 등이다.


만일 그와 그의 아버지의 관계가 정말로 좋다면 왜 그 꿈은 있을 법 하지 않은 사건을 만들어냄으로서 아버지의 명예을 실추시키려 하는가? 그 꿈의 당사자의 무의식은 그런 꿈을 만들어낼 성향을 분명히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 청년은 질투 흑은 열등감에 의하여 아버지에 대한 저항감을 갖고 있는 것인가? 이런 식의 질문을 하기 전에 우리는 왜 그가 이런 꿈을 꾸었는지를 먼저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경우 대답은 그의 무의식은 분명히 그의 아버지를 깎아내리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것을 보상의 관계로 보자면, 우리는 그와 아버지의 관계는 좋을 뿐만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그의 존재의 너무 많은 것을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주변이 온통 아버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을 실현하지도 못할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의식으로 하여금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불경스런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 여기서 compensation은 적절한 설명이다.  그 보상이 그 아들로 하여금 자신과 아버지를 비교하게 하고, 이것이 그가 그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상담사례 :


 17살 소녀. 한 전문의는 그녀가 진행성 근육 atropy의 초기단계로 가정하고 있었고, 다른 전문의는 그녀를 히스테리 상태라고 생각했다. 이 두번째 의견 때문에 융이 개입하게 된 것이다. 치료의 장면은 나에게 유기적 질병(organic disesase)을 의심케 했지만, 그 소녀는 히스테리도 분명히 보이고 있었다. 나는 꿈을 물었다. (I asked for dreams.) 그 환자는 바로 대답하기를 네. 나는 최근에 내가 밤에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인 꿈을 꾸었습니다. 모든 것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고, 거실의 문은 반쯤 열려 있었습니다. 나는 나의 어머니가 상들리에게 걸려 열려진 창으로 불어오는 찬 바람에 그네타듯 몸을 흔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다른 때에 나는 끔찍한 소음이 밤에 집에서 들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무엇이 일어났나 보러갔고 겁에 질린 말이 온 방들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말은 홀로 통하는 문을 발견하고, 그 홀 창문을 건너넘어 사층에서 길가로 뛰어내렸습니다.나는 그 말이 아래에 사지가 절단된 채 누워있는 것을 보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어요.


죽음에 대해 언급을 하는 이 꿈의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끔식 불안한 꿈을꾸지만 우리는 여기서, 엄마 의 두드러진 상징의 의미를 면밀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이것들은 서로에게 등가의 가치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들은 똑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상징은 원형적이고(archetypal), 시작의 장소, 자연을 의미한다. 즉 무의식을 의미한다. 그녀의 무의식은 자살을 지향하고 었고, 이 일은 실제가 되었다. 손을 쓰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림의 분석


(Schieler 인간은 오직 자신이 직접 놀이를 할 대 온전한 인간이 된다.)


내담자가 꿈의 상징의 일반적인 의미를 상담가의 일방적인 도움에 의지하는 한, 내담자는 아직 심리적 유아기에 있는 것이다.  그 후에 내담자가 여전히 상담자의 통찰력에 의지하게 될 때, 이런 상황에서 특히한 색깔의 꿈이나 보기드문 상의 꿈을 꾸고 나서 나에게 내가 화가라면 꿈에 대한 그림을 그릴 거에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융은 내담자가 꿈에서 본 것을 실제로 그려보라고 권하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상을 그리는 데 기울이는 노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단순한 예술이 아닌 그 이상으로, 내담자에게는 마치 살아 있는 작용을 다루면서 그 자신이 능동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내담자가 일주일에 두세 번 흥미있는 대화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대화가 허공에 떠있는 것과 누가 보기에 완전히 무의미해 보이는 어떤 것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시간 동안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심리학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 그림이 실제로 무의미한 것이라면 내담자는 다시는 그림을 그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수시간의 노력은, 그 꿈에 본 환상의 이미지가 내담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 지속적인 수시간은 내담자로 하여금 그 이미지들을 충분히 관찰하게 하여 환상과 사실, 현실과의 관계를 스스로 더듬어 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그림의 작업으로 비참한 마음의 상태가 해소되는 것을 한두번 경험하기만 하면, 그는 이것을 스스로 해소책으로 찾게 될 것이고 이것은 모든 심리상담이 추구하는 독립으로 향한 시작, 심리적 성숙으로 향한 이행인 것이다. 이제 내담자는 자신의 꿈이나 치료자의 지식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림으로써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림을 통해 비로소 표현된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과 함께 기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의식의 해리가 사라지게 된다.  그림을 통해 무의식의 요구가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3. 주요개념


      융에게 있어서 인간 삶의 중요하나 결정은 대체로 의식적 재량과 선의의 합리성에 의하기 보다는, 본능과 그 밖의 비밀에 가득찬 무의식적 요인들에 의해 훨씬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였다.


