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세계 5 - 한글의 우수성
훈민정음의 세계
김성구
Ⅰ. 훈민정음의 창제자
Ⅱ. 한글창제의 동기
Ⅲ. 훈민정음의 기원설
Ⅳ. 훈민정음의 제자원리
Ⅴ. 한글의 명칭과 유래
Ⅵ. 한글의 우수성
Ⅶ. 한글창제에 관한 공박
1. 최만리의 상소문
2. 상소문에 대한 세종의 입장
3. 반대 상소자들에 대한 세종의 처벌
4. 세종의 신문자(한글)정책
Ⅷ. 한글창제의 역사적 의미
Ⅸ. 기타
1. 한글의 의미
2. 한글날의 역사
3. 한글의 읽기 쉬운 글자(나)와 힘든 글자(히)
4. 세종대왕상
5. 한글의 글꼴
6. 원본 '훈민정음'의 보존과 발견 경위
7. 미국 과학전문잡지 디스커버호
Ⅵ. 한글의 우수성
1. 문자의 발달과 한글의 지위
지금 세계에서 쓰이고 있는 말의 종류는 3천 종 가량되고 글자는 50종 가량된다. 그러나 인류발달사의 초기시대에는 말이나 글자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말은 있고 글자는 없었던 시대를 거쳐서, 말도 있고 글자도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눈으로 보고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호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문자란 넓은 뜻으로 사람의 생각을 평면에다 볼 수 있는 꼴로 나타내어 그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문자로 취급하는 것은 그러한 평면에 나타난 그림이나 기호가 사람의 말과 직접 대응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말 특히 말의 소리와 대응관계를 갖지 않는 그림이나 기호로 생각을 나타내는 것은 일반적인 문자의 전단계 형식이다. 그러나 문자의 발달은 이러한 말과 직접 대응되지 않는 그림이나 기호로부터 발달 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⑴ 결승문자
중국 고대의 매듭글자(결승문자=結繩文字), 곧 끈의 매듭으로써 서로의 언약이나 결정 사항을 간직해 두는 방법 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서기 10세기경 Inca족에 의해서도 형성되었다고 한다. 매듭글자처럼 기억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북미 토인의 패대(貝帶)가 있다. 용건의 수대로 자개를 노에 꿰었다가, 한 용건이 끝날 때마다 그 자개를 상대에게 주는 방법이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토인의 심부름 막대기(사자봉=使者棒)도 있다. 나뭇가지에 새김눈으로써 어떤 일을 전하는 방법이다.
⑵ 회화문자
고대 중국이나 이집트의 그림글자(회화문자=繪畵文字)는 물체의 그림으로써 그 뜻을 나타냈다. 사물의 여러 그림을 그리고 추상적인 뜻을 기호로 나타내어 어떤 생각을 전하는 것을 그림글자라 하는데 이 그림글자는 몇가지 사물의 그림이 합친 한 폭의 그림의 성격을 가진다.
⑶ 상형문자
이러한 방법에서 발달한 것으로는 여러가지 사물을 함께 그리는 것이 아니고 한가지 물건을 단순화시킨 선으로 본떠서 그것과 뜻이 같은 말을 대응시키는 꼴본 뜸글자(象形文字)가 있다. 꼴본뜸글자로는 한자나 이집트의 신성문자, 우리나라의 속용문자 등이 있다.
⑷ 표의문자
이들 글자들은 원래의 꼴봄뜸의 그림의 성격이 사라지고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뜻에 대응되는 기호의 성격으로 변한다. 이꼴이 바뀐 글자들은 그 꼴에 의하여 그 사물 곧 뜻을 연상하는 것이 아니고 그 기호에 관습적으로 약속된 뜻을 연상하여 그 뜻에 대응된 말소리를 연상한다. 이런 글자를 뜻글자(表意文字)라 한다.
⑸ 표음문자(소리글자)
① 소리마디 글자와 소리내는 짓 글자
뜻글자들은 그것에 대응된 뜻을 버리고 그것에 대응된 소리만을 이용하여 다른 말소리를 적는 기호로 쓰이게 되는데, 이러한 글자들은 소리글자라 한다.
소리글자의 첫번째 형태는 소리마디 글자(音節文字)이다. 한 기호가 한 소리마디(音節)의 소리를 나타낸다. 우리 의 속용문자나 향찰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일본의 가나 등이 이러한 글자이다. 소리글자가 더 발달된 것은 낱소리 글자(單音文字)이다.
이 낱소리 글자는 한 소리마디(音節)을 이루는 낱소리를 분석하여 그 낱소리를 어울러서 소리마디를 표기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의 향찰, 범자, 파스파 문자 등이 속하고 서양의 알파베트가 속한다.
