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lith의 웃음

[미셸 푸코] 성과 권력, 차이의 정치학

실다이 2009. 12. 21. 12:14

성과 권력 : 차이의 정치학 Politics of Difference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차이는 파편화와 불일치의 원천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저항과 변화의 창조적 원천이 될 수도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radical feminism에서 역사는 이러한 해방을 위한 변증법적 투쟁이다. 따라서 이들은 억압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며, 혁명의 주체는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기 위해서 역사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남성지배가 영속되는 것을 적절하게 설명해 내지 못했음을 래디칼 페미니즘은 비판한다. 래디칼 페미니즘은 자본이라는 범주 대신에 모든 형태의 억압의 기원은 가부장제라는 범주로 대치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해방의 열쇠가 되는 것은 성/계급으로서 여성의 투쟁이다.


그런데 최근에 여성해방론자들 사이에 차이와 동일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여성들 사이의 차이를 상실한 채, 보편적 범주인 여성만을 가지고 여성이 체험하는 억압을 다 설명할 수 없으며, 대변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푸코의 철학은 역사이론 없는 급진적 철학이라 불리운다. 그러나 역사적 탐구는 그의 정치학에 중요한 구성 성분이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 개념이다.


전통적인 혁명이론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그의 권력 개념에 기반한다. 전통적 혁명이론에 전제되어 있는 권력개념을 푸코는 비판한다. 자유주의 이론이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건 권력에 대한 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기본가정들이 있다.


1. Power is possessed.( for instance , by individuals in the state of nature, by class, by the people)


2. Power flows from a  centralized source from top to bottom( for instance, law, the economy, the state)


3. Power is primarily repressive in its exercise. ( a prohibition backed by sanctions)



우리는 권력이 국가나 법률, 계급의 한계 밖에도 존재하는 권력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는 전통이론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여러 가지 형태의 권력을 설명해 줄 수 있다. 푸코는 권력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영역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상이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행사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중앙집중화되고, 억압적인 형태의 권력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미시적인 수준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1. Power is exercised rather than possessed.


2. Power is not primarily repressive, but productive.


3. Power is analyzed as coming from the bottom.



권력이 소유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경우 합법성, 정당성, 동의, 권리에 대해 논의하게 된다.


누가 권력을 소유해야 하는가?

권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준은 무엇인가?


.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도입하면서 동의에 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다. 그러나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인간주의적 전제가 있다. 즉 진정한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동의하는 권력만이 정당하다는 (합법성)을 갖는다는 전제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올바른 진정한 의식을 소유하는 주체는 프롤레타리아트이다.  그러나 푸코는 휴머니즘은 해방의 기반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지배와  억압의 기반으로 봉사해 온 것을 주목한다.


권력을 소유하는 것으로 보는 대신 푸코는 관계적인 것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즉 권력의 주체 (존엄한 주체, 부르조아지-프로레타리아)보다는  권력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 주체가 권력관계에 의해서 형성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권력은 생산적인 본성을 갖는다. 푸코가 권력을 억압적으로만 보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만일 권력이 억압적이기만 하다면, how it has gotten such a grip on us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왜 우리가 순전히 억압적이기만 한 강제적 권력에 계속 복종한다는 말인가?


둘째, 권력의 가장 효율적인 기제는 생산적이다.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은 전역사적 개인이라는 휴머니스트적 가정에 (자유주의적 국가관) , 혹은 인간의 진정한 이해관계(관심)에  마르크스의 류적존재에 기반한  역사에 대한 이론이나 권력에 대한 이론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어떠한 제도적인 실천과 문화적 실천이 개인을 생산해 내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개인을 생산해 내는 것은 훈육하는 권력이며, 이것은 19세기에 생긴 인문 과학과 연관이 있다.


훈육하는 권력은 개인의 육체와 정신에 행사된다. 그것은 개인의 권력을 증가시키면서 동시에 개인을 보다 더 유순하고 길들이게 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의 훈련)




개별화의 기술은 의학, 심리치료, 범죄학과 같은 학문이나 그것에 상응하는 제도 즉 병원, 수용소, 감옥과 같은 기관에서 행사된다. 훈육하는 실천은 특정한 권위에 의해서 건강한/병든, 정상적인/광적인, 합법적/비합법적인과 같은 이분법으로 사람들을 분류한다. 이것이 규범화와 사회적 통제의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분류(division)는 사회 속에서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경험된다. 우리는 서로를 , 혹은 자기 자신을 다르다, 혹은 비정상이라고 라벨을 붙인다.


