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네 교육
새로운 교육을 위한 교육학_ 프레네 교육
1. 프레네 교육학과 프레네 교육운동의 역사
프레네 교육운동의 창안자인 셀레스땡 프레네(Celestin Freinet, 1896-1966)는 1896년 9월16일에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운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가르스에서 태어났다. 상급학교 공부를 위한 학비를 대기가 어려웠던 프레네는 주니어 하이스쿨을 졸업하여 초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18세에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3년 가까이 전선에 서야 했고, 전투 중에 폐에 부상을 입고 돌아와 한동안 1921년까지 요양을 해야 했다.
프레네 교육과 프레네 운동을 낳은 토양은, 1차 대전 이후 강하게 확산된 반전과 평화의 사상, 러시아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갈구하는 사회적 배경, 자율과 자유를 강조하며 자율학교의 이념을 주창한 20c 초의 신교육운동 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토양 속에서, 프레네는, 혁명으로 인해 정치가 변한다고 교육이 곧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며, 혁명을 진정으로 완수하려면 교육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독특한 교육적 실천을 시작하게 되었다.
긴 요양 후에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시골학교에서 교직에 입문한 프레네는, 부상에 따른 장애로 교사가 주도하는 수업체제에 동화될 수 없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프레네는 아동의 작업이 주가 되는 학습기술과 도구 및 방법을 개발하였다.
'학교 인쇄 작업', '자유로운 글쓰기', '편지쓰기', '학교신문', '자가수정카드', '작업총서를 통한 자료 탐색', '작업계획서', '학급회의' 등이 그렇게 개발된 것들이다.
프레네는 1921년에 무정부주의적이고 투쟁적인 교원노조에 가담하여, 공산당과 연합된 반대그룹의 활동가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1927년에는 프랑스 공산당에 가담하였다. 프레네는 전통적인 공교육시스템을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는데, 자신의 아이디어를 매일매일의 학급활동 속에서 적용시켰기 때문에 그의 접근은 이론적이고 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매우 실천적이었다.
1924년에 프레네는 '학습인쇄기술'이라는 수업기술을 도입하였다. '학습인쇄'란 학생들이 자기가 학급 안팎에서 겪은 모험이나 사건에 대하여 자유롭게 글을 써서 학급원들 앞에서 발표를 하면 학급원들 전체가 함꼐 읽으면서 토론하고 수정하여 다듬어 최종적으로 공동작업으로 인쇄까지 하는 방식이다. 프레네는 이것을 '자유로운 글쓰기'라고 명명했는데, 이런 글들은 후에 학급 문집이나 학교신문을 만드는 작업들과 결합되어 활용되게 된다.
1926년부터는, 그의 학급에서의 학습 결과물들, 특히 '학교신문'을, 혁신적인 교육운동에 함께 하는 교사들이 운영하는 다른 초등학교 학급들과 정기적으로 교환하게 되었는데, 프레네는 이 방법을 '학교통신(서신왕래)'이라고 명명하였다. 후에 이런 '학교통신'이 널리 퍼지게 되어, '학습인쇄기술'을 사용하는 교사들과 영화나 녹음기 등을 사용하기 시작한 교사들이 함께 모여들어, 1928년에는 '공공교사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이 단체가 곧바로 '프레네 교육학' 또는 '프레네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들은 1932년부터 '프롤레타리아 교육자'라는 잡지를 발간하였다.
1930년부터 '공립교사 협동조합'에서는 전통적인 교과서들이 낡고 현실로부터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여, 학생들의 탐구프로젝트들에 기반을 둔 소책자를 만들어 다른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소책자의 모음은 '작업총서'라고 불렀고, 다른 문서나 파일이나 책들과 함께 '학급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레네는 역시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현장조사'와 탐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프레네의 학생들은 주기적으로 학급을 떠나 자연 환경과 자기 마을을 관찰하고 공부한 뒤, 학급으로 돌아와서는 '현장조사'결과를 발표하고, 문서로 인쇄하여 다른 학교의 파트너들에게 보냈다. 아동중심 학습과 자유로운 질문을 위한 이런 기회는 '작업계획'에 따라 조직되는데, 학생들은 이런 작업계획들을 참고하여 자기의 일정기간 동안의 학습계획을 세우고 교사와 함께 토론하고 검토하여 보완한다.
'공공교사 협동조합'에서는 또, 문법, 스펠렝, 수학, 지리, 역사 등의 기본적인 학습을 위한 수백 개의 활동지들인 '자기수정파일'을 고안해 냈다. 학생들은 언제든지 자기가 하고 싶을 때 개인적으로 이 파일들을 이용할 수 있다. 또, 학급활동에 대해 전반적인 조정하는 일이나, 학생 개인이나 그룹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모든 학생과 교사로 구성되는 '학급회의'에서 정기적으로 토론을 통해 결정한다.
그러던 중 지역교육 당국이 프레네의 교육철학을 불온시 하여 다른 학구로 전보시키려고 했으나, 프레네는 강제 전보를 거부하고 공립학교 시스템을 떠났다. 그 후 프레네는 1935년에 빙스(Vence)인근에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자신의 기술을 적용하고 발전시켰다.
그러나, 1940년에 프레네는 정치적 선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방 정부에 의해 수용소에 보내졌다가,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정상이 참작되어 석방되고, 알프스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거기에서 1943년에 마침내 레지스탕스 운동과 합류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그가 구금상태에 있는 동안 프레네는 교육학에 관한 그의 핵심적인 저작들을 집필하였는데, 가장 중요한 개념들은 다음과 같다.