이 낱소리 글자보다 더욱 발전된 첨단 글자가 소리내는 짓 글자(調音文字)이다. 이 소리내는 짓 글자는 소리 내는 짓을 본뜬 글자이다. 글자의 꼴에 상응하는 소리 내는 짓을 연상하므로서 그 글자가 지시하는 소리내는 짓을 이해할 수 있으며 그러한 소리내는 짓을 행하면 절로 소리가 이루어진다. 이 소리내는 짓 글자는 글자 꼴이 어떤 행위를 본떠서 그 행위를 연상케 하므로 뜻글자이며, 소리를 표기하는 점에서 소리 글자이다. 소리내는 짓 글자는 이 세상에서 한글 하나 뿐이다.
글자가 소리의 기호일 뿐 아니라 그 기호는 표기하려고 하는 소리를 소리내는 짓의 꼴본뜸을 한 것으로, 한 소리를 그 소리를 내는 짓의 꼴봄뜸으로 글자를 만들었으므로 글자의 꼴을 보고 표기한 소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또 그 소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과학적이고도 실용적인 것으로 소리글자로서는 가장 우수한 문자이다.
② 한글은 한국말을 넘어서 주변의 다른 언어를 적는데도 매우 강력한 표음능력을 가지도록 만들어졌다.
<훈민정음> 발문의 표현대로 '닭소리며 개 짖는 소리'까지 다 적을 수 있을만큼의 표음능력을 가졌다.
<세종어제훈민정음> 곧 <훈민정음> 언해문 뒤에 더한 부분에서 중국말의 두가지 잇소리가 한국말의 잇소리 [삥] [잎] [차] 등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에 중국말의 잇소리를 적을 때는 [삥] [잎] [차] (여기서 아래의 두 획 중 한 획이 더 삐쳐 나온다) 등으로 획을 변경해서 적도록 하고, 나머지 소리는 한국말의 소리와 대체로 같기 때문에 이미 만든 한글을 고치지 않고 융통해 쓰도록 한다고 규정한 사실로 잘 드러나 있다. 즉, 한글은 우선적으로 한국말 을 적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주변의 다른 언어들을 적을 때는 어지간하면 그대로 쓰되 정 맞지 않을 경우에는 획을 부분적으로 고쳐 가며 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외국말 적기를 위한 변형의 원칙은 15세기로 부터 17,18세기에 이르기까지 중국말 뿐만 아니라 만주말, 몽고말, 일본말, 인도말 등의 모든 외국말에 대해서 한결 같이 적용되어 갔다.
2. 간단하고 단순한 글자꼴
한글의 밑글자는 극도로 간단한 획으로 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초성: [가] [나] [링] [삥] [아]
중성: [.] [가] [가]
두번 꺾음으로 쓸 수 있는 [링]만 빼면 모두 한 번 꺾음으로 쓸 수 있고 중성은 한번 그음이나 한 번 찍음으로 되어 있어 그 간단함이 극에 달했다.
3. 음절단위철자법
한글은 초성, 중성 또는 초성, 중성, 종성을 음절단위로 철자한다. 이러한 맞춤법은 범자, 파스파 문자, 여진자 등 다른 글자들에서도 음절 단위의 철자형태를 취하고 있다.
말은 선조성(線條性)을 지녀서 초성, 중성, 종성의 순서로 차례로 발음을 하지만 우리의 인식은 음절단위로 된다. 실제 소리나는 대로 낱소리(單音)를 차례로 적었더라도 우리는 음절은 끊어서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 인식의 면에서 보면 소리글자는 음절 단위로 철자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한글이 음절단위로 철자를 하는 것은 그와 같은 다른 글자와 더불어 우수한 철자법을 가진 소리글자의 하나이다.
한글에 있어 모음의 초성 [아]는 특히 음절 분석이나 언어 기술에 있어서 퍽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모음과 모음이 이어질 때 음절의 나뉨과 나누지 않음을 기술 할 수 있는 기능을 발휘한다.
① 아이[a#i]
② 애[ai]
[아]가 둘 있는 [아이]는 두 음절이며, [아]의 하나인 [애]는 한 음절의 복모음이다. 이런 경우 음성기호로 쓰면 혼동 될 수 있으나 [아]를 가진 한글로 쓰면 그 구분이 분명하다.
한글은 또 소리나는 대로 음성기술이 필요하면 초성, 중성, 종성의 낱소리로 펴 쓸 수도 있어 또한 언어의 선조성의 실상에 맞게 표기할 수도 있다.
초성, 중성, 종성 이렇게 3가지 음소를 모아쓰는 음절글자로서의 한글에 비해 영어의 알파벳은 소리글자이지만 알파벳은 모아쓰는 형태가 아닌 풀어쓰기 형태이기 때문에 음절글자를 표현할 수가 없다. 즉 '단어'는 있지만 '단'이나 '어'와 같은 음절 글자는 없다는 말이다.