예를 들어 [성의 역사]에서 푸코는 근대적 개인이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을 성적 주체로 보게 되는가 하는 과정을 설명하려 하였다. 심리 분석학과 같은 담론은 성이라는 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으로 보며, 우리로 하여금 인격적 장애(성격적 disorder)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의 性을 발견해 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 사람의 삶이 심리학화되며, 한 개인의 삶이 전문가들의 개입의 표적인 된다.  푸코가 보여주고자 시도하는 것은 이와 같은 담론은 근대적 개인을 해방시키는 과정에서보다는 그들을 규범화하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3. 푸코는 권력이라는 것을 소유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곧 권력을 중앙집중화된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견해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에서 권력의 자리는 계급에 있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이해는 권력관계의  그물망 network 전체를 모호하게 만든다. 원력관계의 그물망은 육체와 성, 가족과 친족, 지식, 기술에 침투되어 있다.


그의 대안은 중앙집중화된 자리 외부에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권력을 기술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그러나 물론 그가 계급이나 국가권력이라는 현상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거부하는 것은 저항을 조직화 하는데 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 국가권력이나 계급권력을 분석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푸코는 권력관계의  이질적인 앙상블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그의 권력에 대한 모델의 실천적인 함의는 사회적 관계의 일상적인 차원에서 행사되는 수많은 형태의 권력에 대항해서 싸우는 국지적인 투쟁 속에서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푸코의 권력분석은 bottom-up 분석이며, 어떻게 하여 미시적인 차원에서 권력관계가  특정한 거대권력관계(예를 들어 계급권력이나 가부장적 권력)를 가능하게 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는 역사적 탐구의 출발점에 보편적인 것을 설명개념으로 놓는 것을 피한다.




무한수의 권력기제는 각기의 역사를 가지며, 각기의 궤도를 가지며, 각기의  전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권력에 대한 bottom-up 분석은 이러한 권력기제들이 보다 일반적인 기제와 보다 거대한 형태의 지배에 의해서 어떠한 방식으로 투입되며, 식민화되고, 활용되고, 변형되고, 확장되는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또 어떻게 사회의 미시차원에서의 권력기제가 권력관계의 지배적 network의 한 부분이 되는 가를 보여준다.


훈육하는 권력은 지배계급에 의해서 형성되거나 발견된 다음에 그 다음으로 사회의 미시차원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훈육하는 권력은 계급 외부에서 생겨나서, 그것이 유용한 경우 계급에 의해서 동화되고 활용될 뿐이다.


푸코는 환원주의를 거부한다. 그는 권력과 경제의 연관성은 어떠한 특정한 역사분석의 기반 위에서 규정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그것은 역사법칙과 같은 어떠한 일반론으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푸코는 권력의 형태를 구조나 제도에서 찾으려 하는 기능주의를 거부한다. 그는 인과적 설명이나 기능적인 설명을 하기보다는 어떠한 형태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역사적으로 기술하려고 한다.



* 저항 Resistance

 

Where there is power, there is a resistance, and yet , or rather consequently, this resistance is never in position of exteriority in relation to power.  “


" I am not positing a substance of power, I am simply saying; as soon as there is a relation of power there is a possibility of resistance.


power relation 은 갈등이 있는 곳에서 생긴다. 즉 한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기를 원할 때 생긴다.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에게만 행사된다. 자유로운 주체란 , 가능성의 장을 직면한 주체를 말한다. 


권력관계가 부자유 속에서 자리잡을 때 강제력의 관계force relation가 된다. 맨 밑바닥의 가장 작은 세부적인 것에까지 지배하는 권력의 원칙은 없다.( down to the smallest detail)  


Power is everywhere: 사회적 장social field 이란 불안정하고 이질적인 권력관계의 무수한 집합이다. 사회적 field , 역사적 field는 투쟁의장이다. 권력은 이 장을 순환하며, 개인에 대해서/개인에 의해서 다른 사람에게 행사되며, 자신에게 행사되는 것이다. 투쟁에 대하여 말할 때, 푸코는 투쟁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 누가 누구에 대항하여 항쟁하는가? Who is struggling against whom? " 이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지만 , 나는 모두가 모두에게 대항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I would say it's all against all

 

직접적으로 수여된 투쟁의 주체는 없다.


