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있고 감동이 있는 글쓰기
자기만이 쓸 수 있는 글
생명이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글
먼저 자기의 호박엿을 먹어보고 또 먹어 본 다음에 그것의 맛과 향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혼자서만 외칠 수 있는 독특한 말(상업적인 기술 혹은 상업적인 구호)을 연구해 내야 한다. |
엿장수 이야기
옛날에 장사하는 수법이 탁월하여 돈을 많이 번 엿장수 한 사람이 있었다. 무엇을 해서
먹고살까 하고 궁리하던 한 청년이 그 엿장수를 찾아갔다.
"저에게 장사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청년이 그 엿장수에게 간곡히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엿판을 하나 만들어 짊어지고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장사하는 법을 배우시오." 청년은 그 엿장수가 시키는 대로했다.
탁월한 엿장수가 엿판을 짊어진 채 앞장서 가고, 청년은 제자가 되어 뒤를 따랐다. 앞장을
선 스승 엿장수는 가위질 소리를 멋들어지게 내고, 엉덩이춤에다 어깨춤까지 추면서,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르는 울릉도 호박엿 사시요오" 하고 노랫가락을 섞어 가며 외쳤
다. 뒤따라가는 제자 엿장수는 그 소리를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목구멍 속에서 소리가 나오
지 않았다. 앞장서 가는 스승 엿장수가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
했다. 제자 엿장수는 조금 전에 스승 엿장수가 소리친 말을 열심히 따라 외웠다. 한데 앞장
선 스승 엿장수가, "첫사랑의 맛같이 새콤달콤한 울릉도 호박엿이요오 엿 사시요오" 하고
말을 바꾸어 소리쳤다. 뒤따르는 제자 엿장수는 또 그 말을 열심히 외웠다. 그러자 스승 엿장
수는 또 말을 바꾸었다.
"장가 못 간 총각은 장가가게 하고, 시집 못 간 처녀는 시집가게 하는 울릉도 호박엿이요
오" 그러고는 제자에게 얼른 따라해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또다시 조금 전에 스
승이 한 말을 머릿 속에 외워 담았다. 그런데 스승 엿장수는 곯리기라도 하듯이 또 말을 바
꾸어 소리쳤다.
"시어머니가 이 엿을 먹으면 주름살이 펴지고, 며느리가 먹으면 나온 입이 들어가는 울릉
도 호박엿이요오, 엿사시요오" 그 때까지 제자 엿장수는 한마디도 외치지를 못했다. 스승
엿장수가 제자 엿장수를 향해 무얼 하고 있느냐고, 얼른 따라 외쳐 보라고 재촉했다.
제자 엿장수는 그 재촉에 못 이겨, 앞장선 스승 엿장수가 소리를 지른 다음에 기껏, "내 것
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은 앞장서서 다니는 스승 엿장수의 엿은 사는데, 뒤따라 다니며 "내것도" 하고 외
치는 제자 엿장수의 엿은 사려고 하지 않았다. 제자 엿장수는 사람들이 왜 자기의 엿을 사
려고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덨다. 그는 슬픈 목소리로, 스승이 외친 다음에 곧 목청이 터지
도록 외치고 또 외쳤다.
"내 것도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글
나름의 독특함을 잘 살려내고 있는 글
우리 동네는 장터 바로 윗동네였다. 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정도였지만, 나는 우리집
앞에 장이 서지 않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 나는 장터에 사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
했고, 그 아이들과 사귀려고 애를 썼다. 장터는 이웃 마을에 비해 크지는 않았지만 포목전,
잡화전, 고무신 가게, 주막, 석유집, 양조장, 푸줏간이 고루 있었고, 무싯날에도 밤늦도록 전
짓불이 휘황했다. 산골이지만 바로 우리 마을 뒷산에 일찍 광산이 개발되어 있어, 이미 오래
전에 전기도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밤중에 담배 심부름을 시켜도 싫다 하지 않았다. 담뱃집 옆집이 술집이었
는데, 이곳에서는 광부들의 구성진 유행가 소리가 밤늦도록 끊이지 않았다. 때로는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잠들었던 내 동무애들까지 깨어 일어나 눈을 비비며 구경하
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학교도 논길로 가는 지름길로 다니지 않고, 장터로 빙 돌아가는 s길로 다녔다. 장터
의 가겟집이며 술집들은 언제보아도 새롭고 신기했기 때문이다. 또 그 집들은 종종 주인이
바뀌기도 했는데, 새 주인에 대한 여러 소문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언제나 충분한 것들
이었다.
