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랑

영화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증후군들

실다이 2009. 8. 28. 22:49

스톡홀름 증후군

존 큐(John Q) - 2002년


메탈 공화국 스웨덴의 데쓰메탈 성지라 할 수 있는 스톡홀름에서 벌어졌던 인질사건에서 유래된 현상으로 인질로 잡힌 사람이 인질범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질범에 대한 연민 혹은 동화와 정신적인 교감을 통해 인질범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합니다.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최악의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 경우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큐멘터리 '식코'를 통해서 의료보험 민영화의 부조리와 뒤에 따르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그냥 죽으라는 것인데 영화 '존 큐'는 바로 이런 미국 사회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담고 있습니다. 돈이 없기에 죽어가는 아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과 스톡홀름 증후군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식코'를 통해서 철없는 닉슨 대통령의 정책으로 얼마나 많은 서민이 피해를 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결과가 뻔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한국의 제2 닉슨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리마 증후군

 

인질(A Life Less Ordinary) - 1997년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정반대의 개념으로 인질범이 인질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질범이 약간은 띨띨해야 되는 설정 때문에 코믹물의 단골 소재가 되는 증후군이기도 합니다. 국내 영화에서는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에서 인질범이 권 여사의 꼬임에 빠져서 대규모 프로젝트의 행동 요원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청소부로 일하면서 소설가를 꿈꾸는 소심한 청년 이완 맥그리거, 돈 많은 부모 덕에 호의호식하며 살지만 매사가 지루한 카메론 디아즈. 평생 평행선을 달리 것 같은 이들이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카메론 디아즈에 의해 이완 맥그리거가 본의 아니게 납치범이 되면서 로맨스가 시작됩니다. 이완 맥그리거에게 납치법으로서 갖춰야 할 것에 대해 하나씩 가르치는 카메론 디아즈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완 맥그리거를 보고 있으면 마치 '덤 앤 더머'의 로맨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엉뚱한 상상이 줄 수 있는 재미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

 

모짜르트와 고래(Mozart And The Whale) -  2005년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증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신지체가 잘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간혹 일정 분야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한 가지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 모짜르트 같은 과거의 천재들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았다는 설이 허황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이사벨은 자신의 생각을 아무 꾸임없이 직설적인 화법을 보이는데 아스퍼거 증후군의 증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로 사회성 결여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회성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기보다는 여기에 거짓말을 더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배덕 증후군

 

데드 캠프(Wrong Turn) -  2003년


자신이 한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더라도 그것에 대한 책임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로,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식 살인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증후군으로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영화의 잔인성하고는 별개로 넓은 평지를 이루며 펼쳐지는 산림지대의 아름다운 경관은 우리나라의 좁은 땅덩어리를 생각하면 부러운 점이기도 합니다. 단지 인육을 위해 인간을 사냥하고 난도질하면서 마치 돼지고기 다루듯이 하는 모습은 배덕 증후군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오크 삼 형제의 인간사냥.

 


서번트 증후군

 

큐브(Cube) - 1997년


특정 분야에서 보통 이상의 능력을 보이는 이상천재라는 점에서 아스퍼거 증후군과 비슷할 수 있지만, 서번트 증후군은 바보와 천재의 공존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간혹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장애우에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반적인 지능은 떨어지지만 특정 분야에 한해서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같은 이상천재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확률은 극히 낮다고 합니다.

큐빅과 인생처럼 얽히고설킨 퍼즐 속에 던져진 각기 다른 인생의 6명이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여 탈출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큐브'에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장애우가 숫자에 대한 엄청난 능력을 보이며 연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한 '레인 맨'에서도 볼 수 있는데 자폐증으로 우뇌가 특화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뇌의 몇 %만 사용했다는 낭설이 있지만, 이런 현상들이 간혹 일어나는 것을 보면 단순히 낭설로 취급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정말 우리는 살면서 뇌의 극히 일부분만 사용하다 가는 거 같기도 합니다.

