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자교수] 우리말 숲에서 5 - 정답 맞히고 옆 사람과 맞춰 보고
40 정답 맞히고 옆 사람과 맞춰 보고 (2006-08-29)
“大富(대부)는 由天(유천)하고 小富(소부)는 由勤(유근)이니라”는 말이 있다.
‘큰 부자는 하늘에 달려 있고 작은 부자는 근면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옛날에, 나이 차이가 큰 두 나그네가 여행을 다니는 중에 해가 저물어 어떤 마을에 들어섰다. 멀리 집 두 채가 보였는데, 기와집은 불이 꺼졌고 초가집에서는 막 저녁을 짓고 있었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노인이 동행한 젊은이에게 이왕이면 넉넉한 집에서 묵어가자고 했다. 이에 젊은이가 기와집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노인은 알부자는 초가집이라며 젊은이의 걸음을 막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젊은이에게 노인이 말했다.
“초가집이 왜 알부자인지 정답을 맞혀 보게.”
젊은이는 이리저리 생각을 맞춰 보았지만 답을 맞힐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비록 겉보기엔 저 초가집이 가난해 보이지만 머지않아 기와집을 살걸세. 한 집안이 잘되고 못됨은 식사 시간으로 알 수 있지. 흥하는 집은 아침밥이 이른 반면 저녁밥이 늦네. 그만큼 오래 일하기 때문이지.”
과연 얼마 후 기와집은 재산을 탕진하여 곁의 초가집 주인이게 집을 팔고 말았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큰 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저 하기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부와 가난을 떠나, 내일 나의 모습과 위치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새겨 볼 일이다. 2학기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흔히 잘못 쓰는 것 중에 ‘마치다/맞히다/맞추다’가 있다.
○마치다-[1]마지막으로 끝내다. 예)일을 마치다 [2]1)무엇을 박을 때, 밑에 무엇이 닿아 버티다. 예)밑에서 뭔가 딱딱한 게 마친다) 2)뼈 따위가 결리고 아프다. 예)옆구리가 마치고 등이 결린다.
○맞히다-[1]물음에 옳은 답을 하다. 예)퀴즈의 답을 맞히다 [2]1)목표에 맞게 하다. 예)적장의 어깨를 화살로 맞혔다. 2)침이나 매, 눈, 비, 주사, 도둑 따위를 맞게 하다. 예)아이에게 주사를 맞혀야 한다.
○맞추다-1)제 자리에 맞게 대어 붙이다. 예)부품들을 다시 맞추다 2)서로 비교하여 살피다. 예)아이들은 서로 답을 맞춰 보았다. 3)일정한 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하다. 예)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하다 4)어떤 대상에 닿게 하다. 예)입을 맞추다
※‘맞히다’에는 ‘정답을 골라내다’ ‘적중하다’의 의미가 있다. *내일 날씨를 알아맞히다.
‘맞추다’에는 대상끼리 서로 비교한다는 의미가 있다. *답안지를 정답과 맞추다. 친구와 다음 주 일정을 맞춰 보았다.
41 '놀라다’와 ‘놀래다’ (2006-09-05)
놀라지 않고 놀래지도 않는 공존의 법칙
늦은 오후. 설핏한 햇살이 눈부신데 바람마저 살랑 부니 더없이 기분 좋은 산책길이다. 나를 반가이 맞아 주는 영롱한 소리, 산새. 어떻게 생겼기에 저리 곱게 울음 짓나 싶어 좀 다가가 보려 하자 그리 먹은 내 마음까지 알아챘는지 새는 금세 날아가 버린다.
산길을 좀 더 오르다 보면,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란 새가 황급히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모습도 눈에 띈다. 집과 삶이 어우러진 이곳마저 새들은 오르는 사람들에게 내주곤, 놀래지 않으려고, 소리 죽여 오르는 내 발길에도 놀라 나뭇가지 사이를 정신없이 가르는 새. 그러다 외부 침입자가 있음을 알리려는지 바삐 움직이며 이쪽저쪽으로 울어대는 다급한 듯한 소리. 평온하던 숲이 갑자기 이토록 떠들썩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동물이 사람을 보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인간에게 쉽게 멸종당하고 만다고 한다. 신대륙이나 오세아니아에 살았던 동물들은 사람과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 결과 새로 등장한 사람들의 손쉬운 사냥감이 되어 결국 멸종하게 되고 만 것이다. 현대의 동물들에게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생존의 방법이 되었다. 동물이 사람을 보면 놀라서 달아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 텐데.
