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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면 천둥, 암행어사 납시는 듯

실다이 2009. 7. 3. 23:34

 

 

북면 천둥, 암행어사 박문수 납시는 듯 

 

김난주

 

 

 

취암산 터널을 지나서 연춘리까지 가는데 날씨가 꾸물거린다. 떼구름이 한바탕 치고 박고 놀면서 가물더위를 식히려나보다.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맞부딪치며 생긴 경계에 기댄 채 강과 논, 밭과 마을이 어우러진 북면, 보기에 좋다. 어디나 그렇듯, 숱한 시간과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땅과 물을 두고 다투었을 게다. 지나고 나니, 모든 게 그랬을 뿐이다, 이제는. 어사 박문수(숙종~영조) 묘로 가는 길 왼쪽이 환해서 비 낌새를 잊고 덩달아 한껏 웃었다. 접시꽃과 자귀꽃이 으뜸과 버금을 가릴 수 없이 곱다. 좀 전에 지나쳐 온 어느 집 담벼락 능소화도 고왔건만, 여기서는 눈을 떼기 힘들다.

 

은석산 아래에 어사의 묘보다 고령박씨 종중재실(문화재자료 제 289호)이 앞서 있다. 천안시나 충남도나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서 문중 살림이 이어지고 있다. 안채, 사랑채, 사당(충헌사, 1990년 복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종중 재실. 세월에 담금질 한 마룻대 결과 빛바램을 보니, 이백 년을 따라 들어가는 듯 들뜬 혼이 가라앉는다. 아기 소리가 들리는 안채까지 닿은 마당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열린 문을 미는데, 돌쩌귀가 소리를 내지 않고 손님을 맞아들인다. 이런 집에서라면 상처투성이 외주둥이로 된주먹 날리듯, 뉘에게 가시 돋친 말을 뱉을까. 마음을 다스린 공간이라서 감싸 안는 힘이 있다. 이렇게 편한 마음이 드는 사회, 어른다운 사회의 품이 그립다. 그런 품이 서면, 사회가 어른답고 전통도 서릴 것이다.

 

안마당에 들어오기 전, 바깥 정원 명자 꽃이 빨간 빛깔로 사람의 피와 기운을 돌려주는지, 신바람이 났었다. 그러나 마당에는 절구 둘이 아낙을 기다린 지 오래 되었는지, 신바람이 들지 않아서 이끼로 얼룩져있다. 300년 전, 마을에 동래정씨 21세손과 의성김씨 23세손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고, 부안김씨 29세손도 들어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어우렁더우렁 살던 고령박씨 종중의 재실을 지키는 촌로 부부가 아가를 돌보고 있다. 대를 이었으니, 윤오월까지 든 해라 깐깐오월이 길긴 해도, 큰 시름은 없으시겠다. 38 세에 이미 곧은 기품을 지닌 박문수 어사의 영정(보물 제 1189호. 1994년 지정)을 보려 여쭈었더니 천안박물관으로 옮겨갔단다. 영조대왕이 하사한 호랑이가죽 깔개에 앉아있는 기세를 느끼려면, 천안박물관으로 가야한다.

 

묘소가 있는 은석산 7부까지 올라가려는데, 갑작바람이 쎄다. 쩍, 쩍! 치가를 듯 호령하는 천둥소리에 기가 질리고 다리 힘이 빠져나간다. 잠시 멈췄던 무더기비가 억수로 쏟아질 모양이고, 댓잎들은 아예 바람을 따라갈 기세다. 요즘, 물의 오래된 기세를 인간이 꺾어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지만, 어거지일 뿐이라는 건 자업자득 뒤에야 만인이 인정할 것이다. 조선 사람 박문수가 영남 관리들의 부정함을 적발했던 역사는 뒷전에서 빛바랜 거울일 뿐인지, 황천걸음 같이 걷다가 아깝게 먼저 간 벗들만 보인다. 박문수 묘 자리를 지금의 독립기념관 자리에 정하려고 했다가, 장차 나라에서 쓸 지역임을 알고 북면 은석산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바람과 물의 기세를 따르면 인간사도 형통해지는 법이거늘.

 

* 마룻대 : 도리로 쓰는 긴 나무 = 마룻도리, 용마룻대

* 깐깐오월 : 주로 농촌에서 ‘음력 오월’을 깐깐하게도 몹시 지루하게 지나간다는 뜻으로 이르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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