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정채봉 에세이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샘터.1998.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썩는 길밖에 없다.
가장 무서운 감옥
그는 캄캄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어디를 들러보아도 벽이었다.
문도 없었다.
손바닥만 한 창이라도 있을 법한데 창도 없었다.
그는 소리소리 질렀다.
주먹으로 벽을 쳐도 보고, 발로 차도 보았다.
아니, 머리로 받아도 보았다.
그러나 감옥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누구 하나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아야."
그는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이때,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나오너라."
그는 대답했다.
"어디로 나갑니까. 사방이 벽인데요."
"네가 둘러친 벽이면서 뭘 그러느냐
벽을 허무는 것도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언제 이런 감옥을 지었단 말입니까?
나는 결코 이런 무서운 벽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도대체 이 감옥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라는 감옥이다. 지금 너는 '나'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야."
"어찌 이런 감옥이 생길 수 있다는 말입니까?"
"너만 아는 너의 이기주의 때문이지."
그는 갑자기 슬퍼졌다.
그는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한참 울다가 눈을 떴다.
그러자 보라. 소리도 없이 무너져 버리고 없는 벽을!
그는 광명천지에 우뚝 앉아 있는 자기를 보았다.
콩 씨네 자녀 교육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
바람 속에 있는 것
민들레 씨앗이 바깥으로 난 떡잎 문을 열었을 때 세상은 온통 봄빛 햇살로 가득하였습니다.
파아란 하늘에 흐르는 흰 구름을 올려다보며 환호하고 있는 민들레 곁을
달팽이가 지나가며 말하였습니다.
"저 평화로운 구름 속에도 천둥 번개가 들어 있는걸."
민들레는 이내 여린 속잎 문마저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찬비와 함께 꽃샘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엎드려서 떨고 있는 민들레 곁으로 달팽이가 다가와 달래었습니다.
"이 비바람 속에 무지개가 들어 있기도 하단다."
5월이 되었습니다.
꽃씨를 맺은 민들레 위로 바람이 스치자 민들레 꽃씨들이 둥둥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민들레는 두 손을 모으고서 달팽이한테 말하였습니다.
"이제야 네 말의 깊은 뜻을 알겠다."
하늘 꽃은 무얼 먹고 피는가
신은 지상의 삶을 살러 나서는 사람들 마음마다에 꽃씨 하나씩을 심어서 보낸다.
그러나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 꽃밭을 가득 일궈서 오는 사람은 어쩌다 보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잡초만 무성해서 돌아온다.
신이 이제 막 도착한 잡초 마음한테 물었다.
"너는 왜 네 꽃 씨앗을 말라죽게 하였느냐?"
잡초 마음이 대답했다.
"돈과 지위가 꽃 거름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잡초만 무성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신이 침묵하고 있자 잡초 마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뒤의 사람들을 위하여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어떤 것이 하늘 꽃을 키우는 거름입니까?"
신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