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 장에 오야 시골장터 맛이 나는 겨
“아우내 장에 오야 시골장터 맛이 나는 겨”
1일, 6일, 오일장이 열리면, 성정동 할아버지도 만삭이 된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대포 한 잔 그리운 친구들도 아우내 시장에 온다.
순대국밥 늘어선 큰길가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파는 사람, 가위 장단에 맞춰 엿을 쪼개 파는 사람, 구제 신발을 오천 원에 파는 사람, 도넛을 튀기는 사람들이 단골손님을 맞이한다.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쑤욱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날개처럼 편 장이 옆으로 또 이어진다. 아침 일찍 찹쌀에 대추와 밤 등을 넣어 찐 약밥, 논에 들어가서 잡아 온 우렁이, 다듬어 온 호박잎, 기관지와 천식에 효험이 있는 살구 씨 기름(일만 이천 원), 하얀 오리 알(열 개 3천 원), 손으로 만든 두부와 순두부, 달군 솥뚜껑에 살짝 얻었다가 꺼낸 김구이, 앵두달린 앵두나무,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새들, 잠이 쏟아지기만 하는 강아지. 모시를 듬뿍 넣어 쫄깃하게 쪄 와서 바로 주무르고 펴고 콩가루에 묻혀가며 썰어 담아주는 인절미를 오물거리며 장 보는 맛이라니.
없는 거 빼고 다 있을 것 같지만, 희한하게 오이는 찾기 힘들다. 병천에서 워낙 오이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 서로 나눠먹기 넉넉한 게 오이다. 장에 내와 봐야 사는 사람 별로 없지만,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 있긴 하다. 결국 병천에서 기른 '하늘그린 오이'가 아니라, 다른 데서 조금 떼어온 오이를 판다. 상품 가치가 있는 1급 2급 오이는 가락시장 경매를 거쳐 서울 지역에 팔린다. 병천 오이 사러 와서 다른 채소도 사기 때문에 가락시장의 필수 진열품이란다.
온난화 때문에 올 여름도 작년보다 더 일찍 더워졌다고 다들 고개를 젓곤 한다. 그래서인지 얇은 끈 이어서 만든 샌들을 고르는 사람들로 북적북적 하는 곳이 있다. 신발 파는 아저씨는“내가 신발을 팔아 보니께, 평균적으로, 여자들은 왼쪽 볼이 넓고, 남자들은 오른쪽 볼이 넓다고 하더라니께.”하며 발 관리 전문가 못지않은 일가견을 내놓는다.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잘 고르라는 조언이다. 시골 아줌마들도 요즘은 워낙 멋을 잘 내기 때문에 유행 디자인이어야 신발이 팔릴 게다. 어찌나 하나같이 이쁘고 섹시하기까지 한지. 심지어 장화도 옛날 장화처럼 투박하고 무겁지 않아서 도시 패션에 버금갈 정도다.
어물전은 새벽 다섯 시부터 바빴다고 한다.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 사장들이 싱싱하고 싼 생선을 사러 오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장을 열면 일곱 시, 여덟 시 돼야 좌판을 접는데, 그래도 회포를 푸는 사람들이 북적여서 열 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데가 있다. 묵밥집, 빈대떡집, 파전집. 이 주막들은, 어쩌다보면 열한 시를 넘겨서야 돌아가기도 한다.
짜, 자라잔, 잔, 잔자! 하반신 지체장애인 부부가 틀어놓은 뽕짝 베스트 메들리가 장바닥에 깔리면, 아직 밝은 대낮인데도 흥은 대폿집에서 시작되고, 덩달아 여기저기 매상도 오른다. 대포 한 잔에 천 원인데, 이천 원 주고 주전자 반 되를 시키면 두 잔 넘게 나온다. 돼지껍질과 닭발을 섞어 한 접시 시키고 대포 두 잔을 받아든 아주머니 둘은, 한 번도 안 먹어본 닭발을 먹어보겠다고 딱 하나만 달라고 한다. 주모가 대여섯 개 얹어서 한 접시 갖다 주며 "먹을 수 있으면 다 먹어 봐유."하고 권한다. 무수한 뼈들을 발라내느라 힘쓰다 보니 어느새 배가 잔뜩 부르다는 걸 느끼고는 두 아주머니가 배를 두드리며 일어나서 값을 치른다. 주모는 "그런 게 어딨슈? 먹어보라고 준 겨!" 하며, 닭발 값은 기어코 되돌려 주고, “진천 장은 5일하고 10일 여는 디, 아우내 장보다 규모가 두 배나 돼도 분산돼 있슈. 그르니께 벌이는 아우내 장이 훨씬 나유!”하면서 함박꽃처럼 웃는다. 안주를 넉넉하게 얹는 이유다.
김 모 할아버지(성정동)는“여기 오야, 옛날 장터 맛을 느낄 수 있는 겨.”하고 소주 몇 잔 들이킨다. 거동할 수 있고 올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하얀 중절모 구멍으로 백발이 보이지만,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흙빛 얼굴은 건강을 과시한다. 술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님에게, 마음을 사로잡는 반찬거리나 꼭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이 그제야 잘 보이나보다. 몇 봉지씩 사들고 저잣거리를 벗어나는 뒷모습에서 가족들과 만나는 모습, 계속되는 삶이 보인다.
천안아산좋은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