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랑

[딘 오니시] 관계의 연금술

실다이 2009. 11. 25. 17:58

 영적 수행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는가이다.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가?

행동을 바꾸고 '이것은 영적인 수행이고 저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올바른 목적을 갖고 있으면 화장실에 앉아서도 영적 수행을 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을 영적수행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나는 모든 일을 명상으로, 신에게 바치는 공물로, 인간에게 하는 봉사를 통해 신에게 드리는 기도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화는 결합, 접촉, 교제, 공동체를 만드는 기본적인 기술이다.

 

우리는 혼자 있는 게 두렵지만, 친밀감도 두려워서 크나큰 공허감, 소외감, 자아의 비현실성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게 정서적인 요구를 하지 않는 친구인 컴퓨터는 그 절충안을 제공한다.

고독할지는 몰라도 결코 혼자는 아니다.

상호교류는 하지만 결코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지는 않는다.

- 셰리 터클 -

 

친밀감은 공격이나 후퇴의 첫 희생자이다.

친밀감의 결여는 삶의 질, 건강, 생존에 영향을 줄 만큼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린다.

진실되고 솔직해지자.

사람들은 왜 화가 나고 혼란스러운지 알아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내 생각엔 네가 틀렸어. 넌 바보야!"

이 말을 들으니 어떤 느낌인가.

기분 나쁘다.

화 난다.

공격당하고 비판당하고 평가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모욕감을 느꼈다.

당황했다.

적개심이 일어났나요.

싸우고 싶었나요.

낙담했나요.

가슴, 턱, 등, 위장, 어깨에 압박과 긴장을 느꼈을 수도 있다.

압박과 위축은 자신을 육체적, 정서적으로 방어하려는 노력의 한 방법이다.

공격받거나 비판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대부분 두 가지 중 하나로 반응한다.

(1) 물러난다.

(2) 공격한다.

 

"난 화가 나. 난 혼란스러워."

어떤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더 알고 싶어진다.

목, 가슴, 위장에 긴장과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평가받거나 공격당한다거나 비판당한다고 느끼지 않으므로 물러서거나 반격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생각을 판단이나 비판으로 듣는 경향이 있따.

그것은 마음을 닫게 만든다.

반면에 우리는 감정을 아주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

더 가까워지자는 초대로, 솔직한 뜻으로 듣는다.

우리의 감정은 우리를 서로 연결해준다.

 

왜 감정은 생각보다 더 듣기 좋고 공격으로 인지되지 않을까?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면 우리는 더 약해진다.

우리는 스스로 약해지는 위험을 감수하여야만 친밀감을 체험할 수 있다.

열린 마음들은 서로 연결된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 약해지는 게 두려울 수도 있다.

약해지지 않고는 정말로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없는데,

공격을 당하면 결코 약해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안전하게 아예 무감각하게 지내자.'

아주 친밀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나은 셈이다.

육체적으로는 같이 살지만, 정신적으로는 분리된 생활을 하게 된다.

관계는 서로 균형 있는 힘을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균형이 깨지면 힘을 빼앗긴 사람은 힘을 되찾으려고 한다.

무관심하거나 거절하면서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으므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성급하게 비판하는 것은 친밀감을 방해할 수 있다.

친밀감이라는 이 경이적인 감정을 방해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문제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친밀감을 깨뜨리지 않고 진정한 감정을 나눌 수 있을까?

감정이나 생각이 어느 때 더 효과적인가를 알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든 자타에게 진실하지 않은 것은 정직성, 몸, 면역체계, 심장혈관체계에 대한 배신이다.

몸은 그걸 안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진실을 말하지 않을까?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완전히 진심이라고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일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고결해진다.

고결하면 더 큰 인격적인 힘, 카리스마, 권위를 갖게 되고

자신과 주위 사람들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비판, 비난으로 느끼지 않고 들을 수 있는 진실을 말하자.

(1) 생각과 감정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생각이 감정의 가면을 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관계에서는 흔히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싶어진다.

자신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기쁘게 하면 자신도 행복해진다.

생각은 논의의 여지가 있지만 감정은 진실하다.

자신의 감정을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우리를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현재의 순간에 붙잡아둔다.

생각은 우리를 과거에 고착시킨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정리되고 여과된다.

감정은 마음으로 곧장 다가간다.

광고, 캠페인, 선전, 운동은 합리적인 논의보다는 감정에 호소한다.

감정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느낌을 표현하면 타인에게 이해의 선물을 주는 것이다.

 

사랑과 친밀감 강화 표현법

1.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자.

2.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자.

3. 다른 사람의 감정을 주의 깊게 듣자.

4. 감정이입, 배려심, 동정심을 갖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정하자.

 

정말로 결합되었다고 느꼈떤 때가 기억 나는가.

진정으로 밀착되었다고 느꼈던 때가 기억 나는가.

이 말다툼이 친밀감을 위험에 빠뜨릴 가치가 있을 만큼 중요했는가.

사랑하는 관계라면 서로 기쁘게 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공격받거나 비판받는다고 느끼면 진실하지 않게 행동한다.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오해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친밀감과 고립감을 기억할 수 있다면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친밀감은 삶을 낭비하지 않는다.

