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권.신혜원] 안시의 하루 _ 파고디자인
안시의 하루
홍남권·신혜원
파코디자인
‘지식과 지혜 중 어느 것이 중할까?’
어떤 계급으로 태어났든 누구나 진짜 사람으로 대하는 계백, 평강, 그리고 그 시대 역사.
‘마음의 상처는 아물었으나 흉터는 깊고, 그 흉터보다 더한 울화가 가슴에 남아’ ......
계급 양극화를 더 확고히 하여 오랫동안 부를 누리기 위해 싹쓸이하여 독점하려는 정권.
태고 적부터 여태 이름을 갖지 못한 잡초라고 지레짐작 하지만,
그럴 리가 있을까.
오랫동안 어느 마을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불렀을 그 이름을
우리가 배우지 못할 모진 세월이 있었던 것일 뿐.
누군가가 홀로 지어 불렀을 이름은 또 얼마나 갖가지였을까.
다만 드러내지 않았고 들먹이지 않았을 뿐일 터이다.
“백성이 뭉쳐서 바다를 이루면
왕과 군주는 개구리밥 부평초처럼 대해를 떠도는 조각배신세일 뿐이고,
백성은 바다처럼 영원하다.“
동일한 범죄일 경우 부와 지위가 높을수록 중한 벌을 받았다.
북방, 선비족, 동이, 고구려 등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위에 두는 습성이 있다.
안시성에서 거두는 세가 두세 배를 넘었지만
고구려조정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는 고집스러운 절개에서
고구려의 어머니 평강의 정치가 나왔다.
또 농신 벽화를 그려 마음을 모으고 덕치를 하였다.
나라가 없으면 외적들이 쳐들어와 모든 걸 다 빼앗아 간다.
생명체들은 환경 속에서 지낸 세월만큼 자긍심을 얻고,
인간은 견딘 시대에 의한 자긍심을 얻는 것.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
하늘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 세월을 낚는 것.
자존심에 생긴 상처의 아픔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요동댁의 몸부림은 어머니의 한이요, 백성의 얼에 생긴 상처를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다.
“말을 하던 요동댁의 눈이 급변했다.
기억이 급작스레 돌아왔는지 황망함에 눈이 커졌다.
입을 벌리는데 말은 튀어나오지 않고 목에서 끅끅,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요동댁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어깨만을 들썩이는데,
끅끅대는 소리 외에는 목소리도 터지지 않았다.
그 어떤 울음보다 아플 메마른 눈물도 나지 않았다.
복장이 무너지고 명치끝이 막혀 호흡이 되지 않는 사람처럼 가슴을 쥐어뜯고 펑펑 쳤다.
칠구댁이 그런 요동댁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대신 통곡을 해주었다.
칠구댁의 품에서 요동댁의 숨 막히는 몸부림이 그치질 않더니,
한참의 몸부림 끝에 허엉 구슬픈 소리를 토해내었다.
그러나 요동댁의 눈에서는 눈물조차 흐르지 못했다.
그저 이불자락이 저의 슬픔이고 아픔인 양 뜯고 또 뜯었다.” (231)
“배고프면 진다.
군량이 떨어져가는 최후의 순간이라도 일단 군사를 배 불리 먹여야 한다.
바닥나면 죽기 살기로 적의 군량을 탈취하면 된다.”
하루가 이렇게 말한 반면 장손무기는 이렇게 말했다.
“배고픈 자가 이긴다.
군량이 있어도 풀지 말라.
성 안에 먹을 것이 있다.
싸워 이기면 먹을 것을 쟁취할 수 있다!
배고픈 자는 주린 맹수와 같아,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무거운 ‘마음의 무게’.
참다운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고.
우리말 ‘어서 가’에서 비롯된 나라의 별칭 아스카,
말간 달빛에서 처연한 듯 곱디고운 봄꽃,
따끈히 데운 맑은 술.
일본의 아름다움에 반해서였을까.
작가의 문장은 일본식과 번역식 표현이 많은 편이다.
그런 표현을 구어체 그대로 표기하다보니 한글이 탱고를 추는 듯 엉키는 곳이 많다.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는 하루 상주, 만춘, 영원한 봄.
마음을 닫게 한 탓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아는 아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은 아무리 힘이 들지라도 후회는 없다.
사람의 마음과 그 씀씀이의 해법이 녹아있는 대사.
다양한 순우리말로 수놓은 문장을 읽는 것이 즐거웠다.
‘사관의 날카로운 붓’이 짜내는 지혜.
하늘이 품고 있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사람.
비, 바람, 새, 흙이 씨앗들을 틔우고 키워서 온통 까맣던 요동벌판에 장엄한 색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