⊙ 작업(노동, 일)의 교육학: 학생들은 유용한 생산물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학습함.
⊙ 협력적인 작업: 생산적인 과정에서의 협력에 근거함.
⊙ 탐구중심학습: 그룹(팀, 모둠)작업을 포함하는 시행착오 방법
⊙ 자연적인 방법: 귀납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에 근거함
⊙ 흥미중심: 어린이들의 학습흥미와 호기심에 근거함.
프레네의 학교가 1945년에 다시 문을 열면서 그의 운동은 다시 부활하게 되며, 1947년 '현대 학교 협력 협회'를 설립하면서 정점에 이르는데, 그 기구의 역할은 교육학적 자원과 활동을 위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공교사 협동조합'의 임무는 신문이나 보조 자료의 인쇄, 자기수정파일, 작업 총서 등과 같은 실제적인 교육학적 자료들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1950년과 54년 사이에 프레네는 프랑스 공산당 지식인들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그들은 프레네가 시대에 뒤떨어진 시골풍의 발상에 근거한 학교의 관념을 조장하고, 교사들의 역할을 경시며, 내용보다 과정을 강조하고, 아동의 자발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과장하여, 부르조아 개인주의 원리를 강화시킨다고 비난했다.
달리말하면, 공산주의자들은 프레네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학교생활의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처럼 고무시켜, 교사들의 마음에 환상을 키워준다고 비판했다.
1960년대에 프레네는 주로 프로그램학습에 그리고 그의 교육학을 중등학교 단계로 확산시키는 데 몰두했다. 그는 1966년에 운명하였고, 그가 태어났던 가르스의 작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프레네 교육학의 기본명제
① 학생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학습과정과 그 발전 및 개성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점에서 특히 외국아이들과 그들의 언어를 배려한다.
② 학습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경험하도록 한다. 반면에 이들을 서로 동일하게 만드는 것은 부패시키는 것이다.
③ 학습자는 자신의 학습속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④ 학습에서는 기쁨을 맛보아야 하고, 기쁨은 다시금 성취감으로 이어져야 한다.
⑤ 경쟁과 실패에 근거하는 선발은 될 수 있는 대로 제거해야 한다.
⑥ 완결된 결과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말고, 스스로 실험하게 하고 더듬어 가서 찾아내는 식의 학습과정이야말로 목표하는 바이다.
⑦ 이미 주어진 교재의 지식을 통한 교시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연구가 학생들의 사고와 관계되어야 한다.
⑧ 학생들은 그들 자신의 학습과정을 주도하고 조직한다.(여기에는 개개인의 작업계획과 스스로 수정할 수 있는 자료, 자유로운 본문작업 및 학습 진도에 대한 상대평가적 접근 등의 도움이 제공된다.)
⑨ 학급모둠을 통한 학습은 공동책임 아래 협동적으로 조직해야 한다.
⑩ 갈등이 일어날 경우에는 학급위원회에서 자치적으로 해결한다.
+프레네 교육방법론의 기본명제
- 모든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표현
- 본문과 미디어 및 정보와 창조적으로 교류하기
- 의사소통과 협동
- 학교 학습을 실제환경으로 지향시키기-학교와 삶 사이에 놓인 벽을 부수기
- 학습을 스스로 조직하기
- 더듬어 찾아보는 식의 학습_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학습환경을 조성하기
- 실천을 통한 학습
- 간문화적 학습
- 선발 없는 학습
+프랑스 '프레네 교육' 실천사례
프랑스의 경우 6세부터 16세까지가 의무교육이다. 프랑스 초.중등학교의 경우 국가에서는 총론만 제시하며 교사가 교육에 대한 전적인 자유를 갖고 있어 교구나 수업자료 등에 있어 다양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프레네 교사들은 교사들에게 주어진 자율성을 적극 활용한다.
◆ 공간의 활용: 학생의 자율적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공간 활용방안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집단학습, 소집단 학습, 개별학습이 자유롭게 가능하며, 학생들의 이동이 원활하도록 책상을 배치한다. U자형으로 책상을 놓고 가운데 중앙 테이블을 배치하는 형태를 많이 사용하며 , 학생들의 토의를 거쳐 변형하기도 한다.
◆ 학급회의: 학급회의는 민주시민 양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프레네 학교에서는 학급위원회, 학급 대표가 참여하는 학교위원회, 학급대표와 도서관 직원들이 함께 하는 도서관위원회, 식당 관계자들과 여는 식당위원회 등이 운영된다.
◆ 학급신문: 학급신문만들기는 프레네 교육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글쓰는 과정을 통해 체험을 객관화 하며,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함께 만드는 과정을 통해 협동심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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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네 학교는 기존교육과 세가지 다른 점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시간운영의 자율성이다. 수업시간과 등교할 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학생자신들이다.
두 번째는 학습에 대한 학생의 주도권이다. 어떤 시간에 어떤 일을 하는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 또한 학생이다. 배움의 시간과 내용을 학생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공간운영 방식 또한 학생들이 결정한다. 작업, 수업, 휴식을 위한 공간을 학생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학생주도의 학습은 프레네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인 협동을 통해서 완성되며 협동 작업 안에서 모든 아이들의 능력이 서로 보완된다. 이러한 협동작업을 위해서는 교사 및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학생과 학부모, 학부모와 교사간의 소통의 역할이 매우 크다.
프레네 교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인성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무엇이 행복인지 찾아가는 길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또한 이렇게도 이야기한다.
학생의 실패란 없다, 다만 교사의 실패가 있을 뿐이다.
-새로운 교육을 위한 교육학_프레네 교육
clip out from http://blog.naver.com/humane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