 

"난 죽을 때 신의 이름을 부르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죽음의 순간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신의 이름을 부른다."

- 마하트마 간디 -

어떤 것을 매일 연습하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그것을 끌어낼 수 있다.

 

강물에 빠진 전갈을 성인이 구해줬는데 전갈이 성인을 물었다.

'방금 목숨을 구해줬는데 왜 무느냐'고 물었더니, 전갈이 '본성인데 어떡하란 말이냐'고 했다.

가끔 마음 주위에 벽을 쌓아두는 게 필요하고 건강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늘 방어하지 않는 게 좋은 생각은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집에서는 방어벽을 허물 수 있어야 한다.

벽을 유지하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억제하고 숨기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큰 고통과 질병으로 우리를 이끌어가 수도 있다.

야비한 사람에게도 마음을 늘 열어놔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힘든 관계지만 늘 상대해야 한다면 그 사람에게 변화를 기회를 주자.

그래도 안 되면 '넌 네 방식대로 하고, 난 내 방식대로 하자'고 하면 된다.

"한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가 고립된 자아로부터 얼마나 해방되어 있는가에서 발견할 수 있따."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같은 느낌'이나 '~라는 느낌'은 생각이다.

 

자신과 친밀해지기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가장 괴롭고 사랑스럽지 않은 부분이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가장 깊은 부분들과 더 친밀해질 것이다.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더 동정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는 무지와 결점에 공감하고 용서하기도 더 쉬워진다.

용서는 내 자신이 오랜 분노, 분리, 고립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잊는 게 자신에게 가장 이롭다.

그 사람을 생각하며 화를 내면 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중대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 사람이 악의가 있었다기보다는 무지했을 수 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다른 사람을 돕는 순간에는 고독, 고립, 고통에서 해방된다.

규칙적인 자원봉사활동이 사망률 감소의 가장 뚜렷한 예후 인자다.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은 더 오래 살았다.

이타심, 사랑, 동정은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없애는 데에서 오는 황홀감은 종교와 영적 전통의 중요한 부분이다.

더 좋은 것을 받지 못하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종교적 전통에서 신을 체험하기 위해 세속을 포기하는 것은 이익이 있는 거래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기쁨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데에서 온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여 자신의 즐거움을 원하는 데에서 온다.

- 샨티데바 (8세기 인도 학자) -

 

깨닫는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친밀해지는 것이다.

명상이 깊이를 더해가면 우리는 목격자의 관점을 개발할 수 있다.

감정, 신체, 생각, 정신을 넘어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하는 자아가 있따.

이 자아는 그것을 체험하는 정신의 능력을 넘어서지만,

우리는 이 자아를 자신의 마음속에서 사랑으로 느낄 수 있다.

깨달음은 다른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엄청난 자유를 가질 수 있게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포용하는 열린 마음과 사랑으로 살기를 선택할 수 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든 사물과 친밀하다.

그 영원한 순간에 우리가 어디를 가든,

우리는 천 가지 다른 모습을 한 우리 자신의 친족만을 발견한다.

 

명상은 우리 눈앞에 렌즈를 벗기고 단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

친밀감의 이러한 차원이 치유력의 핵심이다.

"극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친밀감, 자의식에 대한 친밀감이다.

그것은 자신의 호흡이나 자신의 육체를 지켜보는 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편협하게 정의해왔다.

나, 나를, 나의, 나의 것.

인칭대명사의 실재나 유용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다만 한순간일지라도 육체, 정신, 영혼, 정기, 마음, 세계 사이의 경계가 없는 그런 합일성을 육체가 경험하면

실제로 우리 육체의 모든 면에서 최선의 기능을 회복하고 강화하려는 방향으로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유년기 체험에 의해 크게 결정되는 우리의 생각은 자주 친밀감에 대한 가능성을 방해하는 행동방식 안에 우리를 가두곤 한다.

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방식은 수없이 많다.

우리는 자신에게만 너무 몰두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지배하거나 무시하거나 억누른다.

친밀감이 너무 두려워서 감정의 매우 제한된 영역 안에서만 편안함을 느낀다.

자신은 좋은 느낌을 갖지만 상호관계는 허락하지 않는 친밀감의 개념을 개발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관계에 특이한 일이나 감정을 불어넣어도,

우리는 그러한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추고 친밀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결국 진정한 친밀감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만다.

명상은 자신의 존재 안에서 금맥을 찾는 것과 같다.

명상은 우리 눈과 마음을 열어줌으로써 우리를 변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습관적 행동양식, 틀에 가두는 행동방식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의식집중은 통제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나타나는 상황의 실재성을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판단하지 않고 그저 보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 큰 효과와 치유력이 있다.

이런 경험을 오랫동안 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겠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친밀감과 결합은 혼자서 자신의 몸 안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자아와, 관계 안에서의 자아에 대한 전체적인 질문, 친밀감과 사랑 안에 포함되는 모든 것과 관련된다.

 

자기 존재의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그 잠재력을 깨울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모든 일을 이미 정해진 대로 흉내내고 있다는 사실 깨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