" Who fight against whom? we all fight against each other. And there is always within each of us something that fights something else. "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예를 들어 어머니, 연인, 선생님, 반인종차별운동가, 반성차별운동가 등등)에 따라 한 사람에 무엇에 충성을 바치며, 어떠한 이해관계에 있으며, 어떠한 관심을 갖는가 하는 것이 달라진다.


There is no privileged or fundamental coalitions in history, but rather a series of instable and shifting ones.




이러한  저항의  주체에 대한 이론 속에서 푸코는 주관성의 구성역사 혹은 희생역사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의 계보학적 방법은 “ 종속된 지식의 반란 insurrection of subjugated knowledge 를 장려하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종속된 지식이란 가치절하되고, 과소평가되고, 간과되는 지식과 체험을 말한다. 종속된 지식은 지배적인 지식에 의해 , 그들의 과제에 부적절한 것으로, 불충한고 정교하지 못한 것으로, 소박한 지식으로, 인식과 과학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수준이하의 것으로, 따라서 위계서열 상 하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한 지식은 심리치료를 받는 환자나 히스테리 환자. 감옥에 있는 죄수, 집에 있는 주부, 가난한 사람들의 지식과 체험을 말한다. 대중적 지식 popular knowledge 는 특수하고, 지엽적이, 국지적이며, 만장일치를 볼 수 없는 지식이다.


어떠한 형태의 저항이 다른 것들보다 더 효율적인가 하는 문제는 선험적인 이론적 결정이나 선언의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역사적  조사(탐구)를 할 문제이다.


어떠한 연합과 동맹이 정치적으로 생명력이 있을지를 결정하는 기반은 통리적인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투쟁에 대한 역자적이고 맥락적인 조사와 분석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사회적 장의 서로 상이한 자리site 들로부터 개인들을 동원시키며, 그들의 차이를 자원으로 사용한다.



* 저항의 형태로서 계보학


푸코는 계보학적 방법을 전통적인 혁명이론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는 휴머니스트적 전통에 의해 전수되어 온 자기이행의 지배적인 방식이 우리에게 갖는 억압적인 영향력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려 한다.


‘Freedom dose not basically lie in discovering or being able to determine who we are, but in rebelling against those ways in which we are already defined, categorized, and classified."


푸코는 현대의정치적 투쟁에서 지식인의역할에 대한 대안으로 보편적인 가치담지자인 “보편적 지식인 universal intellectual ” 대신에 “ 특수한 지식인specific intellectual 을 제시한다.


 보편적 지식인은 혁명적 주체에 대한 계몽주의적 /계몽된 의식을 대변하는 지식인이다. 그러한 특수지식인은 이론과 실천에 대한 그와는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지식인을 말한다.


 Intellectuals have gotten used to working not in the modesty of the 'universal'" the exemplary, the 'just- and true- for all,' but within specific sectors, at the precise points where their own conditions of life or work situate them (housing, hospital, the asylum,, the laboratory, the university, family and social relations"


  특수한 상황에 관심을 집중하므로써, 특수한 투쟁을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사회적 변화를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푸코는 그 자신이 의학, 심리치료, 형벌체제 내에 일어나는 갈등에 개입하였다. 그는 감옥의 개혁에 수감자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도를 고안해 내었다.


저항으로서의 계보학은 광인의 목소리, 일탈자들의 목소리, 비정상적인 사람들과 무력한 자들의 목소리와 같은 주변자들의 목소리, 침묵 당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 역사를 이용한다.

계보학은 권력에 대한  수많은 불연속적인 투쟁들과 지엽적인 투쟁들의 위치를 밝혀 준다.


과거와  현재에 있었던 이러한 목소리들이 저항, 역사의 창조적 주체들인 것이다.



@ 차이의 정치학 정리 :

 

푸코의 역사와 권력에 대한 분석은 전통적인 혁명이론을 비판하고 차이의 정치학을 제시한다.