장날이면 나는 전날 저녁부터 들떴다. 길에 나가 용당재를 넘어서 오는 장 트럭들과 장꾼
들의 자전거를 세었는데, 전장(지난번장)에 비해 늘었으면 신이 났지만, 줄었으면 크게 실망
릉 했다. 어쩌다 구경 가 본 이웃 장에 비해 우리 고장 장의 규모가 작은 것이 도무지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장날에는 다른 날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장은 언제나 아직 서기 전이었고, 장바닥
은 말끔히 쓸렸는데도 장꾼들은 공연히 해장군집에서 늑장을 부리곤 했다. 학교에 가기 전
에 장이 서는 것을 보려는 꿈은 허사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러니 교실에 들어가 앉아도 좀
이 쑤셔 제대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장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나 하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우리는 떼를 지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바야흐로 장이 어우러져 있는 참이었다. 싸구려를 외치는 소리
가 높고 여기저기서 술 취한 장꾼들의 싸움질도 곧잘 벌어졌다.
우리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수는 책장수였다. 그는 파수거리(장날 임시로 물건을 벌여 놓
고 파는 거리)로 와서 학교 앞 종대 옆에 책전을 벌였는데, 이야기책과 유행가책 사이에 몇
권씩 아이들 책이 끼여 있고는 했다. 대개 아이들은 사지도 않으면서 뒤적거리기만 했다. 그래
도 마음씨 착한 책장수는 탓 한번 하지 않았다. 책을 사는 아이라도 있으면 그 아이는 그
날의 영웅이 되는 편이었는데, 내가 그 영웅이 되는 날이 가장 많았다.
나는 어려서만 장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커서도 장을 좋아했으며, 장날이면 들떠서 아
무일도 하지 못했다. 장날은 꽤 오랫동안 내게는 유일한 즐거움이요 위안이었던 셈이다.
- 신경림의 (길, 장터, 강) 중에서
읽는 이가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이라야 한다
숫자를 셈하는 수학과 감정을 드러내는 문학의 차이
나만 아는 이야기
어느 여름날 한밤중이었다. 누군가 초인종을 다급히 누르면서 문을 부서져라 두들겨 댔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시인 ㄱ씨는 깜짝 놀라 맨발로 달려 나갔다.
찾아온 사람은 그의 친구 ㄴ씨였는데, 술에 얼근하게 취해 있었다. 친구 ㄴ씨는 ㄱ시인과
함게 문학공부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인으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ㄴ씨는 자기의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기성 문인들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
다.
친구 ㄴ씨는 자기가 써온 시를 주머니에서 써냈다.
"야, 이사람 꾼, 내가 오늘 내 일생 일대 최고의 아름다운 시를 써 가지고 왔네, 한번 읽
어보고 자네가 관여하고 있는 잡지에 추천 좀 해주게." 하고 말했다.
"머리에 털이 돋은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진한 감격과 감동을 받아 본 적이 없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감격과 감동을 손톱만큼도 놓치지 않고 모두 다 이 시 속에다 담았다네,
아마, 모나마나 자네도 깜짝 놀랄 거야." 친구 ㄴ씨는 그 시를 쓸 수 있게 한 그 감격과 감
동을 새삼 되새기면서 "아아, 하아" 하고 탄성을 지르며 울먹이기까지 하였다.
시인 ㄱ씨는 잔뜩 기대를 하면서 ㄴ씨가 건네줌 시를 읽어 보았다.
오오, 나의 사랑, 나의 기쁨
오 나의 이 감격 이 감동을 누구에게 다 말할까
하늘이 알까 땅이 알까, 오호 나의 사랑이여
나에게 이 감격과 아름다운 감동을 준 그대여
그 시에는 정말로 감격과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던 듯 감탄사가 줄줄이 쓰여 있었다. 그
러나 시인 ㄱ씨는 친구의 가슴속에 넘쳐흘렀다는 그 감격과 감동을 눈곱만큼도 느낄 수가
없었다. ㄱ씨는 정말로 난감했다. 솔직하게 말을 하면 ㄴ씨가 크게 실망할 테니까. 그렇지만,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시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가 없네" 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앞뒤가 일관성 있는 글을 써라
글쓰기는 옷 만들기의 순서와 같다.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야기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건망증이 매우 심한 어떤 사람이 혼자서 밭을 매고
있었다. 그 사람은 땀도 식힐 겸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 한번 기차게 파랗구나"하고 중얼거
렸다. 그런데 다시 밭을 매려고 보니, 조금 전까지 자신이 부지런히 밭을 매 왔던 호미가 보
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서, "이놈의 호미가 어디로 갔나"하고 허둥거리며 온 밭
을 다 둘러보았지만 그것은 도무지 눈에 띄지가 않았다. 호미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어디
로 갔을까? 사실 호미는 바로 그 사람의 오른손에 처음부터 그대로 쥐어져 있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담뱃대를 오른손에 들고 길을 갈 때였는데, 빨리 가려고 팔을 부지런히 휘젓
다 보면 팔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팔이 뒤
쪽으로 사라지면, "아이고 내 담뱃대 잃어버렸네"하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팔이 앞으
로 나타나면 "아하, 여기 있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곤 하였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어디를
갈 때든 길을 걸을 때마다 수백 번이나 간이 오그라들었다 펴졌다 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
었다.