산책길에서 나를 보자 새가 후다닥 날아간 이유는, 내가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본의 아니게 평온했던 산새들을 내가 놀래 주고 만 것이다. 사람도 우리를 괴롭히거나 위협적인 존재를 만나면 피하듯이 동물들도 사람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가 진정 행복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듯, 인간이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자연의 무분별한 개발과 동물의 포획 등으로 계속 자연을 놀랜다면 머지않아 자연이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놀라지 않고 또 서로를 놀래지도 않는 공존의 법칙,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놀라다’의 아래와 같은 사용례를 흔히 보곤 한다. 아래의 설명을 보고 고쳐 사용하는 바른 언어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아유,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래(→놀라)? / 엄마가 놀래면 (→놀라면) 태아는 심장이 아프다. / 미리가 에텔을 깜짝 놀래켜(→놀래) 주었다.
○ 놀라다 (1)뜻밖의 일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무서움을 느끼다. 예)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다 / 총소리에 놀라다/ (2) 신기한 것을 보고 매우 감동하거나 어처구니가 없다. 예) 엄청난 규모에 놀라다 / 똑똑하던 그가 기본적인 행동도 못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랐다.(3) 평소와 다르게 심한 반응을 보이다. 예) 오랜만에 고기를 실컷 먹었더니 창자가 놀랐는지 배가 아프다. (‘놀라, 놀라니, 놀라면, 놀랍다, 놀라네’로 활용함.)
○ 놀래다 ‘놀라다’의 사동사. 예)뒤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를 놀래 주었다.
○ 놀래키다 ‘놀래다’의 충청도 방언.
42 '꼽다’와 ‘꽂다’ (2006-09-12)
머리에 예쁘게 핀을 꽂고
옛날 고려 때 아버지의 권세만 믿고 으스대던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들 곁엔 많은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권세를 휘두르며 부정을 저지른 아버지가 그 사실이 밝혀져 투옥되었다. 그러자 그 많던 혼처도 한번에 끊기고 아들은 죄인의 자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그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용모도 손에 꼽을 정도로 수수했지만, 음식 만드는 솜씨는 제법이었다. 음식 중에서도 궁중 요리의 천하일품 요리로 꼽는 신선로를 잘 만드는 그 처녀는 언제나 그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을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풀려나게 되었고 그 주변에는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들은 돌변하여 가장 힘겨울 때 곁에 있어 준 처녀를 버리고 부잣집 딸과 약혼해 버렸다. 머리에 나비모양 장식핀을 꽂고 다녀 매우 촌스러웠다는 게 그녀를 버린 이유였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새로운 죄가 밝혀지면서 아버지가 다시 투옥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새 약혼녀는 물론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 끊어지고 말았다. 아들은 그제야 옛 여인의 참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 처녀는 이미 결혼한 뒤였다. 허탈감과 회한에 빠진 아들은 시름시름 앓으며 세상을 겨우겨우 살아가게 되었다.
자기의 좋은 조건을 드러내어 뻐기고, 어려웠던 시절에 진정으로 함께했던 사람을 상황이 바뀌었다고 쉽게 저버리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잘 알지 못한 처사이다. 대물림한다지만, 변화무쌍한 것이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삶의 이치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지극히 개인 중심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알든 모르든 주변 사람들과 진정으로 함께할 때 자신의 가치도 인정받고, 재산도 생명도 지킬 수 있으며 의미 있는 삶도 영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아침 살갗에 스미는 공기가 싸늘하다. 가을은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 같은 계절이다. 오늘 내딛는 걸음이 더 굳셀 수 있도록, 한번 쯤 자신을 돌아보면 어떨까.
��우리말 공부��
○ 꼽다 1) 수를 세려고 손가락을 하나씩 구부리다. 예) 추석이 며칠 남았는지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2) 골라서 지목하다. 예)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힘 가운데 하나로 종교를 꼽을 수 있다.
○ 꽂다 1) 빠지지 아니하게 박아 세우거나 끼우다. 예) 꽃을 병에 꽂다 /산 정상에 국기를 꽂고/머리에 비녀를 꽂은 그녀/플러그를 꽂았니? 2)내던져서 거꾸로 박히게 하다. 예) 그는 깡패를 바닥에 힘껏 꽂았다.
※ 흔히 “핀을 예쁘게 꼽아라.” 라고 하는데, “예쁘게 꽂아라.”로 고쳐 써야 한다.
43 밤나무를 털지 말고 밤을 떨어 (2006-09-26)
“완아, 수야, 일어났니? 밤 주우러 가자.”