1) 모든 차이가 매워 질 수는 없다

2. 또한 차이가 반드시 효과적인 저항의장애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차이의 정치학에 차이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차이는 특수한 형태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원천을 다수화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이는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왜곡되어진 그 무엇인가를 발견해 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차이의 정치학은 우리의 차이를 재정의 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중심과제로 삼는다.


@ 미시적 관점 : 불연속성과 분산된 것의 정체를 밝혀 낼 수 있는 방법이며, 역사적 사건을 그 복합성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 계보학적 방법; 담론의 물질적 조건을 강조한다. 담론의 물질적 조건은 제도, 정치적 사건, 경제적 실천이다.

: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지식과 주관성을 생산해 내기 위해 권력이 육체를 어떠한 방식으로 작용하는가?





@ 성의 역사


권력은 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 ;성적 본성‘을 가진 주체가 담론을 통해 생산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푸코의 계보학적 방법은 문화와 일상적 삶의 모든 국면들을 정치화한다.


푸코는 알려지지 않은 , 제외된, 잊혀진 , 주변적인 담론들의 역사를 쓰려고 한다. 그는 광기, 의학, 성에 대한 담론이 독립적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제도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현대국가나 경제와 같은 거시적 현상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본다.


그도 다른 포스트모던 이론가들과 마찬가지로, “ 전체화하는 담론”의 전제들에 저항한다.

실증주의 과학이나 마르크스주의가 제외시켜 놓은 담론들의 짓기들을 다시 주체로 삼는다.  



@ 권력과 지식


권력관계가 중단된 곳에서만 지식이 있을 수 있다는 , 그리고 지식은 권력의 명령과 요구와 관심 밖에서만 발전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아마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그리고 그 권력을 포기하는 댓가를 치루는 것이 학자가 될 수 있는 조건 중에 하나라고 믿는 것을 아마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권력은 지식을 생산한다고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권력이 지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식을 지식에 도움이 된다거나, 또는 지식이 유용하기 때문에 지식을 응용하는 것이 아니다. ) .


권력과 지식은 서로가 서로를 함축하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식의 `밭을 상관적으로 구성하지는 않고는 권력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동시에 권력관계를 구성하거나 전제하지 않는 지식은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권력 즉 지식의 관계는 권력체제와의 관계에서 자유스럽다거나 그렇지 않은 인식주체로부터 출발해서 분석할 성질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인식주체, 인식해야될 대상, 그리고 인식의 양식들이 모두 권력 즉 지식에 근본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결과이거나, 그러한 연루의 역사적인 반영의 결과임을 생각해야 한다. 요컨데, 권력에 유용하거나 반항적인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인식주체의 활동이 아니다. 인식의 가능영역과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그 주체를 관통하고, 그 주체가 구성되어지는 투쟁과 과정, 그리고 지식 즉 권력이다. “ (광기와 처벌)


1. 권력/지식/주체 .


“ 권력과 지식은 따로 떨어져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불가분적으로 작용하고 제안되어 왔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권력 즉 지식이다.”


1970년대 초부터 푸코는 현대권력의 본성을 비총체화하는 반휴머니스트적 도식에서 재사유하려고 시도한다. 그는 권력을 거대구조/지배계급에 계류되어 있다고 보는 이론에 반대하고, 권력이 항상 억압적인 본성을 갖는다는 견해에 반대한다. 그는 권력이란 분산되고, 이질적이며 이종(異種)적이고, 주체가 없고, 생산적이고, 인간의 정체성과 육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는 새로운 관점 (포스트모던적 해석)을 발전시킨다. 그는 권력을 법적 모델이나 경제주의적 모델로 설명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주의적 모델은 권력을 계급지배나 경제적 명령으로 환원한다. 사변적 모델은 권력을 법률, 법적 도덕적 권리, 정치적 주권의 면에서 바라본다.


브르조아지 혁명은 사회정치 영역에서 왕의 머리를 밴 것이다. 푸코는 자유주의이론과 권력을 억압적으로 보는 이론 속에서 주권에 대한 개념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푸코는 계보학적 길로틴을 가지고 왕의 머리를 베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권력은 물리적인 힘이나 법률에 의한 대표성을 통해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규범의 헤게모니, 정치가들을 통해서 행사되며, 육체와 영혼을 형성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 행사되며 작용한다.


