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고교평준화연대 2009
2회 3.8충남여성대회 _ 천안 고교평준화!!!
실다이
2010. 3. 7. 00:16
천안역 광장이 보라색 풍선으로 물들었다. 한 귀퉁이에서 여성장기투쟁사업장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호신용 호루라기를 보니 문득 옛 경험이 떠올랐다. 일을 마치고 늦게 집으로 가던 중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들에게 으슥한 길가에서 에워싸인 일이다. 지나가던 청소부 아저씨를 불렀지만 아저씨는 외면했다. 그리고 그 아저씨를 불렀다는 이유로 남자학생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았다. 어찌되었건 실랑이 끝에 간신히 도망쳤고 50미터 거리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간 나는 그때서야 가슴이 펄쩍펄쩍 뛰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동료의 집에서 잠을 청하며 내내 생각했다. ‘이만해서 천만 다행이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 경험이 떠올랐던 이유는 ‘내가 밤길을 혼자 걸을 때 저 호루라기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미친 듯이 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이유 없이 맞았을 것 같다. 호신용 호루라기를 건네는 여성노동활동가 역시 그 시끄러운 물건이 여성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방어이다. 여성에게 한밤중의 거리는 호루라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둡기 때문이다.
23개 단체가 참여한 3.8 충남여성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6일 오후 3시부터 열린 3.8 충남여성대회의 시작을 알린 정혜임 천안여성회 대표의 첫 발언 역시 여성에게 여러 가지 경험을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천안지역에서 부친이 딸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차마 꿈에서라도 다시 들을까 두려울 정도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패륜적인 행동의 집합체인 그 사건은 듣는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참가한 여성들(혹은 남성들) 역시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은 매우 일반적이고, 일상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옛 경험이 떠올랐던 이유는 ‘내가 밤길을 혼자 걸을 때 저 호루라기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미친 듯이 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이유 없이 맞았을 것 같다. 호신용 호루라기를 건네는 여성노동활동가 역시 그 시끄러운 물건이 여성을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방어이다. 여성에게 한밤중의 거리는 호루라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깊고 어둡기 때문이다.
23개 단체가 참여한 3.8 충남여성대회 준비위원회 주최로 6일 오후 3시부터 열린 3.8 충남여성대회의 시작을 알린 정혜임 천안여성회 대표의 첫 발언 역시 여성에게 여러 가지 경험을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천안지역에서 부친이 딸을 성폭행한 사건이다. 차마 꿈에서라도 다시 들을까 두려울 정도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패륜적인 행동의 집합체인 그 사건은 듣는 내내 불편했다. 그리고 참가한 여성들(혹은 남성들) 역시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여성이 당하는 성폭력은 매우 일반적이고, 일상적이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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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호신용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아이가 자랐을 때는 이 호루라기가 불필요한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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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사를 한 정혜임 천안여성회 대표 |
이 사회가 성평등한 사회로 바뀌지 않는 한 대회에 참가한 여성(남성)들, 그리고 수많은 피해자들은 호루라기보다 더 위력적인 물건이 있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정혜임 대표는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요? 다들 한탄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지역사회의 현실입니다. 인간답게, 안전하게, 아프지 않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역사회를 성평등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충남여성대회는 ‘여성의 참여로 희망을 현실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수동적이고 시혜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나서 여성의 억압을 폭로하고 투쟁으로, 혹은 선거로 사회를 바꿔보자는 것이다. 때문에 요구는 좀 더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참가자들은 정부를 향해 성폭력, 아동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이 없는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성폭력 예방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 쉼터 마련 등 구제대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충남여성대회의 또 하나의 화두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의 문제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퍼플잡(Purple Job) 정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정부는 유연근무제인 ‘퍼플잡’을 통해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공공부문부터 출근시간을 노동자가 선택하거나 재택근무 등을 통해 단시간 일자리를 확대한다고 확정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한국(9.3%)이 OECD평균(15.5%)에 비해 단시간 근로 비율이 크게 낮다는 것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기 위한 것을 들었다.
그러나 퍼플잡이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할까? ‘아니올시다’다.
육아 등을 이유로 여성노동자들에게 단시간근로제를 선택하라는 것은 육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정부가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계속 비정규직으로 살거나 비정규직밖에 선택할 게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의도(?)도 불순해 보인다. 불법 낙태 단속과 유연근무제를 통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한 비판은 이미 사회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실에서 여성에게 ‘일과 임신, 출산’은 양립의 대상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권오관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 수석본부장은 “공공부문 일자리에 비정규직 일자리 도입은 전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일자리가 더욱 양산될 공산이 크다. 한국사회 여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비율이 70%이고, 대부분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근무제 도입은 결국 여성들을 더욱 빈곤하고,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3시 대회 시작 전 2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유연근무제 도입을 반대하는 사전집회를 열기도 했다.
충남여성대회는 ‘여성’을 둘러싸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점을 ‘여성자유발언대’를 통해 생생하게 풀어내기도 했다. 여성장애인의 이야기, 여성폭력없는 세상바라기, 여성농민의 쌀값이야기, 이주여성의 일기, 여성노동자의 이야기, 엄마들의 공교육이야기. 총 6꼭지로 구성된 자유발언대에서는 그 형식도 다양했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이야기 꼭지에서는 대중가요 ‘잘 살거야’ 노래 가사를 바꿔 흥겹게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진짜 잘 사는 것이란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이 ‘사는 게 흥겨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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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존중’의 의미인 장미꽃이 나눠지기도 했고, 돌봄사회서비스센터는 펼침막을 이용해 ‘재활용 장바구니’를 만들어 기증하기도 했다. 천안여성회 풍물패 ‘햇빛가락’이 대회를 신명나게 열었고, 호서대 작은나눔회 소속 학생들은 수화 공연을 지역에 선보이기도 했다. 지역 집회에서 언제나 만나는 억새풀의 노래공연에 참가자들은 어깨를 들썩였다.
대회장 주변에 설치된 부스는 시민들과의 또 다른 소통공간이었다. 평등교육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해, 장애 여성의 삶을 나누기 위해. 흥겨운 노랫가락이 들리면 시민들은 부스 너머로 무대를 지켜봤고, 종종 각 종 요구가 담긴 서명지에 서명을 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대회는 ‘충남여성 유권자 선언’ 낭독으로 마무리 되었다. 참가자들은 ‘여성의 참여로, 희망을 현실로’처럼 다가오는 지방선거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며, 성인지적 정책공약을 제시하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멍의 색깔과 비슷한 보라색은 역사적으로 억압받았던 여성을 상징한다. 102년전 여성노동자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갔다. 매년 여성노동자들은 3.8 여성의 날을 맞아 거리투쟁으로, 집회로, 기념식으로 그 정신을 기념한다. 충남지역 역시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가 23개나 모여 그 날의 정신을 올곧게 기념하기 위해 작년에 이어 크게 한 걸음 내딛었다.
다만 아쉽다. 3.8 충남여성대회 준비위원회의 주장대로라면 충남여성 ‘유권자’ 선언문 보다 충남 ‘여성(노동자)’ 선언문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사회가 규정한 만19세 이상의 유권자만이 성평등한 사회와 여성의 노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수혜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더라도, ‘여성의 참여로,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운동이 유권자들만이 만드는 운동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재은 미디어충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