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 약 용(丁若鏞) / 박석무 옮김
과일․채소․약초를 재배하도록
시골에 살면서 과원(果園)이나 남새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지난번 국상(國喪)이 난 바쁜 가운데도 넝쿨소나무 열 그루와 향나무 한두 그루를 심어 둔 적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집에 있었다면 뽕나무는 수백 주가 됐을 거고 배도 몇 나무, 옮겨 심은 능금나무 몇 주와 감나무들이 지금쯤 밭에 가득 찼을 것이다. 옻나무도 남의 담장을 넘을 정도로 뻗어 나갔을 것이고, 석류도 여러 나무, 포도도 많이 가꾸었을 거고 파초도 대여섯 주는 심었을 거고, 유산(酉山)의 소나무도 이미 여러 자쯤 자랐을 거다. 너희는 이런 일을 하나라도 했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국화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에게 몇 달 동안의 식량을 지탱해 주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니 한낱 꽃구경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생지황, 저무릇, 천궁(川芎)과 같은 것이라든지 쪽나무나 꼭두서니 등에도 모두 마음을 기울여 잘 가꾸어 보도록 하여라.
남새밭 가꾸는 일에는 땅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과 규격을 바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고, 흙덩이는 모래처럼 가늘게 부셔야 하고, 식물을 심을 때에는 아주 깊이 땅을 파는 일과 거친 흙을 분가루처럼 부드럽게 해야 하며, 씨는 항상 고르게 뿌려야 하며, 모종은 아주 성기게 해야 한다. 아욱 한 이랑, 배추 한 이랑, 무 한 이랑씩 심어 두고 가지나 고추 등속도 마땅히 따로따로 구별하여 심어 놓고 마늘이나 파 심는 일에도 힘을 쓸 것이며, 미나리도 심을 만한 채소다. 또, 한여름 농사로서는 참외만한 것도 없느니라.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남새밭 가꾸는 일이다.
근(勤)과 검(儉)을 유산으로
내가 벼슬살이를 못 하여 밭뙈기 얼마만큼도 너희들에게 물려주지 못했으니, 오늘은 오직 글자 두 자를 정신적인 부적으로 마음에 지니어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너희들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쓰고도 다 쓰지 못할 거다. 부지런함(勤)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은 저녁때 하기로 미루지 않으며, 밝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도 맑은 날까지 천연시키지 말아야 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하고, 어린 사람들은 직접 행동으로 어른의 감독을 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드는 일을 하고, 병이 든 사람은 집을 지키고, 부인들은 길쌈을 하기 위해 밤중[四更]이 넘도록 잠을 자지 않아야 한다. 요컨대 집 안의 상하 남녀 간에 단 한 사람도 놀고 먹는 사람이 없게 하고, 또 잠깐이라도 한가롭게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걸 부지런함이라 한다.
검(儉)이란 무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으로 되어 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나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까 여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옷을 만들게 되면, 당연히 곱고 아름다운 옷을 만들지 않고 투박하고 질긴 것을 고르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된다.
음식이란 생명만 연장시키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생선이라도 입술 안으로만 들어가면 이미 더러운 물건이 되어 버린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함은 참됨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속이면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 속이거나 농부가 동료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여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밥을 싸서 주먹덩이를 삼키고 있을 때 옆 사람이 구경하고는 ������상추로 싸 먹는 것과 김치 담아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묻기에, 내가 말하길 ������그건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 먹는 법입니다.������라고 말하여, 적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방법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 보는 일에 정력을 소비할 뿐이다. 그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한 사람 및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의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방법도 된다. 근과 검, 이 두 자 아니고는 손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