지식은 중립적이며, 개관적이라고 보는 현대이론(실증주의)과 해방적이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해서, 푸코는 지식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의 지식/권력이라는  개념은 이성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회의 그리고 해방적 도식에 대한 회의의 표현이다.


권력과 지식의 순환적 관계는 인간과학에 대한 푸코의 비판 속에서 확립되었다.  근대/현대 개인은 지식의 대상이며, 주체이다. 현대의 개인은 억압된 것은 아니나, 과학적이고 훈육적인 메카니즘의 모형 속에서 형성되고 형태 지워 진다. 도덕적/법적/심리적/의학적/성적 존재는 힘과 육체의 기술에 따라 조심스럽게 날조된다.  



2. 주체의 이중적 의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통제와 의존에 의해 종속된다. 양심이나 자기인식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에 묶여 있다. 푸코는 의식, 자기반성, 자유를 연결시키는 계몽주의적 모델을 거부하고, 니이체를 따라 자기의식, 특히 도덕적인 의식형태들의 자의식은 사회적 통제를 내면화하는 권력의 전략이며, 결과라고 본다.


이미 주어진 통일된 주체, 불변하는 인간의 본질을 설정하는 모더니티의이론에 반대해서 그는 주체의 파괴를 선언한다. 주체의 파괴가 그의 정치적 전략의 열쇠이다. 주체를 파괴한다는 것은 주체가 사회적 틀 속에서 구성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는 분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고정적 자아로서 주체를 상정하는 것은 휴머니스트적 신비화이다. 이것은 주체를 권력관계 속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제도적 장소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 것으로 저해한다.


푸코는 니이체에게서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휴머니스트적 선잠에서 깨어나서 모든 구체적 형태의 인간학적 편견을 파괴하는 것을 그의 과제로 삼는다. 이를 위해 그는 주체가 형성되는 바로 그 장소에서 담론의 복합적인 기능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사고가 필요하다. 푸코의 권력에 대한 설명은 고도로 세분화된 현대사회의 본성과 의식적인 주체와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다종적인 권력 기제를 강조한다. 그의 권력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이론은 모더니티 그 자체에 복수적이고 다원적인 본성을 파악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푸코가 생각하기에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근대사회이론은 이러한 다원성을 파악하는데 실패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이론들은 권력의 중심만을 찾아서 분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권력이란 단일한 것이 아니라 다수이며 다양한 세력관계에 유동적인 장이며, 결코 지배의 완전하고 확고한 결과물이 아닌 것이다. 근대의 권력은 관계적인 권력이며, 그것은 무한히 수많은 점에서 행사되는 것이다. 즉 권력에는 중심이 없다. 또한 권력은 반드시 그것을 소유하고 행사하는 주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은 익명의 주체에 의해서 행사되고 주체는 권력의 부산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총체화하여 권력을 분석하려는 데에 반대해서 푸코는 권력과 합리성을 다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믿는다. 권력은 다양한 담론 속에 각인 되어 있으며 제도적인 장속에 각인 되어 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합리화의 과정을 일반화해서 설명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대신 그는 광기, 병, 죽음, 범죄, 성과 같은 기본적인 체험 속에 기반을 두고 여러 영역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서 합리화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는 권력을 제도적인 그물망의 탈중심화된 장을 통해 순환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한 권력은 계급이나 국가와 같은 큰 구조에 의해서 후차적으로 수용되는 것이다. 즉 이러한 거시세력은 권력이 취하는 최종적인 형태일 뿐이다. 따라서 그의 방법론은 권력에 대한 이론이라기 보다는 권력의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에 대한 이론은 권력에 대한 체계적이고 통일적인 관점을 필요로 하지만, 푸코가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다원적이고 파편적이고 분화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 공간적으로 특수하다. 그러므로 권력의 분석도 그러한 분석이어야 한다.


포스트모던적 권력에 대한 이론과 모던 권력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분석을 구별해야 한다.


푸코의 경우 모던적 권력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분석이다.