그 사람이 하루는 몇 가지 살 것이 있어 장엘 가기로 하였다. 어물전에서 사돈네 제사에 쓸
농어와 광어 두 마리씩을 사고, 또 튼튼하고 예쁜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 오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건망증을 잘 알고 있는 아내는 , 송아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고삐를 단단히 쥐
고 오라고 대문 밖까지 따라 나와서 단단히 일렀다.
그 사람이 장에 도착해 보니, 거리거리마다 갖가지 물건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그 사람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손으로 만져도 보고, 맛도 보면서 장 구경에 신바람이 났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무얼 하러 장에 왔더라"
한참위에야, "아하, 돼지 한 마리를 사러 왔지": 하고 손뼉을 마주쳤다. 그래서 돼지 파는
데로 가 살찌고 퉁퉁한 놈으로 한 마리 골랐다.
돼지 모가지에다 고삐를 매어 질질 끌면서 집으로 가고 있던 그 사람이 산 중턱쯤에 다다
랐을 때였다. 갑자기 대변이 마려워 왔다. 아랫배가 콕콕 쑤시는 것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
었다. 그 사람은 할 수 없이 돼지를 나무에 묶어 놓고 숲속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았다.
그리고 허리띠를 맨 다음 다시 길 쪽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 횡
재인가 돼지 한 마리가 나무에 묶인 채 꿀꿀 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는 사방을 슬그머니 휘
둘러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돼지를 여기다 묶어놓고 그냥 갔나?" 그는 흐흐흐하고 웃으며 집
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어서 빨리 이 사실을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돼지의
걸음이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참을성 없는 그는 급한 마음에 돼지를 등에 업었다. 그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뛰어갔다. 물론 돼지는 등위에서 들컹거리는 괴로움을 견뎌내며
연방 꿀꿀거렸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담아낸 글
불국사의 장엄함
s에게
전에 나는 몇몇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경주에 있는 불국사를 갔었단다. 우리는 모두 7시
30분에 집결하여 버스를 타고 갔어. 푸른 하늘과 넓은 벌판이 우리를 부르는 것 같았어. 오랜
만에 나와서인지 공기도 맑고, 기분도 상쾌하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것 같았어. 그렇게 약
두 시간쯤 가니 깨끗한 경주시가 우리를 맞았어. 경주시를 조금 벗어나자 한적한 도로를 따
라 갔지. 그리하여 우리는 불국사의 입구에 도착하였단다. 불국사라는 이름 그 자체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 장엄함, 그리고 웅장함을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더 웅장하고 장엄해 보였
어.
본관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두 탑이 버티고 있었어, 그게 바로 정교함을 자랑하는 석
가탑과 다보탑이었어. 석가탑과 다보탑을 보면서 그 탑들을 다듬던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아
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어, 책의 사진 속에서 본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습보다 더욱 더 멋
있었고, 그것을 볼 때는 묘한 느낌이 느껴졌어. 나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겨레의 끈끈한 얼
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막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 같았어.
불국사 대웅전 앞에 섰을 때 나와 친구들은 모두 부처의 은은한 시선에 눌려 엄숙해지는
것 같았어. 그렇게 불국사 경내를 다 둘러본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어. 돌아오는 버스에서 피곤했던지 친구들은 잠이 들기도 하고 밤의 풍경을 보는 이도 있
었어.
그 때 마침 해가 저편 너머로 지고 있었어. 붉은 노을 속에서 나는 신라인의 즐거운 모습
을 보았어. 불국사는 정말 살아있는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인 것 같아.
기회가 된다면 너와 같이 가고만 싶다. 그럼 다음 편지를 기약하며 이만 줄인다.
- S의 영원한 친구 동훈으로부터
지난해 초가을에 나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경주에 있는 불국사에 갔었다.
