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24 2014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실다이 2016. 1. 19. 22:30

 

 

Under the Net

 

 

<감상>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서로 빗나간 사랑으로 얽힌 관계 때문에 겪게 되는 이야기. ‘행복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고 너무나 슬퍼 보여서, 오랫동안 불행이라 잘못 알고 그것을 쫓아보냈다’는 것을 깨달은 제이크(294)는 마음이 쓰라리다. 애너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갔다가 제이크는 프랑스대혁명을 기념하는 파리제, 7월 14일, 왁자지껄한 축제 속에 혼자 있어 보는 기묘한 경험(330)을 하게 된다. 나중에서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제이크.(430)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패러디한 인물로서 제이크와 철학적 대화를 나눴던 휴고는 개인 기업에 찬성하지 않고 돈벌이로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아한다. 더구나 ‘그저 가뿐하게 여행이나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만다’고 생각하고(388) ‘누구나 자기 길을 가야한다’고 믿는다.(385)

 

행위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말은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 이 문장에서(398) 추측컨대, 작가는 관념이나 허상에 빠지는 말의 그물을 헤치고 현존하는 데에 깊은 관심을 둔 게 아니었을까. 소설의 곳곳에서 명상에 관한 정보와 인물들의 태도로 삽입된 내용으로 볼 때 작가는 지성인이면서 감성인이 되려는 수련을 꾸준히 했을 것으로 보인다.

 

팅컴 부인의 고양이 매기가 샴 고양이와의 새끼를 네 마리 낳았는데 두 마리씩 암컷과 수컷을 닮아 태어났다. ‘그 까닭은 그저 세상의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작가는 보고 있다.(442) 팅컴 부인은 ‘때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지 않은지도 잘 모르게 되는 법’이라는 말도 한다.(431) 세상의 불가사의론은 이해가 되는데...... ‘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말은 좀체 이해가 안 된다. 혹시 번역을 잘 못 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소설 전체에서 작가는 모든 인물 속에 들어있는 셈이겠지만, 1954년에 아이리스 머독이 쓴 이 첫 번째 소설 속 인물 중 팅컴 부인이 가장 아이리스 머독을 투사한 인물이 아닐까.

 

<어록>

 

참다운 결단. 이론과 일반론에서 멀어지려는 운동이 곧 진리에 가까워지는 운동이오. 이론을 구성한다는 것은 모두 도피요. 우리는 상황 그 자체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하고 상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특수하고 개별적인 것이오. 이를테면 그물을 헤치고 빠져나가려는 것처럼 아무리를 기를 써도 이만하면 됐다는 정도로는 결코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오. (142)

 

최고의 위인들만이 말을 하되 거짓이 없는 법이오. 가장 굳센 사람들만이 이 중압에 저항할 수가 있는 것이오. 우리 대부분, 우리 거의 전부는, 설령 진리에 이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오직 침묵 속에서만 이를 수가 있는 거요. 인간의 마음이 신(神)에 도달하는 것은 침묵 속에서인 것이오. 그래서 프시케(에로스에게 사랑받은, 나비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소녀)는 자기가 임신했다는 것을 얘기하면 그 아기가 인간으로 태어나고 만약 침묵을 지키면 신이 된다는 경고를 받았던 것이오.(143)

 

내 일생의 볼일은 딴 곳에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고 만약 내가 밟지 못한다면 영원히 사람의 발길을 모르고 말 그러한 길이 어디엔가 있었다.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더 나는 꾸물거릴 것인가? 이것만이 실제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음을 산란케 하거나 속이는 데만 능한 헛것에 지나지 않았다. 돈이 무어란 말인가? 내게는 무(無)와 진배없는 것이었다.(322)

 

대체 우리는 언제나 인간을 알게 될 것인가? 앎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알려는 욕망을 버리고 마침내는 그 필요조차 느끼지 않게 될 때 아마 그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때 성취한 것은 이미 앎이 아니라 일종의 공존에 지나지 않고 또 가장한 사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