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봉순이 언니 _ 푸른숲 _ 1998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 푸른숲 펴냄
모처럼 한가한 한 해를 보내면서, 가장 계절 타는 가을이라 더 한가하게 지내고 싶었다.
이처럼 한가한 것은 몸과 마음에 좋은 일이나,
넓은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사람과 영원히 이별해야만 하는 것이 버거워
꽉 움켜잡고 있던 인연들까지 가만히 놓아버리면서 생긴 한가함이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열하다못해 목숨을 걸기까지 해야 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한가함이란 게 어떻겠는가.
허나, 개의치않고 밑바닥에 남아있는 돈을 털어내서 짧으나마 여행을 다녀왔다.
그래, 왔다.
그 사람처럼 영원히 저 세상으로 가지 않고 왔다.
이십 년은 안 되었다.
그 때 친구와 걸어다녔던 목포의 유달산 오름길,
'노인과 바다'로 이름이 바뀐 카페 '헤밍웨이',
갓바위 근처 해변,
모두 낯설 정도까지 달라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친구도 나도 달라졌다, 오히려 사람이라 더 많이 달라졌다.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희망적인가.
첫남편을 묻고 그가 남긴 자식을 키우는 봉순이 언니의 삶에 남아있는 희망처럼.
그 사람이 맺어준 관계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놓은 폭력 같았다.
지난 봄부터 이 가을까지 나는 얼마나 세상을 할퀴었던가.
그런데 내 날선 손톱을 깎아내면서
그를 잊으려고도 기억하려고도 애쓰지 말라며
덤덤하게 그를 떠나보내는 그의 친구를 만났다.
저 세상에 가서 살고 있는 그 영혼이 이 세상에 남은 나와 아직도 관계를 하고 있다.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은
희망일까, 구차함일까.
그것을 물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나에게 다시 묻는다.
작가 공지영이 말하는 희망이란,
그녀의 첫사람 봉순이 언니가 쉰 나이에도 간직하고 있는 희망이란......
허망과 절망이 몸부림치며 낳는 것, 빚어내는 것, 이것이 희망인가 싶다.
김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