 


오델로 증후군

 

적과의 동침(Sleeping With The Enemy) - 1991년


흔히 말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런 증상의 시작은 상대에 대한 집착과 쓸데없는 의심과 상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우자나 연인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 주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끔 통화가 안 되면 1시간 동안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의처증이나 의부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의처증은 물론이고 안 좋은 정신 장애는 모두 갖고 있으면서 폭력까지 행사는 남편, 집착에 대한 것은 '미저리'와 겨루어도 절대 뒤지지 않는 집착의 화신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줄리아 로버츠의 쇼생크 탈출을 보고 있으면 의처증이 의부증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튼, 여자하고 아이 때리는 남자는 다 개.

 


감금 증후군

 

잠수종과 나비(Le Scaphandre Et Le Papillon) - 2007년


말 그대로 사람이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철갑옷 속에 투구까지 쓰고 감금된 것처럼 전혀 활동할 수 없으며, 오직 눈과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거의 식물인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식물인간과는 달리 뇌에는 손상이 없어서 사고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주사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영화 제목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감금 증후군으로 오직 왼쪽 눈과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는 보비. 자신의 몸은 잠수종이라는 한정된 곳에 갇혀 있지만 영혼만은 나비처럼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다는 영화 속 보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장애우와 관련된 영화는 자칫하면 억지 감동을 유도하는 약점을 지닐 수 있지만, 보비의 유쾌한 상상과 재치있는 나레이션이 그런 약점을 없애줍니다. 마치 보비의 눈을 통해 사물을 보는 카메라 기법을 쓰면서 초점이 날아갔다가 다시 잡는 것을 반복하여 주인공이 겪는 담담함을 자연스럽게 함께 느낄 수 있는 것도 한몫을 합니다.

 


베르너 증후군

 

오! 브라더스(Oh! Brothers) - 2003년


인간이 늙어가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는 이유는 여러 외부요인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세포분열을 통해 복제와 새로운 세포를 더는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르너 증후군은 조로증의 한 종류로 염색체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으로 새로운 세포를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빠른 속도로 노화가 진행됩니다.

겉모습만 보면 이정재와 이범수의 형과 아우가 바뀌어야 하지만 조로증에 걸린 12살 오봉구를 연기한 범수 형님의 순간순간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의 행동과 해결사로서의 모습을 그대로 습득해 장면 장면마다 순식간에 변신을 거듭하니 말입니다.

 


투렛 증후군
 

듀스 비갈로(Deuce Bigalow) - 1999년


투렛 증후군은 가만히 있다가도 얼굴 경련과 함께 몸을 비틀며,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나 별 의미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증상을 보입니다. 일종의 신경장애로 위와 같은 틱 증상이 무의식 중에 발생하기 때문에 스스로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홀리 헌터가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출연한 '빅 화이트'에서 열연한 환자도 투렛 증후군입니다.

화장실 유머가 난무하는 '듀스 비갈로'. 어쩔 수 없이 남창이 된 듀스가 만난 여인 중에 투렛 증후군에 걸린 여자가 잠깐 등장하지만, 투렛 증후군에 걸렸을 때의 행동 반응을 잘 보여줍니다. 대화 중에 갑자기 온몸을 비틀면서 웬만한 락커를 능가하는 샤우팅에 육두문자를 날립니다.

 


프로테우스 증후군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 1980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 중의 희귀병입니다. 이 증후군에 걸린 영국의 한 여성이 방송매체를 타면서 널리 알려진 질환으로 신체 일부분이 마치 거대한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비대증입니다. 흔히 코끼리 사나이로 알려진 영화 '엘리펀트 맨'으로도 유명한 증후군입니다.

조셉 메릭이라는 분의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를 흑백의 건조한 톤으로 냉혹하게 담고 있습니다. 엘리펀트맨은 프로테우스 증후군뿐만 아니라 신경섬유종증까지 앓고 있었기 때문에 뼈가 굵어지고 뒤틀리면서 기형적인 얼굴과 몸매를 갖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그가 괴물처럼 보였지만, 단순히 한 인간으로 살고 싶어하는 그를 돈벌이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서커스 단장과 볼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역겨운 괴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