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랑

카핑 베토벤

실다이 2009. 2. 13. 19:35

하느님을 연주한 베토벤

재난이 겹치면 ‘내가 왜 태어났지?, 차라리 죽고 싶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둠이 짙은 곳에 빛은 더 찬란하고
죄가 많은 그 곳에 하느님 은총이 충만하다.

여성 감독 아그네츠카 홀란드는 영화<카핑 베토벤>에서
천부적 음감의 카피스트 '안나 홀츠'의 시선을 통해
베토벤의 음악성의 본질을 파헤친다.

청각장애에 시달리며 자괴감에 빠져 성격은 괴팍해지고
고독과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악성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의
초연을 앞두고 그의 악보를 카피할 사람을 찾던 중 음악대학 작곡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안나 홀츠를 추천 받는다.
안나는 베토벤의 음악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베토벤은 마음을 열어
그와 교감한다. 안나는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의 지휘를 도와 ‘교향곡 9번’
초연을 성공케 하고 ‘대푸가’를 작곡하기까지 베토벤의 말년을 함께 보낸다.

난폭하고 광기 있고 무례한 베토벤이지만 안나는 베토벤과의 만남을 하느님이
주신 특권이라 믿으며 높은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음악의 방으로 들어선다.
베토벤의 방은 더럽고 지저분하며 어수선하고, 쥐가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어둠침침한 공간이다.
그러나 창밖에서 들어오는 하느님 영의 햇살은 베토벤과 안나를 비춘다.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있다.

베토벤은 하느님께 저항하고, 투쟁하며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하느님은 내 머릿속을 소리로 가득 채우고, 내 마음을 음악으로 감염시키고는
귀머거리로 만들었어! 내게서 곡을 듣는 즐거움을 빼앗았어.
그게 하느님의 사랑인가?, 친구가 할 짓인가?’

베토벤은 깊은 신앙이 있었기에 어느 상황에서도 하느님과 함께 했고
하느님은 그의 친구였다.
그래서 베토벤의 삶은 음악이었고 그의 음악은 하느님의 숨결이며 소리였다.
음악은 하느님의 언어였기에 그는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고 하느님의 입술을 읽은 그는
찬양의 성가로 인간을 하느님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하느님 외에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베토벤이 임종 직전에 내놓은 최후의 명곡인 c단조는 그가 마지막 하느님 곁에
가기 전 들리는 음성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그것은 감사의 찬송가이다.
“사랑의 손이 아래로 내려와 우리를 천국으로 들어올려.
첼로는 땅에 남고, 나머지 바이올린들은 날아오르지.
그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야.
땅은 존재하지도 않아. 시간은 사라져 버리지…….
그리고 하나가 돼. 평화롭게 되는 거야 . 드디어 자유로워지는 거야 ! ”

베토벤의 천재성이 가장 빛을 발휘하게 된 때는 1790년 후반 청력을 상실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베토벤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이였지만,
세상에는 아름다운 걸작을 선물로 주었다.

삶의 어두움은 영혼을 정화시켜 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하느님과의 합일을
이루게 한다. 인간이 자신의 비참함을 알게 되면 겸손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이
그곳에 머문다. 그리고 마음은 자유로운 상태로 해방된다.
칠흑같이 어둔 밤에 별빛은 더 반짝인다.


(위 글은 평화신문 10월 28일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