놀이터 옆 밤나무의 밤이 익었으니 함께 밤 주우러 가자고 며칠 전부터 아이들의 성화가 이어졌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데리고 간다 했더니 낮게 부르는 소리에도 아이들은 눈을 번쩍 뜨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따라 나섰다. 각자 밤 담을 봉지 하나씩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뛰어가는 아이들은 기대에 부푼 모양이었다.
밤나무가지를 따라 원을 그리듯 돌며 찾는데, 빤빤한 밤 몇 알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환호를 하였다. 그렇게 몇 알 줍고 나자 떨어진 밤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뭇가지를 바라보니, 아람 불어 벌어진 채 달려 있는 밤송이가 여기저기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욕심이 생긴 아이들은 긴 막대기를 가져와 밤나무를 털었다.
“완아, 밤나무를 털지 말고 밤을 떨어. 그래야 내년에도 밤이 많이 열린대.”
“엄마, 밤을 떨려면 밤나무를 털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밤이 많이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완아, 우리 욕심 내지 말자. 밤을 많이 떨려고도, 많이 주우려고도 말고. 봄부터 가을까지 찬찬히 서린 자연의 사랑과 밤나무의 정성이 알밤 하나에도 가득 들어 있어. 우리 밤나무 밑에서 올가을을 줍는다고 생각하자. 그럼 이만큼만으로도 넉넉하지?”
아이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봉지에 밤 몇 알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가을을 가득 담아가지고 돌아왔다.
��우리말 공부��
○ 털다:1)달리거나 붙어 있는 것이 떨어지게 흔들거나 치다. 예) 먼지 묻은 옷을 털다/ 곰방대를 털며 이야기했다. 2) 가지고 있는 것을 남김없이 내다. 예) 전 재산을 털어 사업에 투자했다. 3) 가진 재물을 몽땅 빼앗거나 그것이 보관된 장소를 모조리 뒤지어 훔치다. 예) 금품을 털다/ 은행을 턴 강도를 수배하다. 4) 일, 감정, 병 따위를 완전히 극복하거나 말끔히 정리하다. 예) 털고 일어나다/ 그녀는 악몽 같은 과거를 훌훌 털어 버렸다.
○ 떨다:1) 달리거나 붙어 있는 것을 쳐서 떼어 내다. 예) 옷의 먼지를 떨다/ 담뱃재를 떨다/ 모자 위에 쌓인 눈을 떨고 있다. 2) 언짢은 생각 따위를 없애다. 예) 지난 일에 대한 생각을 다 떨어 버리자. 3) 남은 것을 모두 팔아 버리거나 사다. 예) 남은 물건을 싸게 떨고 가려고 해요./ 이 과일들을 2천 원에 떨어 가십시오.
※ 즉, 떨어지는 대상을 흔드는 것을 ‘떨다’라 하고, 대상이 붙은 물체를 흔드는 것을 ‘털다’라 한다. 예) 그는 먼지 묻은 옷을 털어서 먼지를 떨었다./ 먼지떨이는 먼지를 터는 것이 아니라 먼지를 떠는 것이다. 노인은 곰방대를 털어 재떨이에 재를 떨었다.
44 '홑몸’과 ‘홀몸’ (2006-10-10)
‘홑몸’이 아니던 암사슴이 다시 ‘홀몸’된 사연
옛날에 어미와 형제들을 잃고 오랜 시간 홀몸으로 외롭게 지내온 암사슴이 있었다. 다른 무리의 사슴들과 휩쓸려 지내기가 쉽지 않았기에 홀몸 생활은 참으로 쓸쓸했다.
어느 날, 암사슴은 임신을 하게 되었었다. 이제 홑몸이 아니었기에 심한 운동을 삼가고 위험한 곳도 피하였으며 향긋한 풀과 잘 여문 열매를 골라 먹었다.
그렇게 두 계절을 보낸 어느 날 암사슴은 새끼를 낳았다. 그동안의 기대감과 설렘이 예쁜 아기로 태어나 눈앞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참으로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런 암사슴에게 예고 없는 불행이 찾아왔다. 새끼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슬픔에 빠진 암사슴은 온 숲 속을 애타게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보낸 암사슴의 눈앞에 길 잃은 늑대새끼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홀몸으로 헤매느라 오래 굶었으리라고 생각한 암사슴은 선뜻 늑대새끼에게 자신의 젖을 먹였다. 때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며 암사슴에게 충고했다.