미시적 권력의 다원성으로 권력을 해체시킨다. 포스트모던적 권력에 대한 이론은 보들리야르의 이론이다. 보들리야르는 전기 메디아, 정보 테크노롤지, 의비적 체계가 현실과 가상의 구별을 파열시킨다는 내파이론을 통해서 , 이미지와 조작된 시니피앙의 추상적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새로운 형태의 포스트모던적 권력이라고 본다. 반면 푸코는 권력의포스트모던적 형태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그대신 그는 새로운 포스트모던적  에피스테메를 예견한다.


* 에피스테메: episteme필연적이면서도 무의식적이고,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은 사유형식 : 역사적 apriori:

다양한 언설을 지탱하는 감추어진 질서, 그것은 지식 바로 밑에 누워 있는 조직이며, 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의피안에 있으며, 어떤 시대, 또은 어떤 영역에서도 학문에 무의식적인 골조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 일정한 시대의 우리의 인식의 지평과 문화적 구조를 가능케 하는 하부 구조


그의 권력비판은 자율적인 지식과 담론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또한 총체화하는 언설 때문에 억압된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사회에서 상품물신성의 주문을 깨뜨리고자 한 것처럼, 푸코도 여러 가지 중립적인 장막 뒤에 있는 권력과 지배의작용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 미시정치학


그의 정치학은 미시정치학이다. 미시정치학은 두 가지 핵심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1. 담론의 정치학


주변적 집단들이 정상적인 정체성의 족쇄 속에 개인을 가두는 지배적 담론에 저항하고 차이의 자유로운 유희를 해방시키는 정치학. 모든 사회에서 담론은 권력이며 담론을 결정하는 규칙이 무엇이 합리적이며 정상적이고 진리인가를 판단하는 규범을 강요한다. 이러한 규칙으로부터 밖으로 나아가서 말을 하게 되면 주변화 되거나 배제될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모든 담론은 권력에 의해서 형성된다. 또한 생산된다. 그러나 모든 담론이 권력에 온전히 굴종하는 것은 아니다. 담론은 동시에 저항의 지점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저항의 전략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반대담론은 정치적 저항의 지렛대를 제공할 수 있다. 담론의 정치학은 인간적인 모든 것이 권력관계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2. 몸의 정치학

 

개인은 몸의 정치학 속에서 훈육적인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시도를 할 수 있다. 새로운 유형과 새로운 양식의 욕망, 새로운 쾌락을 창조해 내면서 육체를 재발견해 내는 것이다. 새로운 육체와 새로운 즐거움의 개발은 규범화된 주체정체성 규범화된 형태의 의식에 저항할 수 있는 육체의 잠재력을 갖는다.

   



@ 푸코의 철학적 에토스



그의 철학적 에토스는 영구한 자기변화의 명령에 따른다.  이러한 영구변화에 대한 작업은 보편주의적 윤리학이나 주체, 그리고 주체의 자유를 주제로 삼는데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  그는 현재의 비판이라는 지평에서 철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철학이라는 것은 긴장감과 망설임 속에서 꿈과 환상을 가지

고 진정하고 참된 것이라고 간주되어 왔던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운동이며 또한 새로운 게임규칙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철학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만들며 지금과는 다르게 되기 위해서 수행되어지는 (사유의 틀을 변형시키고 변경시키는 일이며 기존의 가치를 수정하는 일등)과 같은 모든 작업을 말한다”.


 현대철학이 집착하고 있는 담론들 즉 인식론적 문제들과 규범적 물음들에 고착되어 있는 담론들과의 결별을 시도하는  푸코의 이론 자체가  하나의   영구한 비판으로서의 철학적 에토스를 체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철학적 태도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사유와 행위의 가능성에 대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일관적으로 우리에게 쉬운 해결책이나 대인에 대한 환상을 허용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종류의 물음을 묻게 하고, 새로운 탐구에 길을 열게 강요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환상의 가면을 벗긴다.”  



푸코의  인간의 죽음에 대한 선언은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기반이 되는 주체, 보편적이고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의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그의 선언은 의식철학의 정치학과는 다른 정치학을 요청한다.  그 정치학에서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가 종속되어 있는 다원성과 복수성의 형태로 존재하는 미시적 권력들의 정치학이다.  철학적 행위란 그것이 비판하는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과의 차이를 창출해 내는 정치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