이에 반해 일본의 가나는 소리글자이긴 하지만 음절은 있으나 음소가 없다. 즉 '가'는 있으나 'ㄱ'이나 'ㅏ'는 없다는 말이다. 특히 가나는 음절수(글자수)가 약 80여 자로 매우 적기 때문에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일본인들이 '김치'를 '기므치'라고 말하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가나엔 '기'라는 음절(글자)은 있지만 '김'이라는 음절(글자)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중국의 한자를 살펴보면, 한자는 뜻글자이며 음절글자이다. 즉 '한자'는 모든 '뜻' 하나마다 '음' 하나를 가지며 또한 하나의 '모양'을 가져야 한다. 때문에 한자는 그 수가 많고 모양이 복잡하다. 그것이 '뜻글자'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한자'의 가장 큰 단점이다.
이에 비해 한글은 자음 19개, 모음 21개 그리고 받침 27개로 총 67개의 음소를 가지며 이 67개의 음소로 총 11,172자의 음절글자를 만들 수 있다. 이같은 글자는 사람의 말이 가지고 있는 구성원리를 그대로 글에 적용한, 즉 한글은 말의 생긴 모양을 그대로 완벽하게 나타낼수 있는 매우 독창적인 글자이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인 구조를 지녔는데, 한글의 뛰어난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얼마나 한글을 발전시키는데 소홀했다. 한글은 한자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가나보다도 못한 과학화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 글자는 글자의 과학화가 상당히 더디 진행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한자를 가르치는데 긴 교육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과학화에 상당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일본글자는 한자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글은 계속 이어져 있어 읽기에 상당한 불편함을 준다. 일반적으로 한자 한 글자는 일본글자로 두 글자 정도다. 한자로 쓰면 짧아질 단어를 일본글자로 쓰면 길어진다. 이처럼 길게 써 놓으면 글자마다 눈을 스쳐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 가중되며 또 변별력도 낮아져 읽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한자의 도움으로 단어 길이를 짧게 해 독서 능률을 올리고 있다.
다만 한자를 일본인이 일본의 말소리에 맞추어 쓰고 있는 방식은 일본인의 뛰어난 지혜라 할 만하다. 그래서 일본인은 한자라 하지 아니하고 일본 한자(Japanese kanji)라 하여, 우리의 한자와는 그가치를 아주 달리 부여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일본말에는 같은 소리에 다른 뜻을 담는 말이 많다. 그래서 이해가 어려워 한자를 써서 극복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단어를 구성하는 데 있어 영어는 평균 5자소이지만 다섯번째의 손질에는 단어 사이를 떼는 손질도 들어 있어 사이띄기 손질을 빼면 4개의 알파벳 자소로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만일 4개 알파벳을 조합해 단어를 만든다면 수십개의 단어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글은 문장 안에서는 한 단어가 평균 3자(8자소)이다. 어미를 빼는 경우에 두 글자가 한 단어를 구성한다고 볼 때, 예를 들어 자음 [ㄱ]과 [ㄴ]과 또 모음 [가]와 [가]의 4자소로 두 글자까지 조합하여 단어를 만들어 보면, 200개 단어수를 만들 수 있다. 말은 자꾸만 변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한글의 조어력은 더욱 돋보일 것이다.
일본 글자는 음절글자이기 때문에 두 음절 글자로써 만들 수 있는 단어는 고작 6개이다. 조합력이 낮은 불과 50개의 음절 글자로 만든 소수의 단어로 여러가지 사물을 나타내는 말을 만드려니까, 같은 소리에 뜻이 다른 단어가 많을 수밖에 없고, 이를 분간해 놓으려니 갯수 많은 한자를 빌려 쓸 수 밖에 없다.
일본의 글자는 글자 수가 적어 배우기 쉽고 익히기에는 쉬울 수 있으나, 음소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어서 글자 구성 조합력이 낮아 단어에 동음이의어가 많이 발생해서 복잡한 사물을 변별력 있게 나타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동음이어가 많게 되면 듣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물과 또 말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물이 다룰 수 있고 글로 주변 현장 상황을 써 놓지 않으면 이해에 보조 여건이 없어 동음이어의 내용을 가려내며 이해하기에는 어려워 결국 판단에 많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4. 정보화 시대와 한글
한글은 다른 글자에 비해 필기체나 약어가 없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다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① 글자획이 간단하여 빨리 쓸 수 있기에 따로 빨리 쓰는 글자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② 한글은 태어날때부터 인쇄되어 나왔으므로 인쇄체에 맞춰 글씨도 인쇄체로 되고 인쇄체 글자만으로 나왔다.
오늘날의 문자생활은 완전히 기계화되고 있다. 타자기와 컴퓨터가 생활화되고 있어 필기체는 점차 필요가 없어져 가고 있다. 한글의 원래 글씨는 바로 이러한 현대 문자에 맞는 앞선 걸음을 걸은 글씨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