“이 어리석기 그지없는 사슴아, 너 지금 누구에게 젖을 먹이고 있느냐? 그렇게 한다고 늑대들이 고마워할 줄 아느냐? 오히려 나중에 자라 널 해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엄마로서의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선행이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눈앞에 쓰러진 이가 있으면 일으켜 주고 배고픈 이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나누는 것이다. 남의 어려움을 내 것처럼 느끼는 데서 선과 덕은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말 공부**
‘홑’과 ‘홀’에 ‘몸’이 결합하여 ‘홑몸’, ‘홀몸’이 되며 그 의미는 아래와 같다.
*홀몸 - 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 예) 사고로 아내를 잃고 홀몸이 되었다.
*홑몸 - 1) 아이를 배지 아니한 몸. 예) 홑몸도 아닌데 장시간의 여행은 무리다.
2) 딸린 사람이 없는 혼자의 몸. 예) 나도 처자식이 없는 홑몸이면 그 일에 당장 뛰어들겠다.
*홀 - ‘짝이 없이 혼자뿐인’의 뜻을 더하는 말. 예) 홀시어머니/ 홀아비/ 홀어미.
*홑 - 겹으로 되지 아니하거나 혼자인 것. 예) 이 두루마기는 홑으로 단을 접어 지은 것이다./ 홑바지/홑이불.
*핫 - 1) ‘짝을 갖춘’의 뜻을 더하는 말. 예) 핫아비/ 핫어미.
2) ‘솜을 둔’의 뜻을 더하는 말. 예) 핫바지/ 핫옷/ 핫이불.
※ ‘핫아비’ ‘핫어미’는 각각 ‘배우자가 있는 남자와 여자’ 즉 유부남, 유부녀를 이르므로 ‘핫1)’은 ‘홀’과 대립되는 의미를 가지며, ‘핫바지’ ‘핫이불’ 등은 ‘솜을 두어 따뜻하게 지은 것’이므로, ‘핫2)’는 ‘홑’과 대립되는 뜻을 가진다.
45 ‘피다’와 ‘펴다’ ( 2007-10-10 )
마음 열고 손을 펴면 저만치 꽃도 핀다
옛날에 한 농부가 소를 사려고 장터에 나갔다. 그동안 부리던 황소가 부지런하고 힘이 좋아 농부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었지만, 이제는 너무 늙어 더는 밭갈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농부는 황소를 이끌고 장터에 도착했지만 어떤 소를 사야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말주변이 좋은 소장수들은 가는 데마다 자기네 소가 가장 튼튼하고 부지런하다며 농부를 끌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농부는 끌고 간 늙은 황소를 조용히 풀어 주었다. 그러자 울타리를 한 바퀴 돈 뒤 늙은 황소는 한 어린 황소 앞에 멈춰 섰다. 잠자코 있던 농부는 이러쿵저러쿵 말 한 마디 덧붙이지 않고 그 소를 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소장수가 농부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늙은 황소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튼튼한 소였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나와 고락을 같이한 소입니다. 그러니 저 황소가 고르는 건 물을 필요 없이 믿을 만한 소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을 알려면 먼저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우선 나를 열어야 한다. ‘피해 볼까, 손해 입을까’를 염려하여 미리 닫아 두었던 마음을 열고 쥐었던 손을 펴자. 진실한 친구가 다가올 것이다. 어제 가을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엔 꽤나 쌀쌀하여, 시절이 늦가을임을 실감케 한다. 접어 두었던 마음을 펴고 바라보자. 낙엽 지는 쓸쓸한 계절에도 꽃이 활짝 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마음의 꽃이.
**우리말 공부**
우리는 흔히 ‘꽃도 피고, 쥐었던 손도 피고, 갰던 이불도 핀다’고 잘못 말하곤 한다. 기본형이 ‘피다’와 ‘펴다’로 다르므로 아래와 같이 구분하여 사용해야 한다.
○ 피다 - 〔피어(펴)/피고/피니〕1) 꽃봉오리 따위가 벌어지다. 예)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2) 불이 일어나 스스로 타다. 예) 숯이 피다. 3) 사람이 살이 오르고 혈색이 좋아지다. 예) 그는 잘 먹어서인지 얼굴이 피고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4) 구름이나 연기 따위가 커지다. 예) 소나기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검게 피었다. 5) 가정이 수입이 늘어 형편이 나아지다. 예)사업이 잘되어 형편이 피었다. 6) 천에 보풀이 일어나다. 예) 스웨터에 보푸라기가 피다. 7) 웃음이나 미소 따위가 겉으로 나타나다. 예) 얼굴에 웃음의 꽃이 피었다. 8) 곰팡이, 버짐, 검버섯 따위가 생기다. 예) 식빵에 곰팡이가 폈다.