우리는 7시30분에 버스 터미널에 집결하여 경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밖으로 내닫
는 푸른 하늘과 넓은 벌판이 마치 우리를 향해 손짓이라도 하는 듯 했다. 오랜만에 하는 여
행이어서 일까? 답답하던 기분도 상쾌해지고, 머릿속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약 두 시간쯤 달렸을 때, 경주시가 깨끗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였다. 버스는 경주시를 벗
어나 한적한 도로를 얼마쯤 달리다가 불국사의 입구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불국사는 들어오던 이름 그대로 웅장했다. 돌로 된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가자 두 개의
탑이 버티고 있었다. 그게 바로 정교함을 자랑하는 다보탑과 석가탑이었다. 석가탑과 다보탑
을 바라보자 그 탑들을 다듬던 석공들의 망치소리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책속의 사진에서 본 석가탑과 다보탑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나의 가슴속에 묘한 느
낌이 서렸다. 나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겨레의 얼이 꿈틀거린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윽고 우리는 대웅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처님의 자비
롭고 은은한 시선 앞에서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몄다.
불국사의 경내를 다 둘러본 우리는 내일을 위하여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
는 버스에서 우리는 고도 경주의 저녁노을을 구경했다. 해가 지평선 저쪽으로 가라앉자 붉
은 노을이 새빨간 단풍 빛으로 타올랐다. 구름도 들판도, 친구들의 얼굴도 모두 붉게 물들었
다. 그 속에서 나는 신라인의 아름답고 슬기로운 삶의 모습들을 보았다. 불국사는 정말 살
아 있는 역사이자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유산 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 여행을 함께 하
지 못한 친구들과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나에게로의 여행
5월의 둘째 주 일요일, 활짝 열린 창문으로 한낮의 햇살과 포근한 5월의 바람이 자꾸만
나를 부른다. 창문으로 살포시 들어온 5월의 바람이 자꾸만 나를 부른다. 창문으로 살포시
들어온 5월이 나에게 그녀에게로의 여행을 권한다. 5월은 정녕 모든 달 중에서 여왕이다. 밖
에 좀처럼 나가기 싫어하는 내가 이토록 여행을 떠나고 싶은 건 아마도 그녀의 여왕다운 매
력 때문일 것이다.
시계를 본다. 벌써 정오이다. 나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온다. 한 시간 후면 과외 선생님이
오신다.
나의 조그만 여행, 아니 산책 계획은 부서진 셈이다. 그래도 웬지 여행을 떠나고 싶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저 밑에 키 작은 나무들이 서 있다. 바람은 나무의 푸르름과 생기를 그대로 나에게 속삭
여 준다. 문득 어릴 적 추억이 스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난 나무라고도 할 수 없는 조그만
꽃나무를 키웠었다. 키는 내 팔 길이의 절반도 안 되었지만 그녀는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친구요 상담자였다. 그녀의 분홍빛 꽃을 난 매일 정성껏 닦아 주었고 행여 꺾일까봐 나 이
외엔 아무도 못 만지게 했다. 학교에 갔다 와서 진딧물을 잡아주고 물주는 것이 나의 유일
한 행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도 소중했던 그녀는 동네 장난꾸러기 아이들의 발길질
로 무참히 꺾여 버렸다.
한동안 그녀를 부여잡고 울다가 묻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속삭였다. 비록 넌 꺾여버
렸지만 난 널 언제까지라도 내 마음속에 심어 두겠노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슬퍼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꽃나무야 새로 사면 되고, 어차피 한해살
이 식물인데......
8년을 더 보내면서 어느새 나는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사람이 자란
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도 슬픈 일인가 보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천진한 초등
학생들의 얼굴은 나에게 또 다른 여행을 권했다.
초등학생들은 아마 일기장이 한 권일 것이다. 그들은 진정 그들의 담임선생님을 믿는 탓
에, 아직 이중적인 인격을 지닐 만큼 마음이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의 진솔한 일기를
정성껏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릴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난 너무 많이 자라 버렸다. 마음이 오염된 탓에 선생님을 믿지 못
해 학교 검사용 일기장과 나 혼자만의 일기장이 따로 있다. 가끔 온갖 거짓으로 가득 차서 도
저히 일기장이라고도 할 수 없는 나의 학교검사용 일기장을 보면 슬퍼지기 일쑤다.
어느새 3시이다. 나는 나에게로의 여행에서 깨어나 부랴부랴 과외선생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늘의 여행은 꼭 짜여진 시간표 속에 감추어 버린 어린 시절의 꿈들을 돌이켜 주었
다. 오늘 나에게로의 여행은 정말 가치 있는 여행이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