융은 개성화(Individuation)의 개념을 내담자의 경험 재료 자체를 가지고 거기 드러난 무의식의 현상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담자의 의식적인 태도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일방적이기 때문에 무의식의 보조적, 보상적인 내용에 의해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우 무의식은 의식적인 마음의 일방성을 교정하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꿈이 보내주는 관점과 자극을 관찰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의 관점과 자극은 옛날부터 전해져내려오는 견해나 관습, 지적 및 도덕적 성질의 편견 등, 이전의 집단적 규범이 있는 곳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개성화의 과정을 겪거나 혹은 거기서 이탈해서 방황하는 모든 인생의 행로에서 한 개인이 꾸는 꿈의 내용의 집단의 규범과 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융의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꿈의 대단히 사적이고 은밀한 내용은 직, 간접적으로 그가 속해 있는 집단 의식(공공의식)을 보여주고, 그 개인이 처한 의식의 상황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융은 실제로 수많은 꿈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수많은 비교와 통계적인 확인을 통해서, 개별적인 꿈의 주제들을 정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신화와 민담이 가진 고태성(archaic feature) 내담자들이 그린 그림에도 나타나는데, 그 그림들은 형태와 색채 모두에서 마치 원시인의 동굴벽화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야생적으로 강하다.  역사적, 고태적 성격을 갖고 있는 이 비합리적이고 상징적인 그림들은 융이 집단 무의식이라는 이름 아래 현대와 과거 인류 모두에게 공통된 무의식적인 정신 기능을 말하고 있는것이다.

 

 

6. 이론의 한계-


精神史의 너무 넓은 영역으로 인도함. 삼담자에게 폭넓은 교양을 요함. 집단 무의식, 문화 공동체의 무의식. 그 의식의 공통된 부분을 읽을 줄 알아야 함. 원시인의 심리학, 신화, 고고학, 그리고 비교종교사에 관하여 가능한 한 많이 아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너무 지적인 접근을 하고 있지 않나, 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항상 함께 연결되어 있어서, 그 중의 어느 하나에만 영향을 미쳐도 다른 나머지 두 가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노학자 융이 몰랐을리는 없었을 텐데라는 의구심이 남는다.


Transference-Counter Transference는 우리가 인격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정화해 나가기 위해 분석자 자신이 분석을 꾸준히, 정기적으로 받아야 할뿐 아니라, 그 자신의 인격의 개발과 승화가 꾸준히 일어나야 하는 전인적 작업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매우 힘든, 보장을 할 수 없는 일로 생각이 된다.

 

 

 

7.       내가 이 이론을 선택한 이유

 

나에게 어필했던 이유: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

 

첫째- Jung이 갔고 있는 심리학적 전제에 대한 타당성에 설득됨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전적으로 다르다면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심리학이 해결될 수 없는 주관적 견해들의 혼돈으로 가득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성은 다만 상대적인 것으로, 인간의 同形, 同類성이 보편타당한 설명을 가능케 하므로 비로소 하나의 과학, 심리학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그의 설명에 깊이 감동함.

 

둘째- 동시대의 이론가들에 대한 편견없는 태도- Freud Adler를 보는 관점이 상당히 객관적이고 학문적이라고 느껴졌기때문이다. 그는 편견없이 각 이론가의 장 단점을 취하면서, 그것들의 상보성을 충분히 이끌어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설명되거나, 치료되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하고 그 치료를 위해 매진하던 중 여러 개념과 이론을 정립하였다는 것이 무척 감동적이었음. 예를 들어, 두 이론가의 입장이 이론의 유용성과 장단점을 떠나 그들이 살았던 정신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융의 학자로서의 성숙한 통찰력을 보여준다고 생각되었다.

 

셋째- 비학문적인 일반인에게 널리 퍼져있는 미신과 사소한 생각들, 혹은 동양에 대한 그의 진지한 연구가 진실에 도달하려는 학자로서의 열정을 보여주고, 그에 감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융은 구원의 상징을 갖고 있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원시인의 주술적 종교 형태 까지도 심혼의 고통과  심적인 원인으로 생긴 육체적 고통을 치료하고 고치는 정신치료로 보고 있다.

 

넷째- 그가 갖고 있는 그림에 대한 생각에 동의함. 그것은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고, 현대 미술이 점 점 추상으로 가고 있는 이유, 현대 미술사에 야수파가 등장하는 이유등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이 노학자는 너무나 잘, 보편적인 언어로 논리의 틀을 버리지 않으면서, 논리너머를 내다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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