○ 펴다 - 〔펴/펴고/펴니〕1) 접히거나 개킨 것을 젖히어 벌리다. 예) 우산을 펴다 2) 구김이나 주름 따위를 없애어 반반하게 하다. 예) 구김살을 펴니 주름살도 펴진다. 3) 굽은 것을 곧게 하다. 예) 허리를 펴고 주먹도 폈다. 4) 생각, 감정, 기세 따위를 얽매임 없이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주장하다. 예) 그녀는 반론을 펴며 소신을 폈다. 5) 넓게 늘어놓거나 골고루 헤쳐 놓다. 예) 마당에 돗자리를 폈다. 6) 세력이나 작전, 정책 따위를 벌이거나 그 범위를 넓히다. 예) 세력을 펴다/전국에 수사망을 펴다.
46 ‘옛’과 ‘예’ (2006-11-21)
예스러운 맛이 나는 옛 추억
생일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게 요즘 아이들 풍습이고, 또 친구들을 초대하고 싶다는 큰아이의 말에 피자집을 예약하고 미리 그곳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되자 우리 아이와 함께 몇 명씩 떼 지어 아이들이 피자집으로 들어왔다, 참새처럼 왁자지껄 떠들면서. 열서너 명의 여자아이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눈빛을 총총히 반짝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나 뛰어가자 그 뒤로 몇 명의 아이들이 와아 소리를 내며 우르르 몰려나갔다, 막을 틈도 없이. 깜짝 놀라 무슨 일인지 우리 아이한테 물었더니, 초대한 남학생이 왔다고 했다. 전혀 별일이 아닌데 왜 그랬을까 생각고 있는데, 한 여학생이, 왔다가 뛰어나갔던 남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피자집으로 들어오고 그 뒤로 여학생들이 죽 따라 들어왔다.
머리채를 잡혀 온 남학생은,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이 아이들 반의 반장이고, 아이들한테 인기도 좋고 운동도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여자아이들이 저렇게 하더냐고 했더니, 학교에서 여학생들한테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저렇게 당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남학생한테 심하게 말하고 거칠게 행동하며, 또 좋아한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는 게 요즘 아이들의 평범한 모습이라 했다. 내가 말려 보았지만, 그 뒤로 들어온 남학생 몇 명도 그와 비슷한 곤욕을 치르고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남학생들에게 탁자를 따로 마련해 주고 천천히 맛있게 먹으라고 더 따뜻하게 얘기하였다.
굳이 옛말을 떠올린다거나 예스러운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와 같은 아이들의 행동은 내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건 분명 폭력이었다. 자기의 관심을 폭력적인 언행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10살짜리 아이들의 현실이 무섭기까지 하였다. 일부러 하나하나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따뜻하게 불러 준 후, 아이들의 그런 행동을 말려 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우리 딸아이한테 물었다.
“너도 엄마가 보지 않는 데서 저렇게 하니?”
“저렇게 머리채를 잡고 끌거나 때리지는 않아요.”
분명하게 그러지 않는다는 대답은 아니지만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오랜만에 예스러운 맛이 나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옛 친구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옛일이지만 정말 순수하고 따뜻했던 친구들과의 놀이, 몸이 불편했던 친구를 서로 도와주려고 집에서 일찍 나섰던 일, 어른이 되고 보니 그 때 그 남학생도 내 소중한 추억 속의 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모두 따뜻하게 대하며 잘 지내라는 얘기를 해 주었다. 아이들이 얘기를 받아들이는 기색은 별로 없었지만 그냥 지나갈 수 없었기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예스러운 멋을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을 여학생, 남학생 모두가 서로 배려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돕고 지냈으면 하는 마음, 정말이지 간절한 시간이었다.
**우리말 공부**
○ 옛:<관형사> 지나간 때의. 예) 옛 자취, 옛 사람, 그는 밤늦도록 옛 기억을 더듬었다.
※ ‘옛’은 관형사이므로 다음에 반드시 꾸밈을 받는 말이 이어지고, ‘관형사+명사’ 형식이므로 띄어 쓴다. 다만, ‘옛것, 옛글, 옛길, 옛말, 옛일, 옛적, 옛정’ 등은 한 단어로 굳어졌기 때문에 붙여 쓴다.
○ 예:<명사> 아주 먼 과거. 예)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 ‘예’는 명사이므로 뒤에 조사가 온다. ‘명사+조사’이므로 붙여 쓴다.
따라서 ‘옛부터’, ‘옛스럽다’ 등은 잘못 쓴 말이다...............................